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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메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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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오메데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으로, 아이톨리아와 아르고스 혈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테베 공략 일곱 영웅의 아들인 '에피고니' 중 한 명으로 테베 원정에 참여하여 아르고스의 왕이 되었으며, 뛰어난 정치가로 존경받았다. 디오메데스는 80척의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강력한 전사로 활약하며 아테나의 보호를 받았다. 그는 아이네이아스와 아레스에게 부상을 입히고, 오디세우스와 함께 팔라디움을 훔치는 등 활약을 펼쳤다. 트로이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여러 도시를 건설했으며,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영웅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디오메데스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는 전설과 죽어서 새가 되었다는 전설,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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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메데스
기본 정보
디오메데스, 아르고스 왕 – 기원전 430년경 크레실라스의 조각상의 로마 복제품. 루브르 박물관, 파리
다른 이름디오메데
그리스어 이름Διομήδης
로마자 표기법Diomēdēs
의미신과 같은 책략 또는 제우스의 조언을 받은 자
거주지아르고스
소속아카이아인
부모티데우스 와 데이필레
배우자아이기알레
형제자매코마에토
역할아르고스의 왕
일리아스 주요 등장인물
아카이아 진영네스토르
네오프톨레모스
니레우스
디오메데스
마카온
메돈
메넬라오스
메네스테우스
메리오네스
발리오스와 크산토스
스케디오스
스텐토르
스테넬로스
아가멤논
아가페노르
대(大) 아이아스
소(小) 아이아스
아스칼라포스
아우토메돈
아킬레우스
악토르
안티파테스
안틸로코스
에우도로스
에우리알로스
에우리필로스
이도메네우스
오디세우스
탈티비오스
테우크로스
테르시테스
토아스
트라시메데스
틀레폴레모스
파트로클로스
필록테테스
포이닉스
포다르케스
포달레이리오스
프로마코스
프로테실라오스
트로이아 진영고르기티온
글라우코스
다레스
데이포보스
돌론
리카온
레소스
멜라닙포스
멤논
미돈
브리세이스
사르페돈
아카마스
아이네이아스
아이세포스
알카토오스
안키세스
안드로마케
안테노르
안티파테스
안티포스
아르켈로코스
아시오스
아스테로파이오스
아스티아낙스
에우리필로스
에우포르보스
케브리오네스
칼카스
카산드라
크리세이스
크리세스
클리티오스
판다로스
파리스
페다소스
펜테실레이아
포르키스
폴리테스
폴리다마스
폴리도로스
폴리도로스
프리아모스
피라이크메스
테아노
트로일로스
헥토르
헤카베
헬레네
헬레노스

2. 트로이 전쟁 이전

디오메데스의 아버지 테우데우스는 칼리돈을 떠나 아르고스로 도망쳐 아드라스토스의 딸과 결혼했다. 테우데우스는 테바이 원정의 일곱 영웅 중 한 명이었으나, 원정은 실패하고 테우데우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웅이 전사했다. 이때 디오메데스는 4살이었다.[3]

장례식에서 디오메데스를 포함한 아들들은 훗날 테바이를 공격할 것을 맹세하고 스스로를 에피고노이라 불렀다. 10년 후, 이들은 테바이를 다시 공격하여 침략에 성공했다. 디오메데스는 15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했다고 한다.[4] 이후 테바이는 텔산드로스가 지배하게 되었다.

아드라스토스는 아들 아이기알레우스의 전사 소식에 슬픔에 잠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디오메데스는 테바이 원정에서 귀환 후 아이기알레우스의 딸 아이기알레이아와 결혼하여 아르고스의 왕이 되었다.[5]

디오메데스는 아르고스를 5년 이상 통치하며 부와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뛰어난 정치가로 존경받았다. 그는 할아버지 오이네우스가 아그리오스의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군대를 이끌고 칼리돈을 공격하여 오이네우스를 복위시켰다. 오이네우스는 이후 왕위를 사위 안드라이몬에게 넘기고 디오메데스를 만나러 가던 중 테르시테스와 온케스토스에게 암살당했다. 디오메데스는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오이노에라는 도시를 건설했다.[6]

2. 1. 가계와 출생

디오메데스는 아버지 쪽으로는 아이톨리아인, 어머니 쪽으로는 아르고스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티데우스는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의 아들이었으나, 사촌이나 아버지의 삼촌을 죽인 죄로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티데우스는 아르고스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아르고스의 왕 아드라스토스는 그를 환대하여 자신의 딸 데이필레를 아내로 주었다. 티데우스와 데이필레 사이에서 디오메데스가 태어났다.[3]

티데우스는 테바이 원정의 일곱 영웅 중 한 명이었지만,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아드라스토스를 제외한 모든 영웅이 전사했다. 이때 디오메데스는 4살이었다. 아버지들의 장례식에서 일곱 영웅들의 아들들은 만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테베를 정복할 것을 맹세했고, 이들은 '에피고노이'("자손들")로 알려졌다.[4]

10년 후, 에피고노이들은 테베에 대한 원정을 시작했다. 주요 전투는 글리사스에서 벌어졌는데,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우스가 라오다마스 왕에게 살해당했고, 라오다마스는 알크마이온에게 죽임을 당했다. 테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고, 에피고니들은 도시에 들어가 보물을 약탈하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에피고니들은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데르를 도시의 새로운 통치자로 임명한 후 귀환했다.[4]

아드라스토스 왕은 아들 아이기알레우스가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죽었다. 디오메데스는 아드라스토스의 남성 후손 중 마지막으로 남아 아르고스로 돌아온 후 왕위에 올랐다. 디오메데스는 왕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아이기알레우스의 딸인 아이기알리아 공주와 결혼했다.[5]

디오메데스는 5년 이상 아르고스를 통치하면서 도시에 많은 부와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능숙한 정치가였으며 다른 통치자들에게도 존경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칼리돈의 정치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아그리오스의 아들들이 오이네우스 (디오메데스의 할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아그리오스를 왕위에 올리자, 디오메데스는 오이네우스를 왕위에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

디오메데스는 칼리돈을 공격하여 테르시테스, 펠로폰네소스로 도망친 온케스토스를 제외한 모든 반역자들을 죽이고 할아버지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후에 오이네우스는 왕국을 사위인 안드라이몬에게 넘겨주고 디오메데스를 만나러 아르고스로 향했으나, 도중에 테르시테스와 온케스토스에게 암살당했다. 디오메데스는 할아버지가 묻힌 곳에 '오이노에'라는 도시를 세워 그의 죽음을 기렸다.[6]

