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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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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실리데스는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영지주의 기독교 사상가이다. 그는 주로 비판적인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 알려졌으며, 자신의 저작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바실리데스는 유출 교리에 기반하여 창조를 설명하고, 물질 세계와 구약의 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믿음을 영혼의 동의로 보고, 지식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으며, 독자적인 성경 정경과 윤회, 순교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다. 바실리데스의 사상은 이시도루스를 통해 계승되었으며, 발렌티누스 등 다른 영지주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심리학자 카를 융은 자신의 저작을 바실리데스에게 귀속시켰고,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바실리데스의 사상에 관심을 보였다.

2. 원천 자료

바실리데스와 그의 가르침은 주로 그를 비판하는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반대자들의 기록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아그리파 카스토르의 저서는 현존하지 않는다.

바실리데스(fl. AD 117 - 138) 사후의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은 다음과 같다.


  • 에우세비우스(c.263 - c.339)의 《교회사》 4권 7장: 4세기 경 저술.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150 - c.215)의 《스트로마타》 1권 21장; 2권 6, 8, 20장; 4권 11, 12, 25장; 5권 1장 등: 208 - 210년 사이 저술. 소위《테오도토스(Theodotus)로부터의 인용(Excerpta ex Theodoto)》도 저술.
  • 히폴리토스(c.170 - c.236)의 《모든 이단적 교설의 논파》 7권: 225년 경 저술.
  • 슈도-테르툴리아누스의 《모든 이단적 교설에 대한 반박》: 테르툴리아누스(c.160 - c. 220)의 《이단적 교설에 대한 처방》의 부록. 빅토리누스가 저술. 240년 경 히폴리토스의 《컴펜디엄(Compendium)》을 기초로 작성.
  • 에피파니우스(c.310-320 - 403)의 《파나리온》 1권 24절
  • 테오도레트(c.393 - c.457)의 《이단 교설 집론(Compendium of Heretical Accounts)》 1권 4장


바실리데스의 저작은 거의 대부분 현존하지 않으나, 세 가지 제목과 일부 단편들은 전해진다.

  • 《해석(Exegetica)》의 단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스트로마타》 4권 12장, 아르켈라우스의 《마네스와의 논쟁》 55장, 오리겐의 《로마서 5장 주해》 1권을 통해 전래.
  • 오리겐은 "바실리데스는 《바실리데스 복음서》를 저술하였다"[53]라고 하였다. 히에로니무스[54]암브로시우스[55]는 오리겐의 주장을 반복. 그러나 《바실리데스 복음서》의 존재 흔적은 없다. 오리겐이 《해석(Exegetica)》에 대해 잘못 이해했거나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56].
  • 오리겐은 욥기 21장 1절 이하 주석에서 바실리데스의 "시(Odes)" 언급.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저작을 통해 알려진 일부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 본래부터 존재하는 여덟 엔티티들 (The Octet of Subsistent Entities, 단편 A)
  • 세상의 유일무이성 (The Uniqueness of the World, 단편 B)
  •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연히 믿음과 덕이 있게 된다 (Election Naturally Entails Faith and Virtue, 단편 C)
  • 덕의 상태 (The State of Virtue, 단편 D)
  •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초월한다 (The Elect Transcend the World, 단편 E)
  • 윤회 (Reincarnation, 단편 F)
  • 인간의 고통과 천명(天命)의 선함 (Human Suffering and the Goodness of Providence, 단편 G)
  •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 (Forgivable Sins, 단편 H)


3세기 후반 또는 말 저술된 《마네스와의 논쟁》은 마니교바실리데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주장.

