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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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욥기는 고대 이스라엘 문학 작품으로, 의로운 자가 고난을 겪는 이유에 대한 신학적 질문을 탐구한다. 산문과 시의 형식을 혼합하여 구성되었으며, 욥이라는 인물이 겪는 고통, 친구들과의 논쟁, 그리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욥, 사탄, 엘리바스, 빌닷, 소발, 엘리후, 그리고 하나님이 있으며, 이들은 고난, 신의 정의, 믿음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욥기는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문학,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해석되고 있으며, 고난과 신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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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 |
---|---|
성경 정보 | |
이름 | 욥기 |
의미 | 인내하는 자 |
구분 | 구약성경의 지혜서 |
위치 | 성문서 (Ketuvim) |
주제 | 고난과 믿음, 정의 |
저자 | 불명 (전통적으로 모세로 여겨짐) |
기록 시기 |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4세기 (추정) |
장 수 | 42장 |
등장인물 | |
주요 인물 | 욥 욥의 아내 엘리바스 빌닷 소발 엘리후 하느님 사탄 (|label=none}}) |
내용 개요 | |
줄거리 | 욥의 고난과 믿음, 친구들과의 논쟁, 하느님의 응답 |
신학적 의미 | 고난의 이유, 인간의 유한함, 하느님의 주권 |
관련된 논쟁 | |
의인의 고난 | 욥의 고난을 통해 제기되는 신정론 문제 |
믿음과 고난의 관계 |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가 |
외부 링크 | |
온라인 자료 | Bible Gateway - 욥기 (영어) 성경 - 욥기 (한국어) |
2. 구조
욥기는 산문체의 서두부와 종결부가 대화문을 에워싼 구조를 가지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101]
- 서두 (1-2장): 욥의 의로움과 그에게 닥친 시련을 소개한다.
- 대화 (3-42장 6절): 욥과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의 논쟁, 하나님의 발언과 욥의 대답을 담고 있다.
- 종결부 (42장 7-17절): 욥의 회복을 묘사한다.
이 중 산문체인 서두부와 종결부는 욥기가 처음 기록될 때 작성된 부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대화문은 세대를 거치며 전래된 내용이다. 특히 엘리후의 발언과 28장의 지혜시는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현대에는 욥기의 구조적 통일성에 더 주목하는 추세이다.[101]

욥기는 산문 서두와 결론적 서술, 시적 대화와 독백으로 구성된다.[101] 서술적 틀이 책의 원래 핵심으로 간주되고, 이후 시적 대화와 담론으로 확장되었으며, 28장의 엘리후의 연설과 지혜 시 등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경향은 책의 편집상 통일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101]
3장 이하는 기원전 6세기경 고난을 주제로 주인공 욥을 통해 표현한다. 3장은 애가(哀歌)로서 생의 저주, 사망, 허무를 향한 동경(독백)이다. 4장부터 27장까지는 욥과 세 친구의 대담(對談)을, 29장부터 31장까지는 욥의 과거와 현재 대비 및 결백 맹세를, 38장부터 42장 6절까지는 신과의 대화를 다룬다. 이야기의 발단은 생의 부조리 문제로서, 이유 없는 고난으로 인해 생을 저주하고 세계의 파괴를 바라며 사망을 동경하게 된다. 이후 무상한 우정과 신을 향한 사랑의 좌절, 중보자(仲保者) 요청의 테마가 나타나며 신과의 대결로 이어진다. 최후에는 신이 창조자임을 겸허하게 승인하며 끝맺는다.
2. 1. 서두 (1-2장)
욥기는 산문체의 서두부와 종결부가 대화문을 에워싼 구조를 가진다.[1] 이중 산문체인 서두부와 종결부는 욥기가 처음 기록될 때 작성된 부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대화문은 세대를 거치며 전래된 내용이다.욥기는 산문 서두와 결론적 서술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적 대화와 독백을 담고 있다.[1]
1장에서, 땅에서의 서문은 욥을 부와 아들, 딸을 축복받은 의로운 사람으로 소개하며, 그는 웃 땅에 살고 있다. 그는 일곱 아들과 세 딸, 그리고 많은 재산으로 축복받았다. 욥이 행복의 절정에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는 주님 앞에 사탄을 비롯한 '하나님의 아들들'(공동번역성서)이 모여 있었다. 그 다음 장면은 하늘로 바뀌어, 하느님은 사탄(הַשָּׂטָן|haśśāṭān|그 적대자hbo)에게 욥의 경건함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묻는다. 주님은 사탄 앞에서 욥의 의로움을 드러내신다. 사탄 또한 욥의 의로움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욥의 신앙심의 동기를 의심하며 욥의 신앙은 이익을 기대한 것이고 재산을 잃으면 하나님을 직접 저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이 그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믿기 때문에 경건하다고 비난한다. 만약 하느님이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는 분명히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다.[17] 사탄의 시도는 욥의 무상적 신앙 및 무상적 사랑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며 사탄의 지적을 받아들여 재산을 빼앗는 것을 허락하셨지만[55], 생명에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금지하셨다. 사탄에 의해 욥은 가장 사랑하는 자와 재산을 잃었지만[56], 무죄였고 죄를 범하지 않았다.[57] 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찬양한다.
: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8]
사탄은 먼저 패배한다.
2장에서, 하느님은 더 나아가 사탄에게 욥의 몸을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로 고통스럽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사탄은 시도가 철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이번에는 욥의 육신에 고통을 주려고 다시 하나님께 도전한다.[58] 사탄은 하나님을 도발하여 욥 자신에게 해를 가할 권리를 얻게 되고, 사탄에 의해 욥은 끔찍한 피부병에 걸리고 만다. 욥이 그의 전 재산의 재 속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는 그에게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라고 재촉한다.
당시 사회 상황에서 피부병은 사회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것을 의미했고, 욥은 재 속에 앉아 있었다.[59] 욥의 아내까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게 되지만, 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물리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승리한다. 그리고 장대한 운문조의 논쟁이 펼쳐진다.
2. 2. 대화 (3-42장 6절)
욥기는 산문체의 서두부와 종결부가 대화문을 에워싼 구조를 가진다.[101] 산문체인 서두부와 종결부는 욥기가 처음 기록될 때 작성된 부분이라는 데 이견이 없으며, 대화문은 세대를 거치며 전래된 내용이다. 특히 엘리후의 발언과 욥기 28장의 지혜시는 후대에 첨가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현대에는 욥기의 구조적 통일성에 더 주목하는 추세이다.[101]3장 이하는 기원전 6세기경 고난을 주제로 주인공 욥을 통해 표현한다. 3장은 애가(哀歌)로서 생의 저주, 사망, 허무를 향한 동경(독백)을, 4장부터 27장까지는 세 친구와의 대담(對談)을, 29장부터 31장까지는 과거와 현재의 대비 및 결백의 맹세를, 38장부터 42장 6절까지는 신과의 대화를 다룬다. 이야기의 발단은 생의 부조리 문제로서, 이유 없는 고난으로 인해 생을 저주하고 세계의 파괴를 바라며 사망을 동경하게 된다. 이후 무상한 우정과 신을 향한 사랑의 좌절, 중보자(仲保者) 요청의 테마가 나타나며 신과의 대결로 이어진다. 최후에는 신이 창조자임을 겸허하게 승인하며 끝맺는다.
욥기의 대략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구분 | 내용 |
---|---|
3~14장 | 첫 번째 논쟁 |
15~21장 | 두 번째 논쟁 |
22~27장 | 세 번째 논쟁 |
28장 | 지혜시[101] |
29~31장 | 욥의 독백 |
32~37장 | 엘리후의 발언 |
38~42장 6절 | 하나님의 발언과 욥의 대답 |
욥기는 산문 서두와 결론적 서술, 그리고 시적 대화와 독백으로 구성된다.[101] 서술적 틀이 책의 원래 핵심으로 간주되며, 이후 시적 대화와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28장 엘리후의 연설과 지혜 시 등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최근에는 책의 편집상 통일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101]
3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대신,[20] 자신의 잉태된 밤과 탄생일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는다.[21]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 등 세 친구는 욥에게 죄가 있어 고통받는 것이라 비난한다. 욥은 이들을 "불쌍한 위로자들"이라 칭하며,[22]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고, 창조주는 피조물을 가볍게 여기거나 큰 힘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2]
욥은 히브리 성서에서 이스라엘 신학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며,[23] 자신에게 분노를 쏟는 하나님을 비난한다. 그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욥은 불의에서 하나님의 세상 통치로 초점을 옮겨,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벌하지 않고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고난 속에 방치한다고 암시한다.[29]

욥과 친구들의 대화 후에는 지혜의 접근성을 다룬 "지혜 찬가"가 이어진다. "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28장에서 지혜가 인류에게서 숨겨졌다고 결론짓는다.[12] 욥은 과거의 행운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하며, 자신이 추방, 조롱, 고통받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지켜온 원칙들을 열거하며, 하나님께 응답을 요구한다.[13]
이전에 언급되지 않았던 엘리후가 32장부터 37장까지 등장한다. 그는 화가 난 채로 구경꾼들 무리에서 뛰쳐나와,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오며,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지혜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선포하게 된다고 말한다.[14]
38장에서 하나님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씀하신다.[30] 하나님의 연설은 욥의 고통을 설명하거나, 신의 정의를 옹호하거나, 욥이 요구한 대결의 법정에 들어가지 않으며, 서문에서 언급된 욥의 무죄 선언에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주제를 인간의 허약함으로 바꾸고, 욥의 약함과 하나님의 지혜, 전능을 대조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은 간략히 대답하지만, 하나님의 독백은 계속되며 욥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
욥기 42:1–6에서 욥은 마지막 대답을 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에 대해 듣기만 했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았기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한다.
