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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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지오 마리아는 1963년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설립된 아프리카 토착 교회로, 1938~1940년 가톨릭 평신도 단체인 성모 레지오에서 기원한다. 이 교회는 시메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전통 신앙과 기독교 신앙을 융합한 독특한 교리와 의례를 특징으로 한다. 레지오 마리아는 삼위일체, 영적 은사, 치유, 종말론 등 다양한 신앙을 가지며,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전례와 성인 숭배를 따르지만, 그리스도의 화신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현재 케냐를 중심으로 탄자니아,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 3백만 명 이상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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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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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유형 | 신흥 종교 운동, 아프리카 기원 교회, 독립 가톨릭, 종교 혼합주의 |
창립 | 1961년 |
본부 | 성모 마리아 대성당 교회, Got Kwer; 또한 Got Okwon'g, 미고리, 케냐 |
회원수 | 약 350만 ~ 400만 명 |
언어 | 일반적으로 루오어, 영어, 스와힐리어, 라틴어 미사에서 사용 |
지도자 | |
Lodvikus | Baba Simeo Lodvikus Melkio Ondetto |
주요 인물 | |
조직 규모 | |
직원 수 | 700명 이상의 사제, 120명의 주교, 29명의 추기경, 교황 |
예산 | 연간 2100만 케냐 실링 |
2. 역사
레지오 마리아는 가톨릭교회 평신도 단체인 성모 레지오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케냐의 기독교 교파이다.[1] 1938년부터 분리 움직임이 시작되어 1963년 가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1] 이 과정에는 루오족의 지역 신화, 특히 신비로운 여성 '민 오몰로 카-니운자'에 대한 이야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당한 교리 교사였던 시메오 온데토와 신비주의 노파로 알려진 마마 마리아가 남부 냐안자 주의 가톨릭교회 신자들과 함께 교회를 설립했다.[1] 신자들은 마마 마리아를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과 연결 짓기도 한다.[1]
분리 당시 정부 추산 약 9만 명의 추종자가 있었으며[1], 이는 케냐 독립 초기에 루오족 사이에서 일어난 여러 교회 분열 중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가장 큰 규모의 단체였다.[2] 1966년까지 케냐에는 160개의 분리 교회가 존재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전 개신교 또는 가톨릭 신자였다.[2]
교세는 꾸준히 성장하여 1980년에는 약 24만 8천 명,[2] 2004년에는 3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로[3]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교회들 중 가장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교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루오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케냐 전역의 투르카나족, 칼렌진족, 캄바족, 루히야족 등 다양한 부족 공동체와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주변 국가로 확산되었다.[4] 1979년 공식 명칭에 "선교"를 추가하여 "아프리카 교회 선교 레지오 마리아(African Church Mission Legio Maria영어)"로 변경했다.[4]
레지오 마리아는 교회의 기원을 가톨릭교회가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의 진실을 은폐했다는 믿음, 마마 마리아가 여러 사람에게 아들(시메오 온데토)의 도래를 알린 환시, 온데토의 초자연적 능력과 기적 등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2. 1. 기원과 형성
레지오 마리아는 1938년에서 1940년 사이 가톨릭교회 평신도 단체인 성모 레지오에서 처음 분리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점진적인 발전을 거쳐 1963년에 가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1] 이 시기 루오 지역을 다녔다고 전해지는 신비로운 여성 '민 오몰로 카-니운자'에 대한 지역 루오족의 신화는 레지오 마리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자들은 이 여성이 호마 베이 카운티의 과시 지역에 있는 냠곤도 콤바레나 카라추오뇨의 심비 냐이마 같은 신화적 이야기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레지오 마리아 성직자이자 연구원인 아부토 주교는 "모든 종교에는 신화적 요소가 있으며 레지오 마리아 운동의 발전은 그들의 신념과 함께 지역 신화의 결정화에 크게 의존했다"고 설명한다.1963년, 남부 냐안자 주의 일부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키시 교구를 떠나 시메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라는 신비주의 노파의 지도 아래 레지오 마리아 교회(Legio Maria Church영어) 또는 마리아 군단 교회(Legion of Mary Church영어)를 설립했다.