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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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1949년 창설된 일본 프로 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으로, 1954년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로 개칭하여 신일본 리그에 참가했다. 1955년 이스턴 리그에 참가했으며, 1961년 1군과 같은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대에는 팜에서 황금 시대를 구축했고, 2011년에는 '제2의 2군'을 설립, 2016년에는 3군을 정식 발족했다. 현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을 본거지로 사용하며, TOKYO GIANTS TOWN 건설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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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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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팀 이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영문 팀 이름 | Yomiuri Giants |
회사명 | 주식회사 요미우리 교진군 |
![]() | |
연고지 |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다마구 |
홈구장 |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
수용 인원 | 4,000명 |
구단주 | 야마구치 히사카즈 |
스폰서 |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
감독 | 아베 신노스케 |
리그 정보 | |
소속 리그 | 이스턴 리그 (일본) |
가맹 단체 | 이스턴 리그 (일본) |
창설 | 1949년 |
팀 역사 | |
이전 팀 이름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49년 ~ 1953년)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 (1954년 ~ 1955년) (리그 중단으로 불명)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1년 ~ 현재) |
리그 우승 | |
리그 우승 횟수 | 28회 |
리그 우승 연도 | 1961 1965 1966 1967 1969 1973 1974 1976 1977 1978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2000 2007 2009 2015 2016 2017 2018 2023 |
시리즈 우승 | |
시리즈 우승 횟수 | 8회 |
시리즈 우승 연도 | 1987 1988 1989 1991 1992 1993 1995 2016 |
2. 역사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2 리그 분열 전 해인 1949년에 창단되었다. 이는 일본 프로 야구의 초기 팜 시스템 구축 과정의 일부였다. 1950년 여름에는 오사카 타이거스 2군, 쇼치쿠 로빈스 2군과 함께 홋카이도 순회 경기를 가졌고, 같은 해 11월 프로 야구 2군 선수권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1954년에는 센트럴 리그 2군 팀들이 모여 신일본 리그를 결성하면서 팀명을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Yomiuri Junior Giants|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영어)로 바꾸고 요코하마시를 연고지로 삼았다. 이 해 신일본 리그 전기 리그에서 우승했으나, 최종 우승 결정전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1955년 팜 리그가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로 재편되면서 신일본 리그는 해체되었고,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는 이스턴 리그(제1기)에 참가했다. 리그 운영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1961년 이스턴 리그(제2기)가 재개되면서 팀명에서 '주니어'를 빼고 1군과 같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강력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팜 리그의 황금기를 누렸다. 1987년부터 시작된 주니어 일본 선수권에서 1995년까지 9년 연속 출전하여 7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1997년 팜 일본 선수권으로 대회가 재개된 이후로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리그 우승에 그쳤다.
2009년에는 선수 육성을 위해 지바 롯데 마린스 2군과 연합팀 시리우스를 잠시 운영했으며[1], 2011년에는 사실상의 3군인 '제2의 2군'을 설립했다. 이후 운영 방식에 대한 논의를 거쳐 2016년 정식으로 3군을 발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1. 창단 초기 (1949년 ~ 1954년)
2 리그 분열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49년에 결성되었다. 이는 프로 구단 2군으로는 1948년에 결성된 급영 칙 플라이어스와 금성 리틀 스타즈(금성 스타즈 2군)에 이어 세 번째이며, 같은 해에 한큐 브레이브스 2군과 난카이 호크스 2군도 창단되었다.1950년 여름에는 오사카 타이거스 2군, 쇼치쿠 로빈스 2군과 함께 3개 구단이 홋카이도 순회 경기를 가졌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프로 야구 2군 선수권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난카이 호크스 2군에게 0-5로 패배했다.
1954년에는 1952년에 결성된 간사이 팜 리그에 대응하기 위해 센트럴 리그 소속 6개 구단의 2군 팀들이 모여 신일본 리그를 만들었다. 이때 각 구단은 1군과는 다른 팀 이름과 연고지를 정했는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Yomiuri Junior Giants영어)로 이름을 바꾸고 요코하마시를 연고지로 삼았다.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는 1954년 신일본 리그 전기 리그에서 18승 5패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후기 리그 우승팀인 한신 재규어스(오사카 타이거스 2군이 이름을 바꾼 팀)와 2선승제 우승 결정전을 치렀으나, 1승 2패로 패배하여 최종 준우승에 머물렀다.