2. 2. 1. 욥의 독백 (3장)
3장은 애가(哀歌)로서 생의 저주, 사망, 허무를 향한 동경(독백)을 표현한다.[21] 욥은 자신이 잉태된 밤과 탄생일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2. 2. 2. 세 친구와의 논쟁 (4-27장)
욥의 세 친구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의 고통이 죄에 대한 벌이라고 비난했다.[22] 욥은 이들을 "불쌍한 위로자들"이라 부르며,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 반박했다.[22] 욥은 고통 속에서 인내는 불가능하며, 창조주가 피조물을 가볍게 여기고 큰 힘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2]욥은 히브리 성서에서 이스라엘 신학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며,[23] 자신에게 분노를 쏟는 하나님을 비난한다. 그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욥은 불의에서 하나님의 세상 통치로 초점을 옮겨,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벌하지 않고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고난 속에 방치한다고 암시한다.[29]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욥의 고통을 보고 말을 걸 수 없었다.[61] 친구들은 욥에게 죄를 인정하라고 논쟁했고, 욥은 반발했다.
논의는 주제별로 다섯 구분으로 나뉘며, 욥→엘리바스→욥→빌닷→욥→소발 순서로 세 번 반복된다. 이후 엘리후의 주장이 이어지지만 욥은 대답하지 않고, 신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논쟁의 경향은 다음과 같다.
- 세 친구 중 엘리바즈가 으뜸이며 성직자로 추정된다.[62] 빌닷, 소바르가 뒤따른다.
- 1차 논의는 조용하지만, 2차 논의는 격해지고, 3차 논의는 험악한 분위기가 된다.
- 논의가 진행될수록 추상적 내용에서 구체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욥은 사탄의 시련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신앙에 대해 깊이 파고들며, 신의 등장을 기다린다. 욥은 논쟁을 통해 자신을 속량할 분의 존재를 예고하고, 인과응보와 다른 세계관을 선언한다.[66]
엘리바스는 욥이 부유했던 것은 가난한 자의 소유물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67] 욥은 권력자들이 비도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며 친구들은 침묵한다.
친구들은 신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며, 욥이 벌을 받은 것은 죄 때문이라고 반복한다. 욥은 신만이 아는 죄까지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론한다.[65]
- 신약 성서와 빈곤·재난 및 사회 정의의 관련
친구들과의 논쟁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아닌 정치적 구원을 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예수는 빈곤과 비참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68] 사회 정의에 대해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69]
- 신약 성서에서의 인과응보와 재앙
- * 인과응보의 예
-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사해졌다" (누가복음 5:20)
- ** 즉시 일어나 신을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5:25)
- * 인과응보에 의하지 않은 예
- ** "랍비,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요한복음 9:2)
- **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신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같은 9:3)
2. 2. 3. 지혜 시 (28장)
욥기는 산문 서두와 결론적 서술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적 대화와 독백을 담고 있다.[101] 서술적 틀이 책의 원래 핵심으로 간주되고, 나중에 시적 대화와 담론으로 확장되었으며, 28장의 엘리후의 연설과 지혜 시와 같은 책의 일부가 나중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경향은 책의 근본적인 편집상의 통일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101]욥과 그의 친구들의 대화 다음에는 지혜의 접근성을 다룬 시("지혜 찬가")가 이어진다. "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28장에서 지혜가 인류에게서 숨겨졌다고 결론을 내린다.[12]
2. 2. 4. 욥의 최종 독백 (29-31장)
욥은 과거의 행운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대조하며, 자신이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조롱받으며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이 지켜온 삶의 원칙들을 열거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응답해 줄 것을 요구한다.[13]2. 2. 5. 엘리후의 발언 (32-37장)
엘리후는 이야기에 앞서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로, 32장에서 37장까지의 내용을 차지한다. 그는 화가 난 채로 구경꾼들 무리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시고, 이를 통해 지식을 선포하게 된다고 말한다.[14]세 친구는 욥이 받은 재앙 때문에 그를 단죄했지만, 욥은 자신은 신 앞에서 깨끗하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방패 삼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욥을 설득하지 못한 채 있을 때,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의 죄를 지적하지 못한 것에 분개하며 의견을 제시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죄가 있는지 여부는 신이 판단할 일이며, 논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욥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신의 정의는 완전하지 않게 되고, 신의 윤리는 무질서해질 것이라고 분개한다. 다만, 엘리후의 주장은 신의 전능성에 윤리의 근거를 두고 있으며, 윤리적 관련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시각에 기반하고 있어, 문장 속의 정보만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문장 속에서 명확한 논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세한 해석을 피하는 것이 무난하다.
2. 2. 6. 하나님의 발언과 욥의 대답 (38-42장 6절)
38장에서 신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한다.[30] 신의 연설은 욥의 고통을 설명하거나, 신의 정의를 옹호하거나, 욥이 요구한 대결의 법정에 들어가거나, 서문에서 신이 잘 알고 있는 욥의 무죄 선언에 응답하지 않는다.대신 신은 주제를 인간의 허약함으로 바꾸고 욥의 약함과 신의 지혜와 전능을 대조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은 간단히 대답하지만 신의 독백은 계속되어 욥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욥기 42:1–6에서 욥은 마지막 대답을 하며 신의 능력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신에 대해 듣기만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눈으로 신을 보았고, 따라서 그는 ''"내가 뉘우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욥은 말을 다 한 뒤, 이 고난에 대한 의문을 유보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때 폭풍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욥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두 번 말씀하신다.[70] 욥은 지식이 부족하지만[71] 옳게 말했다고[72] 하나님은 평가하신다(인과응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욥에게 싸움과 같은[73]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처음으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최고 걸작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의 주인공이 아니라 창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74]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은 인간의 활동을 초월한 곳에 있음을 지적한다.[75]
또한 욥이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욥은 하나님의 무상의 행위의 세계[76]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 자연 현상을 보고 알고 있다.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다.[77]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을 부정한다. 동물은 분방하다.[78]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물러서는 욥에게 발언을 요구한다.[79] 그러나 욥은 자신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의 중심에 인간이 있지 않음을 이해하고 만족하며 물러난다.[80]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을 취할 것인지, 자신을 취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하나님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작은 존재인 욥이 창조물의 성격을 바꾸고 소멸시켜야 한다[81]는 모순이 있으며, 창조를 부정해야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격을 인간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이라는 가장 강한 짐승을 상징하는 (공상 속의) 동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솔직하게 각 동물의 성질과 이야기의 의의를 생각해 보면, (욥이 마주한) 혼돈과 재앙(을 가져오는 동물)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람이 뜻대로 되지 않는 재앙이 있지만, 세상은 재앙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욥은 하나님에게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며, 하나님께 한 자신의 실례를 깨닫고 티끌과 재 위에 엎드려 자신을 회개한다.[82] 욥의 불만은 사라졌다. 하나님의 정의도 재앙도, 무상의 사랑에 기인하여, 무상의 사랑 안에서 성립하고 있다.(「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2:10)라고 말한 욥의 옳음에 귀결된다.)
2. 3. 종결부 (42장 7-17절)
אִיּוֹב|욥he의 결말 부분에서 하느님은 엘리바즈에게 그와 두 친구가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16] 세 사람은 욥을 중재자로 하여 번제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으며, ''"오직 그에게만 내가 은총을 베풀 것이다"''라고 한다. 욥과 그의 친구들을 비판했던 엘리후는 이 부분에서 언급되지 않았다.후기에서는 욥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의 부와 가족이 재건되었으며, 욥이 그의 가족에게서 태어난 새로운 자녀들이 4대까지 손자들을 보는 것으로 묘사된다.[16]
이야기의 결말에서 하느님의 분노는 세 친구에게 향한다. 그리고 이번 논의 과정에서 상처받은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그들의 죄가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세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제물을 바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졌다. 동시에 하느님은 욥이 잃었던 재산을 되돌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이야기꾼은 가족과 재산의 반환,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얻은 속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욥은 재난 이후 재산을 두 배로 늘려 이전보다 더 나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는 이야기 구성상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최소한의 가치로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욥은 140세까지 살았는데, 노아 시대에 사람의 일생이 120년으로 정해졌고[83], 요셉 110세,[84] 모세 120세,[85] 여호수아 110세[86]에 비해서도 주님에 의해 수명이 더해졌다.
3. 등장인물
- 욥: 우스 땅에 사는 의로운 사람으로, 부와 많은 자녀를 가진 축복받은 인물이었다.[17] 사탄의 시험으로 재산과 자녀를 잃고 끔찍한 종기까지 앓게 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다.[18]
- 사탄: 욥의 경건함을 시험하는 존재로, 하나님께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7]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권한을 주지만, 결국 사탄은 욥의 믿음을 꺾지 못한다.[55]
- 엘리바스, 빌닷, 소발: 욥의 세 친구로, 욥의 고통이 죄에 대한 벌이라고 주장하며 욥을 비난한다.[22]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98]
- 엘리후: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지켜보다가 등장하는 인물로, 욥의 주장이 하나님의 정의를 훼손한다고 비판한다.[94]
- 하나님: 욥에게 시련을 허락하지만, 결국 욥의 믿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다시 복을 내리시는 분이다.[98] 회오리바람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 자신의 전능함과 지혜를 드러내며, 욥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회개한다.[30]
3. 1. 욥
욥은 우스 땅에 사는, 부와 아들, 딸을 축복받은 의로운 사람이었다.[17] 하늘에서 하느님은 사탄(הַשָּׂטָן|haśśāṭān|그 적대자hbo)에게 욥의 경건함에 대해 묻는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 덕분에 행복하다고 믿기에 경건하다고 비난하며, 하느님이 욥의 모든 것을 빼앗으면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7]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재산, 자녀, 하인들을 빼앗을 권한을 주지만, 욥은 하느님을 찬양한다.[18]
: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8]
하느님은 더 나아가 사탄에게 욥의 몸을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로 괴롭힐 수 있게 한다. 욥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지만,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대답한다.[19] 욥은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
욥의 세 친구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욥을 죄인으로 비난하며 고통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욥은 그들을 "불쌍한 위로자들"이라며 경멸한다.[22] 욥은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며, 창조주는 피조물을 가볍게 여기고 큰 힘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욥은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욥은 불의한 자들이 벌받지 않고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이용하며 고난받게 한다고 암시한다.[29]
욥과 친구들의 대화 후 "지혜 찬가"라는 시가 이어진다. 28장에서 지혜는 인류에게 숨겨져 있다고 결론짓는다. 욥은 과거의 행운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하며, 추방, 조롱,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지켜온 원칙들을 열거하고, 신의 답을 요구한다.
