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준 (정치인)
1. 개요
마쓰모토 준은 일본의 정치인으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출신이다. 약사 자격을 취득한 후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했다. 그는 내각 관방 부장관,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후생노동 정책, 빈곤 대책, 방재 대책, 해양 및 영토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2021년 긴급사태 선언 기간 중 심야 클럽 방문으로 논란이 일어 자유민주당을 탈당했으며, 이후 복당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2024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 후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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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위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
| 임기 시작 | 2016년 8월 3일 |
| 임기 종료 | 2017년 8월 3일 |
| 수상 | 아베 신조 |
| 이전 위원장 | 고노 다로 |
| 다음 위원장 | 오코노기 하치로 |
| 직위 | 중의원 의원 |
| 임기 시작 | 2003년 11월 10일 |
| 임기 종료 | 2021년 10월 14일 |
| 선거구 | 가나가와 1구 (2003–2009; 2012–2021) 남부 간토 비례대표 (2009–2012) |
| 임기 시작 | 1996년 10월 21일 |
| 임기 종료 | 2000년 6월 2일 |
| 이전 의원 | 선거구 신설 |
| 선거구 | 가나가와 1구 |
| 직위 | 요코하마 시의회 의원 |
| 임기 시작 | 1990년 |
| 임기 종료 | 1996년 |
| 선거구 | 나카구 |
| 본명 | 마쓰모토 준 (松本 純) |
|---|---|
| 출생일 | 1950년 4월 11일 |
| 출생지 | 가나가와현요코하마시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1990–2021; 2022–현재) |
| 다른 정당 | 무소속 (2021–2022) |
| 학력 | 도쿄 약과대학 |
| 직업 | 약사 정치인 |
| 종교 | 알려진 바 없음 |
| 배우자 | 알려진 바 없음 |
| 자녀 | 알려진 바 없음 |
| 관계 | 동생: 마쓰모토 겐 (요코하마 시의회 의원)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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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쇼리키 마쓰타로
쇼리키 마쓰타로는 일본의 언론 재벌이자 정치가로서 요미우리 신문을 인수하고 니혼TV를 설립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의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
후쿠다 하지메
후쿠다 하지메는 도메이 통신 기자 출신으로 중의원 의원을 거쳐 통산상, 자치상, 법무상 등 주요 각료직과 중의원 의장을 지낸 일본의 정치인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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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사토 에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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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대장성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총리대신 재임 시절 '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하여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미일 관계 강화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 약력
마쓰모토 준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 출신으로, 도쿄약과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약사 자격을 취득한 후 에스에스제약과 마쓰모토 약국에서 근무했다. 1990년 요코하마시 시의원 보궐 선거에 당선되어 3선 시의원을 역임했으며, 1996년 임기 중 사임했다.
2.1. 초기 생애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에서 태어났다. 노게야마 유치원, 요코하마 시립 혼초 초등학교, 세이코가쿠인 중・고등학교, 도쿄약과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경음악부에 소속되어 재즈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다. 마쓰모토는 베이스를 "화려함도 없다"면서 "없으면 재즈는 성립되지 않는다", "숨은 조력자"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를 마쓰모토의 정치 신념과 겹친다고 평가했다.
2.2. 약사 시절
약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학 졸업 후 에스에스제약에 근무하였으며, 이후 마쓰모토 약국에서 근무하였다.
2.3. 요코하마 시의원 시절
1990년 6월, 요코하마시 시의원 보궐 선거에 나카구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요코하마 시의원을 3선 역임했다.
내각 관방 부장관 시절,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칼럼 '교우초'에 기고하면서 정치가를 목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요코하마 Mores의 오카다 사장과의 만남을 언급했다. 마쓰모토는 재개발로 쇠퇴한 노게 활성화를 위해 길거리 공연을 기획, 운영했는데, 이를 본 오카다 사장이 "함께 노력해 보지 않겠나"라며 청년 회의소에 권유했고, 청년 회의소에서 정치 노하우를 공부했다고 한다.
