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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곡 다장조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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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사곡 다장조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7년에 니콜라우스 2세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종교 음악이다. 하이든의 미사곡 전통을 잇고자 했으나, 에스테르하지 공으로부터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초연은 1807년 9월에 이루어졌으며, 이후 1812년에 출판되었다. E.T.A. 호프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오늘날에는 장엄 미사에 가려져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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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곡 다장조 (베토벤)
작품 정보
제목다장조 미사곡
작곡가루트비히 판 베토벤
1805년경 베토벤, [[요제프 빌리브로드 맬러]]의 [[베토벤 (맬러)|초상화]] 세부
1805년경 베토벤, 요제프 빌리브로드 맬러의 초상화 세부
조성다장조
작품 번호86
가사미사 통상문
크리스티안 슈라이버의 독일어 버전
헌정에스터하지 공 니콜라우스 2세
킨스키 공 페르디난트 5세
초연date: 1807년 9월 13일
location: 아이젠슈타트
출판date: 1812년
location: 라이프치히
출판사브라이트코프 & 헤르텔
악기 편성독창자
합창단
오케스트라

2. 작곡 및 배경

베토벤은 대위법의 권위자였던 요한 게오르크 알브레히츠베르거에게서 배웠지만, 경력 후반까지 종교 음악을 다루지 않았다. 1807년 니콜라우스 2세 에스테르하지 공작으로부터 위촉을 받은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악장으로서 에스테르하지 가를 섬긴 요제프 하이든이 확립한 전통을 확대하게 된다.[3] 하이든은 1795년 잉글랜드에서 귀국한 이후 마리아 요제파 헤르멩길데 에스테르하지 공작 부인의 수호 성인 축일을 축하하기 위해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위한 매년 한 곡의 미사곡을 작곡하고 있었지만, 1802년에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이 관습을 중단했다.[3] 베토벤은 하이든이 확립한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아 다장조 미사곡을 작곡하게 된다. 베토벤은 에스테르하지 공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저는 각하께서 위대한 하이든의 견줄 데 없는 걸작들이 연주되는 것에 익숙하시기에, 매우 두려운 마음으로 미사곡을 드립니다."[3]

미국의 음악 학자 루이스 록우드는 이렇게 썼다:

"에스테르하지 공의 위촉을 받자 베토벤은 하이든의 미사곡을 칭찬하면서 "독특한 걸작"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위촉주가 에스테르하지 공이라는 사실을 크게 넘어, "글로리아"의 스케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자작의 작곡 중에 하이든의 미사곡을 연구한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 스케치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 "글로리아"로부터의 두 개의 패시지가 쓰여져 있다. 《천지창조》는 하이든의 후기 네 편의 미사 중 한 곡으로, 베토벤에게 있어 출판보를 용이하게 입수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3]

3. 초연 및 반응

1807년 9월 13일 에서 멀지 않은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저택에서 에스테르하지 공의 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연주가 어느 건물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수많은 하이든의 작품이 초연된 베르크키르헤와 공이 주로 거주했던 에스테르하지 궁전의 교회 두 곳이다.[4]

이때의 초연은 연습이 부족한 채로 행해졌다. 스톨츠퍼스는 "무대 연습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었다"라고 썼고, 더욱이 "합창대의 다섯 명의 알토 중 한 명 밖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다.[5]

1808년 12월 22일의 연주회에서 베토벤은 이 미사곡의 "글로리아"와 "상투스"를 지휘했다. 이 공연의 주안점은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피아노 협주곡 4번》, 《합창 환상곡》의 공개 초연이었다.

작품의 의뢰자인 에스테르하지 공은 미사곡의 내용을 그리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반면, 동시대의 비평가 E.T.A. 호프만은 "어린아이 같은 고요한 마음의 표현"이라며 높이 평가했고, 마이클 무어는 "솔직함과 감정적 내용"에 관하여 특필했다.