2. 2. 에피고노이 전쟁

디오메데스는 아버지 티데우스가 테베 공략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을 때 겨우 네 살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디오메데스를 포함한 일곱 전사들의 아들들(아이기알레이오스, 알크마이온, 암필로코스, 디오메데스, 에우뤼알로스, 프로마코스, 스테넬로스, 테르산데르)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테베를 정복할 것을 맹세했다. 이들은 '에피고노이'('후손들'이라는 뜻)로 불렸다.[4]

10년 후, 에피고노이들은 테베에 대한 두 번째 원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메세니아, 아르카디아, 코린토스, 메가라에서 지원병을 받아 초기 병력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테베 군대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 에피고노이 전쟁은 트로이 전쟁 이전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정으로, 여러 서사시의 소재가 되었지만 현재는 모두 사라졌다.[4]

주요 전투는 글리사스에서 벌어졌는데, 이 전투에서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이오스 왕자가 라오다마스 왕에게 살해당했고, 라오다마스는 알크마이온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이 죽자 테베 사람들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시를 떠났다. 에피고니들은 저항 없이 도시에 들어가 보물을 약탈하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이들은 첫 테베 원정의 주동자인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데르를 도시의 새로운 통치자로 임명하고 귀환했다.[4]

아르고스 군대가 귀환하는 동안, 노령의 아드라스토스 왕은 아들 아이기알레이오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겨 죽었다. 디오메데스는 아드라스토스의 남은 후손 중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아르고스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아이기알레이오스의 딸인 아이기알리아 공주와 결혼했다.[5]

2. 3. 아르고스의 왕위 계승

디오메데스는 아버지 쪽으로는 아이톨리아인, 어머니 쪽으로는 아르고스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티데우스는 칼리돈 왕족 출신이었으나 추방당해 아르고스 왕 아드라스토스의 사위가 되었다. 티데우스는 테바이 원정의 일곱 영웅 중 한 명으로 원정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3]

디오메데스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네 살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다른 전사들의 아들들과 함께 '에피고노이'를 결성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테베를 정복할 것을 맹세했다. 10년 후, 에피고니들은 테베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아드라스토스의 아들 아이기알레우스가 전사하고 테베의 왕 라오다마스는 알크마이온에게 죽임을 당했다. 테베는 함락되었고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다.[4]

아르고스 군대가 귀환하던 중 아드라스토스 왕은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며 죽었고, 디오메데스는 아드라스토스의 남은 유일한 남성 후손으로서 아르고스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왕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아이기알레이오스의 딸 아이기알레이아와 결혼했다.[5]

디오메데스는 5년 이상 아르고스를 통치하며 부와 안정을 가져왔고, 능숙한 정치가로서 다른 통치자들에게 존경받았다. 그는 할아버지 오이네우스가 반역자들에게 감금당하자 칼리돈을 공격하여 오이네우스를 왕위에 복귀시켰다. 훗날 오이네우스는 디오메데스를 만나러 가던 중 테르시테스와 온케스토스에게 암살당했고, 디오메데스는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오이노에'라는 도시를 세웠다.[6]

2. 4. 칼리돈 왕위 복귀 지원

디오메데스는 칼리돈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칼리돈을 공격했다. 그는 테르시테스와 펠로폰네소스로 도망친 온케스토스를 제외한 모든 반역자들을 죽였다. 아그리오스는 자살했고, 디오메데스는 할아버지 오이네우스를 칼리돈의 왕위에 복위시켰다.[6]

이후 오이네우스는 왕국을 사위인 안드라이몬에게 넘겨주고 디오메데스를 만나러 아르고스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도중에 테르시테스와 온케스토스에게 암살당했다. 디오메데스는 암살자를 찾지 못했고, 할아버지가 묻힌 곳에 '오이노에'라는 도시를 세워 그의 죽음을 기렸다.[6]

3. 트로이 전쟁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디오메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는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용맹함과 지혜를 겸비한 인물로, 아테나 여신의 총애를 받으며 전장을 누볐다.

디오메데스는 아가멤논, 네스토르 다음으로 많은 80척의 함대를 이끌고 참전했으며, 스테넬로스와 에우리알로스 등 뛰어난 전사들이 그의 지휘 아래 있었다. 아르고스, 티린스, 트로이젠 등 여러 도시의 군대를 이끌었던 그는 아카이아 연합군 내에서 가장 경험 많은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디오메데스의 전투, 자크 루이 다비드, 1776


디오메데스는 일리아스 5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맹활약을 펼치는데, 이를 '디오메데스의 아리스테이아'(탁월함)라고 부른다. 아테나 여신은 그의 방패와 투구에서 불꽃을 뿜어내게 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페게우스를 비롯한 수많은 트로이 전사들을 죽이고,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심지어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에게도 공격을 가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디오메데스가 아이네이아스를 공격하는 모습 - 아프로디테가 그의 뒤에 서 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아레스에게 부상을 입힌 후, 디오메데스는 글라우쿠스와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는 글라우쿠스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서로의 조상이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고 싸움을 멈추고 갑옷을 교환했다. 이 일화에서 '디오메데스식 교환'이라는 표현이 유래했는데, 이는 불공평한 교환을 의미한다.

디오메데스와 글라우쿠스


디오메데스와 아테나아레스를 공격하는 모습


디오메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서 전차 경주와 무장 결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아카이아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특히 전차 경주에서는 아폴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우승을 차지했다.

존 플랙스만(John Flaxman)이 그린 『일리아스』 삽화(1793년).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은 디오메데스가 알레스를 찌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트로이 목마 계략이 성공하여 아카이아군은 트로이아를 함락했고, 디오메데스는 목마 안에 있던 전사 중 한 명이었다.[30] 그는 트로이 함락 과정에서 많은 트로이 전사들을 죽였다.

디오메데스는 단순한 용맹함을 넘어 지혜와 신중함을 겸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아가멤논의 질책에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아카이아 군의 사기를 북돋우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신들의 뜻을 존중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겸손함도 보여주었다.

3. 1. 참전과 활약상

호메로스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아가멤논(100척)과 네스토르(90척) 다음으로 많은 80척의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다. 스테넬로스와 에우리알로스(전 에피고니)는 그들의 군대와 함께 디오메데스의 지휘 아래 싸웠다. 스테넬로스는 디오메데스의 전차를 몰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아르고스, 티린스, 트로이젠과 다른 도시들의 모든 군대는 디오메데스가 이끌었다.

