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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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군사 기술 협력을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러시아의 대외 채무를 현물로 상환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1차 사업에서는 T-80U 전차, BMP-3 장갑차, 대전차 미사일 등이 도입되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의 2차 사업에서는 T-80U, BMP-3, 공기부양정, 헬기 등이 추가로 도입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은 러시아의 최신 무기 및 기술을 확보하고, 북한의 군사력을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며, 기술 재수출 제한 조항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제약이 발생하기도 했다.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무기 국산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러시아 경제 회복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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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곰사업 | |
---|---|
개요 | |
명칭 | 불곰사업 |
영문 명칭 | Brown Bear project |
사업 유형 | 국가 간 채무 대체 거래 |
사업 목표 | 대한민국의 대러시아 차관 상환 |
사업 내용 | 러시아의 군사 장비 및 기술 도입 |
사업 기간 | 1995년 ~ 2006년 |
배경 | |
소련 붕괴 후 러시아 경제난 | 소련 붕괴 후 러시아의 경제적 어려움 심화 |
대한민국의 대러시아 차관 | 대한민국의 대러시아 차관 회수 필요성 증대 |
주요 내용 | |
차관 상환 방식 | 러시아의 군사 장비 및 기술을 대한민국에 제공, 차관과 상계 |
도입 장비 | T-80U 전차 BMP-3 보병전투차 메티스-M 대전차 미사일 이글라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Ka-32 헬리콥터 |
평가 | |
긍정적 평가 | 대한민국 국군의 전력 증강에 기여 러시아의 선진 군사 기술 습득 기회 제공 대한민국의 국방 과학 기술 발전 촉진 |
부정적 평가 | 도입 장비의 유지 보수 문제 발생 러시아 의존적인 무기 체계 구축 우려 |
관련 문서 | |
관련 정보 | 한러 관계 국방 무기 거래 |
2. 배경
1985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취임한 이래로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개혁 정책과 서방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등 다변화된 외교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으로 1988년 소련이 88 서울 올림픽에 참여했고, 제6공화국 시절 북방 외교를 바탕으로 한층 더 발전된 관계로 한소 양국이 나아가면서 1990년 4월 제주도에서 초유의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수교를 맺게 되었다.
당시 고질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한국 정부에 30억달러 경협 차관을 요청하였으며, 노태우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은 소련에 경제 협력 차관으로 14.7억달러를 빌려주었다.[3][4]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상호 협상을 통해 양국 간 군사 협력을 추진했다. 1992년 12월 20일,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성명을 통해 양국 국방부 관료들과 해군 선박의 정기적인 방문을 약속했다.[5]
2. 1. 소련의 개혁·개방과 붕괴
1985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취임한 이래로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개혁정책과 서방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등 다변화 외교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으로 1988년 소련이 88 서울 올림픽에도 참여를 했고, 제6공화국 시절 북방외교를 바탕으로 한층 더 발전된 관계로 한소 양국이 나아가면서 1990년 4월 제주도에서 초유의 한・소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수교를 맺게 되었다.당시 고질적인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한국 정부에 30억달러 경협차관을 요청하였으며, 노태우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은 소련에 경제협력 차관으로 14.7억달러를 빌려주었다.[3][4]
2. 2. 대한민국-러시아 간의 사전 협상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서로 협상을 통해 양국의 군사 협력을 도모했다. 1992년 12월 20일,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성명을 통해 양국 국방부 관료들과 해군 선박의 정기적인 방문을 약속했다.[5]2. 3. 대한민국-러시아 관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5년 취임한 이후,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개혁 정책과 서방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등 다변화된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1988년 소련은 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고, 제6공화국 시절 북방 외교를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 1990년 4월 제주도에서 한국과 소련이 최초로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수교를 맺게 되었다.당시 고질적인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한국 정부에 30억달러 규모의 경협 차관[3]을 요청했으며, 노태우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은 소련에 경제 협력 차관으로 14.7억달러를 제공했다.[4]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상호 협상을 통해 양국 간 군사 협력을 추진했다. 1992년 12월 20일,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성명을 통해 양국 국방부 관료들과 해군 선박의 정기적인 방문을 약속했다.[5]
