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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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체론은 중국어 'guoti'에서 유래한 한자어로, 국가의 정치 체제 또는 정부 구조를 의미하며, 일본에서는 '국가의 몸' 또는 '국가 구조'로 해석된다.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사상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종전 후에는 일본국 헌법 제정으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현대에는 일본 민족주의자들이 '국가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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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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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용어 | 국가의 본질, 국가의 정체성, 국가의 구성 원리 등을 의미 |
정의 | 국가의 고유한 역사, 문화, 전통,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추상적인 개념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힘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인 기반 |
어원 | 일본어 "국체(Kokutai, 国体)"에서 유래 |
로마자 표기 | Gukche |
관련 개념 | 민족주의 애국심 국가주의 전체주의 |
역사적 맥락 | |
메이지 시대 | 근대 국가 건설 과정에서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강조 서구 열강에 대한 대응과 국가의 독립 유지 목표 |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의 확산에 따라 국체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의 등장 국체 옹호론자들은 국체 명확화 운동을 통해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 강화 주장 |
쇼와 시대 (전쟁 시기) | 국가 총동원 체제 하에서 국체 개념이 전쟁 수행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이용 국체는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에 대한 비판은 탄압 대상 |
전후 | 일본 제국 헌법의 폐지와 함께 국체 개념은 공식적으로 소멸 그러나, 일부 보수 세력은 여전히 국체 개념을 옹호하며 국가 정체성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 |
국체론 (Kokutairon) | |
정의 | 국체 개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사상 또는 학문 |
특징 | 국가의 본질과 가치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목표와 방향 제시 국가의 역사, 문화, 전통 등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 국민들에게 애국심과 충성심을 고취하고, 국가의 통합과 발전을 도모 |
내용 | 천황 주권론: 천황은 국가의 원수이자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주장 일본 우월주의: 일본 민족의 우수성과 일본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 국가주의적 가치관: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 |
영향 |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침략과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 |
비판적 시각 | |
문제점 | 배타적 민족주의: 타 민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음 전체주의적 경향: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할 수 있음 역사 왜곡: 과거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할 수 있음 |
현대적 의의 | 국가 정체성 확립의 중요성: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과거의 국체론이 지닌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필요 미래 지향적인 국가관: 민주주의, 인권 존중, 평화 공존 등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관 확립 |
2. 어원
國體|guótǐ중국어에서 유래된 한자어이다. 일본어 복합어는 國|koku|나라일본어와 體|tai|몸, 실체일본어를 결합한 것이다. 한어 대사전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guoti'' 사용례는 두 개의 중국 고전에 나타난다. 기원전 2세기 곡량전은 춘추에 대한 주석에서 ''대부''를 ''guoti''로 풀이하며, 비유적으로 "국가의 구현"을 의미한다.[29] 서기 1세기의 한서 한 성제에 대한 기록은 ''guoti''를 유교 관료의 "법과 통치"를 의미하는 데 사용했다.
막부 말기의 대외 위기를 계기로 수호학은 일본 고유의 국풍이라는 의미로 국체관념을 세웠다.[29] 수호학의 구상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 국체론이 하나의 사상으로 독립했다. 국체론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 헌법과 교육칙어에 의해 정식화되었다.[30]
원래 '국체(国体)'라는 말은 국가의 형태나 체면을 의미했지만, 막부 말기의 대외 위기를 계기로 수호학이 일본 고유의 국풍이라는 의미로 국체관념을 세웠다.[29]
'국체(国体)'는 구자체로 '國體'라고 쓰고, '國'이라는 글자는 한 정체(政體)에 속하는 토지·인민 등의 의미이며, '體'라는 글자는 몸, 손발, 본래의 모습, 형상, 형태, 규칙 등의 의미이다.[31]
국체라는 말은 예로부터 한적(漢籍)에 나타났다. 『관자(管子)』군자편에서는 국가를 조직하는 골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서는 나라를 지탱하는 그릇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는 본 항목에서 말하는 국체와는 관계가 없다.[32] 그 후, 한서(漢書)에 국체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는 나라의 성정(性情) 또는 나라의 체면이라는 의미로, 본 항목에서 말하는 국체와 다소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구당서(舊唐書), 송사(宋史), 속자지통감강목(続資治通鑑綱目) 등에 나타나는 용례도 비슷한 의미이다.[33]
