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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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족은 일정한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며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집단을 의미하며, 언어, 종교, 역사, 사회 조직 등이 기준이 된다. 민족 개념은 객관적 기준과 주관적 귀속 의식 모두를 포함하며, 본질론과 구성론적 정의로 나뉜다. 본질론은 객관적 속성을, 구성론은 주관적 속성을 강조한다. 민족은 언어, 생활 양식에 따라 분류될 수 있으며, 영어의 'ethnic group'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동아시아에서 '민족' 개념은 서구의 'nation'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일본에서 국민 국가 건설 과정과 제국주의적 발전의 정당화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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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 다민족 국가
다민족 국가는 두 개 이상의 민족 집단이 상당한 규모로 공존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민족 간 통합 및 갈등, 소수 민족 권리, 국가 정체성 확립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 민족 - 단일 민족 국가
단일 민족 국가는 문화, 언어, 가치관을 공유하는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의미하며, 국정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소수 민족 차별, 사회적 갈등, 민족주의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 민족성 - 민족학
민족학은 민족지학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를 비교, 대조하며, 여러 민족의 기원, 언어, 관습, 제도를 연구하여 인류 역사를 재구성하고 문화적 보편성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 민족성 - 신토
신토는 일본 고유의 종교적 관념으로, 창시자나 경전 없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가미'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례와 신앙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격변을 거쳐 현재는 신사신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 1930년대 신조어 - 화이트칼라
화이트칼라는 사무직, 관리직, 전문직 등 정신 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산업 고도화와 함께 증가했지만 기술 혁신 등으로 블루칼라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내부 양극화, 건강 문제, 가짜 업무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 1930년대 신조어 - 낙수 경제
낙수 경제는 부유층의 경제적 번영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는 이론으로, 부유층 감세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과 논란이 있는 경제 정책이다.
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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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정의 | 일정한 지역에서 거주하며, 언어, 문화, 혈통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
관련 용어 | 민족성 국민 인종 종족 부족 |
민족과 국가 | |
민족 국가 | 민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
다민족 국가 |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국가 |
민족 연구 | |
주요 연구 분야 |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언어학 |
연구 방법 | 민족지학 비교 연구 통계 분석 |
민족의 형성 | |
요인 | 지리적 요인 역사적 경험 문화적 동질성 종교적 신념 언어적 공통성 |
민족 간 관계 | |
평화로운 관계 | 문화 교류 상호 존중 다문화주의 |
갈등 관계 | 민족 갈등 인종 차별 학살 |
주요 민족 | |
아시아 | 한민족 중화민족 야마토 민족 인도아리아인 |
유럽 | 게르만족 라틴족 슬라브족 |
아프리카 | 반투족 아랍인 함족 |
아메리카 |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 아메리카 |
2. 정의
'''민족'''(民族) 또는 '''민족 집단'''(民族集団, Ethnic group|에스닉 그룹영어)은 일정한 문화적 특징을 기준으로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집단을 말한다. 토지, 혈연 관계, 언어의 공유(모어)나 종교, 전승, 사회 조직 등이 그 기준이 되지만, 보편적인 객관적 기준을 설정해도 개념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민족 개념에 대한 귀속 의식이라는 주관적 기준이 객관적 기준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1]
민족 구성원들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역사적 영속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소위 민족 유산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특징들의 많은 부분이 근세기에 들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향에서 중요시되던 문화적 특성들이 혼합되거나 지워지기도 한다.
전근대 이전에도 유대인들이나 바르바로이와 자신들을 구분했던 그리스인들처럼 민족과 관련된 개념이 존재했다. 하지만 전근대에는 일반 민중보다 더 높은 권리를 원했던 귀족들에 의해 평등을 주장하는 민족적 사상이 견제되거나 좌절되었다. 물론 귀족들 역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전근대의 민족주의를 지원하거나 학살, 동화 같은 수단으로 민족을 창조하기도 했다. 민족에 대해 매우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신화적인 주장들을 무시한다면, 문명 발생 초기부터 민족 개념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유럽과 인도 문명에 영향을 미친 아리아인과 인도아리아인의 경우에는 최소 아리아인 개념이나 카스트가 등장한 시기부터 민족차별이라 볼 수 있는 개념이 굉장히 빨리 등장하였다. 마누 법전 등을 통해 당시 인도아리아인 귀족들은 민족적 개념을 상당히 잘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쓰다 미와(津田みわ)에 따르면, 정치학·역사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는 여전히 ‘민족’이라는 단어가 네이션(Nation)을 가리켜 사용되고 있다.
2. 1. 본질론적 정의
쓰다 미와(津田みわ)에 따르면, '''ethnic group'''의 정의에는 본질론과 구성론이 있다.[2]본질론적 정의에서는 혈연, 출신, 신체적 특징, 언어, 관습 등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객관적 속성을 기반으로 민족을 정의한다.