아브라삭스 보석과 같은 예술적 유물과 《피스티스 소피아》와 같은 문학적 유산이 있다. 《피스티스 소피아》는 2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거의 확실시된다. 바실리데스주의 유산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기 알렉산드리아의 나스티시즘을 보여준다.[11]

2. 1. 기독교 교부들의 저작

역사가들은 바실리데스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 주로 그를 비방하고 헐뜯는 사람들의 저작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바실리데스의 반대자들의 설명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하는 것은 결정하기 어렵다. 바실리데스의 가르침에 대한 가장 오래된 반박 또는 논박이 담긴 책은 아그리파 카스토르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바실리데스의 가르침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 의존하게 되는 자료들은 다음과 같은 바실리데스(fl. AD 117 - 138) 사후의 기독교 교부들의 설명들이다.

  •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c.263 - c.339)의 《교회사》, 4권, 7장: 4세기 경에 저술되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St. Clement of Alexandria: c.150 - c.215)의 《스트로마타》, 1권, 21장; 2권, 6, 8, 20장; 4권, 11, 12, 25; 5권, 1장 등: 208 - 210년 사이에 저술되었다. 그리고 소위《테오도토스(Theodotus)로부터의 인용(Excerpta ex Theodoto)》이라고 하는 글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저술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 히폴리토스(St. Hippolytus of Rome: c.170 - c.236)의 《모든 이단적 교설의 논파》, 7권: 225년 경에 저술되었다.
  • 슈도-테르툴리아누스(Pseudo-Tertullian)의 《모든 이단적 교설에 대한 반박》: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c.160 - c. 220)의 《이단적 교설에 대한 처방》의 부록에 해당하는 작은 논서이다. 실제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아닌 다른 저자가 저술한 논서로 아마도 빅토리누스(Victorinus of Pettau)가 그 저자가 아닌가 한다. 240년 경에 저술되었으며 히폴리토스의 현존하지 않는 저서인 《컴펜디엄(Compendium: 컴필레이션, 집록)》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 에피파니우스(St. Epiphanius of Salamis: c.310-320 - 403)의 《파나리온》, 1권, 24절
  • 테오도레트(Theodoret of Cyrus: c.393 - c.457)의 《이단 교설 집론(Haereticarum fabularum compendium = Compendium of Heretical Accounts)》, 1권, 4장

2. 2. 바실리데스의 저작

바실리데스의 저작은 거의 대부분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저작 세 가지의 제목과 일부 단편들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 《해석(Exegetica)》의 단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저서 《스트로마타(Stromata)》의 4권 12장, 아르켈라우스의 저서 《마네스와의 논쟁(Acts of the Disputation with Manes)》의 55장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리겐의 저서 《로마서 5장 주해(Commentary on Romans V)》의 1권도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 오리겐은 "바실리데스는 대담하고 뻔뻔하게도 《바실리데스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Basilides)》를 저술하였다"[53]라고 하였다. 그리고 히에로니무스[54]암브로시우스[55]는 오리겐의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바실리데스 복음서》가 존재한다는 흔적이 없다. 오리겐이 바실리데스의 《해석(Exegetica)》에 대해 잘못 이해했거나 또는 《바실리데스 복음서》가 다른 이름 하에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56].
  • 오리겐은 욥기 21장 1절 이하에 대한 주석에서 바실리데스의 "시(Ode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 3. 기타 저작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저작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일부 단편들이 알려져 있다.

  • 본래부터 존재하는 여덟 엔티티들 (The Octet of Subsistent Entities, 단편 A)
  • 세상의 유일무이성 (The Uniqueness of the World, 단편 B)
  •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연히 믿음과 덕이 있게 된다 (Election Naturally Entails Faith and Virtue, 단편 C)
  • 덕의 상태 (The State of Virtue, 단편 D)
  •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초월한다 (The Elect Transcend the World, 단편 E)
  • 윤회 (Reincarnation, 단편 F)
  • 인간의 고통과 천명(天命)의 선함 (Human Suffering and the Goodness of Providence, 단편 G)
  • 용서받을 수 있는 죄들 (Forgivable Sins, 단편 H)


3세기 후반 또는 말에 저술된 《마네스와의 논쟁 (Acts of the Disputation with Manes)》은 마니교바실리데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하였다고 주장한다.