일본에서 국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 것은 근세(近世)에 이르러서이지만, 고전적 문헌에서도 그 단어가 산견(散見)된다. 다만 그 용례와 의미는 근대의 것과 다르다.[34] 국체라는 말이 일본의 고전에 나타나는 것은, 연희식(延喜式)에 수록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노카무요고토(出雲国造神賀詞)에 "이즈모노오미 등이 먼 조상 아마노호히노미코토를 '국체(国体)'를 보러 보낼 때"라고 있는 것이 최초의 예라고 한다.[35] 국체는 고훈(古訓)으로 이를 쿠니카타(クニカタ)라고 훈독했다. 또한 일본서기(사이메이 천황기)에 "국체세(国体勢)"라는 구절이 나타나는데, 이를 쿠니노아리카타(クニノア리카タ)라고 훈독했다. 여러 문헌을 대조해 보면, 국체도 국체세도 원래는 지형의 의미였으나, 전용되어 국상(国状)의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36] 다음으로 『다이카가미 이본 인쇼(大鏡異本陰書)』나 『고사담(古事談)』에 국체라는 말이 나타난다. 이는 만엽집(万葉集)에 있는 국풍(国風)의 말과 동의어로, 모두 쿠니가라(クニガラ)라고 훈독하며, 국풍(国風)이나 국자(国姿) 등의 의미로 통한다.[37]
일본 근세에는 국체라는 말이 문서에 자주 나타난다. 그중 세상에 알려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예는 겐로쿠 2년(1689년) 서문, 쇼토쿠 6년(1717년) 간행된 쿠리야마 센포(栗山潜鋒)의 『호켄다이키(保建大記)』이다.[38] 이 기간인 겐로쿠 11년(1698년)의 모리 나오겐(森尚謙)의 『겐주쿠슈(儼塾集)』에 '방체(邦体)'라는 말이 나타난다. 그 후, 국체의 의의를 논한 사람으로는 타니 친잔(谷秦山),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마츠미야 칸잔(松宮観山), 타카야마 켄테이(高山健貞),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야마오카 준메이(山岡浚明),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나카이 치쿠잔(中井竹山), 무라타 하루미(村田春海), 히라야마 코조(平山行蔵),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아이자와 마사시사이(会沢正志斎), 아오야마 노부유키(青山延于),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츠루미네 보신(鶴峯戊申), 에가와 히데타츠(江川英龍), 오오츠키 반케이(大槻磐渓), 아즈마 곤사이(安積艮斎), 후지타 토코(藤田東湖) 등이 있다.[39]
3. 국체 개념의 변천
'국체(国体)'는 '國體'라고 쓰며, '國'은 한 정체(政體)에 속하는 토지·인민 등을, '體'는 몸, 손발, 본래의 모습, 형상, 형태, 규칙 등을 의미한다.[31]
국체라는 말은 예로부터 『관자(管子)』,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한서(漢書) 등 한적(漢籍)에 나타나지만, 본 항목에서 말하는 국체와는 관계가 없거나 다소 가깝다.[32][33] 일본에서는 근세(近世)에 국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연희식(延喜式)에 수록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노카무요고토(出雲国造神賀詞)에 "국체(国体)"를 보러 보낼 때"라는 구절이 최초의 예이다.[35]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국체세(国体勢)"라는 구절이 나타나는데, 원래는 지형의 의미였으나 국상(国状)의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36] 『다이카가미 이본 인쇼(大鏡異本陰書)』나 『고사담(古事談)』에 나타나는 국체는 만엽집(万葉集)의 국풍(国風)과 동의어로, 국풍(国風)이나 국자(国姿) 등의 의미로 통한다.[37]
일본 근세에는 겐로쿠 2년(1689년) 서문, 쇼토쿠 6년(1717년) 간행된 쿠리야마 센포(栗山潜鋒)의 『호켄다이키(保建大記)』에 국체라는 말이 나타난다.[38] 겐로쿠 11년(1698년) 모리 나오겐(森尚謙)의 『겐주쿠슈(儼塾集)』에는 '방체(邦体)'라는 말이 나타난다. 이후 타니 친잔(谷秦山),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마츠미야 칸잔(松宮観山) 등 많은 이들이 국체의 의의를 논했다.[39]
1853년 흑선(黑船) 내항 이후, 국체는 내치 외교상 중요한 것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칙(詔勅)·선명(宣命)·기타 공문에도 많이 나타난다.[39]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 등의 상소나 고메이 천황(孝明天皇)의 선명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40]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후, 국체라는 말은 공문에 더욱 자주 사용되었으며, 특히 조칙(詔勅)에 자주 사용되었다.[41] 게이오 4년(1868년) 조(詔), 메이지 2년(1869년) 칙, 군인칙유(軍人勅諭)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42] 이처럼 국체라는 말은 근세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국풍(国風), 국정(国情), 나라의 체면, 나라의 명분, 나라의 기초, 나라의 특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43]
제국학사원(帝国学士院)의 『제실제도사(帝室制度史)』에 따르면, 1938년 당시 국체는 교육에 관한 칙어(教育ニ関スル勅語)를 기초로,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군림하고, 신민(臣民)도 천황의 사업을 협찬하며, 충효일치(忠孝一致)로 국가의 진운(進運)을 돕는 일본 특유의 사실을 의미한다.[28]
쇼와 시대에 국체론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노베 다쓰키치는 천황을 국가 기관으로 보는 학설을 주장했으나 대역죄로 여겨져 탄압받았다.[10][11][12] 1937년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문부성을 통해 '국체의 본의'를 발행하여 국체론을 교육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1][14]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국체는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전쟁 수행에 활용되었다.[20][21] 천황의 항복 방송에서도 국체가 언급되었다.