3. 조약 내용
1997년 11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총 12조로 구성된 한러 군사기술 분야 방산 및 군수 협력에 관한 협정안이 체결되었다.[6] 이 협정의 제8조는 러시아 기술이 사용되어 개발된 대한민국 무기의 경우 러시아의 서면 동의 없이는 제3국에 수출하거나 제공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3. 1. 제8조: 기술 이전 및 재수출 제한
1997년 11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체결된 한러 군사기술 분야 방산 및 군수 협력에 관한 협정안은 총 12조로 구성되어 있다.[6] 제8조는 "재수출시 의무" 조항으로, "각 당사국은 제공된 무기 및 군사장비를 타방 당사국의 서면 동의없이 제3국에 재수출할 수 없다"와 "각 당사국은 무기 및 군사장비 분야에 있어서 요청되고 공동으로 수행된 연구와 개발의 결과를 타방 당사국의 서면 동의 없이 제3국에 제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러시아 기술로 개발된 대한민국 무기는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수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가 신궁 및 천궁 미사일 지원을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거절한 이유 중 하나는 신궁과 천궁에 각각 9K38 이글라와 알마즈-안테이의 기술이 적용되어 협정 제8조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7]
4. 역사
불곰사업은 1991년 소련에 제공한 30억 달러의 차관 중 상환하지 못한 경협 차관 14.7억달러와 이자를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기술로 대신 상환받은 사업이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제1차 불곰사업이 진행되어 T-80U 전차, BMP-3 장갑차, Metis-M 대전차미사일,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등이 도입되었다.[8]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제2차 불곰사업으로 T-80U, BMP-3, Metis-M,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Il-103, Ka-32A, ANSAT 헬기 등이 도입되었다.[9]
2008년 이후 러시아는 현금과 현물 상환을 제안했으나, 양측의 의견 차이로 무산되었다. 2010년과 2013년에도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10][11]
4. 1. 제1차 불곰사업 (1995년 ~ 1998년)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되었다. 경협 차관 2.14억달러 상환으로, T-80U 전차 33대, BMP-3 장갑차 33대, Metis-M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70문 및 탄약 1250발,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발사기 50문 및 탄약 700발을 도입했다. 1차 불곰사업을 통해 총 2.1억달러의 차관이 상환되었다.[8]4. 2. 제2차 불곰사업 (2002년 ~ 2006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제2차 불곰사업이 진행되었다. 총 사업비는 5.34억달러였으며, 이 중 절반은 경협 차관 상환으로, 나머지 절반은 한국 정부가 현금으로 지급하였다.[9]2차 사업을 통해 T-80U 2대, BMP-3, Metis-M 발사기 156문, 탄약 11,500발,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3척, Il-103, Ka-32A, 러시아제 ANSAT 헬기 6대 등이 도입되었다.[9] 2차 도입분 BMP-3는 포수 조준경에 열영상 장비가 장착되어 야간 교전 능력이 강화되었으나, 1차 도입분의 개량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은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9]
4. 3. 2008년 이후
고유가 영향으로 2008년 러시아 경제에 여유가 생기자, 러시아는 현금과 현물로 상환하는 방향을 다시 제안해 왔다. 그러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무산되었고, 현물과 기술을 같이 도입하는 3차 불곰사업이 진행되었다. 2010년 11월 방위사업청장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3억 달러 규모의 가계약을 체결했다.[10] 2013년 11월에도 남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한러 정상회담까지 진행했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무산되었다.[11]5. 주요 도입 무기 및 장비
- T-80U
- BMP-3
- 카모프 Ka-32
- 일류신 Il-103
-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 9K115-2 METIS-M
- 9K38 이글라
6. 영향
