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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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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포국은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번왕국 통치자, 고위 행정관, 군 장성 등에게 부여된 예포의 등급을 의미한다. 예포는 영국과의 관계, 정치적 권력 등을 반영했으며, 21발이 최고 등급이었다. 1947년 인도 독립 당시 118개의 예포국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예포의 수에 따라 다양한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예포는 인도 제국 내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중요한 의전이었으며, 독립 이후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할되면서 그 의미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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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포국

2. 인도 제국의 예포 제도

인도 제국의 예포 제도는 영국 왕실이 번왕국 통치자들에게 부여한 특권이자, 동시에 그들의 서열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하는 예포를 쏘았다. 예포의 숫자는 시대에 따라 변경되었으며, 영국이 특정 통치자에게 부여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및/또는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

과리얼의 HH 마하라자 경 자야지라오 신디아, 헨리 데일리 경 장군 (데일리 칼리지 설립자)과 영국 장교, 마라타 귀족 (사르다르, 자기르다르 및 만카리)이 인도르, 홀카르 번왕국에서 찍은 사진.

2. 1. 예포의 기원과 의미

예포는 원래 군사적 의례에서 유래했지만, 점차 국가 간의 우호 관계나 특정 인물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변화했다.[1]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받았는데, 이를 예포라고 불렀다.[1] 예포의 숫자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영국이 특정 통치자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달라졌다.[1]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및/또는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1] 영국의 국왕(또는 여왕)은 101발, 인도 부왕에게는 31발의 예포가 사용되었다.[1]

1911년 12월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두르바르에서는 거의 하루 종일 포격이 이루어졌다.[1]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세 곳이었다.[1]

번왕국통치자
바로우다 번왕국가이크와드 마하라자
마이소르마하라자
하이데라바드 니잠니잠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고,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동일한 권한이 부여되었다.[1]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들 군인들의 훌륭한 공헌에 대한 예우였다.[1]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그리고 우다이푸르의 마라나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1]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의전 중 하나였다.[1]

2. 2. 예포의 등급과 분류

영국령 인도 제국 시기, 인도 번왕국의 통치자들은 영국과의 관계와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예포를 받았다. 21발의 예포가 최고 등급으로 여겨졌으며, 영국 국왕(인도 황제)에게는 101발, 인도 부왕에게는 31발의 예포가 부여되었다.[2]

1947년 인도 독립 당시, 565개의 번왕국 중 118개가 "예포국"으로 분류되었다. 예포국의 등급은 다음과 같다.

예포 수번왕국
21발하이데라바드 번왕국, 괄리오르, 마이소르, 바로우다, 잠무 카슈미르[2]
19발보팔 번왕국, 인두어, 우다이푸르 번왕국, 콜하푸르 번왕국, 트라방코르 번왕국, 칼라트 번왕국
17발 ~ 11발77개 번왕국
9발30개 번왕국



11발 이상의 예포를 받는 통치자들은 "각하(Highness)"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1918년 하이데라바드 니잠은 "존귀하신 각하(Exalted Highness)"라는 특별 칭호를 받았다. 1948년에는 9발 예포국 통치자 모두에게 "각하" 칭호가 부여되었다.

예포는 세습적, 개인적, 지역적 기준으로 부여될 수 있었다. 세습적 예포는 통치 가문에 영구적으로 부여되는 것이었고, 개인적 예포는 통치자 개인에게, 지역적 예포는 해당 번왕국 내에서만 유효했다.

종교 지도자인 아가 칸은 개인적으로 11발의 예포를 받았다. 예포국이 아닌 번왕국의 통치자나 왕족도 개인 예포나 "각하" 칭호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2. 3. 예포와 칭호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받았다. 이러한 "예포"의 숫자는 시대에 따라 변경되었으며, 영국이 특정 통치자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및/또는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 1911년 12월 델리에서 열린 대관식 두르바르를 개최할 때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해졌다. 두르바르는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으며, 거의 하루 종일 포격이 이루어졌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세 곳이었다.

  •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 마이소르 마하라자
  • 하이데라바드 니잠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으며,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동일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두 사람 모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의 훌륭한 공헌으로 인해 증가된 예우를 받았다.

이 외에 다른 번왕국은 21발의 예포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저명한 세 명의 왕자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 그들은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그리고 우다이푸르의 마라나였다.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신념의 문제로 이를 준수했다. 그들은 의전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그러한 의전 중 하나였다.

