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킨스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톰킨스군은 미국 뉴욕주 서부 중부에 위치한 카운티로, 1817년 세네카군과 카유가군의 일부를 합쳐 설립되었다. 군청 소재지는 이타카이며, 핑거 레이크스 지역에 속한다. 톰킨스군은 1,270km²의 면적을 가지며, 이타카 시와 여러 타운,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코넬 대학교, 이타카 칼리지, 톰킨스 커틀랜드 커뮤니티 칼리지 등 교육 시설이 위치해 있으며, 이타카 시립 학군을 비롯한 여러 학군이 존재한다. 1856년부터 1980년까지는 공화당 지지 성향을 보였으나, 이후 민주당의 강세 지역으로 변화했다. 2022년 추정 인구는 104,777명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뉴욕주의 군 - 새러토가군
새러토가군은 뉴욕주 동부에 위치하며, 미국 독립 전쟁의 중요한 전투지이자 철도와 수력 발전을 기반으로 19세기 산업이 발전했으며, 현재는 첨단 기술 및 관광 산업의 중심지이고 군청 소재지는 볼스턴 스파이다. - 뉴욕주의 군 - 에식스군 (뉴욕주)
에식스군은 뉴욕주 북동부에 위치하며 버몬트주와 챔플레인 호수를 경계로 인접하고,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알려진 뉴욕주에서 두 번째로 넓은 군으로, 군청 소재지는 엘리자베스타운이다. - 표시 이름과 문서 제목이 같은 위키공용분류 - 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표시 이름과 문서 제목이 같은 위키공용분류 - 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한국어 위키백과의 링크가 위키데이터와 같은 위키공용분류 - 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한국어 위키백과의 링크가 위키데이터와 같은 위키공용분류 - 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톰킨스군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 |
| 기본 정보 | |
![]() | |
![]() | |
| 별칭 | 해당 없음 |
| 모토 | 해당 없음 |
| 인구 명칭 | 톰킨스 카운티 주민 |
| 우편 번호 | 13053, 13062, 13068, 13073, 13102, 13736, 14817, 13864, 14850, 14851, 14852, 14853, 14854, 14867, 14881, 14882, 14883, 14886 |
| 지역 번호 | 607 |
| 설립일 | 1817년 4월 17일 |
| 명칭 유래 | 대니얼 D. 톰킨스 |
| 카운티 소재지 | 이 Ithaca |
| 가장 큰 도시 | 이 Ithaca |
| 웹사이트 | 톰킨스 카운티 공식 웹사이트 |
| 지리 | |
| 총 면적 | 1,274 제곱킬로미터 (492 제곱마일) |
| 육지 면적 | 1,229 제곱킬로미터 (475 제곱마일) |
| 수역 면적 | 44 제곱킬로미터 (17 제곱마일) |
| 수역 비율 | 3.4% |
| 인구 통계 | |
| 인구 (2020년) | 105,740명 |
| 인구 밀도 | 222.8명/제곱마일 |
| 정치 | |
| 하원 의원 구역 | 19번 |
| 시간대 | |
| 시간대 | 동부 표준시 (UTC-5) |
| 서머타임 | 동부 서머타임 (UTC-4) |
2. 역사
1683년 뉴욕 식민지에 군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현재의 톰킨스 군 지역은 광대한 올버니 군의 일부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행정 구역 개편을 거치며 1772년에는 트라이온 군에 속하게 되었고, 미국 독립 전쟁 이후인 1784년에는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을 기리기 위해 몽고메리 군으로 개명되었다.[3]
몽고메리 군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군으로 분할되었는데, 온타리오 군, 하키머 군, 오논다가 군, 카유가 군, 세네카 군 등이 차례로 분리되었다.[3]
마침내 1817년 4월 7일, 세네카 군과 카유가 군의 일부 지역을 합쳐 톰킨스 군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자 전 뉴욕 주지사였던 대니얼 D. 톰킨스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으나, 정작 톰킨스 본인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군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설립 이후인 1854년에는 헥터 타운과 뉴필드 타운의 서쪽 일부가 새로 만들어진 스카일러 군으로 편입되었다.[3]
2. 1. 초기 역사 (1683년 이전)
1683년 뉴욕 식민지에 군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현재의 톰킨스 군 지역은 올버니 군의 일부였다. 이 당시 올버니 군은 뉴욕주 북부와 현재의 버몬트주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으며, 이론적으로는 서쪽으로 태평양까지 뻗어 있었다. 이후 올버니 군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었다. 1766년 7월 3일에는 컴벌랜드 군이 분리되었고, 1770년 3월 16일에는 글로스터 군이 분리되었는데, 이 두 군은 현재 버몬트주에 속해 있다.[3]1772년 3월 12일, 올버니 군의 남은 지역이 세 부분으로 나뉘면서 트라이온 군이 신설되었다. 트라이온 군은 서부 지역을 포함했으며, 동쪽 경계는 현재의 스케넥터디 시 서쪽 약 약 8.05km 지점에 있었다. 이 군은 애디론댁 산맥 서부와 델라웨어 강 서쪽 지류의 서쪽 지역을 포함하여, 현재 뉴욕주의 37개 군에 해당하는 넓은 영역을 관할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뉴욕 식민지 총독이었던 윌리엄 트라이온의 이름에서 따왔다.
