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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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몽준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 축구 행정가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MIT 슬론 스쿨에서 MBA,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고, 제13대부터 제19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FIFA 부회장을 역임하며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에 기여했으며,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공헌 활동을 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으며, 2015년 FIFA 윤리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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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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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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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몽준 |
로마자 표기 | Jeong Mongjun |
출생일 | 1951년 11월 1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
직업 | 정치인, 기업인, 국제축구연맹 부회장 |
종교 | 장로교 (통합) (이전에는 불교) |
배우자 | 김영명 |
자녀 | 2남 2녀 |
학력 | |
학력 | 서울대학교 (문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영학 석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 (철학 박사) |
정치 경력 | |
소속 정당 | 새누리당 (2016년까지), 무소속 (2016년부터) |
대한민국 국회의원 | 한나라당 당수 (2009년 9월 7일 ~ 2010년 6월 3일) 제13대 ~ 17대 국회의원 (울산광역시 동구): 1988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제18대 ~ 19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2008년 5월 30일 ~ 2014년 5월 15일 |
기타 | |
웹사이트 | mjchung.com |
본관 | 하동 |
군복무 | 육군 중위 전역 |
주요 경력 | 현대중공업 회장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실업테니스연맹 회장 대한양궁협회 회장 울산대학교 이사장 현대경제사회연구원 회장 통일국민당 대변인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 FIFA 미디어위원장 국제축구연맹 명예부회장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현대오일뱅크 회장 현대미포조선 회장 현대건설기계 회장 한국조선해양 회장 현대삼호중공업 회장 국민통합21 대표 한나라당 수석최고위원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아산나눔재단 명예이사장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울산 현대 구단주 학교법인 현대학원 명예이사장 |
2. 학력
중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MIT 슬론 스쿨, 조지 워싱턴 대학교 등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3년 존스홉킨스 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외에도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 1. 정규 학력
- 서울장충국민학교 졸업 (1964년)
- 중앙중학교 졸업 (1967년)
- 중앙고등학교 졸업 (1970년)
-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1975년)
-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MBA) (1978년)
- MIT 슬론 스쿨 경영학 석사 (MBA) (1981년)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82년)
-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 국제정치학 박사 (1993년)
2. 2. 명예 박사 학위
연도 | 수여 기관 | 학위명 |
---|---|---|
1998년 | 명지대학교 | 명예체육학 박사 |
1999년 | 메릴랜드 대학교 | 명예법학 박사 |
2000년 | 뉴욕시립대학교 | 명예법학 박사 |
2000년 | 공주대학교 | 명예경영학 박사 |
2002년 | 한국체육대학교 | 명예이학 박사 |
2002년 | 고신대학교 | 명예보건학 박사 |
2011년 | 전주대학교 | 명예경영학 박사 |
2011년 | 강원대학교 | 명예경영학 박사 |
1951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으로 부산[73] 또는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67]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70] 197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70] 서울대 재학 시절 ROTC 후보생이었으며,[70]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1년 더 학교를 다녔다.[157][49] 이후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ROTC 13기).[70] 그의 장남 역시 ROTC 43기로 임관하여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1980년 미국 MIT 경영대학원(슬론 스쿨)을 수료했고,[70] 1993년 존스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70]
3. 생애
1982년부터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70] 1987년에는 회장에 올랐다.[70] 울산대학교 이사장, 대한양궁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70]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4] 이후 아버지를 따라 통일국민당에 잠시 몸담았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 초원복국 사건 당시 불법 도청 실행범들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114] 울산 동구에서 5선, 2008년부터는 지역구를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로 옮겨 재선하여 총 7선 국회의원을 지냈다.[4]
대한축구협회 회장(1993년~2009년)과 FIFA 부회장(1994년~2011년)을 역임하며[70] 2002년 FIFA 월드컵의 한국 유치에 기여했다.[67] 월드컵 공동 개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었으나, 선거일 전날 밤 지지를 철회했다.[22]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으며,[74] 이후 당 최고위원과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다.[75][81] 2010년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82] 2012년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중도 사퇴했다.[86]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한 뒤[89]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2011년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을 출간했으나, 현대중공업이 직원들에게 상품권을 지급하여 책을 대량 구매하게 했다는 '사재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51] 같은 해 아버지 정주영의 10주기를 맞아 사재 약 2000억원 등을 출연하여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했다.[133][52]
2015년 10월,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월드컵 유치 활동 관련 규정 위반을 이유로 6년간 자격 정지 및 10만스위스 프랑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5][70] 이후 CAS 제소를 통해 징계 기간이 15개월로 단축되었다.[6]
본관은 하동 정씨이며, 개신교 신자이다.[72]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그의 자산은 12억달러로 평가되었다.[69]
3. 1. 정치 입문
1988년 대한민국 제13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4] 이 지역구는 현대중공업 그룹과 계열사 직원 및 가족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곳으로[4], 정몽준은 이곳에서 7선을 연임하며 20년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4] 초기에는 아버지를 따라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초원복국 사건 당시 불법 도청을 실행한 이들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114]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그는 월드컵 4강 신화에 힘입어 2002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하여 지지율 2~3위권을 기록했다. 당시 여권 후보였던 노무현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앞서자 그를 지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거일 직전, 노무현 후보가 자신을 차기 대선 후보로 적극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 등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정몽준은 약속되었던 국무총리 자리를 얻지 못했다.
