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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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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일본 해군이 청나라 북양함대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의 기술을 도입하여 건조한 3척의 군함으로, '삼경함'으로 불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열풍 속에서 한반도를 생명선으로 삼았던 일본은 청나라의 강력한 북양 함대에 맞서기 위해 프랑스 기술자 루이 에밀 베르탕의 설계를 바탕으로 32cm 주포를 탑재한 마쓰시마급을 건조했다. 청일 전쟁에서 부포와 고속 기동성을 활용하여 북양 함대 격파에 기여했으며, 러일 전쟁에도 참전했다. 하지만 주포 운용 문제와 비실용적인 설계로 인해 실전에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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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개요
이쓰쿠시마 (마쓰시마형 방호순양함)
마쓰시마형 방호순양함 선도함인 이쓰쿠시마
함급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 (松島型防護巡洋艦)
함종방호순양함
건조 기간1888년 ~ 1894년
취역 기간1891년 – 1926년
건조 척수계획: 4척
완공: 3척
취소: 1척
손실 척수1척 (마쓰시마)
퇴역 척수2척
보존 척수0척
제원
배수량마쓰시마:
이쓰쿠시마, 하시다테:
길이(수선장)
추진2축 삼중팽창 증기기관, 6개 보일러, , 석탄 680톤
승무원360명
무장
주포1 × 카네 포
부포11-12 × QF 4.7인치 (120 mm) 속사포
기타 무장5-6 × QF 6파운더 (57 mm) 호치키스 포
2-5 × QF 3파운더 (47 mm) 호치키스 포
4 × 어뢰 튜브
장갑
건조 및 운용
건조요코스카 해군 공창 (일본)
운용 국가일본 제국 해군
이전 함급나니와급 순양함
동형함

2. 역사적 배경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세 척이 건조되어 각각 마쓰시마(松島), 이쓰쿠시마(厳島), 하시다테(橋立)로 명명되었다. 이 이름들은 일본 삼경(일본의 3대 절경)인 무쓰 마쓰시마, 아키 이쓰쿠시마(미야지마), 단고 아마노하시다테에서 유래했으며, 이 때문에 '삼경함'(三景艦)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함선 이름의 우아함 외에도, 이 함선들이 일본 국민에게 친숙하게 된 데에는 다른 배경이 있다.

마쓰시마급이 건조되던 시기는 대국 청나라와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이던 때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혼란기를 수습한 일본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국토 방위와 해외 진출을 명분으로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국가 전략을 추진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조선에 대한 종주국적 지위를 유지하려던 청나라와의 충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특히 1885년 무렵, 독일영국의 지원을 받아 함대를 정비한 청나라 북양함대에 배치된 철갑함 진원(鎭遠)과 정원(定遠) 2척은 일본 해군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 함선들은 독일의 최신 기술로 건조된 딩위안급 포탑 장갑함으로, 기준배수량 7,220톤에 주포로 크루프 사가 제작한 30.5cm 2연장포 2기(총 4문)를 탑재하고 현측 장갑 최대 두께가 305mm에 달해, 당시 서구 열강 해군이 극동에 배치한 함선들을 능가하는 강력한 거함이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함포를 갖춘 이들 함선에 비해, 당시 일본 해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함선은 구식 철갑함인 후소 1척뿐이었으며, 탑재된 크루프 포 역시 위력이 떨어지는 24cm 포 4문에 불과했다.