1996년에 요코하마 시의원직을 임기 중에 사임했다.
3. 정책 및 주장
마쓰모토 준은 후생노동, 방재, 해양 및 영토 문제, 중소기업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주장을 펼쳤다.
후생노동 분야에서는 미야자와 요이치, 카모시타 이치로, 노다 타케시 등과 함께 정책 추진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일본의 신약 개발력 강화를 위해 926 규모의 예산 확보를 주도했고, 후생노동성과 경제산업성의 협력을 통해 "신약 개발 강화 플랜"을 추진했다. 1990년대 후반 미일 의약품 협상에서는 일본의 의료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제네릭 의약품 도입 등 의료 개혁을 이끌었다.
방재 분야에서는 2016년 방재대신 재임 시절, 동해 지진에 대비한 "대규모 지진 대책 특별 조치법(대진법)"을 전면 개정하여 난카이 트로프 지진 등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해 니가타현 이토이가와시 대규모 화재 발생 시에는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을 적용하여 피해 주민들을 지원했다.
해양 및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는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하고,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사업 승계 세제의 활용을 촉구하며, 중소기업의 원활한 세대교체를 위한 환경 조성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헌법 개정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헌법 해석 재검토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일본의 핵무장은 검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며, 원전 재가동에는 찬성했다. 여성 궁가 창설과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에는 반대했다.
3.1. 후생노동 정책
마쓰모토 준은 미야자와 요이치, 카모시타 이치로, 노다 타케시 등과 함께 후생노동 정책 추진의 중심 인물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마쓰모토는 일본의 신약 개발력 강화를 위해 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 정부는 총액 926의 예산을 배정했다. 후생노동성과 경제산업성이 협력하여 제약 산업 혁신을 촉진하는 "신약 개발 강화 플랜"을 추진하도록 재무성의 아소 재무대신과 협의했다. 마쓰모토는 신약 개발이 "일본 국민과 생명의 안전 보장"과 관련이 있으며, 일본의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후반, 미일 의약품 수입 완화 협상에서 마쓰모토는 일본의 의료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 개혁을 추진했다. 미국은 고령자 의료 보험에서 약제비가 전액 환자 부담이지만, 일본은 국민 개보험을 통해 약제비를 정액으로 지불한다.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미국식 자유 약가를 도입하면 "의료 보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일본의사협회는 의료기관 경영 악화를 이유로 반대했지만, 미국의 요구와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인해 개혁이 불가피했다. 마쓰모토는 미일 회담 전까지 개혁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약가 인하와 의료 효율화를 통해 국민 의료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상 결과, "보다 효과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치료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혁신적인 제품 도입"과 "바이오 후속 제품 계몽 활동"을 추진하고, "제네릭 의약품(후발 의약품) 도입" 및 "의료용구 불균형 개선" 등이 합의되었다. 마쓰모토 등이 우려했던 약가 자유화는 보류되어 일본 의료 시스템 붕괴는 막을 수 있었다.
2013년 12월, 마쓰모토는 다카이치 사나에, 마루카와 다마요 등과 함께 총리 관저를 방문하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진료 개정에 관한 4가지 요청을 전달했다. 요청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소비세 보전분의 보다 적절한 방법으로 계산
* 진료 보수와 기금의 적절한 조합에 의한 의료 제공 체제 개혁·충실과 진료 개정에서의 예산 확보
* 종래와 같은 약가 개정 재원의 활용
* 진료 보수 본체와 약가의 보험료 재원에 대해 일본판 NIH로 유용 불가
마쓰모토는 스가 관방장관의 반응이 "매우 엄격했다"고 회고했다.
2015년 3월, 초당파 "바이오시밀러 사용 촉진 의원 연맹"이 발족되었다. 자민당의 마쓰모토, 공명당의 마스야 게이고, 민주당의 가사 히로시, 유신의 당의 마쓰노 요리히사・이토 노부히사 등 중의원 5명이 발기인이었다. 2015년 이후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이어짐에 따라, 의료 적정화를 위해 바이오 후속 제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16년 10월 19일, "바이오시밀러 사용 촉진 의원 연맹" 회합에서 회장인 마쓰모토는 바이오 후속 제품 사용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TPP와 바이오 의약품의 관계를 정리했다.
