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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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옴진리교는 1984년 마쓰모토 지즈오(아사하라 쇼코)가 창시한 일본의 신흥 종교로, 불교, 힌두교, 요가, 종말론 등을 혼합한 교리를 가졌다. 초능력 개발을 표방하며 세력을 확장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살인, 납치 등 폭력적인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한 핵심 간부들이 체포되었고, 이후 종교법인 지위를 박탈당했다. 옴진리교는 알레프, 빛의 원 등 후계 단체로 분열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사회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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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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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Aleph 알레프 오움 신리쿄 |
약칭 | 오움, AUM, 오움교, 오움교단 |
유형 | 일본 신흥 종교 운동, 불교 신흥 종교 운동 |
주요 분류 | 불교 |
방향 | 다르마 |
설립일 | 1987년 6월 |
설립 장소 | 도쿄도, 일본 |
설립자 | 아사하라 쇼코 |
분리된 종교 | 히카리노와 (2008년) 야마다의 모임 케로욘 클럽 |
회원 수 | 약 1,650명 (2011년)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보관됨) |
신학 | 서구 천년왕국설/밀레니얼리즘 (과거) |
조직 구조 | 요가 모임 |
주요 활동 지역 | 일본 |
목표 | |
(종교 법인 규칙 인증 신청서) | 주신을 시바 대신으로 숭배하며, 창시자인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하여 팔리어 불경을 기본으로 시바 대신의 의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자의 지도하에 고대 요가, 힌두교, 여러 대승불교 종파를 배경으로 한 교의를 널리 알리고, 의식 행사를 하고, 신도를 교화 육성하여, 모든 생명을 윤회의 고통에서 구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을 한다. |
(공안 조사청의 견해) | 교주인 아사하라 및 아사하라가 설파하는 교리에 대한 절대적인 귀의를 배양하고, 현행 헌법에 따른 민주주의 체제를 폐지하고, 아사하라를 독재적인 주권자로 하는 제정 일치의 전제 정치 체제를 일본에 수립하는 것. |
조직 정보 | |
본부 | 도쿄도 고토구 가메이도 (등기상) 야마나시현 니시야쓰시로군 가미쿠이시키촌 (현재: 미나미쓰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 (실질)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실질)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 (실질) |
회원 수 | 최전성기 일본: 15,000명 최전성기 러시아: 35,000명 출가 신자: 1,400명 (일본 국내) |
간부 이름 | 아사하라 쇼코 (1995년 5월까지) 마쓰모토 치즈코 (1995년 6월까지) 무라오카 타츠코 (1999년까지) 조유 후미히로 (히카리노와 설립까지) |
주요 인물 | 이시이 히사코 니이미 사토미츠 마쓰모토 레이카 무라이 히데오 (정대사) |
조직 체계 | 성청제 |
관련 조직 | 진리당 알레프 히카리노와 야마다의 집단 케로욘 클럽 마하포샤 |
활동 및 사건 | |
활동 시기 | 1989년 8월 29일 - 2000년 2월 |
주요 사건 | 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등의 테러를 일으킴 |
테러 조직 지정 | |
지정 국가/기관 |
2. 명칭
"옴"(オウム일본어, AUM영어)은 원래 범어 또는 팔리어 진언 옴(唵)이다. 옴마니 반메 훔의 그 "옴"이다. "옴"은 「아・우・무」 세 글자로 분해될 수 있으며, 이것은 우주의 창조・유지・파괴, 즉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의미이고, 만물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표현한다.[111]
옴진리교는 1987년 마쓰모토 지즈오(아사하라 쇼코)가 도쿄 시부야구의 한 아파트에서 요가와 명상 수업[13]으로 시작한 종교 단체이다. 처음에는 '옴신선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신선 사상을 표방했다.[13] 1989년 종교 단체로 공식적인 지위를 얻으면서 일본 명문대 출신자들을 끌어들여 "엘리트를 위한 종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14]
마쓰모토 지즈오(아사하라 쇼코) 자신의 해설에 의하면 「진리」(真理일본어)는 석가모니나 예수가 「인간이 실천해야 할 것은 이러하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는데, 그 가르침의 근본을 「진리」라고 부른다. 옴진리교는 티베트 불교나 원시 불교의 요소를 부각시켜 불교계 신흥종교로 분류되곤 하는데, 옴진리교 스스로는 「불교」를 자칭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불교라는 말 자체가 석가 사후에 「창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과학이다.[490][491][112][113]
그러나 이상은 옴진리교 측의 주장이고, 실상은 교토의 사립탐정 메카와 시게하루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메카와는 마쓰모토 지즈오에게 천리교(天理教|텐리쿄일본어)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아 그 조사결과를 마쓰모토에게 전했다. 이 때 「안리쿄, 인리쿄, ……」 식으로 히라가나 오십음도를 내림차순으로 계속한 끝에 「신리쿄」에 이르렀다 한다.[114] 그래서 처음에는 「진리교」(真理教|신리쿄일본어)라 할 예정이었지만, 「신리쿄」로 발음되는 다른 종교단체(신리교)가 있었기 때문에 상표등록상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메카와가 앞에 「옴」을 붙일 것을 권했는데, 그 「옴」은 메카와의 집 건너편에 있던 옴 전기(オーム電機)라는 업체명에서 유래한 즉, 그 「옴」은 최종적으로 옴의 법칙에서 유래했다.[492][115] 메카와는 나중에야 마쓰모토 지즈오가 아사하라 쇼코라는 것을 알았다.
메카와와 마쓰모토가 만난 시기는 메카와의 수기에서는 1978년-1979년, 논픽션 작가 타카야마 후미히코와 도쿄신문기자 세구치 하루요시의 문헌에서는 1984년 봄무렵으로 되어 있다.[116] 타카야마는 마쓰모토가 천리교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한 이유가, 세력을 확대하여 교단 이름이 지명에까지 붙기에 이른(텐리시) 천리교를 자신의 야망과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라는 설을 제기했다.[493][494][117][118]
3. 역사
초기에는 성경 예언에 집착하며, 애니메이션과 만화 주제를 활용한 홍보 활동을 펼쳤다.[15] 금강승 사카', '행복을 즐겨라' 등의 잡지를 출판하며 선교 활동을 했다.[14]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3부작을 언급하며, 자신들을 "야만의 시대에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영적으로 진화된 엘리트 과학자 집단"으로 묘사하기도 했다.[16] '옴 구원 계획'이라는 광고를 통해 건강 개선, 지능 향상, 긍정적 사고 함양 등을 내세우며 신도를 모집했고, 일본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신도 기망, 감금, 헌금 강요, 탈퇴 시도 신도 살해 등의 혐의로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19][20] 1989년에는 옴진리교에 비판적인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와의 협상이 결렬되었고, 이후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TBS는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터뷰 영상을 옴진리교 측에 몰래 보여주어 취재원 보호 원칙을 위반하기도 했다.[21][22]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에야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이 옴진리교 신도들에게 살해된 사실이 밝혀졌다.[21][22] 옴진리교는 갈취 등의 활동에도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17] 옴진리교를 비판한 인물들에 대한 암살을 고려하기도 했다.[23]
1993년에는 탄저균 살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24] 이후 사린과 VX를 비밀리에 제조하여 암살에 사용했다.[29][28] 1994년 마쓰모토 사린 사건에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화학 무기 공격을 감행하여 8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25] 1994년 말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히로시마 공장에 침입하여 군사 무기 기술 문서를 훔치려 했고,[17] 1995년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켜 13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등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다.[38]
1995년 3월, 경찰은 일본 전역의 옴진리교 시설을 급습할 계획을 세웠고, 검찰은 아사하라 쇼코가 이를 피하기 위해 도쿄 지하철 공격을 명령했다고 주장했다.[28] 이후 옴진리교 시설에서는 폭발물, 화학 무기, 밀 Mi-17 군용 헬리콥터 등이 발견되었고,[40][41]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한 150명이 넘는 신도들이 체포되었다.
1995년 10월, 옴진리교는 종교 법인 자격을 박탈당했고, 1996년 초 파산했다. 그러나 헌법상 종교의 자유 보장에 따라 컴퓨터 사업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활동을 계속했다. 2000년 2월, 옴진리교는 '알레프(Aleph)'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편되었고, 조유 후미히로가 조직의 공식 수장이 되었다.
2018년 7월,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한 옴진리교 신자 1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51][3][53][54]
2018년 7월 6일 사형 집행된 옴진리교 신자:[51]이름 역할 아사하라 쇼코 오무진리교 교주 이노우에 요시히로 오무진리교 "정보국장"이자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의 총책임자 니이미 토모미쓰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중 한 명인 하야시 이쿠오의 도주차량 운전자 나카가와 토모마사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하야카와 기요히데 오무진리교 "건설 담당 장관", 1989년 반체제 의혹을 받던 젊은 신도를 교살한 혐의로 유죄 판결 엔도 세이이치 오무진리교의 "수석 과학자" 쓰치야 마사미 오무진리교의 수석 화학자이자 사린 가스 제조 책임자
2018년 7월 26일 사형 집행된 옴진리교 신자:[53][54]이름 역할 하야시 야스오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히로세 켄이치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토요다 토루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요코야마 마사토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오카자키 가즈아키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하시모토 사토루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3. 1. 전사(前史)
1984년, 초능력 개발 학원 '봉황경림관'을 운영하던 마쓰모토 지즈오는 이후 '옴진리교'가 되는 요가 교실 '옴회'를 시작했고, 이는 나중에 '옴신선회'로 이름을 바꾼다. 당시에는 초능력 획득을 목표로 하는 밝은 분위기의 요가 교실이었다.[495]
이 무렵, 오컬트 잡지 『월간 무』가 옴회를 '일본의 요가 단체'로 취재하여 사진과 함께 기사를 게재했다.[496] 마쓰모토 지즈오는 이런 잡지들에 공중부양을 하는 순간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싣거나, 히히이로카네에 관한 기사를 기고하거나, 『생사를 초월하여』, 『초능력 비밀의 개발법』 등의 책을 집필하며 홍보 활동을 했다.
당시 마쓰모토 지즈오 일가는 지바현 후나바시시에 살았는데, 가족 모두가 방 하나에서 함께 잘 정도로 가난했다. 식사는 채식 위주였고, 고기 대신 글루텐을 고기 모양으로 만든 것을 먹거나, 식탁 위에 핫플레이트를 놓고 '야채 바비큐'를 해 먹었다. 후나바시 자택에는 '명상실'이 있었고, 종교화가 걸려 있었으며 선반에는 불상이 놓여 있었다. 마쓰모토 지즈오는 하루에 한 번씩 명상실에 들어가 수행을 했다. 선반 앞에 밥상을 놓고 그것을 제단이라고 불렀다. "형상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중요하다. 나에게는"이라는 것이 마쓰모토 지즈오의 말버릇이었다. 이후 교단이 커진 후에도 마쓰모토 지즈오는 그 밥상을 제단으로 사용했다.
당시 마쓰모토 지즈오는 도쿄도 시부야구에 요가 교실을 열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가끔 집에 돌아오면 텔레비전으로 야구 중계를 보았는데, 심한 약시였기 때문에 화면에 거의 붙다시피 해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1986년경부터는 세타가야구의 도장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는 거의 돌아가지 않게 된다. 가끔 집에 돌아오면 세 딸이 서로 기뻐하며 현관에서 아버지를 맞이했다. 둘째 딸은 아버지의 귀가를 '태양이 없는 세계에 태양이 오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아내 마쓰모토 도모코는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졌고, 가끔 집에 돌아온 남편을 힐난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마쓰모토 지즈오는 여기에 거의 저항하지 않았다. 셋째 딸 마쓰모토 리카가 보기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종교를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마쓰모토 도모코는 마쓰모토 지즈오의 저서를 밤늦게까지 대필했고, 이후 마쓰모토 지즈오의 저서 중 몇 가지는 마쓰모토 도모코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마쓰모토 지즈오는 자식들에게 "모기에게 물리면 가려워서 싫다. 하지만 모기도 살아 있는 것이다", "석가님에 따르면 우리는 사후에 다시 태어나고, 어쩌면 모기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내 마쓰모토 도모코는 모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다.
1983년 여름(28세), 마쓰모토 지즈오는 아함종을 탈퇴했다. 도쿄도 시부야구 사쿠라가오카에 심리학, 카이로프랙틱, 선도, 요가, 동양 의학, 한방 등을 가르치는 학원 "봉황경림관"을 개설했다.[122] 학원생은 여성으로 한정되었고, 다이어트 미용과 건강법이 중심이었다. 마쓰모토 지즈오는 이때부터 "아사하라 쇼코"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4년(쇼와59년) 2월, 마쓰모토 지즈오는 "봉황경림관"을 요가 교실 "옴회"로 바꾸었다. 같은 해 5월 28일에는 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때 형에게 "교주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이 무렵, 마쓰모토 지즈오는 평화건식도 설립하여 약품 "귀비"를 판매했다. 1984년 6월에는 이다 에리코의 소개로 마쓰모토 지즈오가 판매하는 건강식품의 모델로서, 이시이 히사코가 방문했다.