미국 독립 전쟁 직전 몇 년 동안 트라이온 군에 거주하던 왕당파 다수는 캐나다로 이주했다. 전쟁이 끝나고 1784년 평화 조약이 체결된 후, 트라이온 군의 이름은 몽고메리 군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캐나다에서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퀘벡 시 공략 중 전사한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주민들에게 미움을 받던 영국 총독의 이름을 대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후 몽고메리 군에서도 여러 군이 분리되어 나갔다. 1789년에는 온타리오 군이 분리되었는데, 당시 온타리오 군은 현재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1791년에는 하키머 군, 오트세고 군, 티오가 군이 몽고메리 군에서 분리되었다.
1794년에는 하키머 군의 일부를 나누어 오논다가 군이 설립되었고, 1799년에는 다시 오논다가 군에서 카유가 군이 분리되었다. 당시 카유가 군은 현재의 세네카 군과 톰킨스 군, 그리고 스카일러 군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1804년에는 카유가 군에서 세네카 군이 분리되었다.
마침내 1817년 4월 7일, 세네카 군과 카유가 군의 일부 지역을 합쳐 톰킨스 군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자 전 뉴욕 주지사였던 대니얼 톰킨스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으나, 정작 톰킨스 본인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군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톰킨스 군이 설립된 이후에도 행정 구역 조정이 있었다. 1854년에는 헥터 타운과 뉴필드 타운의 서쪽 구획이 새로 형성된 스카일러 군으로 편입되었다.
2. 2. 식민지 시대 (1683년 ~ 1776년)
1683년 뉴욕 식민지에 군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현재의 톰킨스 군 지역은 올버니 군의 일부였다. 당시 올버니 군은 매우 광대한 지역을 관할했으며, 뉴욕주 북부 전체와 현재의 버몬트주까지 포함했고, 이론상 서쪽으로는 태평양 연안까지 뻗어 있었다. 이후 올버니 군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었다. 1766년 7월 3일에는 컴벌랜드 군이 분리되었고, 1770년 3월 16일에는 글로스터 군이 분리되었다. 이 두 군은 현재 버몬트주에 속해 있다.[3]1772년 3월 12일, 올버니 군의 남은 지역은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기존의 올버니 군 명칭을 유지했고, 다른 하나는 서부 지역을 포함하는 트라이온 군으로 설정되었다. 트라이온 군의 동쪽 경계는 현재 스케넥터디 시에서 서쪽으로 약 약 8.05km 떨어진 지점이었으며, 애디론댁 산맥 서부와 델라웨어 강 서쪽 지류 서쪽 지역을 포함했다. 트라이온 군으로 지정된 영역은 매우 넓어 현재 뉴욕주 37개 군에 해당하는 지역을 포함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뉴욕 식민지 총독이었던 윌리엄 트라이온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미국 독립 전쟁 발발 전 몇 년 동안, 트라이온 군에 거주하던 왕당파 대부분은 캐나다로 이주했다.
2. 3. 독립 전쟁과 그 이후 (1776년 ~ 1817년)
1776년 미국 독립 전쟁 발발 이전 몇 년 동안, 당시 현재의 톰킨스 군 지역을 포함했던 트라이온 군의 왕당파 대부분은 캐나다로 피신했다.[3] 독립 전쟁이 끝난 후 1784년, 평화 조약 체결에 따라 트라이온 군의 이름은 몽고메리 군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캐나다에서 여러 지역을 점령하고 퀘벡 시를 공략하던 중 전사한 독립 전쟁 영웅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기존의 군 이름이었던 영국 식민지 총독 윌리엄 트라이온의 이름을 대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3]이후 몽고메리 군은 여러 차례 분할되었다.