[1] 레지오 마리아 신자들은 마마 마리아를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과 연관 짓기도 한다.[1] 당시 가톨릭 교리 교사였던 시메오 온데토는 1960년대에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1]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될 당시 정부 추산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아 추종자는 약 9만 명이었으며, 1968년까지 동아프리카 연합 교회(East African United Churches영어)의 회원이 되었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의 분리는 케냐 독립 초기에 루오족 사이에서 일어난 유일한 교회 분열은 아니었다. 1963년 분열 이전에 가톨릭 선교사들은 루오족 사이에서 61년간 활동해왔다.[2] 1966년까지 "케냐 정부에 등록된 31개의 별개의 루오족 분리 교회"가 있었으며,[2] 케냐 전역에는 "1966년까지 160개의 별개의 단체가 있었으며, 총 60만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전에 개신교 또는 가톨릭 교회 신자였다"고 한다. 이 중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가톨릭 교회에서 분열된 가장 큰 단체였다.[2] 1980년까지 이 교회의 신자는 248,000명에 달했으며,[2] 2004년 기준으로 레지오 마리아 신자 수는 약 3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3]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교회들 중 가장 끈기 있고 성공적인 교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루오족 사이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현재는 케냐 전역에서 발견되며 투르카나족, 칼렌진족, 캄바족, 루히야족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부족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또한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에티오피아에도 많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1979년, 교회 공식 명칭에 "선교"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아프리카 교회 선교 레지오 마리아"가 되었다.[4]
레지오 마리아의 지도자들과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 운동의 기원은 최소한 네 가지 별개의 사건이 융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을 은폐했다는 믿음, 마마 마리아가 여러 사람들에게 그녀의 아들(시메오 온데토)의 오심을 알리는 환시를 보여준 것, 시메오 온데토가 영적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초자연적인 속성, 수나 미고리에서 존 바루의 집에서 성령이 임하시고 시메오 온데토가 하느님의 화신이라고 선포한 사건, 그리고 온데토, 마리아, 그리고 수많은 레지오 예언자들의 사역에 수반된 수많은 기적과 불가사의한 일들이 포함된다.
2. 1. 1. 시메오 온데토
시메오 온데토(Simeo Ondeto영어), 또는 로드비쿠스 시메오 멜키오 온데토(Lodovicus Simeo Melkio Ondeto영어)는 마마 마리아(Mama Maria영어)라는 신비주의 여성과 함께 1963년 레지오 마리아 교회를 공동으로 창립한 인물이다.[1] 그는 1926년경 케냐의 루오족 부모인 마가렛 아두워(Margaret Aduwo영어)와 오빔보 미줌바(Obimbo Mijumba영어)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냔자-리프트 밸리 국경 근처 카노(Kano영어) 지역의 앙고로(Angoro영어) 마을에서 자랐다. 부모는 그에게 온데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교리 교육을 받은 후 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형제이자 2011년 기준 레지오 마리아 추기경 대주교인 넬슨 오위노 오빔보(Nelson Owino Obimbo영어)에 따르면, 시메오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했으며 약 6가지의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청년 시절 온데토는 아와시(Awasi영어)의 집을 떠나 서부 케냐의 미와니(Miwani영어) 설탕 회사에서 잠시 일한 뒤, 탄자니아 마라(Mara영어) 지역으로 이주하여 친척들과 함께 지냈다. 1955년경 아와시로 돌아온 그는 선교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결혼시키려 했으나, 온데토는 이를 거절하고 고독과 명상의 삶을 선택했다. 이후 그는 사게지(Sagegi영어)로 이사하여 레지오 마리아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가톨릭 교리 교사로 활동하며 다른 교리 교사와 함께 살았다.