2. 2. 신일본 리그 참가와 이스턴 리그 재편 (1954년 ~ 1961년)
1954년, 간사이 팜 리그에 대항하기 위해 센트럴 리그 소속 6개 구단의 2군 팀들이 모여 신일본 리그를 결성했다. 이 과정에서 각 구단은 1군과는 다른 별도의 구단명과 본거지를 설정하게 되었는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読売ジュニアジャイアンツ|요미우리 주니아 자이안츠일본어)로 팀 이름을 바꾸고 요코하마시를 새로운 본거지로 삼았다.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는 1954년 신일본 리그 전기 리그에서 18승 5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후기 리그 우승팀인 한신 재규어스(오사카 타이거스 2군이 명칭 변경)와의 2선승제 우승 결정전에서는 1승 2패로 패배하며 최종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1955년 시즌 도중, 일본 프로야구 팜 시스템이 이스턴 리그(제1기)와 웨스턴 리그의 양대 리그 체제로 재편되면서 신일본 리그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도 이스턴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리그 운영 방침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리그는 장기간 중단 상태에 놓였다. 이후 1961년에 이르러서야 이스턴 리그(제2기)가 다시 운영을 시작했으며, 이때 요미우리 2군은 팀명에서 "주니어"를 제외하고 1군과 동일한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2. 3. 황금 시대와 팜 일본 선수권 (1980년대 ~ 1997년)
1980년대 중반,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팜(2군)에서의 황금 시대를 맞이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스도 유타카는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아 1990년 다이요 웨일스 1군 감독으로 발탁되었고, 팀을 오랜만에 A클래스(리그 3위 이상)로 이끄는 성과를 거두었다.1987년부터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의 우승팀이 맞붙는 주니어 일본 선수권이 시작되었다. 요미우리 2군은 이 대회에 9년 연속으로 출전하여 1995년까지 7번이나 우승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6년 대회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1997년 팜 일본 선수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열렸다. 이후 리그 우승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그쳤으며, 선수권에서는 모두 주니치 드래건스 2군에게 패배했다.
2. 4. 2군과 3군의 운영 (2000년대 ~ 현재)
이승엽은 2008년과 2009년 1군 성적이 부진할 때 2군에 머물렀으며[12], 2군 경기에도 간간이 출전했다.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군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김기태는 당시 2군 타격코치와 함께 이승엽을 지도했다고 회상했다. 김기태는 이승엽 전담 코치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군 타격코치와 3군 감독까지 역임했다.[13]2009년에는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할 목적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 2군과의 연합 팀인 시리우스를 결성했다.[1] 자이언츠 구장과 롯데 우라와 구장에서 '시리우스 GAME'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인 야구팀과 경기를 치렀으나, 2010년을 끝으로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2011년부터는 사실상의 '3군' 역할을 하는 '제2의 2군'을 발족했다. 이는 2군 주전 선수들과의 경쟁을 유도하고, 경기 출전 기회가 적은 젊은 선수나 육성·연수생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들은 주로 사회인 야구, 세미 프로 독립 리그, 그리고 특정 기간(3월, 8월)에는 대학 야구 팀과 교류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2013년 1월 11일 자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2], '제2의 2군' 강화 방침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당초 목표했던 '다수 연성'이 오히려 수비 위치 편중이나 부상자 발생 시 원래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게 하거나, 부상이 낫지 않은 선수를 억지로 출전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육성의 수단'이 '육성의 목적'이 되어버렸고, 강화 시작 후 2년간 1군에 승격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는 육성 선수(연습생) 수를 줄이고, 2군 공식 경기를 통해 선수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다만, 실전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프로-아마추어 또는 독립 리그와의 교류 경기, 퓨처스와의 경기 등 비공식전은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2015년 10월, 요미우리는 2016년부터 '제2의 2군'을 정식 '3군'으로 발전시켜 발족한다고 발표했다.[3] 기본적으로 '제2의 2군' 시절과 유사하게 운영되며, 육성(연습생) 계약 선수들을 중심으로 20~25명 규모로 편성된다. 독립 리그, 사회인 야구, 대학 팀과의 교류전을 중심으로 연간 약 90경기의 대외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2016년에는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BC 리그)와 48경기[4],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와 12경기를 실시했다.