이러한 전력 차이를 극복하고자 일본은 최소한 주포 구경에서라도 진원과 정원을 능가하는 군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에서 초빙한 조선 기술관 루이 에밀 베르탕의 설계가 채택되었다. 베르탕은 프랑스 군사 고문이자 해군 건축가로서 젊은 학파(Jeune École)의 원칙을 주창했다.[1] 일본 정부는 청나라 북양함대의 강력한 함선에 맞설 대규모 전함 해군을 건설할 자원이나 예산이 부족했기에, 소형, 고속, 경장갑 함선에 거대한 주포 1문을 탑재하는 급진적인 이론을 채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쓰시마급은 청나라 주력함을 격파할 목적으로 카네 사의 32cm(38구경) 함포 1문을 주포로 탑재했는데, 이는 포탄 크기 면에서는 진원과 정원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항만 시설은 베르탕이 제안한 기준의 함선을 운용하기에 부족했고, 예산 제약으로 인해 함의 크기는 프랑스가 제시한 것보다 작게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형 선체에 거대한 주포를 억지로 탑재하면서 장갑과 기관 성능은 상대적으로 빈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 설계는 거포의 반동이 소형 함선에 비해 너무 크고 재장전 시간도 길어 비실용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장비와 지휘가 모두 미흡했던 청나라 북양함대에 맞서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2] 이는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서는 최선의 노력이었으며, 그만큼 일본 해군과 국민의 기대는 컸다.

본래 마쓰시마급은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위에서 언급된 주포 운용상의 문제점 등 설계에 대한 우려와 사소 사나카와 같은 내부 조선 기술관들의 강한 반대로 인해 3척 건조 후 계획이 중단되었다. 이 결정은 3번함과 4번함의 국내 건조를 위해 초빙했던 베르탕이 사임하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취소된 4번함의 명칭은 불분명하지만, 일설에는 4번함 대신 건조된 방호순양함 아키쓰시마의 함명이 원래 4번함의 예정 명칭이었다고 전해진다.

3. 설계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청나라의 북양함대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당시 북양함대는 독일영국의 지원을 받아 정비되었으며, 특히 독일에서 건조된 딩위안급 전함 '딩위안'과 '젠위안'은 크루프사제 30.5cm 주포 4문을 탑재하여 동양 최강의 전함으로 평가받았다. 이에 비해 일본 해군은 구식 장갑함 후소 1척만을 보유하고 있어 딩위안급은 큰 위협이었다.[3][4]

이러한 전력 차이를 극복하고자 일본 정부는 프랑스 해군 기술자 루이-에밀 베르탱을 초빙하여 새로운 군함 설계를 의뢰했다. 베르탱은 청나라 전함의 주포를 능가하는 위력을 가진 프랑스 카네 사의 32cm(38구경) 포 1문을 주포로 탑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기술력과 예산 제약 하에서 청나라의 주력함을 상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항만 시설은 베르탱이 제안한 대형 장갑함을 운용하기에 부족했고, 예산 문제도 겹쳐 함선 크기는 원안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강력한 주포를 탑재하는 대신 장갑 방어력과 기관 성능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방호순양함 형태로 건조되었다. 이는 제한된 국력 안에서 최대한의 전투력을 확보하려 했던 일본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일본 해군과 국민들은 이 함선들에 큰 기대를 걸었다.

마쓰시마급은 원래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주포 운용상의 문제점 등에 대한 사소 사나카 조선총감의 강한 반대로 3척 건조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이 결정에 불만을 품은 베르탱은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프랑스로 귀국했다. 취소된 4번함의 예정 함명은 명확하지 않으나, 일설에는 대신 건조된 아키츠시마가 그 이름이었다고도 하고, 다른 설에는 베르탱의 체면을 고려하여 처음부터 일본 삼경의 이름을 딴 3척만 계획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각 함선의 건조 비용은 당시 화폐 가치로 약 100만이었다.

3. 1. 특징

마쓰시마의 장갑배치를 나타낸 도면


마쓰시마급의 선체는 당시 프랑스 해군이 주로 채택하던 텀블홈 형상이었다. 이는 수선부 위의 구조를 복잡한 곡선으로 안쪽으로 당겨 선체 중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러시아 제국 해군, 독일 해군, 미국 해군의 전노급전함과 순양함 중 일부도 이 방식을 사용했다. 외관상 수선 하부의 함수와 함미가 크게 돌출되고, 갑판보다 수선부 장갑 부분이 더 튀어나온 독특한 모양을 가진다. 이 구조 때문에 갑판 면적은 상대적으로 좁아졌지만, 포의 사격 각도를 넓게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선체 전체에 장갑을 두르는 '전체 방어 방식'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텀블홈 구조로 선체 길이가 짧아지면 장갑 면적이 줄어들어 선체를 가볍게 만들 수 있었다.