전후 GHQ는 '국체의 본의' 유포를 금지하고 치안유지법을 폐지하는 등 국체론을 약화시키려 했다.[528][529][530] 1947년 일본국 헌법 제정으로 천황의 주권과 불경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체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기도 한다.[1] 21세기에는 일본회의 등 민족주의 세력이 '쿠니가라'(국가적 특성)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국체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3. 1. 에도 시대 이전
고대 일본에서는 제정일치를 통해 나라를 다스렸으며, 이는 신국사상에서 비롯되었다.[45] 신국사상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사상으로 이어졌다.[46] 와케노 기요마로는 "우리나라는 개벽 이래로 군신이 정해져, 신하가 임금을 삼는 일은 아직 없었다. 하늘의 해의 핏줄은 반드시 황태자를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만세일계 사상을 드러냈다.[47]
중세에는 황실, 섭관가, 대사찰, 장군가 등의 권문세가가 종적으로 분할하여 지배하는 형태였는데, 권문세가 간의 장벽을 넘어 일본국의 일체감을 강조할 목적으로 신국사상이 사용되기도 했다.[52] 특히 몽골의 일본 원정 등 일본의 국방상 위기감이 고조되었을 때 신국사상이 강조되었다.[52]
3. 2. 에도 시대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는 1825년 저서 《신론》(新論)에서 '국체'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했으며,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용어도 소개했다. 아이자와는 천황이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직계 후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초기 일본 신유학자들에게 "''국체''는 다소 모호하고 불분명한 의미였다. 그것은 대체로 일본의 '국가의 몸' 또는 '국가 구조'를 의미했다."[1]
3. 3. 메이지 시대 (1868년 ~ 1912년)
막부 말기의 대외 위기를 계기로 수호학이 일본 고유의 국풍이라는 의미로 국체관념을 세웠다.[29] 국체론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 헌법과 교육칙어에 의해 정식화되었다.[30]
'국체(国体)'는 '國體'라고 쓰고, '國'은 한 정체(政體)에 속하는 토지·인민 등을 의미하며, '體'는 몸, 손발, 본래의 모습, 형상, 형태, 규칙 등을 의미한다.[31]
국체라는 말은 『관자(管子)』,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한서(漢書) 등 한적(漢籍)에 나타나지만, 본 항목에서 말하는 국체와는 관계가 없거나 다소 가깝다고 할 수 있다.[32][33] 일본에서는 근세(近世)에 이르러 국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연희식(延喜式)에 수록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노카무요고토(出雲国造神賀詞)에 "국체(国体)"를 보러 보낼 때"라는 구절이 최초의 예라고 한다.[35]
1853년 흑선(黑船) 내항 이후, 국체라는 말은 내치 외교상 중요한 것으로 사용되었으며,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 등의 상소나 고메이 천황(孝明天皇)의 선명 등 공문에도 많이 나타나게 된다.[39][40]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후에도 공문에 더욱 자주 사용되었으며, 특히 조칙(詔勅)에 자주 사용되었다.[41] 이처럼 국체라는 말은 근세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그 의미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국풍(国風), 국정(国情), 나라의 체면, 나라의 명분, 나라의 기초, 나라의 특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43]
제국학사원(帝国学士院)의 『제실제도사(帝室制度史)』에 따르면, 1938년 당시 사용된 국체라는 말의 의의는 교육에 관한 칙어(教育ニ関スル勅語)를 기초로 하며, 일본에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군림하고, 신민(臣民)도 천황의 사업을 협찬하며, 충효일치(忠孝一致)에 의해 국가의 진운(進運)을 부조하는, 일본 특유의 사실을 의미한다고 한다.[28]
일본인이 자국을 외국과 비교하여 국가 성립의 특징이나 국가 조직의 우수성 등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특징 또는 우수성으로 여겨지는 것은 일본이 신국이라는 것, 황통이 연속적으로 한 계열이라는 것 등이다.[44] 고대 일본에서는 신국사상이 존재했고, 제정일치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던 것도 신국사상에서 비롯된다.[45] 신국사상은 만세일계 사상으로 이어졌다.[46]
가마쿠라 시대 말, 코칸 시렌은 저서 『겐코 샤쿠쇼』에서 일본은 황통이 연면하여 만세에 바뀔 일이 없다고 논했다.[47][50] 남북조 시대,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는 『신황정통기』에서 "대일본은 신국이다"라고 명시하고, 만세일계의 국체를 논했다.[51] 중세에는 권문세가가 분할 지배하는 체제였고, 몽골 침략 등 국방상의 위기감이 높아졌을 때 신국사상이 강조되었다.[52] 근세 초,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외국에 보내는 서간에서 신국 사상을 표명했다.[52]
도쿠가와 막부 이후 학문이 발달하고 유학자들의 중국 존경, 일본 비하 태도에 반발이 일어나면서 국체에 대한 논의가 상세하게 이루어졌다.[53] 후지와라 세이카, 하야시 라잔, 야마가 소코, 구마자와 반잔 등 많은 학자들이 국체에 대해 논했다.[54][56][58][62]
다이쇼 시대 초기에는 통치권의 주체 문제에 대한 논의가 격화되었는데, 이는 천황기관설 논쟁이 국체와 관련된 문제로 논단에서 큰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308] 가토 히로유키의 제자 가토 후사조는 『국체옹호 일본헌정본론』을 간행하여 정당의 의향에 의해 천황의 대정을 좌우하는 것은 국체 파괴라고 주장했다.[331][332] 가와모토 한지는 『국체연원 일본민족우주관』을 저술하여 일본의 국체는 신대(神代)부터 유전하는 우주관에 연원한다고 주장했다.[333] 이시카와 이와키치는 『국체요의』를 저술하여 국체의 기초가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 의한 천손강림·천양무궁의 신칙에 의해 정해졌다고 논했다.[332][334] 가케이 가쓰히코는 『국가의 연구』에서 황국(皇国)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심동체이며, 이것이 국체라고 주장하고, 호즈미 야츠카 등의 천황주권설을 비판했다.[335][336]
미노베 다쓰키치는 『헌법강화』에서 국체라는 말을 빌린 변장적(變裝的) 전제정치의 주장을 배척하고, 군주국과 민주국을 통치권의 주체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천황을 통치권의 주체로 하는 설은 국체에 반하며, 대신의 보필에 의해 정치를 행하는 것이 일본의 국체라고 주장했다.[43] 우에스기 신키치는 미노베 다쓰키치의 천황기관설을 비난하며, 이 설은 천황이 통치권의 주체임을 부인하는 것이며 일본의 국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 3. 1. 메이지 유신 초기 (1868년 ~ 1890년)