불곰사업은 대한민국과 러시아 양국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군사적 측면: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군사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무기 개발 능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미국의 기술에 크게 의존했으며, 미사일 개발에도 제한을 받았다.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된 러시아제 무기들은 새로운 기술적 대안을 제시했으며, T-80U 전차, BMP-3 장갑차, 9K38 이글라 기반 신궁 미사일 등이 대표적이다.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무기 국산화에도 기여했다. T-80U의 기술은 K2 흑표 전차 개발에, BMP-3는 K-21 보병전투차량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북한의 주력 무기체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러 군사기술 협정 제8조에 따라 러시아 기술로 개발된 대한민국 무기는 러시아 동의 없이는 수출될 수 없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가 신궁 지원을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조항 때문이었다.[7]
러시아:1991년 소련 붕괴와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로 러시아 방위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위산업 통합 정책과 석유 가격 급등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방위산업도 성장했다.[29][30]
대한민국 항공업계에서는 불곰사업이 도산 위기의 카모프 사를 살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26] 카모프 사가 Ka-32A를 제공한 시기는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던 시기였다.[31] 따라서 카모프 사는 불곰사업보다는 러시아의 경제 정책 변화로 인한 혜택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경제적 측면:1990년 한・소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수교를 맺고, 소련은 한국에 30억 달러 경협차관[3]을 요청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14.7억달러를 빌려주었다.[4] 불곰사업은 소련이 진 빚을 러시아가 현물(무기)로 일부 상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곰사업을 통해 오리온 초코파이와 팔도 도시락이 러시아에 진출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39]
비판적 시각:대한민국은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있다.[38]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로 1차 불곰사업이 종료되었고, 서울경제는 북방외교의 부정적인 면으로 '국민의 쌈짓돈을 소련에 빌려주고 30년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림자'를 지적한다.[38]
외교적 측면:불곰사업으로 획득한 러시아제 무기는 북한의 무기 및 장비를 파악하는 데 기여했다.[24]
6. 1. 군사적 측면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군사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무기 개발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M48 패튼 개량 사업이나 K1 전차 개발 등에서 미국의 기술에 크게 의존했고, 이는 K1 전차 수출 시 미국의 통제를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13][14] 미사일 분야에서도 한미 미사일 지침에 의해 개발에 제한을 받았으며, 1990년대에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 필요성이 증대되었다.[15][16][17] 헬리콥터 역시 1950년대에 제작된 노후 기종이 1990년대까지 운용되어 신형 헬기 도입이 시급했다.[18][19]이러한 상황에서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된 러시아제 무기들은 대한민국에게 새로운 기술적 대안을 제시했다. 1차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T-80U 전차와 BMP-3 장갑차는 당시 최신 기종이었고,[20] 9K38 이글라를 기반으로 개발된 신궁 미사일 역시 대한민국의 대공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2차 불곰사업으로 도입된 일류신 Il-103은 대한민국 공군의 훈련기로 사용되었고, 카모프 Ka-32는 뛰어난 성능으로 대한민국 산림청 등 다양한 기관에서 활용되었다.[21][22][23]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무기 국산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T-80U의 고속 중성자 방어용 폴리에틸렌-붕소 감속재 기술은 K2 흑표 전차 개발에 적용되었고, BMP-3는 국방과학연구소의 K-21 보병전투차량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24] 또한,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적성국인 북한의 주력 무기체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T-80U, 9K38 이글라, BMP-3는 북한이 사용하던 소련제 무기를 기반으로 개발된 개량형이었기 때문이다.[24][25]
6. 1. 1. 대한민국
1997년 11월 20일 모스크바에서 체결된 한러 군사기술 분야 방산 및 군수 협력에 관한 협정은 총 12조로 구성되어 있다.[6] 이 협정 제8조는 "재수출시 의무" 조항으로, 제공된 무기 및 군사장비를 상대국의 서면 동의 없이 제3국에 재수출하거나, 공동 연구 개발 결과를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기술로 개발된 대한민국 무기가 러시아 동의 없이는 수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가 신궁 및 천궁 미사일 지원을 요청했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거절한 이유 중 하나는 신궁과 천궁이 각각 9K38 이글라와 알마즈-안테이의 기술을 적용받아 협정 제8조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7]
1차 불곰사업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경협 차관 2.14억달러 상환 명목으로 T-80U 전차 33대, BMP-3 장갑차 33대, Metis-M 대전차미사일 발사기 70문 및 탄약 1250발, 이글라 휴대용 대공미사일 발사기 50문 및 탄약 700발을 도입했다.[8] 총 2.1억달러의 차관 상환이 이루어졌다.