아카이아 왕들 중 가장 젊었지만, 디오메데스는 가장 경험 많은 지도자로 여겨진다. 그는 트로이 전쟁 이전 가장 중요한 전투였던 에피고니 전쟁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전투를 치렀다.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디오메데스는 아카이아인들 중 가장 강력하고 숙련된 전사로 여겨진다. 그는 무장 대련에서 텔라모니안 아약스를 압도했고, 아약스는 디오메데스가 먼저 피를 흘렸기 때문에 디오메데스에게 상(긴 칼)을 주었다. 그는 아이네이아스(트로이아의 두 번째로 뛰어난 전사)를 한 번 패배시켰다. 그와 오디세우스는 규율, 용기, 담력, 교활함, 그리고 기지가 요구되는 비밀 군사 작전에 참여한 유일한 아카이아 영웅들이었다.

디오메데스는 아테나의 총애를 받는 전사였으며,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제외하고는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한 유일한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심지어 창으로 아레스를 찔러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한때 그는 불멸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신의 시각을 부여받기도 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디오메데스의 흉갑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 헤라의 아들이 만든 그러한 무기를 지닌 유일한 아카이아 전사였다. 그는 또한 멧돼지 표식이 있는 원형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전투에서 그는 아버지의 검만큼 마법이 부여되지 않은 창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금빛 갑옷은 가슴에 멧돼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필멸의 대장장이가 만들었지만 아테나에 의해 축복받았다. 숙련된 대장장이가 티데우스를 위해 사자와 큰 멧돼지의 문양이 새겨진 검을 만들었다.

'''제5권'''에서 아테나는 디오메데스의 방패와 투구에서 불꽃을 뿜어내게 하고, 그의 마음속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디오메데스는 페게우스를 포함한 많은 트로이 전사들을 죽이다 판다루스의 화살에 부상을 입는다. 아테나는 그에게 신과 인간을 구별하는 특별한 능력을 주고, 아프로디테가 전투에 참여한다면 그녀를 다치게 하라고 말하며, 다른 신들과 싸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는 아스티누스, 힙페이론, 아바스, 폴리두스, 크산투스, 토온, 에케몬, 크로미우스(프리아모스의 두 아들)를 죽이며 트로이군을 계속 괴롭힌다. 아이네이아스(아프로디테의 아들)는 판다루스에게 그의 전차에 오르라고 요청한다. 디오메데스는 두 전사와 동시에 맞설 수 있지만, 아프로디테가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구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스테넬루스에게 말을 훔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아이네이아스와 싸운다.

판다루스는 디오메데스에게 창을 던지지만, 디오메데스는 창을 던져 판다루스를 즉시 죽인다. 디오메데스는 거대한 돌을 집어 아이네이아스의 엉덩이를 으깨고, 아이네이아스는 기절한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옷으로 아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디오메데스의 공격을 받고 아들을 떨어뜨린다.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구출하고, 부상당한 아프로디테를 올림푸스로 도망치게 한다. 디오메데스는 아폴론을 세 번 공격하기 전에 신들과 싸우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디오메데스는 자신이 가장 뛰어난 말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얻는 데 성공하고 전투에서 물러난다.

아프로디테는 디오메데스의 행동에 대해 어머니에게 불평했지만, 어머니는 헤라클레스에 대해 상기시켰다.

아폴론의 부추김으로 아레스는 트로이군을 돕기 위해 전장에 왔고, 디오메데스는 아카이아인들에게 배로 후퇴하라고 명령하여 그들을 보호했다. 헤라는 아들의 파괴적인 행위를 목격하고 아테나와 함께 아카이아인들을 돕기 위해 왔다. 아테나는 디오메데스를 조롱하며, 그의 아버지 티데우스를 상기시켰다. 디오메데스는 아레스가 트로이군 사이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후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테나는 스테넬루스를 전차에서 던져 버리고 직접 전차에 올라 아레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신들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레스는 전차에 있는 디오메데스만 보았고 창을 던졌지만 아테나가 막았다. 그러자 디오메데스는 (아테나가 인도한) 그의 창을 아레스에게 던져 그의 배를 다치게 했다. 신은 만 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디오메데스는 악실루스와 칼레시우스를 죽이며 계속해서 활약을 펼쳤다. 헥토르의 형제 헬레누스는 디오메데스의 전투 기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맹렬하게 싸우며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줍니다. 저는 그를 가장 강력한 자로 여깁니다."

헬레누스는 헥토르를 트로이 도시로 보내 어머니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게 했다. 헬레누스의 지시에 따라 프리암의 아내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테나 신전에 여인들을 모아 여신에게 트로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로브를 바쳤다. 또한 아테나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디오메데스의 창을 부러뜨려 준다면 열두 마리의 암소를 희생하겠다고 서약했다.

글라우쿠스라는 용감한 트로이인이 디오메데스에게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다. 디오메데스는 그가 변장한 불멸의 존재인지 물었고, "나는 더 이상 불멸의 존재와 싸우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글라우쿠스는 벨레로폰의 후손임을 이야기했고,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할아버지 오이네우스가 벨레로폰을 환대했던 것을 깨닫고, 자신과 글라우쿠스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기로 하고 갑옷을 교환했는데, 디오메데스는 받은 금 갑옷 대신 청동 갑옷만 주었다. '디오메데스식 교환'이라는 말은 이 사건에서 유래했다.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서 디오메데스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참가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한다. 먼저, 전차 경주에서 제비뽑기로 결정된 출발선의 맨 뒤쪽 자리를 배정받았다. 에우멜루스라는 전사가 선두를 달렸고, 디오메데스는 아폴론이 앙심을 품고 그의 채찍을 떨어뜨리게 만들어 그를 추월할 수 없었다. 아테나가 디오메데스에게 채찍을 돌려주고 말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동시에 에우멜루스의 멍에를 부러뜨려 그를 떨어뜨리고 부상을 입힌다.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로부터 빼앗은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타고 승리한다. 이 말들은 트로이 창건자인 트로스 왕에게 제우스가 준 말의 후손이며, 가장 뛰어난 말이라고 밝혀졌다. 디오메데스의 1등 상품은 "모든 유용한 기술에 능숙한 여자와 세발솥"이었다.[19]

다음으로, 그는 무장한 스파링 경기에서 큰 아약스와 싸웠는데, 승자는 먼저 상대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었다. 아약스는 디오메데스의 갑옷으로 덮인 몸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약스는 가장 큰 갑옷과 가장 큰 방패를 가지고 있어 몸의 대부분을 가렸고, 목과 겨드랑이 두 곳만 취약했다. 그래서 디오메데스는 아약스의 방패 위로 창을 움직여 그의 목을 공격하여 피를 흘리게 했다. 아카이아 지도자들은 그런 공격이 아약스를 죽일까 봐 두려워 싸움을 멈췄다. 디오메데스는 승자의 상을 받았다.