이후 민주당 계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보수 정당으로 정치적 행보를 옮겼다.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4] 한나라당 소속으로 선거구를 서울 동작구로 옮겨 2008년 18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재선 의원으로 활동했으며[4], 한때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정치적 직함을 잃었다.[4] 이 선거 패배 이후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였으며,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당시 새누리당(한나라당의 후신)을 탈당했다.
3. 2. 2002년 대통령 선거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발판 삼아 정몽준은 그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초반에 상당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의 지지율이 주춤하자,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는 당시 심화되던 지역주의 구도를 타파하고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19][20]
치열한 논의와 TV 토론 등을 거쳐, 노무현 후보는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하는 등 양보를 통해 2002년 11월 24일, 극적으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다.[124] 정몽준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공동 선거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투표일 바로 전날인 12월 18일 밤, 정몽준은 돌연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선거 공조 파기를 선언했다. 국민통합21 측은 노무현 후보가 유세 중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이는 미국의 중요성을 간과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126] 또한 노무현 후보가 유세 현장에서 차기 주자로 정동영, 추미애 등을 언급하며 자신을 소외시켰다는 점도 지지 철회의 배경으로 거론된다.[21]
노무현 후보는 밤늦게 정몽준의 자택을 찾아가 설득을 시도했으나 만나지 못했다.[127][25] 정몽준의 갑작스러운 지지 철회는 선거 판세에 큰 충격을 주었지만,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다음 날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정몽준은 이 사건 이후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며, 이후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훗날 자서전을 통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의 순간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155]
3. 2. 1. 노무현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내에서는 정몽준 대표로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반(反)노무현 및 비(非)노무현 세력의 요구가 있었다.[119] 단일화 방안으로는 국민 경선, 여론 조사, 협상 담판 세 가지가 논의되었다. 정몽준 후보는 11월 1일 협상 담판을 공식 제안했고, 노무현 후보는 11월 3일 국민 참여 50%와 당원 참여 50%를 반영하는 국민 경선안을 제안했다. 여론 조사 방식은 당시 여론 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던 정몽준 후보에게 유리하여 그가 선호하는 방식이었다.[120][121]
정몽준 후보 측 국민통합21은 시간 부족을 이유로 노무현 후보 측의 국민 경선 제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선거 구도는 이회창 후보가 1강으로 앞서고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2중을 형성하며 추격하는 양상으로 변하고 있었기에, 국민통합21 역시 단일화 방안을 놓고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노무현 후보는 11월 11일,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여론 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식을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 마지막 쟁점이었던 '무효화 조항'까지 받아들이며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설문 내용 변경 요구까지 단일화를 위해 수용했다. 노무현 후보의 이러한 결단에 대해 김원기 고문은 "이기고 지는 것을 초월한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이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졌다.[122][123]
텔레비전 토론을 거친 후, 2002년 11월 24일에 실시된 단일화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승리했다. 리서치 앤드 리서치의 경쟁력 조사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46.8%를 얻어 42.2%를 얻은 정몽준 후보를 앞섰다. 월드 리서치 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조사 유효 조건(31.1%)에 미치지 못하는 28.7%로 나와 무효 처리되었으나, 노무현 후보는 38.8%를 얻어 37%를 얻은 정몽준 후보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 후보 측은 이러한 승리가 ‘성실하게 원칙과 정도를 지켜온 것이 국민을 감동시킨 것’이라고 자평했다.[124]
후보 단일화는 당시 심화되던 지역주의 구도를 극복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지역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는데,[7][8] 한나라당은 전라도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며 반(反)전라도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9][10][11][12][13][14][15][16][17][18]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는 이러한 지역주의에 반대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화해를 촉구하며,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것으로 비판받던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연대였다.[19][20]
단일화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이회창 후보를 역전하자, 이인제 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한 뒤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등 새로운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2002년 11월 노무현 후보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 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일부 농민이 던진 달걀에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125]
그러나 정몽준 대표는 대통령 선거 투표일 바로 전날인 12월 18일 밤 10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선거 공조 파기를 선언했다. 국민통합21 측은 지지 철회 이유로 노무현 후보가 유세 중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국민통합21은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우방이고, 미국이 북한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노 후보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126] 다른 한편에서는 12월 18일 오후 서울 명동 유세에서 노무현 후보가 차기 대선 주자로 정동영과 추미애 등을 언급한 것이 지지 철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당시 군중 속에서 "정몽준 차기 대선 후보"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노 후보가 민주당 정치인들만 언급한 것에 정몽준 측이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다.[21]
노무현 후보는 지지 철회 발표 직후 정대철 선거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정몽준 대표의 자택을 직접 찾아가 설득을 시도했다.[24] 하지만 정몽준 대표는 만나주지 않았고, 심야 회동은 결국 결렬되었다.[127][25] 정몽준 대표의 갑작스러운 지지 철회는 선거 막판 큰 변수로 떠올랐으나,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 진보 및 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 지지 의사를 접고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결집시키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후보는 다음 날 선거에서 승리했다.
