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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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라일구는 봉건 영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방글라데시의 구(district)이다. 1984년에 설립되었으며, 면적은 990.23km²이다. 자민다르 가문은 이 지역을 현대화하고 문화, 스포츠, 교육을 장려했으며, 축구 경기를 도입하는 등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주요 강으로는 마두모티강, 나바강가강, 바이랍강, 치트라강이 흐르고, 1981년부터 2022년까지 인구가 증가했다.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며 힌두교도가 그 뒤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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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일구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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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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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নরাইল জেলা (나라일 질라) |
유형 | 구 |
국가 | 방글라데시 |
소속 구 | 쿨나 |
본청 소재지 | 나라일 |
부지사 | 안주만 아라 |
면적 | 967.99 제곱킬로미터 |
인구 (2022년) | 788,671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우편 번호 | 7600 |
지역 번호 | 0481 |
ISO 코드 | BD-43 |
웹사이트 | 나라일 구 공식 웹사이트 |
HDI (2022년) | 0.701 |
HDI 순위 | 2/20 (높음) |
지리 | |
좌표 | 23.13° N, 89.50° E |
역사 | |
추가 정보 |
2. 역사
나라일 마을은 봉건 영주(자민다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자민다르 가문은 영국령 인도 제국 시대를 거치며 지역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시장을 세우고 지역 최초의 우체국을 설립하는 등 기반 시설 확충에 기여했으며, 나라일 지역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문화, 스포츠, 교육 분야의 발전을 장려했다. 넓은 운동장인 Kuridobe|쿠리도베ben를 기증하고 축구 대회를 개최하는 등 스포츠 진흥에도 힘썼다. 자민다르 가문의 일부는 Hatbaria|하트바리아ben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장원을 세우기도 했다.[1][2]
2. 1. 자민다르 가문의 통치와 영향
나라일 마을은 봉건 영주(자민다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자민다르 가문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루프곤지(Roopgonj)에 시장을 세웠다. 또한 영국령 인도 제국 시기에는 로통곤지(Rotongonj) 근처에 지역 최초의 우체국을 세웠는데, 이 역시 자민다르 가문의 다른 구성원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자민다르 가문은 나라일 지역의 현대화를 이끌었으며, 문화, 스포츠, 교육 분야의 발전을 장려했다. 넓은 경기장인 쿠리도베(Kuridobe)는 자민다르 가문이 마을에 기증한 것이다. 이들은 20세기 초부터 축구 대회를 열어, 우승팀에게는 방패, 준우승팀에게는 컵을 수여하고 모든 참가 선수에게 메달을 주는 등 스포츠 진흥에도 힘썼다.
자민다르 가문의 일원 중 일부는 나라일을 떠나 하트바리아(Hatbaria)에 정착하여 또 다른 큰 장원(Jomidarbaari)을 세우기도 했다.
2. 2. 하트바리아 장원
나라일의 자민다르(봉건 영주) 가문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루프곤지(Roopgonj) 시장을 세웠으며, 영국령 인도 제국 시대에는 로통곤지(Rotongonj) 근처에 지역 최초의 우체국을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나라일 지역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문화, 스포츠, 교육 분야를 장려했다. 특히 넓은 운동장인 쿠리도베(Kuridobe)를 마을에 기증하고, 20세기 초부터는 우승팀에게 방패, 준우승팀에게 컵, 그리고 모든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축구 대회를 도입하여 스포츠 발전에 힘썼다.[1][2]이 자민다르 가문 구성원 중 한 명은 기존의 중심지였던 나라일을 떠나 하트바리아(Hatbaria) 지역에 새롭게 정착하였고, 이곳에 또 다른 대규모 장원(''Jomidarbaari'')을 설립했다.[1][2]
2. 3. 영국 통치 시대
나라일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봉건 영주였던 자민다르 가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자민다르 가문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Roopgonj|룹곤지eng 시장을 세웠다. 영국령 인도 제국 시대에는 Rotongonj|로통곤지eng 근처에 지역 최초의 우체국을 세웠는데, 이 또한 자민다르 가문 구성원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자민다르 가문은 나라일 지역의 현대화를 이끌었으며, 문화, 스포츠, 교육 분야의 발전을 장려했다. 넓은 운동장인 Kuridobe|쿠리도베eng는 자민다르 가문이 지역 사회에 기증한 것이다. 20세기 초부터는 축구 대회를 열어 우승팀에게는 방패, 준우승팀에게는 컵을 수여하고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메달을 주는 등 스포츠 활동을 지원했다.
