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요시 미쓰오
1. 개요
마타요시 미쓰오는 1944년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태어나, 1997년 세계경제공동체당을 창당하고 여러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칭하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전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주장을 펼쳤다. 농업 기반의 경제 시스템 구축, 외국인의 영주권 및 귀화 반대, 해외 미군 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상대 후보에게 과격한 발언을 하는 선거 운동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018년 건강 악화로 은퇴 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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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름 | |
|---|---|
| 출생일 | 1944년 2월 5일 |
| 출생지 | 일본, 오키나와현, 나카가미군, 기노완 촌 |
| 사망일 | 2018년 7월 20일 (향년 74세) |
| 국적 | 일본인 |
| 교육 | 주오 대학 졸업 |
| 직업 | 정치 운동가 |
| 소속 정당 | 세계경제공동체당 |
|---|---|
| 직책 | 세계경제공동체당 대표 |
| 임기 시작 | 1997년 |
| 임기 종료 | 2018년 6월 30일 |
| 이전 직책 | 직책 신설 |
| 이후 직책 | 직책 폐지 |
| 기타 이름 | 마타요시 미쓰오 유일신 마타요시 미쓰오 예수 그리스도 |
|---|---|
| 저서 | 『재림의 그리스도,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은 일본·세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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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출생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1944년 출생 -
펠레티 세벨레
펠레티 세벨레는 통가의 정치인으로,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통가 입법회 의원, 노동상공부 장관, 총리 권한대행 및 총리를 역임했으며,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다. -
주오 대학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
오키나와현 출신 -
후나코시 기친
오키나와 출신의 후나코시 기친은 쇼토칸 가라테의 창시자로서, 여러 거장에게 가라테를 수련하고 일본 본토에 가라테를 보급하며 "당수"를 "공수도"로 개칭하는 등 일본화와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저서와 "이십계"를 통해 쇼토칸 가라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오키나와현 출신 -
구시켄 요코
구시켄 요코는 일본 오키나와현 출신의 전 프로 복싱 선수로, WBA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을 13차 방어하며 일본 복싱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은퇴 후에는 해설자 및 탤런트로 활동하며 2014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생애
1944년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태어났다. 1968년 주오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직장인, 학원 원장, 교회 목회자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1996년 주페루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 당시에는 페루 정부와 게릴라를 설득하겠다며 오키나와에서 페루로 날아가기도 했다.
1997년 세계경제공동체당을 창당하고 기노완시 시장 선거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나고시 시장 선거 등에 입후보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002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때는 "오키나와 현민이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를 차기 오키나와현 지사로 뽑지 않는다면 세계경제공동체당 본부를 도쿄로 옮기겠다. 이것은 오키나와 현민의 수치다."라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낙선했다.
2003년 공약대로 당 본부를 도쿄로 이전했다. 이후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선거 홍보물과 정견방송에서의 "고이즈미 준이치로(당시 경쟁 후보)는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 "마타요시 예수가 지옥불 속으로 던져 넣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화제를 모았다. 2004년부터는 세계경제공동체당의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 홍보도 병행하였다.
2018년 6월 30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같은 해 7월 20일 암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1944년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1963년 류큐 정부립 후텐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주오 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후, 도쿄의 상사 및 설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형인 마타요시 타츠오는 전 오키나와현 총무부장과 기노완시 부시장을 역임했다. 마타요시 미쓰오는 졸업 후 직장인, 학원 원장, 교회 목회자 등 여러 직업을 두루 거쳤다. 1996년 주페루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 당시에는 페루 정부와 게릴라를 설득하겠다며 오키나와에서 페루로 날아가기도 했다.
2.2. 정치 입문
1996년에 있었던 주페루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 당시 오키나와현에서 페루로 가서 페루 정부와 게릴라를 설득하려 했다. 이때 오키나와현 정책 조정관이었던 형 다츠오도 정보 수집을 위해 페루에 들어갔다.