2. 4. 유물

아브라삭스 보석과 같은 예술적인 유물과 《피스티스 소피아》와 같은 문학적인 유산들이 있다. 《피스티스 소피아》는 2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거의 확실시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실리데스주의(Basilidian)의 유산은 아니지만 적어도 초기 알렉산드리아의 나스티시즘(early Alexandrian Gnosticism)을 보여주고 있다.[11]

3. 교의

바실리데스의 사상은 1차 자료에서 다양하고 때로는 상반되게 나타난다. 이레네우스는 바실리데스를 이원론자이자 유출론자로 묘사했지만,[11] 히폴리투스범신론적인 진화론자로 묘사했다.[9]

이레네우스는 바실리데스가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아브락사스)로부터 유출된 위계질서를 통해 천상의 영역과 천사적인 권능이 생겨났으며, 유대교의 신은 이러한 천사들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천사적 지배로부터의 구원자로 보았으며, 십자가형에서 시몬 키레네가 그리스도를 대신했다고 주장했다. 에피파니우스와 가짜 테르툴리아누스는 바실리데스를 신비로운 이름 아브락사스와 물질적 현실에 대한 경멸과 연관시켰으며, 고통과 순교를 무의미한 것으로 여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히폴리투스는 바실리데스가 창조 이전에 비존재의 상태가 있었고, 이 비존재의 신이 세상의 씨앗을 낳았다고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바실리데스는 유출과 물질의 영원성을 모두 부정했으며, 창조를 신성한 명령과 연관시켰다. 바실리데스는 세상의 씨앗 안에 세 개의 '계열'이 있다고 보았으며, 최고 존재인 아브락사스를 포함한 다양한 천상의 영역을 지배하는 아르콘이 있는 신성한 위계를 상상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바실리데스는 정교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했는데, 이 체계는 우주의 지배자인 다양한 아르콘에게 각기 다른 시대를 귀속시켰다. 바실리데스에 따르면 이 아르콘들은 각자 특정 시대를 지배했으며, 이 연대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한 영적 깨달음이 중요해지는 복음의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바실리데스가 구상한 구원은 태초의 상태, 즉 세상 창조 이전의 원래 존재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존재의 각 구성 요소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물질적 요소는 원시적인 혼돈 상태로, 정신적 요소는 헤브도마드로 돌아간다. 영적 요소는 비존재의 신으로 돌아가는데, 이는 육체적, 정신적 영역을 초월하고 절대적 신성과 재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실리데스의 형이상학적 체계의 최종 상태는 만물의 회복으로, 모든 존재에 부어지는 신성한 행복한 무지를 상상한다. 이는 지식이나 이해의 부족이 아닌, 신성한 평온함과 평화, 욕망이나 갈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는 이원론적 갈등의 종식과 모든 고통의 중단을 의미하며, 완전한 통일과 조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윤리적으로 바실리데스는 믿음을 의식적인 선택이 아닌 자연스러운 특성으로 간주했으며, 고통을 존재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을 본질적인 원리로 간주하여 심지어 그리스도조차 죄인으로 만들었다. 후대의 해석가들은 바실리데스의 체계가 잠재적인 부도덕성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러한 비난이 바실리데스 자신에게 적용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바실리데스의 아들 이시도르는 스토아 철학과 대중적인 미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추가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더욱 윤리적으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개발했다.