3. 2. 일리아스에서의 묘사

호메로스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80척의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는데, 이는 아가멤논(100척)과 네스토르(90척) 다음으로 많은 규모였다.[17] 스테넬로스와 에우리알로스(전 에피고니)는 그들의 군대와 함께 디오메데스의 지휘하에 싸웠다. 스테넬로스는 디오메데스의 전차를 몰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다. 아르고스, 티린스, 트로이젠과 다른 도시들의 모든 군대는 디오메데스가 이끌었다.

아카이아 왕들 중 가장 젊었지만, 디오메데스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가장 경험 많은 지도자로 여겨진다. 그는 트로이 전쟁 이전 가장 중요한 전투였던 에피고니 전쟁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전투를 치렀다.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디오메데스는 아카이아인들 중 가장 강력하고 숙련된 전사로 여겨진다. 그는 무장 대련에서 텔라모니안 아약스를 압도했고, 아약스는 디오메데스가 먼저 피를 흘렸기 때문에 디오메데스에게 상(긴 칼)을 주었다. 그는 아이네이아스(트로이아의 두 번째로 뛰어난 전사)를 한 번 패배시켰다(그리고 죽일 수도 있었다). 그와 오디세우스는 규율, 용기, 담력, 교활함, 그리고 기지가 요구되는 비밀 군사 작전에 참여한 유일한 아카이아 영웅들이었다.

디오메데스는 아테나의 총애를 받는 전사였으며(심지어 한때 그의 전차를 몰기도 했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제외하고는 올림포스 신들을 공격한 유일한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심지어 창으로 아레스를 찔러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17] 한때 그는 불멸자들을 식별하기 위해 신의 시각을 부여받기도 했다. 디오메데스와 메넬라오스만이 호메로스 이후 신화에서 불멸성을 부여받고 신이 되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디오메데스의 흉갑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 헤라의 아들이 만든 그러한 무기를 지닌 유일한 아카이아 전사였다. 그는 또한 멧돼지 표식이 있는 원형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전투에서 그는 아버지의 검만큼 마법이 부여되지 않은 창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금빛 갑옷은 가슴에 멧돼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필멸의 대장장이가 만들었지만 아테나에 의해 축복받았고, 아테나는 그것을 티데우스에게 주었다. 그가 죽자 그것은 디오메데스에게 전해졌다. 숙련된 대장장이가 티데우스를 위해 사자와 큰 멧돼지의 문양이 새겨진 검을 만들었다.

디오메데스는 ''일리아스''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이 서사시는 트로이 전쟁 마지막 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한다. 디오메데스는 서사시 전반부 3분의 1에서 핵심 전투원이다. 일부 해석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로 묘사되며, 우월감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영웅적 가치의 완벽한 구현으로 여겨진다. 최고의 전사가 되고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메노스'(menos)가 가져올 수 있는 광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제외하고는 불멸자들과 직접 싸울 힘을 (허락을 받아) 얻은 유일한 인간이었으며, 하루에 두 명의 올림포스 신들(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을 부상입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제심과 겸손함을 보이며 아레스 앞에서 물러서고 아폴론에게 길을 비켜줌으로써 필멸자의 한계를 유지한다. 이는 아폴론과 대적할 때 물러서지 않는 파트로클로스와 스스로 스캄안드로스 강과 싸우는 아킬레우스와 대조된다.

그의 성격은 또한 서사시의 주요 주제 중 하나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운명과 불멸자들이 통제할 때 인간의 선택과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해지는가 하는 것이다. 디오메데스는 호메로스 전통을 밀접하게 따르며 운명의 우월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아킬레우스가 운명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의 결론을 예측한다.

뛰어난 전투 능력과 용기 외에도, 디오메데스는 여러 중요한 경우에 아가멤논과 네스토르를 포함한 훨씬 나이 많은 동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디오메데스, 네스토르, 오디세우스는 가장 위대한 아카이아 전략가들 중 일부였다. ''일리아스'' 전반에 걸쳐 디오메데스와 네스토르는 전쟁 회의에서 자주 먼저 말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사시의 일부에서 묘사된 디오메데스의 성숙함과 지능의 예:

  • 4권에서 아가멤논은 디오메데스를 그의 아버지보다 훨씬 열등한 전투원이라고 조롱한다. 그의 분노한 동료 스테넬루스는 디오메데스에게 테베를 정복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했으므로 아가멤논에게 맞서라고 촉구한다. 디오메데스는 그것이 아카이아 병사들을 독려하는 아가멤논의 지도자로서의 임무의 일부였고, 용감한 사람들은 그러한 모욕을 견디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이전에 오디세우스에게 같은 종류의 조롱을 사용했을 때, 그는 분노로 응답한다.
  • 디오메데스는 존중을 가지고 아가멤논의 조롱을 일축했지만, 특정 중요한 상황에서 아가멤논의 지도자로서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9권에서 아가멤논은 제우스가 그들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헬라스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디오메데스는 이전의 모욕을 상기시키고 그의 행동이 지도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 디오메데스는 트로이가 함락될 운명이기 때문에 제우스의 개입에 관계없이 계속 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운명과 신들은 처음에 아카이아인들과 함께 있었고, 따라서 제우스의 개입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다른 모든 아카이아인들이 믿음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그와 스테넬루스는 남아 트로이가 함락될 때까지 싸울 것이다.
  • "아카이아인들의 아들들은 디오메데스의 말에 박수갈채를 보냈고, 곧 네스토르가 일어나 말했다. '티데우스의 아들아,' 그가 말했다. '전쟁에서 당신의 용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의회에서 당신은 당신과 같은 나이의 모든 사람들을 능가합니다. 아카이아인 중 아무도 당신이 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전체 문제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제 자식들 중 막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현명하게 말했고, 재량을 갖춘 아카이아인들의 지도자에게 조언했습니다.'"
  • 아가멤논이 많은 선물을 제공함으로써 다시 싸우도록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달래려고 했을 때,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만날 세 명의 사절을 임명했다(9권).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그들에게 트로이를 떠나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카이아인들은 이에 좌절했다. 디오메데스는 궁극적으로 아킬레우스의 자존심을 그가 이제 운명에 도전하기를 원하는 수준으로 고무시키는 데만 기여한 이러한 선물을 제공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그런 다음 디오메데스는 (호메로스 전통에 기초하여) 결국 사실이 되는 예측을 한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어떻게든 트로이를 떠나더라도, 인간의 노력과 선택이 운명에 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전투에서 멀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든지 머무르든지 간에, 신들은 그가 싸울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할 것입니다." 15권에서 제우스는 헤라에게 아킬레우스가 결국 전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이미 계획을 세웠다고 말한다.
  • 디오메데스는 또한 아가멤논에게 다음 날 전투를 이끌 것을 격려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장밋빛 손가락 아침이 나타나면, 즉시 당신의 군대와 기병을 배 앞으로 데려와 그들을 독려하고, 당신 자신은 가장 앞서 싸우십시오." (9권) 아가멤논은 이 조언을 받아들이고 다음 날 전투는 그의 "아리스테이아"(그가 그날의 영웅이 되는)로 시작된다.