1958년, 가톨릭 교리 교사로 봉사하던 중, 온데토는 베트루스 피탈리스 오게카(Petrus Pitalis Ogeka영어)라는 다른 교리 교사의 집에서 3일 동안 죽었다가 특별한 사명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했다. 부활 후 그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천국을 방문하여 아버지 하느님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 상의하고 사명을 시작할 허락을 받았다고 설교했다. 그는 천국 방문, 성인 및 천사와의 만남, 하느님과의 대화 등을 묘사했다. 또한, 그는 일부다처주의자의 세례와 교리 교육을 받지 않은 옛 가톨릭 신자들의 세례를 허용했으며[1], 레지오 마리아라는 교회를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원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교사였던 온데토는 1960년대에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1] 레지오 마리아 운동의 기원은 여러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여겨지는데, 여기에는 시메오 온데토가 영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초자연적인 능력, 수나 미고리(Suna Migori영어)에서 존 바루(John Baru영어)의 집에서 성령이 임하고 온데토가 하느님의 화신으로 선포된 사건, 그리고 온데토와 마리아, 여러 예언자들의 사역에 따랐다고 전해지는 수많은 기적과 불가사의한 일들이 포함된다. 그는 1963년, 불만을 품은 남부 냐안자 주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키시 교구를 떠나 마마 마리아와 함께 레지오 마리아 교회를 설립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1]
2. 1. 2. 마마 마리아
마마 마리아는 1963년 로드비쿠스 시메오 멜키오 온데토와 함께 레지오 마리아 교회를 공동으로 설립한 인물로, 신비로운 노파로 묘사된다.[1] 레지오 마리아 신자들은 그녀를 파티마의 비밀과 연관시키기도 한다.[1]레지오 마리아의 형성에 있어 마마 마리아와 관련된 신화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8년에서 1940년 사이 루오 지역을 다녔다고 전해지는 신비로운 여성 '민 오몰로 카-니운자'에 대한 루오족의 신화가 그것이다. 신자들은 이 여성이 호마 베이 카운티의 과시 지역에 있는 냠곤도 콤바레나 카라추오뇨의 심비 냐이마와 같은 신화적 이야기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아부토 주교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아 운동의 발전은 이러한 지역 신화와 그들의 신념이 결합되는 과정에 크게 의존했다.
레지오 마리아의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이미 1920년대 후반부터 루오족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여행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1935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사우스 냐안자 주의 아웬도 시장에서 알레고 우디다 출신의 재단사 오몰로가 그녀에게 옷을 선물했고, 그녀는 오몰로에게 루오족 사이에서 영원한 이름을 약속하며 자신을 '오몰로의 어머니'라고 칭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940년대에는 냔다고 가톨릭교회 교구를 방문하여 여러 사제에게 온데토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제들은 성모 마리아가 흑인 아프리카인으로 나타날 리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4]
마마 마리아는 여러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환시를 통해 나타나 레지오 마리아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아프리카에 온 자신의 아들, 즉 시메오 온데토를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1] 레지오 마리아는 마리아가 사람들에게 아들의 도래를 알린 환시, 온데토의 초자연적인 능력, 수나 미고리에서 존 바루의 집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 그리고 온데토와 마리아 및 여러 예언자들이 행한 기적 등을 운동의 중요한 기원으로 여긴다.
교회 내부에서는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예수, 온데토로 화신)이 1900년대 초 루오족으로 육화했으며, 마리아가 먼저 세상에 나타나 치유와 기적을 행했다고 믿는다. 레지오 마리아는 90세의 마리아와 그녀의 영적 아들 온데토가 사우스 냐안자 주의 수나에서 재회하고 성령이 강림하면서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고 설명한다.[4]
슈워츠에 따르면, "검은 마리아"는 1966년 12월 23일에 "하늘로 돌아갔다".[4] 그녀를 직접 만났던 사람들은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의 의미, 즉 성모 마리아가 아프리카 선교를 통해 세상을 위한 새로운 해방 종교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그녀로부터 직접 경험했다고 주장한다.[4]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마리아는 고령(거의 90세)으로 인해 활동이 어려웠으며,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예언자 가우덴시아 아오코를 마마 마리아로 혼동하기도 했다.
