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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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이탈리아의 배우로, 1939년 영화계에 데뷔하여 약 17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 페데리코 펠리니 등 거장 감독들의 작품에 다수 출연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달콤한 인생》(1960), 《8과 1/2》(1963), 《이탈리아식 이혼》(1961) 등이 있으며,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 지명되었고, 1990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6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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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1924년 라치오 프로시노네 현의 폰타나 리리에서 태어나 토리노와 로마에서 성장했다.[7] 아버지는 목공소를 운영했으며, 조각가 움베르토 마스트로이안니의 조카였다.[7]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으나 탈출하여 베네치아에 숨어 지냈다.[7]
1939년 영화 마리오네트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고,[1] 1945년 종전 후에는 로마에서 영화 제작 스태프로 일하며 로마 대학교 연극 센터에서 배우 수업을 받았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1947년 『레 미제라블』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51년 고발에서 처음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았다.[2]
1959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로마 상류층의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가십 기자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4] 이후 펠리니의 8과 1/2(1963), 여인의 도시(1980), 치네치타 50주년 기념작 인터뷰(1987) 등에 출연했다.
소피아 로렌과는 가슴으로 승부(1955),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코미디 어제, 오늘, 내일(1963),[29] 해바라기(1970),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프레타 포르테(1994) 등 많은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며 명콤비로 불렸다.

'달콤한 인생'의 신문 기자 역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플레이보이"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잘생긴 외모와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사랑받는 성격파 배우로 평가받았다. 이탈리아식 이혼(1963)으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특별한 날(1978)과 검은 눈(1988)으로도 후보에 올랐다. 질투(1970)와 검은 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다.
1948년 이탈리아 여배우 플로라 카라벨라와 결혼하여[11] 딸 바르바라(1951–2018)를 낳았고,[12] 1964년에는 별거했다.[11][13] 카트린 드뇌브와는 4년간 동거하며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를 낳았다. 그 외에도 아니타 에크베르그, 페이 더너웨이 등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11] 1976년부터는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안나 마리아 타토와 관계를 맺었고,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11]
70대까지 이탈리아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프레타 포르테 등 미국 영화와 일본 화장품 회사 광고에도 출연했다.
1996년 12월 19일 췌장암으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0] 그의 두 딸과 드뇌브, 그리고 타토가 그의 곁을 지켰다.[11]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로 상징적으로 작동이 중단되고 검은 천으로 덮였다.[21]
2. 1. 초기 생애
마스트로이안니는 라치오 프로시노네 현의 아펜니노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인 폰타나 리리에서 태어나 토리노와 로마에서 자랐다.[7] 그는 이다 이롤레와 목공소를 운영하던[7] 오토네 마스트로이안니의 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근처의 아르피노 출신이었다.[7] 마스트로이안니는 조각가 움베르토 마스트로이안니의 조카였다.[7]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이탈리아가 분열된 후, 그는 느슨하게 경비가 이루어지던 나치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포로로 수용되었지만, 탈출하여 베네치아에 숨어 지냈다.[7]
2. 2. 배우 경력
마스트로얀니는 1939년 14세 때 마리오네트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1] 이후 단역으로 몇몇 영화에 출연하다 1951년 고발에서 처음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았다.[2] 10년 만에 국제적인 스타가 된 그는 1958년 마돈나 거리의 악당들에 출연했고,[3]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는 로마 상류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환멸에 빠진 타블로이드 칼럼니스트를 연기했다.[4]
소피아 로렌과 함께 출연한 주요 영화로는 사랑의 시절(1954), 그녀에겐 너무나 나쁜 일(1954), 여자가 되기에 행운(1956), 어제, 오늘, 내일(1963), 이탈리아식 결혼(1964), 해바라기(1970), 신부의 아내(1971), 특별한 날(1977),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프레타 포르테(1994) 등이 있다.
그 외 출연작으로는 잔 모로와 함께 출연한 밤(1961), 루키노 비스콘티의 하얀 밤(1957), 피에트로 제르미의 이탈리아식 이혼(1961), 자크 페랭과 함께 출연한 가족 일기(1962),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 출연한 아주 사적인 관계(1962), 마리오 모니첼리의 카사노바 70(1965), 리타 터싱햄과 함께 출연한 다이아몬드는 아침 식사로(1968), 모니카 비티와 함께 출연한 피자 트라이앵글(1970), 리처드 버튼과 함께 출연한 로마의 대학살(1973), 재클린 비셋과 함께 출연한 일요일의 여자(1975), 나스타샤 킨스키와 함께 출연한 그대로 있어줘(1978), 펠리니의 여인의 도시(1980)와 진저와 프레드(1986), 마르코 벨로키오의 헨리 4세(1984), 잭 레먼과 함께 출연한 마카로니(1985), 니키타 미할코프의 어두운 눈(1987),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모두가 괜찮아요(1990), 셜리 맥클레인과 함께 출연한 중고 인간(1992), 아녜스 바르다의 백과 하루 밤(1995) 등이 있다.