3. 2. 2. 후보 단일화 파기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으나, 대통령 선거 투표일 하루 전인 2002년 12월 18일 밤, 정몽준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전격 철회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을 통해 이 순간이 "20여년간 정치인생에서 나를 힘들게 한 때"였다고 회고했다.[155]
정몽준과 노무현의 후보 단일화는 당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7][8] 김대중 정부 시기 심화된 지역 갈등 속에서, 두 후보는 전라도와 경상도 간의 화합을 내세우며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를 비판했다.[9][10][11][12][13][14][15][16][17][18][19][20]
정몽준은 지지 철회의 이유로 노무현 후보의 인식과 발언 문제를 들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단일화는 했지만,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노무현 후보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공동유세에) 합류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밝혔다. 10여 일간의 협상 끝에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노 후보 측이 정몽준 측의 입장을 따르기로 합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몽준 측이 노 후보 진영의 외교·안보 분야를 보완하는 '국정동반자' 관계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선거 전날인 12월 18일, 서울 명동과 종로 유세에서 노무현 후보의 발언으로 인해 '국정동반자'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정몽준은 주장했다. 명동 유세에서 노 후보가 "북한과 미국이 싸우면 우리가 말리겠다"고 발언한 것이 기존 합의를 뒤집은 것이며, 종로 유세에서는 정동영 의원을 단상에 올려 자신과의 협력 관계를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명동 유세에서 일부 군중이 "정몽준 차기 대선 후보"를 외치자 노무현이 정동영과 추미애를 차기 주자로 언급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21]
몇 시간 후, 정몽준 측 대변인은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22] 이에 노무현 캠프는 큰 충격을 받았고,[23] 노무현 후보가 직접 정몽준의 자택을 찾아가 설득하려 했으나[24] 정몽준은 만나주지 않았다.[25]
이러한 급작스러운 지지 철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는 다음 날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는 지역주의 극복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몽준은 지지 철회 이후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지지 철회 후 나는 다음해 2월 초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며, "또한 내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노 대통령 재임 중 4개월 이상 세무사찰을 받았다"고 언급하며 당시 상황이 지지 철회에 대한 보복성 조치였을 가능성을 시사했다.[155]
아이러니하게도, 정몽준은 이후 자신이 2002년 대선에서 패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입당하게 된다. 또한 한나라당 입당 후 이명박을 지지했는데, 이는 과거 아버지 정주영이 199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현대그룹 출신임에도 김영삼을 지지했던 이명박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더욱 아이러니하게 비춰진다.[26][27][28]
더불어 형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복잡한 관계가 있다. 정몽헌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대북 송금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03년 자살했는데,[29] 이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특별검사 도입을 강력히 추진한 것이 바로 한나라당이었다.[30][31][32][33][34][35][36][39][40] 정몽준은 2011년 자서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특검 요구를 거부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대선 지지 철회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고 주장하며,[47]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노무현 정부에 돌리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이는 형의 죽음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한나라당에 입당한 자신의 행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편,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정몽준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학창 시절 정신 질환 진단 의혹, 대학 시절 시험 부정행위, 친모의 정체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48] 정몽준은 서울대학교 1학년 때 시험 부정행위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으며,[49] 친모에 대해서는 2011년 자서전을 통해 미국 유학 중 편지를 받고 한국에 와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47][50]
3. 3. 한나라당 입당 및 대표 활동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4][128]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5선을 지낸 울산 동구를 떠나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선거구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6선 고지에 올랐다.[128] 같은 해 7월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128]
2009년 9월, 박희태 대표가 양산 재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당대표직을 승계하게 되었다.[128] 대표 취임 직후인 9월 9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조찬회동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국민 화합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이를 계기로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동서화합 차원에서 동서고속도로 건설의 적극적인 추진을 건의했고, 이 대통령은 긍정적 검토를 약속했다.[129]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며, 재래식 무기 경쟁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북핵 개발의 책임을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등 특정 정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며, 대북 지원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인도적 지원은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30]
2010년 4월 15일,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한일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함께 일본의 농업 시장 개방 및 비관세 장벽 철폐를 촉구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실은 것을 비판하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인식을 함께하는 것으로부터 과거 청산이 시작된다"고 밝혔다.[105]
그러나 2010년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사퇴했다.[131]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정몽준 대표에 대해 "여야관계를 좀 더 부드럽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여야관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회의 기능과 정치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정치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132]