2. 1. 3. 파티마 제3의 비밀
레지오 마리아의 기원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을 은폐했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양치기 아이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여러 차례 나타난 사건과 관련된다. 이 발현에서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세 가지 비밀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가톨릭교회는 1940년대에 첫 두 가지 비밀을 공개했지만, 생존한 양치기는 1944년이 되어서야 세 번째 비밀을 기록했다. 그녀는 봉투를 봉인하고 교회에 1960년까지 비밀을 열지 말라고 지시했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로마의 교회 관계자들이 마리아가 아프리카를 위한 검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밝혔기 때문에 진실된 비밀 공개를 거부했다고 믿는다.[4] 슈워츠는 이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로마에 분노한 마리아는 '그 사람들에게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더 이상 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인간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을 것이다. 하늘에서는 무색이지만, 둘 다 검은 아프리카인이 되어 그녀의 메시지를 더 잘 받아들일 청중에게 직접 전달할 것이다. 레지오는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이 아프리카에서 하느님의 아들의 사명, 레지오의 도래, 그리고 새로운 종교 시대의 시작에 관한 것이라고 선언했다."[4]
2000년, 가톨릭교회는 당시 추기경이었던 요제프 라칭거(훗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작성한 비밀의 의미에 대한 해설과 함께 파티마의 공식적인 세 번째 비밀을 공개했다.[5]
2. 2. 발전과 분열
1958년, 가톨릭 교리 교사였던 시메오 온데토는 동료 교리 교사인 베트루스 피탈리스 오게카의 집에서 3일 동안 죽었다가 사명을 가지고 다시 살아났다고 전해진다. 이 경험 이후 온데토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하며, 아버지 하느님과 자신의 사명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시작할 허락을 받았다고 설교했다. 그는 천국 방문, 성인, 천사, 하느님과의 대화 등을 묘사했다. 시메오 온데토는 일부다처주의자의 세례와 교리 교육을 받지 않은 옛 가톨릭 개종자들의 세례를 허용했으며,[1] 레지오 마리아라는 교회를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1963년, 남부 냐안자 주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키시 교구를 떠나 로드비쿠스 시메오 멜키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라는 이름의 신비주의자로 알려진 연장자 여성의 지도 아래 레지오 마리아 교회(Legio Maria Church영어) 또는 마리아 군단 교회(Legion of Mary Church영어)를 설립했다. 마마 마리아는 레지오 마리아 신자들이 파티마의 성모 발현과 연관 짓는 인물이다.[1] 그녀는 여러 가톨릭 신자들에게 환시를 통해 새로운 운동에 합류하도록 권유했으며, 아프리카에 올 자신의 아들을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영적 아들로 여겨지는 시메오 온데토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교사였으나, 1960년대에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되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될 당시 정부 추산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아 추종자는 약 9만 명이었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케냐 독립 초기에 루오족 사이에서 일어난 유일한 교회 분열은 아니었다. 1963년 분열 이전에 가톨릭 선교사들은 루오족 사이에서 61년 동안 활동해왔다.[2] 1966년까지 케냐 정부에 등록된 루오족 분리 교회는 31개에 달했으며,[2] 케냐 전역에는 총 160개의 분리 단체가 있었고, 이들의 신자 수는 총 6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 대부분은 이전에는 개신교 또는 가톨릭 신자였으며,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가톨릭 교회에서 분열된 가장 큰 단체였다.[2] 1968년까지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동아프리카 연합 교회(East African United Churches영어)의 회원이 되었다.