디오메데스의 아리스테이아("탁월함"—영웅의 위대한 업적)는 5권에서 시작하여 6권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서사시에서 가장 긴 아리스테이아이다. 일부 학자들은 서사시의 이 부분이 원래 별도의 독립적인 시(디오메데스의 업적을 묘사)였으며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 각색하여 포함시켰다고 주장한다.[17] 디오메데스의 아리스테이아는 뛰어난 전투 기술, 용기, 신성한 보호/조언, 신중하게 계획된 전쟁 전술, 리더십, 겸손함 및 자제력과 같은 그의 많은 영웅적인 미덕을 보여준다.

'''제5권'''은 전쟁의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그녀의 용감한 전사인 디오메데스의 마음속에 용기를 불어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또한 그의 방패와 투구에서 불꽃을 뿜어내게 한다. 디오메데스는 페게우스(그의 형제는 헤파이스토스(헤라의 아들)에게 납치당한 후 디오메데스에게 살해당함)를 포함한 많은 트로이 전사들을 죽인다. 그러다 판다루스가 화살로 그를 다치게 한다. 디오메데스는 판다루스를 죽이기 위해 아테나에게 기도한다. 아테나는 신과 인간을 구별하는 특별한 능력을 그에게 주고, 만약 아프로디테가 전투에 참여한다면 그녀를 다치게 하라고 말한다. 또한 다른 신들과 싸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는 아스티누스, 힙페이론, 아바스, 폴리두스, 크산투스, 토온, 에케몬, 크로미우스(프리아모스의 두 아들)를 죽이며 트로이군을 계속 괴롭힌다. 마침내 아이네이아스(아프로디테의 아들)는 디오메데스와 함께 싸우기 위해 판다루스에게 그의 전차에 오르라고 요청한다. 스테넬루스는 그의 친구에게 그들의 접근을 경고한다.

디오메데스는 그의 힘과 지혜를 모두 보여주며 이 상황에 맞섭니다. 그는 두 전사와 동시에 맞설 수 있지만, 아프로디테가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구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또한 아이네이아스의 두 마리 말의 역사(그들은 제우스가 한때 트로이의 창시자인 트로스 왕에게 준 불멸의 말에서 나왔다)를 알고 있다. 아테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므로, 그는 스테넬루스에게 말을 훔치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아이네이아스와 싸운다.

판다루스는 디오메데스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했다고 잘못 생각하며 창을 던진다. 디오메데스는 자랑하는 판다루스에게 창을 던져 그를 즉시 죽임으로써 보복한다. 아이네이아스는 무장 해제된 디오메데스와 싸우게 되고, 디오메데스는 거대한 돌을 집어 아이네이아스의 엉덩이를 으깨 버린다. 아이네이아스는 기절하고,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옷으로 그를 보호한다. 디오메데스의 동료 스테넬루스는 아이네이아스의 말을 트로이군으로부터 빼앗아 데이필루스가 배로 가져가게 한다. 아테나의 명령을 따르는 디오메데스의 공격을 받는 동안 아프로디테는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떨어뜨린다.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구출하고, 부상당한 아프로디테를 올림푸스로 도망치게 한다. 아테나의 조언을 무시하고, 디오메데스는 아폴론을 세 번 공격하기 전에 신들과 싸우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가장 뛰어난 말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얻는 데 성공하고 (나중에 23권에서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전차 경주에서 마지막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한다.) 전투에서 물러난다.

아프로디테는 디오메데스의 행동에 대해 어머니에게 불평했다. 어머니는 인간이었을 때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올림푸스 신을 다치게 한 기록을 가진 강력한 헤라클레스(현재는 올림푸스 신)에 대해 상기시켰다.

아폴론을 공격한 디오메데스의 죄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폴론의 부추김으로 아레스는 트로이군을 돕기 위해 전장에 왔다. 전쟁의 신을 알아본 디오메데스는 아카이아인들에게 배로 후퇴하라고 명령하여 그들을 보호했다. 헤라는 아들의 파괴적인 행위를 목격하고 아테나와 함께 아카이아인들을 돕기 위해 왔다. 아테나는 디오메데스가 그의 말 근처에서 쉬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조롱하며, 자주 그녀의 충고를 어겼던 그의 아버지 티데우스를 상기시켰다. 디오메데스는 "여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진정으로 알고 있으며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지시를 따르고 있으며, 아레스가 트로이군 사이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후퇴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테나는 "디오메데스, 나의 가장 소중한 자여, 이 불멸자나 다른 어떤 신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스테넬루스를 전차에서 던져 버리고 직접 전차에 오른 여신(전차를 발명하고 인간에게 전차를 모는 방법을 가르친 여신)은 아레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또한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신들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레스는 전차에 있는 디오메데스만 보았고, 창을 던졌지만 아테나가 막았다. 그러자 디오메데스는 (아테나가 인도한) 그의 창을 아레스에게 던져 그의 배를 다치게 했다. 신은 만 명의 사람들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렇게 디오메데스는 하루에 두 명의 올림푸스 신을 다치게 한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디오메데스는 악실루스와 칼레시우스를 죽이며 계속해서 활약을 펼쳤다. 헥토르의 형제 헬레누스는 디오메데스의 전투 기술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맹렬하게 싸우며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줍니다. 저는 그를 가장 강력한 자로 여깁니다. 우리는 불멸의 자식이긴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조차도 이 사람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분노는 모든 한계를 넘어서며, 그에게 필적할 자는 없습니다."