대표직 사퇴 이후에도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며, 2011년 8월 4일에는 간 나오토 당시 일본 내각총리대신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범죄 중 하나임을 강조하고, 생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과 사과를 강력히 촉구했다.[106]
3. 4. 재단 설립과 사회 공헌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 재단은 1977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현대건설 주식 50%를 출연하여 설립했으며, 흔히 서울아산병원 재단으로 알려져 있다.[133]
2011년 8월 16일, 정주영 창업주의 10주기를 맞아 범 현대가는 서울특별시 현대 계동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산나눔재단 설립을 발표했다.[133] 재단 설립을 위해 정몽준은 사재 약 2000억원을 출연했으며,[133][52] 현대중공업 계열 6개사가 2380억원, 현대해상, 현대산업개발, KCC, 현대종합금속, 현대백화점 등이 620억원을 내어 총 5000억원 규모로 출범했다.[133] 이는 200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설립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재원 8000억원)에 이어 당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재단이었다.[134] 2021년 기준 범현대가의 총 기금은 약 6000억원에 달하며, 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 사업 및 저소득층 청년 교육 기회 제공 등에 사용된다.[133][52]
재단 설립은 정주영 창업주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53][54]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일각에서는 대중적 이미지를 고려한 행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53][54] 정몽준 본인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부인하지 않으면서 "목적과 관계없이 기부는 좋은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55][56]
4. 대한민국 축구와 2002년 월드컵 유치
1993년 1월 김우중 전임 회장의 뒤를 이어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고[135], 취임 직후 2002년 월드컵 유치를 공식 선언하였다.[136] 월드컵 유치 활동의 일환으로 1994년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FIFA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138]
FIFA 부회장으로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유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1996년 5월 31일 FIFA는 2002년 FIFA 월드컵을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139] 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2002년 월드컵 한국측 조직위원회(KOWOC) 실무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140] 월드컵 준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아시아의 차세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141]
정몽준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4회 연임하며[142]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4. 1. 대한축구협회, FIFA 임원 당선
1993년 1월, 김우중의 뒤를 이어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고[135], 취임 직후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136] 월드컵 유치 성공을 위하여 1993년 11월 FIFA 부회장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며[137], 1994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 축구 연맹 연차총회에서 아시아 지역 FIFA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138]FIFA 부회장으로서 2002년 FIFA 월드컵의 성공적인 한국 유치 및 개최에 기여하였다.[67] 그는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1994년부터 2011년까지 FIFA 부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회(KOWOC)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월 6일, 아시아 축구 연맹 몫의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의 알리 빈 후세인 왕자에게 패배하여 부회장직을 상실하였다.[83] 이후 2015년 10월에는 2018년 및 2022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6년간의 자격 정지와 10만스위스 프랑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70] 정몽준은 이에 불복하여 처분 취소를 위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71]
4. 2. 2002년 월드컵 유치
1993년 1월, 김우중 전임 회장에 이어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고[135], 곧바로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136] 월드컵 유치 성공을 위해 같은 해 11월 FIFA 부회장 선거에 도전할 뜻을 밝혔으며[137], 1994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아시아 지역 FIFA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138]당시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5년 늦은 1994년에야 월드컵 유치위원회를 설립하여 출발이 늦었으나, 현대그룹의 일원으로서 가진 배경과 FIFA 부회장 당선을 발판 삼아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제프 블래터 당시 FIFA 사무총장(후임 회장) 등 유럽 출신 FIFA 이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일본 덴쓰 등의 지지까지 확보하는 외교력을 발휘했다.[90]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6년 5월 31일 FIFA는 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2002년 FIFA 월드컵을 대한민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도록 결정했다.[139] 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공동 개최였으며, 정몽준은 FIFA 부회장으로서 월드컵의 한국 유치를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67] 같은 해 12월 30일에는 2002년 월드컵 한국측 조직위원회(KOWOC) 실무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140] 1997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유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차세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141]
4. 3. 대한축구협회 활동
정몽준은 1993년 제47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 제50대까지 4회 연임하였다.[142] 회장 취임 직후인 1994년 12월에는 당시 경기단체장 중 가장 많은 41억원의 출연금을 지원하여 주목받았다.[143]현대학원 이사장이었던 1993년, 정몽준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하며 "한국축구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빨리 세계무대를 호령할 것"이라며 중·고등학교 여자축구팀 창단을 지시하였다. 당시 여자축구는 기반이 매우 취약했으며, 선수들의 진학 및 진로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팀과 실업팀 창설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1993년 청운중학교를 시작으로 현대공업고등학교, 울산과학대학, 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로 이어지는 여자축구 육성 체계를 구축하였다.