1980년까지 레지오 마리아 교회의 신자는 248,000명으로 증가했으며,[2] 2004년 기준으로 신자 수는 약 3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3] 이는 레지오 마리아 교회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교회들 중 가장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교회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루오족 사이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현재는 케냐 전역뿐만 아니라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에티오피아 등 인접 국가에도 많은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특히 투르카나족, 칼렌진족, 캄바족, 루히야족 등 다양한 민족 집단에게 확산되었다. 1979년에는 교회 공식 명칭에 "선교"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아프리카 교회 선교 레지오 마리아(African Church Mission Legio Maria영어)"로 변경했다.[4]
3. 교리와 신앙
레지오 마리아의 신앙 체계는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아프리카 토착 신앙의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이들은 성모 마리아가 루오족 여성으로 특별히 현현했으며, 예수 역시 루오족으로 화신했다고 믿는다.[4] 성령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신자들은 영의 인도를 통해 계시를 받고 삶의 지침을 얻는다고 여긴다.[4]
아프리카 독립 교회(AIC)의 일환으로, 레지오 마리아는 일부다처제와 같은 일부 아프리카 문화적 관습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하지만,[8] 동시에 음주, 흡연 금지 등 엄격한 도덕률을 강조한다.[8] 영적인 은사, 특히 치유와 예언, 그리고 꿈을 통해 받는 계시(예를 들어, 각자 입어야 할 예복의 색깔을 정하는 것) 등은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4]
3. 1. 성모 마리아와 여성 사제직
레지오 마리아의 초기 신봉자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1920년대 후반 루오족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는 처음에는 특별한 모습의 여행하는 여성으로 나타났다. 1935년경으로 추정되는 시기, 이 여성은 사우스 냔자 주의 아웬도 시장을 걷고 있었는데, 알레고 우디다 출신의 뇬자 아들인 오몰로라는 마음씨 좋은 재단사가 그녀에게 옷을 선물했다. 이 여성은 오몰로에게 루오족 사이에서 영원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자신을 '오몰로의 어머니'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는 이 여성이 냔다고 가톨릭 교구를 방문하여, 시메오 온데토의 사명에 대해 다섯 명 이상의 사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냔다고 선교회의 사제들은 성모 마리아가 흑인 아프리카인으로 나타날 리 없다며 이러한 현현을 인정하지 않았다.[4]레지오 마리아의 전통에 따르면,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는 1900년대 초에 루오족으로 화신했으며, 마리아는 예수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세상에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마리아는 루오족의 땅을 돌아다니며 병을 고치고 다른 기적들을 행했다고 한다. 교회는 "90세의 마리아와 그녀의 성인 영적 아들 시메오 온데토가 사우스 냔자 주의 수나에서 재회한 후 성령이 강림하면서(세상이 빛을 향해 열렸다)"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고 본다.[4] 낸시 슈워츠는 "검은 마리아"가 1966년 12월 23일에 "하늘로 돌아갔다"고 기록했으며, 그녀를 만났던 사람들은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의 의미에 대한 마리아의 직접적인 개인적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이 비밀은 "성모 마리아가 아프리카 선교를 통해 세상을 위한 새로운 해방 종교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4]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거의 90세에 이른 신비로운 마리아는 많은 곳을 다닐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예언자 가우덴시아 아오코가 아들(온데토)의 길을 예비한 '마마 마리아'로 종종 오인되기도 했다.