헬레누스는 그 후 헥토르를 트로이 도시로 보내 어머니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게 했다. 헬레누스의 지시에 따라 프리암의 아내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테나 신전에 여인들을 모아 여신에게 트로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로브를 바쳤다. 또한 아테나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디오메데스의 창을 부러뜨려 준다면 열두 마리의 암소를 희생하겠다고 서약했다. 물론 아테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편, 글라우쿠스라는 용감한 트로이인이 티데우스의 아들과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다. 그의 용기와 고귀한 외모에 감탄한 디오메데스는 그가 변장한 불멸의 존재인지 물었다. 아테나가 이전에 그에게 어떤 불멸의 존재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디오메데스는 "나는 더 이상 불멸의 존재와 싸우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글라우쿠스는 키마이라와 아마조네스를 죽인 벨레로폰의 후손임을 이야기했다.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할아버지 오이네우스가 벨레로폰을 환대했던 것을 깨닫고, 자신과 글라우쿠스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기로 하고 디오메데스는 갑옷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교활한 디오메데스는 받은 금 갑옷 대신 청동 갑옷만 주었다. '디오메데스식 교환'이라는 말은 이 사건에서 유래했다.

디오메데스는 헥토르와 일대일 결투를 벌이기 위해 나선 아홉 명의 아카이아 전사 중 한 명이었다. 아홉 명의 전사 중 한 명을 뽑기 위해 제비뽑기를 할 때, 아카이아인들은 "아버지 제우스여, 제비가 아이아스에게, 혹은 티데우스의 아들에게, 혹은 아가멤논에게 떨어지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아이아스가 헥토르와 싸울 전사로 선택되었다.

트로이아의 이다이오스가 평화 협상을 위해 왔고, 파리스가 훔친 모든 보물과 그 이상의 것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단, 헬레네만 빼고 말이다. 아카이아 의회에서 디오메데스는 가장 먼저 말했다. "보물도, 헬레네도 받지 맙시다. 아이조차도 트로이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모두가 박수를 쳤고, 아가멤논은 "이것이 아카이아인들의 답변입니다."라고 말했다.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에서 디오메데스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참가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한다. 먼저, 그는 전차 경주에 참가하는데, 제비뽑기로 결정된 출발선의 맨 뒤쪽 자리를 배정받았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불멸의 말이 원래 포세이돈이 그의 아버지에게 준 선물이며 다른 어떤 말보다 뛰어나지만, 비록 이길 수 있을지라도 그의 말들은 마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여 경주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에우멜루스라는 전사가 선두를 달린다. 디오메데스는 예상대로 그를 추월할 수 없는데, 아폴론이 앙심을 품고 그의 채찍을 떨어뜨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본 아테나가 디오메데스에게 채찍을 돌려주고 말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동시에 에우멜루스의 멍에를 부러뜨려 그를 떨어뜨리고 부상을 입힌다. 안티로쿠스는 아테나가 디오메데스의 승리를 원하기 때문에 디오메데스를 추월하려고 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디오메데스는 제5권에서 아이네이아스로부터 빼앗은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타고 승리한다. 제5권에서 이 말들은 트로이 창건자인 트로스 왕에게 제우스가 준 말의 후손이며, 가장 뛰어난 말이라고 밝혀졌다. 디오메데스의 1등 상품은 "모든 유용한 기술에 능숙한 여자와 세발솥"이다. 전차 경주는 장례 경기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쟁으로 여겨지며 엘리트의 지위를 인정하는 가장 공식적인 자리이다.[19] 이러한 방식으로 디오메데스는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아카이아 영웅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다음으로, 그는 무장한 스파링 경기에서 큰 아약스와 싸웠는데, 승자는 먼저 상대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었다. 아약스는 디오메데스의 갑옷으로 덮인 몸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약스는 가장 큰 갑옷과 가장 큰 방패를 가지고 있어 몸의 대부분을 가렸고, 목과 겨드랑이 두 곳만 취약했다. 그래서 디오메데스는 아약스의 방패 위로 창을 움직여 그의 목을 공격하여 피를 흘리게 했다. 아카이아 지도자들은 그런 공격이 아약스를 죽일까 봐 두려워 싸움을 멈췄다. 디오메데스는 승자의 상을 받았다. 이것이 서사시에서 디오메데스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아테나는 《일리아스》에서 디오메데스와 가장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모두 아테나 여신의 총애를 받았지만, 오디세우스는 앞서 언급된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도 도움을 요청한 반면, 디오메데스는 아무런 요청 없이 아테나의 도움을 받았다. 게다가 여신은 5권에서 영웅에게 변장 없이 나타나, 디오메데스는 여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특별한 시각이 허락되었다). 이러한 일은 다른 호메로스 서사시인 《오디세이아》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테나는 《오디세이아》에서 항상 오디세우스에게 변장하여 나타난다.

3. 3. 트로이 함락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트로이 목마 계략으로 아카이아 군은 트로이아를 함락할 수 있었다. 디오메데스는 그 안에 있던 전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도시 안에서 많은 트로이 전사들을 죽였다.[30]

퀸투스 스미르나이우스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수많은 트로이군을 학살하는 동안 일리오네우스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자비를 구걸했다. 전쟁의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디오메데스는 칼을 멈추어 노인이 말할 수 있게 했다. 일리오네우스는 "오, 자비로운 나의 간청하는 손이여! 젊고 용감한 자들을 죽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만약 당신이 노인을 치면, 당신의 용기에 작은 명성만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 젊은이들을 향해 당신의 손을 돌리십시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백발이 될 날을 바란다면 말입니다."라고 애원했다. 디오메데스는 단호하게 "노인이여, 나는 존경받는 나이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 힘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단 한 명의 적도 살아서 도망치지 못할 것입니다. 용감한 자는 모든 적을 끝장냅니다."라고 말한 후, 일리오네우스를 죽였다.

그날 밤 디오메데스가 죽인 다른 트로이 전사들 중에는 카산드라의 구혼자였던 코로이부스[30], 에우리다마스, 에우리쿤이 있었다. 키프리아는 폴릭세나가 도시 함락 시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부상을 입고 죽었다고 전한다.[31]

4. 트로이 전쟁 이후

아킬레우스 사후, 디오메데스는 여러 경기에서 활약했으며, 오디세우스와 함께 필록테테스네오프톨레모스를 전쟁에 참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디오메데스는 아테나 여신의 보호를 받아 무사히 아르고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팔라메데스의 죽음에 대한 저주와 아프로디테의 분노로 인해 아내 아에기알리아의 배신을 겪고 아르고스에서 추방당했다.[33][34]

아테나의 개입으로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 사이에 트로이 귀환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가멤논은 아테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트로이에 남았고, 디오메데스와 네스토르는 상황을 논의한 끝에 서둘러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를 떠나 무사히 귀환했지만, 아테나는 포세이돈에게 호소하여 다른 많은 배들 위에 격렬한 폭풍을 일으켰다.