엘리바스에게 하나님은 세 친구가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세 사람은 욥을 중재자로 하여 번제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는다. 욥과 친구들을 비판했던 엘리후는 언급되지 않는다.
후기에서 욥은 건강, 부, 가족을 회복하고, 4대까지 손자들을 본다.
욥은 에스겔서에 고대 시대의 의인으로 등장하며, 욥기의 저자는 이 영웅을 비유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욥기가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쓰였으며, 기원전 6세기가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익명의 저자는 이스라엘인이었지만, 이야기는 이스라엘 밖, 남쪽 에돔 또는 북부 아라비아를 배경으로 한다. 욥기는 바빌론 유수 직후 지혜 문학이 흔했지만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31]
욥기의 언어는 보수적인 철자와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 많은 단어와 형태로 두드러진다. 아람어, 아랍어, 에돔어 원전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외래어와 외래어처럼 보이는 형태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위한 문학적 기교로 보인다.
욥과 사탄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해, 욥은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사온즉 또한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87]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88]라고 답하여,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욥은 38장 이후 여호와의 응답에서 자신이 창조주에게 주어진 객체임을 깨닫는다.[89]
욥은 출생을 저주하고[90] 고통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91], 엘리바스는 흙에서 재앙이 나오지 않는다고 부정하며[92] 하나님과의 화해를 추구한다. 세 친구는 세상 상황이 인간의 선악의 결과라고 설명하며[93] 죄를 찾으려 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언어는 격하지만, 세계관을 공유하며[94] 겸손하게 기다리고[95] 불쌍한 자를 괴롭히지 말라[96]고 전하며, 주를 기다린다.
욥의 "불행을 포함하여,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주장[97]과, 세 친구가 인생을 자기 본위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형태로, 창조주의 응답이 외삽되어 있으며, 주께서 욥이 옳다고 세 친구에게 설명한다.[98]
재산을 배로 받은 후, 욥은 흙으로 돌아가[99], 욥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주께 바쳐진다.
3. 2. 사탄
1장에서 하느님은 사탄(הַשָּׂטָן|haśśāṭān|그 적대자hbo)에게 욥의 경건함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이 그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믿기 때문에 경건하다고 비난하며, 만약 하느님이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는 분명히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7]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재산을 빼앗고 그의 자녀와 하인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지만, 욥은 하느님을 찬양한다.[18] 2장에서 하느님은 더 나아가 사탄에게 욥의 몸을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로 고통스럽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욥이 전 재산을 잃고 재 속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라고 재촉하지만, 욥은 이를 거부한다.[19]
욥이 행복의 절정에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는 주님 앞에 사탄을 비롯한 '하나님의 아들들'(공동번역성서)이 모여 있었다. 주님은 사탄 앞에서 욥의 의로움을 드러내지만, 사탄은 욥의 신앙심의 동기를 의심하며 욥의 신앙은 이익을 기대한 것이고 재산을 잃으면 하나님을 직접 저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며 사탄의 지적을 받아들여 재산을 빼앗는 것을 허락하셨지만,[55] 생명에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금지하셨다. 사탄에 의해 욥은 가장 사랑하는 자와 재산을 잃었지만,[56] 무죄였고 죄를 범하지 않았다.[57] 사탄은 패배한다. 이후 사탄은 시도가 철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이번에는 욥의 육신에 고통을 주려고 다시 하나님께 도전한다.[58] 사탄은 하나님을 도발하여 욥 자신에게 해를 가할 권리를 얻게 되고, 욥은 끔찍한 피부병에 걸리고 만다.
욥과 사탄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공통된 질문에 대해, 욥은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사온즉 또한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87]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88]라고 다른 주장을 함으로써, 자신과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3. 3. 엘리바스, 빌닷, 소바르
3장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대신",[20] 욥은 잉태된 밤과 탄생일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욥의 세 친구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그를 찾아와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며 고통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욥은 경멸로 대답한다. 그의 방문객들은 "불쌍한 위로자들"이다.[22] 욥은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므로 고통 속에서의 인내는 불가능하며, 창조주는 피조물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그렇게 큰 힘으로 그들을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후, 욥의 세 친구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각자의 나라에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60] 사회적으로 죽음에 이른 욥을 방문하는 행위는 칭찬할 만하다. 그들은 7일 밤낮으로 욥과 함께 앉아 있었지만, 격심한 고통을 보고는 말도 걸 수 없었다.[61] 친구들은 욥이 나쁜 일을 당하는 것은 잘못한 일에 대한 보응이므로 죄를 깨끗이 인정하라고 논쟁하고, 죄가 없는 욥은 반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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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눈 논의는 주제별로 다섯 개의 구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욥→엘리바스→욥→빌닷→욥→소발 순서로 논의가 세 번 반복된다. 이 논의 이후, 엘리후의 주장이 이어지지만 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신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이 논의에는 몇 가지 경향이 있다.
- 세 친구 중에서는 엘리바스가 으뜸이며, 성직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62] 빌닷과 소발이 그 뒤를 따른다.
- 윤리적으로는 명백히 악순환에 빠져 있다. 1차 논의에서는 각각 예의를 갖추어 대체로 조용하게 대화하지만, 2차 논의에서는 표현이 격해지고, 3차 논의에서는 친구들이 "당신은 심히 악을 행하였고/한없이 부정하게 행하였소." (22:5)라고 말하면, 욥은 "나에게 적대하는 자가 죄를 받으며/나에게 거역하는 자가 부정하게 되기를 바라노라." (27:7)라고 대답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 논의가 진행될수록 추상적인 내용에서 구체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종교 지도자와 고난에 처한 욥의 논의이며, 욥은 종교 지도자의 설교에 의문을 제기하고, 본래 자신의 주장은 종교관에 포함되어야 한다(들어주는 것이 위로[63])고 주장한다.
3. 4. 엘리후
엘리후는 이야기에 앞서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로, 32장에서 37장까지 등장한다. 그는 화가 난 채로 구경꾼들 무리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엘리후는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시고, 이를 통해 지식을 선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세 친구는 욥이 받은 재앙 때문에 그를 단죄했지만, 욥은 자신은 신 앞에서 깨끗하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방패 삼아 물러서지 않았다. 욥을 설득하지 못한 채 쳇바퀴 도는 논쟁이 이어지자,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의 죄를 지적하지 못한 것에 분개하며 의견을 제시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죄가 있는지 여부는 신이 판단할 일이며, 논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욥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신의 정의는 완전하지 않게 되고, 신의 윤리는 무질서해질 것이라고 분개한다. 다만, 엘리후의 주장은 신의 전능성에 윤리의 근거를 두고 있으며, 윤리적 관련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시각에 기반하고 있어 평가하기 어렵다. 문장 속에서 명확한 논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세한 해석은 피하는 것이 무난하다.
3. 5. 하나님
1장에서 우스 땅에 사는 욥은 부와 자녀의 축복을 받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하늘에서 하느님은 사탄(הַשָּׂטָן|haśśāṭān|그 적대자hbo)에게 욥의 경건함에 대해 묻는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 덕분에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에 경건하며, 만약 하느님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욥은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비난한다.[17]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재산과 자녀, 하인들을 빼앗을 권한을 주지만, 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한다.[18]
2장에서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몸을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로 괴롭힐 수 있게 허락한다. 욥이 재 속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지만,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대답한다.[19]
38장에서 신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하며,[30] 욥의 고통이나 신의 정의, 욥의 무죄 선언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신은 인간의 허약함을 주제로 욥의 약함과 신의 지혜, 전능을 대조하며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라고 묻는다. 욥은 간단히 대답하지만, 신의 독백은 계속된다.
42장 1-6절에서 욥은 신의 능력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신에 대해 듣기만 했지만, 이제는 눈으로 보았기에 "뉘우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말한다.
엘리바스에게 하나님은 그와 다른 두 친구가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세 사람은 욥을 중재자로 하여 번제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으며, "오직 그에게만 내가 은총을 베풀 것이다"라고 한다. 욥과 친구들을 비판했던 엘리후는 언급되지 않았다.
욥과 사탄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해, 욥은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사온즉 또한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87]라고 하는 반면,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88]라고 답하여,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38장 이후 여호와의 응답에서 욥은 자신이 창조주에게 주어진 객체임을 깨닫는다.[89]
욥의 "불행을 포함하여,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주장[97]과, 세 친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을 자기 본위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형태로, 창조주의 응답이 외삽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 주께서 욥이 옳다고 세 친구에게 설명한다.[98]
4. 주제
욥기는 전도서, 잠언과 함께 지혜 문학에 속하며,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지혜는 사고방식, 지식의 집합, 그리고 삶에 적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성경적으로 지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완전히 얻을 수 없다.
이 세 권의 책은 태도와 가정은 공유하지만 결론은 다르다. 잠언은 세상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반박한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지혜 문학은 기원전 3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여러 텍스트는 욥기와 유사점을 보인다. 욥기 저자가 이들 중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존재는 저자가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에 대한 오랜 성찰의 전통을 물려받았음을 시사한다.