바실리데스 전통은 서기 4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에서 존속했으며, 325년 니케아 신경 제정으로 크게 소외되었다. 그러나 바실리데스의 가르침은 영지주의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대에 다시 불붙었다. 20세기 중반 나그 함마디 문서 발견은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를 해석할 때, 대부분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개인에 의해 작성되었으므로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분석 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구스타프 융은 『죽은 자에게 보내는 일곱 가지 설교』에서 자신을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라고 칭하며, 선(善)의 신 "헬리오스"와 악(惡)의 영 사탄이원론을 설명하고, 양자가 공통적으로 의거하는 영적 원리로 "아브락사스"를 정의했다. 융의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을 초월한, 혹은 선과 악 양면의 기능을 가진 "작용"이다. 또한, 플레로마에 대해 기록했다. 이를 통해 융이 영지주의 사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1. 창조 (Creation)

이레나이우스에 따르면, 바실리데스는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아브락사스)로부터 유출된 위계질서를 제안했는데, 이로 인해 여러 천상의 영역과 천사적인 권능이 생겨났으며, 구약의 신은 이러한 천사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11] 그는 그리스도를 천사적 지배로부터 구원자로 소개하며, 십자가형 동안 시몬 키레네가 그리스도를 대체했음을 암시했다.

히폴리투스는 바실리데스의 가르침을 창조 이전에 비존재의 상태가 있었고, 이것은 욕망도 정념도 없는 비존재의 신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 신이 세상의 씨앗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제시했다.[9] 바실리데스는 유출과 물질의 영원성을 모두 부정했으며, 창조를 물질적 과정이 아닌 신성한 명령과 연관시켰다.

바실리데스는 세상의 씨앗 안에 세 개의 '계열'을 묘사했는데, 이는 존재의 다른 요소들을 나타내며, 각각 다른 수단을 통해 비존재의 신을 향해 노력한다. 그는 최고 존재인 아브락사스를 포함한 다양한 천상의 영역을 지배하는 아르콘이 있는 신성한 위계를 상상했다.

바실리데스는 물질과 물질적인 우주가 악이라고 가르쳤으며, 창조를 담당했던 구약의 신은 잘못된 ''아르콘'' 또는 덜 중요한 신이라고 가르쳤다.[12]

3. 2. 믿음과 천명 (Faith and Election)

바실리데스는 믿음이란 "(물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적) 감각 조직에 자극을 일으키지 않는 사물들에 대해 영혼(soul)이 동의하는 것"[71] 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믿음은 "인간의 본연의 성품(nature)"에 속한 문제이지 분별력에 의한 선택(responsible choice)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적 이해(intellective apprehension)를 통한 증명 없이도 (참된) 교의들을 발견하곤 한다"[72][14]고 보았다. 바실리데스는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걸맞게 축적된 어떤 형태의 존엄성 또는 위엄을 지니게 된다고 보았다.[73][74][16]

바실리데스는 믿음(faith)이 인간의 본연의 성품에 속한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믿음을 지속하여 그 결과로) 천명(天命, 신의 선택을 받는 것, 소명을 받는 것)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바실리데스는 인류들 중 일부 사람들만이 고급한 깨달음(higher enlightenment)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신의 판결(Divine decree)에 의해 정해진다고 하였다. 바실리데스가 "천명을 받는 것(election)은 그 본래의 성격상 물질 세상을 초월한 일(supermundane = 초세간의 일)이기 때문에 물질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일(세상 밖의 일)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이러한 의미에 의거했던 것임에 틀림없다.[75][76][17]

3. 3. 성경 해석

바실리데스는 자신의 정경에 요한 복음서와 자체적인 복음서를 포함시켰으며,[18] 디도서는 거부하고[19] 바울 서신 중 특정 저술들만 선택적으로 포함했다.[20] 그의 정경에는 바실리데스나 그의 직계 추종자들이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복음서 해석''과 ''주석서'' 같은 고유한 텍스트들도 포함되었다.[20] 마태, 마르코, 루가의 공관 복음서는 영지주의적 관점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 일반적인 기독교 정경과 달리 포함되지 않았다.[21] 바실리데스는 자신의 영지주의적 기독교 해석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주류 기독교 작품들을 기피했으며, 그러한 텍스트들이 신성한 본질을 왜곡한다고 보았다.[22] 이처럼 바실리데스의 정경은 초기 기독교의 다양성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 존재했던 다양한 텍스트 전통의 뚜렷한 예를 보여준다.[23]

3. 4. 윤회 (Metempsychosis)

바실리데스는 전생에서 지은 죄 때문에 현생에서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도입하였다. 그는 천명을 받은 영혼은 순교를 통해 영광스럽게 고통받으며, 그렇지 않은 영혼은 적절한 벌을 받음으로써 정화된다고 보았다.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은 3대 또는 4대에까지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77]이 이러한 윤회(metempsychosis)의 교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리겐은 바실리데스가 로마서 7:9를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였다고 전한다.