가토 히로유키는 1874년 『국체신론』을 저술하여 전통적인 통치 이론을 비판하고 서구의 자연권 이론을 채택하여 일본에 입헌 군주제를 제안했다. 그는 '국체'와 '정체'(政体)를 구분했다. 여기서 국체는 국가의 본질, 즉 일본 고유의 영원불변한 측면을 의미하며, 정체는 정치 권력 행사를 위한 역사적 배치, 즉 정부 형태를 의미한다. 가토에 따르면 정체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국체는 변하지 않는다.[2]
후쿠자와 유키치는 1875년 저서 문명론의 개략에서 국체가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며 모든 국가가 '국체'(국가 주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천황을 존경했지만, 국체가 아마테라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신화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믿었다.[2]
3. 3. 2. 메이지 헌법과 국체
1889년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 헌법)은 주권 군주인 국체(kokutai)와 정체(seitai) 기관으로 구성된 입헌 군주제를 수립했다. 헌법 제4조는 "천황은 제국의 원수이며, 주권의 권리를 통솔한다"고 선언하여 행정, 입법, 사법부를 통합했지만, "제국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이 시스템은 민주적 형태를 띠었지만, 실제로는 절대 군주제에 더 가까웠다. 법학자 호세파 로페스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국체(kokutai)가 추가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지적한다.[3] 즉, 국체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문화 체계의 표현이자 주권의 기반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국체에 대한 언급을 통해 천황의 신성한 혈통과 끊임없는 황통, 그리고 신민과 군주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통해 천황의 권위를 정당화했다.[4]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급격한 서구화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주의(日本主義, "Japanism")를 지지했다.[6] 일본주의는 전통적인 일본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가와 사회의 기조를 설정하는 이념으로, 메이지 정부의 급진적인 유럽화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7]
3. 3. 3.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국체 논쟁
신해혁명부터 치안유지법 제정(1911~1925년)까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운동인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일어났다.[8]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정치 이론가 요시노 사쿠조(1878~1933)는 서구 민주주의인 ''민주주의''(民主主義, people rule principle/-ism영어)를 거부하고, 제국 민주주의인 ''민본주의''(民本主義, people based principle/-ism영어)를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민족주의가 성장하면서, ''국체''인 천황이 ''정체''인 정부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25년의 치안유지법은 ''국체''를 변경하거나 사유 재산을 폐지하는 것을 제안하는 조직을 결성하거나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 및 기타 반 천황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범죄화했다.[8] 특별고등경찰(Tokubetsu Kōtō Keisatsu, "특고")는 일본의 천황 중심 사회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 단체를 조사하기 위해 일종의 사상 경찰로 설립되었다.[9]
근세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체론이 고조되었다. 유학에 대립하는 국학이 융성하고, 복고 사상을 근거로 국수주의를 주창했다. 미토학도 도쿠가와 나리아키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국체'라는 말도 널리 퍼졌다. 국학자와 유학자 사이에서 와칸(和漢, 일본과 중국)의 국체에 관한 논쟁이 활발해지고, 국체에 대해 논의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메이지(明治) 시대에서 다이쇼(大正) 시대로 바뀔 때, 통치권의 주체가 천황인가 국가인가에 대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났고, 이는 국체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논단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발단의 시초는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의 『헌법강화』였다.
미노베 다쓰키치는 다이쇼 개원(改元) 1년 전인 1911년(메이지 44년) 여름, 문부성이 개최한 중등교원 강습회에서 헌법의 대의를 강론하고, 그 강연 필기에 약간의 수정 증보를 가하여, 다음 해 3월에 『헌법강화』라는 제목으로 공포했다. 이 책에서 미노베는 국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국대학에서 미노베 다쓰키치의 동료 교수인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慎吉)는 미노베의 천황기관설을 비난하며, 이 설은 천황이 통치권의 주체임을 부인하는 것이며 일본의 국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에스기 신키치는 호즈미 야쓰카(穂積八束)의 학설을 계승하여 군주국체설에 의거했지만, 과거에는 국가법인설·천황기관설을 채택했으며, 1905년(메이지 38년)의 저서 『제국헌법』에서 그 설을 설명했다. 이 책은 1910년(메이지 43년) 4월에도 재판되었지만, 1911년(메이지 44년) 12월에 공포한 『국민교육 제국헌법강의』에서는 군주국체설·국가법인설을 유지하면서 천황기관설을 포기했다. 우에스기의 새로운 설에 따르면, 기관이란 타인의 사용인이자 타인의 손발이다. 천황의 의사는 최고·독립·절대적·무제한이며, 자기 고유의 성질에 의한 것이다. 천황은 국가의 기관이 아니다. 이와 같이 우에스기가 천황기관설 포기를 밝힌 3개월 후에 미노베 다쓰키치가 『헌법강화』를 공포했으니, 미노베가 이 책에서 "변장적 전제정치의 주장"이라고 비판한 것은 우에스기의 국체론이었다. 우에스기의 국체론은 천황이 주권자임을 일본의 국체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에스기 신키치는 잡지 『태양』에 논문 "국체에 관한 이설"을 게재하여 미노베 다쓰키치에게 반격했다. 우에스기에 따르면, 천황을 주권자로 하는 통설에 대해 미노베는 이설을 주장하고 있으며, "단호히 이설을 배척할 확고한 자신감이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에스기는 국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천황은 통치자이고, 피치자는 신민이다. 주권은 오로지 천황에게 속하며, 신민은 이에 복종한다. 주객의 분의(分義)는 확정되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신민은 통치하지 않고, 천황은 복종하지 않는다. 이것이 국체의 해설이다. 이것은 호즈미 야쓰카의 설을 대략 설명한 것이며, 누구라도 인정하는 바인데, 미노베는 홀로 이것을 배척한다. 미노베는 천황을 통치권의 주체로 보지 않고, 국가, 즉 인민 전체의 단체를 통치권의 주체로 본다. 미노베는 우리나라를 민주국으로 간주한다.