함선별 선체 형상에는 차이가 있다.

  • '''마쓰시마''': 긴 뱃머리 누각형 선체이다. 수면부에 충각을 가진 함수 갑판 위에 사령탑을 두고, 그 위에 함교가 있다. 함교 뒤로는 굴뚝 1개와 꼭대기에 2단으로 장갑화된 감시소를 갖춘 군용 돛대(밀리터리 마스트) 1개가 서 있다. 이 돛대에는 어뢰정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37mm ~ 47mm급 속사포기관포가 배치되었다. 주포인 카네 1890년형 32cm(38구경) 단장포는 함미 갑판의 노포탑에 후방을 향해 1문이 설치되었다. 부포인 암스트롱 12cm(40구경) 속사포는 양쪽 현측에 총 12문이 배치되었다 (함수 상단 각 1문, 중갑판 포곽 각 5문).
  • '''하시다테'''와 '''이쓰쿠시마''': 평갑판형 선체이다. 마쓰시마와 달리 함수 갑판 위에 32cm 주포 1문이 전방을 향해 배치되었다. 그 뒤로 사령탑, 함교, 굴뚝 1개, 군용 돛대 1개가 이어진다. 부포인 12cm 속사포는 총 11문이 배치되었는데, 양쪽 현측 중갑판 포곽에 각 5문씩, 함미 갑판에 후방을 향해 1문이 설치되었다.


1893년 촬영된 마쓰시마. 함미 갑판의 주포(카네 32cm 포)는 장갑 커버를 씌운 노포탑 형태이다.


이쓰쿠시마의 무장과 장갑 배치도. 하시다테도 동일 배치.


1893년, 주포(32cm 포)를 장착 중인 하시다테.


1908년 요코스카의 이쓰쿠시마. 부포(12cm 속사포)는 가로로 긴 포문에 배치되었다.


=== 무장 ===

마쓰시마급의 무장은 다음과 같다.

구분종류구경포탄 무게유효 사거리발사 속도탑재 수량비고
주포카네 1890년형 후장전식 포320mm (38구경)철갑탄 449kg
고폭탄 350kg
8000m5분에 1발1문마쓰시마는 함미, 이쓰쿠시마/하시다테는 함수 배치. 수압+인력 장전.
부포암스트롱 12cm 속사포120mm (40구경)20.4kg9050m분당 5~6발마쓰시마 12문
이쓰쿠시마/하시다테 11문
인력 장전.
기타7.6cm(40구경) 속사포 (QF 6파운더 호치키스)76mm-6000m분당 20발6문대 어뢰정용
기타오치키스 4.7cm(43.5구경) 속사포 (QF 3파운더 호치키스)47mm-2200m분당 32발6문
어뢰35.6cm 단장 고정식 수상 어뢰발사관356mm---4문함수 1, 함미 1, 현측 각 1. 총 20발 탑재.[3][4]



주포인 카네 32cm 포는 새로 설계된 단장식 커버가 달린 노포탑에 탑재되었다. 포의 부앙 능력은 앙각 10.5도, 부각 4도이며, 좌우 140도 선회 가능했다. 주포 관련 조작은 주로 수압으로 이루어졌으며, 인력이 보조했다.

부포인 암스트롱 12cm 속사포는 단장 포가에 장착되었으며, 앙각 20도, 부각 3도, 선회각 150도를 가졌다. 조작은 주로 인력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설계에서는 카네 사의 12cm 라이플포를 부포로 채용할 예정이었으나, 건조 중 일본 해군이 암스트롱 속사포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먼저 건조된 마쓰시마와 하시다테의 부포 포문은 라이플포에 맞춰 세로로 길고 폭이 좁은 형태였으나, 속사포에 맞게 재설계된 이쓰쿠시마의 포문은 사격 각도 확보를 위해 가로로 길게 만들어졌다.