ἐγὼ δὲ ἔζων χωρὶς νόμου ποτέ|에고 데 에존 코리스 노무 포테|나는 전에 율법 없이 살았었다.grc

: 사도 바울은 '나는 전에 율법 없이 살았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내가 이 육체로 들어오기 전에는 법칙(law), 즉, 새와 같은 짐승(beast)의 법칙 아래에 있지 않는 형태의 체 속에서 살았었다는 말이다.[78]

그러나, 만약 전생에 지은 죄 없이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고통은 "[적대하는] 파워가 계획한" 것이 아니며, 이 상황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아기가 고통을 겪는 것과 같다고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은 말하였다. 아기가 고통을 받는 것은 아기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인데, 역경을 통해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3. 5. 지옥 (Hell)

오리겐에 따르면, 바실리데스는 사람이 죽었을 때 받는 유일한 벌은 이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79] 오리겐은 악한 행위를 하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어 선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유익한 두려움(salutary fear)'이 바실리데스의 이 가르침 때문에 사라져버리는 결과가 야기되었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79][26]

3. 6. 순교 (Martyrdom)

바실리데스는 윤회(metempsychosis)라는 숙명론적인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 순교자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지른 죄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이라고 믿었다.[80] 이 때문에 오리겐(c. 185 - c. 254)은 바실리데스(fl. AD 117-138)가 순교자들을 폄하하였다고 말하였다.[81]

3. 7.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들 (Passions)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은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passions)을 부가물(Appendages)이라고 불렀다.[82] 이 말은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들이 혼란스런 상황에 빠진 이성적인 영혼(rational soul)에게 달라붙는(append)[83] 어떤 스피릿들(spirits = 마음 = 기분)이라는 것을 뜻하였다. 바실리데스주의자들은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들은 그것들이 달라붙어 있는 사람의 행위들을 모방하여 반복하며, 비이성적인 동물들의 충동들(impulses of the irrational animals)을 몸에 지니게 할 뿐만 아니라 식물들의 운동들과 성질들(beauties)도 지니게 한다고 하였다. 이들 부가물들은 금강석과 같은 (광물로부터 유래한) 요지부동의 습관을 지니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84]

이 독특한 이론의 정확한 기원은 결정하기 어렵지만, 윤회(metempsychosis) 교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플라톤티마이오스(Timaeus)에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8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복수의 영혼들(plurality of souls)[86] 이 한 몸에 들러붙는다면 그 몸은 마치 트로이 목마와 같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4. 실천

바실리데스는 믿음을 의식적인 선택이 아닌 자연스러운 특성으로 간주했으며, 고통을 존재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을 본질적인 원리로 간주하여 심지어 그리스도조차 죄인으로 만들었다.[11]

후대의 해석가들은 바실리데스의 체계가 잠재적인 부도덕성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러한 비난이 바실리데스 자신에게 적용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바실리데스파를 포함한 일부 형태의 영지주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다. 바실리데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의 발췌문은 영적인 평화를 위해 감각적인 욕망을 탐닉하는 것을 시사하며, 이는 영지주의자들 사이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의 아들 이시도르는 스토아 철학과 대중적인 미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추가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이시도르는 정화된 지식(그노시스)을 얻기 위해 세속적인 욕망을 삼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더욱 윤리적으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세비우스는 아그리파 카스토르의 말을 인용하여 바실리데스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과 박해 시대에 신앙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무관심의 문제라고 가르쳤다"고 진술한다.[36] 그러나 클레멘스에 따르면, 아그리파 카스토르는 바실리데스 주장의 목적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바실리데스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과 배교가 부도덕함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부도덕함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27]