천황기관설 논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1912년(메이지 45년/다이쇼 원년) 7월에 메이지 천황이 붕어했다. 내무성 신사국에 따르면, 일본은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고, 자애로운 아버지를 잃은 듯 통곡하며, 더 나아가 황실의 존엄에 마음을 기울였고, 여기에 황실을 중심으로 하는 국체 관념에 한 단계 자극을 주었다고 한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자, 민중 운동이 헌정 옹호·벌족 타파를 내걸고 가쓰라 내각이나 야마모토 내각을 무너뜨리기 위해 행해졌다. 내무성 경보국에 따르면, 이 민중 운동은 가장 현저한 데모크라시적 사상의 발로이며, 국민 사상상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 붕어 전후에,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郎)가 『국민도덕개론』을 저술했다. 이것은 미노베 다쓰키치의 『헌법강화』와 마찬가지로, 전년(메이지 44년) 여름에 문부성이 개최한 중등교원 강습회에서의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국체와 국민 도덕과의 관계에 대해, 일본의 국체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을 기초로 성립하고, 국법학에서는 주권의 소재로써 국체의 성질을 결정하지만, 일본의 주권은 항상 황위에 있으며, 이것이 헌법 제정과 함께 더욱 굳건해졌다고 말했다. 또한 국체와 신토(神道)와의 관계에 대해, 신도 중 국체와 관계있는 것은 천양무궁(天壤無窮)의 신칙(神勅)이며, 이 신칙이 항상 일본 국민의 정신을 중심으로 조여준다고 논했다.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가 군주국체와 조화될 수 있음을 설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충군(忠君)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민주라는 것이 점점 세상에 제창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민본(民本)이라는 글자도 쓰고 있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민주주의와 같은 것은 그다지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도 설득하기에 따라서는, 군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습니다. 군주라는 것을 제대로 세우고, 그렇게 해서 이것에 대해 진심으로 섬기는 것이 인민 일반을 위한 것이 됩니다. 즉 민주주의에 합치되는 것입니다.
이노우에 데쓰지로는 다음 해 『동아지광』 2월호에서도, 민주주의를 민본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문제가 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주는 것과 같은 일이 없다고 하면, 어떠한 곤란한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민주라는 것은 일본의 종래 역사에서 보아 결코 여자적(如字的, 문자 그대로)으로 이해해서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의해서도 또한 그러하지만, 옛날부터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하면, 나라도 편안하다"는 것처럼 민본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옛날보다 더욱 신민의 복리를 중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시세의 변화 때문입니다.
천황기관설 논쟁에서도 민주주의는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인민 전체의 단체를 통치권의 주체로 하는 설에 대해, 우에스기 신키치가 이 설을 민주주의로 비난한 것에 대해, 미노베 다쓰키치는 이 설을 주장하는 자를 모두 민주주의자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은 심한 중상이라고 변론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에스기는 1913년(다이쇼 2년) 『동아지광』 5월호에 "민주주의와 민본주의"를 발표하여, 민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민본주의는 인민을 위해 정치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민주주의는 문자 그대로 인민 주권론을 의미하며 군주주의와 조화될 수 없다고 논했다. 우에스기 신키치에 따르면, 데모크라시라는 말은 민주(인민 주권)의 의미에도 민본(인민을 위한 정치)의 의미에도 사용되며, 서양 군주국에서 데모크라시를 칭하는 것은 민본의 의미라고 한다. 다만, 내무성 경보국에 따르면, 서양에서 데모크라시라는 말이 우에스기 신키치의 말처럼 단순히 인민을 위한 정치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는지 불분명하며, 적어도 서양 군주국에서 칭하는 데모크라시는 그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
우에스기 신키치의 공격에 대해 미노베 다쓰키치는 여러 가지로 변론했다. 그중에서 1913년(다이쇼 2년)에 『동아지광』의 3월호부터 5월호에 걸쳐 게재한 논문 "소위 국체론에 대하여"가 가장 자세하다. 미노베 다쓰키치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대략적인 의미).
> 요즘 국체론, 특히 국체 옹호라는 것이 활발하게 제창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반입헌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즉 헌법이 제정된 것에 대해, 보수적 반동 사상을 품은 일부 사람들이 국체론이라는 이름을 빌려 세상을 소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국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입헌 사상과 반입헌 사상의 싸움이다.
>
> 하나의 논점은, 통치권의 주체에 대한 학리적인 문제이다. 국법학상, 국가는 통치권을 고유하는 단체로 보고, 따라서 통치권의 주체는 국가 자체라고 하는 견해에 대해, 그들은 우리나라 국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 국체는 군주 자신이 통치권의 주체여야 이것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논점은 실제 정치에 관한 것이다. 정당 정치나 의원 내각 정치를 우리나라 국체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특히 최근 정치의 동요(다이쇼 정변)를 국체의 위기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국체와 관계가 없다.
>
> 우리나라는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하는 국체이며, 이것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문제는 천황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의 해설에 관한 것이며, 조금도 국체에 닿지 않는다. 이것을 건드렸다고 하는 것은 중상이다.
>
> 세상의 국체론자 중에는, 일본의 국가는 외국의 국가와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의 국가에만 특별한 견해를 취하려는 자도 있지만, 심히 잘못된 것이다. 국가의 본질의 문제는 국체론과 무관계하다. 국체는 한 나라 특유이며, 국가의 본질은 각국 공통이다. 그러므로 헌법의 문구에 얽매여 국가의 본질을 해석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
> 군주는 통치권의 주체라는 생각은, 국가를 군주의 사유물로 간주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국체에 용납될 수 없다. 군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화충협동(마음을 합하여 서로 협력함), 함께 국가의 진운(進運)을 돕고, 그 사이에 조금도 장애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 국체이다.