4. 출판

베토벤은 이 미사곡을 수정하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에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과 함께 제공했다. 원래 이 미사곡은 에스테르하지 공에게 헌정되었으며, 초연에 사용된 악보에도 이 헌정문이 적혀 있었다.[6] 첫 공연의 결과와 공의 반응을 고려하면, 베토벤이 출판본(1812년)을 다른 사람인 킨스키 공작에게 헌정한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첫 출판은 필사본 오케스트라 파트와 함께 인쇄된 악보로 구성되었다.[7]

출판사는 베토벤에게 크리스티안 슈라이버가 쓴 독일어 대안 텍스트를 보냈고, 베토벤은 1811년 1월 16일에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글로리아의 번역은 내게 잘 맞는 것 같지만, 키리에에는 그렇게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록 시작 부분인 tief im Staub anbeten wirde [먼지 속에서 깊이 숭배합니다]는 매우 잘 어울리지만, ew’gen Weltenherrscherde [영원한 세상의 지배자]와 Allgewaltigende [전능한]과 같은 표현은 글로리아에 더 적합해 보입니다. 키리에의 일반적인 특징은 ... 진심 어린 체념이며, 거기에서 종교적 감정의 깊이가 Gott erbarme dich unserde [하느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로 나타나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부드러움이 전체 작품의 기초이며, ... eleison have mercy upon usde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쾌활함이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일요일에 축제 분위기로 장식된 채 교회에 갑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역시 전체 미사곡의 서곡과 같습니다. 이렇게 강한 표현으로는 실제로 강해야 하는 부분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7]

5. 음악적 특징 및 구성

베토벤은 대위법의 권위자인 요한 게오르크 알브레히츠베르거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의 경력 후반까지 종교 음악은 다루지 않았다. 1807년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공의 위촉을 받은 베토벤은, 수십 년 동안 카펠마이스터로서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섬긴 요제프 하이든이 확립한 전통을 확대하게 된다. 하이든은 1795년 잉글랜드에서 귀국한 이후 에스테르하지 공의 부인의 수호 성인 축일을 축하하기 위해 매년 한 곡의 미사곡을 작곡했지만, 1802년 건강 악화로 이 관습을 중단했다. 베토벤은 하이든이 쌓아온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영향을 받아 다장조 미사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베토벤은 에스테르하지 공에게 보낸 서신에서 "폐하께서는 위대한 하이든이 연주했던 무수한 걸작을 수중에 두시고 익숙해지고 계신다고 하셔서, 전 몹시 떨면서 미사곡을 건네드릴 것이라는 취지를 말씀드립니다."라고 고백했다.

미국의 음악 학자 루이스 록우드는 "에스테르하지 공의 위촉을 받자 베토벤은 하이든의 미사곡을 칭찬하면서 '독특한 걸작'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 '글로리아'의 스케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의심의 여지 없이 그가 자작의 작곡 중에 하이든의 미사곡을 연구한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 스케치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 '글로리아'로부터의 두 개의 패시지가 쓰여져 있다."라고 썼다.[3]

작품은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연주 시간은 48분 정도이다.

4명의 독창자(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4성부 합창단(S, A, T, B),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팀파니, 현악기, 오르간으로 편성되어 있다.

라틴어 미사 통상문에 따라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악장, 성악 편성, 빠르기말, , 박자표는 아래 표와 같다.