3. 주요 예포국과 통치자들

인도 수도에 번왕국 통치자가 도착하면 예포라고 불리는 포격으로 환영했다. 예포 숫자는 시대와 영국의 명예 부여 정도에 따라 달랐으며, 통치자의 영국과의 관계나 정치적 권력을 반영했다. 21발의 예포가 최고 등급이었다.

1911년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국왕 대관식 기념 두르바르에서 예포 숫자가 중요해졌다. 당시 21발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마이소르 마하라자, 하이데라바드 니잠 세 곳이었다. 1917년에는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가,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가 21발 예포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공헌 덕분이었다. [33]

이 외에도 자체 영토 내에서는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으로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우다이푸르의 마라나가 있었다.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의전 중 하나였다.

3. 1. 21발 예포국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받았는데, 이를 예포라고 한다. 예포의 숫자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영국이 특정 통치자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변경되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및/또는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33]

1911년 12월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한 두르바르가 개최되었을 때,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해졌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세 곳이었다.

  •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 마이소르 마하라자
  • 하이데라바드 니잠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으며,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동일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두 사람 모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의 훌륭한 공헌으로 인해 증가된 예우를 받았다.[33]

1947년 독립 당시, 인도 연방에 가입한 112개 자치국의 예포는 다음과 같았다.

일련번호세습 예포 발사수통치자 칭호자치국 명칭통치자 가문현재 위치
1.21바소다의 마하라자 가에크와드바소다마라타, 가에크와드구자라트
2.21마하라자마이소르칸나다, 와디야르카르나타카
3.21마하라자 신디아괄리오르마라타, 신디아마디아프라데시
4.21마하라자잠무 카슈미르라지푸트, 도그라잠무 카슈미르
5.21니잠하이데라바드튀르크, 아사프 자히텔랑가나, 카르나타카, 마하라슈트라


4. 인도 제국 내 예포 (왕족, 행정관, 장교)

인도 제국 내에서는 왕족, 고위 행정관, 군 장성에게도 예포가 부여되었다.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했다. 예포 숫자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영국이 부여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변경되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또는 정치적 권력을 반영했으며, 21발이 최고였다. 영국 국왕(인도 황제)은 101발, 인도 부왕은 31발의 예포를 받았다.

1911년 델리 대관식 두르바르에서는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했는데, 조지 5세 국왕 대관식을 기념하여 거의 하루 종일 포격이 이루어졌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세 곳이었다.


  •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 마이소르 마하라자
  • 하이데라바드 니잠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고,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같은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군인들의 공헌에 대한 예우였다.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우다이푸르의 마라나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의전 중 하나였다.

4. 1. 왕실 및 고위 관료

포의 수대상
101
(대관식 예포)
인도 황제[3]
31
(왕실 예포)[4]
21
19
17[12]
15
13
11
9

[32]

4. 2. 행정관 및 군 장성

포의 수대상
19
17[12]
15
13
11
9


5. 인도와 파키스탄의 예포국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면서 각 번왕국은 두 국가 중 하나에 편입되어야 했다.

1947년 인도 독립 및 분할 당시, 약 565개의 번왕국 중 118개(인도 113개, 파키스탄 4개, 시킴 포함)가 "예포국"으로 분류되었다.


  • 다섯 개의 주요 번왕국 통치자들 - 하이데라바드 번왕국, 괄리오르 번왕국, 마이소르, 바소다, 잠무 카슈미르 - 은 21발의 예포를 받았다.[2]
  • 다른 여섯 개 번왕국 통치자들 - 보팔, 인도르, 우다이푸르, 콜하푸르, 트라방코르, 칼라트 - 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
  • 77개 번왕국은 17발에서 11발까지의 예포를 받을 자격이 있었고, 추가 예포는 지역 또는 개인적 기준으로 부여되었다.
  • 나머지 30개 번왕국은 9발의 예포를 받았다.
  • 11발 이상의 예포를 받는 88명의 통치자들은 예포가 세습적이든 지역적이든 관계없이 "각하(Highness)"라는 칭호를 사용할 자격이 있었다.
  • 1948년에는 9발 예포국 통치자 모두에게 "각하" 칭호가 부여되었다.