2차 불곰사업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되었고, 총 사업비는 5.34억달러였다. 사업비 절반은 경협 차관 상환, 나머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현금 지급이었다. 2차 사업으로 T-80U 2대, BMP-3, Metis-M 발사기 156문 및 탄약 11,500발,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3척, Il-103, Ka-32A 등이 도입되었다. 2차 도입분 BMP-3는 포수 조준경에 열영상 장비가 장착되어 야간 교전 능력이 강화되었지만, 1차 도입분의 개량은 동시에 진행되지 않았다. 러시아제 ANSAT 헬기 6대도 함께 도입되었다.[9]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된 주요 러시아 무기 및 장비는 다음과 같다:
- T-80U
- BMP-3
- 카모프 Ka-32
- 일류신 Il-103
- 무레나급 공기부양정
- 9K115-2 METIS-M
- 9K38 이글라
1970년대 닉슨 독트린의 영향으로 주한미군이 감축되자, 박정희는 미국의 M60 패튼 전차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M48 패튼과 그 개량형을 공급했다.[12] 대한민국은 노후화된 M-48을 K1 전차로 대체하는데 성공했고, 1980년대 미국 기술로 개발된 K1 전차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서, 독자 개발 가능한 차세대 전차가 대한민국 국방 산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M48 개조사업과 K1 전차 모두 미국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K1 전차 수출 시도 시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에 직면했다.[13][14]
미사일의 경우, 1979년 체결된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탄두중량 500kg, 사거리 180km로 제한되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1990년대부터 전방 부대 보호를 위한 미사일 개발 필요성이 대두되어 1995년부터 LIG 넥스원 주도로 미사일 개발이 시작되었다.[15]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이 보유한 미사일은 미국에서 1950년대에 개발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에 기반한 것이었다.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에 입각해 동맹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려 했다.
헬리콥터의 경우, 벨 UH-1 이로쿼이처럼 1950년대에 제작된 헬리콥터가 1990년대 여전히 운용 중이었으며,[18] 벨 206과 같은 노후 기종이 다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에는 헬기 추락 사고가 잦아 신형 헬기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19]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기술에 의존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1990년대 후반부터 자국 기술로 무기를 생산하는 중간 시기에 시행되었다. 1차 불곰사업 때 들어온 T-80U[20]나 BMP-3는 각각 1986년과 1987년에 개발된 최신 기갑차량이었으며, 신궁 미사일의 원형인 9K38 이글라 SA-18 역시 1983년에 개발된 미사일이었다. 2차 불곰사업 때 들어온 일류신 Il-103은 미국의 세스나 T-41 메스칼레로를 대체하고 대한민국 공군의 훈련기로 채택되었다.[21] "일류신 Il-103"이 정식 명칭이지만 대한민국 기체 명명법에 따라 T-103으로 부른다.[22] 카모프 Ka-32는 우수한 물자 수송 능력과 악천후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대한민국 산림청을 비롯한 대한민국 군과 정부 여러 기관이 도입했다.[23]
결론적으로, 불곰사업은 대한민국 정부의 신형 무기 및 기술에 대한 수요를 일부 충족시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무기 국산화 사업에 영향을 준 사업이었다. T-80U의 고속 중성자 방어용 폴리에틸렌-붕소 감속재 기술은 이후 K2 흑표 전차에 적용되었고, BMP-3는 국방과학연구소의 K-21 기획 및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24]
또한,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적성국인 북한의 무기 및 장비의 일정 부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사업이었다.[24] 불곰사업 때 들어온 러시아제 무기나 장비 중 9K38 이글라를 제외하면 북한이 쓰는 무기와 동일한 무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들여온 T-80U, 9K38 이글라, BMP-3는 모두 북한에서 사용 중이던 소련제 주력 무기가 원형이었다. T-80U는 T-64에 기초하여 T-72의 상호 보완적인 구조를 덧붙인 T-80이 원형이며, BMP-3는 BMP-1의 단점을 개선시키기 위해 개발된 BMP-2의 상향 버전이다.[25] 9K38 이글라는 대한민국은 9K38 이글라(SA-18), 북한은 9K38 이글라(SA-16)을 썼지만, 두 미사일의 탄두, 무게, 발사 방식, 퓨즈, 목표 탐색 방식, 목표 접근 속도 등은 모두 동일하다.