자민다르 가문의 일원 중 일부는 나라일을 떠나 Hatbaria|하트바리아eng 지역에 정착하여 Jomidarbaari|조미다르바아리eng라고 불리는 또 다른 큰 장원을 세우기도 했다.
3. 지리
동쪽으로는 파리드푸르구와 고팔간지구, 서쪽으로는 조쇼르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마구라구, 북쪽으로는 쿨나구와 접한다.
3. 1. 토지 이용
나라일구의 총 면적은 990.23km2이다. 연평균 기온은 11.2°C에서 37.1°C 사이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1467mm이다. 주요 강으로는 마두모티강, 나바강가강, 바이랍강, 치트라강 등이 구를 관통하여 흐른다. 지역 내에는 많은 빌(호수)과 하오르가 있으며, 이 중 차추리 빌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나라일구의 토지 이용 현황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면적 |
---|---|
경작 가능 면적 | 176504acre |
휴경지 면적 | 25090acre |
산림 면적 | 10acre |
관개 면적 | 36208acre |
강 면적 | 8562acre |
4. 행정 구역
나라일구는 1984년에 설립되었다. 이 지역은 아래의 3개 우파질라로 구성된다.
- 나릴 사다르 우파질라
- 칼리아 우파질라
- 로하가라 우파질라
이 우파질라들은 다시 나릴 사다르 시와 칼리아 시 등 2개의 시, 그리고 39개의 연합 의회로 세분된다. 연합 의회는 다시 18개의 와드, 43개의 마할라, 445개의 모우자, 651개의 마을로 나뉜다.
5. 인구
나라일구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2011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 당시 약 72만 명이었던 인구는[11] 2022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에서는 약 78만 8천 명으로 늘어났다.[6]
2022년 조사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인원은 약 4명이며, 인구 밀도는 km2당 815명 수준이다. 전체 인구 중 약 18.8%가 10세 미만 아동이다. 문맹률(7세 이상)은 약 74.7%로 방글라데시 전국 평균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성비는 여성 1000명당 남성 1056명으로 남성 인구가 약간 더 많다. 도시 지역 거주 인구 비율은 약 22.1%로, 여전히 농촌 인구 비중이 높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수 민족 인구는 전체의 약 1%를 차지하며, 이 중 절반가량이 말로우이다.[6]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 신자가 인구의 대다수인 약 81%를 차지하며, 힌두교 신자는 약 19%를 차지한다. 과거 인도 분할 시기에는 두 종교 공동체의 인구 규모가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 인구 비율은 감소하였다.[11]
5. 1. 인구 통계 (2011년, 2022년)
2011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나라일구의 인구는 721,668명이었으며, 이 중 남성은 353,527명, 여성은 368,141명이었다. 농촌 인구가 609,316명(84.43%)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도시 인구는 112,352명(15.57%)이었다. 7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61.27%였으며, 남성의 문맹률은 63.34%, 여성은 59.31%였다.[11]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81.28%, 힌두교도가 18.65%를 차지했다. 과거 분할 시기에는 두 종교 공동체의 인구 규모가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도 인구는 크게 감소했다.[11]2022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나라일구의 인구는 788,671명으로 증가했으며, 총 195,660가구가 거주하여 가구당 평균 인원은 3.98명이었다. 인구 중 148,027명(18.77%)은 10세 미만이었다. 인구 밀도는 815/km2으로 조사되었다. 7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74.66%로, 방글라데시 전국 평균인 74.80%보다 약간 낮았다. 성비는 여성 1000명당 남성 1056명으로 남성 인구가 더 많았다. 도시 지역 거주 인구 비율은 약 22.14%였다. 소수 민족 인구는 8,278명(1.05%)이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이 말로우족이었다.[6]
5. 2. 민족 구성
2011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에 따르면 나라일구의 총인구는 721,668명이었다. 이 중 남성은 353,527명, 여성은 368,141명으로 여성이 약간 더 많았다. 전체 인구의 84.43%인 609,316명이 농촌 지역에 거주했으며, 15.57%인 112,352명만이 도시 지역에 살았다. 7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61.27%였으며, 남성의 문맹률은 63.34%, 여성의 문맹률은 59.31%로 나타났다.[11]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81.28%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힌두교도는 18.65%를 구성한다. 과거 인도 분할 당시에는 두 종교 공동체의 인구 비율이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도의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11]
