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도스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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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르도스 고원은 황하가 오르도스 루프를 그리며 흐르는 중국 북부의 고원 지대이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황토 고원, 내몽골 초원, 오르도스 사막 등 다양한 환경을 포함하며, 기원전 1000년경부터 중국 문명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오르도스 문화는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흉노, 한나라 등 다양한 유목 민족과 중국 왕조의 각축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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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스고원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위치 | 중국 북서부 |
면적 | 370,000 km² |
높이 | 1,000 ~ 1,600 m |
지리 | |
지형 | 고원 |
분지 | 오르도스 분지 |
역사 | |
관련 민족 | 몽골족 |
행정 구역 | |
성 | 내몽골 자치구 산시 성 간쑤 성 닝샤 후이족 자치구 |
기타 | |
특징 | 사막 초원 |
람사르 등록 지역 | https://rsis.ramsar.org/ris/1148 |
2. 지리
황하는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간쑤성 마취현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다시 동쪽으로 흐른다. 이후 닝샤후이족 자치구 중닝현에서 북쪽으로 크게 꺾이며 거대한 만곡, 이른바 오르도스 만곡을 형성한다. 황하는 이 만곡을 따라 북쪽으로 약 640km를 흐르며 황토 고원을 벗어나는데, 이때 고원의 침식으로 인해 다량의 실트가 강물에 섞여 누런 빛을 띠게 된다. 내몽골 자치구에 들어서면 동쪽으로 약 320km를 흐르다가 섬서성의 뤼량 산맥에 막혀 급격히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남쪽으로 약 600km를 흐르며 다시 황토 고원을 지나 섬서성 퉁관현에서 위하와 합류한 뒤, 다시 동쪽으로 꺾여 화베이 평원으로 흘러 들어간다.
위하는 황하가 만드는 이 거대한 만곡의 남쪽 변을 이루며, 남서쪽 모서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남쪽 합류 지점까지 약 560km를 황토 고원을 가로질러 흐른다. 남쪽의 친링 산맥은 화산을 포함하며, 웨이허 유역과 남쪽으로 흘러 양쯔강으로 합류하는 한수 유역의 자연적인 경계가 된다.
황토 고원 아래에는 중국의 주요 석탄 매장지 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2. 1. 황하 유역의 도시
황하가 티베트 고원에서 흘러나오는 지역의 남서쪽 모퉁이 부근에는 간쑤성의 성도이자 중국 서북부의 주요 도시인 란저우(蘭州)가 자리 잡고 있다. 란저우 서쪽에는 시닝(西寧)이 있는데, 과거 카라반들이 라싸로 향하던 출발점이었으며 현재는 칭짱철도가 이곳을 지난다. 시닝 북쪽으로는 간쑤성 또는 허시 회랑이 티베트 고원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 있다. 이 허시 회랑과 위하 계곡은 중국 본토에서 타림 분지를 거쳐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요 실크로드 경로였다.란저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황하 하류는 가오란현(皐蘭縣)과 백은(白銀)을 통과하는 협곡을 이룬다. 강은 산지를 벗어나 중웨이(中衛) 부근에서 닝샤후이족 자치구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황하는 북쪽의 텅거리 사막과 남쪽의 구릉지 사이를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건조한 지역을 지난다. 칭퉁샤(靑銅峽) 댐을 통과한 후에는 오충(吳忠) 주변의 관개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계속 북쪽으로 흘러 닝샤의 수도인 인촨(銀川)을 지나는데, 인촨 서쪽에는 허란산맥이 있다.
황하는 우하이 남쪽에서 닝샤 북쪽 끝을 벗어나 사막을 가로질러 등구(磴口)의 넓은 관개 지역으로 들어간다. 북서쪽 모퉁이에서는 랑산 산맥의 영향으로 임하(臨河) 부근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에는 산과 강 사이에 관개 지역이 펼쳐져 있고, 남동쪽으로는 사막이 있다. 이 북쪽 구간의 중앙 부근에는 큰 도시인 바오터우와 관개 지역이 자리한다. 바오터우에서 남쪽 시안까지는 국도 210호선이 이어진다. 내몽골 자치구의 수도인 후허하오터는 황하가 북동쪽으로 굽이치는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약 110km 떨어져 있다.
황하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황투고원으로 다시 들어서면 주변 언덕보다 60m 이상 낮은 협곡을 형성한다. 이 구간에는 큰 도시가 드물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후커우 폭포가 나타난다. 강은 한성(韓城) 부근에서 협곡을 벗어나 동쪽에서 분수(汾水)를, 서쪽에서 위하(渭河)를 받아들인다.
위하와 합류한 황하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화베이 평원으로 향한다. 위하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쪽에 친링산맥과 화산이 있고, 웨이난(渭南)을 지나 과거 중국의 수도였고 현재 대도시인 시안(西安)에 이른다. 시안 서쪽에는 진(秦)의 수도였던 셴양(咸陽)이 있다. 위하는 바오지(寶鷄) 서쪽에서 산지를 빠져나온다. 상류에는 톈수이 방향으로 여러 지류가 뻗어 있다.