3. 4. 쇼와 시대 (1926년 ~ 1989년)
쇼와 시대에 국체론은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노베 다쓰키치 도쿄 제국대학 교수는 천황을 국가 기관으로 보는 학설을 주장했으나 대역죄로 여겨져 탄압받았다.[10][11][12] 1937년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문부성을 통해 '국체의 본의'를 발행하여 국체론을 교육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1][14]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국체는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20][21] 천황의 항복 방송에서도 국체가 언급되었다.
전후 GHQ는 '국체의 본의' 유포를 금지하고 치안유지법을 폐지하는 등 국체론을 약화시키려 노력했다.[528][529][530] 1947년 일본국 헌법 제정으로 천황의 주권과 불경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체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기도 한다.[1] 21세기에는 일본회의 등 민족주의 세력이 '쿠니가라'(국가적 특성)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국체론과 유사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3. 4. 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국체론
미노베 다쓰키치(1873~1948)는 도쿄 제국대학의 법학 명예교수로, 메이지 헌법 하에서 천황은 국가의 신성불가침한 권력이 아니라 국가의 기관이라고 이론화했다.[10] 이는 대역죄로 여겨졌다.[11] 미노베는 1932년 귀족원 의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암살 시도와 천황에 대한 불충성 비판으로 인해 사임해야 했다.[12]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는 일본의 저명한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임명하여 국체에 대한 국가적 논쟁을 심의하게 했다. 1937년, 그들은 ''국체의 본의'' (国体の本義|고쿠타이노혼기일본어, "국가 체제의 근본 원리"[14])를 발표했다. 일본 문부성의 공식 간행물이었던 이 책에는 국내 정책, 국제 문제, 문화, 문명 등 모든 측면에 대한 일본 국가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1]
이 책은 사회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려는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15] 이 팜플렛을 통해 학생들은 국가를 자신보다 우선시하고, 자신이 국가의 일부이며 국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우도록 가르쳤다.[16] 또한 팔굉일우 ("8개의 끈, 하나의 지붕")의 원리를 가르쳤는데, 이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17] 문부성은 이 내용을 학교 시스템 전체에 배포했다.[12]
3. 4. 2. 제2차 세계 대전과 국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파시스트-민족주의 분파" 지도자들에게 ''국체''는 일본 민족이 정치적, 인종적 실체로서 지구상의 다른 모든 국가와 동시에 다르면서도 우월하다는 그들이 믿는 모든 방식을 나타내는 편리한 용어가 되었다.[1] ''국체''라는 용어와 그 의미는 선전(프로파간다)을 통해 널리 주입되었다.[20] 가미카제 조종사들의 마지막 편지에는 무엇보다도 일본과 ''국체''의 화신인 천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었다.[21]
히로히토는 포츠담 선언 (무조건 항복)을 수락하는 일본의 발표를 통해 그의 항복 방송에서 ''국체''를 언급했다.
3. 4. 3. 전후 국체의 변화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국체(國體)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1945년 가을, GHQ는 『국체의 본의』 유포를 금지했고, 10월 15일에는 1925년 치안유지법을 폐지했다.[528][529][530]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 제정으로 천황의 주권과 불경죄가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러(Miller)를 포함한 일부 저자들은 일본의 국체(kokutai)의 흔적이 "오늘날에도 예전만큼이나 생생하다"고 믿고 있다.[1]
21세기에 들어와 일본회의 로비와 관련된 사람들 같은 일본 민족주의자들은 "쿠니가라"(国柄, "국가적 특성")라는 구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부성은 종전 후 한동안 교육상 "조칙을 받들어 삼가 받들다(承詔必謹)", "국체 옹호(国体護持)"의 황도 사상을 중핵으로 삼았다.[530] 9월, 문부성은 "신일본 건설의 교육 방침"을 입안하고, "더욱 국체의 옹호에 힘쓸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군국주의적 사상 및 시책을 불식"하는 방침을 세웠다.[529] 10월 4일 GHQ가 인권 지령을 발하자, 다음 날 미국 국무성은 "일본의 전후 교육 정책"을 공표하여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532]
문부성은 GHQ의 지령을 따르지 않으며 국체 호지 교육에 굳건함을 보였다.[537] 12월 15일 GHQ는 신도 지령을 발령하여, 『국체의 본의』나 『신민의 길』, 관련 유서를 금지했다.[538]
1946년 1월 1일 인간 선언과 관련하여 문부성은 훈령을 발령, 국체 호지 교육에 굳건히 매달렸다.[470] 1946년 5월 21일, 문부성은 『신교육지침』을 간행하여, 국체 명징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540]
전후에는 민주주의의 외침과 함께 국체의 신화성이 공공연하게 논의되면서 국체라는 말은 과거의 단어가 되었다.
제국 의회의 헌법 개정 심의에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백성의 마음을 마음으로 여기는 것이 일본의 국체"라고 답변했다.[542] 가나모리 도쿠지로 헌법 담당 국무대신은 "일본의 국체라는 것은 천황을 기본으로 하면서 국민이 통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 근본이 있다"고 답변했다.[542]
1946년 5월 19일 식량 메이데이에서 일본 공산당원 마쓰시마 마츠타로는 불경죄로 고발되었으나 (플래카드 사건), 명예 훼손죄로 기소되었고, 일본국 헌법 공포에 의한 대사면으로 면소되었다.
1947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어,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이 지위는 주권이 있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따른다."라고 정의되었다.