이탈리아식 이혼, 특별한 날, 어두운 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 지명되었다.[8] 딘 스톡웰, 잭 레먼과 함께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9] 1970년 피자 트라이앵글, 1987년 어두운 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10]
1996년 라울 루이스 (감독)의 영화 세 번의 삶과 단 하나의 죽음에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와 함께 출연하여 포트 로더데일 국제 영화제에서 실버 웨이브 상을 받았다.[6] 그의 유작은 사후 개봉된 세상의 시작으로의 여행(1997)이다.[7]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한 후, 독일군 포로 수용소에 갇혔지만 탈출하여 1945년까지 베네치아에 숨어 지냈다.
1945년 종전 후 로마에서 영화 제작 스태프로 일하며 로마 대학교 연극 센터에서 배우 수업을 받았다. 이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1947년 『레 미제라블』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59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로마 상류층의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가십 기자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펠리니의 8과 1/2(1963), 여인의 도시(1980), 치네치타 50주년 기념작 인터뷰(1987) 등에 출연했다.
소피아 로렌과는 가슴으로 승부(1955),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코미디 어제, 오늘, 내일(1963),[29] 해바라기(1970),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프레타 포르테(1994) 등 많은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며 명콤비로 불렸다.
'달콤한 인생'의 신문 기자 역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플레이보이"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잘생긴 외모와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사랑받는 성격파 배우로 평가받았다. 이탈리아식 이혼(1963)으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특별한 날(1978)과 검은 눈(1988)으로도 후보에 올랐다. 질투(1970)와 검은 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다.
70대까지 이탈리아 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프레타 포르테 등 미국 영화와 일본 화장품 회사 광고에도 출연했다.
2. 3. 개인사
마스트로이안니는 라치오프로시노네 현의 아펜니노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인 폰타나 리리에서 태어나 토리노와 로마에서 자랐다.[7] 그는 조각가 움베르토 마스트로이안니의 조카였다.[11]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이탈리아가 분열된 후, 그는 나치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포로로 수용되었지만, 탈출하여 베네치아에 숨어 지냈다.[12]젊은 시절부터 아니타 에크베르그, 소피아 로렌, 페이 더너웨이, 카트린 드뇌브 등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1948년 이탈리아 여배우 플로라 카라벨라와 평생 단 한 번 결혼했다. 1950년 8월 12일 카라벨라와 결혼하여[11] 딸 바르바라(1951–2018)를 낳았고,[12] 1964년에는 젊은 여성들과의 관계로 인해 공식적으로 별거했다.[11][13] 별거 후 처음으로 진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영화 ''연인들의 장소''(1968)에서 함께 출연한 페이 더너웨이였다. 더너웨이는 결혼하여 아이를 갖기를 원했지만, 가톨릭교도인 마스트로이안니는 카라벨라와 이혼하는 것을 거부했다.[11] 1970년, 2년 넘게 기다린 끝에 더너웨이는 그를 떠났다.[11]
더너웨이와 헤어진 후, 거의 20살 연하인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관계를 시작했다.[17] 1970년대 4년 동안 함께 살았고 딸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 (1972년 5월 28일 출생)를 낳았다. 드뇌브와 헤어진 후, 별거 중인 아내 카라벨라는 부모의 바쁜 경력으로 인해 자주 떨어져 지내는 키아라를 입양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드뇌브는 단호히 거절했다.[18]
다른 연인으로는 배우 아누크 에메, 캐롤 몰로리,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로렌 허튼,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있었다고 전해진다.[11] 1976년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안나 마리아 타토와 관계를 맺었고, 1996년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11] 마스트로이안니는 후년 언론 인터뷰에서 "정말로 마음 속 깊이 사랑했던 여자는 에크베르그와 드뇌브 두 사람 뿐이었다"고 말했다.
