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줄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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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줄레주는 아랍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광택이 나는 돌'을 의미하며, 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장식용 타일을 지칭한다. 이슬람 건축의 젤리 모자이크에서 시작되어, 15세기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전하며 다양한 기법과 양식을 거쳤다. 17세기에는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 황금기'를 맞이하여 바로크 양식이 유행했으며, 18세기에는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19세기에는 산업화와 함께 다양한 기법이 등장했고, 20세기에는 아르 누보, 아르데코 양식의 아줄레주가 나타났다. 현재는 건축, 인테리어, 예술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특히 리스본 지하철에서 현대 아줄레주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아줄레주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며, 훼손 및 도난의 위험에 처해 있어 보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줄레주는 아랍어 الزليجar ()에서 파생된 단어로, "광택이 나는 돌"을 의미하는 ''zellij''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비잔틴과 로마 모자이크를 모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5]
2. 역사
13세기 세비야는 히스파노-무어 타일 산업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 초기 ''아줄레주''는 ''알리카타도스''(에서 유래)[6][7]라고 알려진 타일 모자이크 패널이었으며, 이슬람 건축에서는 ''젤리''라고 알려져 있다.[8] 이 타일들은 단색 유약을 칠하고 기하학적 모양으로 잘라 기하학적 패턴을 형성하도록 조립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러한 예시를 볼 수 있다.[9] 이 전통은 스페인의 무데하르 건축에서 한동안 지속되었으며(예: 세비야 알카사르의 14세기 부분), 오늘날까지 모로코에서 이어지고 있다.[11]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세비야는 ''쿠엔카''( "hollow" - 움푹 들어간) 또는 ''아리스타''( "ridge"- 능선) 타일의 중요한 생산 중심지가 되었다.[13][12][7] 이 기술은 이전의 ''쿠에르다 세카'' 기술과 유사했지만 대량 생산에 더 효율적이었다.[7][12][14] 1503년 세비야를 방문한 마누엘 1세는 이 기술을 포르투갈에 도입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무어의 ''공포의 공간''('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전통을 채택하여 벽을 ''아줄레주''로 완전히 덮었다.
16세기 초, 이탈리아 도공들이 세비야에 작업장을 열면서 ''마이올리카'' 기법을 도입했다. 프란시스코 니쿨로소는 세비야에 정착한 최초의 이탈리아 도공이었다.[18] 16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은 해외 수입에 의존했고, 마르찰 드 마토스와 프란시스코 드 마토스 등이 주요 장인으로 활동했다. 16세기 말에는 ''체크 무늬'' 아줄레주가 넓은 표면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에는 아줄레주가 대량 생산되면서 '아줄레주 황금기'를 맞이했다. 수평의 반복적인 다색 타일 패턴, ''알바라다스'' 모티프, ''aves e ramagens''('새와 나뭇가지') 구성 등이 유행했다. 17세기 후반, 가브리엘 델 바르코 이 미누스카는 네덜란드 델프트의 청백색 타일을 포르투갈에 도입했다.
18세기에는 로코코 양식의 작고 섬세한 패널이 선호되었으며, 1755년 리스본 지진 이후에는 퐁발 양식의 실용적인 아줄레주가 사용되었다. 신고전주의 디자인도 나타났다.
19세기에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생산이 침체되었다가, 브라질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산업화된 생산이 시작되었다. 전사 인쇄 방식이 사용되었고, 수작업 타일 그림도 계속되었다.
20세기에는 아르 누보, 아르 데코 양식의 아줄레주가 등장했다. 조르제 콜라소의 상 벤투 기차역 장식, 마리아 케일의 리스본 지하철역 장식 등이 대표적이다.