2. 2. 기후
강수량은 북쪽으로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며, 이에 따라 인구 밀도도 낮아진다. 남쪽의 웨이강 계곡은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아 인구 밀도가 높고, 고대 중국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반면 북쪽 지역은 초원과 사막(오르도스 사막) 지대로, 현재 내몽골 자치구에 속한다. 이 지역은 전체적으로 강수량이 적고 변동이 심해, 과거에는 가뭄과 기근이 잦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3. 역사
오르도스고원은 지리적으로 북쪽과 남쪽의 환경이 달라, 역사적으로도 뚜렷이 구분되는 문명권이 형성되었다. 고원의 남쪽과 동쪽은 전통적으로 중국 농경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국의 선사 시대와 중국사 문서에서 다룬다.
반면, 고원의 북쪽과 서쪽은 초원과 사막 지대로,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활동 무대였다. 이 지역에는 최소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했으며, 이 시기의 문화를 오르도스 문화라고 부른다.[6] 오르도스 문화는 독특한 석기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8] 이후 신석기 시대 후기와 청동기 시대 초기에는 주카이거우 문화(기원전 2200년~1500년)가 나타났으며, 이 문화의 주민들은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추정된다.[9]
기원전 1천년대 후반부터는 말을 타는 유목민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2세기경에 걸쳐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인 오르도스 문화를 꽃피웠으나, 이후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 흉노에게 밀려나게 된다.[19] 오르도스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와의 연관성 및 주민의 인종적 계통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다.[10][23][25]
한편, 남쪽의 웨이 계곡은 주나라와 진나라가 발흥한 중심지였으며, 중국 문명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차 오르도스 지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전국 시대에는 진나라와 조나라가 오르도스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으나[28], 기원전 209년경에는 흉노가 이 지역을 장악했다.[30] 이후 흉노는 오르도스 지역을 발판 삼아 중국 한나라와 충돌했으며, 여러 차례 중국 본토를 침략하였다.[29] 이에 한나라 한무제는 대대적인 한-흉노 전쟁을 벌여 기원전 127년 오르도스 지역을 탈환하고 삭방군을 설치하여 직접 지배를 시도했다.[30] 이처럼 오르도스고원은 고대부터 북방 유목 문화와 남방 농경 문화가 교차하고 충돌하는 중요한 역사적 무대였다.
3. 1. 오르도스 문화와 흉노
오르도스고원의 북쪽과 서쪽, 즉 초원과 사막 지역은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활동 무대였다. 이 지역에는 최소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으며, 이때의 문화를 오르도스 문화라고 부른다.[6] 오르도스 문화는 구석기 시대 유물부터 확인되며, 도구의 특징은 "무스테로-레발루아" 요소를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 기술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길이가 최대 15cm에 달하는 칼날을 생산했다.[8]오르도스 문화 이후에는 신석기 시대 후기와 청동기 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주카이거우 문화(기원전 2200년~1500년)가 나타났다. 주카이거우 문화 사람들은 골격 유물 분석 결과 전적으로 몽골로이드였던 것으로 보이며,[9] 이는 mtDNA 분석을 통해 현대의 다우르족 및 에벤키족과도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11] 이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은 하샤지아뎬 문화의 것과 유사하며, 특히 무기와 동물 묘사 유물 장식에 나타나는 뱀 문양 디자인은 이후 오르도스 문화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12]
반면, 오르도스 문화 자체는 유라시아 유목민 문화의 가장 동쪽 확장으로 여겨지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럽인종 계통의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0] 오토 J. 멘첸-헬펜과 이아로슬라브 레베딘스키 등 일부 학자들은 고고학적 발견물에 나타난 인물들의 유럽인종적 특징[20][24]과 오르도스 무덤에서 발견된 무기가 사카스(스키타이)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26]을 근거로, 오르도스 문화가 스키타이 계통이며 월지의 바로 동쪽에 정착했던 가장 동쪽의 스키타이인들이라고 주장한다.[23][25]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 해당하는 타오훙바라(桃紅巴拉) 묘의 골격 유물은 흉노 청동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강한 몽골로이드적 특징을 보인다.[13][14]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후루시타이 유적(1979년 발견)은 인산 북쪽 경사면을 따라 위치한 유일한 흉노 유적지로 여겨지며, 청동 유물, 도기, 말 27마리의 골격 유물로 구성되어 있었다.[15]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에 해당하는 구오셴야오지 유적(1983년 발굴)에서는 강한 북몽골로이드적 특징이 드러났으며, 이는 남쪽으로 갈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원전 7세기경의 마오칭거우 유적에서는 동쪽 및 북쪽 몽골로이드 유형의 골격 유물이 발견되었다.[16] 이러한 문화에서 발견된 많은 청동 무기는 중국 양식과 유사하다.[17] 오르도스 사람들을 묘사한 유물에서는 곧은 머리카락을 가진 모습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18]