3. 2. 영적 은사와 치유
아프리카 독립 교회(AIC)로서 레지오 마리아는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신앙의 일부 측면을 받아들였는데, 여기에는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사람도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시메오 온데토의 초기 계시가 포함된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는 일부 문화적 관습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는 엄격한 신성함에 대한 인식과 균형을 이룬다. 디르벤에 따르면, "음주, 흡연, 춤, 거룩한 장소에서 신발 착용 금지 등 엄격하고 율법적인 금기 사항들이 엄격한 도덕률의 본질로 강조"된다.[8]레지오 마리아는 본질적으로 영(Spirit)에 크게 의존하는 종교 운동이다. 모든 신자들은 영을 레지오의 인도자로 존경한다. 시메오 온데토와 '검은 마리아'가 살아있을 때조차, 그들은 케냐의 한 장소에 머물면서도 영이 전달하는 방언과 성령에 사로잡힌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다른 신자들을 가르치고 방문할 수 있었다. 즉, 영이 전달하는 가르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이다. 방언을 통해 성인과의 만남을 거짓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위반 행위로 간주되며, 이러한 행위는 사제의 공식적인 질책을 받거나 지역 공동체로부터 chwat|츠와트luo라고 불리는 매질을 당할 수도 있다.[4]
영은 또한 영적 훈련 실천과 의복과 관련하여 개인에게 지시를 내린다. 많은 아프리카 독립 교회(AIC)들이 예배 시 신도들에게 흰색 예복만을 입도록 요구하는 반면,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신도들이 꿈속에서 천사들의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입어야 할 예복의 색깔에 대한 지시를 받도록 권장한다. 슈워츠는 이러한 꿈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의 다양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은 레지오 신자들이 노란색, 다양한 파란색, 보라색, 녹색, 빨간색, 갈색 등 다양한 영적 은사와 수호 성인과 관련된 다른 색상의 예복을 얻도록 이끌 수 있다. 검은색은 서품받은 남성 사제(padri|파드리luo, 복수형: pate|파테luo)와 교회 어머니(madha|마다luo, padri madhako|파드리 마다코luo, 복수형: mathe|마테luo, pate mamon|파테 마몬luo)를 위한 색이다. 레지오 사제와 교회 어머니는 가족 묘지에서 열리는 위령 미사와 묘지 예배에서 검은색 예복을 입는다. 더 기쁜 행사에서는 교회 어머니와 사제가 권력과 서품된 지위의 상징으로 검은색 묵주를 착용하거나 지닌다. 몇몇 서품받지 않은 남녀 신자들은 꿈에서 검은색 묵주를 구해 집에서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집의 제단에 검은색 묵주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꿈에서 받은 검은색 묵주는 이러한 레지오 신자들에게 조용한 자부심의 원천이었다.[4]
레지오 마리아 신자들은 영을 통해 삶의 세속적인 결정에 대한 지시를 받기도 한다.


4. 조직과 의례
레지오 마리아는 창시자 시메오 온데토의 영적 권위를 중심으로 교황이 실질적인 행정을 이끄는 교회 조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성직자 계층 외에도 서품받은 기혼 여성이 참여하는 독특한 여성 사제직(수녀) 계층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토착 교회(AIC)로서 아프리카 전통 신앙의 일부 요소를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음주나 특정 장소에서의 신발 착용 금지 등 엄격한 도덕률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8] 또한, 신자들은 키트-미카이와 같은 특정 장소를 성지로 여기고 순례하기도 한다.
4. 1. 교회 조직
1963년, 남부 냐안자 주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 키시 교구를 떠나 로드비쿠스 시메오 멜키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라는 신비주의 여성의 지도 아래 레지오 마리아 교회를 설립했다.[1] 온데토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교사였으나 1960년대에 파문되었다.교회의 공식적인 최고 지도자는 시메오 온데토로, 그의 전체 칭호는 '레지오 마리아의 영원한 영적 지도자이자 중재자인 바바 시메오 로드비쿠스 멜키오'이다. 교회의 실질적인 행정 업무는 교황이 맡는다. 역대 교황은 다음과 같다.
재임 기간 | 비고 |
---|
1963–1998 | 초대 |
1998–2004 | 제2대 |
2004–현재 | 제3대 |
2009년경부터 레지오 마리아 내부에서는 시메오 온데토가 정한 승계 질서와 다르게 로마누스 알퐁스 온곰베 추기경을 서임하려는 움직임이 생겨 분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라파엘 티투스 오티에노 교황 측과 온곰베 추기경 측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여러 차례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일부 신자들은 온데토가 이러한 분열을 예언했으며, 제3대 교황 아래에서 통일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믿는다.