1986년 4월, 옴회를 옴 신선의 회로 개칭했다.[124] 1986년 5월, 쇼진코 캠프장에서의 수행에서 마쓰모토 지즈오는 스기모토 시게로 등 제자 몇 명에게 "현재의 국가를 전복시킨다", 메이지 유신도 몇 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장래에는 프리메이슨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1월 4일 단자와 세미나에서 마쓰모토 지즈오는 오계의 불살생과, 포아에 대해서 설법을 하였다.[158]
3. 2. 합법 활동
198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기존의 '옴신선회'를 개칭하여 종교단체 '옴진리교'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뉴욕 지부도 설립되었다.[497]
'진리교'라는 명칭에 대해 이시이 히사코를 제외한 사람들은 신흥종교 같다고 불평했다. 종교색을 숨기지 않으면 일반인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마쓰모토 지즈오는 구제 활동을 위한 것이므로 진리교로 한다고 고집했다.[497] 종교화된 후에는 고액의 헌금을 요구하게 되었고, 워크(수행)도 증가하여 기존 회원의 3분의 1이 탈퇴했다.[495][498]
마쓰모토 지즈오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일본 대표였던 페마 걀포와 접촉했고, 페마를 통해 1987년 2월 24일 및 1988년 7월 6일 달라이 라마 14세와 인도에서 회담했다. 마쓰모토 측은 두 사람의 회담을 동영상 및 사진으로 촬영했으며, 달라이 라마가 회담에서 "지금의 일본 불교는 너무 의식화되어서 불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네가 진짜 종교를 퍼뜨려라. 너라면 그것을 할 수 있다. 너에게는 보디치타가 있으니까"라고 마쓰모토 지즈오에게 말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옴진리교의 홍보 및 선전 활동에 크게 활용했다.[499][500] 옴진리교는 교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달라이 라마 사례와 같이 티베트 고승이나 인도 수행자들과 접촉해 선전 재료로 이용했다. 그러나 옴진리교 사건 이후 언론 취재에 대해 옴진리교와 접촉했던 고승, 수행자들은 일제히 깊은 관계를 부정했다.[499] 페마 걀포는 얼마 후부터 옴진리교와 대립하게 되었고, 티베트 망명정부에 앞으로 마쓰모토와 얽히지 말 것을 건의했다. 1995년 4월 5일 방일한 달라이 라마 14세는 기자회견에서 마쓰모토 지즈오와 만난 적은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제자가 아니며, 자신은 초능력이나 기적에 대해 회의적이고 신자가 한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불건전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1988년 10월경, 후지산 기슭인 후지노미야시에 총본부 도장을 건설한다.[501]
옴진리교는 종교법인에게 적용되는 비과세 혜택을 목적으로 도쿄도에 종교법인 인증 신청을 냈다. 그러나 미성년 신자 문제를 둘러싼 가족 및 피해자 회의의 비판으로 인해 인증 절차가 늦어졌다. 1989년 4월 24일에는 마쓰모토 지즈오가 신자 200명을 데리고 도쿄도청에 몰려가 항의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옴진리교의 법인격 인증이 늦어진 것은 피해자 회의의 의뢰를 받은 중의원 의원 키타카와 이시마츠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고, 이에 대해 교단 측이 변호사 출신 출가 신자 및 오키나와 참의원을 이용해 인증 수속을 추진했음이 이후 제43회 공판에서 밝혀졌다.[502] 결국 도쿄도는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보아 8월 25일 옴진리교를 종교법인으로 인정했다. 1993년 이후의 등기상 주사무소는 도쿄도 고토구 가메이도의 신도쿄총본부였다.
3. 3. 비합법 활동
옴진리교의 폭력성은 초기부터 나타났다. 1988년 옴진리교 재가신자 사망사건은 확인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닌 사망사고였지만, 1989년 이 사건을 알고 있던 신자가 교단을 탈퇴하려 하자, 사건 은폐를 위해 옴진리교 남성신자 살해사건을 일으켜 살인에 손을 댔다.[136][163] 같은 해 11월 4일, 옴진리교 피해자회를 지원하던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와 그 가족을 살해했다. 살해 당시 나카가와 토모마사가 현장에 옴진리교 배지를 떨어뜨려 옴진리교의 범행설이 퍼졌지만, 경찰의 부실수사로 사건 당시에는 사건성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1990년 진리당을 창당해 출마한 총선거 때는 신자들이 마쓰모토 지즈오나 가네샤의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는 등 기묘한 선거운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때 공직선거법에서 정해진 시간을 크게 초과하는 가두선전전을 벌여[505] 경시청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경고를 받으면 "포교활동"이라고 말하고 도망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505] 또한 다른 후보자의 포스터를 철거하고 훼손하는 등의 위법행동을 마쓰모토 지즈오 본인이 권고했고, 심야에 신자를 동원해 다른 후보자들을 중상하는 찌라시를 뿌리기도 했다.[505]
마쓰모토는 선거 참패를 계기로 옴진리교 국가전복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고, 신자들은 마쓰모토를 좇아 무장화에 협력해갔다. 1990년 4월, 이시가키섬 세미나를 개최했다.[507] 참가비는 30만 엔이었는데, 장소조차 제대로 예약되어 있지 않았고 날씨도 나빴다. 그러나 이 세미나에서 다수의 출가신자를 확보하여 교단을 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때 옴진리교는 보툴리누스균 살포 테러를 계획했기 때문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시가키섬에 사전 격리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보툴리누스균 배양에 실패했기 때문에 테러는 실행되지 않았다.[508]
1990년 5월, 구마모토현 아소군 나미노촌에 진출했다. 나미노촌 진출의 목적 중 하나는 무장화 거점 확보였다.[508] 그러나 나미노촌민들이 반발하면서 반대운동이 격화되었다. 같은 해 10월 22일, 옴진리교는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사건으로 강제수사를 받았고, 간부들이 줄줄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쿠마모토현경 내부의 신자로부터 정보가 새어 나가, 옴진리교는 무장화 설비를 사전에 은폐했다.[510] 이후 1994년 나미노촌은 옴진리교가 5000만 엔에 샀던[511] 토지를 합의금 형식으로 9억 2000만 엔에 되사는 것으로 합의했다.[512][513] 이 돈은 옴진리교에 큰 자금원이 되었다.
국토법 위반사건의 영향으로 1991년 교단 무장화를 일시 중단하고, 문화활동 등에 중점을 둔 노선으로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1992년경부터 마쓰모토 지즈오는 망상, 환청을 일으키기 시작했다.[514] 1993년을 전후해서 교단 무장화를 재개했다.[515] 오카무라철공을 탈취하여 AK-74의 생산을 시도하거나(자동소총 밀조사건), 화생방무기 연구를 실시하는 등 교단 내부적으로 무기개발을 진행했다. 1993년부터 사린을 이용해 교단 외부의 적대자를 암살하려 했고(이케다타 이사쿠 사린습격미수사건, 타키모토 타로 변호사 사린습격사건), 사린 70톤 생산을 목표로 제7사티안에 사린 합성 플랜트를 건설했다(사린플랜트 건설사건). 생물무기 개발도 재개해서 탄저균 배양을 시도했으나 카메이도 이취사건 등만 일으키고 성공하지 못했다.
이 무렵 옴진리교는 미국으로부터 독가스 공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카가와 토모마사에 따르면 이 피해망상은 1993년 10월경 제2사티안의 식품공장에서 이산화황이 포함된 연기가 나온 사고를 독가스 공격으로 착각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516]
지하철 사린 사건을 필두로, 현세인의 영혼을 구제하는 "포아"를 명분으로 조직적으로 수많은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110] 1988년부터 1994년 6년 동안 탈퇴 의향을 밝힌 신자 중 확인된 것만 5명이 살해되었고, 사망자와 실종자는 30명이 넘는다.
"출가"와 고액의 시주를 요구하며 신자의 친족이나 지원자와 마찰이 많았고, 초기부터 의심스러운 행동이 두드러졌다. 신자들의 친족 등으로 구성된 "옴진리교 피해자의 모임"에 의해 사법부, 행정부, 경찰 등 관계 기관에 대한 고소가 반복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을 비롯해 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등 테러를 포함한 많은 반사회적 활동(옴진리교 사건 참조)을 일으켰다.[107][108] 그 외에도 자동소총과 화학무기, 생화학무기, 마약, 폭탄류 등 교단의 무기와 불법 약물을 생산했다.[100]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진리당의 참패도 있었기에, 결국 일반 사회와 적대하게 되어, 국가전복 계획까지 실행하게 되었다.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95년 3월 20일의 지하철 사린 사건은, 종교 단체가 평시의 대도시를 목표로 여러 장소를 강력한 화학무기로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킨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1996년 종교법인으로서의 법인격을 상실했지만 활동을 계속했다. 2000년 파산에 따라 "옴진리교"로서는 소멸했다(2009년에 파산 절차가 종료되었다). 동시에 새로운 종교 단체 "'''알레프'''"가 설립되어, 교리와 신자 일부가 계승되었다. 알레프는 후에 "'''Aleph'''"로 개칭되었고, 히카리노와와 야마다 등의 집단이라는 분파가 결성되었다.
2018년에는 마쓰모토를 비롯한 간부들의 사형이 집행되었지만, Aleph을 중심으로 마쓰모토 신앙이 남아 있다. 2020년 현재도 일본의 공안조사청은 단체규제법에 따라 후계 단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 유럽 연합(EU) 등에서 테러리스트로 인정되어 각국에서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110]
3. 4. 교조 체포 이후
1995년 5월 16일, 아사하라 쇼코는 가미쿠이시키 단지 내 '제6 사티안' 건물 벽 속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었다.[33] 같은 날, 옴진리교는 도쿄 도지사 아오시마 유키오의 사무실로 소포 폭탄을 보내 그의 비서의 손가락을 절단시켰다. 아사하라 쇼코는 살인 23건과 기타 범죄 16건으로 기소되었다. 언론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 재판에서 아사하라 쇼코는 공격을 기획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는 기각되었다. 쓰치야 마사미 등 혐의를 받은 여러 고위급 신도들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아사하라 쇼코가 당국을 교란하기 위해 지하철 공격을 명령했다고 주장했지만, 변호 측은 아사하라 쇼코가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악화되는 건강 상태를 지적했다. 체포 직후 아사하라 쇼코는 조직 지도자직을 사임했고, 그 이후로 변호사나 가족과도 소통을 거부하며 침묵을 지켰다.
1995년 6월 21일, 아사하라 쇼코는 1994년 1월 옴진리교 병원 약사였던 오치다 고타로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인정했다.[33] 교단 시설에서 탈출하려던 오치다 고타로는 다른 옴진리교 신자에 의해 제압당해 살해되었는데, 그 신자는 오치다를 살해하지 않으면 자신도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1995년 10월 10일, 옴진리교는 "종교 법인"으로서의 공식 지위를 박탈당했고, 1996년 초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단체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장에 따라, 성공적인 컴퓨터 사업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엄격한 감시 하에 계속 활동하고 있다. 1952년 반역 활동 방지법에 따라 이 단체를 전면 금지하려는 시도는 1997년 1월 공안심사위원회에 의해 거부되었다.
아사하라 쇼코의 체포 및 재판 이후, 이 단체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잠시 동안 아사하라의 두 명의 미성년 아들이 공식적으로 그를 대신하여 교주가 되었다. 2000년 2월 "알레프(Aleph)"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편되었다. 논란이 되는 금강승 불교 교리와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경전이 제거되는 교리 변경을 발표했다. 사린 가스 공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특별 보상 기금을 설립했다. 사회를 불안하게 했던 자극적인 출판물과 활동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는다.
아사하라 쇼코 치하에서 심각한 혐의를 받지 않은 소수의 고위 지도자 중 한 명인 조유 후미히로가 1999년 조직의 공식 수장이 되었다. 1999년 국회에 오무진리교 반대 위원회를 구성한 의원 이시이 고키는 2002년 살해되었다.
15년 이상 동안 단 3명의 도피자만이 적극적으로 추적되었다. 2011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0분, 히라타 마코토가 경찰에 자수하여 1995년 오무진리교의 납치 및 조사 과정에서 사망한 비회원 카리야 기요시의 납치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었다.[46][47][48] 2012년 6월 3일, 경찰은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받고 두 번째 도피자인 키쿠치 나오코를 체포했다.[49]
키쿠치의 체포로 얻은 정보, 특히 외모가 바뀐 최근 사진을 바탕으로 마지막 도피자 다카하시 가쓰야가 2012년 6월 15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의 운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년 동안 도주하다 도쿄에서 체포되었다.[50]
2018년 7월 6일, 아사하라 쇼코와 다른 6명의 오무진리교 신자들이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되었다.[51][3] 일본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는 이 범죄가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공포를 안겨주었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사건에서 사형 제도의 사용을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사형 집행이 드물지만,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적 지지가 있다.[52] 당시 사형수는 13명이었다.