기원전 6세기에서 2세기 사이, 말 유목민들이 주카이거우 문화가 있었던 오르도스고원 지역을 점령하여 청동기 시대의 오르도스 문화를 형성했다. 이 시기의 오르도스 문화(기원전 500년경~서기 100년경)는 "오르도스 청동"으로 알려진 칼날 무기, 텐트 기둥 장식, 말 장비, 의복과 말 굴레에 사용된 작은 장식판 등으로 유명하다. 이 유물들은 동물 양식 장식을 특징으로 하며, 서쪽의 스키타이 미술 및 중국 미술과도 관련성을 보인다. 오르도스 문화와 흉노의 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일부 학자들은 동일한 문화로 보기도 하고 다른 학자들은 구별하기도 한다.[21] 지역의 점진적인 사막화로 인해 많은 금속 유물이 지표면에 드러나 발견되기도 했다.[22]
오르도스 문화 사람들은 전한 및 한나라 시대의 중국인들과 접촉했으며 종종 전쟁을 벌였다. 그들의 영역은 현재 만리장성 바로 북쪽, 황하 최북단 고리(오르도스 루프)의 남쪽에 위치했다. 오르도스의 서쪽 이웃은 월지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월지는 이후 흉노에게 패배하여 남아시아로 이주해 쿠샨 제국을 세웠다. 또한 동쪽에는 유사한 "스텝 예술"을 공유했지만 몽골로이드였던 것으로 보이는 동호와 문화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수 있다.[27] 중국 연대기에 등장하는 적(狄)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흉노는 전국 시대 동안 예주서와 ''산해경''에 오르도스 지역에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진과 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르도스 지역이 흉노의 고향으로 여겨지지만, 정확히 언제 이 지역을 점령했는지는 불분명하며, 고고학적 발견은 전통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일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28] 흉노는 지도자 묵특 선우 아래 기원전 160년경 월지 영토로 남쪽으로 확장하면서 월지를 격파하고 이식쿨에서 몰아냈다. 같은 시기에 흉노는 오르도스 지역도 점령하여 중국과 직접 접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흉노는 중국 영토에 여러 차례 파괴적인 침략을 감행했다(기원전 167년, 158년, 142년, 129년).[29] 이에 한나라 한무제는 기원전 2세기에 한-흉노 전쟁을 시작했고, 기원전 127년 오르도스 지역을 점령하여 삭방군을 설치하고 식민지화했다. 이 캠페인 이전에도 진나라와 조나라가 이 지역에 군현을 설치했었지만, 기원전 209년에 흉노에게 점령당한 바 있다.[30]
3. 2. 중국 왕조의 진출
기원전 1000년경 중국 문명은 화베이 평원 서쪽의 웨이 계곡과 펀강 유역으로 확장하며 발전했다. 웨이 계곡은 주나라와 진나라의 발흥지였으며,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세력은 북방 초원에서 말을 구하기 쉬운 이점이 있었다. 진나라와 한 왕조 시기에 오르도스 지역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전국 시대에는 진나라와 조나라가 오르도스 지역을 점령하기도 했다.[28] 중국 기록에 따르면 흉노가 이 시기 오르도스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28] 그러나 기원전 209년, 흉노는 이전에 진나라와 조나라가 설치했던 군현을 점령하였다.[30]
이후 한의 한무제는 기원전 2세기에 한-흉노 전쟁을 시작했으며, 기원전 127년에 오르도스 지역을 탈환하고 삭방군을 설치하여 직접적인 통치를 시도했다.[30] 이 지역은 현재의 만리장성 북쪽, 황하가 북쪽으로 가장 크게 굽이치는 곳의 남쪽에 해당한다.
3. 3. 한-흉노 전쟁과 오르도스 지역
중국 기록에 따르면, 흉노는 전국 시대 동안 예주서와 ''산해경''에 오르도스 지역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후 진나라와 조나라에 의해 점령되었다.[28] 흉노의 본거지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확히 언제 이 지역을 점령했는지는 불분명하며, 고고학적 발견은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일 가능성을 시사한다.[28]흉노는 지도자 묵특 선우 아래 기원전 160년경 월지 영토로 남쪽으로 확장하면서, 월지는 차례로 사카스(스키타이)를 격파하고 이식쿨에서 몰아냈다.[29] 흉노는 또한 이 시기에 오르도스 지역을 점령하여 중국과 직접 접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흉노는 중국 영토에 여러 차례 파괴적인 침략을 감행했다(기원전 167년, 158년, 142년, 129년).[29]
이에 한나라의 한무제는 기원전 2세기에 한-흉노 전쟁을 시작했고, 기원전 127년에는 오르도스 지역을 점령하여 삭방군을 설치하고 지배하에 두었다.[30] 이 캠페인 이전에도 진나라와 조나라가 이미 이 지역에 지휘부를 설치했었으나, 기원전 209년에 흉노에게 점령당한 바 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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