교황 아래에는 500명 이상의 부제, 350명의 사제, 60명의 주교, 21명의 대주교, 17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성직자 계층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오티에노 교황 측과 온곰베 추기경 측으로 나뉘어 충성하고 있다.[1] 온곰베 측의 주요 인물로는 온가보 알로(추기경실장), 오비노 오빔보(추기경 원로, 사망), 로마누스 오동고(롱고 대주교), 故 수사나 니아르 오우마(온데토의 요리사), 멜키오 주교 등이 있다. 오티에노 측의 주요 인물로는 조셉 아티에노 추기경(추기경 단장), 모리스 아켈로(추기경 부제), 피터 오냐고 아부토 주교, 엘리아스 코메냐, 도리나 수녀, 헬레나 니아르 로사리 등이 있다.
남성 사제직과 병행하여 수녀(어머니)가 이끄는 여성 사제직 계층도 존재한다. 레지오 마리아의 수녀들은 서품받은 기혼 여성이다. 여성 계급은 자매에서 시작하여 어머니(선교부 책임자), 상위 어머니(교구 책임자), 대주교 어머니(대교구 책임자), 원장 어머니(레지오 어머니 전체 책임자) 순으로 올라간다.
성직자 계층 외에도 신자들이 선출한 교회 교사와 교회 행정가가 있으며, 교회가 영적인 기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예언자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4. 2. 성지와 순례
일부 신자들은 기도하고 금식하기 위해 암석 지형인 키트-미카이와 같은 곳으로 성지 순례를 하기도 한다.4. 3. 예배와 의례
아프리카 토착 교회(AIC)로서 레지오 마리아는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 및 신앙 일부를 교회에 통합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창시자 시메오 온데토의 초기 계시에 따라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사람도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처럼 일부 문화적 관습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엄격한 도덕률을 통해 균형을 맞추고 있다. 디르벤에 따르면, "음주, 흡연, 춤, 그리고 성스러운 장소에서 신발을 신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고 율법적인 금기를 적용하며, 이를 교회의 중요한 도덕률로 강조한다.[8]5.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레지오 마리아는 케냐의 루오족을 중심으로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아프리카 토착 종교 운동이다.[1][2] 1963년 키시 교구에서 로드비쿠스 시메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분리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당시 케냐 독립 초기에 루오족 사회에서 발생한 여러 교회 분열 중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가장 큰 규모의 사례였다.[1][2]
비록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되었지만, 레지오 마리아는 전례, 성인 공경 등 여러 측면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사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4] 이러한 분리 과정과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가톨릭 교회와의 신학적, 전례적 유사성 및 차이점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하위 문단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5. 1. 분리와 갈등
1963년, 남부 냐안자 주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키시 교구에서 분리하여 '레지오 마리아 교회'(Legio Maria Church) 또는 '마리아 군단 교회'(Legion of Mary Church)를 설립했다.[1] 이들은 로드비쿠스 시메오 멜키오 온데토와 '마마 마리아'라는 이름의 신비주의적 성향의 여성을 중심으로 모였다. 마마 마리아는 레지오 마리아 신자들이 파티마의 비밀과 연관 짓는 인물로, 여러 가톨릭 신자들에게 환시를 통해 새로운 운동에 합류하도록 권유하고 아프리카에 올 자신의 아들을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1] 그녀의 영적 아들로 여겨지는 시메오 온데토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교사였으나, 1960년대에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당했다.[1] 1980년까지 이 교회의 신자는 248,000명에 달했다.[2]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될 당시 정부 추산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아 추종자는 약 9만 명이었다. 1968년까지는 동아프리카 연합 교회(East African United Churches)의 회원이 되었다.레지오 마리아 교회의 분리는 케냐 독립 초기에 루오족 사이에서 일어난 유일한 교회 분열은 아니었다. 1963년 분열 이전에 가톨릭 선교사들은 루오족 사이에서 이미 61년간 활동해왔다.[2] 1966년까지 케냐 정부에 등록된 루오족 분리 교회만 해도 31개에 달했다.