2. 1. 13세기 ~ 15세기: 초기 발전과 이슬람의 영향
초기 아줄레주는 이슬람 건축에서 ''젤리''라고 알려진 타일 모자이크 패널인 ''알리카타도스''(alicatados)였다.[6][7][8] 타일은 단색으로 유약을 칠하고, 기하학적 패턴을 형성하도록 조립되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러한 초기 아줄레주의 많은 예를 볼 수 있다.[9] 이러한 전통은 스페인의 무데하르 건축에서 한동안 지속되었으며(예: 세비야 알카사르의 14세기 부분), 오늘날까지 모로코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11]
세비야는 히스파노-무어 타일 산업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13]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세비야는 ''쿠엔카''(cuenca) 또는 ''아리스타''(arista)라고 알려진 타일의 중요한 생산 중심지가 되었다.[12][7] 이 기술에서는 금속 또는 나무 틀을 굽지 않은 타일 위에 눌러서 모티프를 형성했는데, 타일에 얇은 점토 능선이 생겨 굽는 동안 서로 다른 색상이 번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는 이전의 ''쿠에르다 세카'' 기술과 유사했지만 대량 생산에 더 효율적이었다.[7][12][14] 이러한 타일의 모티프는 ''젤리'' 모자이크 전통에서 이전의 이슬람 및 무데하르 디자인을 모방하거나, 고딕 미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같은 동시대 유럽의 영향을 혼합했다.[12][7][15]
1503년 세비야를 방문한 후, 마누엘 1세는 동일한 기술을 포르투갈에 도입했다. 이 기술은 벽에 적용되었으며, 신트라 국립 궁전의 아랍 방(마누엘 1세의 상징인 혼천의가 있는 유명한 ''쿠엔카'' 타일 포함)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닥 포장에도 사용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무어의 ''공포의 공간''('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전통을 채택하여 벽을 ''아줄레주''로 완전히 덮었다.
2. 2. 16세기: 르네상스와 다양한 기법의 발전
16세기 초, 이탈리아 도공들이 세비야로 와서 작업장을 열면서 마욜리카 기법을 도입했다. 이 기법은 예술가들이 더 많은 수의 구상 주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란시스코 니쿨로소는 1498년 세비야에 정착한 최초의 이탈리아 도공이었으며,[18] 그의 작품은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아줄레주는 우화, 신화적 장면, 성인들의 삶, 성경의 장면, 사냥 장면 등을 묘사한 다색 타일 패널이었다. 매너리즘과 그로테스크 스타일도 아줄레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은 해외 수입에 의존했는데, 대부분 스페인에서 수입했다. 에보라에 있는 프란시스코 니쿨로소의 ''수태고지''와 빌라 비시오사(알렌테주)의 파소 두칼에 있는 얀 보게르츠의 두 패널 등이 그 예이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주요 장인 중 한 명은 마르찰 드 마토스였는데, 그는 퀸타 다 바칼로아(아제이탕)의 ''수산나와 장로들''(1565)과 리스본의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에 있는 ''목자들의 경배''를 제작했다.[19] ''성 로크의 기적'' (리스본의 상 로케 교회)은 최초의 포르투갈 아줄레주 구성(1584년)으로, 마르찰 드 마토스의 조카이자 제자였을 가능성이 있는 프란시스코 드 마토스의 작품이다. 이들은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르네상스와 매너리스트 회화 및 판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16세기 아줄레주(''아줄레주 히스파노-무리스코'')의 훌륭한 컬렉션은 포르투갈 베자의 Museu da Rainha D. Leonor에서 볼 수 있다.
16세기 말에는 ''체크 무늬'' 아줄레주가 교회와 수도원과 같은 넓은 표면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대각선으로 배치된 흰색 타일은 파란색 사각형 타일과 좁은 테두리 타일로 둘러싸였다.