- 1789년: 온타리오 군이 분리되었다. 당시 온타리오 군은 현재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포함했다.[3]
- 1791년: 하키머 군, 오트세고 군, 티오가 군이 몽고메리 군에서 분리되었다.[3]
- 1794년: 하키머 군에서 오논다가 군이 분리되어 설립되었다.[3]
- 1799년: 오논다가 군에서 카유가 군이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이 당시 카유가 군은 현재의 세네카 군과 톰킨스 군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다.[3]
- 1804년: 카유가 군에서 세네카 군이 분리되어 설립되었다.[3]
마침내 1817년 4월 7일, 세네카 군과 카유가 군의 일부 지역을 합쳐 톰킨스 군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자 전 뉴욕 주지사였던 대니얼 톰킨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러나 톰킨스 본인이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이 군을 방문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2. 4. 톰킨스 군의 설립 (1817년)
1683년 뉴욕 식민지에 군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현재의 톰킨스 군 지역은 올버니 군의 일부였다. 당시 올버니 군은 뉴욕주 북부와 현재의 버몬트주 전체를 포함하고, 이론적으로는 서쪽으로 태평양까지 뻗어 나가는 거대한 행정 구역이었다.[3] 이후 올버니 군은 여러 차례 분할되었다.1772년 3월 12일, 올버니 군에서 분리된 지역 중 하나로 트라이온 군이 신설되었다. 이 군은 서쪽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이론상으로는 여전히 태평양까지 이어졌으며, 당시 뉴욕 식민지 총독이었던 윌리엄 트라이온의 이름을 땄다.
미국 독립 전쟁 이후인 1784년, 왕당파였던 트라이온 총독의 이름을 대신하여, 퀘벡 시 전투에서 전사한 독립 전쟁 영웅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을 기리기 위해 군의 이름이 몽고메리 군으로 변경되었다.
몽고메리 군 역시 여러 차례 분할 과정을 거쳤다.
- 1789년: 온타리오 군 분리
- 1791년: 하키머 군, 오트세고 군, 티오가 군 분리
- 1794년: 하키머 군에서 오논다가 군 분리
- 1799년: 오논다가 군에서 카유가 군 분리. 당시 카유가 군은 현재의 세네카 군과 톰킨스 군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 1804년: 카유가 군에서 세네카 군 분리
마침내 1817년 4월 7일, 세네카 군과 카유가 군의 일부를 합쳐 톰킨스 군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군의 이름은 당시 미국 부통령이자 전 뉴욕 주지사였던 대니얼 톰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하지만 정작 톰킨스 본인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군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립 이후에도 행정 구역 조정이 있었다. 1854년에는 헥터 타운과 뉴필드 타운의 서쪽 일부가 새로 만들어진 스카일러 군으로 편입되었다.
3. 지리
톰킨스군은 뉴욕 주 서부 중부에 위치하며, 시러큐스의 남쪽, 빙엄턴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주로 핑거 레이크스 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일부 주민들은 중앙 뉴욕 또는 사우던 티어 지역의 일부로 간주하기도 한다. 군의 면적과 세부 지형, 인접 지역 등 자세한 정보는 아래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 1. 위치 및 지형
톰킨스군은 뉴욕 주 서부 중부에 위치하며, 시러큐스의 남쪽, 빙엄턴의 북서쪽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일반적으로 핑거 레이크스 지역과 함께 묶이지만, 일부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을 중앙 뉴욕 또는 사우던 티어의 일부로 간주하기도 한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군 전체 면적은 약 1274.27km2이며, 이 중 육지는 약 1232.83km2, 수역은 약 41.44km2로 수역률은 3.17%이다.[4]
3. 2. 면적
톰킨스군은 뉴욕 주 서부 중부에 위치하며, 시러큐스의 남쪽, 빙엄턴의 북서쪽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일반적으로 핑거 레이크스 지역과 함께 묶이지만, 일부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을 중앙 뉴욕 또는 사우던 티어의 일부로 간주하기도 한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이 군의 총 면적은 약 1274.27km2이며, 이 중 약 1230.24km2는 육지이고 약 44.03km2 (3.4%)는 수역이다.[4]
3. 3. 인접 군
- 카유가 군 - 북쪽
- 코틀랜드 군 - 동쪽
- 티오가 군 - 남쪽
- 쉬맹 군 - 남서쪽
- 스카일러 군 - 서쪽
- 세네카 군 - 북서쪽
3. 4. 주요 도로
뉴욕주도 제13호선 뉴욕주도 제13A호선 뉴욕주도 제34호선 뉴욕주도 제34B호선 뉴욕주도 제38호선 뉴욕주도 제79호선 뉴욕주도 제96호선 뉴욕주도 제96B호선 뉴욕주도 제222호선 뉴욕주도 제227호선 뉴욕주도 제327호선 뉴욕주도 제366호선 뉴욕주도 제392호선
4. 인구
미국 인구조사국의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톰킨스군의 인구는 105,740명이다.[10][29] 2022년 추정 인구는 104,777명이다.[5] 인구 변화 및 상세 인구 통계는 아래 하위 섹션을 참조한다.