1997년 세계경제공동체당을 창당하고 기노완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2회), 2001년 기노완시 시장 선거, 2002년 나고시 시장 선거 등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1998년 일본 참의원 의원 선거까지는 '마타요시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선거 공보에는 본명(마타요시 미쓰오) 또는 '신 예수=마타요시 미쓰오'로 표기했다. 2002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는 "오키나와 현민이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를 차기 오키나와현 지사로 선출하지 않으면, 세계경제공동체당 본부를 도쿄로 옮기겠다. 이는 오키나와 현민의 후손 대대로 수치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으나 낙선했고, 실제로 2003년 당 본부를 도쿄로 이전했다.
2.3. 도쿄에서의 활동
2002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후, 2003년에 세계경제공동체당 본부를 도쿄로 이전했다. 이후 도쿄에서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에 지속적으로 출마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선거 홍보 포스터와 정견방송에서의 과격한 발언들, 예를 들어 "고이즈미 준이치로(당시 경쟁 후보)는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 "마타요시 예수가 지옥불 속으로 던져 넣을 것이다" 등은 큰 화제를 모았다. 2004년부터는 세계경제공동체당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홍보도 병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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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타요시 미쓰오가 도쿄에서 출마한 선거 목록이다.
2013년 산케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으로 자금이 바닥났습니다"라는 발언이 보도되어 은퇴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후 인터뷰 등에서 이를 부정하였다.
2018년 6월 30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정치 활동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 7월 20일, 암으로 사망했다.
3. 정치 활동 및 주장
1996년 주 페루 일본 대사관저 점거 사건 당시 마타요시 미쓰오는 게릴라와 페루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오키나와에서 페루로 갔다. 이때 오키나와현 정책 조정관이었던 그의 형 다츠오도 정보 수집을 위해 페루에 들어갔다. 1997년 세계 경제 공동체당을 설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마타요시 미쓰오는 1997년 기노완시 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2회), 2001년 기노완시 시장 선거, 2002년 나고시 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1998년 참의원 선거까지는 "마타요시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고, 선거 공보에는 본명(마타요시 미쓰오)이나 "신 예수=마타요시 미쓰오"로 표기했다. 2002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오키나와 현민이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를 차기 오키나와현 지사로 만들지 않으면, 세계 경제 공동체 본부를 도쿄로 가져가겠다. 이는 오키나와 현민의 자녀와 손자, 증손자, 더 나아가 후손 대대로 오키나와현의 수치가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낙선했고, 2003년에 실제로 당 본부를 도쿄도로 이전했다.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도 제1구), 2004년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도쿄도 선거구),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구)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007년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도쿄도 선거구)에서는 낙선했지만, 신당 프리웨이 클럽의 와고 히데노리를 제치고 10번째 선거 만에 처음으로 최하위를 벗어났다.
2008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구)에 출마할 것을 발표, 2009년 입후보하여 9명 중 8위(718표)로 낙선했다. 2010년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도쿄도 선거구)에서는 4,900표를 얻어 낙선했지만, 와고 히데노리와 "신당 본질"의 사노 히데미쓰를 제치고 24명 중 20위를 기록, 2007년 참의원 선거에 이어 최하위를 면했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구), 2013년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 (도쿄 선거구), 2014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구)에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3.1. 주요 공약 및 주장
세계경제공동체당 대표 마타요시 미쓰오는 자신을 유일신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며, 독특한 정치적, 종교적 공약을 제시했다.
* 정치 및 경제:
* 일본 내각총리대신 및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전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 농업 기반의 자급자족 경제 시스템 구축을 주장했다.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 반대했다.
* "공평·평등의 원리·원칙"에 따른 "공동 소유·생산·소비제" 경제를 주장한다.
* 국제 관계:
* 독도,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에 대한 일본 영유권을 주장했다.
* 오키나와를 포함한 모든 해외 미군 기지 철수를 요구했다.
* 사회 및 문화:
* 외국인의 영주권 및 귀화에 반대하며, 비일본계 민족의 본국 송환을 주장했다.