2018년 7월 6일 사형 집행된 오무진리교 신자:[51]
이름 | 역할 |
---|---|
아사하라 쇼코 | 오무진리교 교주 |
이노우에 요시히로 | 오무진리교 "정보국장"이자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의 총책임자 |
니이미 토모미쓰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중 한 명인 하야시 이쿠오의 도주차량 운전자 |
나카가와 토모마사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하야카와 기요히데 | 오무진리교 "건설 담당 장관", 1989년 반체제 의혹을 받던 젊은 신도를 교살한 혐의로 유죄 판결 |
엔도 세이이치 | 오무진리교의 "수석 과학자" |
쓰치야 마사미 | 오무진리교의 수석 화학자이자 사린 가스 제조 책임자 |
나머지 6명의 오무진리교 신자들은 2018년 7월 26일에 사형 집행되었다.[53][54]
이름 | 역할 |
---|---|
하야시 야스오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히로세 켄이치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토요다 토루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요코야마 마사토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오카자키 가즈아키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하시모토 사토루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처음에는 아사하라 쇼코의 유해가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막내딸에 의해 수습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의 막내딸은 친척들과 교단 신자들에게 "오무진리교를 끝내고 사회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다른 교단 요소들의 보복을 우려하여 유해는 구치소에 보관되었다.[55] 2020년 도쿄 가정 법원은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수감 중인 아버지를 반복적으로 방문했던 둘째 딸이 아버지의 머리카락과 유해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2021년 7월 2일, 대법원은 넷째 딸의 항소를 기각하고 가정 법원의 판결을 유지했다.[56] 2024년 도쿄 지방 법원은 정부에 유해를 둘째 딸에게 인도하라고 명령했다.[57]
2000년 1월, 오움진리교는 반(反)오움 법률에 따라 3년간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당국에 신도 명단 및 자산 내역을 제출해야 했습니다.[77] 같은 해, 러시아인 신도 한 명이 아사하라 쇼코를 경찰 구금에서 구출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폭탄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되었다.[78] 이 계획은 프리모르스키 지방(Primorsky Krai)에서 체포된 드미트리 시가체프(Dmitry Sigachev)가 주도했다.[79]
2001년, 러시아 오움 신도들이 아사하라 쇼코를 경찰 구금에서 풀어주기 위해 도쿄 황궁(Tokyo Imperial Palace)을 폭발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가 있었다.[80]
2003년 1월, 일본 공안정보청(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은 오움진리교가 여전히 아사하라 쇼코를 숭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여 감시 기간을 3년 더 연장할 허가를 받았다.[81] 2004년 4월 발표된 종교 뉴스 블로그(Religious News Blog) 보고서에 따르면 당국은 여전히 오움진리교를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82]
2006년 9월 15일,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Capital punishment in Japan)에 대한 최종 항소에서 패소했다. 다음 날 일본 경찰은 "아사하라의 사형 선고 확정에 따른 신도들의 불법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알레프(Aleph) 사무실을 급습했다.[83] 결국 13명의 신도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84]
2007년 3월 8일, 오움진리교의 전 대변인이자 모스크바(Moscow) 지부 책임자였던 조유 후미히로는 오랫동안 예상되어 온 분열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85] "빛의 원(Hikari no Wa)"이라는 이름의 조유 후미히로의 그룹은 과학과 종교의 통합, 그리고 "인간 정신의 새로운 과학" 창조를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며, 이전에는 오움진리교의 범죄 역사에서 벗어나 영적인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86]
2011년 4월, 공안정보청은 오움진리교의 구성원이 약 1,500명이라고 밝혔다.[87] 2011년 7월, 오움진리교는 자체 구성원 수를 1,030명으로 보고했다. 이 단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신규 회원 모집과 대학 캠퍼스에서의 포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88][89]
일본 공안심사위원회는 2015년 1월, 오움진리교의 두 개의 분파에 대해 2015년 2월 1일부터 3년간 감시를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90]
4. 교리
옴(AUM)은 원래 범어 또는 팔리어 진언 옴(唵)이다. 옴마니 반메 훔의 그 "옴"이다. "옴"은 "아・우・무" 세 글자로 분해될 수 있으며, 이것은 우주의 창조・유지・파괴, 즉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의미이고, 만물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표현한다.
마쓰모토 지즈오 자신의 해설에 의하면 "진리"는 석가나 예수가 "인간이 실천해야 할 것은 이러하다"는 가르침을 설파했는데, 그 가르침의 근본을 "진리"라고 부른다. 옴진리교는 티베트 불교나 원시 불교의 요소를 부각시켜 불교계 신흥종교로 분류되곤 하는데, 옴진리교 스스로는 "불교"를 자칭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불교라는 말 자체가 석가 사후에 "창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과학이다.[490][491]
그러나 이상은 옴진리교 측의 주장이고, 실상은 교토의 사립탐정 메카와 시게하루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메카와는 마쓰모토 지즈오에게 천리교(天理教)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아 그 조사결과를 마쓰모토에게 전했다. 이 때 "안리쿄, 인리쿄, ……" 식으로 히라가나 오십음도를 내림차순으로 계속한 끝에 "신리쿄"에 이르렀다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리교"(真理教)라 할 예정이었지만, "신리쿄"로 발음되는 다른 종교단체(신리교)가 있었기 때문에 상표등록상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메카와가 앞에 "옴"을 붙일 것을 권했는데, 그 "옴"은 메카와의 집 건너편에 있던 옴 전기(オーム電機)라는 업체명에서 유래한 즉, 그 "옴"은 최종적으로 옴의 법칙에서 유래했다.[492] 메카와는 나중에야 마쓰모토 지즈오가 아사하라 쇼코라는 것을 알았다.
메카와와 마쓰모토가 만난 시기는 메카와의 수기에서는 1978년-1979년, 논픽션 작가 타카야마 후미히코와 도쿄신문기자 세구치 하루요시의 문헌에서는 1984년 봄무렵으로 되어 있다. 타카야마는 마쓰모토가 천리교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한 이유가, 세력을 확대하여 교단 이름이 지명에까지 붙기에 이른(덴리시) 천리교를 자신의 야망과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라는 설을 제기했다.[493][494]
옴진리교는 초기 인도 불교와 티베트 불교, 힌두교의 요소들에 대한 아사하라의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신앙 체계이며, 시바를 주요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기독교의 종말론적 사상, 요가 이론과 실제, 노스트라다무스의 저술 등도 포함하고 있다.[58][59]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출생명: 마쓰모토 치즈오)는 자신이 "원초 불교"를 회복하려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독교 종말론적 수사법을 사용했다.[60]
1992년 아사하라가 출판한 창립 서적에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Christ)"[61]이자 일본에서 유일하게 완전하게 깨달은 스승,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 양(Lamb of God)"으로 규정했다.[62]
아사하라의 명시된 사명은 세상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는 것이었으며, 그는 추종자들에게 영적인 힘을 전달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의 죄와 악행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63] 일부 학자들은 옴진리교의 불교적 특징과 일본 불교와의 관련성에 대한 주장을 반박하지만,[64] 다른 학자들은 그것을 일본 불교의 분파로 언급하며,[65] 이것이 일반적으로 운동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인식하는 방식이었다.[66]
그들의 가르침은 유대인 금융가, 프리메이슨, 전쟁 이익자들이 연루된 음모의 결과로 곧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2000년 또는 2006년에 서구 핵 공격을 일본에 주도하고 제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것이며, 입자빔 무기로 싸울 것이라고 했다.[67]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로버트 제이 리프턴에 따르면 아사하라는 핵 '아마겟돈'으로 절정에 달하는 최후의 갈등을 묘사했다.[68]
옴진리교에 가입한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고는 인류는 멸망할 것이었다.[17] 옴진리교의 사명은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종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아사하라는 아마겟돈에서의 집결이 1997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17] 캡런은 쇼코 아사하라가 강의에서 미국을 요한계시록의 "짐승(The Beast)"이라고 언급하며 결국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지적한다.[17] 아사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3차 세계 대전을 포함한 종말 예언을 제시했다.[69]
음모와 비밀결사에 관한 책의 저자인 아서 골드와그는 아사하라가 유대인, 프리메이슨, 영국 왕실에 대한 음모론적 저술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묘사한다.[70]
다니엘 A. 메트로의 견해에 따르면, 옴진리교는 불교의 멸법과 성법과 같은 불교 사상과 교리를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폭력을 정당화했다. 옴진리교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옴으로써 성법을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71] 또한 리프턴은 아사하라가 "티베트 불교의 포와(phowa) 개념을 해석하여 집단의 목표에 반하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들이 악업을 쌓는 것을 막고 구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믿는다.[68] 옴진리교 용어에서 포와는 "포아"(ポア)로 표기된다.
"옴진리교"(Aum Shinrikyo, オウム真理教, Ōmu Shinrikyō)라는 이름은 우주를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 음절 "옴(Aum)"에서 유래했으며, 그 뒤에 일본어 "진리교(Shinrikyo)"(대략 "진리의 가르침"을 의미)가 한자로 쓰여 있다.
2000년 1월, 이 단체는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번째 글자인 "알레프(Aleph)"로 이름을 바꾸었고,[72][73][74] 로고도 변경했다.[75]
옴진리교는 수행을 통한 고뇌로부터의 해방을 설파하며, 무상인 욕망·번뇌로부터 물리적으로 초월하는 것을 "해탈", 정신적으로 초월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절대 죽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라는 문구는 1991년 2월 12일, 아소 샹발라 정사 설법에서 등장했다.[218] 마하라(麻原)는 "여러분이 긍정하든 부정하든,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죽음은 수행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이 현세의 고작 40년, 50년에 여러 가지 보험에 들고 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사후 세계에 보험을 들면 어떨까"라고 설파했다.[218] 이러한 죽음과 무상, 생사의 초월을 강조하는 것은 아함종이나 사보타의 저서에는 없는 옴진리교의 특징으로, 현세 부정, 현세 이탈, 현세 초월이 두드러진다.
자기의 번뇌를 초월하고 무상을 초월한 상태가 열반(涅槃, 번뇌 파괴)이다. 또한,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영혼을 고뇌로부터 해방시켜 절대 자유·절대 행복·절대 환희의 상태로 이끌어냄으로써 자신 또한 절대 자유·절대 행복·절대 환희의 마하니르바나(대완전번뇌파괴), 또는 마하보디니르바나(대도달진지완전번뇌파괴)에 이른다.
불교에서 사무량심이란 자, 비, 희, 사의 네 가지 이타적인 무량심을 가리키지만,[220] 마하라(麻原)는 이를 "성자애(聖慈愛), 성애(聖哀れみ), 성찬(聖稱賛), 성무둔착(聖無頓着)"으로 바꿔 말하며, 성자애는 "모든 영혼의 성장을 기원하는 마음", 성애는 "아직도 악업을 짓고 높은 세계에 이를 수 없는 영혼에 대한 애정", 성찬은 "자신보다 덕의 수행에서 뛰어난 자에 대한 칭찬하는 마음", 성무둔착은 "현재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최종 단계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 중 성무둔착은 "금강심(金剛心)"이라는 바즈라야나(Vajrayana)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교단에서는 윤회와 전생을 믿었다. 마쓰모토 아키후미(麻原彰晃)는 자신의 출판물을 통해 도쿠가와 이에미쓰와 주원장 등 많은 전생을 가졌다고 주장했다.[221] 특히 아수라의 종교적 왕은 직전의 삶이었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마쓰모토 아키후미에게 귀의했던 사람들이 많이 전생하여 현재의 신자가 되었다고 교단 내에서는 믿었다. 또한 도장에서는 "숙명통(宿命通)"이라는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방영하여 마쓰모토 아키후미의 이집트에서의 전생 이야기를 펼쳤다. 제제르왕 시대에 그는 재상 임호테프로서 왕에게 종교적 지도를 베풀고,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인 "제제르왕 피라미드"를 지었다고 한다.[222]
윤회 전생과 관련하여 업의 법칙도 믿었다. 벌레 500마리를 죽이는 카르마가 사람 1명을 죽이는 카르마에 상당하며, 접촉만으로도 카르마가 교환되고, 스포츠나 미식을 즐기면 카르마를 지고 낮은 세계로 떨어진다는 등의 독특한 교리가 있었다.[223] 한편, 1986년 마쓰모토 아키후미는 "해탈하면 현세에서 죄가 되는 일을 해도 카르마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탈자에게는 죄가 없다"고 설파했다.