4. 1. 인구 통계
다음은 톰킨스군의 인구 변화를 나타낸 표이다.
200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톰킨스군에는 96,501명의 인구, 36,420가구, 19,120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78/km2였다. 주택은 총 38,625채였으며, 평균 밀도는 31/km2였다.
인종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백인: 85.50%
- 흑인: 3.64%
- 아메리카 원주민: 0.28%
- 아시아인: 7.19%
- 태평양 섬 주민: 0.04%
- 기타 인종: 1.09%
- 둘 이상의 인종: 2.26%
히스패닉 또는 라틴 아메리카인은 전체 인구의 3.08%를 차지했다.
주요 선조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12]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다음과 같다.[13][30]
36,420가구 중 25.80%는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41.20%는 결혼하여 함께 사는 부부였다. 8.20%는 남편 없이 여성이 가구주인 경우였고, 47.50%는 비가족 가구였다. 전체 가구의 32.50%는 개인이 단독으로 구성했으며, 8.10%는 65세 이상 노인이 혼자 사는 가구였다. 평균 가구 규모는 2.32명이었고, 평균 가족 규모는 2.93명이었다.
연령대별 인구 분포는 다음과 같다.
- 18세 미만: 19.00%
- 18세 ~ 24세: 26.00%
- 25세 ~ 44세: 26.20%
- 45세 ~ 64세: 19.30%
- 65세 이상: 9.60%
평균 연령은 29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은 97.60명이었고,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은 95.20명이었다.
군의 가구 중간 소득은 37272USD였고, 가족 중간 소득은 53041USD였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35420USD, 여성은 27686USD였다. 군의 1인당 소득은 19659USD였다. 가족의 약 6.80%와 전체 인구의 17.60%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으며, 이 중 18세 미만은 11.00%, 65세 이상은 5.40%를 차지했다.
4. 2. 인종 구성 (2020년 기준)
| 인종 | 수 | 비율 |
|---|---|---|
| 백인 (비히스패닉) | 76,737 | 72.57% |
|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히스패닉) | 4,274 | 4.04% |
| 아메리카 원주민 (비히스패닉) | 248 | 0.23% |
| 아시아인 (비히스패닉) | 10,487 | 9.92% |
| 태평양 섬 주민 (비히스패닉) | 35 | 0.02% |
| 기타/혼혈 (비히스패닉) | 6,882 | 6.51% |
|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 | 7,077 | 6.7% |
4. 3. 가구 및 소득 (2000년 기준)
2000년 인구 조사[12] 기준으로, 톰킨스군에는 96,501명의 인구, 36,420가구, 19,120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 밀도는 km2당 78명(mi2당 203명)이었다. 주택은 총 38,625채가 있었고, 평균 밀도는 km2당 31채(mi2당 81채)였다.군의 인종 구성은 백인 85.50%, 흑인 3.64%, 아메리카 원주민 0.28%, 아시아인 7.19%, 태평양 섬 주민 0.04%, 기타 인종 1.09%, 그리고 둘 이상의 인종 2.26%로 나타났다. 히스패닉 또는 라틴 아메리카인은 전체 인구의 3.08%를 차지했다. 주요 선조 구성을 보면 독일계 12.4%, 영국계 11.7%, 아일랜드계 11.1%, 이탈리아계 9.2%, 미국계 6.0% 순이었다.[12]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스페인어 사용자가 2.85%, 중국어 1.86%, 한국어 1.07%, 프랑스어 1.00%로 조사되었다.[13]
전체 36,420가구 중 25.80%는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41.20%는 결혼하여 함께 사는 부부였다. 8.20%는 남편 없이 여성이 가구주인 경우였고, 47.50%는 비가족 가구(1인 가구 또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구)였다. 전체 가구의 32.50%는 개인이 단독으로 구성한 가구였으며, 이 중 8.10%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혼자 사는 경우였다. 가구당 평균 구성원 수는 2.32명이었고, 가족당 평균 구성원 수는 2.93명이었다.