1947년 8월부터 1948년 3월까지, 서부 인도에 위치한 13개의 이슬람 번왕국은 병합 문서에 따라 영국령 인도에서 인도 독립법 1947에 의해 창설된 새로운 파키스탄 자치령에 합병되어 파키스탄 번왕국이 되었다.

5. 1. 인도에 편입된 예포국

1947년 독립 당시 인도 연방에 가입한 112개 자치국의 예포는 다음과 같았다.

일련번호세습 예포 발사수개인/지역 예포 발사수통치자 칭호자치국 명칭통치자 가문현재 위치
121바소다의 마하라자 가에크와드바소다마라타, 가에크와드구자라트
221마하라자마이소르칸나다, 와디야르카르나타카
321마하라자 신디아괄리오르마라타, 신디아마디아프라데시
421마하라자잠무 카슈미르라지푸트, 도그라잠무 카슈미르
521니잠하이데라바드튀르크, 아사프 자히텔랑가나, 카르나타카, 마하라슈트라
61921 (지역)나바브보팔파슈툰, 아프간마디아프라데시
71921 (지역)마하라자 홀카르인도르마라타, 홀카르마디아프라데시
81921 (지역)마라나우다이푸르 (메와르)라지푸트, 시소디아라자스탄
91921 (지역)마하라자 차트라파티콜라푸르마라타, 봉슬레마하라슈트라
101921 (지역)마하라자트라방코르나이르, 사만탄 나이르[33]케랄라
1117마하라오코타라지푸트, Chauhan, 하다라자스탄
121719 (지역)마하라자바라트푸르자트, 신신와르라자스탄
131719 (지역)마하라자비카네르라지푸트, 라토르라자스탄
141719 (지역)마하라오쿠치라지푸트, 자데자구자라트
151719 (지역)마하라자 스와이자이푸르라지푸트, 카츠와하라자스탄
161719 (지역)마하라자조드푸르라지푸트, 라토르라자스탄
1717마하라자푸두코타이톤다이만타밀나두
181719 (지역)마하라자파티알라자트 시크교도, 시두, 풀키안 미슬펀자브
1917분디의 마하라오 라자분디라지푸트, Chauhan, 하다라자스탄
2017마하라자코친크샤트리야, 찬드라밤샤케랄라
2117마하라자카라울리라지푸트 자다운라자스탄
2217나바브톤크파탄라자스탄
231517 (개인)돌푸르의 마하라자 라나돌푸르자트 밤라올리아라자스탄
241517 (지역)마하라자알와르라지푸트, 카츠와하라자스탄
2515-마하라자레와라지푸트 바겔마디아프라데시
2615반스와라의 마하라왈반스와라라지푸트, 시소디아라자스탄
2715마하라자다티아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2815마하라자데와스 시니어마라타, 푸아르마디아프라데시
2915마하라자데와스 주니어마라타, 푸아르마디아프라데시
3015마하라자다르마라타, 푸아르마디아프라데시
3115둥가르푸르의 마하라왈둥가르푸르라지푸트 구힐로트라자스탄
3215마하라자이다르라지푸트 라토르구자라트
3315자이살메르의 마하라왈자이살메르라지푸트, 바티라자스탄
3415마하라자키샨가르라지푸트, 라토르라자스탄
3515마하라자오르차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3615마하라와트프라타프가르라지푸트, 시소디아라자스탄
3715나바브람푸르로힐라 사이이드우타르프라데시
3815마하라올시로히라지푸트, Chauhan, 데브다라자스탄
391315 (지역)마하라자바나레스브라만 부미하르 고탐우타르프라데시
401315 (지역)마하라자바브나가르라지푸트, 고힐구자라트
411315 (개인 및 지역)마하라자진다시크 자트, 시두, 풀키안 미슬하리아나
421315 (개인 및 지역)나바브주나가드바비구자라트
431315 (개인 및 지역)마하라자카푸르탈라아루왈리아 (시크교도 미슬)펀자브
441315 (지역)라자나바자트 시크교도, 시두, 풀키안 미슬펀자브
451315 (지역)마하라자 잠 사히브나와나가르라지푸트, 자데자구자라트
461315 (지역)마하라자라틀람라지푸트, 라토르마디아프라데시
4713마하라자쿠치베하르라지푸트, 라즈반시서벵골
4813마하라자 라지 사히브드랑가드라라지푸트, 잘라구자라트
4913나바브자오라파탄마디아프라데시
5013마하라자 라나잘라와르라지푸트, 잘라라자스탄
5113나바브팔란푸르아프간구자라트
5213마하라자 라나 사히브포르반다르라지푸트, 제트와구자라트
5313마하라나라지피플라라지푸트, 고힐구자라트
5413마하라자트리푸라마니키아트리푸라
551113 (지역)나바브잔지라시디마하라슈트라
5611마하라자아자이가르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5711마하라나 라자알리라푸르라지푸트, 시소디아마디아프라데시
5811나바브바오니아사프 자히마디아프라데시
5911라나바르와니라지푸트, 시소디아마디아프라데시
6011스와이 마하라자비자와르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6111나바브캄베이나즘 i 사니구자라트
6211라자참바라지푸트히마찰프라데시
6311마하라자차르카리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6411마하라자차타르푸르라지푸트, 파르마르마디아프라데시
6511라자파리드코트시크 자트, 브라르펀자브
6611마하라자곤달라지푸트, 자데자구자라트
6711라자빌라스푸르라지푸트히마찰프라데시
6811라자자부아라지푸트 라토르마디아프라데시
6911나바브말레르코틀라아프간펀자브
7011라자만디라지푸트 찬드라밤시히마찰프라데시
7111마하라자마니푸르메이테이족마니푸르
7211마하라자모르비라지푸트 자데자구자라트
7311라자나르싱가르라지푸트 우마트마디아프라데시
7411마하라자판나라지푸트 분델라마디아프라데시
7511-나바브라드한푸르이라니구자라트
7611라자라지가르힌두, 라지푸트마디아프라데시
7711라자라이가르라지푸트 라구밤시히마찰프라데시
7811-라자살라나라지푸트 라토르마디아프라데시
7911마하라자삼타르구르자르 카타나우타르프라데시
8011마하라자시르무르라지푸트, 바티히마찰프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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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마하라나단타라지푸트, 파르마르구자라트
979타코르 사히브드로르라지푸트, 자데자구자라트
989마하라자자워르마라타, 마하데오 콜리 (묵네)마하라슈트라
999마하라자칼라한디 (카론드)나가밤시오디샤
1009라오킬치푸르라지푸트, Chauhan,(킨치)마디아프라데시
1019타코르 사히브림비디라지푸트, 잘라구자라트
1029나바브로하루(무슬림)하리아나
1039마하라나루나바다라지푸트, 솔란키구자라트
1049라자마이하르라지푸트,