2. 5. 연혁
2 리그 분열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49년에 창단되었다. 이는 프로 야구 구단의 팜(2군) 중에서는 1948년에 결성된 급영 칙 플라이어스와 금성 리틀 스타즈(금성 스타즈 2군)에 이어 세 번째이며, 같은 해에는 한큐 브레이브스 2군과 난카이 호크스 2군도 창단되었다.1950년 여름에는 오사카 타이거스 2군, 쇼치쿠 로빈스 2군과 함께 3개 구단이 홋카이도 순회 경기를 가졌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프로 야구 2군 선수권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난카이 호크스 2군에게 0-5로 패배했다.
1954년에는 간사이 팜 리그(1952년 창설)에 대응하기 위해 센트럴 리그 소속 6개 구단의 2군이 모여 신일본 리그를 결성했다. 이 과정에서 각 구단은 1군과 별개의 구단명과 본거지를 설정하게 되었고, 요미우리 2군은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Yomiuri Junior Giants|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eng)로 명칭을 바꾸고 요코하마시를 본거지로 삼았다.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는 1954년 전기 리그에서 18승 5패의 성적으로 우승했다. 후기 리그 우승팀인 한신 재규어스(오사카 타이거스 2군이 명칭 변경)와 2선승제 우승 결정전을 치렀으나, 1승 2패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55년 시즌 중 팜 리그가 이스턴 리그(제1기)와 웨스턴 리그의 각 7개 구단 체제로 재편되면서 신일본 리그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는 이스턴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으나, 리그 운영 방침이 확정되지 않아 장기간 중단되었다가 1961년에 이스턴 리그(제2기)가 재개되었다. 이때 구단명에서 '주니어'가 빠지면서 1군과 동일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팜 리그에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스도 유타카는 지도력을 인정받아 1990년 다이요 웨일스 1군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오랜만에 A클래스(리그 상위권)로 이끌기도 했다. 1986년에는 타마가와 그라운드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으로 본거지를 이전했다. 1987년부터 이스턴 리그와 웨스턴 리그 우승팀 간의 경기로 시작된 주니어 일본 선수권에 9년 연속 출전하여 1995년까지 7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6년 대회가 중단된 후 1997년에 팜 일본 선수권으로 명칭이 바뀌어 재개된 이후로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리그 우승에 그쳤으며, 두 번의 선수권 모두 주니치 드래건스 2군에게 패배했다.
2009년에는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더 많이 제공하기 위해 지바 롯데 마린스 2군과 연합팀인 시리우스를 결성했다.[1] 자이언츠 구장과 롯데 우라와 구장에서 '시리우스 GAME'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인 야구 팀과 경기를 치렀으나, 2010년을 끝으로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2011년부터는 실질적인 '3군' 역할을 하는 '제2의 2군'을 설립했다. 이는 2군 주전 선수들과의 경쟁을 유도하고, 경기 출전 기회가 적은 젊은 선수나 육성·연수생 선수(연습생)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여 사회인 야구 팀, 세미 프로 독립 리그 팀, 그리고 3월과 8월에는 대학 야구 팀과 교류 경기를 다수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산케이 신문 2013년 1월 11일자 보도[2]에 따르면, '제2의 2군' 강화 방침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당초 목표였던 '다수 연성(많은 선수를 키워냄)' 방침이 수비 위치 중복이나 부상자 발생으로 인해 선수가 원래 포지션이 아닌 다른 곳을 맡거나,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선수를 무리하게 출전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이로 인해 '육성의 수단'이 '육성의 목적'이 되어버렸고, 강화 시작 후 2년 동안 1군으로 승격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2013년도부터는 육성 선수(연습생) 수를 줄이고, 2군 공식 경기를 통해 선수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또한, 2군 공식 경기 전후에 프로·아마추어 또는 독립 리그 팀과의 교류 경기나 퓨처스 경기 등 비공식 경기를 통해 실전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계속 모색하기로 했다.