오디세우스에게 살해당한 팔라메데스는 그리스군을 저주했고, 디오메데스도 그 재앙을 입었다. 팔라메데스의 동생 오이악스는 아르고스로 가 디오메데스의 아내 아에기알리아에게 남편이 그녀보다 매력적인 여자를 트로이에서 데려올 것이라고 속삭였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에기알리아 자신이 스테넬로스의 아들 코메테스를 애인으로 두고 있었고, 팔라메데스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에게 설득당했다고도 한다. 또한 디오메데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훌륭하게 대우했지만,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에서 디오메데스가 던진 창이 자신의 살을 꿰뚫은 것을 원망하여 아에기알리아에게 많은 남자들과 간통하도록 부추겼다.

결국 아에기알리아는 다른 아르고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디오메데스가 아르고스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코메테스는 디오메데스가 없는 동안 아르고스의 왕이 되었지만, 곧 합법적인 후계자인 아이기알레우스의 아들 키아니푸스가 왕위를 계승했다.

4. 1. 아르고스 귀환의 좌절

디오메데스는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포기하려는 것에 반대하며, 신들의 뜻에 따라 트로이가 함락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보였다. 네스토르는 디오메데스의 의견을 비판하면서도 그의 지혜를 칭찬하고, 아가멤논에게 아킬레우스를 설득할 것을 제안했다. 아킬레우스는 사절단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디오메데스는 아킬레우스의 결정은 중요하지 않으며 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오메데스는 아카이아군에서 자원하여 트로이군을 정찰했고, 오디세우스를 동료로 선택했다. 두 사람은 트로이 진영으로 가던 중 돌론을 붙잡아 정보를 얻고, 트라키아인들을 공격하여 왕 레소스와 병사들을 죽였다. 이 야간 작전은 디오메데스의 용기와 지략을 보여주는 동시에, 트로이 함락의 예언 중 하나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아킬레우스 사후, 디오메데스는 여러 경기에서 활약했으며, 오디세우스와 함께 필록테테스네오프톨레모스를 전쟁에 참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로이 함락 후, 디오메데스는 아테나의 보호를 받아 무사히 아르고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팔라메데스의 죽음에 대한 저주와 아프로디테의 분노로 인해 아내 아에기알리아의 배신을 겪고 아르고스에서 추방당했다.[33][34]

4. 2. 이탈리아로의 이주와 도시 건설

디오메데스는 에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의 다우니아(아풀리아)로 이주했다. 그는 다우니아인의 왕 다우누스의 궁정에 도착했고, 다우누스 왕은 이 위대한 전사를 영광스럽게 맞이했다. 다우누스 왕은 디오메데스에게 땅 일부와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메사피아인과의 전쟁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디오메데스는 이 제안을 수락하고 군대를 이끌어 메사피아인을 격파했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인 도리아인들에게 할당될 땅을 차지했다. 디오메데스는 '모나디'와 '다르디' 두 나라와 '아피나', '트리카' 두 도시를 정복했다.[35]

디오메데스는 이후 다우누스 왕의 딸 에우이페와 결혼하여 디오메데스와 암피노무스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트로이 함락 후 (폭풍으로 인해) 리비아에 도착하여 리쿠스 왕에게 갇혔다고 한다. 리쿠스 왕은 그를 아레스에게 제물로 바치려 했으나, 왕의 딸 칼리로에가 디오메데스를 풀어주어 그를 구했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감사를 표하지 않고 항해를 떠났고, 칼리로에는 슬픔에 잠겨 교수형틀로 자살했다.[36]

그리스와 로마의 기록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마그나 그라이키아이탈리아 남부에 여러 그리스 식민지를 건설했다.[37] 그가 건설한 도시로는 아르기리파(또는 아르피), 아에쿠움 투티쿰(아리아노 이르피노), 베네벤툼(베네벤토), 브룬두시움(브린디시), 카누시움(카노사), 베나프룸(베나프로), 살라피아, 스피나, 가르가눔, 시푸스(산타 마리아 디 시폰토 부근),[38] 히스토니움(바스토), 아프로디시아 또는 베누시아(베노사) 등이 있다. 베누시아에는 여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졌고, 평화를 기원하는 제물이 바쳐졌다.[39]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디오메데스 왕국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묘사한다. 아이네이아스와 투르누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투르누스는 디오메데스에게 트로이아인과의 전쟁을 도와달라고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평생 트로이아인들과 충분히 싸웠다고 말하며, 투르누스에게 트로이아인들과 싸우는 대신 아이네이아스와 평화를 맺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목표는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40] 라티누스의 사절 베눌루스는 루툴리아인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디오메데스를 방문했을 때, 디오메데스가 새로운 도시 아르기리파의 기초를 놓고 있었다고 회상한다.[41] 디오메데스는 트로이에서의 행적에 대한 벌로 고향 아르고스에 도착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과 병사들을 쫓아다니는 새들이 과거 자신의 동료들이었으며, 바다 절벽을 포함하여 그들이 상륙하는 모든 곳에서 울부짖는다고 말했다.[41] 반면 오비디우스는 베눌루스가 디오메데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디오메데스가 장인인 이아피기아의 다우누스의 도움으로 아르기리파가 아닌 루체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42]

디오메데스는 신들과 영웅 숭배를 널리 전파했다. 아르고스 안팎에 아테나 신전을 건설했으며,[43] 그의 갑옷은 아풀리아의 루체리아에 있는 아테나 신전에 보관되었고, 금 목걸이는 페우케티아의 아르테미스 신전에 전시되었다. 트로이제네에서는 아폴론 에피바테리우스 신전을 세우고 피티아 경기를 제정했다.[44] 다른 전승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오랜 숙적 아이네이아스와 다시 만나 팔라디움을 트로이아인들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4. 3. 디오메데스 숭배

스트라보는 루체리아에 있는 다우니아인들의 아테나 신전에 디오메데스를 특별히 언급하는 정병(정성스럽게 바친 제물)이 있었다고 주장한다.[47] 디오메데스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아드리아 해안의 투리이와 메타폰툼에서도 영웅으로 숭배받았다. 그의 고향인 아르고스에서는 아테나 축제 기간 동안 그의 방패가 팔라디움과 함께 거리 행진을 하는 유물로 간주되었고, 그의 동상은 이나쿠스 강에서 씻겨졌다.[48]

아드리아 해의 팔라그루자 제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디오메데스 제도라는 이름의 섬이 두 개 있었다. 스트라보는 그중 하나는 무인도였다고 언급한다. 아이리아누스의 『동물지』의 한 구절은 이 섬과 그곳에 서식하는 신비로운 새들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스트라보는 디오메데스의 여정과 그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과 사람들과 관련된 역사를 포함하여 이 섬의 특징에 대해 논한다. 그는 디오메데스 자신이 아드리아 해 주변 지역을 지배했으며, 디오메데스 제도뿐만 아니라 헤네티족과 다우니족을 포함하여 현대에도 그를 숭배하는 다양한 부족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헤네티족은 야생 동물이 길들여진 특별한 숲에서 디오메데스에게 흰말을 제물로 바쳤다.[49]