욥기는 악의 문제, 즉 "의로운 자가 왜 고통받는가?"라는 신정론을 다룬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신이 덕을 보상하고 죄를 벌한다는 보복 정의 사상이 일반적이었지만, 욥기는 선한 사람도 고통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로움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의로운 자는 공동체에 투자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반대로 악인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이었다. 사탄은 사심 없는 의로움이 존재하는지, 즉 하나님이 의로움을 번영으로 보상한다면 사람들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의롭게 행동하지 않겠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욥의 번영을 제거하여 시험해 보라고 하나님께 요청한다.
욥기는 틀 이야기를 시작하며 독자에게 욥을 모범적인 믿음과 경건을 가진 사람으로 소개한다. 틀 이야기와 욥이 하늘에서의 시작 장면이나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시적 대화의 대비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시적 대화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가 있다고 추정하지만, 욥은 자신이 무죄임을 알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결론 내린다. 욥은 자신의 경건함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이 의로움을 보상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친구들과 동의한다.
엘리후는 욥과 방문객들의 주장을 모두 거부한다. 욥은 하나님이 인간보다 위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잘못되었고, 방문객들은 고통이 처벌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를 구원"하고 계시에 더 순종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8장, 지혜에 대한 시(또는 찬송가)는 신적 지혜를 소개하며, 지혜의 접근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지혜는 발명하거나 구매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의 의미를 알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복잡성을 파악하시기 때문에 지혜를 소유하신다 (욥 28:24–26)[34] – 이 주제는 38–4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고한다.
하나님은 욥의 고통의 이유나 자신의 정의를 설명하지 않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이 하시고 욥이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은 신적 지혜를 보여준다. 욥은 자신의 지혜 부족을 고백한다. 두 번째 연설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제하는 하나님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연설에 대한 욥의 답변은 더 길고 복잡하다. 일반적인 견해는 욥이 회개한다는 것이지만 (욥 42:6),[35] 히브리어는 어렵고, 욥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틀 이야기의 결론에서 하나님은 욥의 번영을 회복하고 증가시키시며, 보복 정의가 유지됨을 나타낸다.
4. 1. 고난의 문제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욥의 고통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시한다.- 고통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1:21)[17]
- 욥처럼 훌륭한 사람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할 만큼 겸손하지 못하다. (23:10)[18]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 때문이다. (40:8)[19]
- 공정함과 의로움에 대한 창조자와 사탄의 대결에서, 고난받는 인간의 선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1:9)[20]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통이 죄 때문이라고 비난하지만, 욥은 자신이 무죄하며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주장한다.[29] 엘리후는 욥과 친구들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며, 고통은 벌이 아니라 계시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33]
28장의 "지혜 찬가"는 지혜가 인간에게 숨겨져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의 의미를 알고 경외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고 말한다.[34] 하나님은 욥에게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신의 역할과 욥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며 신적 지혜를 드러낸다. 욥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고, 하나님은 욥의 번영을 회복시킨다.
욥은 사탄의 시련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신앙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재앙과 죄를 쉽게 연결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인과응보와 다른 세계관의 존재를 선언한다.[66] 엘리후는 욥에게 겸손하게 기다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욥이 옳다고 친구들에게 설명한다.[98] 욥은 모든 것이 주께 바쳐진다는 것을 깨닫는다.[99]
욥기는 신의 정의, 즉 "의로운 자가 왜 고통받는가?"라는 악의 문제 또는 신정론을 다룬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신이 덕을 보상하고 죄를 벌한다는 보복 정의 사상이 일반적이었지만, 욥기는 선한 사람도 고통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2. 신의 정의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욥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20]- 고통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1:21)
- 욥과 같이 훌륭한 사람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할 정도의 겸손을 갖추지 못했다. (23:10)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시작된다. (40:8)
- 공정함과 의로움에 대한 창조자와 사탄의 대결에서, 고난받는 한 인간의 선택이 승패를 가른다. (1:9)
3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대신,[20] 자신의 탄생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을 찾아와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며 고통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욥은 이들을 "불쌍한 위로자들"이라 부르며 경멸한다.[22] 욥은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며, 창조주는 피조물을 가볍게 여기고 큰 힘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욥의 응답은 히브리 성서에서 이스라엘 신학의 급진적인 재진술 중 하나이다.[23] 욥은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본다.
욥은 불의한 자를 벌하지 않는 하나님의 세상 통치를 비판하며, 불의한 자들이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이용하고 고난받게 한다고 암시한다.[29]
욥과 친구들의 대화 후에는 지혜의 접근성을 다룬 "지혜 찬가"가 이어진다. "지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28장에서 지혜가 인류에게서 숨겨졌다고 결론 내린다. 욥은 과거의 행운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하며, 자신이 추방당하고 조롱받으며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신에게 답을 요구한다.
엘리후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통해 지혜를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38장에서 신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한다.[30] 신은 욥의 고통을 설명하거나, 신의 정의를 옹호하거나, 욥의 무죄 선언에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신은 인간의 허약함으로 주제를 바꾸고 욥의 약함과 신의 지혜와 전능을 대조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은 간단히 대답하지만 신의 독백은 계속된다.
42장 1–6절에서 욥은 신의 능력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신에 대해 듣기만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눈으로 신을 보았고, ''"내가 뉘우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말한다.
엘리바스에게 하나님은 그와 다른 두 친구가 "내 종 욥처럼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세 사람은 욥을 중재자로 하여 번제물을 바치라는 명을 받는다. 욥과 그의 친구들을 비판했던 엘리후는 언급되지 않았다.
후기에서는 욥의 건강이 회복되고, 그의 부와 가족이 재건되었으며, 욥이 4대까지 손자들을 보는 것으로 묘사된다.
《욥기》는 신의 정의, 즉 악의 문제 또는 신정론을 탐구한다.[35] 고대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답변은 신이 덕을 보상하고 죄를 벌한다는 "보복 정의"였다.[35] 그러나 경험적으로 고통은 선한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의로움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의로운 자는 공동체에 투자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사탄은 사심 없는 의로움이 존재하는지, 즉 하나님이 의로움을 번영으로 보상한다면 사람들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의롭게 행동하지 않겠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통을 보고 그가 죄가 있다고 추정한다. 욥은 자신이 무죄임을 알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결론 내린다. 욥은 자신의 경건함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이 의로움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에 친구들과 동의한다.
엘리후는 욥과 방문객들의 주장을 모두 거부한다. 고통은 "고통받는 자를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으며, 계시에 더 순종하게 할 수 있다.[33]
28장, 지혜에 대한 시(또는 찬송가)는 지혜의 접근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그분 앞에서 경외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만 지혜를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복잡성을 파악하시기 때문에 지혜를 소유하신다.[34]
하나님은 욥의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거나 자신의 정의를 옹호하지 않는다. 첫 번째 연설은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그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며, 신적 지혜를 보여준다. 욥은 자신의 지혜 부족을 고백한다. 두 번째 연설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연설에 대한 욥의 답변은 더 복잡하다. 일반적인 견해는 그가 하나님께 도전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는 것이다.[35] 그러나 히브리어는 어렵다. 다른 해석은 욥이 회개하고 슬퍼하는 것이 잘못되었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 이야기의 결론 부분에서 하나님은 욥의 번영을 회복하고 증가시키시며, 보복 정의에 대한 신적 정책이 변함없이 유지됨을 나타낸다.
제2 성전 시대(기원전 500년 ~ 서기 70년)에 욥은 인내심과 굳건함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모했고, 그의 고통은 덕성의 시험이자 의로움의 입증이 되었다. 욥을 "성화"하는 과정은 그리스어 칠십인역 번역으로 시작되었으며, 외경인 욥기 유언에서 더욱 발전하여 욥을 인내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해석은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에서 이어받아 욥을 인내와 끈기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야고보서 5장:7–11).[36]
그리스도인들이 욥기 19:23–29[37]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자, 지배적인 유대교적 관점은 "신성 모독자 욥"이 되었고, 일부 랍비들은 그가 파라오가 무고한 유대인 아이들을 학살하는 동안 방관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욥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기록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올바른 삶의 모델로 제시했다. 중세 유대 학자 마이모니데스는 그의 이야기를 비유로 선언했고, 중세 기독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것을 진정한 역사로 선언하는 상세한 주석을 썼다. 종교 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는 욥의 죄인됨과 무가치함에 대한 고백이 그의 성스러움의 근본이 되었다고 설명했고, 존 칼빈의 욥기 해석은 부활 교리와 궁극적인 신의 정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다.
환경 신학은 욥기 38–4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그분의 관심과 행동이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욥은 사탄의 시련을 겪으며 우울한 태도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죽음 외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세 친구는 엘리바스를 필두로 인과응보를 설파한다. 세 친구의 주장은 사탄의 주장과 관련[64]되어 있으며, 인과응보의 원리를 방패 삼아 욥이 죄를 인정하고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욥은 무죄를 주장했다.