2015년 10월, 2016년부터 '제2의 2군'을 정식 '3군'으로 승격시켜 창설한다고 발표했다.[3] 기본적으로 '제2의 2군' 시절과 유사하게 육성(연습생) 계약 선수 중심으로 20~25명 규모로 편성하며, 독립 리그, 사회인 야구, 대학 야구 팀과의 교류전을 중심으로 연간 90경기 정도의 대외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독립 리그와의 교류전의 경우, 2016년에는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BC 리그)와 48경기[4],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와 12경기를 실시했다.
연도 | 내용 |
---|---|
1949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창설 |
1954년 | 신일본 리그 참가, 요미우리 주니어 자이언츠로 개칭, 요코하마시 연고 |
1955년 | 이스턴 리그(제1기) 참가 |
1961년 | 이스턴 리그(제2기) 재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명칭 환원 |
1986년 | 타마가와 그라운드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으로 본거지 이전 |
2009년 | 롯데 2군 및 육성 선수와 연합팀 시리우스 결성 |
2011년 | 제2의 2군(실질적 3군) 설립 |
2016년 | 정식 3군 창설 |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은 1986년부터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다마구의 요미우리 랜드 내에 위치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을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2025년을 목표로 도쿄도 이나기시에 건설 중인 "TOKYO GIANTS TOWN" 내 신구장으로 이전할 예정이며, 기존 자이언츠 구장은 주로 3군 구장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신구장 완공 전까지는 2017년부터 도쿄도 마치다시의 마치다시 오노지 구장을 3군의 준 홈구장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다.
3. 본거지
과거에는 인기 구단의 특성상 팜 팀임에도 불구하고 홋카이도, 도호쿠, 시즈오카 등 일본 각지에서 지방 주최 홈 경기를 다수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서 2군 시설을 유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7], TOKYO GIANTS TOWN 구상이 발표되면서 이는 사실상 무산되었다.
3. 1. 현재 본거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다마구, 요미우리 랜드 내)을 1986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2군은 2025년을 목표로 건설 예정인 "TOKYO GIANTS TOWN" 내의 신구장으로 이전할 예정이며, 기존 자이언츠 구장은 주로 3군 구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또한, 2017년부터 TOKYO GIANTS TOWN 완공까지는 도쿄도 마치다시의 마치다시 오노지 구장을 3군의 준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인기 구단의 특성상, 과거에는 팜 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방 주최 홈 경기를 다수 개최했다. 홋카이도를 시작으로, 당시 1군의 개최가 적었던 도호쿠나 시즈오카 등에도 원정을 다녔다.
2016년 10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2군 구장으로부터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도쿄도 이나기시 미나미야마 동부 지구에 "TOKYO GIANTS TOWN"을 건설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천연 잔디와 테라스석, 데크석을 갖춘 신구장과 상업 시설을 건설하여 야구 외에도 즐길 수 있는 도민의 휴식 공간을 목표로 하며, 이나기시를 비롯한 다마 지역의 진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2023년 3월 말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약간의 변경을 거쳐 예정보다 2년 늦은 2025년 3월 구장 개장, 전체 개장은 2026년도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1]
3. 2. 과거 본거지
3. 3. TOKYO GIANTS TOWN 구상
2016년 10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도쿄도 이나기시 미나미야마 동부 지구(스카이테라스 미나미야마)에 "TOKYO GIANTS TOWN"을 건설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 지역은 기존 2군 구장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이 발표는 과거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서 2군 유치를 추진하던 계획이 사실상 무산된[7] 이후 나온 것이다."TOKYO GIANTS TOWN" 구상은 천연 잔디와 테라스석, 데크석을 갖춘 신구장과 상업 시설을 건설하여 야구 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나기시를 포함한 다마 지역의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당초 2023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계획이 일부 변경되어 신구장은 2025년 3월에 개장하고, 전체 시설은 2026년도에 개장할 예정이다. 신구장이 완공되면 2군은 이곳으로 이전하며, 기존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은 주로 3군 구장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4. 역대 감독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 시스템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감독 직책을 운영해왔다. 주요 직책으로는 2군 감독을 비롯하여, 특정 시기 선수 육성 강화를 위해 운영된 3군 감독과 육성 치프 코치(2011년~2014년, 사실상 3군 감독 역할)가 있다. 2022년에는 팜(2군) 육성 부문 전체를 총괄하는 팜 총감독 직책이 신설되었다.[8] 각 직책별 역대 감독의 상세 정보는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1. 2군 감독
이승엽이 2008년과 2009년 1군 성적 부진으로 2군에 머물렀을 때[12],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군에서 코치 연수 중이던 김기태가 이승엽의 전담 코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김기태는 이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군 타격코치와 3군 감독을 역임했다.[13]역대 2군 감독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우승을 달성한 감독이다 (1953년 이전과 1956년~1960년은 리그전 없음).
