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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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는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오페라 작곡가인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의 손자이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의 악보를 필사하며 독학했다. 1913년 파리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접하고 알프레도 카젤라를 만난 후, 이탈리아 고음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썼다. 말리피에로는 19세기 이전 이탈리아 음악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향곡, 오페라,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자유로운 형식과 비전통적인 악장 구성을 특징으로 하며, 제자로는 브루노 마데르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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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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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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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2년 3월 18일 |
출생지 | 베네치아, 이탈리아 |
사망 | 1973년 8월 1일 |
사망지 | 아솔로, 이탈리아 |
국적 | 이탈리아 |
직업 | 작곡가, 교육자 |
학력 | |
교육 기관 | 리체오 무시칼레 |
음악 스타일 | |
장르 | 근대 음악, 신고전주의 음악 |
2. 생애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는 오페라 작곡가였던 할아버지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의 영향을 받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1] 마르코 엔리코 보시에게 대위법을 배우다가 중단한 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나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와 같은 옛 이탈리아 음악가들의 악보를 직접 필사하며 독학했다. 이는 그가 평생 이탈리아 고악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다.[1] 1904년 볼로냐로 가서 보시에게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맹인 작곡가 안토니오 스마렐리아의 조수로 일했다.[2]
1913년 파리에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알프레도 카젤라를 만나게 된다.[2][3] 이 무렵, 성 체칠리아 음악 아카데미에 가명으로 제출한 5개의 작품 중 4개가 입상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21년 아솔로에 정착한 후, 1926년부터 1942년까지 몬테베르디 전집 교정에 힘썼고, 1952년 이후에는 안토니오 비발디 협주곡의 상당수를 교정했다. 1923년에는 카젤라, 가브리엘레 다눈치오와 함께 신음악 협회(Corporazione delle Nuove Musiche)를 설립했다.
1932년 베네치아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 1939년부터 1952년까지 운영을 맡았다. 1933년 루이지 피란델로의 대본으로 오페라 『바뀐 아들의 이야기』를 작곡하기 전까지 베니토 무솔리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이 작품으로 인해 파시스트당의 비난을 받았다.[1] 1935년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를 무솔리니에게 헌정했지만 소용없었다.
1936년부터 파도바 대학교에서 강의했고, 1952년 작곡에 전념하기 위해 다시 아솔로로 돌아갔다. 1973년 8월 1일 트레비소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1882-1913)
베네치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는 오페라 작곡가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의 손자였지만, 집안 문제로 인해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1] 1893년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별거하여 잔 프란체스코를 트리에스테, 베를린, 빈으로 데려갔다. 젊은 말리피에로와 그의 아버지는 격렬하게 관계를 끊었고, 1899년 말리피에로는 베네치아에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베네치아 ''음악 학교''(현재 베네데토 마르첼로 베네치아 음악원)에 입학했다.[1]마르코 엔리코 보시에게 대위법 수업을 중단한 후, 말리피에로는 베네치아의 ''마르시아나 도서관''에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와 같은 작곡가들의 악보를 베껴가며 독학을 계속했고, 이로써 그는 그 시대의 이탈리아 음악에 평생 헌신하게 되었다.[1] 1904년에는 볼로냐로 가서 보시를 찾아 볼로냐 ''음악 학교''(현재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 음악원)에서 그의 학업을 이어갔다.