이 밖에, 교단에 불이익을 준 자는 '''카르마 반환'''을 받는다고 하며, 신자에 대한 체벌은 '''카르마 떨어뜨리기'''라고 했다. 그 사람의 나쁜 카르마를 떨어뜨리려면 고통을 주면 된다고 했다. 즐거운 일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덕이 줄고, 고통스러울수록 덕을 쌓게 되므로, 상대를 괴롭히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좋은 일이며, 오움을 비판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카르마 떨어뜨리기로 여겨졌다. 1991년 10월 16일에는 "학습 시험에서 컨닝하는 자가 있다면, 개의치 말고 때려라. 때려눕혀라. 그것은 그들이 내세에 삼악도(三悪趣)에 떨어지는 카르마를 떨어뜨리는 의미에서다. 자신보다 강해 보이면 2, 3명이서, 그래도 안 되면 10명이서 때려라. 이것은 내가 인정한 율법이다. 학습을 공부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소리를 지르면 에너지를 낭비하므로, 확실히 괴롭혀라. 정신적으로, 밥을 먹이지 않거나, 잠들려고 하면 깨우는 등."이라고 하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뿌리내리면 때려서라도 수행시키는 것이 좋다고 설파하여, 사형과 괴롭힘을 정당화했다.
오움진리교는 영적인 에너지(
샤크티파트는 인도의 탄트리즘에서 구루가 제자에게 손을 대어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고 정신적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이다.[227] 오움진리교에서는 초기에는 제자의 쿤달리니 각성을 위해 행해졌고, 1988년 8월에는 아사하라가 샤크티파트를 중단하고 고제자에게 맡겼다.[228] 원래 힌두교·시바파에서 샤크티파트는 제자의 각성을 스승이 돕는 것이며, 또한 업을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움진리교에서는 아사하라의 개인적인 에너지나 혈액 등 물질의 주입을 의미했다.[446]
종교학자 마사키 아키라는 아사하라의 샤크티파트는 진광계 제교단의 손대기 요법이나 핸드 힐링, 세라퓨틱 터치와 기본 원리는 같다고 말하고 있다.[229]
탄트라밀교에서 역사적인 용어로서의 포아(포와)(pho ba)는, 나로파의 육법에서 몸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툼모 수행, 환신 수행, 꿈 수행, 광명 수행, 중유 수행에 이어 마지막 수행으로 여겨지는 전이·천유 수행을 가리키며, 의도적으로 자기 또는 타인의 의식을 옮기는 기법을 말한다.[230] 탄트라밀교의 요가 체계에서는 살해 또는 타인의 영혼을 빼앗는 의미는 없다.[230]
오움진리교에서도 "포아" 또는 "포와"는 "영혼의 전이"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성취자가 제자에게 명하여 장래 악업을 쌓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살인도 "영혼의 전이"가 되며, 피살자와 살인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설파되었다.[231] "오움신선의회" 시절이었던 1987년 1월 4일 단자와 세미나에서 아사하라 쇼코는 "예를 들어 구루가 그것을 죽이라고 말할 때는, 예를 들어 상대는 이미 죽을 시기가 왔다. 그리고, '''제자에게 죽이게 함으로써, 그 상대를 포아시키는''' 것이지, 가장 좋은 시기에 죽이게 하는 거야."라고 이미 살인을 긍정하는 의미에서 "포아"라는 용어를 사용한 설법을 했다.[158] 전 교단 간부인 나카무라 쇼에 의하면, 나카자와 신이치의 "무지개의 사다리"를 읽고 있던 제자 쪽에서 포아(의식의 옮김)를 살인을 포함한 은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움진리교 남성신자 살해사건 직후의 설교에서는, 배 위에서 300명의 무역상을 살해하려고 했던 악인을 부처(의 전생)가 이 악인의 업이 나빴기 때문에 포아(살해)했다고 설교되었지만, 종교학자 와타나베 가쿠는 여기서 아사하라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선교방편경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교방편경에서는 500명의 상인이 타는 배에서 한 명의 악인이 모든 사람을 살해하고 재보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석가의 전생인 선장은, "악인이 상인을 죽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 반대로 계획을 알게 된 상인이 악인을 죽여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악인을 내가 죽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그 선교방편에 의해 악인을 죽였다.[232] 와타나베 가쿠는 이것은 석가가 태어나기 전에 했다는 이야기이며, 석가와 같은 심경이 된 인간이 같은 것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아사하라의 해석에는 비약이 있으며, 또 아사하라는 자신이 최종 해탈자이며, 신과 같은 존재임을 증명하고, 살인 행위를 구제와 연결시키기 위해 이 이야기를 이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전 고야산대학 학장인 후지타 미츠히로는 불교에서의 "자비의 마음과 선교방편에 근거한 살생"에 대해, "본생담이나 설화, 또 역사적·사회적인 사건 등에 의한 예증을 보여 설파된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에게 믿게 하기 위해 사용된 상징적인 비유이다. 문자 그대로 살생 등을 실행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명언한다.[232]
오움은 사람들의 구제를 설파하는 한편, "유대 = 프리메이슨에 지배되어 물욕에 빠져 동물화하는 사람들, 삼악취에 떨어지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진화하는 사람들"을 이분하고, 전자를 숙청하려고 하는 사고에 빠져 있었다고 여겨진다.[233][234]
마하무드라(マハームドラー)는 원래는 카규파의 수행이었지만, 오움진리교에서는 교주가 제자에게 고의로 시련을 주어 귀의를 시험하는 수행이 되었고, 무리한 시련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교주가 제자를 성장시키기 위해 행하는 수행으로서, 살인도 마하무드라라고 설교되었다. 1988년 또는 1989년에, 아사하라 쇼코의 딸이 신자의 아이들에게 심술을 부리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아사하라는 "딸이 업보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하무드라 수행이다"라고 설명했다. SPA! 1989년 12월 6일 호에서 아사하라는 "카규파의 마하무드라에서 큰 영향을 받아 광기의 깨달음을 목표하고 있다"라고, 대담 상대인 나카자와 신이치는 "종교는 본래 반사회성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노우에 요시히로는 96년 3월의 첫 공판에서 "내가 한 일은 모두 마하무드라 수행이었다"라고, 엔도 세이이치는 사린 제조가, 하시모토 사토루는 사카모토 가족 살해가 마하무드라였다고 진술했고, 하야시 이쿠오는 무라이로부터 "사린을 살포하는 것은 마하무드라 수행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하야시 이쿠오 자신도 사린에 의한 사망자도 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라한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니이미 토모미츠도 1989년 신자 살해 사건에 대해서 "(교주가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교리상의 비유적인 말로, 구체적으로 누구를 죽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수행상의 관념 붕괴, 마하무드라라고 생각했다. 선악 등의 이원론적인 사고를 붕괴시켜 공에 도달하는 것이 마하무드라이다. 살생하는 사람과 살해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주객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망이다"라고 말했다.
마하무드라를 내세워 불법 활동을 실행했을 때 아사하라가 자주 사용한 것이 다음과 같은 밀라레파의 전기였다. 말파의 제1 제자 고크파는, 밀라레파에게 입문 의식을 베풀기 위해, 식량을 훔치는 마을의 악당들에게 마법으로 우박 폭풍을 일으켜 공격하면 전수하겠다고 했다. 그 후, 밀라레파는 "앞으로 할 일은 범죄다"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격했고, 죽은 새와 양을 모아 고크파를 만나러 갔다. 밀라레파는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고 울면, 라마 린포체는 "비밀의 경전에 의해 죄인도 순간적으로 해탈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튕겨 시체를 소생시켰다.
초기에는 주로 요가 수행법을 사용했다. 이후, 원래는 "비전 전수"를 의미하는 종교 용어였던 "입문(이니시에이션)"이라는 단어를 오움 고유의 "깨달은 자의 에너지를 전수하여 제자를 완성시키고 해탈하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면서 신자를 늘려갔다.
마하라(麻原)는 저서 「입문(イニシエーション)」(1987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5가지 기둥"으로 관념을 붕괴시키는 것, 애착을 버리는 것,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존심을 넘어서는 것, 화내지 않는 것을 들었다.
또한, 교단에서는 유대교·프리메이슨에 의한 3S, 즉 스크린(텔레비전), 스포츠, 섹스가 악으로 여겨졌고, 그것들을 이용한 서브리미널 메시지와 번뇌에 의한 세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구루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성인 비디오, 가라오케, 파칭코, 패션, 미식, 테마파크 등에 의해 현대인은 생각하는 능력을 잃고 욕망을 채우는 동물이 되어, 그들(어둠의 유대 세력)로부터 가축이라고 불려도 불만을 말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더욱이 마하라(麻原)는 종말론을 부추기고, 1994년 전후에는 불법 약물과 전기 등을 이용한 다양한 세뇌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이후로는 이시카와 코이치를 중심으로 약물과 최면술을 이용한 시스템화가 완성되어,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단에 끌어들이면 세뇌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그 외, 1991년 봄부터 실시된 온열 수행에서는 47도~49도의 물에 15분 동안 들어감으로써 티베트밀교의 툼모(トゥンモ)와 같은 체온 상승을 목표로 했고, 하야카와에 따르면 상당수의 신도가 이로 인해 사망했다.
「바르도의 인도」에서는 시체나 사고사 영상과 함께 "사람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절대 죽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구절이 반복되고, 지옥의 비디오에서는 화면이 거의 칠흑처럼 어둡고, 지옥에 떨어진 자가 허기를 호소하면 지옥의 사자가 입을 벌리고, 달구어진 쇠를 붓고, 몸이 타는 등의 내용으로 약 5시간 동안 계속된다. 비디오에서 마하라(麻原)는 "나는 지옥을 본 적이 있다. 지옥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세상에서 제자들을 정성껏 꾸짖는 것으로 그것이 몸으로 되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시청 후에는 마하라(麻原)와 이시이 히사코(石井久子)의 듀엣으로 지옥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갑자기 근처의 북이 울린다. 염마 역할을 하는 대사로부터 약 3시간 동안 "왜 출가할 수 없는가"를 질문받는다. 출가를 거부하면 연화좌를 맺은 채 묶여 대사가 죽도로 방 안을 두드리면서 "살인자"라고 고함치는 등 이러한 꾸짖음이 12시간 동안 계속된 신자도 있었다.
오움진리교에서는 수행의 내용을 세 가지 또는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진언비밀금강승/비밀진언금강승(탄트라·바지라야나)이며, 엄밀하게 설명할 때는 탄트라야나와 바지라야나를 구분한다. 여기서는 네 가지 수행 체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만, 현교가 대승을 설하는 것에 대해, 밀교는 금강승(바지라야나)을 설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불교 용어의 정의와는 다르다.
또한, 아사하라는 해마다 설법과 옷을 바꾸었는데, 1988년에는 히나야나로 노란 옷을, 1989년에는 마하야나로 흰 옷을, 1990년에는 탄트라·바지라야나로 보라색 옷을 입었다.
- 히나야나
- 히나야나(소승)는 외계와 떨어져 자기 정화·완성을 목표로 하는 길이다. 히나야나는 모든 토대이다.
- 마하야나
- 마하야나(대승)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높은 세계에 이르게 하는 길(중생제도, 구제)이다. 교단 전체는 마하야나로 규정된다. 다만, 완전한 자기 정화(히나야나의 완성)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의 마하야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옴진리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이름에도 사용되었다.
- 탄트라야나
- 탄트라야나는 섹스를 통해 가장 낮은 차원에 있는 성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수행이다. 초기의 『초능력 비밀의 개발법』에서는 유체이탈을 얻기 위해 잦은 성교와 잦은 수음이 장려되었다.[175] 동서에서는 방중술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으며, 예를 들어 섹스 상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리고 아름다우며, 성격이 좋은 사람을 선택한다. 사정 후에는 최소 6시간 동안 잠을 자고, 찬달리, 즉 성적 에너지의 불이 타오르는 것을 관상한다. 상대가 끝나면 남성은 음경을 움직이면서(여성은 질을 조이면서) 사정액이 붉은 에너지를 발하고 있다는 것을 관상하고, 붉은 에너지를 음경으로 빨아들이는 기분을 가지고, 그 에너지를 무라다라 차크라에서 머리꼭대기의 브라마 공에 도달시켜 축적한다. 이것을 세 번 반복한다고 설파되었다.[237]
- 그 후 아사하라는 "최종 해탈자"로서 좌도 탄트라 이니시에이션(탄트라의 이니시에이션)이라고 칭하며 성행위를 했으며, 여성 신자들에게는 섹스로 정자를 주고, 남성 신자들에게는 정자를 마시게 했다. 어떤 미성년 여성 신자는 1989년 4월경 후쿠오카시의 호텔로 불려가, 트윈룸 침대 위에 앉은 아사하라로부터 남성 경험의 유무를 질문받은 후, "옷을 모두 벗으라"는 말을 듣고,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알몸이 되자, 키스를 하고, 몸을 만졌다. 그 후, 후지 총본부 3층 아사하라의 방으로 자정 3시에 불려가, "꽤 성욕이 쌓였을 텐데"라고 말하며 갑자기 옷을 벗기고, "이것은 탄트라 이니시에이션이라고 해서, 에너지가 상승하여 빨리 해탈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며, 끝까지 성행위를 하고, 행위 후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입막음을 했다. 그 후 스기나미구의 아사하라 맨션으로 불려가, "월경 때문에"라고 말했지만, "임신하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구루의 지시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 성행위를 받아들였다. 여성 신자는 "(아사하라의) 성행위 자체도 일방적이고,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느낌이었다"고 증언한다. 다른 여러 여성 신자들도 "탄트라 이니시에이션이라는 과격한 이니시에이션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모두 입막음을 당했기 때문에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러한 아사하라의 섹스 수행에 대해 주간문춘이 1990년 3월 15일호에서 보도했지만, 공개적으로 옴진리교는 항의하지 않았고, 1990년 8월 오사카 지방법원에서의 인신보호 청구 재판에서 "날조 조작"이라고 재판에서 답변하는 것으로 그쳤다. 이후에도 아사하는 다키니라고 칭한 미성년자를 포함한 젊은 애인을 여러 명 거느렸다.