2022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 결과, 나라일 지역의 인구는 788,671명으로 증가했으며, 총 195,66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평균 인원은 3.98명이었다. 전체 인구 중 10세 미만 아동은 148,027명으로 약 18.77%를 차지했다. 인구 밀도는 km2당 815명이다. 7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74.66%로 방글라데시 전국 평균인 74.80%보다 약간 낮았다. 성비는 여성 1000명당 남성 1056명으로 남성 인구가 더 많아졌다. 도시 지역 거주 인구 비율은 22.14%로 증가했다. 소수 민족 인구는 8,278명(1.05%)이며, 이 중 절반가량이 말로우이다.[6]
6. 종교
2022년 기준으로 나라일구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교로, 전체 인구의 84.19%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는 힌두교가 15.78%를 차지한다.[6] 과거 분할 시기에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인구 비율이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왔다.[11][5]
6. 1. 종교 분포 (1941년, 1981년, 1991년, 2001년, 2011년, 2022년)
2011년 방글라데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슬람교도는 인구의 81.28%를 차지했으며 힌두교도는 인구의 18.65%를 차지했다. 1947년 인도 분할 당시에는 두 종교 공동체의 수가 거의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도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11][5] 2022년 조사에서는 이슬람교도가 84.19%, 힌두교도가 15.7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6]
'''*''' 기타 종교: 자이나교, 기독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아드-다르미(Ad-Dharmi) 등을 포함하거나 종교를 밝히지 않은 경우.
6. 2. 종교 시설
나라일구 구에는 1675개의 모스크, 248개의 사원, 51개의 교회, 7개의 무덤 및 11개의 사당이 있다.[5]주요 방문 장소로는 Debbhog에 있는 Shri Tribhanga Brahmachary(Shri Shri Bhagvat Sevashram Sangh의 Babaji)가 설립한 라다 라만 스리티 티르타 만디르, Rupganj의 Nishinath Tola, Lakkhipasha Thakurbari 등이 있다.[5]
종교 | 1941년[7] (알파당가 타나 제외) | 1981년 | 1991년 | 2001년 | 2011년 | 2022년[6] | ||||||
---|---|---|---|---|---|---|---|---|---|---|---|---|
인구 | % | 인구 | % | 인구 | % | 인구 | % | 인구 | % | 인구 | % | |
이슬람 | 173,674 | 50.10% | 407,929 | 69.28% | 490,915 | 74.87% | 549,702 | 78.70% | 586,588 | 81.28% | 663,961 | 84.19% |
힌두교 | 172,697 | 49.82% | 180,589 | 30.67% | 164,286 | 25.05% | 148,339 | 21.24% | 134,594 | 18.65% | 124,465 | 15.78% |
기타 (자이나교, 기독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아드-다르미 등 포함) 또는 미상 | 269 | 0.08% | 294 | 0.05% | 519 | 0.08% | 406 | 0.06% | 486 | 0.07% | 245 | 0.03% |
총 인구 | 346,640 | 100% | 588,812 | 100% | 655,720 | 100% | 698,447 | 100% | 721,668 | 100% | 788,671 | 100% |
2011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이슬람교도는 인구의 81.28%, 힌두교도는 18.65%를 차지했다. 힌두교도 대부분은 카스트 공동체 출신이다. 과거 분할 시기에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인구가 비슷했으나, 이후 힌두교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5] 2022년 조사에서는 이슬람교도 비율이 84.19%로 증가하고 힌두교도 비율은 15.78%로 감소했다.[6]
7. 교통
나라일 타운은 이 지역 도로 교통의 중심지이다. 서쪽으로는 지역 고속도로 R750을 통해 약 32km 떨어진 조소르와 연결된다. R720 도로는 북쪽으로 50km 뻗어 마구라로 이어진다. 지역 내 질라 도로 Z7503은 동쪽으로 로하가라를 지나 마두마티강의 칼나 페리 나루터까지 연결된다. Z7502 도로는 남쪽으로 나바강가강을 건너 바로이파라 나루터에서 페리를 이용하여 칼리아까지 이어진다.[4][9]
8. 교육
나라 빅토리아 대학 및 컬리지 학교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이 학교는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라일 지역 지주들에 의해 1858년에 세워졌다. 이 지주들은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여자 학교인 시브 샹카르 기념 여자 학교도 함께 설립했다.