1906년 그는 베네치아의 베네데토 마르첼로 음악원에 다시 돌아와 학업을 계속했다. 졸업 후 말리피에로는 시각 장애가 있는 작곡가 안토니오 스마레글리아의 조수가 되었다.[2]
2. 2. 파리에서의 전환점 (1913)
1913년, 말리피에로는 파리로 이주하여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마누엘 데 파야,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2][3]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초연에 참석한 후 알프레도 카셀라 및 가브리엘레 다시안눈치오를 만났다는 것이다.[2][3] 그는 이 경험을 "길고 위험한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는" 각성이라고 묘사했다.[1][2] 그 후 그는 1910-11년에 작곡한 ''진실에서 얻은 인상''(Impressioni dal vero)을 제외하고는 그 당시까지 작곡했던 거의 모든 작품을 거부했다.[1]이 무렵, 말리피에로는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에 다른 가명을 사용하여 5개의 작품을 제출했는데, 그 중 4개가 동시에 입선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 3. 로마와 아솔로에서의 활동 (1917-1973)
1917년,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말리피에로는 베니스에서 도망쳐 로마에 정착해야 했다.[2]1923년, 알프레도 카셀라, 가브리엘레 다시안눈치오와 함께 누오베 무지케 협회를 창립했다. 말리피에로는 베니토 무솔리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루이지 피란델로의 대본인 ''바뀐 아들의 이야기''를 작곡하면서 파시스트들의 비난을 받았다.[1] 이후, 말리피에로는 오페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무솔리니에게 헌정했지만, 이는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21년부터 1924년까지 파르마 음악원에서 작곡 교수로 재직했다. 1932년에는 베네치아 베네데토 마르첼로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었으며, 1939년부터 1952년까지 이 음악원을 이끌었다. 그는 루이지 노노와 그의 조카 리카르도 말리피에로를 가르쳤다.
1923년 아솔로에 영구적으로 정착한 후,[5] 1926년부터 1942년까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모든 작품을 편집했고, 1952년 이후에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콘체르토 작품을 많이 편집하여 ''이탈리아 안토니오 비발디 연구소''에서 출판했다.
3. 작품 세계
말리피에로는 오스트리아-독일 작곡가들이 주도하는 음악 전통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신 그는 19세기 이전 이탈리아 음악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그의 관현악 작품에는 17개의 교향곡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중 11개만 번호가 매겨져 있다. 말리피에로는 50세가 넘은 1933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 전에는 "교향곡"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오스트리아-독일 교향곡 전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5] 예외적으로 ''Sinfonia degli eroi''(1905), ''Sinfonia del mare''(1906), ''Sinfonie del silenzio e della morte''(1909–1910)와 같은 초기 작품에서 "교향곡"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이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스타일이 아닌 교향시로 해석되어야 한다.[5]
1950년대 중반, 말리피에로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침묵의 휴지''(관현악, 1917), ''리스페티 에 스트람보티''(현악 사중주, 1920), ''오르페이데''(무대 작품, 1918-1922, 1924년 초연), ''수난''(미스터리극, 1935), 그리고 193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작곡된 9개의 교향곡(이후 몇 년 동안 추가 교향곡 작곡)을 꼽았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 중에서는 관현악을 위한 ''자연의 인상''이 가장 오래 지속될 중요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5]
말리피에로는 알프레도 카셀라와 함께 이탈리아 기악 부흥에 힘쓴 "1880년대 출생 작곡가"에 속한다. 초기에는 드뷔시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풍으로 작곡했다. 자유로운 형식, 비전통적인 악장 구성, 참신한 화성법과 선적인 대위법을 사용했으며, 소나타 형식이나 푸가에 얽매이지 않았다. 카젤라만큼 극단적인 변화를 겪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적인 선율의 매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교향곡 중 4번은 쿠세비츠키 부인 나탈리아를 추모하는 음악이며, 6번은 현악 합주를 위한 작품이다.
그의 제자로는 브루노 마데르나 등이 있다. 달라피콜라와는 달리, 무조 음악이나 12음 기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새로운 작곡 기법에 도전하는 것에는 관대했다.
3. 1. 초기: 인상주의의 영향
말리피에로는 오스트리아-독일 작곡가들이 지배하는 음악 전통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대신 19세기 이전 이탈리아 음악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초기 작품은 주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특히 드뷔시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형식과 비전통적인 악장 구성, 참신한 화성법과 선적인 대위법을 사용하여 작곡을 계속했다. 따라서 소나타 형식이나 푸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다. 카젤라만큼 극단에서 극단으로 옮겨 다니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적인 선율의 매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관현악을 위한 ''Impressioni dal vero''를 자신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중요성을 가진 초기 작품으로 여겼다.[5]3. 2. 전환점: 이탈리아 고음악으로의 회귀
말리피에로는 알프레도 카셀라와 함께 이탈리아 기악 부흥에 힘쓴 "1880년대 출생 작곡가"에 속한다. 초기 말리피에로의 작품은 주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특히 클로드 드뷔시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형식과 비전통적인 악장 구성, 참신한 화성법과 선적인 대위법을 사용하여 작곡을 계속했다. 따라서 소나타 형식이나 푸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다. 카셀라만큼 극단에서 극단으로 옮겨 다니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적인 선율의 매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수의 교향곡 중 제4번은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부인 나탈리아를 추모하는 음악이며, 제6번은 현악 합주를 위한 작품이다.브루노 마데르나 등이 그의 제자이다. 루이지 달라피콜라와는 달리, 스스로 무조 음악이나 12음 기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새로운 작곡 기법에 도전하는 것에 관대했다고 전해진다.