1999년, 국기국가법안 국회 심의에서, 국가인 기미가요의 의미를 질문받은 정부는 "국가 기미가요의 '군'은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그 지위가 주권이 있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하는 천황을 가리킨다"고 답변했다.[543]
2000년 5월 15일, 모리 요시로 총리가 신의 나라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다.
2004년 일본 공산당은 강령을 개정, 천황제에 대해 "민주 공화제의 정치 체제의 실현을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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荻生徂徠
https://kotobank.jp/[...]
2019-09
[94]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95]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96]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97]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98]
웹사이트
石田梅岩
https://kotobank.jp/[...]
2019-09
[99]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100]
웹사이트
竹内式部
https://kotobank.jp/[...]
2019-09
[101]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102]
웹사이트
山県大弐
https://kotobank.jp/[...]
2019-09
[103]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104]
웹사이트
平賀源内
https://kotobank.jp/[...]
2019-09
[105]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
[106]
웹사이트
中井竹山
https://kotobank.jp/[...]
2019-09-00
[107]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08]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09]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0]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1]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2]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3]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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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5]
웹사이트
夏目甕麿
http://www.norinagak[...]
2019-09-00
[116]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7]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8]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19]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0]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1]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2]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3]
서적
古道大意
https://dl.ndl.go.jp[...]
1814-00-00
[124]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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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6]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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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8]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29]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0]
간행물
弘道館学則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1]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2]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3]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4]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35]
웹사이트
新論
https://kotobank.jp/[...]
2019-09-00
[136]
서적
大日本思想全集 第17巻
https://dl.ndl.go.jp[...]
1932-00-00
[137]
서적
大日本思想全集 第17巻
https://dl.ndl.go.jp[...]
1932-00-00
[138]
서적
大日本思想全集 第17巻
https://dl.ndl.go.jp[...]
1932-00-00
[139]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40]
간행물
https://dl.ndl.go.jp[...]
内務省神社局
1921-00-00
[14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4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43]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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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
[14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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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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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4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4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4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0]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6]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5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0]
웹사이트
吉田松陰
https://kotobank.jp/[...]
2019-09
[161]
웹사이트
照顔録 附坐獄日録(吉田松陰)明治期
http://www.winbell-7[...]
2019-09
[16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6]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167]
간행물
法令全書
https://dl.ndl.go.jp[...]
1868
[16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6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0]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1]
웹사이트
大教宣布
https://kotobank.jp/[...]
2019-09
[172]
웹사이트
大教宣布
https://kotobank.jp/[...]
2019-09
[173]
웹사이트
大教宣布
https://kotobank.jp/[...]
2019-09
[17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6]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7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80]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1]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2]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3]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4]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5]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6]
간행물
https://dl.ndl.go.jp[...]
1874
[187]
서적
佐佐木高行日記『保古飛呂比』10、明治14年11月15日条に「岩公曰く、右新論は、島津久光左大臣の時、大に議論有りたれ共、其時は誰れも頓着せざりし也」とある
1988
[18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8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90]
웹사이트
浦田長民
https://kotobank.jp/[...]
2019-09
[191]
간행물
元老院ヘ憲法起草ヲ命セラルル事
https://dl.ndl.go.jp[...]
皇后宮職
1906
[192]
간행물
https://dl.ndl.go.jp[...]
1939
[19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194]
간행물
https://dl.ndl.go.jp[...]
1939
[19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196]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197]
간행물
金子堅太郎「意見書」(明治17年9月)
1922
[19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19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200]
간행물
1999
[20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02]
법령
1889年2月11日大日本帝国憲法発布勅語
s:大日本帝國憲法#%E6%86%B2%[...]
[20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04]
간행물
『帝国憲法義解』第1章天皇解説
https://dl.ndl.go.jp[...]
[205]
간행물
『帝国憲法義解』第1条解説
https://dl.ndl.go.jp[...]
[206]
간행물
『帝国憲法義解』第2条解説
https://dl.ndl.go.jp[...]
[207]
간행물
『帝国憲法義解』第3条解説
https://dl.ndl.go.jp[...]
[208]
간행물
『帝国憲法義解』第4条解説
https://dl.ndl.go.jp[...]
[209]
간행물
https://dl.ndl.go.jp[...]
1913
[210]
간행물
https://dl.ndl.go.jp[...]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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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legitimate(英・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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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dynasty(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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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21頁
https://dl.ndl.go.jp[...]
[214]
간행물
24頁
https://dl.ndl.go.jp[...]
[215]
간행물
175-176頁
https://dl.ndl.go.jp[...]
[216]
간행물
176頁
https://dl.ndl.go.jp[...]
[217]
간행물
179頁
https://dl.ndl.go.jp[...]
[218]
간행물
180-181頁
https://dl.ndl.go.jp[...]
[219]
간행물
180頁
https://dl.ndl.go.jp[...]
[220]
간행물
181-182頁
https://dl.ndl.go.jp[...]
[221]
간행물
182-183頁
https://dl.ndl.go.jp[...]
[222]
간행물
183-184頁
https://dl.ndl.go.jp[...]
[223]
간행물
184-185頁
https://dl.ndl.go.jp[...]
[224]
간행물
185-186頁
https://dl.ndl.go.jp[...]
[225]
간행물
186頁
https://dl.ndl.go.jp[...]
[226]
간행물
188頁
https://dl.ndl.go.jp[...]
[227]
간행물
188-189頁
https://dl.ndl.go.jp[...]
[228]
간행물
189頁
https://dl.ndl.go.jp[...]
[229]
웹사이트
井上円了
https://kotobank.jp/[...]