기원전 8세기 초부터 영웅 숭배가 훨씬 일반화되었으며, 그 세기의 마지막 4분기에 지중해의 여러 그리스 도시에 널리 퍼졌다. 디오메데스의 숭배는 주로 키프로스, 메타폰툼, 그리고 아드리아 해안의 다른 도시들에 자리 잡고 있었다(디오메데스 영웅 숭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대부분 이 지역에서 나온다). 사원과 무덤에서 발견된 정병에 새겨진 비문을 볼 때 키프로스와 일부 그리스 본토 도시들에서도 이 숭배의 흔적이 있지만, 이탈리아 동해안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 숭배는 8세기 아카이아인들의 이동으로 지중해 동쪽까지 퍼져나갔다.[45] 아드리아 해에 있는 팔라그루자 섬에서 가장 독특한 영웅에 대한 정병이 발견되었다.[46]

이 숭배는 널리 퍼지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와 같은 숭배는 추종자들에게 주는 이점과 이들 인물의 유명한 신화적 전통으로 인해 그리스 세계에서 훨씬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4. 4. 죽음과 사후 세계

스트라보는 이탈리아에서 디오메데스의 영웅적인 삶에 대해 네 가지 다른 전승을 열거한다. 첫 번째는 그가 우리움에서 운하를 건설하던 중 아르고스로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고, 도시와 사업을 절반도 마치지 못한 채 돌아가 죽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전승은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우리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세 번째 전승은 그가 아드리아 해의 무인도(그의 이름을 따서 디오메데아라고 불림)에서 사라졌는데, 거기에는 이전에 그의 동료였던 물까치들이 살고 있으며, 이는 일종의 신격화를 암시한다.[47]

어떤 전설은 그가 죽자 알바트로스들이 모여 노래(그들의 평범한 울음소리)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그의 동료들이 나중에 새로 변했다고 한다. 알바트로스과의 학명인 Diomedeidae, 그리고 큰알바트로스속의 학명인 Diomedea는 디오메데스에서 유래한다.[50]

산니콜라 섬에는 헬레니즘 시대 무덤인 디오메데스의 무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비너스 여신이 디오메데스의 사람들이 너무 비통하게 우는 것을 보고 그들을 새(디오메데아)로 변신시켜 왕의 무덤을 지키게 했다고 한다.

호메로스 이후의 이야기들에 따르면, 디오메데스는 아테나로부터 불멸성을 부여받았는데, 아테나는 그의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피인다르(Pindar)는 네메아가(Nemean X)에서 이 영웅의 신격화를 언급하며, "금발의 회색 눈을 가진 여신이 디오메데스를 불멸의 신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불멸성을 얻기 위해, 네메아가에 대한 주석가(scholiast)는 디오메데스가 메넬라오스헬레네의 외동딸인 헤르미오네와 결혼하여, 불멸의 신으로서 디오스쿠리와 함께 살면서 메타폰툼투리이에서도 영예를 누렸다고 말한다.[51]

그는 이탈리아(Italy)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신적인 존재로 숭배되었으며, 아르기리파, 메타폰툼, 투리이 등지에 그의 조각상이 있었다. 아드리아 해에는 '티마보'라고 불리는 디오메데스에게 봉헌된 사원이 있었다.[52] 그리스(Greece)에서도 디오메데스 숭배의 흔적이 있다.

스트라보가 열거한 처음 두 전승은 나중에 영웅 숭배를 통해서가 아니면 신성함을 나타내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으며, 나머지 두 전승은 단순한 영웅(cult hero) 이상의 디오메데스의 불멸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프리아모 델라 퀘르차(15세기)의 삽화, 지옥 제26가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사악한 조언자들 사이에 있고,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율리시스와 디오메데스를 만나는 장면


디오메데스의 사후 세계에 대한 덜 알려진 이야기들도 있다. 아테네의 유명한 폭정자 살해자 중 한 명인 하르모디우스를 위한 술 노래에는 아킬레우스와 하르모디우스와 함께 디오메데스가 섬들의 낙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53]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 제8원에서 디오메데스를 본다. 거기서 "사기의 조언자들"은 불길 속에 영원히 갇혀 있다. 그의 죄악에는 팔라디움을 훔치도록 조언한 것과, 트로이 목마 계략도 포함된다. 같은 저주가 오디세우스에게도 가해진다.

5. 중세 전설에서의 디오메데스

디오메데스는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의 중세 전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레시다가 배신자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 진영으로 보내진 후, 그녀의 새로운 연인이 된다.[1]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에서 디오메데스는 크레시다를 두고 트로일로스와 자주 싸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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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Dares Phrygius https://www.theo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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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Dictys Cretensis https://topostext.or[...]
[10] 웹사이트 Hyginus, Fabulae https://topostex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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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적 Cyp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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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적 Iliad
[19] 서적 The Visual Poetics of Power: Warriors, Youths, and Tripods in Early Greece Lexington Books 2005
[20] 서적 Greek Epic Fragments
[21] 웹사이트 Dictys Cretensis https://topostext.or[...]
[22] 서적 Greek Epic Fragments
[23] 서적 Aen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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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서적 Ecclesiazusae, Republic, & Zenobius
[27] 서적 Quaest. Gra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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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서적 Greek Epic Fragments
[33] 웹사이트 Dictys Cretensis, Tzetzes ad Lycophron, & Servius ad Aeneid https://topostext.or[...]
[34] 웹사이트 Tzetzes ad Lycophron https://topostext.or[...]
[35] 서적 The Natural History
[36] 서적 Parall. Gr. et Rom.
[37] 논문 Diomede nel Lazio e le tradizioni leggendarie sulla fondazione di Lanuvio https://www.persee.f[...]
[38] 서적 Aeneid, H.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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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서적 Aeneid
[41] 서적 Aeneid
[42] 서적 Metamorphoses
[43] 서적 de F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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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서적 On Greek Religion Cornell University Press
[47] 서적 Geography 6.3.9 Loeb Classical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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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서적 Geography 5.1.9 Loeb Classical Press
[50] 서적 Latin Names Explained. A Guide to the Scientific Classifications of Reptiles, Birds & Mammals Facts on File
[51] 서적 Pindar: Nemean Odes Adolf M. Hakkert
[52] 서적
[53] 서적 Skolion 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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