3. 3. 음악 이론 및 스타일
말리피에로는 소나타 형식과, 일반적으로 작곡에서의 표준적인 주제 전개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6]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실 저는 주제 전개의 쉬운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질렸고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제를 찾아서, 뒤집고, 해체하고, 부풀리면, 교향곡(또는 소나타)의 제1악장을 아마추어들이 즐겁게 하고 지각력 부족한 지식인들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6]
말리피에로의 음악적 언어는 극단적인 형식적 자유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항상 변주의 학문적 규율을 포기하고, 더 무정부적인 표현인 노래를 선호했으며, 표제 음악의 묘사주의에 빠지는 것을 피했다. 1950년대 전반까지 말리피에로는 온음계에 묶여, 19세기 이전의 이탈리아 기악 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와의 연결을 유지했으며, 이후 점차적으로 점점 더 기괴하고 긴장된 영역으로 이동하여 그를 완전한 반음계주의에 더 가깝게 만들었다. 그는 이전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재창조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그의 제자인 루이지 노노와 브루노 마데르나의 제안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주제적 작곡만큼이나 자유롭고 비주제적인 구절을 기반으로 하며, 악장이 시작된 조표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1]
말리피에로는 교향곡에 접근할 때, 소위 베토벤 이후의 의미로 접근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작가들은 그의 작품을 "신포니아"(이탈리아어)라고 묘사하여 말리피에로의 근본적으로 이탈리아적이고 반-게르만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1]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탈리아 교향곡은 변덕스럽게 서로 따르는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종류의 시이며, 본능이 인식하는 신비로운 법칙에만 복종한다.[1]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한때 선언했듯이, "이 교향곡들은 주제적이지 않고 '동기적'이다. 즉, 말리피에로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멜로디 동기를 사용하며 [...] 그들은 다른 동기를 생성하고, 다시 나타나지만, 음악적 담론을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의해' 전달된다."[1]
말리피에로는 카젤라와 함께 이탈리아 기악 부흥에 힘쓴 "1880년대 출생 작곡가"에 속한다. 초기 말리피에로의 작품은 주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 특히 드뷔시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형식과 비전통적인 악장 구성, 참신한 화성법과 선적인 대위법을 사용하여 작곡을 계속했다. 따라서 소나타 형식이나 푸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다. 카젤라만큼 극단에서 극단으로 옮겨 다니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적인 선율의 매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수의 교향곡 중 제4번은 쿠세비츠키 부인 나탈리아를 추모하는 음악이며, 제6번은 현악 합주를 위한 작품이다.
제자로는 브루노 마데르나 등이 있다. 달라피콜라와는 달리, 스스로 무조 음악이나 12음 기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새로운 작곡 기법에 도전하는 것에 관대했다고 전해진다.