5. 2. 파키스탄에 편입된 예포국

1947년 8월부터 1948년 3월까지, 서부 인도에 위치한 13개의 이슬람 번왕국은 병합 문서에 따라 영국령 인도에서 인도 독립법 1947에 의해 창설된 새로운 파키스탄 자치령에 합병되어 파키스탄 번왕국이 되었다. 이들은 1955년에서 1974년 사이에 모두 더 큰 연방과 주로 통합되었다. 모든 번왕국은 국가의 서부에 위치해 있었으며, 결국에는 서파키스탄에 병합되었고, 이는 (방글라데시의 분리 이후) 현재의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구성한다.

해당 왕국들은 존속하는 동안 내부 자치를 유지했지만, 1974년까지 모두 자치를 잃었다. 이전 통치 가문이 누리던 작위와 칭호는 1972년 1월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훈자와 나가르는 1974년 10월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 편입되었다.

1947년 10월 3일부터 1948년 3월 27일 사이에 4개의 예포국이 파키스탄에 병합되었다. 병합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일련 번호세습 예포 포문 수개인 또는 지역 예포 포문 수통치자 칭호왕국명통치자 씨족현재 위치
1.19 칼라트이슬람 발로치발루치스탄주
2.17나와브 바하왈푸르이슬람 아바시펀자브주
3.1517 (지역)미르 하이르푸르이슬람 발로치신드주
4.11메흐타르 치트랄이슬람 카투르카이베르 파크툰크와주



공화국 하에서 여러 차례의 승진과 두 차례의 식민지 이후 수여 이후 – 인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파키스탄의 왕국들이 누리던 예포는 1966년 다음과 같았다.