친구들은 신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며, 욥이 벌을 받은 이상 죄를 범했으므로 신과 화해하고 기도하는 것이 답이라고 타이른다. 욥은 인식할 수 없는 죄까지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론한다.[65]
욥은 순수한 신앙을 가졌지만, 사탄의 시련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계기로 신앙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욥은 논쟁을 거쳐, 자신을 속량할 분의 존재를 예고하고, 인과응보와 다른 세계관의 존재를 선언한다.[66]
엘리바스는 욥이 부유했던 것은 가난한 자의 소유물을 빼앗은 행위 때문이 아니냐고 단언한다.[67] 욥은 권력을 가지고 태어나 비도덕적으로 빼앗고 억압하는 자들에 의해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무죄한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 신약 성서와 빈곤·재난 및 사회 정의의 관련
- * 빈곤과 병고의 존재와 인과응보에 관한 친구들과의 논쟁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 및 유다가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아닌 정치적인 영광에 의한 구원을 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 * 예수는 적극적으로 빈곤과 비참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68]
- * 사회 정의에 관해서는, 예수는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언급하고 있다.[69]
- 신약 성서에서의 인과응보와 재앙에 대한 생각의 예
- * 인과응보에 의한 예
-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5:20)
- ** 그 사람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신을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5:25)
- * 인과응보에 의하지 않은 예
- ** "랍비,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요한복음 9:2)
- **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신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같은 9:3)
세 친구는 욥을 단죄했지만, 욥은 자신은 신 앞에서 깨끗하다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의 죄를 지적하지 못한 것에 분개하며 의견을 제시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죄가 있는지 여부는 신이 판단할 일이며, 논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욥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신의 정의는 완전하지 않게 되고, 신의 윤리는 무질서해질 것이라고 분개한다.
욥은 말을 다 한 뒤, 이 고난에 대한 의문을 유보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때 폭풍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욥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두 번 말씀하신다.[70] 욥은 지식이 부족하지만[71] 옳게 말했다고[72] 하나님은 평가하신다(인과응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욥에게 싸움과 같은[73]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의 주인공이 아니라 창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74],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은 인간의 활동을 초월한 곳에 있음을 지적한다[75]。
욥은 하나님의 무상의 행위의 세계[76]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 자연 현상을 보고 알고 있다.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다[77]。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을 부정한다. 동물은 분방하다[78]。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물러서는 욥에게 발언을 요구한다[79]。 그러나 욥은 자신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의 중심에 인간이 있지 않음을 이해하고 만족하며 물러난다[80]。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을 취할 것인지, 자신을 취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하나님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작은 존재인 욥이 창조물의 성격을 바꾸고 소멸시켜야 한다[81]는 모순이 있으며, 창조를 부정해야 한다.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이라는 가장 강한 짐승을 상징하는 (공상 속의) 동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혼돈과 재앙(을 가져오는 동물)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람이 뜻대로 되지 않는 재앙이 있지만, 세상은 재앙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욥은 하나님에게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며, 하나님께 한 자신의 실례를 깨닫고 티끌과 재 위에 엎드려 자신을 회개한다[82]。 욥의 불만은 사라졌다. 하나님의 정의도 재앙도, 무상의 사랑에 기인하여, 무상의 사랑 안에서 성립하고 있다.(「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2:10)라고 말한 욥의 옳음에 귀결된다.)
욥과 사탄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공통된 질문에 대해, 욥은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사온즉 또한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87]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88]라고 다른 주장을 함으로써, 자신과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38장 이후의 여호와의 응답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며, 욥은 자신이 창조주에게 주어진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89].
욥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90], 고통 때문에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91], 엘리바스는 흙에서 재앙이 나오지 않는다고 욥의 주장을 부정하며[92], 지상적인 소망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해를 추구한다. 세 친구는 지상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욥에게 설교하지만, 세상의 상황은 인간의 선악의 결과라고 설명하며[93],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 속에서 죄를 찾으려고 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언어는 격하지만, 욥과 세계관을 공유하며[94], 겸손하게 기다리라고 전하고[95], 불쌍한 자를 괴롭히지 말라[96]고 욥에게 전하며, 주를 기다린다.
욥의 주장인 "불행을 포함하여,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것[97]과, 세 친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을 자기 본위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형태로, 창조주의 응답이 외삽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 주께서 욥이 옳다고 세 친구에게 설명한다[98].
재산을 배로 받은 후, 욥은 흙으로 돌아가[99], 욥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주께 바쳐진다.
4. 3. 믿음의 본질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통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욥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17]- 고통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1:21)[18]
- 욥과 같이 훌륭한 사람도 겸손을 위해 창조주의 훈육이 필요하다. (23:10)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의롭다고 믿는 교만 때문이다. (40:8)
- 공정함과 의로움에 대한 창조자와 사탄의 대결에서, 고난받는 인간의 선택이 승패를 가른다. (1:9)
1장에서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의로운 사람으로, 부와 자녀의 축복을 받았다. 하늘에서 하느님은 사탄( הַשָּׂטָן|haśśāṭān|그 적대자hbo)에게 욥의 경건함에 대해 묻는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 덕분에 행복하기 때문에 경건하다고 비난하며, 하느님이 모든 것을 빼앗으면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7]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재산, 자녀, 하인을 빼앗을 권한을 주지만, 욥은 하느님을 찬양한다.[18]
: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8]
2장에서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의 몸에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를 허락한다. 욥이 재 속에 앉아 있을 때,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라고 하지만, 욥은 복과 화를 모두 받는다고 답한다.[19]
3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대신,[20] 자신의 잉태된 밤과 탄생일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을 찾아와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며 고통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욥은 그들을 "불쌍한 위로자들"이라 부르며[22] 경멸한다. 욥은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자신을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므로, 고통 속에서의 인내는 불가능하며, 창조주는 피조물을 가볍게 여기고 큰 힘으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욥은 자신에게 과도한 분노를 쏟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23]
욥은 불의에서 하나님의 세상 통치로 초점을 옮겨,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벌하지 않고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고난 속에 방치한다고 암시한다.[29]
욥과 친구들의 대화 후에는 지혜의 접근성을 다룬 "지혜 찬가"가 이어진다. 28장에서 지혜는 인류에게서 숨겨졌다고 결론 내린다. 욥은 과거의 행운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하며, 자신이 추방당하고 조롱받으며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신에게 답을 요구한다.
엘리후가 등장하여(32-37장)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꿈과 환상을 통해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38장에서 신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말하며,[30] 욥의 고통이나 신의 정의를 설명하지 않고, 욥의 무죄 선언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허약함을 주제로 욥의 약함과 신의 지혜, 전능을 대조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은 간단히 대답하고, 신은 욥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독백을 계속한다.
욥기 42:1–6에서 욥은 신의 능력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말하였습니다"'', ''"내가 뉘우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라고 말한다.
욥기, 전도서, 잠언은 지혜 문학 장르에 속하며,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지혜는 사고방식, 지식의 집합, 삶에 적용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성경적으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외에는 완전히 얻을 수 없다.
잠언은 세상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반박한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지혜 문학은 기원전 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여러 텍스트는 욥기와 유사점을 보인다. 욥기 저자가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오랜 성찰의 전통을 물려받았음을 시사한다.
《욥기》는 신의 정의, 즉 악의 문제 또는 신정론을 탐구하며, "어째서 의로운 자가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대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답변은 신이 덕을 보상하고 죄를 벌한다는 "보복 정의"였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고통은 선한 사람들에게서 발생한다.
의로움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의로운 자는 공동체에 투자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악인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이었다. 사탄은 사심 없는 의로움이 존재하는지, 즉 하나님이 의로움을 번영으로 보상한다면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겠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욥의 번영을 제거하여 시험해 보라고 하나님께 요청한다.
욥기는 틀 이야기를 시작하여 욥을 모범적인 믿음과 경건의 사람으로 소개한다. 틀 이야기와 욥이 하늘에서의 시작 장면이나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시적 대화의 대비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시적 대화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가 있다고 추정하지만, 욥은 자신이 무죄임을 알고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결론 내린다. 욥은 경건함을 유지하지만, 하나님이 의로움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에 친구들과 동의한다.
엘리후는 욥과 방문객들의 주장을 모두 거부한다. 욥은 하나님이 인간보다 위대하므로 불의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잘못되었고, 방문객들은 고통이 처벌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를 구원"하고 계시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8장, 지혜에 대한 찬송가는 신적 지혜를 소개하며, 지혜의 접근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지혜는 발명하거나 구매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의 의미를 알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여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복잡성을 파악하시기 때문에 지혜를 소유하신다(욥 28:24–26)[34] – 이 주제는 38–4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고한다.
하나님은 욥의 고통의 이유나 자신의 정의를 설명하지 않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이 하시고 욥이 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은 신적 지혜를 보여준다. 욥은 자신의 지혜 부족을 고백한다. 두 번째 연설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제하는 하나님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지막 연설에 대한 욥의 답변은 더 길고 복잡하다. 일반적인 견해는 욥이 회개한다는 것이지만(욥 42:6),[35] 히브리어는 어렵고, 욥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틀 이야기의 결론에서 하나님은 욥의 번영을 회복하고 증가시키며, 보복 정의가 유지됨을 나타낸다.
제2 성전 시대(기원전 500년 ~ 서기 70년)에 욥은 인내심과 굳건함이 강조되고, 고통은 덕성의 시험이자 의로움의 입증이 되었다. 욥을 "성화"하는 과정은 그리스어 칠십인역 번역으로 시작되었고, 외경인 욥기 유언(기원전 1세기 ~ 서기 1세기)에서 욥을 인내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해석은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에서 이어져 욥을 인내와 끈기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야고보서 5:7–11).[36]
그리스도인들이 욥기 19:23–29[37]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자, 지배적인 유대교적 관점은 "신성 모독자 욥"이 되었고, 일부 랍비들은 그가 파라오의 유대인 아이 학살을 방관했기 때문에 처벌받았다고 말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욥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기록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모델로 제시했다. 중세 유대 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이야기를 비유로, 중세 기독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정한 역사로 선언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는 욥의 죄인됨과 무가치함에 대한 고백이 성스러움의 근본이라고 설명했고, 존 칼빈은 부활 교리와 신의 정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다.
창조 신학은 욥기 38–41장의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그분의 관심과 행동이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암시한다.
욥은 사탄의 시련 속에서 생일을 저주하고 죽음을 갈망했다. 세 친구는 엘리바스를 필두로 인과응보를 설파하며 욥이 죄를 인정하고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욥은 무죄를 주장했다.