번호부분시작성악 편성빠르기말박자
1Kyrie|키리에grcKyrie|키리에grcS, A, T, B 독창 + 합창 (SATB)Andante con moto assai vivace quasi Allegretto ma non troppoit다장조
2Gloria|글로리아laGloria|글로리아laT 독창 + 합창 (SATB)Allegro con brioit다장조
Qui tollis peccata mundi|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laA 독창 + 합창 (SATB)Andante mossoit바단조
Quoniam tu solus sanctus|쿼니암 투 솔루스 상투스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llegro ma non troppoit다장조
3Credo|크레도laCredo|크레도la합창 (SATB)Allegro con brioit다장조
Et incarnatus est|에트 인카르나투스 에스트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dagioit내림마장조
Et resurrexit|에트 레주렉시트laB 독창 + 합창 (SATB)Allegroit다장조
Et in Spiritum Sanctum|에트 인 스피리툼 상툼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llegroit다장조
Et vitam venturi saeculi|에트 비탐 벤투리 세쿨리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llegro ma non troppoit다장조
4Sanctus|상투스laSanctus|상투스la합창 (SATB)Adagioit가장조
Pleni sunt coeli|플레니 순트 첼리la, Osanna|오산나la합창 (SATB)Allegroit가장조
Benedictus|베네딕투스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llegretto ma non troppoit바장조
Osanna|오산나la합창 (SATB)Allegroit가장조
5Agnus Dei|아뉴스 데이laAgnus Dei|아뉴스 데이la합창 (SATB)Poco Andanteit다단조
Dona nobis pacem|도나 노비스 파쳄laS, A, T, B 독창 + 합창 (SATB)Allegro ma non troppoit다장조
합창 (SATB)Andante con moto, Tempo del Kyrieit다장조


6. 평가 및 영향

작품의 의뢰자인 에스테르하지 공은 미사곡의 내용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8] 반면, 동시대의 비평가 E. T. A. 호프만은 "어린아이 같은 고요한 마음의 표현"이라며 높이 평가했고, 마이클 무어는 "솔직함과 감정적 내용"에 관하여 특필했다.[1]

E. T. A. 호프만은 1813년의 평론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힘을 기대하며, "자신의 순수성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아버지에게 간구하는, 어린아이처럼 평온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썼다.[11] 그는 다단조의 '아뉴스 데이'에서 "마음을 찢지 않고 오히려 좋게 하며, 다른 세상에서 온 슬픔처럼 초자연적인 기쁨으로 녹아드는 내면의 슬픔"을 들었다.[11]

오늘날, 이 미사곡은 로젠과 같은 평론가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지만, 베토벤의 대규모 작품 중 가장 덜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인 장엄 미사에 가려져 있다.[1] ''펭귄 가이드 콤팩트 디스크''(2007년판)는 이 작품을 "오랫동안 저평가된 걸작"이라고 칭했다.[1] 마이클 무어는 "이 작품은 [장엄 미사]가 때때로 부족한 직접성과 정서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1]

루이스 록우드는 19세기의 전기 작가인 안톤 신들러와 알렉산더 위록 세이어가 말한 다음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초연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고, 특히 곡을 위촉한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불평을 샀다.

> 이야기에 따르면, 에스테르하지 공작은 작품을 다 듣고 - 아마도 스스로 숭배했던 하이든의 미사곡 양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 베토벤에게 "하지만 친애하는 베토벤, 당신은 또 뭘 해준 건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교회의 악장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 다름 아닌 요한 네포무크 훔멜이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자신도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위해 미사곡을 작곡했고, 바로 전 해에는 같은 다장조로 썼기 때문이다. 에스테르하지 공작의 질문에 분개하고, 훔멜의 오만한 조롱이나 아이젠슈타트에 모인 질 낮은 손님들의 면면에 대해 격앙된 베토벤은 분노에 차 그곳을 떠났다.[8]

찰스 로젠은 이 에피소드를 베토벤의 "공공 장소에서의 가장 굴욕적인 실패"라고 불렀다.[9] 에스테르하지 공작은 아마도 자신의 감상을 직접 베토벤에게 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에 헨리에테 폰 치린스카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의 미사곡은 참을 수 없는 바보스러움과 끔찍함으로, 나는 제대로 연주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화가 나고, 굴욕적이었다."라고 극언했기 때문이다.[10]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간행물 Beethoven's "Mass in C" Notes on History, Structure, and Performance Practice
[5] 기타
[6] 기타
[7] 기타
[8] 서적 Beethoven: The music and the life New York: Norton
[9] 서적 The Classical Style: Haydn, Mozart, Beethoven New York: Norton
[10] 서적
[11]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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