  • 세습 예포 19포 (승진): 바하왈푸르의 아미르
  • 세습 예포 19포: 칼라트의 칸
  • 세습 예포 17포 (승진): 하이르푸르의 미르
  • 세습 예포 15포: 훈자의 미르 (1966년 아유브 칸 대통령에 의해 수여, 이전에는 예포 없음)
  • 세습 예포 15포: 스와트의 왈리 (1966년 아유브 칸 대통령에 의해 수여, 이전에는 예포 없음)
  • 세습 예포 11포: 치트랄의 메흐타르

6. 버마의 예포국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던 버마(현 미얀마)에도 예포국이 존재했다.

6. 1. 샨 주의 예포국

샨 주의 껭통, 시뽀, 몽나이, 영웨의 사오파는 9발의 예포를 받았다.[34][35]

7. 인도 제국의 보호국 및 보호령

인도 제국은 번왕국 외에도 여러 보호국과 보호령을 통해 간접 통치를 시행했다.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예포를 발사하여 환영했다. 예포의 숫자는 통치자의 지위에 따라 달랐으며, 21발이 최고 등급이었다. 영국 국왕은 101발, 인도 부왕은 31발의 예포를 받았다.

1911년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은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한 행사였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바로우다 번왕국, 마이소르, 하이데라바드 니잠 세 곳이었다.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와 1921년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도 21발 예포를 받게 되었다.

가장 저명한 세 명의 왕자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 이들은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우다이푸르의 마라나였다.

7. 1. 남아시아의 보호국

아프가니스탄은 1890년에 압두르 라흐만 칸이 영국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내정 자치를 인정받았다.[36] 1905년 하비불라 칸은 영국과 조약을 맺어 아프가니스탄 왕(샤-에-아프가니스탄) 칭호와 '폐하' 칭호를 사용하며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다.[36] 1919년 아마눌라 칸은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한 주권 왕국으로 선포했으나,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했다.[36] 하지만 1921년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했다.[36]

네팔은 1816년 영-네팔 전쟁에서 패배 후 동인도 회사의 보호국이 되었다.[37] 1858년 이후 영국 왕실의 보호령이 되었고, 1919년 영국은 네팔 왕에게 '폐하' 칭호를, 라나 왕조의 마하라자에게는 '전하(His Highness)' 칭호를 인정했다.[32] 1923년 영국은 네팔을 완전한 주권 군주국으로 인정했다.[37]

부탄은 1864년 영국과 전쟁 후 신추라 조약을 맺고 영토를 포기했다.[42] 1907년 우겐 왕축이 부탄의 마하라자이자 드루크 갈포(용왕)로 선포되면서 세습 군주국이 되었다.[42] 1910년 푸나카 조약을 통해 영국의 보호를 받으며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42] 1949년 인도와 우호 조약을 맺어 주권을 재확인하고 외교 정책 통제권을 부여했다.[42] 1963년 '폐하 드루크 갈포'로 칭호를 변경하여 독립 주권 군주국임을 공식화했다.[42]

시킴은 1861년 툼롱 조약에 따라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내정 간섭과 외교 감독을 받았다.[44] 1947년 인도 가입에 반대하고 내정 주권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44] 1950년 인도의 보호령이 되었고, 1975년 국민 투표를 통해 인도에 합병되었다.[44]

남아시아의 보호국
국가통치자 칭호세습 예포수현재 위치
아프가니스탄왕(샤-에-아프가니스탄)21아프가니스탄
네팔마하라자디라자31네팔
람정 및 카스키쉬리 틴 마하라자21네팔
부탄마하라자 드루크 갈포15부탄
시킴마하라자 초걀15시킴


7. 2. 중동 및 페르시아만의 보호령

아덴 보호령은 19세기 후반부터 1967년 독립하여 남예멘과 합병될 때까지 영국의 보호령이었으며, 1917년까지 봄베이 관구의 일부로 통치되다가 영국 외무부로 이관되었다.[71]

페르시아만 거주지는 1763년 동인도 회사가 부셰르에 거주지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어 1822년에 설립되었다. 1873년까지 봄베이 총독의 지배를 받다가 1858년 영국 왕실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1873년에는 영국령과 인도 사무소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다. 1892년에는 무스카트와 오만, 바레인, 트루셜 스테이츠에 대한 보호령 지위를 공식적으로 갖게 되었고, 1914년에는 쿠웨이트, 1916년에는 카타르가 그 뒤를 이었다. 1920년 시브 조약은 오만의 '사실상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 거주지는 1947년 인도 독립 직전 인도 사무소에서 영국 외무부로 이관되었다. 1961년 쿠웨이트가 최초로 보호령을 종료하고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으며, 이듬해 영국은 무스카트와 오만을 독립된 보호 국가로 인정했다. 영국은 1968년 1월 나머지 걸프 국가에 대한 보호령을 1971년에 종료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1971년 12월에 보호령이 종료되었다. 무스카트와 오만은 오만이 되었고, 이전의 트루셜 스테이츠는 1972년에 아랍 에미리트 연합이 되었다.