- 욥이 죄를 인정하고 기도했다면, 이익을 위한 신앙이며 사탄이 승리하게 된다.
- 혼돈으로 되돌리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탄은 승리를 선언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윤리가 주제는 아닐 수 있다.
친구들은 신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반복하며, 욥이 벌을 받았으니 죄를 범했으므로 신과 화해하고 기도하는 것이 답이라고 타이른다. 욥은 인식할 수 없는 죄까지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론한다.[65]
욥은 순수한 신앙을 가졌지만, 사탄의 시련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신앙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욥은 인과응보와 다른 세계관의 존재를 선언한다.[66]
엘리바스는 욥이 부유했던 것은 가난한 자의 소유물을 빼앗은 행위 때문이라고 단언한다.[67] 욥은 권력을 가지고 태어나 비도덕적으로 억압하는 자들에 의해 가난하게 살아가는 무죄한 사람들이 있다고 인식하며,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욥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친구들은 침묵한다. 엘리후가 분노한다.
- 빈곤과 병고의 존재와 인과응보에 관한 논쟁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 및 유다가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아닌 정치적인 영광에 의한 구원을 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 예수는 빈곤과 비참을 긍정적으로 파악한다.[68]
- 사회 정의에 관해서는, 예수는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언급한다.[69]
- 인과응보에 의한 예
-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5:20)
- ** 그 사람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신을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5:25)
- 인과응보에 의하지 않은 예
- ** "랍비,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요한복음 9:2)
- **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신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같은 9:3)
욥은 말을 다 한 뒤, 고난에 대한 의문을 유보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때 폭풍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욥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두 번 말씀하신다.[70] 욥은 지식이 부족하지만[71] 옳게 말했다고[72] 하나님은 평가하신다(인과응보가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욥에게 싸움과 같은[73]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 걸작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의 주인공이 아니라 창조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74],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은 인간의 활동을 초월한 곳에 있음을 지적한다[75]。
또한 욥이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욥은 하나님의 무상의 행위의 세계[76]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하고 알고 있다. 자연 현상을 보고 알고 있다.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다[77]。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을 부정한다. 동물은 분방하다[78]。 그리고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물러서는 욥에게 발언을 요구한다[79]。 그러나 욥은 자신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활동의 목적의 중심에 인간이 있지 않음을 이해하고 만족하며 물러난다[80]。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을 취할 것인지, 자신을 취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하나님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작은 존재인 욥이 창조물의 성격을 바꾸고 소멸시켜야 한다[81]는 모순이 있으며, 창조를 부정해야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격을 인간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베헤모스와 레비아탄이라는 가장 강한 짐승을 상징하는 (공상 속의) 동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각 동물의 성질과 이야기의 의의를 생각해 보면, (욥이 마주한) 혼돈과 재앙(을 가져오는 동물)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람이 뜻대로 되지 않는 재앙이 있지만, 세상은 재앙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욥은 하나님에게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새로운 발견이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며, 하나님께 한 자신의 실례를 깨닫고 티끌과 재 위에 엎드려 자신을 회개한다[82]。 욥의 불만은 사라졌다. 하나님의 정의도 재앙도, 무상의 사랑에 기인하여, 무상의 사랑 안에서 성립하고 있다.(「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2:10)라고 말한 욥의 옳음에 귀결된다.)
욥과 사탄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공통된 질문에 대해, 욥은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사온즉 또한 벌거벗은 채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87]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88]라고 다른 주장을 함으로써, 자신과 창조주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38장 이후의 여호와의 응답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며, 욥은 자신이 창조주에게 주어진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89].
욥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90], 고통 때문에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91], 엘리바스는 흙에서 재앙이 나오지 않는다고 욥의 주장을 부정하며[92], 지상적인 소망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해를 추구한다. 세 친구는 지상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욥에게 설교하지만, 세상의 상황은 인간의 선악의 결과라고 설명하며[93],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 속에서 죄를 찾으려고 한다(흙에 불과한 인간이, 자신을 자기 것으로 삼는 불행과 죄가 있다).
엘리후는 욥에게 언어는 격하지만, 욥과 세계관을 공유하며[94], 겸손하게 기다리라고 전하고[95], 불쌍한 자를 괴롭히지 말라[96]고 욥에게 전하며, 주를 기다린다.
욥의 주장인 "불행을 포함하여, 창조주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주어졌다"는 것[97]과, 세 친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을 자기 본위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드러나는 형태로, 창조주의 응답이 외삽되어 있으며, 최종적으로, 주께서 욥이 옳다고 세 친구에게 설명한다[98].
재산을 배로 받은 후, 욥은 흙으로 돌아가[99], 욥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주께 바쳐진다.
5. 문학적 특징
《욥기》는 평이한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며, 크게 산문조의 도입(1:1~2:13) 및 종결(42:7~42:17)과 히브리어 특유의 운문조의 논의(3:2~42:6) 두 부분으로 나뉜다. 원전은 마소라 본문이지만, 사해 문서와 차이점이 거의 없어 장기간 정확하게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문조와 운문조의 표현 방법 차이는 마소라 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산문에 사용되는 타아밈(억양 부호) 형식을 결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문학(《욥기》, 잠언, 시편)을 위한 타아밈에 대해서도 논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욥기》 집필에는 다수의 저술가가 참여했다고 결론짓는 연구도 나왔다.
문서에 불일치가 있어, 《욥기》는 복수의 별개 문서를 편집하여 작성된 것이 아닌가, 엘리후나 하나님의 현현은 후대의 추가 기록이 아닌가, 난해한 표현은 아람어 또는 셈어 등의 전사(轉寫)가 아닌가 등의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원래 복수의 문서였던 것을 모세 오경 시대부터 기원전 수 세기에 걸쳐 하나의 문서로 집대성된 것이 아닌가라고도 생각되고 있다.
또한 《욥기》에는 일반적으로 악마의 왕으로 여겨지는 사탄이 하나님(주) 앞에 나타나고 있다.
5. 1. 시적 언어와 표현
《욥기》는 평이한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산문조의 도입 (1:1~2:13) 및 종결 (42:7~42:17)
- 히브리어 특유의 운문조의 논의 (3:2~42:6)
원전은 마소라 본문이지만, 사해 문서와의 차이점은 거의 없어, 장기간에 걸쳐 정확하게 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산문조와 운문조의 표현 방법 차이는 마소라 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산문에 사용되는 타아밈(억양 부호)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문학(《욥기》, 잠언, 시편)을 위한 타아밈에 대해서도 논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욥기》의 집필에는 다수의 저술가가 관여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문서에 불일치가 있어, 《욥기》는 복수의 별개 문서를 편집하여 작성된 것이 아닌가, 엘리후나 하나님의 현현은 후세대의 추가 기록이 아닌가, 난해한 표현은 아람어 또는 셈어 등의 전사(轉寫)가 아닌가 등의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원래 복수의 문서였던 것을 모세 오경 시대부터 기원전 수 세기에 걸쳐 하나의 문서로 집대성된 것이 아닌가라고도 생각되고 있다.
5. 2. 대화체 구성
3장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는 대신",[20] 욥은 그의 잉태된 밤과 그의 탄생일을 슬퍼하며 죽음을 갈망하지만, "그것은 오지 않는다".[21]그의 세 친구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그리고 나아마 사람 소발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며 그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욥은 경멸으로 대답한다. 그의 방문객들은 "불쌍한 위로자들"이다.[22] 욥은 '의로운' 하나님이라면 그를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므로 고통 속에서의 인내는 불가능하며, 창조주는 그의 피조물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그렇게 큰 힘으로 그들을 대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욥의 응답은 히브리 성서에서 이스라엘 신학의 가장 급진적인 재진술 중 하나를 나타낸다.[23] 그는 서론에서 보여준 경건한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과도한 분노를 쏟는 하나님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본다.
욥은 그 다음 자신이 겪는 불의에서 하나님의 세상 통치로 초점을 옮긴다. 그는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벌하는 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암시하며, 불의한 자들은 가난하고 무력한 자들을 이용했고, 그들은 심각한 고난을 겪도록 방치되었다.[29]
5. 3. 비극적 요소와 극적 반전
욥기는 평이한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산문조의 도입 (1장 1절~2장 13절) 및 종결 (42장 7절~42장 17절)
- 히브리어 특유의 운문조의 논의 (3장 2절~42장 6절)
원전은 마소라 본문이지만, 사해 문서와의 차이점은 거의 없어 오랫동안 정확하게 전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문조와 운문조의 표현 방법 차이는 마소라 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산문에 사용되는 타아밈(억양 부호)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문학(욥기, 잠언, 시편)을 위한 타아밈에 대해서도 논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차이로 인해 욥기의 집필에는 다수의 저술가가 참여했다고 결론짓는 연구도 나왔다.
문서에 불일치가 있어, 욥기는 복수의 별개 문서를 편집하여 작성된 것이 아닌가, 엘리후나 하나님의 현현은 후대의 추가(追記)가 아닌가, 난해한 표현은 아람어 또는 셈어 등의 전사(轉寫)가 아닌가 등의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며, 원래 복수의 문서였던 것을, 모세 오경 시대부터 기원전 수 세기에 걸쳐 하나의 문서로 집대성된 것이 아닌가라고도 생각되고 있다.
또한 욥기에는 일반적으로 악마의 왕으로 여겨지는 사탄이 하나님(주) 앞에 나타나고 있다.
6. 해석의 다양성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비징벌적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욥기 저자는 욥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31]
- 고통은 인간이 창조자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1:21).
- 욥처럼 훌륭한 사람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할 만큼 겸손하지 못하다 (23:10).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40:8).
- 공정함과 의로움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창조주와 이에 오류가 있음을 제기하는 사탄과의 대결의 승패가 고난받는 한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1:9).