그러나 지주들이 인도 분할 이후 인도로 떠나면서 자금 부족으로 인해 시브 샹카르 기념 여자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J. 바타차르지, S. 비스와스, B. 보우믹과 같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학교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들은 학교 운영을 위해 이웃에게 가구를 빌리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학부모들에게 자녀를 학교에 보내달라고 설득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9. 문화 및 예술
나라 빅토리아 대학 및 컬리지 학교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고등학교 중 하나로, 교육을 중시했던 나라일의 지주들에 의해 1858년에 설립되었다. 이들은 당시 방글라데시에서는 드물었던 여성 교육기관인 시브 샹카르 기념 여자 학교도 세웠다. 그러나 인도 분할 이후 지주들이 인도로 떠나면서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가, J. 바타차르지, S. 비스와스, B. 보우믹과 같은 지역 인사들의 노력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들은 이웃에게 가구를 빌리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학부모들에게 자녀를 학교에 보내달라고 설득했다.
나라일 궁전은 벵골 지역에서 가장 큰 지주 저택 중 하나였다. 힌두교 지주들이 인도 분할 이후 콜카타로 이주하자 저택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으며, 점차 허물어졌다. 현재는 칼리 여신을 모시는 사원인 ''칼리바리'',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인 ''시브몬디르'', 그리고 치트라 강의 ''반다 가트'' 등 일부 유적만 남아 있다. 한때 지역 주민들이 저택에서 유명한 두르가 푸자 축제를 이어갔으나 몇 년 후 중단되었다. 건물의 일부는 정부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결국 무너졌다.
칼리아 궁전 역시 벵골의 대규모 지주 저택 중 하나였다. 일부 지주들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타나(경찰서)였던 나라가티에 거주했다.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와 그의 형 우다이 샹카르의 조상이 칼리아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작가 바킴찬드라 차토파디야이는 나라일의 치안 판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의 저서 ''닐쿠티''는 동인도 회사가 나라일 지역에서 인디고 재배를 강요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였다.
셰이크 모하메드 술탄(1923년 8월 10일 ~ 1994년 10월 10일, এস এম সুলতান|SM 술탄ben으로 더 잘 알려짐)은 나라일구 출신의 벵골 아방가르드 화가이다. 그는 일상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농부들을 과장된 근육질로 묘사한 인상적인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셰이크 모하메드 메체르 알리와 모하메드 메헤룬네사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나라일은 영국령 인도로부터 쇼롤라 ''디''(쇼롤라 누이)라는 인물에 의해 잠시 "독립"을 선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당시 인도의 독립 운동가들 사이에서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이 "독립"은 단 3일간만 지속되었다.
'''주요 인물'''
나라일구 출신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분야 | 이름 | 주요 활동 및 설명 |
---|---|---|
문화 및 예술 | 자두나트 마줌다르 | 작가, 편집자 |
SM 술탄 | 화가 | |
라비 샹카르 | 시타르 거장,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 조직자 | |
비조이 사르카르 | 시인, 바울 가수, 작사가, 작곡가 | |
카말 다스굽타 | 음악 감독, 영화 작곡가 | |
니하르 란잔 굽타 | 벵골 소설가 | |
정치 | 샤리프 카스루자만 | 방글라데시 독립 투사, 사업가,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소속 국회의원 (1991-1996, 1996-2001) |
시드 노셰르 알리 | 정치인 | |
아말 센 | 정치인 | |
Md. 카비룰 하크 | 사업가,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소속 국회의원 (나라일-1 선거구, 2019년~) | |
준장 SK 아부 바크르 (퇴역) |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정치인, 전 나라일-2 선거구 국회의원 | |
마슈라페 빈 모르토자 | 전 방글라데시 국가대표 크리켓팀 주장 ("나라일 익스프레스"),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소속 국회의원 (2019년~) | |
군사 | 비르셰스토 누르 모하마드 셰이크 | 방글라데시 독립 투사 |
소장 셰이크 모하마드 아만 하산 (퇴역) | 방글라데시 육군 장성, 특수 보안 부대 (SSF) 국장 (2012-2016) 역임 | |