세습 예포 발사수개인 또는 지역 예포 발사수통치자 칭호국가 이름통치자 씨족현재 위치
21[71][32][51]-술탄[52]무스카트와 오만알 사이드오만
-7 (지역, 11 개인)[71][57][60][53]셰이크 (통치자)[54]쿠웨이트알 사바쿠웨이트
-7 (지역, 11 개인)[71][57][60][55]셰이크 (통치자)[60][56]바레인알 칼리파바레인
-7 (지역)[71][60][57][58]셰이크 (통치자)[59]카타르알 타니카타르
-3 (지역, 5 개인)[71][60]셰이크 (통치자)[61]아부다비알 나흐얀UAE
-3 (지역, 5 개인)[71][62]셰이크 (통치자)[63]샤르자알 카시미
-5 (지역)[71][57][64]셰이크 (통치자)[65]두바이알 막툼
-3 (지역)[71]셰이크 (통치자)[66]아지만알 누아이미
-3 (지역)[71]셰이크 (통치자)[67]라스 알 카이마알 카시미
-3 (지역)[71]셰이크 (통치자)칼바[68]알 카시미
-3 (지역)[71]셰이크 (통치자)[69]움 알 쿠와인알 무알라


8. 인도 아대륙의 개인 예포 왕조

인도 수도에 번왕국의 통치자가 도착하면 여러 발의 포격으로 환영했다. 이러한 "예포"의 숫자는 시대에 따라 변경되었으며, 영국이 특정 통치자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명예의 정도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및/또는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1] 영국의 국왕(또는 여왕) (1948년까지 인도의 황제이기도 함)은 101발의 예포를 받았고, 인도 부왕에게는 31발의 예포가 사용되었다.

1911년 12월 델리에서 열린 대관식 두르바르에서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해졌다. 두르바르는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으며, 거의 하루 종일 포격이 이루어졌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마이소르 마하라자, 하이데라바드 니잠 세 곳이었다.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으며,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동일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 외에 다른 번왕국은 21발의 예포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저명한 세 명의 왕자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 그들은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그리고 우다이푸르의 마라나였다.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신념의 문제로 이를 준수했다. 그들은 의전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그러한 의전 중 하나였다.

8. 1. 번왕국 통치자 (1947년)

히마찰프라데시 바샤르라자 파담 싱[9]

8. 2. 종교 지도자

아가 칸은 니자리 이스마일파 이슬람교 종교 지도자로, 영토를 가진 공국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11발의 개인 예포를 받았다.[1]

8. 3. 정치적 연금 수령자

무르시바다드의 나와브는 벵골(현재의 방글라데시와 서벵골 포함)의 상속자로서 19문의 예포(개인적 및 지역적 용도)를 받았다.[70] 아르코트 나와브(나중에 왕자로 개칭)는 카르나틱 지역에서 1899년까지 15문의 예포를 받았다.[70] 비지아나그람의 라자는 13문의 예포를 받았다.[70]

8. 4. 프랑스령 인도의 자민다르

야남의 마니암 자민다르는 4발의 예포를 받았다.[1]

9. 영국 영향권 내의 국가 (1947년)

1947년 당시 영국 영향권 아래 있던 번왕국 통치자들은 인도 수도(처음에는 콜카타, 이후 델리)에 도착하면 예포로 환영받았다. 예포 발수는 영국이 통치자에게 부여하는 명예의 정도를 나타내며, 시대에 따라 변경되었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 수는 일반적으로 영국과의 관계 또는 인식되는 정치적 권력을 반영했으며, 21발이 최고 등급이었다.[1]

1911년 12월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대관식 기념 두르바르에서는 예포 수가 특히 중요했다. 당시 21발의 예포를 받은 번왕국은 다음 세 곳이었다.[1]