=== 방어 ===

방어 장갑 재질은 Harvey armor|하비 강영어이었다. 당시 방호순양함의 특징대로 수선부에는 장갑이 없는 대신, 내부의 방어 갑판으로 주요 구획을 보호했다. 방어 갑판은 중앙 수평부 두께가 38mm에서 51mm였고, 현측과 연결되는 경사부는 75mm 두께였다. 갑판 상부에는 39.7mm 두께의 파편 방어용 장갑이 추가되었다. 기관부는 두께 127mm의 장갑 격벽으로 보호되었다.

주포탑의 바벳(포탑 아래 원통형 구조물)은 가장 두꺼운 부분이 300mm 장갑으로 덮였고, 탄약고에서 주포탄을 올리는 양탄기 통로도 250mm에서 300mm 두께의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부포인 12cm 속사포 포가에는 두께 110mm의 방패가 부착되었다. 수선 아래는 이중 바닥 구조로 되어 있었다.

=== 기관 ===

1916년 촬영된 하시다테. 보일러 교체 후 굴뚝 형태가 변경되었다.


마쓰시마급은 6기의 석탄 전소 원통 보일러(스코치 보일러)와 2기의 수평형 3단 팽창식 3기통 왕복 기관을 탑재했다. 이는 일본 순양함으로서는 처음 채택된 형식이었다. 2개의 스크루 프로펠러를 구동하여 설계상 최고 출력 5400hp, 최대 속도 16kn를 낼 수 있었다.[3]

하지만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최신 기술이었던 고온 고압 보일러(폭스 파형 노통, 강철 연관 채용)를 제대로 운용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쓰쿠시마는 고장이 잦아 청일 전쟁 당시에는 12.8kn, 하시다테는 11kn 정도의 속력밖에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황해 해전에서는 마쓰시마가 기함을 맡기도 했다.[4] 결국 1901년부터 1902년에 걸쳐 보일러 교체 작업이 이루어졌다. 마쓰시마와 이쓰쿠시마는 프랑스제 벨빌식 수관 보일러 8기로, 하시다테는 일본 국산 미야하라식 수관 보일러 8기로 교체하여 원양 항해에 적합한 성능을 확보하게 되었다.

3. 2. 동형함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 목록
함명건조사기공진수완공 / 취역주요 이력최후
마쓰시마 (松島)FC de la Méditerranée (라 센 조선소, 프랑스)1888년 2월1890년 1월 22일1892년 4월 5일[5] / 1891년 3월1906년부터 연습함으로 분류
(주포인 카네포를 함미에 배치)[5]
1908년 4월 30일, 타이완 인근 펑후 제도 (마궁 시) 정박 중 화약고 폭발 사고로 침몰 (승무원 350명 중 207명 사망)[5]
이쓰쿠시마 (嚴島)FC de la Méditerranée (라 센 조선소, 프랑스)1888년 1월1889년 7월 11일1891년 9월 3일[5] / 1891년 8월1906년부터 연습함으로 분류
1919년부터 잠수함 모함으로 분류
1922년 제적 후 해체 처분 (1926년 3월 12일 퇴역 설 있음)[5]
하시다테 (橋立)요코스카 해군 조선소 (일본)1888년 9월1891년 3월 24일1894년 6월 26일[5] / 1894년 6월1906년부터 연습함으로 분류1922년 4월 1일 퇴역[5] (1923년 제적 설 있음)
1927년 해체 처분[5]