3. 4. 주요 작품
말리피에로는 생전에 여러 편의 주요 작품을 남겼는데, 본인이 직접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다음의 작품들을 꼽았다.- 관현악을 위한 ''침묵의 휴지''(1917)
- 현악 사중주를 위한 ''리스페티 에 스트람보티''(1920)
- 1924년에 초연된 무대 작품 ''오르페이데''(1918-1922)
- 미스터리극 ''수난''(1935)
- 9개의 교향곡 (1933-1955, 목록 작성 이후 몇 년 동안 추가 작곡)
말리피에로는 자신의 초기 작품 중에서는 관현악을 위한 ''자연의 인상''이 가장 오래 지속될 중요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5]
말리피에로의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오페라'''
- ''오르페이데''(1919–1922, 뒤셀도르프 1925), 3부작:
- 1부 "가면의 죽음"
- 2부 "일곱 개의 노래"
- 3부 "오르페오"
- ''세 편의 카를로 골도니 코미디''(1920–1922, 다름슈타트 1926):
- 1부 "카페"
- 2부 "시오르 토데로 브론톨론"
- 3부 "키오차의 싸움"
- ''필로멜라와 몽상가''(1925, 프라하 1928)
- ''토르네오 노투르노''(1929)
- ''바뀐 아들의 이야기''(루이지 피란델로 대본, 1933)
- ''율리우스 카이사르(셰익스피어 원작)''(1935, 제노바 1936)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셰익스피어 원작, 1937, 피렌체 1938)
- ''칼로의 변덕''(E.T.A. 호프만 원작, 1942, 로마 1942)
- ''즐거운 여단''(1943, 밀라노 1950)
- ''천상의 세계와 지옥의 세계''(1949, 베네치아 1961)
- ''방탕한 아들''(1952, 피렌체 1957)
- ''도나 우라카'', 단막극(1954)
- ''갇힌 비너스''(1955, 피렌체 1957)
- ''말 마부''(1960, 트레비소 1969)
- ''돈 조반니''(1963, 나폴리)
- ''카르나스치알레와 사순절의 공연과 축제''(오페라 발레, 1961, 베네치아 1970)
- ''보나벤투라의 변신''(베네치아 1966)
- ''돈 타르투포 바케토네''(1966, 베네치아 1970)
- ''이스카리옷''(1971)
'''관현악곡'''
- ''다이 세폴크리'' (1904)
- ''신포니아 델리 에로이'' (1905)
- ''신포니아 델 마레'' (1906)
- ''신포니아 델 실렌치오 에 데 라 모르테'' (1909–1910)
- ''임프레소니 달 베로'' 1부 (1910)
- ''임프레소니 달 베로'' 2부 (1915)
- ''디티람보 트라지코'' (1917)
- ''파우제 델 실렌치오'' (1917)
- ''그로테스코'' (1918)
- 발레 ''판테아'' (1919)
- ''치마로시아나'' (1921), 치마로사의 건반 작품에서 발췌한 5개의 교향곡 단편
- ''임프레소니 달 베로'' 3부 (1922)
- ''콘체르티'' (1931)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번'' (1931)
- ''인니'' (1932)
-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번'' (1932)
- ''세테 인벤치오니'' (1933)
- ''교향곡 1번 "콰트로 템피, 코메 레 콰트로 스타지오니"'' (1933)
- ''교향곡 2번 "엘레지아카"'' (1936)
-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37)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2번'' (1937)
-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관현악을 위한 ''콘체르토 아 트레'' (1938)
- ''교향곡 3번 "델레 캄파네"'' (1944–1945)
- ''교향곡 4번 "인 메모리암"'' (1946)
- ''교향곡 5번 "콘체르탄테 인 에코"'' (1947)
- ''교향곡 6번 "델리 아르키"'' (1947)
- 발레 ''스트라디바리오'' (1948)
- ''교향곡 7번 "델레 칸초니"'' (1948)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3번'' (1948)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4번'' (1950)
- ''신포니아 인 운 템포'' (1950)
- ''황도 12궁 교향곡'' "콰트로 파르티테: 달라 프라베라 알린베르노" (1951)
- 발레 ''엘 몬도 노보'' (1951)
- ''비발디아나'' (1952)
- ''파사칼리에'' (1952)
- ''판타지에 디 오지 조르노'' (1953)
- ''엘레지아 카프리치오'' (1953)
- ''판타지에 콘체르탄티'' (1954)
- ''노투르노 디 칸티 에 발리'' (1957)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5번'' (1958)
- ''신포니아 페르 안티게니다'' (1962)
-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2번'' (1963)
- ''교향곡 8번 "심포니아 브레비스"'' (1964)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6번'' (1964)
- ''교향곡 9번 "델라힘메"'' (1966)
- ''교향곡 10번 "아트로포"'' (1966–1967)
- ''플루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1968)