욥기는 마소라 본문, 칠십인역, 사해 문서 등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유대교 전례에서는 장례식과 애도 기간에 인용되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티샤 브아브 단식일에 욥기서를 공적으로 낭독한다.[38] 동방 정교회는 성주간에 욥기와 출애굽기를 읽으며, 욥을 구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본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조과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시간 전례에서 욥기서를 읽는다.[39]
욥기 속 인물 욥은 기원전 6세기에 쓰인 에스겔서에 고대 시대의 모범적인 의인으로 등장하며, 욥기의 저자는 이 전설적인 영웅을 자신의 비유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1]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이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쓰여졌으며, 기원전 6세기가 가장 유력한 시기라는 데 동의한다.
욥기, 전도서, 잠언은 지혜 문학 장르에 속하며,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이 세 권의 책은 태도와 가정은 공유하지만 결론에서 차이를 보인다. 잠언은 세상과 그 작용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욥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기록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올바른 삶의 모델로 제시했다.
일부 하자르의 미드라쉬에서는 욥이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와 동시대 인물이며, 파라오의 궁정에서 섬겼다고 한다. 『욥기』에서는 신의 창조 계획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므로, 의인의 고난이라는 문제는 이해 밖의 것으로 여겨진다.
람반은 욥이 윤회 사상을 시사하며, 그것이야말로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주석에서는 『욥기』가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며, 그 사상은 후반부의 자연계, 동물계 묘사에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욥기』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탈무드 안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가장 초기 시기로 추정하는 설에서는 욥이 살았던 시대를 족장 시대로 보고 있다.[100] 신과 사탄의 대화, 욥의 시련에 관한 양자의 합의, 그리고 욥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대단원의 장면은 액자 소설의 틀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욥기』에는 구약성서의 다른 서적에서는 보이지 않는 단어가 많아 어구를 정확하게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욥과 친구들 각자의 견해에서 보이는 모순점에 대해서, 『욥기』의 텍스트는 이야기의 연속성보다 주제의 논리성을 우선하여 재구성되었다고 일부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6. 1. 유대교 전통에서의 해석
욥은 제2 성전 시대(기원전 500년 ~ 서기 70년)에 인내와 굳건함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욥의 고통은 덕성의 시험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로움의 입증으로 여겨졌다.[31] 이러한 "성화" 과정은 그리스어 칠십인역 번역에서 시작되었고, 외경인 욥기 유언(기원전 1세기 ~ 서기 1세기)에서 욥을 인내의 영웅으로 묘사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36]신약성경의 야고보서는 욥을 믿는 자들이 본받아야 할 인내와 끈기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이러한 전통을 이어갔다. (야고보서 5:7–11).[36]
그리스도인들이 욥기 19:23–29[37]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속자"에 대한 희망을 담은 구절)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유대교의 주류적 관점은 "신성 모독자 욥"이 되었다. 일부 랍비들은 욥이 파라오가 무고한 유대인 아이들을 학살하는 동안 방관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37]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욥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기록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올바른 삶의 모델로 제시했다. 중세 유대 학자 마이모니데스는 그의 이야기를 비유로 선언했다.[37]
현대의 일부 하자르의 미드라쉬에서는 욥이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와 동시대 인물이며, 파라오의 궁정에서 섬겼다고 한다. 한편 탈무드에서는 그 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욥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우화에 불과하다"라는 전통적인 것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람반은 욥은 윤회 사상을 시사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주석에서는 욥기가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며, 그 사상은 후반부의 자연계, 동물계 묘사에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끼리의 논의를 거쳐서 신의 활동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인간은 신의 숭고함 앞에서 겸손하게 행동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욥기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탈무드 안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가장 초기 시기로 추정하는 설에서는 욥이 살았던 시대를 족장 시대로 보고 있으며, 그 외에는 사사 시대, 크세르크세스 시대를 들고 있다.[100]
6. 2. 기독교 전통에서의 해석
제2 성전 시대(기원전 500년 ~ 서기 70년)에 욥은 인내심과 굳건함이 강조되는 인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통은 덕성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의로움을 입증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36] 욥을 "성화"하는 과정은 그리스어 칠십인역(기원전 200년경) 번역에서 시작되었고, 외경인 욥기 유언(기원전 1세기 ~ 서기 1세기)에서 욥을 인내의 영웅으로 묘사하면서 더욱 발전했다.[36] 이러한 해석은 신약성경의 야고보서에서 이어져 욥을 믿는 자들이 본받아야 할 인내와 끈기의 모범으로 제시했다.(야고보서 5:7-11)[36]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욥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다고 기록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그를 존경받을 만한 올바른 삶의 모델로 제시했다. 중세 기독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욥기를 진정한 역사로 선언하는 상세한 주석을 썼다. 종교 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는 욥의 죄인됨과 무가치함에 대한 고백이 그의 성스러움의 근본이 되었다고 설명했고, 존 칼빈의 욥기 해석은 부활 교리와 궁극적인 신의 정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다.[37]
그리스도인들은 욥기 19:23–29[37]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속자"에 대한 희망을 담은 구절)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동방 정교회는 성주간에 욥기와 출애굽기를 읽는다. 출애굽기는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의 탈출, 구원 역사의 완성을 이해하도록 준비하고, 고난받는 자 욥은 구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9월 첫 2주 동안 조과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서 욥기서를 읽으며,[39] 개정된 시간 전례에서는 욥기서를 평범한 시기 제5, 12, 26주에 읽는다.
현대 로마 전례에서 욥기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읽힌다.
- 평범한 시기 제5, 12주 일요일 - ''해 B''
- 평범한 시기 제26주 평일 독서 - ''해 II 주기''
- 병자 성사 및 고별 성사 - ''첫 번째 독서'' 옵션
- 죽은 자를 위한 미사 - ''첫 번째 독서'' 옵션
욥은 사탄의 시련을 겪으며 고통 속에서 우울한 태도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혼돈으로 되돌리고 싶어하며), 죽음 외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세 친구는 엘리바스를 필두로 위로와 함께 인과율을 설파한다. 세 친구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사탄의 주장과 관련[64]되어 있으며, 신은 올바른 자에게 축복을 내리고 죄를 범한 자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방패 삼아, 원래의 처지로 돌아가기 위해 욥이 죄를 인정하고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욥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고, 무죄를 주장했다.
- 만약 욥이 죄를 인정하고 원래의 처지로 돌아가도록 기도했다면, 이익을 위한 신앙이며 사탄이 승리하게 된다.
- 혼돈으로 되돌리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탄은 승리를 선언하지 않았다. 여러 문서의 편집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형식적인 윤리가 주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또한, 친구들과의 논쟁 단계에서는 자신의 처지 변화에 대해 심리적으로 후퇴해 있으며, 받아들이는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친구들은 신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고 있으며, 그 심판에 의심을 품을 여지는 없다고 끈질기게 반복하며, 욥이 벌을 받은 이상 그는 분명히 어떤 죄를 범했으므로, 신과 화해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답이라고 타이른다. 또한, 신 앞에서는 올바른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각자가 그 죄에 따른 벌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욥은 신만이 파악하고 있는, 인식할 수 없는 죄까지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론한다.[65]
처음부터 욥은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탄의 시련과 친구들과의 논쟁을 계기로, 재앙과 죄를 쉽게 연관시키는 것에 의문을 품으면서, 신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는 단계까지 신앙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욥은 논쟁을 거쳐, 흙인 자신을 (무상으로) 속량할 분의 존재를 예고하고, 인과응보와 다른 세계관의 존재를 선언한다.[66]
엘리바스의 주장은 세 친구의 논쟁을 이끌었으며, 욥이 부유했던 것에 대해, 신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원래는 가난한 자의 소유물을 빼앗은 행위 때문이 아니냐고 단언한다.[67] 쌍방은 물러설 수 없는 지경까지 논쟁이 진행되었고, 한편으로 욥은 권력을 가지고 태어나 비도덕적으로 빼앗고 억압하는 자들에 의해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무죄한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24장의 가난한 자들의 상세함이 선명한 것은, 가난한 자들의 상황에 눈길이 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욥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친구들은 침묵한다.
- 【신약 성서와 빈곤·재난 및 사회 정의의 관련】
- 빈곤과 병고의 존재와 인과응보에 관한 친구들과의 논쟁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 및 유다가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아닌 정치적인 영광에 의한 구원을 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 예수는 적극적으로 빈곤과 비참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68]
- 사회 정의에 관해서는, 예수는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언급하고 있다.[69]
- 【신약 성서에서의 인과응보와 재앙에 대한 생각의 예】
- 인과응보에 의한 예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5:20)
- 그 사람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신을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5:25)
- 인과응보에 의하지 않은 예
- "랍비,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요한복음 9:2)
-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신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같은 9:3)
6. 3. 현대 신학적, 철학적 해석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비징벌적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저자는 욥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고통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1:21).
- 욥처럼 훌륭한 사람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할 만큼 겸손하지 못하다 (23:10).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비롯된다 (40:8).
- 공정함과 의로움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창조주와 이에 오류가 있음을 제기하는 사탄과의 대결의 승패가 고난받는 한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1:9).
욥기 속 인물 욥은 기원전 6세기에 쓰인 에스겔서에 고대 시대의 모범적인 의인으로 등장하며, 욥기의 저자는 이 전설적인 영웅을 자신의 비유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31]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책이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쓰여졌으며, 여러 이유로 기원전 6세기가 가장 유력한 시기라는 데 동의한다.