군의 연령별 인구 분포는 18세 미만 19.00%, 18세에서 24세 26.00%, 25세에서 44세 26.20%, 45세에서 64세 19.30%, 65세 이상 9.60%였다. 평균 연령은 29세였다. 여성 100명당 남성 수는 97.60명이었고, 18세 이상 여성 100명당 남성 수는 95.20명이었다.
군의 가구 중간 소득은 37272USD였고, 가족 중간 소득은 53041USD였다. 남성의 중간 소득은 35420USD, 여성의 중간 소득은 27686USD였다. 군의 1인당 소득은 19659USD였다. 전체 가족의 약 6.80%와 인구의 17.60%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으며, 이 중 18세 미만 인구의 11.00%와 65세 이상 인구의 5.40%가 빈곤선 이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른 상세 인구 통계 데이터이다.
5. 정치
톰킨스군은 역사적으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정치적 성향에 변화가 나타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졌다. 1856년부터 1980년까지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단 두 차례(1912년 우드로 윌슨, 1964년 린든 B. 존슨)에 불과했다.[17] 하지만 1984년을 기점으로 민주당은 이후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톰킨스군에서 승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이타카에 위치한 코넬 대학교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18] 최근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후보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21]
톰킨스군 의회는 단일 선거구에서 각각 선출된 1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군정을 운영한다.[27] 2014년 11월, 군 의회는 가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는데,[22] 이는 미국 내 농촌 지역으로서는 최초의 사례였다.[23]
5. 1. 정당 지지도
| 연도 | 공화당 후보 득표 | 민주당 후보 득표 | 기타 후보 득표 |
|---|---|---|---|
| 2024 | 11,354 | 34,631 | 901 |
| 2020 | 11,096 | 33,619 | 1,020 |
| 2016 | 10,371 | 28,890 | 3,417 |
| 2012 | 11,107 | 27,244 | 1,430 |
| 2008 | 11,927 | 29,826 | 799 |
| 2004 | 13,994 | 27,229 | 1,198 |
| 2000 | 13,351 | 21,807 | 4,902 |
| 1996 | 11,532 | 20,772 | 4,820 |
| 1992 | 11,520 | 23,197 | 6,943 |
| 1988 | 14,932 | 21,455 | 312 |
| 1984 | 18,255 | 19,357 | 165 |
| 1980 | 12,448 | 11,970 | 5,250 |
| 1976 | 15,463 | 12,808 | 400 |
| 1972 | 17,605 | 12,344 | 62 |
| 1968 | 13,446 | 10,343 | 1,459 |
| 1964 | 9,070 | 16,103 | 29 |
| 1960 | 17,061 | 8,659 | 13 |
| 1956 | 19,749 | 5,475 | 0 |
| 1952 | 18,673 | 6,285 | 54 |
| 1948 | 13,719 | 5,721 | 1,004 |
| 1944 | 12,805 | 7,174 | 74 |
| 1940 | 14,325 | 7,118 | 250 |
| 1936 | 13,332 | 7,007 | 407 |
| 1932 | 12,185 | 6,180 | 551 |
| 1928 | 14,471 | 5,114 | 281 |
| 1924 | 11,766 | 3,701 | 656 |
| 1920 | 9,508 | 3,487 | 578 |
| 1916 | 4,736 | 3,455 | 447 |
| 1912 | 2,237 | 3,272 | 2,594 |
| 1908 | 5,090 | 3,734 | 408 |
| 1904 | 5,414 | 3,780 | 421 |
| 1900 | 5,409 | 3,852 | 435 |
| 1896 | 5,342 | 3,506 | 352 |
| 1892 | 4,717 | 3,404 | 692 |
| 1888 | 5,073 | 3,909 | 381 |
| 1884 | 4,420 | 3,992 | 640 |
| 1880 | 4,896 | 3,956 | 380 |
| 1876 | 5,032 | 4,028 | 131 |
| 1872 | 4,318 | 3,369 | 65 |
| 1868 | 4,646 | 3,100 | 0 |
| 1864 | 4,518 | 2,996 | 0 |
| 1860 | 4,348 | 3,026 | 0 |
| 1856 | 4,019 | 1,430 | 1,470 |
| 1852 | 3,410 | 3,472 | 863 |
| 1848 | 3,003 | 1,270 | 2,669 |
| 1844 | 3,845 | 4,013 | 322 |
| 1840 | 3,969 | 3,558 | 32 |
| 1836 | 2,786 | 2,935 | 0 |
| 1832 | 3,045 | 3,336 | 0 |
| 1828 | 2,154 | 3,236 | 0 |
톰킨스군은 과거 공화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1856년부터 1980년까지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톰킨스군에서 승리한 경우는 우드로 윌슨 (1912년)과 린든 B. 존슨 (1964년) 단 두 번뿐이었다.[17]