2. 2. 구성론적 정의
쓰다 미와(津田みわ)에 따르면, '''ethnic group'''의 정의에는 본질론과 구성론이 있다.[2]구성론에 따르면 민족은 다른 집단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형성되며, 개인의 의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구성론에서는 집단의 결정에 있어 귀속 의식 등 주관적인 속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3. 분류
민족은 포괄적인 개념이며, 객관적인 기준으로 분류해도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3. 1. 언어에 따른 분류
민족을 분류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 중 하나는 모어를 기준으로 하는 분류이다.[3] 우랄어족을 모어로 하는 민족은 우랄계 민족, 튀르크어족을 모어로 하는 민족은 튀르크계 민족 등으로 분류한다. 이 경우 민족의 범주는 언어의 범주와 같아지며, 언어에 따라 민족이 유일하게 결정된다.어족에 의해 정의된 민족 집단에 특징적인 Y염색체 하플로그룹은 다음과 같다.[4]
어족 | Y염색체 하플로그룹 |
---|---|
코이산계 민족 | A |
니제르-콩고계 민족 | E1b1a |
아프로-아시아계 민족 | E1b1b |
인도-유럽계 민족 | R1a |
우랄계 민족 | N |
알타이계 민족 | C2 |
시나-티베트계 민족 | O2 |
오스트로아시아계 민족 | O1b1 |
3. 2. 생활 양식에 따른 분류
생업 방식에 따라 민족을 분류할 수 있다. 수렵채집민, 농경민, 유목민, 기마민족 등이 이러한 분류에 해당한다.[4]4. 어원
'민족'이라는 단어는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서구의 'nation'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이다.[5] 서구의 nation은 원래 국민과 민족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이 처음 일본에 수용되었을 때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국민국가 건설 목표와 맞물려 '국민'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되어 국민으로 번역되었다. 1880년대 이후 서양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목표로 그들을 타자로서 인식하고 스스로를 역사문화 공동체로 인식해가는 과정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으로부터 '민족'으로서의 개념이 인식되었다.[8]
후쿠자와 유키치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것으로 생각되며, 처음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서양사정》에서는 아직 개념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나중에 《학문의 권장》과 《문명론 개략》에서 이것을 서구의 nation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가토 히로유키는 독일 학자 요한 블룬칠리의 《일반국법론》을 《국법범론》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을 수용했다.
1881년 메이지 14년 정변으로 오쿠마 시게노부가 축출되면서 일본 정부 내에서는 영미 계통 사상을 경계하고 독일학을 장려했다. 1887년 외국인 사법관 임용문제로 과도한 서구화 정책에 반감을 품은 일본인들이 전국적 조약 개정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국민과 민족은 종전과 다른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일본의 전승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으로서의 일본인이 거둔 승리로 인식되었다.
서川長夫에 따르면 “민족”이라는 복합어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이며,[5] 1930년대 이후 일본 사회학자들에 의해 ethnicity/people/folk/nation/kinship/race 등 서양의 여러 개념들이 뒤섞인 채 민족주의로 강화되었다.[6]
중국 고전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드물게 특정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예가 있다.
4. 1. 영어 'ethnic group'의 어원
영어 '''민족 집단(민족성)'''(ethnic group, ethnicit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에트노스'''(ethnos) 또는 프랑스어의 '''에트니'''이다. 이는 특정한 문화적 특징을 기준으로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땅, 혈연관계, 언어의 공유(모어)나, 종교, 전승, 사회 조직 등이 그 기준이 된다.4. 2. 동아시아에서 '민족'의 어원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국가 건설 목표와 맞물려 서구의 'nation'이 일본에 수용되었을 때, 처음에는 '국민'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되어 국민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서양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목표로 하면서, 독일의 Nation 개념으로부터 '민족'으로서의 개념이 인식되었다.[8]후쿠자와 유키치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것으로 추정되며, 서양사정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후 《학문의 권장》과 《문명론 개략》에서 nation을 애국심과 내셔널리티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국민으로 정의했다. 가토 히로유키는 요한 블룬칠리의 《일반국법론》을 번역하며 Nation을 민종(民種)으로, Volk를 국민으로 번역했다.[8]
1881년 메이지 14년 정변 이후 일본 정부 내에서 독일학이 장려되면서, 히라타 도스케 등 관료들 사이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히라타 도스케는 블룬칠리의 저술을 《국가론》으로 번역하며 Nation을 족민(族民)으로 번역했다.[8]
1887년 외국인 사법관 임용문제를 계기로 전국적인 조약개정 반대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일본 내셔널리즘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학협회잡지》는 로베르트 폰 몰의 글을 번역한 〈민족론〉을 게재했는데, 여기서 Nation의 번역어로서 민족이 처음 나타났다.[8]
청일전쟁 이후 일본에서는 '국민'과 '민족' 개념이 다른 맥락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전승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으로서의 일본인이 거둔 승리로 인식되었고, 국체론자들은 천황가의 혈통을 근거로 혈연공동체를 강조하는 민족 담론을 전개했다.[8]