3.2. 빈곤 대책
마쓰모토는 당시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빈곤 대책 추진법을 추진하여 2013년 6월 19일에 성립시켰다. 이 법은 "아이들의 미래가 태어나 자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중략), 빈곤 대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2014년 1월 17일에 시행되었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빈곤의 파악과 개선", "교육 지원", "생활 지원", "보호자의 취업 지원", "경제 지원", "조사 연구의 지원"을 중심으로 정부, 도도부현에 대책을 강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2013년 5월 31일, 마쓰모토는 후생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아시나가 육영회의 학생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안을 제안하여 만장일치로 가결, 성립시켰다.
3.3. 방재 대책
2016년 방재대신 시절, 마쓰모토 준은 1978년 제정된 "동해 지진에 대비한 대규모 지진 대책 특별 조치법(대진법)"을 전면 개정했다。대진법은 동해 지진에 대비한 법률로, 난카이 트로프에서 발생하는 난카이 지진이나 도난카이 지진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의 교훈을 받아 개정 목소리가 커지자, 마쓰모토는 "방재·감재를 위해 대진법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논의해 주길 바란다"며 유식자 회의의 보고를 촉구했다. 2017년 보고서에서는 "확실한 예지는 어렵다"며, "사전 예지를 전제로 한 현행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이는 방재보다는 감재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마쓰모토는 2017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 22주년 인터뷰에서 "지진 재해에서 얻은 교훈을 확실히 검증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도 직하형 지진이나 난카이 트로프 지진에 대한 재해 대책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22일 낮, 니가타현 이토이가와시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강한 남풍, 화재 발생 지역이 쇼와 초기에 건조된 간기즈쿠리의 상점가와 목조 주택 밀집 지역이었다는 점 때문에 화재가 확대되어 연소되었다. 이 규모는 지진이나 쓰나미의 2차 피해를 제외하고 단일 화재로는 지난 20년간 최대였다. 12월 27일, 자민당 재해 대책 특별 위원회·총무부회의 합동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현지 시찰을 한 자민당 니가타현 연합의 보고 및 요청을 바탕으로, 이번 화재를 강풍에 의한 "자연 재해"로 규정하고,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지 정부에 조속한 검토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 재해 담당 대신이었던 마쓰모토는 아소 다로재무대신 등과 조정을 거쳐 2016년 12월 30일 이토이가와 대화재로 주택 피해를 본 사람에게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을 적용하여 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밝혔다。
3.4. 해양 및 영토 정책
2016년 초, 마쓰모토는 영토 문제, 국토 강인화, 해양 정책 담당으로 취임했다. 그는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대해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자료 약 670점을 공표했다. 마쓰모토는 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정중하게 국내외에 발신하겠다"고 강조했다.