2. 3. 17세기: 황금기와 바로크 양식
17세기는 '아줄레주 황금기'로 불리며, 아줄레주가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이 시기에는 대각선 타일 대신 수평의 반복적인 다색 타일 패턴이 사용되었고, 장미와 동백꽃(때로는 화환)을 엮은 매너리즘 도면을 활용한 새로운 디자인이 나타났다. 예수나 성인의 생애를 묘사한 삽입된 기원(祈願) 타일은 프리즈와 테두리로 정교하게 틀을 잡은 카펫 구성(''azulejo de tapete'')으로 제작되었으며, 포르투갈 에보라의 살바도르 교회, 오브랄 드 몬테 아그라수의 S. 퀸티노 교회, 포르투갈 쿠바의 S. 비센테 교회, 코임브라 대학교 예배당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귀중한 제단 덮개를 모방하여 제단 앞면을 장식하기 위해 ''아줄레주''를 사용하는 것은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패널은 한 조각으로 되어 있거나 두세 부분으로 구성될 수 있었으며, 16, 17, 18세기에 사용되었다. 17세기의 일부 제단 앞면은 동양 직물(칼리코, 친츠)을 모방했고, 제단 덮개의 금색 술은 칠해진 테두리 타일의 노란색 모티프로 모방되었다. 리스본의 산타 마르타 병원, 알모스터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 및 부사쿠의 산타 크루스 수도원에서 훌륭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새, 돌고래 또는 푸티가 양쪽에 있는 꽃병, 이른바 ''알바라다스''라는 또 다른 모티프가 프리즈에 도입되었다. 이들은 아마도 얀 브뤼헐 더 elder와 같은 플랑드르 꽃병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에는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지만, 18세기에는 반복적인 모듈로 사용되었다.
1650년에서 1680년 사이에는 ''aves e ramagens''('새와 나뭇가지')라고 불리는 또 다른 유형의 아줄레주 구성이 유행했다. 이들은 인도에서 수입된 인쇄된 직물에 있는 표현의 영향을 받았는데, 힌두교 상징, 꽃, 동물 및 새를 포함했다.
17세기 후반, 스페인 예술가 가브리엘 델 바르코 이 미누스카는 네덜란드 델프트의 청백색 타일을 포르투갈에 도입했다. 암스테르담의 얀 반 오르트와 빌렘 판 데르 클로트의 작업장은 부유한 포르투갈 고객들을 위해 역사적인 장면을 담은 대형 타일 패널을 제작했는데, 리스본 벤피카의 마르케스 다 프론테이라 궁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국왕 페드루 2세가 1687년에서 1698년 사이에 모든 ''아줄레주'' 수입을 중단하면서 가브리엘 델 바르코의 작업장이 생산을 맡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마지막으로 대규모 생산된 것은 1715년에 납품되었다. 곧, 학문적으로 훈련받은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대형 수제 청백색 형상 타일이 반복적인 패턴과 추상적인 장식에 대한 이전의 취향을 대체하면서 지배적인 유행이 되었다.
2. 4. 18세기: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양식
1740년대에 포르투갈 사회의 취향은 기념비적인 내러티브 패널에서 로코코 양식의 작고 섬세하게 제작된 패널로 바뀌었다. 이러한 패널은 프랑스 화가 앙투안 와토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기사도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를 묘사한다. 훌륭한 예로는 리스본 카르니데의 메스퀴텔라 공작 궁전의 정면과 정원, 그리고 켈루스 국립 궁전의 ''Corredor das Mangaspt''(망가스 회랑)가 있다. 대량 생산된 타일은 우세한 다색 불규칙 쉘 모티프를 가진 더 전형적인 디자인을 얻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리스본 재건은 ''아줄레주''를 사용한 장식의 더 실용적인 역할을 낳았다. 이 단순하고 기능적인 스타일은 국가 재건을 책임졌던 퐁발 후작의 이름을 따서 퐁발 양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작은 종교적인 ''아줄레주'' 패널이 미래의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건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단순하고 섬세한 신고전주의 디자인이 더 차분한 색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제는 로버트와 제임스 아담스의 판화에 의해 포르투갈에 도입되었다. 마스터 디자이너 세바스티앙 이나시오 데 알메이다와 화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이 올리베이라가 있는 ''Real Fábrica de Louça do Rato''는 이 시기에 특징적인 소위 ''Rato'' 타일의 중요한 제조업체가 되었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타일 화가는 프란시스코 호르헤 다 코스타였다.