- 우노 미츠오 (1950년 ~ 같은 해 도중)
- 우치보리 야스시 (1952년 ~ 1954년, 제1차)
- 닛타 쿄이치 (1955년, 제1차)
- 우치보리 야스시 (1956년, 제2차)
- 닛타 쿄이치 (1957년, 제2차)
- 지바 시게루 (1958년)
- 타케미야 토시아키 (1959년)
- 우치보리 야스시 (1961년, 제3차)
- 나카오 세키시 (1962년 ~ 1970년, 제1차)
- 시라이시 카츠미 (1971년)
- 나카오 세키시 (1972년 ~ 1973년, 제2차)
- 쿠니마츠 아키라 (1974년 ~ 1975년, 제1차)
- 세키네 준조 (1976년)
- 이와모토 타카시 (1977년 ~ 1980년)
- 쿠니마츠 아키라 (1981년 ~ 1985년, 제2차)
- 스도 유타카 (1986년 ~ 1989년)
- 마치다 유키히코 (1990년 ~ 1991년)
- 스에츠구 토시미츠 (1992년 ~ 1994년)
- 마츠모토 마사시 (1995년 ~ 1997년)
- 타카다 시게루 (1998년 ~ 2001년)
- 아와구치 켄지 (2002년 ~ 2003년)
- 타카하시 카즈미 (2004년 ~ 2005년)
- 요시무라 사다아키 (2006년 ~ 2008년)
- 오카자키 이쿠 (2009년 ~ 2010년, 제1차)
- 카와아이 마사히로 (2011년 ~ 2012년, 제1차)
- 오카자키 이쿠 (2013년 ~ 2015년, 제2차)
- 사이토 마사키 (2016년 ~ 2017년 7월)
- 우치다 준조 (2017년)
- 카와아이 마사히로 (2018년, 제2차)
- 타카다 마코토 (2019년)
- 아베 신노스케 (2020년 ~ 2021년)
- 니오카 토모히로 (2022년 ~ 2023년)
- 쿠와타 마스미 (2024년 ~ )
4. 2. 3군 감독
이승엽 선수가 2008년과 2009년 1군 성적이 좋지 않아 2군에 머물렀던 시기가 있었다.[12]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육성군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김기태는 이승엽의 전담 코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후 김기태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군 타격코치를 거쳐 3군 감독까지 역임하는 성과를 이루었다.[13]연도 | 감독 |
---|---|
2016년 - 2017년 | 가와아이 마사히로 |
2018년 | 에토 사토시 |
2019년 - 2020년 7월 30일 | 이노우에 신지 |
2020년 8월 1일 - 2021년 | 니오카 토모히로 |
2022년 - 현재 | 코마다 노리히로 |
4. 3. 육성 치프 코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배치되었던 직책으로, 사실상 3군에 해당하는 "제2의 2군"의 감독 역할을 담당했다. 2015년부터는 육성 치프 코치를 두지 않고 실질적으로 2군 감독이 겸임하게 되었다.- 2011년 ~ 2013년: 요시하라 코스케
- 2014년: 고토 타카시
4. 4. 팜 총감독
2022년에 신설된 직책으로, 유니폼을 착용하고 직접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팜(2군) 육성 부문의 총괄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맡는다.[8]- 2022년: 가와이 마사히로
- 2023년: 쿠와타 마스미
5. 팜 일본 선수권 성적
wikitext
연도 | 승리 팀 | 스코어 | 패전 팀 |
---|---|---|---|
1987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9 - 0 | 주니치 드래건스 |
1988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5 - 2 | 주니치 드래건스 |
1989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 - 0 | 오릭스 브레이브스 |
1990년 | 주니치 드래건스 | 6x - 4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1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8x - 7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92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x - 2 | 주니치 드래건스 |
1993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3 - 0 | 주니치 드래건스 |
1994년 | 오릭스 블루웨이브 | 6 - 4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5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 - 0 | 긴테쓰 버팔로스 |
2000년 | 주니치 드래건스 | 4 - 2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07년 | 주니치 드래건스 | 7 - 2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09년 | 주니치 드래건스 | 2 - 0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5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 - 0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6년 | 요미우리 자이언츠 | 6 - 2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17년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5 - 2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8년 | 한신 타이거스 | 8 - 4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23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6 - 5 | 요미우리 자이언츠 |
6. 방송 및 중계
- 지바 테레비 지타스 (현 닛테레 G+, 2002년~): 원칙적으로 자이언츠 구장, 도쿄 돔에서의 홈 경기를 중계한다.