정몽준은 이들 팀의 창단 비용뿐만 아니라 연간 운영비도 지원했는데, 청운중학교와 현대공업고등학교에는 연간 6000만원~7000만원, 울산과학대학교에는 연간 1억원, 현대제철 여자축구단에는 연간 약 20억원을 지원하였다. 어린이축구교실 운영비 등을 포함하면 여자축구단 운영에 연간 수십억 원을 투자한 셈이다. 또한,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에 필요한 등록팀 수를 맞추기 위해 서울 현대고등학교 여자축구팀(현재 해체)을 창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2010년 대한민국 U-17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FIFA U-17 여자 월드컵 우승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144]
국제 무대에서는 1994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및 성공적 개최에 기여하며 1997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부터는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2011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몫의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의 알리 빈 후세인 왕자에게 패배하여 연임에 실패했다.[83] 2015년 10월에는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6년간의 자격 정지와 10만스위스 프랑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
4. 4. FIFA 활동
1994년 5월 FIFA 부회장에 당선되어 2011년까지 총 4번 연임했다.[145] FIFA 부회장으로서 2002 FIFA 월드컵의 한국 개최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67] 1997년 5월 31일에는 FIFA 미디어 위원회 위원장,[148] 2007년 6월 28일에는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149]2011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몫의 FIFA 부회장 선거에서는 요르단의 알리 빈 후세인 왕자에게 패배하여 부회장직을 잃었다.[83] 그러나 같은 해 3월 3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17년간 세계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FIFA 명예부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146] 이는 6월 1일 제61차 FIFA 정기총회에서 최종 승인되었다.[147]
2015년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부패 스캔들로 사임을 발표하자,[91] 정몽준은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검토하기 시작했다.[92] BBC는 그를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94] 그는 블래터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고[95] CNN 인터뷰 등을 통해 블래터 체제를 강하게 비판했으며,[96] UEFA의 미셸 플라티니 회장 등 주요 인사들과 접촉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97] 2015년 7월 21일 FIFA 회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8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98]
그러나 회장 선거 운동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2015년 8월, 블룸버그 통신은 FIFA가 정몽준의 과거 기부 행적(2010년 파키스탄에 40만 달러, 아이티에 50만 달러 기부)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부 시점이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이 지적되었다.[99] 정몽준 측은 이에 대해 "자선 기부금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FIFA의 비뚤어진 반윤리적인 태도를 비난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100] 또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임금 협상과 관련하여 정몽준의 FIFA 회장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낙선 운동을 스위스 현지에서 벌이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101]
결정적으로 2015년 10월 8일, FIFA 윤리위원회는 정몽준이 2018년 FIFA 월드컵과 2022년 FIFA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6년간의 자격 정지와 10만스위스 프랑의 벌금 처분을 내렸다.[70] 이 징계로 인해 모든 축구 관련 활동이 금지되면서 FIFA 회장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일(10월 26일)을 앞두고 사실상 출마가 불가능해졌다.[70][104] 당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FIFA의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며 외부 인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102] 정몽준은 FIFA의 처분에 불복하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71][103]
5. 재산
20세기 아시아 최고 부호 중 한 명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이다. 1993년 이래 현역 국회의원 재임 시절 재산 순위 1위를 기록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확인된 재산 총액은 한화 약 2조원에 달했다.[150] 아버지를 포함하여 8선 국회의원을 지낸 세습 정치인이기도 하다. 2015년 포브스는 그의 자산을 12억달러로 평가하며 한국 내 29번째 자산가로 보도했다.[69]
6. 논란
2008년 6월 27일 KBS1 라디오 방송에서 당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라고 묻자, 정몽준은 "요즘은 카드로 타는데 한 번 탈 때 70원 하나요?"라고 답하여 논란이 되었다.[151][152] 발언 후 비판이 거세지자 정몽준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마을 버스를 이용하며 요금이 7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 하는데 그것을 70원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사실 일반버스 요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서민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일부러 물건도 사보고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153] 이후 정몽준은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며 간혹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154]