2. 5. 19세기: 산업화와 다양한 기법의 등장
19세기 전반기에는 나폴레옹 전쟁과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장식 타일 생산이 침체되었다.[1] 1840년경 브라질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포르투에서 산업화된 생산이 시작되자, 포르투갈인들은 집의 정면을 ''아줄레주''로 장식하는 유행을 따랐다.[1] 이러한 공장들은 한두 가지 색상으로 된 부조 타일을 생산하는 동안, 리스본 공장들은 청백색 또는 다색 ''아줄레주''에 전사 인쇄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 19세기 말에는 리스본 공장들이 크림웨어 블랭크를 사용하여 또 다른 유형의 전사 인쇄를 사용했다.[1]
이러한 산업화된 방식은 단순하고 양식화된 디자인을 생산했지만, 마누엘 조아킴 데 헤수스와 특히 루이스 페레이라가 적용한 수작업 타일 그림의 예술은 사라지지 않았다.[1] 루이스 페레이라는 리스본 공장 비우바 라메고의 감독이었으며, 이 공장의 정면 전체를 우화적인 장면으로 덮었다.[1] 그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적용하여 꽃병, 나무, 우화적인 인물이 있는 ''Ferreira das Tabuletas''로 알려진 패널을 제작했다.[1] 이 수작업 패널은 19세기 말의 절충주의적 낭만주의 문화의 훌륭한 예이다.[1]
2. 6. 20세기: 아르누보, 아르데코와 현대 미술
20세기 초, 아르 누보 양식의 아줄레주가 라파엘 보르달루 피네이루, 줄리우 세자르 다 실바, 조제 안토니오 조르제 핀토와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했다.[1] 1885년, 라파엘 보르달루 피네이루는 칼다스 다 라이냐에 세라믹 공장을 설립하여, 그곳에서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많은 도자기 디자인을 만들었다.[1] 그는 이 공장에 자신의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 특히 장식용 접시와 풍자적인 석상("제 포비뉴"(Zé Povinho))을 전시한 산 라파엘 박물관을 만들었다.[1]
1930년대에는 아르 데코 양식의 아줄레주가 주요 예술가인 안토니오 코스타와 함께 등장했다.[1] 조르제 콜라소가 제작한 상 벤투 역 현관의 2만 개 아줄레주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장식은 역사적 주제를 낭만적인 '그림 엽서' 스타일로 보여주는 20세기의 가장 주목할 만한 아줄레주 창작물 중 하나이다.[1] -- 산투 일데폰소 교회와 콩그레가두스 교회의 외관 또한 호르헤 콜라소의 예술적 기량을 보여준다.[1] 이 시대의 다른 예술가로는 1912년 카르모 교회의 측면 외관을 장식한 마리오 브랑코와 실베스트르 실베스트리, 그리고 포르투에서 18세기의 스타일을 모방한 알마스 예배당에서 작업한 에두아르두 레이테가 있다.[1]
20세기 예술가로는 호르제 바르라다스, 카를루스 보텔료, 호르제 마르틴스, 사 노게이라, 메네즈, 파울라 레고가 있다.[1] 마리아 케일은 리스본 지하철의 처음 19개 역(1957년~1972년)에 대형 추상 패널을 디자인하여, 쇠퇴했던 ''아줄레주'' 예술의 부활과 현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1] 그녀의 ''인텐덴테'' 역 장식은 현대 타일 아트의 걸작으로 꼽힌다.[1]
리스본 지하철의 거의 모든 역에는 아줄레주 타일이 설치되어 있다.[1] 처음에는 지하철 시스템 건축가인 프란시스쿠 케일 두 아마랄의 아내인 화가 마리아 케일이 지하철 역을 위한 작품을 제작했다.[1] 1988년에 완공된 새로운 확장 공사에는 롤란두 드 사 노게이라, 줄리오 포마르, 마누엘 카르갈레이루, 마리아 엘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등 더 현대적인 포르투갈 예술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었다.[1]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신설 및 개조된 역을 장식하기 위해 위촉되었다.[1]
리스본 지하철 역의 아줄레주 장식은 다음과 같다.