아내 플로라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으며, 오랜 연인이었던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와의 사이에서도 딸 하나(배우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를 두었다. 《프레타 포르테》(1994년) 등 여러 작품에서 키아라와 함께 출연했으며, 드뇌브와 키아라는 말년의 마스트로얀니를 간호했고, 임종에도 함께 했다.
2. 4. 사망
마스트로이안니는 1996년 12월 19일 췌장암으로 72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사망했다.[20] 그의 두 딸과 드뇌브, 그리고 타토가 그의 곁을 지켰다.[11]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그의 역할과 연관된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로 상징적으로 작동이 중단되고 검은 천으로 덮였다.[21] 1996년 12월 20일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에 있는 생 쉴피스 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후,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 12월 22일 시청에서 두 번째 장례식이 열렸으며, 이후 베라노 묘지에 있는 그의 가족 묘소에 안장되었다.[22][23]3. 주요 출연작
마스트로얀니는 1939년 마리오네트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고, 1951년 고발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1960)과 8과 1/2(1963)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피아 로렌과는 사랑의 시절(1954), 어제, 오늘, 내일(1963), 이탈리아식 결혼(1964), 해바라기(1970), 특별한 날(1977)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하얀 밤(1957), 피에트로 제르미 감독의 이탈리아식 이혼(1961),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어두운 눈(1987) 등도 그의 대표작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세 번 지명되었으며, 칸 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했다.
3. 1. 대표작
마스트로얀니는 1939년 14세 때 마리오네트 (1939)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8] 이후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다 1951년 ''고발''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8] 10년 안에 국제적인 스타가 된 그는 ''마돈나 거리의 악당들'' (1958)에 출연했고,[8]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 (1960)에서는 로마 상류 사회에 빠져 밤낮으로 환멸과 자학을 느끼는 타블로이드 칼럼니스트를 연기했다.[8] ''달콤한 인생'' 이후 펠리니의 ''8½'' (1963)에서는 창작의 고통과 연애 문제로 자아에 대한 의심을 겪는 영화 감독 역을 맡았다.[8]
마스트로얀니의 주요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 소피아 로렌과 함께 출연:
- ''사랑의 시절'' (1954)
- ''그녀에겐 너무나 나쁜 일'' (1954)
- ''여자가 되기에 행운'' (1956)
- ''어제, 오늘, 내일'' (1963)
- ''이탈리아식 결혼'' (1964)
- ''해바라기'' (1970)
- ''신부의 아내'' (1971)
- ''특별한 날'' (1977)
-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프레타 포르테'' (1994)
-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하얀 밤'' (1957)
- 피에트로 제르미 감독의 ''이탈리아식 이혼'' (1961)
- 잔 모로와 함께 출연한 ''밤'' (1961)
- 자크 페랭과 함께 출연한 ''가족 일기'' (1962)
-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 출연한 ''아주 사적인 관계'' (1962)
- 마리오 모니첼리 감독의 ''카사노바 70'' (1965)
- 리타 터싱햄과 함께 출연한 ''다이아몬드는 아침 식사로'' (1968)
- 모니카 비티와 함께 출연한 ''피자 트라이앵글'' (1970)
- 리처드 버튼과 함께 출연한 ''로마의 대학살'' (1973)
- 재클린 비셋과 함께 출연한 ''일요일의 여자'' (1975)
- 나스타샤 킨스키와 함께 출연한 ''그대로 있어줘'' (1978)
- 펠리니 감독의 ''여인의 도시'' (1980)와 ''진저와 프레드'' (1986)
-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헨리 4세'' (1984)
- 잭 레먼과 함께 출연한 ''마카로니'' (1985)
-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어두운 눈'' (1987) - 마르트 켈러와 함께 출연
-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모두가 괜찮아요'' (1990)
- 셜리 맥클레인과 함께 출연한 ''중고 인간'' (1992)
-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백과 하루 밤'' (1995)
''이탈리아식 이혼'', ''특별한 날'', ''어두운 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 올랐다.[8] 딘 스톡웰, 잭 레먼과 함께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배우이다.[9] 1970년 ''피자 트라이앵글'', 1987년 ''어두운 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10]
1996년 라울 루이스 (감독)의 ''세 번의 삶과 단 하나의 죽음''에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와 함께 출연, 포트 로더데일 국제 영화제에서 실버 웨이브 상을 받았다.[8] 유작은 사후 개봉된 ''세상의 시작으로의 여행'' (1997)이다.[8]
3. 2. 연대별 출연작
4. 수상 및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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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 m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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