2011년 9월 6일 출간한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여러 일화를 공개했는데, 그중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일화가 주목받았다. 2002년 9월 남북축구경기 당일, 경기장에 먼저 와 있던 박근혜가 정몽준을 보자 화난 얼굴로 약속 불이행을 항의했다는 내용이다. 박근혜는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 "경기 시작 전 붉은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 대신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따졌다고 한다.[155] 이에 정몽준은 "관중들은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아니고, 자기 돈 내고 들어온 사람들한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답했다고 자서전에 기술했다.[156]
2011년 9월 19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질의하던 중 경어를 사용하지 않고 질타하는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었다. 정몽준은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릴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와 관련하여 김성환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대통령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 발언이 민감하며, 김 위원장이 참석하면 총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오해를 살 수 있고 불참하면 신뢰도에 손상이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158] 그는 “이는 장관이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159] 또한 회의 개최 시기에 대해서도 “핵안보정상회의는 G20 회의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런 회의를 총선 직전에 하는 게 옳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160] 그는 “처음부터 아예 핵안보정상회의 시기를 총선 이후로 잡았어야 한다”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일정을 고려해 3월 말로 잡은 것은 "국가의 존엄성을 우습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58] “핵안보정상회의 날짜를 정한 것이 일년은 된 것 같은데 우리 행사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는게 말이 되느냐”고도 따졌다.[160] 여당 의원임에도 정부를 질타하는 것에 대해서는 “건강한 국가를 위해 여야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160] 김성환 장관이 “국내 선거 일정과 효율성을 가지고 정한 것이다. 국내정치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변하자,[160] 정몽준은 “그게 무슨 궤변이야”, “날짜를 정한 게 언제야”, “왜 총선 법정선거 운동 기간에 끼워넣은 거야, 그게 상식에 맞아”[158], “선거기간에 G20 하는게 말이 돼?”, “어떻게 선거기간에 하겠다는 거야. 행사하는게 자랑이 아니야”[160], “미국이 만약 중요한 선거가 있다면 그랬겠어”[161]라며 반말로 강하게 몰아세웠다. 이러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정몽준은 오후 보충질의에서 "오전 질의 때 거친 표현으로 결례를 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평소 장관과 격의 없이 지내다 보니 표현이 지나쳤다", "제가 정식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162]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이틀 후 정몽준의 막내아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대통령에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 물세례.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라고 적었다. 이는 전날 실종자 가족 일부가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항의하며 물병을 던진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었다.[163] 해당 글이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정몽준은 4월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164] 그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죄드립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희 아이도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2014. 4. 21.
정 몽 준 올림"[165]
아들의 발언으로 정몽준이 사과한 지 약 한 달 뒤인 2014년 5월 11일, 정몽준의 부인 김영명 씨의 발언이 또다시 논란이 되었다. 한 인터넷 언론이 공개한 영상에는 김영명 씨가 서울의 한 새누리당 당협 사무실에서 아들 사건을 언급하며 "막내가 일을 저지른 거 아시죠? 그 아이가 지금 지난번 대학가는 거 실패하고, 재수생이다. '바른소리 했다'고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긴 하는데, 시기가 안 좋았고, 어린아이다 보니까 말 선택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아들의 잘못을 가볍게 여기고 두둔하는 듯한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정몽준 캠프의 이수희 대변인은 "연로한 한 참석자가 위로 차원의 말을 하자, 막내아들의 잘못을 강조하는 말을 한 것이며, 일부 인터넷 언론에서 김씨가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왜곡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정몽준 또한 "제 아내가 앞에서 사과하고, 뒤에서 딴 말을 하는 이중 얼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166]
한편, 김영명 씨는 이 발언 논란 이전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한 시민이 김씨가 새누리당 당사 등에서 대의원들에게 당시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정몽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고발장을 제출한 것이다. 당시 정몽준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아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배우자인 김영명 씨에게는 선거운동 자격이 없었다.[167] 5월 11일 공개된 영상에서 김영명 씨는 "서울을 정말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후보는 정몽준 후보로, 정몽준 후보가 돼야 박원순 시장에게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 역시 5월 9일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고발된 이후에도 지지를 호소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7. 가족 관계
본관은 하동(河東) 정씨이다.[72] 종교는 기독교이다.[72]
아버지는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이고, 어머니는 변중석이다.[107] 전 외무부 장관 김동조의 넷째 딸 김영명과 결혼하여[108][69] 슬하에 2남 2녀(장남 정기선, 장녀 정남이, 차녀 정선이, 차남 정예선)를 두었다.