역 | 노선 | 예술가 및 완성 연도 |
---|---|---|
알라메다 | 녹색 | Maria Keil, 1972, & Noronha da Costa,1998 |
알라메다 | 빨간색 | Costa Pinheiro, Alberto Carneiro, & Juahana Bloomstedt, 1998 |
알포르넬로스 | 파란색 | 아나 비디갈 (Ana Vidigal), 2004 |
알투스 두스 모이뇨스 | 파란색 | Júlio Pomar, 1988 |
알발라드 | 녹색 | Maria Keil, 1972, Bela Silva, 2006, & Maria Keil, 2007 |
아마도라 에스테 | 파란색 | 그라사 모라이스 (Graça Morais), 2004 |
아메이쇼에이라 | 노란색 | Irene Buarque, 2004 |
안조스 | 녹색 | Maria Keil, 1966 & Rogério Ribeiro, 1982 |
아레이루 | 녹색 | Maria Keil, 1972 & Júlia Ventura, 2013 |
아로이오스 | 녹색 | Maria Keil, 1972 |
아베니다 | 파란색 | Rogério Ribeiro, 1959, 1982 |
바이샤-시아두 | 파란색, 녹색 | Ângelo de Sousa, 1998 |
벨라 비스타 | 빨간색 | Querubim Lapa, 1998 |
카부 루이부 | 빨간색 | David de Almeida, 1998 |
카이스 두 소드레 | 녹색 | António Dacosta, 1998 & Pedro Morais, 1998 |
캄푸 그란데 | 노란색, 녹색 | Eduardo Nery, 1993 |
캄푸 페케누 | 노란색 | Maria Keil, 1959, 1979, & Francisco Simões, 1994 |
카르니드 | 파란색 | José de Guimarães, 1997 |
첼라스 | 빨간색 | Jorge Martins, 1998 |
시라데 우니베르시타리아 | 노란색 | Manuel Cargaleiro (1940년 비에이라 다 실바의 그림을 아줄레주로 옮김), 1988 |
콜레지오 밀리타르/루스 | 파란색 | Manuel Cargaleiro, 1988 |
엔트레 캄푸스 | 노란색 | Maria Keil, 1959, 1973, & Bartolomeu Cid dos Santos, 1993, & José de Santa Bárbara, 1993 |
인텐덴테 | 녹색 | Maria Keil, 1966 e 1977 |
자르징 동물원 | 파란색 | Maria Keil, 1959 & Júlio Resende, 1995 |
라란제이라스 | 파란색 | Rolando Sá Nogueira (페르난도 콘두토와 협업), 1988 |
루미아르 | 노란색 | António Moutinho, Marta Lima, & Susete Rebelo, 2004 |
마르케스 데 폼발 | 노란색, 파란색 | 메네스, 1995, Maria Keil, João Cutileiro, & Charters de Almeida, 1995 |
마르팀 모니즈 | 녹색 | Maria Keil, 1966, & Gracinda Candeias, 1997, & José João Brito, 1997 |
모스카베데 | 빨간색 | Manuel Bastos, 2012 |
올리바이스 | 빨간색 | Nuno de Siqueira & Cecília de Sousa, 1998 |
오리엔테 | 빨간색 | António Ségui, Artur Boyd, Errö, Hundertwasser, Yayoi Kusama, Joaquim Rodrigo, Abdoulaye Konaté, Sean Scully, Raza, Zao Wou Ki, & Magdalena Abakanowicz, 1998 |
파르크 | 파란색 | Maria Keil, 1959 & Françoise Schein, 1994 & Federica Matta, 1994 & João Cutileiro, 1995 |
피코스 | 노란색 | Maria Keil, 1959, 1982, & Martins Correia, 1995 |
폰티냐 | 파란색 | Jacinto Luís, 1997 |
프라사 데 에스파냐 | 파란색 | Maria Keil, 1959, 1980 |
퀸타 다스 콘차스 | 노란색 | Joana Rosa, 2004 & Manuel Baptista, 2004 |
라투 | 노란색 | Vieira da Silva (Manuel Cargaleiro가 아줄레주로 옮김), & Arpad Szènés, 1997 |
헤스타우라도레스 | 파란색 | Maria Keil, 1959, 1977, Luiz Ventura, 1994, Nadir Afonso & Lagoa Henriques, 1998 |
로마 | 녹색 | Maria Keil, 1972, Lourdes de Castro & René Bertholo, 2006 |
호시우 | 녹색 | Maria Keil, 1963 & Artur Rosa & Helena Almeida, 1998 |
살다냐 | 빨간색, 노란색 | Almada Negreiros (José Almada Negreiros가 옮김), 2009, Maria Keil, 1959, 1977, Jorge Vieira, 1996, 1997, Luis Filipe de Abreu, 1996, 1997 |
산타 아폴로니아 | 파란색 | José Santa-Bárbara, 2007 |
상 세바스티앙 | 파란색, 빨간색 | Maria Keil, 1959, 1977, 2009 & Catarina Almada Negreiros, 2009 & Rita Almada Negreiros, 2009 |
세뇨르 루바두 | 노란색 | José Pedro Croft, 2004 |
텔레이라스 | 녹색 | Eduardo Batarda, 2002 |
테레이루 두 파수 | 파란색 | João Vieira, 2007 |
아줄레주는 이슬람의 기하학적 무늬, 르네상스 회화,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아르 누보, 현대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아 다채로운 디자인을 표현한다.