2019-09-00
[230]
간행물
190頁
https://dl.ndl.go.jp[...]
[231]
간행물
191頁
https://dl.ndl.go.jp[...]
[232]
간행물
191-192頁
https://dl.ndl.go.jp[...]
[233]
간행물
192頁
https://dl.ndl.go.jp[...]
[234]
간행물
政治学:一名国家学
https://dl.ndl.go.jp[...]
[235]
간행물
国体及政体
https://dl.ndl.go.jp[...]
[236]
논문
帝国大学体制と御雇い教師カール・ラートゲン ―ドイツ国家学の伝道―
https://doi.org/10.1[...]
[237]
간행물
帝国憲法
https://dl.ndl.go.jp[...]
[238]
간행물
帝国憲法
https://dl.ndl.go.jp[...]
[239]
간행물
序3-4頁
https://dl.ndl.go.jp[...]
[240]
서적
井上毅伝 史料篇
http://rnavi.ndl.go.[...]
[241]
간행물
6-9頁
https://dl.ndl.go.jp[...]
[242]
간행물
帝国憲法
https://dl.ndl.go.jp[...]
[243]
간행물
帝国憲法
https://dl.ndl.go.jp[...]
[244]
간행물
206頁
https://dl.ndl.go.jp[...]
[245]
서적
国民国家と天皇制
校倉書房
2019-09-00
[246]
간행물
208-209頁
https://dl.ndl.go.jp[...]
1921
[247]
간행물
207頁
https://dl.ndl.go.jp[...]
1921
[248]
간행물
210-211頁
https://dl.ndl.go.jp[...]
1921
[249]
간행물
211-213頁
https://dl.ndl.go.jp[...]
1921
[250]
간행물
215-217頁
https://dl.ndl.go.jp[...]
1921
[251]
간행물
217頁
https://dl.ndl.go.jp[...]
1921
[252]
간행물
221-222頁
https://dl.ndl.go.jp[...]
1921
[253]
간행물
222-223頁
https://dl.ndl.go.jp[...]
1921
[254]
간행물
213頁
https://dl.ndl.go.jp[...]
1921
[255]
간행물
214頁
https://dl.ndl.go.jp[...]
1921
[256]
간행물
223頁
https://dl.ndl.go.jp[...]
1921
[257]
간행물
224-228頁
https://dl.ndl.go.jp[...]
1921
[258]
간행물
229頁
https://dl.ndl.go.jp[...]
1921
[259]
간행물
231-233頁
https://dl.ndl.go.jp[...]
1921
[260]
간행물
233頁
https://dl.ndl.go.jp[...]
1921
[261]
간행물
234頁
https://dl.ndl.go.jp[...]
1921
[262]
간행물
125-126頁
1999
[263]
간행물
235-237頁
https://dl.ndl.go.jp[...]
1921
[264]
간행물
237頁
https://dl.ndl.go.jp[...]
1921
[265]
웹사이트
海老名弾正
https://kotobank.jp/[...]
[266]
간행물
238頁
https://dl.ndl.go.jp[...]
1921
[267]
웹사이트
山路愛山
https://kotobank.jp/[...]
[268]
간행물
239頁
https://dl.ndl.go.jp[...]
1921
[269]
웹사이트
石川喜三郎
https://kotobank.jp/[...]
[270]
간행물
241頁
https://dl.ndl.go.jp[...]
1921
[271]
웹사이트
小山東助
https://kotobank.jp/[...]
[272]
간행물
243頁
https://dl.ndl.go.jp[...]
1921
[273]
간행물
249頁
https://dl.ndl.go.jp[...]
1921
[274]
웹사이트
亀谷聖馨
https://kotobank.jp/[...]
[275]
간행물
251頁
https://dl.ndl.go.jp[...]
1921
[276]
간행물
252頁
https://dl.ndl.go.jp[...]
1921
[277]
간행물
252-253頁
https://dl.ndl.go.jp[...]
1921
[278]
웹사이트
佐藤鉄太郎
https://kotobank.jp/[...]
[279]
서적
帝国国防史論
https://dl.ndl.go.jp[...]
[280]
간행물
258-259頁
https://dl.ndl.go.jp[...]
1921
[28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8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83]
간행물
2013
[284]
간행물
2013
[285]
간행물
廿世紀の怪物帝国主義
警醒社書店
1901
[286]
간행물
2013
[28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8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8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0]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6]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299]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0]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1]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2]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3]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4]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6]
웹사이트
丸山正彦
https://kotobank.jp/[...]
[307]
간행물
https://dl.ndl.go.jp[...]
1921
[308]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309]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0]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1]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2]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3]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4]
간행물
https://dl.ndl.go.jp[...]
1912
[315]
간행물
https://dl.ndl.go.jp[...]
1922
[316]
서적
大日本帝国は唯一の自然人たる天皇を以て統治権の総攬者と為す純粋なる君主国体たり
https://dl.ndl.go.jp[...]
[317]
서적
帝国憲法
https://dl.ndl.go.jp[...]
[318]
서적
国家は一の共同団体である、君主、――統治権の総攬者はその機関である、こういうようなことを申すのであります、それと私(上杉)の申す所とは全く異なる事を御注意願いたい
https://dl.ndl.go.jp[...]
[319]
서적
https://dl.ndl.go.jp[...]
[320]
서적
https://dl.ndl.go.jp[...]
[321]
서적
https://dl.ndl.go.jp[...]
[322]
서적
https://dl.ndl.go.jp[...]
[323]
서적
https://dl.ndl.go.jp[...]
[324]
서적
https://dl.ndl.go.jp[...]
[325]
서적
https://dl.ndl.go.jp[...]
[326]
서적
[32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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