서川長夫에 따르면 “민족”이라는 복합어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이며,[5] 1930년대 이후 일본 사회학자들에 의해 서양의 여러 개념들이 뒤섞인 채 민족주의로 강화되었다.[6]
중국 고전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드물게 나타나며, 특정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예가 있다.[7]
5. 관련 용어
민족의 어원이 되는 서구의 nation은 원래 국민과 민족의 두 의미를 모두 가지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일본에 수용되었을 때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국민국가 건설 목표와 맞물려 '국민'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되어 국민으로 번역되었다. 1880년대 이후 서양 각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을 목표하여 그들을 타자로서 인식하고 스스로를 역사문화 공동체로 인식해가는 과정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으로부터 '민족'으로서의 개념이 인식되었다.[8]
'국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후쿠자와 유키치로 생각되며, 후쿠자와가 처음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서양사정》에서는 아직 개념화된 것은 아니었으나, 나중에 《학문의 권장》과 《문명론 개략》에서 이것을 서구의 nation 개념에 대응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후쿠자와가 강조한 nation은 애국심과 내셔널리티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국민이다. 한편으로 가토 히로유키는 독일학자 요한 블룬칠리의 《일반국법론》을 《국법범론》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을 수용했다. 히로유키는 Nation을 민종(民種)으로, Volk를 국민으로 번역했다.[8]
1881년 메이지 14년 정변으로 영국류 의원내각제를 제시한 오쿠마 시게노부가 축출되면서 정부 내에서는 영미계통 사상을 경계하고 대신에 독일학을 장려했다. 일본에서 독일학이 우위를 점함에 따라 관료 사이에서 독일의 Nation 개념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그 대표적 인물인 히라타 도스케는 《국법범론》의 번역에도 참여했으며 1882년 블룬칠리의 한 저술을 《국가론》으로 번역하면서 Nation을 족민(族民)으로 번역했다.[8]
1887년 외국인 사법관 임용문제로 과도한 서구화 정책에 반감을 품은 일본인들이 전국적 조약개정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독일학협회잡지》는 이 문제를 감안한 듯 지나친 '족민주의'로 인해 타국과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경계하는 논조의 블룬칠리의 저술을 번역해 실었다. 이 잡지의 44호에서 로베르트 폰 몰의 글을 번역한 〈민족론〉은 Nation의 번역어로서의 민족이 가장 처음 나타난 문헌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조약개정 문제는 세이쿄샤(政敎社)의 국수보존주의, 구가 가쓰난의 국민주의 등 본격적 내셔널리즘 사상을 만들어냈다.[8]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국민과 민족은 종전과 다른 맥락에서 논해지게 되었다. 일본의 전승은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으로서의 일본인이 거둔 승리로 인식되었다. 전후 국민 담론에서는 '국민화', '국민교육'이 강조되고, 나아가 '국민성' 논의가 활발해졌다. 민족 담론에서는 국체론자를 중심으로 천황가의 혈통을 근거로 한 혈연공동체 강조 논의와 정치학자를 중심으로 제국주의 발전을 정당화하는 민족주의 논의가 전개되었다.[8]
민족의 일원들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역사적 영속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소위 민족 유산이라고 불리는 문화적 특징들의 많은 부분이 근세기에 들어서서 만들어진 것을 발견했다. 또한 과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향에서 중요시되는 문화적 특성들은 혼합되거나 지워지게 된다.
그러나 전근대 이전에도 자신들을 제외하면 전부 천벌을 받을 민족인 유대인들이나 바르바로이와 자신들을 구분했던 그리스인들처럼 민족과 관련된 개념이 있기는 했다.
유럽과 인도 문명에 영향을 미친 아리아인과 인도아리아인의 경우에는 최소 아리아인 개념이나 카스트가 등장한 시기부터 민족차별이라 볼 수 있는 개념이 굉장히 빨리 등장하였다. 마누 법전 등을 통해 당시 인도아리아인 귀족들은 민족적 개념을 상당히 잘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6. 한국 사회와 민족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국제결혼 증가와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으로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변화를 적극 수용하여, 다양한 민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다문화 사회에서는 민족 간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며, 소수 민족의 권리 보호와 사회적 차별 해소는 중요한 과제이다.
6. 1. 비판적 관점
단일민족 국가라는 신화는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강화하고,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민족 개념이 혈통 중심의 폐쇄적 개념으로 이해될 경우,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1]참조
[1]
서적
民族の時代
NHK人間大学テキスト
1994
[2]
웹사이트
民族 Ethnic Group / Tribe / Nation
https://www.ide.go.j[...]
[3]
서적
人間の営みがわかる地理学入門
ベレ出版
2016
[4]
서적
DNA・考古・言語の学際研究が示す 新・日本列島史
勉誠出版
2009
[5]
웹사이트
民族という錯乱
https://www.ritsumei[...]
2021-11-19
[6]
웹사이트
社会学者小松堅太郎(1894-1959年)と“民族”―“民族”概念肥大化の潮流の中で
https://researchmap.[...]
2023-11-19
[7]
웹사이트
中文“民族”一詞源流考弁
http://m.aisixiang.c[...]
2021-11-19
[8]
저널
근대 일본에서의 ‘국민’ ‘민족’ 개념의 형성과 전개 ― nation 개념의 수용사 ―
https://www.dbpia.co[...]
동양사학회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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