3. 주요 특징
초기 아줄레주는 이슬람 건축에서 유래한 ''젤리'' 모자이크 패널 형태였으며, 단색 유약을 칠한 타일을 기하학적 모양으로 잘라 조립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러한 양식을 볼 수 있다.[9] 세비야 알카사르의 14세기 부분과 같이 스페인의 무데하르 건축에서도 이 전통이 이어졌다.[11]
16세기 초, 이탈리아 도공들이 세비야로 와서 마욜리카 기법을 도입하면서, 대부분의 아줄레주는 우화, 신화적 장면, 성인들의 삶, 성경의 장면, 사냥 장면 등을 묘사한 다색 타일 패널이었다.[18] 매너리즘과 그로테스크 스타일도 아줄레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말에는 ''체크 무늬'' 아줄레주가 교회와 수도원과 같은 넓은 표면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에는 포르투갈 산타렝의 산타 마리아 데 마르빌라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다색 타일(''enxaquetado rico'')로 대체되었다.
제단 앞면을 장식하기 위해 ''아줄레주''를 사용하는 것은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17세기에는 동양 직물(칼리코, 친츠)을 모방한 제단 앞면도 나타났다. 리스본의 산타 마르타 병원 등에서 훌륭한 예시를 볼 수 있다.
17세기 후반, 가브리엘 델 바르코 이 미누스카는 네덜란드 델프트의 청백색 타일을 포르투갈에 도입했다. 암스테르담의 얀 반 오르트와 빌렘 판 데르 클로트의 작업장은 대형 타일 패널을 제작했지만, 포르투갈 국왕 페드루 2세가 수입을 중단하면서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대형 수제 청백색 형상 타일이 유행하게 되었다.
18세기 초는 '아줄레주 황금기'로, 바로크 요소가 많이 포함된 ''아줄레주''가 교회, 수도원, 궁전, 주택을 덮었다. 1740년대에는 로코코 양식의 작고 섬세한 패널이 등장했으며, 앙투안 와토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기사도적이고 목가적인 주제를 묘사했다.
1755년 리스본 지진 이후, 퐁발 양식으로 알려진 더 실용적인 스타일이 나타났다. 신고전주의 디자인도 나타났으며, 멕시코에서는 탈라베라 도자기를 사용한 아줄레주가 건물과 저택에 사용되었다. 멕시코시티의 카사 데 로스 아줄레호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19세기에는 산업화된 생산 방식이 도입되었지만, 수작업 타일 그림의 예술은 루이스 페레이라 등에 의해 이어졌다. 20세기 초에는 아르 누보 아줄레주가 등장했으며, 아르 데코 아줄레주도 나타났다. 호르헤 콜라소가 제작한 상 벤투 역의 장식은 20세기의 주목할 만한 아줄레주 창작물 중 하나이다.
20세기에는 마리아 케일이 리스본 지하철 역에 대형 추상 패널을 디자인하여 ''아줄레주'' 예술의 부활에 기여했다.