3.5. 중소기업 지원
마쓰모토 준은 2019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파티에서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60%의 경영자가 70세가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중소기업이 건강하게 세대 교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자신이 개정을 지원한 새로운 사업 승계 세제의 활용을 촉구했다. 이 세제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다음 세대에게 원활하게 사업을 양도할 수 있도록 마련된 특례 우대 조치로, 전년도 4월에 이용 조건을 완화한 신제도가 시작되었다. 특례 조치의 기간은 10년이며, "380만 개나 되는 중소기업. 더 많은 분들이 활용하여, 여러분들이 건강하게 일본을 지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3.6. 기타 정책 및 주장
마쓰모토 준은 건강·복지 증진에 힘쓰고, 일본에서 개발된 의약품의 해외 진출을 돕는 정책을 추진했다. 약사, 의료 정책, 개호(돌봄) 정책을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90년대 후반, 미일 의약품 협상에서 일본의 의료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의 고령자 의료 보험은 약값이 전액 환자 부담이지만, 일본은 국민 건강 보험으로 약값이 정액제였다. 미국식 자유 약가를 도입하면 의료 보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마쓰모토는 미일 협상에서 일본의 주장을 관철하고, 의료 개혁을 통해 약값 인하와 의료 효율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도입 등이 이루어졌지만, 약값 자유화는 보류되어 일본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2013년 12월, 마쓰모토는 다른 의원들과 함께 총리 관저를 방문하여 진료 개정에 관한 요청을 했다. 소비세 보전분의 적절한 계산, 진료 보수와 기금의 조합을 통한 의료 제공 체제 개혁, 예산 확보 등을 요구했지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반응은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2016년 방재대신 시절, 1978년 제정된 "동해 지진 대규모 지진 대책 특별 조치법(대진법)"을 전면 개정했다. 대진법은 동해 지진에만 대비한 법률로, 난카이 트로프에서 발생하는 지진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마쓰모토는 전문가 회의를 통해 "확실한 (지진) 예지는 어렵다"는 보고를 받고, 방재보다는 피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같은 해 12월, 니가타현 이토이가와시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강풍과 목조 건물 밀집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피해가 커졌는데, 마쓰모토는 이를 자연재해로 규정하고 피해자 생활 재건 지원법을 적용하여 지원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영토 문제 담당 대신으로서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 약 670점을 공개하고, 국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정책 및 주장을 펼쳤다.
* 헌법 개정에 찬성한다.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한 헌법 해석 재검토에 찬성한다.
* 일본의 핵무장은 검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새 기준을 충족한 원전은 재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여성 궁가 창설에 반대한다.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 땀 흘리는 사람이 보상받는 사회를 지향한다.
4. 논란 및 사건
마쓰모토 준은 여러 논란과 사건에 연루되었다.
* 헌법 개정: 찬성
*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 정부의 헌법 해석 재검토에 찬성
* 일본의 핵무장: 검토 불가
* 원전: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새 기준 충족 시 재개
* 여성 궁가: 창설 반대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도입 반대
4.1. 정치 자금 관련
마쓰모토 준의 정치 자금 관리 단체인 '자유민주 가나가와현 제1선거구 지부'는 나이스 주식회사로부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2018년에는 12만 엔씩 총 7회, 84만 엔의 헌금을 받았다. 나이스는 2019년 5월 16일,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유가증권 보고서의 허위 기재) 혐의로 강제 수사를 받았고, 7월 25일에는 전 회장 등 3명이 체포되었다. 마쓰모토는 분식결산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2015년 이후에도 3차례에 걸쳐 36만 엔을 나이스로부터 헌금받아 문제가 되었다。
2002년에 의약 업계의 건강 보험 재정을 원천으로 하는 6개의 정치 단체로부터 마쓰모토에게 37의 헌금이 있었고, 2001년에도 22의 헌금이 있었다고 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가 보도했다。
2018년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따르면, 자금 관리 단체의 수입액이 가나가와현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58.59이며, 약사 관련 정치 단체로부터 많은 헌금이 있었다。
4.2. 긴급사태 선언 기간 중 심야 클럽 방문
2021년 1월 8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된 가운데, 마쓰모토 준은 1월 18일 도쿄도 주오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후 8시 50분경에 나온 뒤, 긴자의 클럽 2곳을 방문하여 오후 11시 20분경에 클럽을 나와 택시로 아카사카에 있는 의원 숙소로 돌아갔다.
마쓰모토는 기자단에게 방문한 3곳의 음식점에 대해 모두 "요청·진정을 받는 입장에서 혼자 갔다"고 설명했다. 또한 "폐점 후에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에 있던 사람은 점주와 나뿐이었다"고 말했다. 1월 27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마쓰모토와 공명당의 도야마 기요히코 중의원 의원이 각각 긴급사태 선언 중에 긴자의 클럽을 심야에 방문했던 것에 대해 사죄했다.