- 한편, 신자들에 대해서는 1990년 봄 이후로는 섹스 수행에 대해 설교하지 않았다. 아사하라는 신자들에게 매스컴의 비판은 모두 허위이며, 그러한 나쁜 데이터는 머릿속에 넣지 말라고 지시했고, 주간문춘의 섹스 수행 기사도 "이 건은 화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쪽지를 교단 시설에 게시했다. 1994년경에는 번뇌에 휘말리면서 구제 활동을 하는 탄트라야나는 교조와 여성 문제가 거론되는 것 같은 정치 윤리가 설파되는 현대에는 맞지 않는 수행이라고 설파되었다.[238] 교단에서는 신자는 연애도 성교도 금지되었고, 남성 대사와 여성 신자의 관계가 발각되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독방에 감금되었고, 부부로 입교해도 동거할 수 없었고, 옆에 앉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출가 신자의 계율 "불사음"에서는 성행위뿐만 아니라 자위도 금지되었다.
- 바지라야나
- 바지라야나(금강승)는 밀교도가 자신의 밀교를 자칭하는 말로, 바지라(금강)는 인드라의 무기를 의미한다.[239]. 금강승은 현교에 비해 절대적인 수행(가르침)을 의미하며, 『금강정경』이나 무상유가탄트라에서 사용된다.[239]. 금강승은 구루와 제자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성립하는 길이다. 구루가 제자 내부에 있는 번뇌를 찌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그 번뇌를 뛰어넘게 하는 마하무드라 등의 격렬한 방법이 포함된다. 아사하라는 카를 린포체를 만나고 나서 바지라야나를 설파하게 되었다.[240].
- 옴진리교에서의 탄트라바지라야나 교리는, '''「오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었다.
- 보생여래의 법칙 - 재산은 선을 위해 사용된다면 훔쳐도 좋다.
- 아촉여래의 법칙 - 윤회에 최적의 타이밍이라면 죽여도 좋다.
- 아미타여래의 법칙 - 연애 감정에 의해 진리의 실천을 방해하고 있는 이성은 빼앗아도 좋다.
- 불공성취여래의 법칙 -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 바이로차나의 법칙 - 시기상조로 아사하라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 불명. 코끼리 고기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대에는 무리.
- 이것은 "일반적인 계율에 반하는 행위·언동"이 완전히 번뇌 없이, 완전히 마음속에 이타심만 있을 때 허용된다는 것이다. "천계의 법칙이지 인간계에서는 달성할 수 없다"는 주석과 함께 설파된 적도 있었다.
5. 조직
옴진리교는 마쓰모토 지즈오가 1984년에 설립한 요가 동아리 '오움신선회'를 모체로, 1987년에 종교단체 '옴진리교'로 개칭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158] 초기에는 요가와 명상을 중심으로 신자를 모았으나, 점차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조하고, 과격한 수행과 헌금을 강요하는 등 폐쇄적인 종교 단체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5. 1. 시설
- 도쿄총본부: 미나토구 난아오야마 (1층은 마하포샤 사무소)
- 세타가야 도장(세타가야구 아카츠츠미)
- 스기나미 도장(스기나미구 시모이구사)
- 지부: 삿포로, 센다이, 미토, 타카사키, 후나바시, 요코하마, 후지에다, 마쓰모토, 나고야, 가나자와, 후쿠이, 교토, 오사카, 사카이, 와카야마, 히로시마, 고치, 후쿠오카, 나하, 뉴욕, 본, 스리랑카, 모스크바
- 후지산 총본부 도장: 후지노미야시히토아나. 대지 면적은 18000m2이다.
:: 후지산 총본부의 아사하라 가족의 방에는 창문에서 후지산이 보이고, 인도의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피아노와 텔레비전이 있었다. 또한 일반 신자의 아이는 먹을 수 없는 과자도 있었다.
- 제1사티안 (1989년 11월 당시 4층에 아사하라 가족, 금고실, 명상실, 거실, 회의실, 욕실)
- 제4사티안 (비디오와 애니메이션 제작)
야마나시현 니시야쓰시로군 가미쿠이시키촌(현: 미나미쓰루군 후지카와구치코정)에는 제1상구부터 제7상구까지가 있으며, 각각에 시설이 있었다.
- 제1상구
- * 제2사티안 (1층은 창고, 명상실, 법황관방사무실, 테이프 제작실. 3층에 존사의 방, 피아노, 사우나, 거실, 제1·제2명상실, 욕실)
- * 제3사티안 (창고)
- * 제5사티안 (인쇄공장)
- 제2상구
- * 제6사티안 (1층은 식품공장, 어린이실, 가족의 방, 명상실, 배선실, 수법의 방, 욕탕, 사우나. 3층은 간부, 신자의 방, 수행실, 사무실, 의무실)
- * 빅토리동 (숙소), 컨테이너
- 제3상구
- * 제7사티안 (사린 플랜트)
- * 쿠시티갈바동 (도야마사미의 실험실)
- 제4상구
- * 제8사티안 (마하포샤의 컴퓨터 조립공장)
- * 제12사티안 (자동소총, 사린 분무차 제조)
- 제5상구
- * 제9·제11사티안 (자동소총)
- 제6상구
- * 제10사티안 - 출가 신자의 자녀들의 생활 공간. 자치성계 긴급 연락망의 배포 센터.
- * 지바카동 (CMI동) - 엔도 세이이치의 실험실.
- 제7상구
- * 창문 없는 창고군
- 후지세이류정사 (야마나시현 미나미코마군 도미자와정(현: 동군 난부정)) (자동소총 공장)
2005년 6월 일본 경찰청 보고서에 따르면, 알레프(Aleph)는 약 1,650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650명은 공동체 시설에서 공동 생활을 했다.[76] 이 단체는 17개의 현에 26개의 시설과 약 120개의 주거 시설을 운영했다.

5. 2. 신자 구성
옴진리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초기에는 요가 교실로 시작하여, 점차 종교 단체로 변모하면서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초기 신자: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요가와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건강 개선, 정신 수양 등을 목표로 옴진리교에 참여했다.
- 출가 신자: 옴진리교의 교리에 깊이 심취하여, 전 재산을 바치고 출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단 시설에서 공동 생활을 하며, 엄격한 수행 생활을 했다. 출가 신자 중에는 이시이 히사코처럼 초기 요가 교실 시절부터 참여한 사람도 있고, 이노우에 요시히로와 같이 나중에 합류한 사람도 있다.
- 전문직 종사자: 옴진리교에는 의사, 변호사, 과학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교단의 활동에 전문 지식을 제공하거나, 교단의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 의사: 하야시 이쿠오, 나카가와 토모마사 등
- 변호사: 아오야마 요시노부
- 과학자: 무라이 히데오, 쓰치야 마사미, 엔도 세이이치
- 기타: 자위대원, 건설회사 직원, 전직 폭력단원, 디자이너, 뮤지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옴진리교에 참여했다.
- 자위대원: 야마가타 아키라, 마루야마 미치마로
- 건설회사 직원: 하야카와 기요히데
- 전직 폭력단원: 나카타 키요히데
- 디자이너: 기베 테츠야
- 뮤지션: 이시이 신이치로
옴진리교는 신자들에게 엄격한 계율과 수행을 요구했다. 출가 신자들은 하루 3시간의 수면과 제한된 식사, 그리고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해탈을 추구했다. 교단 내에서는 '스테이지'라는 계급 제도가 운영되었으며, 수행의 정도에 따라 계급이 상승했다.
교단은 신자들에게 전 재산 헌납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신자들을 감금하거나 살해하기도 했다. 또한, 신자 유치를 위해 일종의 네트워크 마케팅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옴진리교의 신자 구성은 다양했지만, 교단의 폐쇄성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결국 옴진리교가 극단적인 범죄 집단으로 변질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1995년 6월 28일 교단이 실시한 출가 수행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285]
항목 | 내용 |
---|---|
성별 | 남성 459명(41%), 여성 661명(59%) (총 1120명) |
연령 | 평균 30.1세, 최다 26세(102명) |
다른 종교 단체 입신 경험 | 있음 35%, 없음 65% |
학력 | 대졸 37.8%, 단기대졸 7.0%, 전문학교졸 16.7%, 고졸 25.2% |
입신 동기 | 1위 책을 읽고 (273명), 2위 권유 (171명), 3위 출가자·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61명), 4위 교의에 납득하고 (52명) |
5. 3. 운영 체제
옴진리교의 운영 체제는 인도의 종교 단체 도쿄 지부에서 수행하고 출가 경험이 있던 전 신자가 대부분 만들었다.[128] 이 전 신자는 1986년 2월 입교하여 1987년 4월 탈퇴할 때까지 1년 2개월 동안 밀고, 상호 감시 제도, 출가 제도, 기증 제도 등 교단 제도의 대부분을 만들었다.수행 달성도와 정신성을 나타내는 "스테이지" 제도가 있었다. 교단 신자는 재가 신도와 출가 수행자(사마나, 싯샤)로 나뉘었다. 출가 수행자는 사(師), 정오사(正悟師), 정대사(正大師) 스테이지로 구분되었다.[288]
교단 시설에는 “코자르라인(카우살라인)”이라는 제보함이 설치되어 신자 상호 간 감시하는 밀고 사회가 형성되었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교주가 신자들을 항상 보고 있다는 잠재의식이 있었고, 마음속까지 들여다보인다는 공포심이 신자들을 지배했다.[126] 실제로는 무라이 히데오 간부가 “감찰역”으로 신자들의 대화와 생활 태도를 세세하게 체크하여 아사하라 쇼코에게 은밀히 보고했다.[126]
1987년 여름, 청년부 리더급 신자가 수 명을 데리고 신단체를 설립한 것을 아사하라가 “분파 활동”으로 간주한 이후 신자 관리가 엄격해졌다. 신자들끼리 전화번호를 알려주거나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업보가 옮는다는 이유로 서로의 소지품을 만지는 것도 금지되어, 결국 서로 감시하는 밀고 사회가 되었다.[106]
5. 4. 활동
1987년 6월,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이전의 "오움 신선의회"를 개칭하여 종교단체 "옴진리교"가 설립되었다.[158] 옴진리교는 처음부터 일본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초기에는 중범죄와 연관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아사하라 쇼코는 성경 예언에 집착하게 되었다. 옴진리교의 홍보 활동에는 인기 애니메이션과 만화 주제에 종교적 사상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담긴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출판하는 것이 포함되었다.[15] 옴진리교는 ''금강승 사카''와 ''행복을 즐겨라''를 포함한 여러 잡지를 출판하며 다소 선교적인 태도를 취했다.[14]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 소설 ''파운데이션 3부작''은 "야만의 시대에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영적으로 진화된 엘리트 과학자 집단을 묘사하고 있으며...그들이 문명을 재건하기 위해 나타날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언급이 있었다.[16]
"오움 구원 계획"이라고 불리는 광고 및 모집 활동에는 건강 개선 기술로 신체 질환을 치료하고, 지능과 긍정적인 사고를 향상시켜 삶의 목표를 달성하며, 여가를 희생하여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주장이 포함되었다. 이는 원본 팔리어 경전에서 정확하게 번역된 고대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달성될 것이었다(이 세 가지는 "삼중 구원"으로 불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옴진리교는 일본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데이비드 E. 캡런과 앤드류 마셜은 1996년 저서에서 그러한 행위가 비밀로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입문 의식에 환각제(예: LSD)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행위는 종종 "요가"라고 주장되는 매우 금욕적인 행위를 포함했다. 여기에는 수행자들이 거꾸로 매달리는 것부터 전기 충격 요법을 받는 것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었다.[17]
초창기 옴진리교는 관료에서 일본 자위대와 도쿄도 경찰의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18]
1989년 3월 1일, 교단은 종교법인에 적용되는 세제 혜택과 사회적 인식을 얻으려고 종교법인 규칙 인가 신청서를 도쿄도에 제출했다.[158] 그러나 신자 가족들의 항의로 도쿄도는 접수를 보류했다.[158] 8월 25일, 도쿄도로부터 교부를 받아 종교법인 인가를 받았다.[158]
옴진리교는 진리당을 결성하여 1990년 2월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집단으로 입후보했다.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143] 공탁금 5,000만 엔이 몰수되었고,[144] 탈퇴자가 속출했다. 아사하라 쇼코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고,「'''오움은 반사회·반국가적이다'''」라고 선언했다.