4. 운용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총 세 척이 건조되어 각각 마쓰시마(松島), 이쓰쿠시마(厳島), 하시다테(橋立)로 명명되었다. 이 함선들의 이름은 일본 삼경으로 꼽히는 무쓰마쓰시마, 아키이쓰쿠시마, 단고아마노하시다테에서 유래했으며, 이 때문에 '삼경함'(三景艦)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쓰시마급은 청나라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에 건조되었다. 당시 메이지 유신 이후 국력 신장을 꾀하던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국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이는 전통적으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던 청나라와의 충돌을 예고하고 있었다. 특히 1885년 독일영국의 지원으로 강화된 청나라 북양함대 소속의 최신 철갑함 정원과 진원은 기준배수량 7220ton, 30.5cm 2연장 주포 2기, 최대 장갑 두께 305mm를 갖춘 강력한 함선으로, 당시 일본 해군에게 큰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이에 일본은 프랑스 해군 기술자 루이 에밀 베르탕의 설계에 따라, 제한된 예산과 항만 시설의 제약 속에서 정원급에 대항할 수 있는 함선을 건조하고자 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작은 선체에 청나라 주력함의 포보다 구경이 큰 카네 사의 32cm 포 1문을 탑재한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이 탄생했다. 비록 장갑과 기관 성능에서 한계가 있었지만, 이는 당시 일본의 국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국민적 기대 또한 높았다.

마쓰시마급 세 척은 모두 청일 전쟁 발발 직전에 취역하여 주력함으로 참전했으며, 북양함대 격파에 기여했다.

청일 전쟁 이후 마쓰시마급은 후지급 전함 등 신형 전함들에게 주력함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러일 전쟁 시기에는 구식함으로 분류되어 제3함대 제5전대에 편성, 주로 후방 지원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주요 해전에 참가했다. 특히 쓰시마 해전에서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초기에 발견하는 정찰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후 사할린 점령 작전에도 투입되었다.

원래 마쓰시마급은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주포 운용상의 문제점과 기술진의 반대로 계획이 변경되어 3척만 건조되었다. 이로 인해 설계를 담당했던 베르탕은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귀국해야 했다. 취소된 4번함의 예정 함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설에는 해당 예산으로 대신 건조된 방호순양함 아키쓰시마가 원래 4번함의 이름이었다고도 전해진다.

4. 1. 청일 전쟁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청일 전쟁 발발 직전에 3척 모두 완공되었다. 당시 일본 제국 해군청나라 북양함대가 보유한 강력한 독일 제국제 딩위안급 전함(정원, 진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필요했다. 이들 청나라 전함은 크루프 사의 30.5cm 주포를 탑재하여 당시 일본 해군에게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

일본은 대형 전함 함대를 건조할 예산과 자원이 부족했기에, 프랑스 해군 건축가 루이-에밀 베르탱이 주창한 젊은 학파(Jeune École) 사상을 받아들여 마쓰시마급을 건조했다.[1] 이는 상대적으로 소형이고 빠른 함선에 강력한 주포 1문을 탑재하여 거함에 대항하는 개념이었다. 이에 따라 마쓰시마급은 청나라 주력함의 30.5cm 포보다 구경이 큰 카네 사의 32cm(38구경) 포 1문을 주포로 장착했다. 그러나 소형 선체에 거포를 탑재하면서 장갑과 기관 성능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마쓰시마급 3척은 모두 청일 전쟁에 주력함으로 참전하여, 황해 해전(압록강 해전)과 이후 웨이하이웨이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황해 해전에서 마쓰시마급의 주포인 32cm 포는 발사 속도가 매우 느리고 명중률도 낮아 실질적인 전과를 거의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부포로 탑재된 속사포의 화력과 함대의 기동성을 활용하여 청나라 함선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했다. 비록 적 전함을 격침시키지는 못했지만, 북양함대 주력함들의 전투 능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진 웨이하이웨이 전투에서는 북양함대를 완전히 격멸하는 데 기여하며, 건조 당시 일본 국민이 걸었던 기대에 부응했다. 비록 설계상의 결함(거포 탑재로 인한 불안정성, 주포의 비효율성 등)이 지적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마쓰시마급은 장비와 지휘 체계가 미흡했던 청나라 북양함대를 상대로 전쟁 승리에 기여하며 충분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2]