아그리파 카스토르에 따르면, 바실리데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방식대로 제자들에게 5년간 침묵을 지킬 것을 규정했다.[36] 또한 그는 "바르카바스와 바르코프라는 이름의 예언자들을 스스로 지어냈으며, 그 외에도 실존하지 않는 다른 예언자들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36] 이 예언들은 다양한 영지주의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외경 조로아스터교 문헌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실리데스와 그의 아들 이시도르에 따르면, 사도 마티아는 구세주로부터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받아 그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37][38] 오리게네스[39]와 유세비우스도 마티아의 "복음서" 또는 "전승"을 언급하는데,[40] 이 문서의 정확한 명칭은 ''마티아스의 전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1]

4. 1. 결혼

클레멘트[31]는 후기 바실리데스파의 부도덕성을 비판하기 위해 바실리데스와 그의 아들 이시도르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예시로 제시한다. 그는 (또는 비슷한 복음서 구절)의 해설을 보고하는데, 마지막 유형의 고자들을 생계를 꾸려야 하는 번거로운 걱정을 피하기 위해 독신으로 남는 사람들로 해석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이 없다. 그는 의 의역으로 넘어가 이시도르의 예시 문장을 중간에 삽입하고, 위에 언급된 유형에 대해 사용된 언어를 옮겨 적는다.

4. 2. 강탄절 (Epiphany)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바실리데스가 강탄절(Epiphany)을 기념했다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는 관련 내용을 작성할 수 없다.

4. 3. 우상에게 바친 고기와 배교

유세비우스는 아그리파 카스토르의 말을 인용하여 바실리데스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과 박해 시대에 신앙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무관심의 문제라고 가르쳤다"고 진술한다.[36] 그러나 클레멘스에 따르면, 아그리파 카스토르는 바실리데스 주장의 목적을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바실리데스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과 배교가 부도덕함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부도덕함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27]

4. 4. 침묵

아그리파 카스토르에 따르면, 바실리데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방식대로 제자들에게 5년간 침묵을 지킬 것을 규정했다.[36]

4. 5. 예언자

아그리파 카스토르는 바실리데스가 "바르카바스와 바르코프라는 이름의 예언자들을 스스로 지어냈으며, 그 외에도 실존하지 않는 다른 예언자들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36] 이 예언들은 다양한 영지주의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외경 조로아스터교 문헌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4. 6. 마티아의 전통 (Traditions of Matthias)

바실리데스와 그의 아들 이시도르에 따르면, 사도 마티아는 구세주로부터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받아 그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37][38] 오리게네스[39]와 유세비우스도 마티아의 "복음서" 또는 "전승"을 언급하는데,[40] 이 문서의 정확한 명칭은 ''마티아스의 전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1]

5. 이시도루스 (Isidorus)

이시도루스는 바실리데스의 아들이자 제자로, 바실리데스파 영지주의를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37][44] 그는 아버지의 핵심 사상을 유지하면서도 스토아 철학과 대중적인 미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추가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이시도루스는 정화된 지식(그노시스)을 얻기 위해 세속적인 욕망을 삼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보다 윤리적으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폴리투스는 이시도루스와 바실리데스를 "마티아스의 전승"을 사용했다고 언급하며, 그들이 읊는 교리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6. 영향

바실리데스의 사상은 초기 기독교 사상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그의 독특한 우주론과 구원론은 당대 다른 사상가들과의 논쟁을 통해 기독교 신학 발전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레네우스와 히폴리투스 등 교부들은 바실리데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정립해 나갔다.[11][9] 이 과정에서 이원론, 유출설, 범신론 등의 개념이 기독교 신학 내에서 논의되고 비판적으로 수용되거나 배격되었다.