1990년(헤이세이 2년) 5월, 일본 샹발라화 계획의 일환으로 구마모토현 아소군 하노촌(현: 아소시)에 15헥타르의 토지를 매입하여 “샹발라 정사”를 건설하기 위해 진출한다. 진출 목적은 하노촌을 무장화 거점으로 하기 위함이며,[148] 보툴리누스균과 이를 살포하기 위한 풍선폭탄 및 독가스 포스겐 생산이 계획되었다.[152]
1990년 10월 22일, 국토이용계획법 위반등의 혐의로 오움진리교에 대한 강제수사를 개시했다. 하지만 오움은 구마모토현 경찰 내부 신자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무장 설비를 은폐했다.[150]
1994년에 하노촌은 오움이 5000만 엔[151]에 취득한 토지를 합의금 9억 2000만 엔으로 되사들이기로 합의했다.[152][153]
한편, 교단이 하노촌에 앞서 토지를 취득한 야마나시현 상구일색촌에서도 허가 없이 시설 건설을 추진하여 주민과 충돌했다.[152]
국토법 위반 사건의 영향으로 1991년(헤이세이 3년)~1992년(헤이세이 4년)은 포스겐 플랜트 계획이나 생물무기 개발 등 교단의 무장화를 중단하고, 텔레비전이나 잡지 출연 및 문화 활동 등에 중점을 둔 “마하야나” 노선으로의 전환을 도모했다.[154]
소련 8월 쿠데타 직후인 1991년, 교단의 러시아 진출이 시작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1992년 2월에 일본을 방문한 로보프 러시아 연방 안보회의 서기는 일본의 정재계로부터 자금 지원을 거절당했지만, 오움은 1000만 달러(약 13억 엔[155])를 지원했다.[156]
1992년 3월, 교단은 300명의 신자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모스크바 국립 기술대학교, 모스크바 공학물리학회에 물자를 지원했다. 아사하라 쇼코는 모스크바 대주교도 만났고, 러시아 정교회에 성서용 종이 80000USD(1020만 엔) 상당을 기증했다.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렘린 극장에서 열린 오움 뮤지컬 「죽음과 윤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 4월, 라디오 방송국 마야크와 연간 800000USD에 하루 2회, 각 25분의 방송 시간을 확보했고, 텔레비전 방송국 2×2에서도 매주 일요일 오전 30분의 방송 시간을 확보했다. 4월 1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에우안게리온・테스・바시레이아스」를 시작했다.
1992년, 아사하라 쇼코는 「다시 바지라야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1993년 전후부터 다시 교단 무장화의 「바지라야나」 노선을 재개했다.[158] 교단의 무기 개발을 진행했다.[159]
1993년 2월, 적분 로켓 램제트 등의 무기 연구를 위해 신자들은 러시아로 갔고,[158], 모스크바 군사대학에서 자동소총 AK-74와 박격포를 조사한 후 AK-74 한 정을 입수했다. 귀국 후 AK-74를 모방한 자동소총 제조에 착수했다.[158]

1993년 2월 28일 미국에서 신흥 종교 단체 브랜치 다비디안에 대해 주 경찰이 강제 수색에 들어가 총격전이 발생했다. 교착 상태 후, 당국은 4월 19일 강행 돌입하여 대부분의 신자들이 화재로 사망하여 8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웨이코 포위 사건). 아사하라 쇼코는 설법에서 브랜치 다비디안 다음으로 오움이 공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8월, 츠치야 마사미 등에 의해 '''화학 무기사린 합성'''에 성공했다.[158] 아사하라 쇼코는 제7 사티안에 70t의 사린을 생산하는 플랜트 건설을 지시했다(사린 플랜트 건설 사건)[158]
1994년(헤이세이 6년) 2월, 아사하라 쇼코는 신자와 중국으로 여행을 가서 자신의 전생이라고 하는 주원장과 관련된 곳을 순례했다.[158] 여행 중 호텔에서 신자들에게 「'''1997년, 나는 일본의 왕이 된다. 2003년까지 세계의 대부분은 오움진리교의 세력이 된다.'''」고 예언하고 「진리에 적대하는 자는 가능한 한 빨리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158] 귀국 직후인 2월 27일, 아사하라 쇼코는 「이대로는 진리의 뿌리가 끊어져 버린다. 사린을 도쿄에 70t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158]
이듬해 2월 28일, AK-74 자동소총 1000정 제조를 지시(95년 1월 시제품 완성)[160], 자위대를 장악하기 위한 조사를 지시했다.[158]

3월 10일, 아사하라 쇼코는 「경찰관 전원을 포아(ポア)해야 한다」「게릴라로 경찰을 전멸시키자」고 말했다. 이듬해 3월 11일, 아사하라 쇼코는 암흑 조직과 연동하는 공안이 독가스를 오움에 대해 계속 살포해왔다고 말하고, 신자들은 일어서서 주변의 무명으로 가득 찬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이 일본을, 이 지구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고,[158] 「원래 나는 수행자이며, 조용히 참고 지금까지 국가에 대한 대결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으면 나와 나의 제자들은 멸망해 버린다」고 '''대국가 전쟁'''에 언급했다.[161]
3월 중순에는 오키나와에서 자위대 출신이나 무도 경험이 있는 출가 신자 10명 남짓에게 군사 훈련 캠프를 시키고,[158] 거기서 선발한 약 10명을 러시아에 파견하여, 러시아군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지도의 엄격한 군사 훈련을 받게 했다.[158] 오움은 러시아군 기지에서 자동소총, 기관총, 대전차 로켓탄의 실사격 등의 군사 훈련을 신자들에게 실시했다. 또한 군용 헬리콥터밀 17을 구입하여 1994년 5월 요코하마 항에 반입되었다.
과격화와 함께 사회와의 마찰이 증가하자, 교단 내부에 경찰 등의 스파이가 잠입해 있다는 말이 끊임없이 설파되었고, 신자들은 서로 감시하며 서로를 고발하도록 요구받게 되었다. 아사하라 쇼코는 신자들에게 "교단의 비밀을 누설한 자는 죽인다", "집으로 도망치면 가족까지 모두 죽인다", "경찰에 도망쳐도 경찰을 파괴해서라도 찾아내 죽인다"라고 협박했다고 한다.[162]
1994년 6월 27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재판 연기와 실험을 겸해 사린 가스를 이용한 테러를 실행, 사망 8명, 경상 및 중상 600명이라는 참사를 일으켰다('''마쓰모토 사린 사건''').
1994년 8월경에는 황궁 사린 살포 계획을 위해, 도쿄 치요다구 히라카와초에 5곳, 주오구 긴자에 3곳, 미나토구 아카사카에 2곳의 점포나 맨션을 빌렸다. 이노우에 요시히로에 따르면, 목적은 무력 쿠데타에 의한 정권 탈취로, 황궁 주변의 국가 중추 파괴를 노렸다.
1995년(헤이세이 7년) 1월 1일, 요미우리 신문이 상구일색촌의 사티안 주변에서 사린 잔류물이 검출되었다는 것을 보도했다. 교단은 “상구일색촌의 비료회사가 교단을 독가스 공격했다”고 허위 발표와 함께 은폐 공작에 몰두했다.
2월 28일, 메구로 공증역장 사무장이었던 남성을 유괴 감금하여 살해했다. 이 사건에서 교단 신도 마쓰모토 고의 지문이 발견되어, 경시청은 전국 교단 시설 일제 수색을 결정했다.
그러나 교단은 경찰보다 먼저 움직여, 3월 20일에 '''지하철 사린 사건'''을 실행, 사망 13명, 부상 6000명 이상이라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1995년 6월 21일, 아사하라 쇼코는 1994년 1월 오무진리교 병원 약사였던 오치다 고타로의 살해를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1995년 10월 10일, 오무진리교는 "종교 법인"으로서의 공식 지위를 박탈당했고, 1996년 초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단체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보장에 따라, 성공적인 컴퓨터 사업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엄격한 감시 하에 계속 활동하고 있다.
아사하라 쇼코의 체포 및 재판 이후, 이 단체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2000년 2월 "알레프(Aleph)"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편되었다. 논란이 되는 금강승 불교 교리와 성경과 관련된 종교적 경전이 제거되는 교리 변경을 발표했다. 사린 가스 공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특별 보상 기금을 설립했다.
묘유 후미히로가 1999년 조직의 공식 수장이 되었다.
15년 이상 동안 단 3명의 도피자만이 적극적으로 추적되었다. 2011년 12월 31일, 히라타 마코토가 경찰에 자수하여 체포되었다. 2012년 6월 3일, 경찰은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받고 두 번째 도피자인 키쿠치 나오코를 체포했다.
마지막 도피자 다카하시 가쓰야가 2012년 6월 15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의 운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7년 동안 도주하다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2018년 7월 6일, 아사하라 쇼코와 다른 6명의 오무진리교 신자들이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되었다. 일본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는 이 범죄가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공포를 안겨주었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사건에서 사형 제도의 사용을 비판했다. 일본에서는 사형 집행이 드물지만,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적 지지가 있다.
2018년 7월 6일 사형 집행된 오무진리교 신자:[51]
이름 | 역할 |
---|---|
아사하라 쇼코 | 오무진리교 교주 |
이노우에 요시히로 | 오무진리교 "정보국장"이자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의 총책임자 |
니이미 토모미쓰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중 한 명인 하야시 이쿠오의 도주차량 운전자 |
나카가와 토모마사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하야카와 기요히데 | 오무진리교 "건설 담당 장관", 1989년 반체제 의혹을 받던 젊은 신도를 교살한 혐의로 유죄 판결 |
엔도 세이이치 | 오무진리교의 "수석 과학자" |
쓰치야 마사미 | 오무진리교의 수석 화학자이자 사린 가스 제조 책임자 |
나머지 6명의 오무진리교 신자들은 2018년 7월 26일에 사형 집행되었다.
이름 | 역할 |
---|---|
하야시 야스오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히로세 켄이치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토요다 토루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요코야마 마사토 |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공격 가담자 |
오카자키 가즈아키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하시모토 사토루 | 사카모토 가족 살인 사건 가담자 |
2005년 6월 일본 경찰청 보고서에 따르면, 알레프(Aleph)는 약 1,650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650명은 공동체 시설에서 공동 생활을 했다고 한다.[76] 이 단체는 17개의 현에 26개의 시설과 약 120개의 주거 시설을 운영했다.