- 할아버지: 정봉식
- 할머니: 한성실
- * 아버지: 정주영(1915년 ~ 2001년) 현대그룹 명예회장
- * 어머니: 변중석(1921년 ~ 2007년)
- ** 형: 정몽필(1936년 ~ 1982년) 前 인천제철 사장
- ** 형수: 이양자(1943년 ~ 1991년)
조카: 정은희(1971년 ~ )
조카: 정유희(1973년 ~ )
조카: 정성이(1962년 ~ ) 이노션 고문
조카: 정명이(1965년 ~ ) 현대커머셜 고문
조카: 정윤이(1968년 ~ )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
조카: 정의선(1970년 ~ )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카: 정지선(1972년 ~ )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카: 정교선(1974년 ~ )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 ** 누나: 정경희(1944년 ~ )
- ** 매형: 정희영(1940년 ~ ) 前 선진종합 회장
- ** 형: 정몽우(1945년 ~ 1990년) 前 현대알루미늄 회장
- ** 형수: 이행자(1945년 ~ ) 前 현대알루미늄 회장 고문
조카: 정일선(1970년 ~ )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조카: 정문선(1974년 ~ )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
조카: 정대선(1977년 ~ ) 현대비에스앤씨 사장, 노현정의 남편
조카: 정지이(1977년 ~ ) 현대무벡스 전무
조카: 정영이(1984년 ~ )
조카: 정영선(1985년 ~ )
* 사돈: 김무성(1951년 ~ , 형수 현정은의 외삼촌) 前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168]
장남: 정기선(1982년 ~ ) HD현대 부회장[109]
장녀: 정남이(1983년 ~ )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
차녀: 정선이(1986년 ~ )
차남: 정예선(1996년 ~ )
조카: 정정이(1984년 ~ )
조카: 정경선(1986년 ~ ) 루트임팩트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 ** 동생: 정몽일(1959년 ~ ) 현대기업금융 회장
- ** 제수: 권준희(1962년 ~ )
조카: 정현선(1989년 ~ )
조카: 정문이(1991년 ~ )
- ** 여동생: 정정인(1979년 ~ )
- ** 여동생: 정정임(1981년 ~ )
- * 숙부: 정인영(1920년 ~ 2006년) 前 한라그룹 명예회장
- * 숙부: 정순영(1922년 ~ 2005년) 前 현대시멘트 명예회장
- * 고모: 정희영(1925년 ~ 2015년)
- * 고숙: 김영주(1920년 ~ 2010년) 前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
- * 숙부: 정세영(1928년 ~ 2005년) 前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 * 숙부: 정신영(1931년 ~ 1962년) 前 동아일보 기자
- * 숙부: 정상영(1936년 ~ 2021년) KCC 명예회장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막내아들 정예선(당시 19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논란이 일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고 현장 방문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대통령이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는데도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한다",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고 언급하며, "국민이 모여서 나라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110] 이 글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당시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였던 정몽준은 즉시 "사과문"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족과 실종자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아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그는 "막내아들의 불찰을 사과드리며, 모든 것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책임"이라고 밝혔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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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夢準(정몽준) 대한蹴協(축협)회장 FIFA부회장 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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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94-05-14
[139]
뉴스인용
월드컵 韓(한)·日(일) 공동개최
http://dna.naver.com[...]
경향신문
1996-06-01
[140]
뉴스인용
월드컵 한국조직위장 李東燦(이동찬)씨 선임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96-12-31
[141]
뉴스
'타임'아시아 차세대지도자 정몽준씨 선정
http://dna.naver.com[...]
매일경제
1997-10-01
[142]
뉴스
정몽준 축구협회장 고별인사 “행복한 16년 보냈다”
http://www.seoul.co.[...]
서울신문 스포츠
2009-01-03
[143]
뉴스
'94 스포츠 파노라마 (1) 축구 정몽준회장 41억지원 최고
http://dna.naver.com[...]