- NNN24 (현·닛테레 NEWS24, ?~2001년): 과거 중계를 담당했다.
- GIANTS TV (구 자이언츠 LIVE 스트림, 2013년~): 구단 자체 인터넷 중계 서비스이다.
- GAORA: 파이터즈 가마가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닛폰햄 주최 경기를 중계한다.
- 스포츠 라이브 +: 소프트뱅크, 세이부 주최 경기를 중계한다.
- 이지 스포츠: 히로시마, 닛폰햄 이외의 구단이 주최하는 비지터 경기를 중계한다.
- 퍼시픽 리그 TV: 퍼시픽 리그 구단의 팜 팀이 주최하는 비지터 경기를 중계한다.
- DAZN: 세이부 주최 경기를 중계한다.
- U-NEXT: DeNA 주최 경기를 중계한다.
- 호랑이 TV: 한신 주최 경기를 중계한다.
지상파 중계는 거의 없지만, 에가와 스구루가 첫 등판한 고라쿠엔 구장에서의 롯데전을 닛폰 TV가 긴급 중계한 사례가 있다.
참조
[1]
뉴스
巨人とロッテが連合チーム「シリウス」を編成
https://web.archive.[...]
サンケイスポーツ
2009-03-02
[2]
뉴스
巨人「第二の2軍」わずか2季で解散…理想と現実、難しい育成
https://web.archive.[...]
[3]
웹사이트
「三軍」の設置について
https://www.giants.j[...]
読売ジャイアンツ
2015-10-22
[4]
뉴스
巨人3軍 BCリーグ8球団と交流戦48試合
https://www.sponichi[...]
2016-03-21
[5]
웹사이트
読売巨人軍・ファーム球場の新設と「TOKYO GIANTS TOWN」構想について
http://www.giants.jp[...]
読売巨人軍
2016-10-24
[6]
뉴스
巨人2軍が町田に準本拠 3軍発足で川崎の施設手狭に
https://www.sponichi[...]
스포츠니폰
2016-11-01
[7]
뉴스
つくば市、陸上競技場を3万人規模に
https://www.nikkei.c[...]
일경신문
2015-01-15
[8]
뉴스
川相昌弘氏が新たに巨人のファーム総監督に就任 宮本投手チーフコーチは野球振興業務へ
https://www.sanspo.c[...]
산케이스포츠
2021-11-15
[9]
뉴스
'"싫으면 1군에 올라가!" 신인들 치 떠는 요미우리의 독특한 \'전통\''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2022-04-03
[10]
뉴스
『TOKYO GIANTS TOWN』構想を中心とした 地域活性化の推進に関する稲城市との包括連携協定を締結
https://www.giants.j[...]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3-11-11
[11]
뉴스
楽天イーグルス、台湾遠征。台湾に遠征した日本プロ野球チームを振り返る
https://news.yahoo.c[...]
야후 재팬 뉴스
2024-02-15
[12]
뉴스
"'2군추락' 이승엽 기분은 OK…1군 복귀 아직 몰라"
https://sports.news.[...]
마이데일리
2020-10-20
[13]
뉴스
김기태 감독, 왜 신고선수들을 중용할까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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