  • 바로우다 번왕국의 가이크와드 마하라자
  • 마이소르 마하라자
  • 하이데라바드 니잠


1917년, 과리얼의 신디아 마하라자는 영구적이고 세습적인 21발의 예포로 승격되었고, 1921년에는 잠무 카슈미르 마하라자에게도 동일한 권한이 부여되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들 군인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1]

보팔의 나바브(베굼), 인도르의 홀카르 마하라자, 우다이푸르의 마라나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1]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의전 중 하나였다.[1]

10. 예포 제도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예포 제도는 영국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번왕국 통치자들에게 부여한 명예의 척도였다. 영국 국왕에게는 101발, 인도 부왕에게는 31발의 예포가 주어졌고, 번왕국 통치자들은 그들과의 관계나 정치적 권력에 따라 다양한 숫자의 예포를 받았다.[1] 최고 등급은 21발의 예포였으며, 이는 바로우다 번왕국, 마이소르 왕국, 하이데라바드 니잠 세 번왕국에게만 주어졌다.[1]

1911년 델리에서 열린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 두르바르에서는 예포 숫자가 특히 중요하게 다뤄졌다.[1]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공헌을 인정받아 과리얼 번왕국과 잠무 카슈미르의 통치자도 21발의 예포를 받게 되었다.[1] 보팔, 인도르 번왕국, 우다이푸르의 통치자는 자체 영토 내에서 21발, 인도 나머지 지역에서는 19발의 예포를 받았다.[1]

이처럼 예포 제도는 영국 제국주의 지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번왕국들 간의 복잡한 정치적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번왕국 통치자들은 예포 숫자를 포함한 의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이를 철저히 준수했다.[1]

11. 결론

예포 제도는 단순한 의전을 넘어, 영국령 인도 제국 시기 번왕국들의 정치적 위상과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통치자에게 부여된 예포의 숫자는 영국과의 관계 및 그가 인식하는 정치적 권력의 정도를 반영했으며, 21발의 예포가 최고로 여겨졌다. 니잠, 마하라자, 왕자 등은 모두 의전에 깊이 몰두했으며, 예포는 엄격히 준수되는 의전 중 하나였다.

이 제도를 통해 제국주의 지배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 상징적 행위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다.

참조

[1] 서적 The India Office and Burma Office List: 1945 Harrison & Sons, Ltd.
[2] 뉴스 King of all rewinds https://www.th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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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서적 The India Office and Burma Office List: 1947 Harrison & Sons,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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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문서 Styled as His Highness The Emir of Afghanistan until 1905, when the emirate was recognised as a kingdom, with full sovereignty in 1921. The monarchy was deposed in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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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문서 Joined the [[Federation of South Arabia]] in 1962. Maintained its status until 1967, when the protectorate and state were abolished and merged with [[South Yemen]].
[51] 문서 Considered a de jure foreign monarch.
[52] 문서 With the style of Highness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Majesty.
[53] 문서 5 guns (local, 11 personal) from 1914, raised to 7 guns (local) in 1923.
[54] 문서 Granted the style of Excellency by the British government in 1914, raised to Highness from 1933. Assumed the title of Emir in 1961 upon attaining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55] 문서 5 guns (local) and 11 guns (personal) from 1914, raised to 7 guns (local) in 1923.
[56] 문서 Granted the personal style of Excellency by the British government from 1914; raised to Highness from 1933. Assumed the title of Emir in 1971 upon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maintained style until 2002, when the nation was declared a kingdom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Majesty with the title of King of Bah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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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서적 The Indian Year Book 1924 Bennett, Coleman & Co., Ltd.
[61] 문서 With the style of Excellency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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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문서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64] 문서 Awarded in 1929.
[65] 문서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66] 문서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67] 문서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68] 문서 Ruled by a branch of the Sharjah royal family as a Trucial State from 1936 until 1952, when it was reincorporated into Sharjah.
[69] 문서 Until 1971, when the country attained full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yle of the monarch was raised to His Highness the Emir from the same time.
[70] 웹사이트 VIZIANAGRAM (Zamindari) http://uqconnect.net[...] 2009-05-30
[71] 서적 Alqabnamah: List Showing the Names, Titles and Modes of Address of the More Important Sovereigns, Ruling Princes, Chiefs, Nobles etc., Having Relations with the Indian Government Government of Ind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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