2000년 1월, 오움진리교는 반(反)오움 법률에 따라 3년간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당국에 신도 명단 및 자산 내역을 제출해야 했습니다.[77]
2003년 1월, 일본 공안정보청(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은 오움진리교가 여전히 아사하라 쇼코를 숭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여 감시 기간을 3년 더 연장할 허가를 받았습니다.[81]
2007년 3월 8일, 오움진리교의 전 대변인이자 모스크바(Moscow) 지부 책임자였던 죠유 후미히로(上祐史浩)는 "빛의 원(Hikari no Wa)"이라는 이름의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은 과학과 종교의 통합, 그리고 "인간 정신의 새로운 과학" 창조를 목표로 한다고 주장하며, 이전에는 오움진리교의 범죄 역사에서 벗어나 영적인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86]
일본 공안심사위원회는 2015년 1월, 오움진리교의 두 개의 분파에 대해 2015년 2월 1일부터 3년간 감시를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90]
2013년 4월 이후 어느 시점에 공안정보청(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이 알레프(Aleph) 시설 내부 사진을 촬영했다.[92] 이 사진에는 제단(altar)처럼 생긴 물체 위에 칼로 꽂힌 종이 다발이 보인다.[92] 종이에는 공안정보청 직원과 간부, 경찰관, 그리고 옴진리교 신도들의 탈퇴를 도왔던 변호사 다키모토 타로(Taro Takimoto)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92]
5. 5. 재정
옴진리교는 종교 활동 외에도 컴퓨터, 건설, 부동산, 출판, 인쇄, 식품 판매, 외식업, 가정교사 파견, 인력 파견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이는 마치 종합상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들은 '워크(work)'라는 명목으로 신도들을 거의 무상으로 일하게 하여 높은 이윤을 남겼다.[293] 출가 신도는 24시간을 옴진리교에 바치며, 수면 시간은 극도로 적었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수행(워크)에 전념했다. 각 회사에서의 근무는 수행으로 여겨졌다.[293] 옴진리교 십계명에 "불기어(不綺語)"가 있어 "서로 이야기하지 마라. 이야기하면 덕이 줄어든다"라고 하여 사티안 내부에서 신도들 간의 대화는 금지되었고, 묵묵히 일에 전념하는 것이 요구되었다.[158]특히 중심이 된 것은 컴퓨터 판매점 '마하포샤(マハーポーシャ)'였는데, 1994년에는 월 수입이 7억에서 8억 엔에 달했다.[293] 1999년에는 연간 70억 엔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순이익은 20억 엔에 육박했다(공안조사청에 따름). 출가 신도 200명이 그곳에서 일했다. "PC 판매 이익은 존사(尊師)의 이익이 되고, 손님도 선업을 쌓게 된다", "연수는 수행이다"라고 여겨져서 하루 20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293] 입교 의식 등을 "돈이 없다"고 거절하면 교단이 돈을 빌려주는 시스템이어서 마하포샤 직원 대부분은 교단에 빚이 있었다.[293]
마하라 등이 체포된 후인 1995년 11월부터는 「트라이살」, 「그레이스풀」, 「PC뱅크」, 「PC 레보」, 「솔브레인즈」, 「넷뱅크」 등으로 이름을 바꿔 컴퓨터 사업을 계속했다.[295] 2000년 3월에는 옴과의 관련을 숨긴 시스템 개발 기업이 경시청과 자위대를 포함한 관공서와 대기업의 시스템 개발을 저렴한 가격으로 수주하고 있던 것이 발각되었다(옴진리교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 수주 문제).[295]
옴진리교는 신자들에게 해탈을 위한 공덕을 쌓는 것을 장려했으며, 이 공덕은 “옴진리교에 플러스가 되는 행위”로, 그 기본은 시주였다. 「마하야나 수트라」(1988)에서는 “첫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재시주다. 문자 그대로 돈을 시주하는 것입니다. 이 시주를 통해 여러분은 반드시 내세에서도 진리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286] “수행의 첫 번째 단계는 우선 시주부터 시작된다.”고 설파되었다.[286] 1990년 이시가키섬 세미나 이후, 교단 본부는 “새로운 신도를 늘리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지금 있는 신도를 출가시켜라”, “출가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어쨌든 헌금을 많이 하게 하라”고 지부에 지시했고, 아사하라도 기관지 「마하야나」 7월호의 출가 특집에서 “진정으로 진리를 만나고 진리를 실천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적인 조건은 아무래도 좋으니, 어쨌든 출가하여 빨리 지복의 생활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286]
1991년 이전에는 입회금 3만 엔, 월 회비 3000엔이었으며, 입회 시에는 입회금과 6개월치 회비, 입회 후 코스 비용을 전액 선납해야 했다.[286]
수행/이니시에이션 | 요금 |
---|---|
샤크티파트 | 5만 엔[286] |
미라클 폰드(1L) | 10만 엔[286] |
사랑의 이니시에이션 | 10만 엔[286] |
해탈 특별 수법 풀샤 | 10만 엔[286] |
소승 찬달리 | 30만 엔[286] |
대승 찬달리 | 50만 엔[286] |
피의 이니시에이션 | 100만 엔 (30명 한정, 아사하라의 신성 혈액 20cc를 마심)[286] |
법시(지팡이의 이니시에이션) | 1단계 15만 엔 상당의 저서 매입, 최고 스테이지까지 150만 엔 필요. 2단계는 1스테이지당 150만 엔 상당 매입.[286] |
설법 비디오 | 1만 엔 |
히말라야 요가 비전 비디오 | 10만 엔 |
음악 테이프 | 1개 1만~3만 엔 |
감로수 | 1.5L 두 병에 4000엔[286] |
퍼펙트 샐베이션(완전구제) 이니시에이션(PSI) | 100만 엔에서 1000만 엔[286] |
대사에 의한 요가 지도 | 1시간 1만 엔[286] |
운명 감정 | 3만 엔[286] |
아사하라에게 직접 상담하는 "알현서(お伺い書)" | 2만 엔[286] |
"존사 최후의 특별 이니시에이션" (1989년 1월 1일) | 30만 엔 이상 (아사하라의 DNA를 배양한 음료를 마시는 "사랑의 이니시에이션" 등)[286] |
아사하라의 수염을 달여 마시는 특별 이니시에이션 | 30만 엔 (1987년 10월~)[286] |
후지 총본부 집중 수행 (1989년 1월 6일, 10박 11일) | 22만 엔 이상[286] |
이시가키섬 세미나 (1990년 4월) | 30만 엔[286] |
일본 샹발라화 계획 기금 | 1구좌 1만 엔 이상, 3구좌 이상 시 티베트 불교 해탈 만다라, 6구좌 이상 시 아사하라 사진, 10구좌 이상 시 아사하라와 함께 사진 촬영, 30구좌 이상 시 대사 10시간 이상 밀착 지도 및 초순수 감로수 한 달에 1.5L씩 6개월치 우송 특전[286] |
초기에는 출가 시 120만 엔 이상의 불시가 요구되었다.[286] 나중에는 전 재산의 불시가 요구되었다.[286] 출가하면 먼저 "불시 리스트 No.1"을 작성하여 현금, 예금(은행명, 계좌번호, 예금액, 비밀번호를 명기), 주식, 증권, 우표, 전화카드, 오렌지카드, 상품권 등 모든 금권, 퇴직금, 생명보험 해약 시 금액 등 "장래 예상되는 불시", 토지, 주택은 평가액을 기입하고, 장학금 미상환액, 신용카드 부채 등의 빚은 정산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었다.[286] 다음으로 "불시 리스트 No.2"를 작성하여 귀금속, 전자제품, 가구, 의류, 주방 용품 등 가격이 높은 물품부터 적어냈다.[286]
그 후, "비록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오무진리교(オウム真理教) 및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존사에게는 일절 책임이 없다. 모두 자신의 의지로 수행의 길에 들어섰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서약서, 유산은 모두 교단에 기증하고, 장례식은 아사하라에 의해 거행한다는 유서, 이력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 전출입 신고 대리인 선임자, 국민연금 보험료 면제 신청서, 연금 수첩, 운전면허증 사본, 차량등록증, 인감증명서 등의 제출이 요구되었다.[286]
참고로, 아사하라는 2000만 엔의 벤츠(메르세데스-벤츠)를 교주 전용차로 하고[286], 7000만 엔의 크루저도 소유하고 있었다.[286]
이 외에도, 옴진리교 재가 신자가 사장을 역임한 비파괴 검사 회사가 신자들을 화학 플랜트는 물론 원자력 발전소에도 파견했다.[298] 후쿠시마 제1 원전·후쿠시마 제2 원전 및 하마오카 원전 등에서 작업했던 전 신자에 따르면, 각 원전에는 5~10명의 신자가 있었고, 원전 점거나 원전 폭파는 가능했지만, 원전이 교단에 공격받지 않은 것은 아사하라가 공격 계획으로서 우연히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298]
6. 비판 및 논란
옴진리교는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신도 기망, 감금, 헌금 강요, 탈퇴 시도 신도 살해 등의 혐의로 논란이 일었다.[19][20] 1989년 10월에는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와의 협상이 결렬되었고, TBS는 취재원 보호를 위반하여 옴진리교 측에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이 실종되었고,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에야 살해 사실이 밝혀졌다.[21][22]
옴진리교는 환자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의료비를 강요하는 등 갈취 행위에도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7] 또한, 옴진리교를 비판한 여러 인물에 대한 암살을 고려했으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에 대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23]
1993년에는 옴진리교 신도들이 ''탄저균'' 포자를 살포했으나 실패했다.[24] 같은 해, 사린과 VX를 제조하여 암살 및 암살 시도에 사용했다.[29][28] 1994년 마쓰모토에서 사린을 살포하여 8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마쓰모토 사건을 일으켰다.[25]
1994년 말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히로시마 공장에 침입하여 군사 무기 기술 문서를 훔치려 했다.[17] 1994년 12월과 1995년 1월에는 VX를 합성하여 3명을 공격했다.[26] 1995년 2월에는 탈출한 신도의 형을 납치하여 살해했다.[32]
경찰은 1995년 3월 옴진리교 시설을 급습할 계획이었으나, 옴진리교는 이를 알아채고 도쿄 지하철 공격을 감행했다.[33] 이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38] 이후 옴진리교 시설에서 폭발물, 화학 무기, 군용 헬리콥터 등이 발견되었다.[40][41]
지하철 사린 사건을 필두로, 옴진리교는 "포아"를 명분으로 수많은 살인 사건을 일으킨 신흥종교 단체이다.[110] 교주 마쓰모토 고로우(본명: 마쓰모토 도시오)는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자를 확보했다. 교리는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종말론이 혼합된 형태였다.
초기에는 요가 동아리에 불과했지만, 출가 신자들에게 전 재산을 시주하게 하거나, 기이한 상품을 고가로 판매하는 등 막대한 금품을 얻었다. 내부에서는 탈출을 시도하는 신자들을 구금하거나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6년 동안 확인된 사망자와 실종자는 30명이 넘는다.
옴진리교는 사법부, 행정부, 경찰 등에 고소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 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등 테러를 포함한 많은 반사회적 활동을 일으켰다.[107][108] 자동소총, 화학무기, 생화학무기, 마약, 폭탄 등 교단의 무기와 불법 약물도 생산했다.[100]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진리당이 참패하자, 옴진리교는 일반 사회와 적대하게 되었고, 국가전복 계획까지 실행하게 되었다. 1995년 3월 20일 지하철 사린 사건은 전례 없는 사건으로, 일본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109]
1996년 법인격을 상실했지만 활동을 계속했고, 2000년 파산 후 "'''알레프'''"가 설립되어 교리와 신자 일부가 계승되었다. 알레프는 "'''Aleph'''"로 개칭되었고, 분파도 결성되었다.
2018년 마쓰모토를 비롯한 간부들의 사형이 집행되었지만, Aleph을 중심으로 마쓰모토 신앙이 남아 있으며, 후계 조직 시설 주변에는 항의 현수막이 게시되고 있다. 2020년 현재도 일본 공안조사청은 단체규제법에 따라 후계 단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테러리스트로 인정되어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110]
옴진리교는 밀고 사회를 형성하고[126], 비판에 대해 수많은 소송을 남발했다. 적대자나 탈퇴 활동에 대해서는 괴롭힘을 행했고, 이는 악화되어 수많은 습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옴진리교 사건 피해자 수는 사망자 47명, 중경상자 6600명 이상이다.[316] 형사 재판에서는 13명의 사형 판결, 6명의 무기징역 판결이 나왔으며, 2018년 7월 사형수 13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316]
옴진리교는 문인·유명인과 활발하게 대담을 나누었고, 유명인의 발언을 교단 발행 잡지 등에 소개하며 신자 확보에 이용했다. 교류가 있었던 유명인 대부분은 사건 이후 옴진리교 비판으로 돌아섰다.
옴진리교는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중 일부는 교리 및 무기 제조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옴진리교는 나치즘,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천년왕국 운동, 이슬람 원리주의 등과 유사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옴진리교 사건 이후 종교법인법이 개정되었고, 러시아에서는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다. 옴진리교는 여러 국가에서 테러 조직으로 규정되었다.
옴진리교 사건은 요가 업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요가의 이미지가 악화되어 많은 요가 학원이 폐업했다.
사건 발생 30년이 넘은 지금도 옴진리교는 비유나 낙인으로 사용된다.
7.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옴진리교는 종교 단체로서, 이들이 일으킨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도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95년에 발생한 지하철 사린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한국에서도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사망 13명, 부상 6000명 이상이라는 대참사로 기록되었다.[175]
옴진리교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의 균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또한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으며, 종교 단체의 활동에 대한 감시와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8. 후계 단체
아사하라 쇼코가 체포되고 재판을 받으면서, 옴진리교는 여러 번 바뀌었다. 2000년 2월에는 "알레프(Aleph)"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졌고, 문제가 되었던 금강승 불교 교리와 성경 관련 내용은 빠졌다.[457] 또한, 사린 가스 공격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특별 보상 기금을 만들었으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출판물이나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조유 후미히로는 아사하라 쇼코가 있을 때 큰 혐의를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고위 지도자 중 한 명으로, 1999년에 조직의 공식 대표가 되었다.