4. 2. 러일 전쟁

러일 전쟁이 발발했을 시점에는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였다. 마쓰시마급 3척은 청일 전쟁일본 해군이 노획한 구식 철갑함 진원과 함께 예비 함대 성격의 제3함대 산하 제5전대에 배속되었으며, 카타오카 시치로(片岡七郎) 제독의 지휘를 받았다.

제5전대는 주로 초계와 소해 임무 등 후방 지원 역할을 맡았지만, 뤼순 봉쇄 작전, 황해 해전, 그리고 러일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쓰시마 해전 등 주요 해전에 모두 참가했다. 특히 쓰시마 해전에서는 접근해오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 편성과 동향을 본대에 계속 보고하는 중요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제4함대에 배속되어 사할린 침공 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5. 평가

마쓰시마급 방호순양함은 건조 당시 청나라의 최신예 정원급 전함(정원, 진원)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기술자 루이 에밀 베르탕의 설계로 건조되었다. 정원급의 주포인 30.5cm 크루프 포에 맞서기 위해, 일본 해군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카네 사의 32cm(38구경) 함포 1문을 주포로 탑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는 당시 일본 해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함포였던 후소의 24cm 포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국력과 항만 시설의 한계로 인해 베르탕이 초기에 제안했던 장갑함 수준의 함선을 건조할 수는 없었다. 부족한 예산으로 인해 함선의 크기는 축소되었고, 작은 선체에 거대한 32cm 주포를 탑재하면서 장갑 방어력과 기관 성능은 상대적으로 빈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제한된 조건 하에서 거함거포주의 사상에 따라 주포의 위력을 극대화하려 한 시도였으나, 설계상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쓰시마급은 부족한 국력 속에서 청나라의 해군력 증강에 대응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상징했으며, 일본 해군과 국민들의 큰 기대를 받았다.

이러한 기대는 청일 전쟁에서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마쓰시마급 3척은 연합 함대의 주력으로서 황해 해전에 참가했다. 해전에서 핵심 무장으로 기대했던 32cm 주포는 발사 속도가 느리고 명중률이 낮아 실제적인 전과를 거의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비교적 빠른 속력과 부포로 탑재된 속사포의 활약으로 북양함대 주력함들의 전투 능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웨이하이웨이 전투에서도 활약하며 북양 함대 격멸에 일조했다. 비록 주포의 성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청일 전쟁의 승리에 기여함으로써 마쓰시마급은 일본 내에서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청일 전쟁 이후 후지급과 같은 신형 전함들이 건조되면서 마쓰시마급은 주력함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러일 전쟁에서는 청일 전쟁 당시 노획한 옛 경쟁자였던 진원과 함께 제3함대 제5전대에 편성되어 주로 초계, 소해(기뢰 제거),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쓰시마 해전에서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최초로 발견하고 그 동향을 지속적으로 보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본래 마쓰시마급은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32cm 주포의 운용상 문제점과 사소 사나카 조선기술관 등의 반대로 인해 3척 건조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이 결정은 설계를 담당했던 베르탕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취소된 4번함의 예정 함명은 불확실하나, 일설에는 이 함선 대신 건조된 아키쓰시마가 그 이름을 이어받았다고도 하며, 다른 설로는 처음부터 일본 삼경의 이름을 붙여 3척만 건조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참조

[1] 서적 The Jeune École: The Strategy of the Weak
[2] 서적 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1887-1941 Naval Institute Press
[3] 서적 Conway's All the World's Fighting Ships 1860–1905
[4] 웹사이트 Japanese 12.6"/38 (32 cm) Canet http://www.navweaps.[...] 2006-03-16
[5] 서적 Warships of the Imperial Japanese N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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