1월 29일, 마쓰모토는 "매우 경솔한 행위를 반성하고 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고 사죄하고,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대리를 사임했다. 당초에는 "혼자 음식점에 갔다"고 설명했지만, 2월 1일, 마쓰모토는 기자단에게 다노세 다이도 문부과학 겸 내각부 부대신, 오쓰카 다카시 국회대책 부위원장에게 말을 걸어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3번째 클럽에서 동석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는 3번째 클럽 관계자 여성 2명도 있어 5명이 함께 식사했다. 다노세와 오쓰카는 각각 직책을 사임하게 되었다(사실상의 경질).
같은 날 오후에 마쓰모토는 다노세, 오쓰카 두 의원과 함께 자민당 본부에서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회담하고, 탈당 권고를 받은 후 탈당계를 제출했다. 탈당계는 순환 당기위원회에서 수리되었다.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 바이오시밀러 사용 촉진 의원 연맹 (회장)
*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 창생 '일본'
* 베이징 올림픽을 지원하는 의원 모임
* 국제 관광 산업 진흥 의원 연맹 (카지노 의원 연맹)
자민당 시대
* 자민당 담배 의원 연맹
* 자민당 국제 인재 의원 연맹
* 자민당 동물 애호 관리 추진 의원 연맹
* 재도전 지원 의원 연맹
* TPP 협상에서 국익을 지켜내는 모임
6. 인물
마쓰모토 준은 골프와 경음악을 취미로 하며, 세이코가쿠인 재학 시절 우드 베이스를 빌려 베이스를 시작했다. 도쿄 약과대학 경음악부 동료들과 연 1회 공연을 하고 있으며, 대학 시절에는 재즈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다. 그는 베이스를 "숨은 조력자"라고 표현했는데,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를 그의 정치 신념과 연결지어 평가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세 아들이 있으며, 남동생은 요코하마 시의회 의원 마쓰모토 켄이다. 고마쓰 이치로(전 내각법제국 장관)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는 지역 사쿠라기초역 이전 문제를 정치 원점으로 회고했다. 요코하마시 의원 시절, 스가 요시히데로부터 청년국장 자리에 지명받았다.
6.1. 실천 윤리 홍정회와의 관계
실천 윤리 홍정회 행사에 수백 차례 정도 참여했다. 다음은 그 극히 일부이다.
| 날짜 | 행사명 |
|---|---|
| 2012년 4월 9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아침 기상회 |
| 2012년 4월 29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창립 기념 아침 기상회 |
| 2013년 9월 13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주니어와 가족의 모임 2013" |
| 2013년 9월 25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아침 기상회 |
| 2013년 9월 30일 | 도쿄 지구 추계 실천 윤리 홍정회 강연회 (등단) |
| 2014년 4월 6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아침 기상회 |
| 2014년 4월 29일 | 실천 윤리 홍정회 창립 기념 아침 기상회 |
6.2. 취미 및 특기
취미는 골프와 경음악이다. 세이코가쿠인 재학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스즈키 야스히로에게 우드 베이스를 빌린 것을 계기로 베이스를 시작했다. 지금도 도쿄 약과대학 경음악부 동료들과 연 1회 공연을 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는 경음악부에 소속되어 재즈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했다. 마쓰모토는 ベース일본어를 "화려함도 없지만 없으면 재즈가 성립되지 않는 숨은 조력자"라고 표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마쓰모토의 정치 신념과 연결지어 평가했다.
6.5. 사상 및 신조
지역 사쿠라기초역 이전 문제가 정치 원점이었다고 회고했다.
6.6. 기타
* 1966년 4월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70년 3월에 졸업, 4년 만에 졸업했다.
* 요코하마시 의원 시절, 스가 요시히데로부터 청년국장 자리에 지명받았다.
* 2014년 제186회 국회에서는 대신, 부대신, 정무관, 보좌관, 의장, 부의장, 위원장 등 요직에 임명되지 않았고, 질문, 의원 입법, 질의서 제출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단, 2014년 2월 26일 예산위원회 제5분과회에서 주사를 맡았다. 같은 해 제187회 국회에서는 후생노동위원회에서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품질, 유효성 및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 기안 건"을 중심으로 질의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