수석 엔지니어 Md. 사르와르 셰이크 (퇴역) | 군 엔지니어 서비스(MES) | |
지식인 | 셰이크 압두스 살람 | 순교한 지식인 |
기타 | 수브라 무케르지 | 전 인도 영부인, 전 인도 대통령 프라나브 무케르지의 부인 |
스포츠 | 샤몰리 레이 | 양궁 선수, 2016년 하계 올림픽 출전 |
아비셰크 다스 | 크리켓 선수, 2020년 U-19 크리켓 월드컵 방글라데시 대표팀 |
10. 주요 명소
나라일 지역에는 자민다르(봉건 영주) 가문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들이 다수 남아있다. 자민다르들은 룹곤지(Roopgonj)에 시장을, 로통곤지(Rotongonj) 근처에 지역 최초의 우체국을 설립하는 등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나라일 궁전은 한때 벵골에서 가장 큰 지주 저택 중 하나였으나, 1947년 인도 분할 이후 힌두교 지주들이 콜카타로 떠나면서 약탈되고 파괴되어 점차 붕괴되었다. 현재는 칼리 여신의 사원인 ''칼리바리''(কালীবাড়িben), 시바의 사원인 ''시브몬디르''(শিবমন্দিরben), 그리고 치트라 강의 ''반다 가트''(বাঁধা ঘাটben) 등 일부 유적만 남아 있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유명한 두르가 푸자 축제가 열렸으나 지금은 중단되었다. 건물의 일부는 정부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결국 무너졌다.
쿠리도베 경기장은 자민다르 가문이 기증한 넓은 경기장이다. 20세기 초부터 이곳에서는 축구 대회가 열렸으며, 우승팀에게는 방패, 준우승팀에게는 컵, 모든 선수에게는 메달을 수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교육 시설로는 나라 빅토리아 대학 및 컬리지 학교가 있다. 1858년 나라일의 지주들이 설립한 이 학교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고등학교 중 하나이다. 또한,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여자 학교인 시브 샹카르 기념 여자 학교도 지주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 학교는 지주들이 인도로 떠난 후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았으나, J. 바타차르지, S. 비스와스, B. 보우믹 등 지역 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칼리아 궁전 역시 벵골의 대규모 지주 저택 중 하나였으며, 일부 지주들은 영국 통치 시대에 타나(경찰서)가 있었던 나라가티에 거주했다. 유명 음악가 라비 샹카르와 무용가 우다이 샹카르의 조상이 칼리아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나라일은 유명 작가 바킴찬드라 차토파디야이가 치안 판사로 근무했던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인도 회사가 인디고 재배를 강요했던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 ''닐쿠티''(নীলকুঠিben)를 집필했다. 또한, 벵골의 유명 아방가르드 화가인 셰이크 모하메드 술탄(SM 술탄, এস এম সুলতানben, 1923년 8월 10일 ~ 1994년 10월 10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일상 속 농부들의 모습을 강렬하고 인상적인 필치로 그려낸 작품들로 명성을 얻었다.[1]
11. 스포츠
- 마슈라페 빈 모르토자: 전 방글라데시 국가대표 크리켓팀 선수이자 주장을 역임했다. "나라일 익스프레스"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9년 12월 30일에 열린 제11회 총선에서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후보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 샤몰리 레이: 방글라데시의 양궁 선수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년 하계 올림픽에 삼자 초청을 통해 여자 개인 리커브 부문 방글라데시 대표로 출전했다.
- 아비셰크 다스: 2001년 9월 5일 출생한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선수이다. 2020년 3월 15일 올드 DOHS 스포츠 클럽을 상대로 2019–20 다카 프리미어 디비전 크리켓 리그에서 리스트 A 크리켓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이전에는 2020년 U-19 크리켓 월드컵 방글라데시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조
[1]
서적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2022 - District Report: Narail
http://nsds.bbs.gov.[...]
Bangladesh Bureau of Statistics
2024-06
[2]
웹사이트
https://globaldatala[...]
[3]
서적
Banglapedia: National Encyclopedia of Bangladesh
Asiatic Society of Bangladesh
[4]
웹사이트
RHD Road Network, Khulna Zone
http://www.rhd.gov.b[...]
2014-07-25
[5]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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