2007년 3월 8일, 옴진리교의 전 대변인이자 모스크바 지부장이었던 조유 후미히로는 "히카리노와"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85] 이 단체는 과학과 종교를 합치고, "인간 정신의 새로운 과학"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전 옴진리교의 범죄에서 벗어나 영적인 근원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86]
2011년 4월, 공안정보청은 옴진리교 신도가 약 1,500명이라고 말했다.[87] 2011년 7월, 옴진리교는 자체적으로 신도 수를 1,030명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소셜 미디어나 대학교에서 새로운 신도를 모으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88][89]
2015년 1월, 일본 공안심사위원회는 옴진리교의 두 분파에 대해 2015년 2월 1일부터 3년 동안 감시를 계속한다고 발표했다.[90]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알레프 가나자와 지부의 야마다 미사코(비사카 시)를 중심으로 "야마다 등의 집단"이라는 분파가 생겨났다.[464]
기타자와 유코가 이끄는 「케로용 클럽」은 1995년 옴진리교 사건 이후 만들어진 분파이다. 기타자와 유코는 신자 사망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8년, 마쓰모토를 포함한 간부들의 사형이 집행되었지만, Aleph을 중심으로 여전히 마쓰모토를 믿는 신앙이 깊게 남아있어, 후계 조직 시설 주변에는 항의 현수막이 걸려 있기도 하다. 2020년 현재도 일본 공안조사청은 단체규제법에 따라 후계 단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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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法人が非課税」に憤慨する前に知るべ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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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弁護士一家殺害事件とTBSビデオ問題~麻原はいつ殺意を抱い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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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弁護士事件とTBSの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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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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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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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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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を追い出した村、代償9.2億円 熊本・波野は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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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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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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裁判でも続いた麻原劇場 殺人を正当化した教祖の狂気 <麻原彰晃の真実(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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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7年刑(わ)894号等犯人蔵匿,犯人隠避,殺人,殺人未遂,監禁,死体損壊被告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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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君 | 『生きている不思議 死んでいく不思議』-某弁護士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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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の教訓 -オウム時代の反省・総括の概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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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廷で空中浮揚」計画も… 麻原彰晃が本気で明かしたかった「私の真実」とは? 元主任弁護士が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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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原彰晃被告の初公判始まる 地下鉄サリン事件など3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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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真相究明」「再発防止」を掲げる「オウム事件真相究明の会」への大いなる違和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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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原彰晃の死刑執行を批判する「真相究明の会」森達也氏に、被害対策弁護団・滝本太郎氏が反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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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の松本智津夫被告に死刑求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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弁護人の控訴趣意書提出期限の徒過と被告人の裁判を受ける権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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刑事弁護人の役割と倫理、平成16年度-平成19年度科学研究費補助金(基盤研究(A))研究成果報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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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本被告 精神鑑定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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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裁、趣意書の即時提出要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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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揺→逃避願望→奇行、松本鑑定の全容が明らか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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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
控訴棄却決定に対する異議申立て棄却決定に対する特別抗告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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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本死刑囚の2度目の再審請求認めず 最高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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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経済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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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麻原、詐病やめて考え述べよ」オウム土谷被告が手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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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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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死刑囚7人の移送完了 法務省「共犯分離が目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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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同通信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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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死刑囚】移送7人は新実智光、林泰男、早川紀代秀、井上嘉浩、岡崎一明、横山真人、中川智正の各死刑囚(1/2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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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経済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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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死刑確定囚13人、全員執行 オウム真理教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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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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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祐史浩」がひた隠し! 警察も知らない「麻原彰晃」の女性信者殺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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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潮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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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新潮報道にある女性信者殺害の目撃に関する事情説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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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かりの輪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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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時代の「女性信者殺害」を隠蔽! 「上祐史浩」に教祖の資格はある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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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潮社
20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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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終わらないオウム 信者の親たちは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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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200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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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特別教学システム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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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対談〉元アーレフ代表・野田成人×宗教学者・大田俊寛(前編) 『自ら「グル」になろうとした中沢新一ら研究者たちの罪と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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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サイゾー
201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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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尊師に聞く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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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クエリアス文明序説16 世界の宗教の源泉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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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自己を超えて神とな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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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超能力秘密の開発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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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反社会的な本質に変化のないオウム真理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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警察庁
2020-00-00 # 추정 날짜,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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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ヴァジラヤーナコース教学システム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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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虹の階梯
中公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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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四無量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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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超越神力・パート2
オウム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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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修行体験90日
宝島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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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元信徒 広瀬健一の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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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を自在に操る聖者 ヴァジラハーサ師(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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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にとってオウムとは何だっ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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ヴァジラヤーナコース教学システム教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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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防法弁明●五仏の法則の真意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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すべては『ノストラダムスの大予言』から始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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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科事典
ヨハネの黙示録16章16節
日本大百科全書(ニッポニカ)、コトバン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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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ヴァジラヤーナ・サッチャ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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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麻原彰晃の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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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日出づる国災い近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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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ュース
教訓は生かされているか 「オウム事件後」の宗教と宗教学(5/6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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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外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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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タビュー
「空虚な幻想」から目を覚ますために――オウム真理教事件の根底にあるもの / 大田俊寛氏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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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DOS -シノド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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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籍
約束された場所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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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防法弁明●ハルマゲドンに集まったというプロセスは終了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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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デオ
麻原彰晃尊師の大宇宙占星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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尊師に聞く!
オウ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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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報時代のオウム真理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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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たしは見た!オウム真理教裏ワークの真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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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ナリヤの詩(特集)カナリヤの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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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体、何がそうさせ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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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裁判と15年間の変化-その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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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麻原」死刑執行 事件で注目された女性信者たちの“その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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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編】元オウム真理教 上祐史浩/早稲田大学院からJAXA内定も麻原と出会い教団幹部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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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法廷 グルのしもべたち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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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ナリヤの詩第48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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隣のオウム真理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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ユーレイ企業は本当の幽霊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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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信者は原発に潜入していた 元信者が語った幻の原子炉ジャック計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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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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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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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洞察 ― テロリスト達はいかにして生物・ 化学兵器を開発した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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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海外が注目する意外な側面 信者数千人、他人事ではない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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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成8年警察白書 第1章 第1節 オウム真理教の誕生からテロ集団化に至る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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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はどんな修行をしたのですか?オウムからの問い、オウムへの問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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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の子」がオウム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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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教祖」法廷全記録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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冥い祈り―麻原彰晃と使徒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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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の暴走を許したのは誰か―地下鉄サリン事件から25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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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ンサー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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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遠の平成仮面ライダーシリーズ 語ろう!555 剣 響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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伝説のベストセラー作家・五島勉の告白「私がノストラダムスを書いた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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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世主の野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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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と邪教の間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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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学者・中沢の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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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信者への手紙
週刊プレイボー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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凶悪犯・麻原彰晃を持ち上げた実名リスト「彼は嘘をつくような人で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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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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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僕と中沢新一さんのサリン事件
宝島30
1996-01
[338]
간행물
ぼくらの『オウム』戦争
宝島30
19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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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オウム事件とは何だったのか〈座談会〉
マドラ出版
1995-06-01
[340]
문서
オウムはカルトか?
1995-10
[341]
간행물
悪夢の誕生
現代
199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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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諸君
19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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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中沢新一批判、あるいは宗教的テロリズムについて
亜紀書房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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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宗教学者"世代超え"対談・島田裕巳×大田俊寛(後編)凡庸なるロマン主義者(!?)中沢新一氏・内田樹氏への果てしなき疑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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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サイゾ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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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スピリチュアリズム
にんげん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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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派」中沢新一の愛知万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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ナチスと隕石仏像 SSチベット探検隊とアーリア神話
集英社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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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ブッダの方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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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大転換
集英社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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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沢新一『日本の大転換』への批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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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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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ラレパ
オームファンデーショ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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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稿 虹の階梯
中公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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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改稿 虹の階梯
中公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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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中沢新一氏とNHKが持ち上げる『チベット死者の書』はエセ仏典
文藝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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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宗教学者"世代超え"対談・島田裕巳×大田俊寛(中編)「島田さんがオウム擁護派と見なされたのには、4つの理由が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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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サイゾ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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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二) オウム真理教の宣伝に「文化人」「有名人」らが果たした役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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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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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談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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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川隆法の霊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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宝島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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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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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カルト宗教は生まれ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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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
トランス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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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流入者を排除する「村」の掟
19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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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別冊太陽
19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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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オウム事件と日本宗教の終焉
199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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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拉致された坂本弁護士の周辺にただよう権力介在も疑惑
週刊金曜日
1995-02-24, 199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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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現代救済宗教論
青弓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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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スペシャル チベット死者の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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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チベット仏教哲学
大蔵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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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松本史朗著「チベット仏教哲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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駒澤短期大学仏教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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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オウムとは何だったのか
https://web.archive.[...]
東京新聞web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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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社会心理学の「精神操作」幻想 ~グループ・ダイナミックスからマインド・コントロールへ~
http://waza-sophia.l[...]
科研基盤研究A「身心変容技法の比較宗教学-心と体とモノをつなぐワザの総合的研究」(2011年度-2014年度)身心変容技法研究会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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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終わりなき日常を生きろ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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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現代宗教への問い―宗教ブームからオウム真理教へ
教文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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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テリー伊藤「そこまで悪い人間だとは…」オウム真理教をネタにしたのは『生ダラ』だけじゃない?
https://www.excite.c[...]
エキサイトニュース、リアルライブ
2018-07-10
[380]
뉴스
『朝まで生テレビ!』出演当時のオウム真理教を振り返って吉田豪が語る「面白がることがどれぐらい危険かという自覚を持った方がいい」
https://originalnews[...]
ニコニコニュース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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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終わりなき日常を生きろ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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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魂の虜囚―オウム事件はなぜ起きた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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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オウム菊地直子をヒロイン扱いするな!深いオウムの闇
https://www.zakzak.c[...]
zakzak夕刊フジ
201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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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テリー伊藤、麻原彰晃をTV出演させた件を釈明 デーブは「どう見ても詐欺師」と批判
https://www.excite.c[...]
エキサイトニュース、SIRABEE
20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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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の麻原彰晃がビートたけし、とんねるずに語った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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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反社会性と非社会性ーテレビのなかのオウム真理教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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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初期仏教とオウムを相対比較―地下鉄サリン事件から25年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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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洞宗宗務庁による正法寺僧堂設置認可取消処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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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新脩大蔵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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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乗対倶舎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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仏典に殺生是認論ー安楽死問題に寄せ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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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新脩大蔵経の学術用語に関する研究ー仏教における「善き生き方」の探求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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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薩律儀二十難語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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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訳大蔵経 経部第8巻 国訳大般涅槃経巻三金剛身品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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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心経の新しい読み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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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道密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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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密集会タントラ和訳
法蔵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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悪と往生―親鸞を裏切る「歎異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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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の最終のすがた オウム事件の解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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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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造悪無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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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死刑囚・元信者にとってのオウム事件―地下鉄サリン事件から25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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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の下着を透視するなど楽しいヨガ・サークルだったオウム真理教が「殺戮集団」へと変化した決定的瞬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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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学者"世代超え"対談・島田裕巳×大田俊寛(前編)オウム騒動の渦中にいた学者と、ポスト・オウム世代の学者が感じた「サリン事件」を生んだ空気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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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記者会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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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対談〉元アーレフ代表・野田成人×宗教学者・大田俊寛(後編) 『ダミーサークルで信者を勧誘する教団と、それにハマる市民はなぜ生ま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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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サイゾ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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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事件は国家によるデッチ上げ」獲得の手口…全く変わらぬ洗脳体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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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外情勢の回顧と展望 平成22年(2010年)1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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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説〉宗教法人法改正とその後の法状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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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シアにおける1997年宗教法の立法過程 : グローカリゼーション論との関連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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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ロシアのオウム幹部に禁錮15年 日本に1億円超送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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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露当局、「オウム」幹部を逮捕 ロシア国内での活動の中心人物 日本と連絡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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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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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女性化される現代ヨガ:日本におけるブームとその変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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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ヨガマーケット調査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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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永卓郎氏が提言 メディアや有識者をコントロールして国民を洗脳する「財務省=ザイム真理教」の嘘と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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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スペシャル 未解決事件 File.02 オウム真理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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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スペシャル「オウム真理教 地下鉄サリン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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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ルマ真仙教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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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談社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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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サリン事件には「語られぬ真実」があった。元警視庁公安部が小説で明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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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談社BOOK倶楽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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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都に提出された宗教法人規則認証申請書よ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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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について 公安調査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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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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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Paper on Poli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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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OSEI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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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Security Intelligence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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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Russia bans murderous Japanese sect Aum Shinrikyo as terroris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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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オウム真理教 国際テロリズム要覧(Web版) 公安調査庁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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仏教経典に忠実なオウム真理教の教義
https://web.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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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人間はオカルトにハマってしまうのか?『現代オカルトの根源』の著者、大田俊寛氏に聞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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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経済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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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きている不思議 死んでいく不思議』-某弁護士日記「死刑執行回避署名のお願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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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原彰晃の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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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川探偵の事件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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救世主の野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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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ナリヤの詩140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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検証・オウム真理教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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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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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弁護士一家殺害事件5年10ヶ月の軌跡そして「真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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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教祖」法廷全記録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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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解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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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 なぜ宗教はテロリズムを生んだ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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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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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第3章第2節 事件の動機に関する元信徒の供述の差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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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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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の教訓 -オウム時代の反省・総括の概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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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事件 17年目の告白
扶桑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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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解決事件 オウム真理教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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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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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ウム真理教」追跡220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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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オウムを追い出した村、代償9.2億円 熊本・波野は今
https://www.asahi.co[...]
朝日新聞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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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愛弟子への無期判決―オウム「教祖」法廷全記録3
毎日新聞社会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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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판결
平成7合(わ)141 殺人等
http://www.courts.go[...]
200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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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オウム法廷2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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