[2] 케냐 전역으로 보면, 1966년까지 총 160개의 분리된 종교 단체가 있었으며, 이들의 신자 수는 총 60만 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이전에 개신교 또는 가톨릭 교회 신자였다.[2] 이 중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된 가장 큰 규모의 단체였다.[2] 2004년 기준으로 레지오 마리아 신자 수는 약 3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었으며,[3] 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교회들 가운데 가장 끈기 있고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루오족 사이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현재는 케냐 전역에서 신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투르카나족, 칼렌진족, 캄바족, 루히야족 등 다양한 부족뿐만 아니라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콩고 민주 공화국, 에티오피아에도 많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4] 1979년에는 교회 공식 명칭에 '선교'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아프리카 교회 선교 레지오 마리아'(African Church Mission Legio Maria)로 변경했다.[4]
5. 2. 유사성과 연속성
레지오 마리아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인정한다. 그러나 정통 신학과는 달리,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 맥락에서 화신했다고 보며, 그리스도가 영원히 인간의 몸과 영혼을 취한다는 정통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화신들 중 어느 것도 배타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단지 다른 맥락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본다. 따라서 레지오 교회에게 구원은 그들의 특별한 메시아 시메오 온데토를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를 통해 발견된다.레지오 마리아는 또한 악과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활동적인 영적 영역을 인정한다. 영적 치유를 위해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는 분은 하나님이며, 때로는 성인들을 통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레지오는 특히 영적 치유와 관련하여 가톨릭 성인 시에나의 카타리나와 루르드의 베르나데트를 인정한다. 성 삼손과 율리안, 그리고 대천사 미카엘은 "퇴마와 마법과의 싸움을 위한 은사를 가진 레지오들을 인도"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긴다.[4]
레지오 마리아의 많은 전례는 가톨릭교회 내의 로마 전례 관습에서 크게 파생되었다. 여기에는 트리엔트 미사의 변형을 거행하는 레지오 마리아 공동체가 포함된다. 또한, 레지오 마리아 교회의 특수성을 강화하는 독자적인 레지오 찬송가가 추가되었다.[4]
가톨릭교회와의 또 다른 연속성의 징표는 레지오 마리아가 백인 가톨릭 사제 필립 체파 신부를 그들의 성인으로 포함한다는 점이다. 1930년대 아숨비 로마 가톨릭 선교 기지에서 봉사한 체파 신부는 "매우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치유, 퇴마, '마법'과 관련된 기구들을 불태우는" 활동을 했다. 체파 신부는 1938년 루오족에게 가톨릭 레지오 마리아를 소개했다.[4]
참조
[1]
웹사이트
The 50 Norms of Legio Maria: How Should Legio Maria Faithful Live Their Lives?
http://legiopedia.co[...]
2015-01-22
[2]
서적
Rise Up and Walk!: Conciliarism and the African Indigenous Churches, 1815–1987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3]
뉴스
Legio Pope Blasts Leaders
The Standard (Kenya)
2004-10-25
[4]
논문
Dreaming in Color: Anti-essentialism in Legio Maria Dream Narratives
2005
[5]
간행물
Vatican issues text of third secret of Fatima.
2000-07-19
[6]
서적
Exploring Afro-Christology
P. Lang
1992
[7]
학위논문
World Without End: The Meanings and Movements in the History, Narratives and 'Tongue-Speech' of Legio Maria of African Church Mission among Luo of Kenya.
Princeton University
1989
[8]
간행물
A Protest and a Challenge: the Maria Legio Breakaway Church in West Kenya.
197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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