욥기, 전도서, 잠언은 지혜 문학 장르에 속하며,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지혜는 사고방식과 그러한 사고를 통해 얻은 지식의 집합을 의미하며, 이를 삶에 적용하는 능력도 의미한다. 지혜 문학에서 성경적으로 적용될 때, 지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외에는 완전히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세 권의 지혜 문학은 태도와 가정을 공유하지만 결론에서 차이를 보인다. 잠언은 세상과 세상의 작용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욥은 사탄의 시련을 겪으며 고통 속에서 우울한 태도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죽음 외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세 친구는 엘리바스를 필두로 위로와 함께 인과율을 설파한다. 세 친구의 주장은 사탄의 주장과 관련[64]되어 있으며, 신은 올바른 자에게 축복을 내리고 죄를 범한 자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방패 삼아, 욥이 죄를 인정하고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욥은 무죄를 주장했다.
친구들은 신이 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고 있으며, 그 심판에 의심을 품을 여지는 없다고 끈질기게 반복하며, 욥이 벌을 받은 이상 그는 분명히 어떤 죄를 범했으므로, 신과 화해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품고 기도하는 것이 답이라고 타이른다. 욥은 신만이 파악하고 있는, 인식할 수 없는 죄까지 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론한다.[65]
엘리바스의 주장은 세 친구의 논쟁을 이끌었으며, 욥이 부유했던 것에 대해, 신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원래는 가난한 자의 소유물을 빼앗은 행위 때문이 아니냐고 단언한다.[67] 욥은 권력을 가지고 태어나 비도덕적으로 빼앗고 억압하는 자들에 의해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무죄한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 신약 성서와 빈곤·재난 및 사회 정의의 관련
- 빈곤과 병고의 존재와 인과응보에 관한 친구들과의 논쟁은, 당시 유대교 지도자 및 유다가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아닌 정치적인 영광에 의한 구원을 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 예수는 적극적으로 빈곤과 비참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다.[68]
- 사회 정의에 관해서는, 예수는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언급하고 있다.[69]
- 신약 성서에서의 인과응보와 재앙에 대한 생각의 예
- 인과응보에 의한 예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사해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5:20)
- 그 사람은 즉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일어나,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신을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5:25)
- 인과응보에 의하지 않은 예
- "랍비,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요한복음 9:2)
- "본인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신의 일이 이 사람에게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같은 9:3)
- 일부 하자르의 미드라쉬에서는 욥은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와 동시대 인물이며, 파라오의 궁정에서 섬겼다고 한다.
- 『욥기』에서는, 신의 창조 계획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므로, 의인의 고난이라는 문제는 이해 밖의 것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 람반(랍비 모셰 벤 나흐만)의 견해에 따르면, 욥은 윤회 사상을 시사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된다고 한다.
- 다른 주석에서는, 『욥기』는 권선징악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동서의 본질이며, 그 사상은 후반부의 자연계, 동물계에 관한 묘사에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 『욥기』의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탈무드 안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가장 초기 시기로 추정하는 설에서는 욥이 살았던 시대를 족장 시대로 보고 있다.[100]
- 신과 사탄의 대화, 욥의 시련에 관한 양자의 합의, 그리고 욥이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보상을 받아들이는 대단원의 장면은 이른바 액자 소설의 틀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 『욥기』에는 구약성서의 다른 서적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구를 올바르게 확정할 수 없는 단어가 너무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 욥과 친구들 각자의 견해에서 보이는 모순점에 대해서, 『욥기』의 텍스트는 이야기의 연속성보다 주제의 논리성을 우선하여 재구성되었다고 일부 연구자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7. 한국 사회와 욥기
(이전 단계에서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내용을 생성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정할 내용도 없습니다.)
7. 1. 욥기와 정의로운 사회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비징벌적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결국 욥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고통은 인간이 창조주를 기억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이끈다.[1]
- 욥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 없을 만큼 겸손하지는 않다.[2]
- 인간이 창조주에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이 신보다 더 잘 알고 더 의롭다고 믿는 교만에서 시작된다.[3]
- 공정함과 의로움에 관하여 물러설 수 없는 창조주와 이에 오류가 있음을 제기하는 사탄과의 대결의 승패가 고난받는 한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4]
7. 2. 욥기와 위로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비징벌적 고난을 통해 인간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1] 저자는 욥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1]8. 영향
《욥기》는 서양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잠언, 전도서와 함께 지혜 문학 장르에 속하며,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1] 지혜는 사고방식과 그러한 사고를 통해 얻은 지식의 집합을 의미하며, 삶에 적용하는 능력도 의미한다. 성경에서 지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ছাড়া 완전히 얻을 수는 없다.[1]
잠언은 세상과 세상의 작용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2]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여러 텍스트는 욥기와 유사점을 보이며,[4] 욥기 저자가 이들 중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존재는 저자가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에 대한 오랜 성찰의 전통을 물려받았음을 시사한다.[5]
오를란도 디 라소는 1565년 Sacrae Lectiones Novem ex Propheta Iob|욥의 예언서에서 발췌한 9개의 신성한 독서la를 작곡했고,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1741년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욥기 19장 25절("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을 아리아로 사용했다.
《욥기》를 바탕으로 한 현대 작품으로는 랄프 본 윌리엄스의 ''욥: 춤을 위한 가면극'',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의 ''욥 칸타타'', 숄레 Aleichem의 테비에 더 데어리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조셉 스타인의 브로드웨이 각색작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이 있다.
8. 1. 예술


《욥기》는 서양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오를란도 디 라소는 1565년 Sacrae Lectiones Novem ex Propheta Iobla를 작곡했고,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1741년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욥기 19장 25절("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을 아리아로 사용했다.
《욥기》를 바탕으로 한 현대 작품으로는 랄프 본 윌리엄스의 ''욥: 춤을 위한 가면극'',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의 ''욥 칸타타'', 숄레 Aleichem의 테비에 더 데어리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조셉 스타인의 브로드웨이 각색작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이 있다. 닐 사이먼은 《욥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의 총애자''를 썼다. 브뤼헐과 조르주 드 라 투르는 욥이 아내의 방문을 받는 모습을 묘사했고, 윌리엄 블레이크는 욥기를 위해 삽화 연작을 제작했다. 이 이야기는 1939년 호주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욥에게 영감을 받았거나 영향을 준 작가로는 존 밀턴 (''삼손 아고니스테스''),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40], 알프레트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 프란츠 카프카 (''심판''), 칼 융 (''욥에 대한 답변''), 요제프 로트 (''욥''), 버나드 맬러머드, 엘리자베스 브루스터(《욥기 주석》) 등이 있다.[41] 아치볼드 맥클리쉬의 드라마 ''JB''는 195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1996)의 줄거리에는 욥기 구절이 등장한다.[42] 코엔 형제의 2009년 영화 ''심각한 남자''는 아카데미상 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43]
테렌스 맬릭의 2011년 영화 ''생명의 나무''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욥기의 주제에 큰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 역시 욥기에서 주제를 가져왔다.[44]
2014년 인도 말라얄람어 영화 ''이요빈테 푸스타캄''은 아말 니라드가 연출했으며,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슬픔의 시 (욥의 슬픈 노래)"는 조니 미첼의 15번째 스튜디오 앨범 ''터뷸런트 인디고''의 마지막 트랙이다.
2015년, 우크라이나 작곡가 로만 그리고리브와 일리야 라주메이코는 오페라-진혼곡 ''IYOV''를 창작했다. 오페라 초연은 2015년 9월 21일 국제 학제간 축제 고골페스트의 메인 무대에서 열렸다.[45]
ER 15번째 시즌 3화에서, 의사 애비 로크하트는 그녀와 남편 (루카 코바치 박사)이 이 시리즈를 영원히 떠나기 직전에 욥기 3장 23절의 구절을 인용한다.[46]
《굿 오멘스》 시즌 2에서, 욥과 그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47]
사우스 파크 에피소드 ''카트먼랜드''에서, 유대인인 카일 브로플로브스키는 심각한 믿음의 위기를 겪는다. 그의 부모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욥기를 읽어준다.[48]
코미디언 Norm Macdonald는 욥기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라고 불렀다.[49][50]
8. 2. 철학
잠언, 전도서와 함께 욥기는 지혜 문학 장르에 속하며, 이들은 "지혜의 길"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1] 지혜는 사고방식과 그러한 사고를 통해 얻은 지식의 집합을 의미하며, 이를 삶에 적용하는 능력도 의미한다. 지혜 문학에서 성경적으로 적용될 때, 지혜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부분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하나님 외에는 완전히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1]이 세 권의 지혜 문학은 태도와 가정을 공유하지만 결론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잠언은 세상과 세상의 작용에 대해 단호한 진술을 하지만, 욥기와 전도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2]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지혜 문학은 기원전 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3]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여러 텍스트는 욥기와 유사점을 보이며,[4] 욥기 저자가 이들 중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존재는 저자가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에 대한 오랜 성찰의 전통을 물려받았음을 시사한다.[5]
8. 3. 음악
《욥기》는 서양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목록은 대표적인 것 이상이다.[38] 욥기를 소재로 한 음악 작품은 다음과 같다.- 오를란도 디 라소의 1565년 모테트 연작, Sacrae Lectiones Novem ex Propheta Iob|욥의 예언서에서 발췌한 9개의 신성한 독서la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1741년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욥기 19장 25절("내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을 아리아로 사용.
이 책을 바탕으로 한 현대 작품은 다음과 같다.
- 랄프 본 윌리엄스의 ''욥: 춤을 위한 가면극''
-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의 ''욥 칸타타''
- 숄레 Aleichem의 테비에 더 데어리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조셉 스타인의 브로드웨이 각색작 ''지붕 위의 바이올린''
2015년, 우크라이나 작곡가 로만 그리고리브와 일리야 라주메이코는 오페라-진혼곡 ''IYOV''를 창작했다. 오페라 초연은 2015년 9월 21일 국제 학제간 축제 고골페스트의 메인 무대에서 열렸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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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현대에는 욥의 발언이 아닌 저자가 별도로 서술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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