바실리데스는 아르콘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주를 지배하는 여러 천상의 존재들을 제시했는데, 이는 기독교의 천사론과 악마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바실리데스가 구원을 태초의 상태로의 회귀로 본 것은, 일부 기독교 종말론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바실리데스는 믿음을 의식적인 선택이 아닌 자연스러운 특성으로 간주하고, 고통을 존재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윤리적 관점은 후대 기독교 윤리에 영향을 미쳤다.

바실리데스 학파는 서기 4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에서 존속했지만, 니케아 신조 제정 이후 쇠퇴했다.[50] 그러나 그의 사상은 영지주의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나그 함마디 문서 발견은 바실리데스 신앙을 포함한 영지주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

바실리데스는 발렌티누스와 동시대 인물이거나 약간 앞선 시기의 인물로 추정되며, 그의 사상은 발렌티누스 학파와 비교되기도 한다. 바실리데스는 발렌티누스보다 이전 영지주의에 더 가깝지만, 발렌티누스가 중시한 몇 가지 주요 영지주의 개념을 부정하기도 했다.

20세기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자신의 저서 죽은 자들에게 전하는 일곱 설교를 바실리데스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선(善)의 신 헬리오스와 악(惡)의 영 사탄이원론을 설명하고, 양자가 공통적으로 의거하는 영적 원리로 "아브락사스"를 정의했다. 융은 플레로마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거짓 바실리데스 옹호"(1932)라는 에세이를 통해 바실리데스의 영지주의 교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51] 바실리데스의 영지주의 복음서는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1941)에 언급되기도 했다.