- ''교향곡 11번 "델레 코르나무세"'' (1969)
- ''가브리엘리아나'' (1971)
- ''오마지오 아 벨몬테'' (1971)
'''실내악'''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07–1908)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칸토 델라 론타난차'' (1919)
- ''현악 사중주 1번 "리스페티 에 스트람보티"'' (1920)
- ''현악 사중주 2번 "스토르넬리 에 발라테"'' (1923)
- ''현악 사중주 3번 "칸타리 알라 마드리갈레스카"'' (1931)
- 바이올린, 오보에, 비올라 및 바순을 위한 ''에포디 에 잠비'' (1932)
- ''현악 사중주 4번'' (1934)
- 플루트, 하프,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소나타 아 친퀘'' (1934)
- ''현악 사중주 5번 "데 카프리치"'' (1941–1950)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1942)
- ''현악 사중주 6번 "라르카 디 노에"'' (1947)
- ''현악 사중주 7번'' (1950)
-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및 바순을 위한 ''소나타 아 콰트로'' (1954)
- 10개의 악기를 위한 ''세레나타 마투티나'' (1959)
- 바순과 10개의 악기를 위한 ''세레나타'' (1961)
- 14개의 악기를 위한 ''마키네'' (1963)
- ''현악 사중주 8번 "페르 엘리자베타"'' (1964)
- 14개의 악기 및 타악기를 위한 ''엔데카토데'' (1966)
'''피아노곡'''
- 6개의 ''모르소 (6개의 곡)'' (1905)
- ''알바, 메리지오, 노테의 빛나는 기행'' (1908)
- 3개의 ''고대 무곡'' (1910)
- ''달의 소품'' (1909–10)
- ''피아놀라를 위한 3개의 즉흥곡''
- ''인상'' (1914년 이전)
- ''가을 전주곡'' (1914)
- ''아솔라 시'' (1916)
- ''바르루미'' (1917)
- ''지나가는 가면'' (1918)
- ''공명'' (1918)
- ''낮잠'' (1920)
- ''클로드 드뷔시에게'' (1920)
- ''오마주: 앵무새에게, 코끼리에게, 바보에게'' (1920)
- ''기마 행진'' (1921)
- ''좀'' (1922)
- ''부활절'' (1924)
- ''3개의 전주곡과 푸가'' (1926)
- ''묘비명'' (1931)
- ''상상의 푸가를 위한 전주곡'' (1932)
- ''Ca'Tiepolo의 미뉴에트'' (1932)
- ''전주곡, 리듬과 그레고리오 성가'' (1937)
- ''전주곡과 푸가'' (1940)
- ''호르투스 콘클루수스'' (1946)
- ''스트라디바리오'' (피아노 2대를 위한) (1955)
- 대화 제2번 (피아노 2대를 위한) (1955)
- 5개의 ''내일을 위한 습작'' (1959)
- ''마누엘 데 파야의 "사랑의 마법"의 판토마임에 대한 변주곡'' (1959)
- ''백과 흑'' (1964)
4. 평가 및 영향
프랑스 지휘자 안토니오 드 알메이다는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낙소스(마르코 폴로, 1993–1994)에서 말리피에로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했다.
최근, 말리피에로의 피아노 레퍼토리는 그의 모든 협주곡을 포함하여, 저명한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산드로 이보 바르톨리에 의해 부활했다.
말리피에로는 1985년 게오르그 브린트루프가 제작한 전기 영화 ''아솔로의 시''의 주인공이었다.
5. 참고 문헌
- Steel|강철영어 (1933)
- 소르체 켈러, 마르첼로. "격언에 대한 갈망: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의 음악과 그의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언급", ''음악 평론'', XXXIX(1978), 3–4호, 231–239.
- 존 C. G. 워터하우스: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1882-1973): 길 잃은 천재의 삶, 시대, 그리고 음악''. 하우드 아카데믹 출판사, 암스테르담 1999.
참조
[1]
서적
Gian Francesco Malipiero (1883–1973)
Naxos
1993
[2]
웹사이트
G.F.MALIPIERO – LIFE
http://www.rodoni.ch[...]
rodoni.ch
[3]
간행물
«Caro Lualdi…». I rapporti d'arte e d'amicizia tra G.F.Malipiero e A.Lualdi alla luce di alcune lettere inedite
http://www.rodoni.ch[...]
[4]
웹사이트
G.F.Malipiero
http://www.universal[...]
Universal Edition
[5]
서적
Gian Francesco Malipiero (1883–1973)
Naxos
1993
[6]
논문
"L'opera di Gian Francesco Malipiero"
http://www.rodoni.ch[...]
Edizioni di Treviso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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