6. 1. 2. 러시아
1991년 소련 붕괴와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로 러시아는 국가부도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전투기, 헬기, 전차 등을 생산하는 러시아 방위산업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항공 산업은 수입으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항공우주산업과 자동차산업은 높은 보호관세 덕분에 간신히 유지되었다.[27] 1998년에는 민항기가 56대만 생산되었고, 2000년에는 단 4대만 생산될 정도로 민간 항공 산업은 심각한 침체를 겪었다.[28]
2000년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회사들을 분야별로 통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1998년부터 석유 가격 급등과 수출 증가로 러시아 경제가 회복되면서 방위산업도 함께 성장했다.[29][30]
대한민국 항공업계에서는 불곰사업이 도산 위기에 처했던 카모프 사를 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26] 하지만 카모프 사가 Ka-32A를 제공한 시기는 2차 불곰사업 기간인 2002년부터 2006년/2007년 사이로, 이 시기는 푸틴 대통령이 '내셔널 챔피언즈' 육성을 위해 기업 통합을 추진하던 때였다.[31] IMF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의 명목 GDP, 1인당 GDP, 구매력평가 기준 GDP가 모두 상승하고 실업률과 정부 부채는 꾸준히 감소했다.[32] 또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의 무기 수출량도 꾸준히 증가했다.[33][34]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러시아는 미사일, 생물학, 화학, 핵 및 이중 사용 관련 품목에 대한 통제 목록을 개발하고 수출 규제 규정을 발표하여[35] 러시아산 무기의 외부 유출을 통제하려 했다. 따라서 카모프 사는 불곰사업보다는 러시아의 경제 정책 변화로 인한 혜택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6. 2. 경제적 측면
1985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취임한 이래로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개혁정책과 서방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는 등 다변화 외교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으로 1988년 소련이 88서울올림픽에도 참여했고, 제6공화국 시절 북방외교를 바탕으로 한층 더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면서 1990년 4월 제주도에서 한・소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수교를 맺게 되었다.당시 고질적인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한국 정부에 30억 달러 경협차관[3]을 요청하였으며, 노태우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14억 7천만 달러를 빌려주었다.[4] 2008년 고유가로 러시아 경제에 여유가 생기자, 현금과 현물로 상환하는 방향을 제안했으나 의견차이로 무산되었고, 현물과 기술을 같이 도입하는 3차 불곰사업이 진행되었다. 2010년 11월 방위사업청장은 3억 달러 규모의 가계약을 체결했다.[10] 2013년 11월에도 남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한러 정상회담까지 진행했으나, 의견 차이로 무산되었다.[11]
6. 2. 1. 비판적 시각
불곰사업은 기본적으로 소련이 진 빚을 러시아가 현물로 일부 상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현재까지도 빚 상환을 두고 러시아와 협의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한민국 정부가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불곰사업을 IMF와 연관짓기도 한다.[38]IMF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 이전까지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매우 높았고, 실업률 또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연간 8% 상승했는데, 이는 1990년대 초반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열악했음을 보여준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러시아의 신용등급이 BB-에서 SD까지 떨어진 점도 러시아의 경제 지표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제1차 불곰사업이 종료된 이유 역시 1998년 8월 러시아가 국가부도를 선언하며 지불유예를 선언한 1998년 러시아 금융 위기 때문이었다. 서울경제에서는 북방외교의 부정적인 면으로 '국민의 쌈짓돈을 소련에 빌려주고 30년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림자도 낳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8]
6. 2. 2. 긍정적 시각
불곰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기업인 오리온의 초코파이와 팔도의 도시락이 물물교환 형식으로 러시아에 진출했다. 이 상품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어 2020년대까지 러시아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초코파이와 도시락의 주 생산업체인 오리온과 팔도는 러시아에서 철수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들 제품의 높은 인기 때문이다.[39] 팔도와 오리온 외에도 농심, 롯데그룹 등 식품유통기업과 삼성, 현대자동차, 기아와 같은 비식품 산업 기업도 러시아에 진출해 있다.
6. 3. 외교적 측면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6. 3. 1. 대북 관계
불곰사업을 통해 획득한 러시아제 무기나 장비는 대한민국의 적성국인 북한의 무기 및 장비를 파악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24] 대한민국이 도입한 T-80U, 9K38 이글라, BMP-3는 모두 북한에서 사용 중이던 소련제 주력 무기가 원형이었다. T-80U는 T-64를 바탕으로 T-72의 구조를 더한 T-80이 원형이며, BMP-3는 BMP-1의 단점을 개선한 BMP-2의 상향 버전이다.[25] 9K38 이글라의 경우, 대한민국은 9K38 이글라(SA-18)를, 북한은 9K38 이글라(SA-16)을 사용했지만 두 미사일의 탄두, 무게, 발사 방식 등은 모두 동일하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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