3. 1. 기술적 측면
아줄레주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제작되어 왔다. 초기에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알리카타도스'(ﻗَﻄَﻊَ|qata'a|to cutar)라는 타일 모자이크 패널이 사용되었다. 이 타일들은 단색 유약을 칠하고 기하학적 모양으로 잘라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이러한 예시를 볼 수 있다.[9]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세비야에서는 '쿠엔카'(cuenca, 움푹 들어간) 또는 '아리스타'(arista, 능선) 기법이 발달했다.[13][12][7] 이 기술은 금속이나 나무 틀을 사용하여 타일에 얇은 점토 능선을 만들어, 굽는 동안 색상이 번지는 것을 방지했다. 이는 이전의 쿠에르다 세카 기술과 유사하지만 대량 생산에 더 효율적이었다.[7][12][14] 세비야의 카사 데 필라토스에서 16세기 초 이 기법으로 제작된 장식을 볼 수 있다.[7]
16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도공들이 세비야로 와서 마욜리카 기법을 도입했다.[18] 이 기법은 예술가들이 더 많은 수의 구상 주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란시스코 니쿨로소는 스페인으로 이주한 최초의 이탈리아 도공으로, 그의 작품은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볼 수 있다.[18]
19세기에는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과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장식 타일 생산이 침체되었다. 1840년경 브라질 이민자들이 포르투에서 산업화된 생산을 시작하면서, 집의 정면을 아줄레주로 장식하는 브라질 유행이 포르투갈에 도입되었다. 리스본 공장들은 전사 인쇄 방식을 사용하여 청백색 또는 다색 아줄레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는 크림웨어 블랭크를 사용한 또 다른 유형의 전사 인쇄가 사용되었다.
3. 2. 사회문화적 의의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에서 건축물의 내외부 장식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진다. 19세기 말,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받고, 그 보답으로 아줄레주 장식으로 집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아줄레주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선 역사적, 문화적 교류의 매개체였다.
포르투갈 전역의 역사적이고 낡은 건물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접근이 용이한 타일은 반달리즘, 방치, 도난에 취약하다. 리스본에서는 구매자, 특히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인식을 높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벼룩시장과 암시장에서 타일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46] 2013년부터는 타일로 덮인 외관을 가진 포르투갈의 건물을 철거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47] 리스본에서는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도시의 예술적 타일의 25%가 손실된 것으로 추정된다.[48]
2007년에 설립되어 사법 경찰(Polícia Judiciária)의 부서로 활동하는 포르투갈의 주요 아줄레주 보호 단체인 SOS 아줄레주는 고대 타일의 판매를 제한하고 그러한 시장을 통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47] 리스본 시는 철거되거나 헐린 건물, 기증받은 타일 약 3만 개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Banco do Azulejo'(타일 은행)를 설립했다. 아베이루, 포르투, 오바르 시에도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있다.[49]
2017년 8월, 타일로 덮인 건물의 철거와 타일을 제거하는 리모델링 작업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법이 시행되었다. 이는 건물의 내부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50][51]
4. 현대적 응용
20세기 초, 아르 누보 아줄레주는 라파엘 보르달로 핀에이루, 줄리우 세자르 다 실바, 조제 안토니오 조르제 핀토와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등장하기 시작했다.[1] 1930년대에는 아르 데코 아줄레주가 주요 예술가인 안토니오 코스타와 함께 등장했다.[2] 호르헤 콜라소가 제작한 상 벤투 역 현관의 2만 개 아줄레주로 구성된 장식은 20세기 가장 주목할 만한 아줄레주 창작물 중 하나이다.[2] 산투 일데폰소 교회와 콩그레가두스 교회 외관 또한 호르헤 콜라소의 예술적 기량을 보여준다.[2] 이 시대의 다른 예술가로는 마리오 브랑코, 실베스트르 실베스트리, 에두아르두 레이테가 있다.[2]
20세기 예술가로는 호르헤 바르라다스, 카를루스 보텔료, 호르헤 마르틴스, 사 노게이라, 메네즈, 파울라 레고가 있다.[2] 마리아 케일은 리스본 지하철의 처음 19개 역(1957년~1972년)에 대형 추상 패널을 디자인하여 쇠퇴했던 아줄레주 예술의 부활과 현대화에 기여했다.[2] 그녀의 인텐덴테 역 장식은 현대 타일 아트의 걸작으로 여겨진다.[2] 1988년 이후 롤란두 드 사 노게이라, 줄리오 포마르, 마누엘 카르갈레이루, 마리아 엘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등 현대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지하철역을 위한 작품을 제작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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