참조

[1] 서적 cites Iren. p. 100 Mass.; followed by Eus. ''H. E.'' iv. 7; Epiph. ''Haer.'' xxiv. 1, p. 68 c; cf. xxiii. 1, p. 62 {{small-caps|B}}; Theod. ''Haer. Fab.'' i. 2.
[2] 서적 notes that to prove that the heretical sects were "later than the catholic Church," Clement of Alexandria ([http://www.newadvent.org/fathers/02107.htm ''Stromata'', vii. 17]) assigns Christ's own teaching to the reigns of Augustus and Tiberius; that of the apostles ends, he says, in the time of Nero; whereas "the authors of the sects arose later, about the times of the emperor Hadrian, and continued quite as late as the age of the elder Antoninus." He gives as examples Basilides, [[Valentinus (Gnostic)|Valentinus]], and (if the text is sound) [[Marcion]]. Yet his language about [[Carpocrates]] a few lines further on suggests a doubt whether he had any better evidence than a fallacious inference from their order in Irenaeus. He was acquainted with the refutation of Basilides by Agrippa Castor; but it is not clear, as is sometimes assumed, that he meant to assign both writers to the same reign. His chronicle (Armenian) at the year 17 of Hadrian ({{small-caps|a.d.}}133) has the note "The heresiarch Basilides appeared at these times". Earliest of all, but vaguest, is the testimony of Justin Martyr. The probable inference that the other great heresiarchs, including Basilides, were by this time dead receives some confirmation from a passage in his ''Dialogue against Trypho'' (135 AD).
[3] 웹사이트 Gospel of Basilides https://www.biblical[...]
[4] 웹사이트 Basilides http://www.newadvent[...]
[5]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vii. Chapter xvii. Gnostic scholar [[Bentley Layton]] accepts the Glaukias connection". Pearson 2008, 4.
[6] 문서 Archelaus, ''Acts of the Disputation with Manes'' Chapter lv.
[7] 문서 Agapius of Menbij, Universal History, Year 15 of Trajan [113].
[8] 서적 states that "It is a singular testimony to the impression created at the outset by Basilides and his system that he remained for centuries one of the eponymi of heresy".
[9] 웹사이트 CATHOLIC ENCYCLOPEDIA: Basilides https://www.newadven[...] 2023-06-04
[10] 문서 Mead 1900, 253 f.
[11] 서적 '''Gnosis: The Nature & History of Gnosticism''' T & T Clark Ltd
[12] 서적 "Basilides," in ''The Cambridge Dictionary of Philosophy''
[13] 문서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ume=? page 178, note 7.
[14] 서적 "Basilides," in ''The Cambridge Dictionary of Philosophy,"
[15]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ii. Chapter iii.
[16]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v. Chapter i.
[17]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iv. Chapter xxvi.
[18] 위키문헌 The Refutation of All Heresies, Book VII
[19] 위키문헌 Commentaries to Titus
[20] 서적 The Gnostic Scriptures Yale University Press 2021
[21] 서적 What is gnosticism? Belknap Press 2005
[22] 서적 The Gnostics: myth, ritual, and diversity in early Christianity Harvard University Press
[23] 서적 Lost christianities: the battles for scripture and the faiths we never knew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24] 서적 cites ''Exc. Theod.'' 976.
[25] 서적 cites ''Com. in Rom.'' iv. 549, Ru.
[26] 서적 cites ''Com. in Matt. l.c.''
[27]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iv. Chapter xii.
[28] 서적 cites ''Com. in Matt.'' iii. 856 Ru.
[29] 문서 St.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Book ii. Chapter xx.
[30] 문서 ''[[Timaeus (dialogue)|Timaeus]]'' https://www.perseus.[...]
[31] 서적 cites ''Strom.'' iii. 508 ff.
[32] 서적 cites Cf. Plut. ''Mor.'' 989.
[33] 문서 St. Hippolytus of Rome, ''Philosophumena'' Book vii.
[34] 문서 Strom.'' i. 146, p. 408.
[35] 서적 cites Venice MS. ii. 483 Dind.: iii. 632 Oehler.
[36] 문서 Eusebius of Caesarea, ''Ecclesiastical History'' Book iv. Chapter vii.
[37] 문서 St. Hippolytus of Rome, ''Philosophumena'' Book vii. Chapter viii.
[38] 문서 Strom. vii. 900 2011-04
[39] 간행물
[40] 간행물
[41] 간행물
[42] 문서 Cf. Uhlhorn, 52 f 2011-04
[43] 간행물
[44] 간행물
[45] 간행물
[46] 간행물
[47] 간행물
[48] 간행물
[49] 문서 See a passage at the end of Hippolytus, ''Philos.'' vii. 22. 2011-04
[50] 간행물
[51] 문서 Discusión
[52] 문서 Arendzen
[53]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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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문서 Iren. p. 100 Mass.; followed by Eus. 《H. E.》iv. 7; Epiph. 《Haer.》 xxiv. 1, p. 68 c; cf. xxiii. 1, p. 62 B; Theod. 《Haer. Fab.》 i. 2.
[58] 문서 이단적인 종파들
[59] 문서 교회사
[60] 문서 스트로마타
[61] 문서 The Gnostics and Their Remains
[62] 문서 A Companion to Second-Century Christian "Heretics"
[63] 문서 마네스와의 논쟁
[64] 문서 Ecclesiastical History
[65] 서적 Fragments of Faith Forgotten http://www.gnosis.or[...]
[66] 문서 Homilies on Luke
[67] 문서 Comentary on the Gospel of Matthew
[68] 문서 Expositio, Euangelii
[69] 문서 Clem. Rec. u. Hom.
[70] 문서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71] 인용
[72] 서적 스트로마타(Stromata)
[73] 서적 스트로마타(Stro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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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간행물 Exc. Theod.
[78] 간행물 Com. in 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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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서적 스트로마타(Stromata)
[81] 간행물 Com. in Matt.
[82] 웹사이트 구버전의 네이버 영어 사전의 feeling 항목 http://endic.naver.c[...]
[83] 인용
[84] 서적 티마이오스
[85] 문서 티마이오스
[86]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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