경향신문
1994-12-01
[144]
뉴스
여자축구 세계제패..현대家 18년 투자도 일조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스포츠
2010-09-27
[145]
뉴스
정몽준, FIFA 아시아대륙 부회장 재선.. 4선 성공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스포츠
2007-05-08
[146]
뉴스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 추대(종합)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스포츠
2011-03-04
[147]
뉴스
FIFA, 정몽준 명예부회장 추대 승인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스포츠
2011-06-02
[148]
뉴스
FIFA 미디어委長(위장) 鄭夢準(정몽준)씨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97-06-01
[149]
뉴스
정몽준 회장, FIFA 올림픽조직위원장 선출
https://news.naver.c[...]
뉴시스 스포츠
2007-06-28
[150]
뉴스
정몽준, 국회의원 재산순위 1위…‘2조227억원’
https://www.sisafocu[...]
일간시사신문
2012-03-24
[151]
뉴스
정몽준 최고위원 “버스비 70원 하나요?”
https://news.naver.c[...]
파이넨셜뉴스
2008-06-28
[152]
Youtube
발언 동영상
https://www.youtube.[...]
[153]
뉴스
정몽준 "700원을 70원으로 착각"
http://www.viewsnnew[...]
뷰스앤뉴스
2008-06-28
[154]
뉴스
정몽준, `차없는 날' 대중교통 출근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9-09-22
[155]
뉴스
"박근혜, 南北축구서 태극기 들었다고 항의"(종합)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1-09-04
[156]
뉴스
'대한민국' 외치자 박근혜 "왜 약속 지키지 않느냐" 항의
http://www.nocutnews[...]
노컷뉴스
2011-09-04
[157]
뉴스
[Who Is ?]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http://www.businessp[...]
비즈니스포스트 인사이드
2014-08-18
[158]
뉴스
정몽준, 김성환 장관에게 “그게 무슨 궤변이야” 반말 논란
http://www.tvreport.[...]
TV리포트
2011-09-19
[159]
뉴스
[18대 국회 마지막 국감] “그게 상식에 맞아” “무슨 궤변이야”… 정몽준 또 막말
https://news.naver.c[...]
국민일보
2011-09-19
[160]
뉴스
정몽준 “지금 궤변 늘어놓는 거야?” 반말 국감
http://www.dailian.c[...]
데일리안
2011-09-19
[161]
뉴스
[국정감사] 與는 반말, 野는 호통… 혼쭐 난 金외교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1-09-20
[162]
뉴스
<국감현장> MJ "그게 무슨 궤변이야"(종합)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1-09-19
[163]
뉴스
정몽준 아들, 세월호 실종자 가족 비하 '충격'…"국민 정서가 미개해서"
http://www.wowtv.co.[...]
한국경제TV
2014-04-21
[164]
뉴스
'아들의 실종자 가족 미개 발언' 사과...고개숙인 정몽준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4-04-21
[165]
뉴스
정몽준 의원 사과문 전문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14-04-21
[166]
뉴스
정몽준 부인 "아들 발언 시기 안좋았다" 언급 논란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4-05-11
[167]
뉴스
정몽준 부인 '불법 선거운동' 고발당해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4-05-10
[168]
뉴스
[재벌가족사]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http://www.kjtimes.c[...]
2013-05-15
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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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훈풍에 회장님들 주식 대박…이재용 3조·김범수 2조 늘어
유상철·김병지·김주성·데얀, K리그 명예의 전당에
중도 표심 노리는 민주당…'집토끼' 다잡는 국민의힘
[정치쇼] 윤태곤 "단일화? 합당으로 연결…양쪽 아닌 이준석의 문제"
여든일곱, 하지만 여전히 현역…한국기업 말레이시아 진출 돕는 ‘비즈니스 대부’
정몽준 이사장 ‘고려대 명예정치학박사’ 받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정치학박사 학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고려대 정치학 명예박사됐다
고려대,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에 명예정치학박사 학위 수여
선거 때마다 등장 '단일화'…성공 조건은?
선거 때마다 등장한 '단일화'…성공 조건은?
막판 한달 요동쳤던 역대 대선…단일화부터 돌발 악재까지
국민의힘, 오늘 최종 대선후보 선출…김문수냐 한동훈이냐
박민식 인터뷰 : "이재명 가슴에 '대왕 주홍글씨'...대선 끝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민폐 한덕수’에게 꽃길은 없다 [뉴스룸에서]
김문수-한동훈, 진검승부…'한덕수 단일화' 입장 주목
한덕수 출마 시 단일화는?…"11일이 마지노선"
홍준표 "정치 인생 오늘로써 졸업…자연인으로 돌아가 살겠다"
[정치쇼] 서지영 "권영세, 정대철에 韓 단일화 요청? 보수승리 위한 역할 요청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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