하지만 1984년 월터 먼데일이 당시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2.92%p 차이로 이긴 것을 시작으로, 이후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톰킨스군에서 승리하며 정치적 성향이 변화했다. 특히 이타카에 위치한 코넬 대학교의 존재는 톰킨스군에서 민주당의 지지세 강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18]
2008년 2월, 뉴욕주 민주당 대통령 예비 선거에서 톰킨스군은 주 내에서 유일하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보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더 많이 지지한 군이었다.[19][27] 같은 해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는 오바마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를 41%p라는 큰 격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는 뉴욕주 전체의 오바마 득표율 차이(25.5%p)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으며, 뉴욕주 북부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 차이를 기록한 것이었다.[20][28]
이러한 경향은 이후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67.7%를 득표하여 24.3%를 얻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다.[21]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에게 더욱 지지가 쏠려, 바이든 후보는 73.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4.3%에 그친 트럼프 후보를 크게 앞섰다. 이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78.3%의 득표율로 승리했던 1956년 이후 톰킨스군에서 기록된 가장 높은 대통령 후보 득표율이다.
5. 2. 톰킨스 군 의회
톰킨스군 의회는 각 단일 선거구에서 선출된 1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27]2014년 11월, 톰킨스군 의회는 가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기본 인권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22] 이는 미국 내 농촌 지역으로서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23]
톰킨스군은 과거 공화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으나 (1912년 우드로 윌슨과 1964년 린든 B. 존슨의 승리 제외[17]), 이타카에 위치한 코넬 대학교의 영향 등으로[18] 점차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해졌다. 1984년 월터 먼데일 후보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을 근소한 차이로 이긴 이후, 민주당은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톰킨스군에서 승리했다. 특히 2008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 후보가 존 매케인 후보를 41%p 차이로 크게 앞섰으며,[20]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상대로 73.5% 대 24.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21] 이는 1956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가장 높은 득표율이다.
아래는 2016년 4월 1일 기준 톰킨스군의 유권자 등록 현황이다.[24]
| 정당 | 활동 유권자 | 비활동 유권자 | 총 유권자 | 비율 | |
|---|---|---|---|---|---|
| 민주당 | 25,749 | 3,768 | 29,517 | 49.54% | |
| 공화당 | 11,623 | 1,290 | 12,913 | 21.67% | |
| 무소속 | 10,730 | 2,461 | 13,191 | 22.14% | |
| 기타 | 3,385 | 575 | 3,960 | 6.65% | |
| 총계 | 51,487 | 8,094 | 59,581 | 100% | |
5. 3. 유권자 등록 현황 (2016년 4월 1일 기준)
wikitext| 2016년 4월 1일 기준 유권자 등록 현황[24] | ||||
|---|---|---|---|---|
| 정당 | 활동 유권자 | 비활동 유권자 | 총 유권자 | 비율 |
| 민주당 | 25,749 | 3,768 | 29,517 | 49.54% |
| 공화당 | 11,623 | 1,290 | 12,913 | 21.67% |
| 무소속 | 10,730 | 2,461 | 13,191 | 22.14% |
| 기타* | 3,385 | 575 | 3,960 | 6.65% |
| 총계 | 51,487 | 8,094 | 59,581 | 100% |
- 기타: 보수당, 녹색당, 노동 가족당, 독립당, 여성 평등당, 개혁당 및 기타 소규모 정당에 소속된 유권자가 포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