* 장기 이식 및 유도 만능 줄기 세포(iPS 세포) 연구에 반대했다.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 및 동성 결혼에 반대했다.
* 불륜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도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종교:
* 자신을 유일신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칭하며, 부패한 자들을 지옥불에 던져 심판하겠다는 종교적 주장을 펼쳤다.
마타요시는 선거 유세에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립 후보는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책임을 져라"는 뉘앙스라고 한다. 조지 W. 부시에 대해서는 미국에 할복 풍습이 없으므로 "단두대에서 목을 쳐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3.2. 선거 운동 방식
마타요시 미쓰오는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여러 선거에 출마했지만, 단 한 번도 당선되지 못했다. 그는 상대 후보에게 할복을 요구하거나 지옥불에 던져 넣겠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으로 유명했다. 대부분의 일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확성기가 장착된 미니밴을 타고 선거 운동을 했지만, 가부키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로 선거 구호를 외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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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공보나 선거 포스터에는 "마타요시 예수는 유일신이다", "대립 후보는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문구가 있었다. 2ch 등의 전자 게시판이나 개인 뉴스 사이트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4년 9월 18일에는 세계경제공동체당 공식 웹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마타요시 미쓰오가 선거 운동 중 사용한 발언의 예시이다.
* "○○○○(대립 후보자명) 등은 타인을 죽이고, 전 인류를 죽이는 자들이므로, 그들의 책임은 당연히 죽음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들은 할복하여 죽어야 한다."
* "또한 그들은 그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무책임한 악인이며,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께서 지옥불 속에 던져 넣을 자들이다."
*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할복하여 죽어야 함이 당연하며, 또한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께서 그러한 유권자를 당연히 지옥불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 "자세한 이유는 선거 공보 등으로 숙지해야 한다."
조지 W. 부시에 대해서는 미국에는 할복 풍습이 없기 때문에 "단두대에서 목을 쳐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행복실현당의 타나카 준코에 대해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할복하여 죽어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2007년 참의원 선거 이후에는 정견 방송에서 자신의 경제 정책을 설명하는 온건한 내용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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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책임을 묻고 추궁함으로써 비로소 올바르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진정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2002년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정견 방송에서)
* "일본이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다." (2007년 참의원 선거 정견 방송에서)
3.3. 논란
마타요시 미쓰오는 선거 공보나 선거 포스터에 "마타요시 예수는 유일신이다", "대립 후보는 배를 갈라 죽어야 한다" 등과 같은 과격한 문구를 사용해 2ch 등의 전자 게시판과 개인 뉴스 사이트 등에서 화제가 되었다. 조지 W. 부시에 대해서는 미국에는 할복 풍습이 없기 때문에 "단두대에서 목을 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견 방송에서도 과격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지만, 2007년 참의원 선거 이후에는 자신의 경제 정책을 설명하는 비교적 온건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마타요시 미쓰오의 주요 발언 내용이다.
* 2005년 중의원 선거 유세 중 요사노 가오루에게: "요사노, 말한 책임지고 죽어라. 책임은 없는가! 배 갈라 죽어라. 지지하지 마라. 뭐가 감사합니다냐. 헛소리 하지 마라. 성실함도 없고, 책임도 없고, 뭐가 요사노냐. 바보 아냐."
* 2007년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오쓰지 가나코에게: "오쓰지 가나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부끄러운 줄 모르나."
* 2009년 중의원 선거 유세 중 우미에다 만리에게: "우미에다 만리. 우미에다 만리. 책임감은 없는가. 책임감은 없는가. (중략) 왜 웃고 있는 거야!! 부끄러운 줄 몰라!! 우미에다 만리, 당신 때문에 매일 5만 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다. 일본인 맞잖아 너. 배 갈라 죽어. 좋아!! 지옥불 속이다. 우미에다 만리. 무책임해!! 그게 빠져 있는 거겠지."
* 2013년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오구라 준에게: "오구라 준, 오구라 준, 듣고 있나. (중략) 논리 없는 바보, 손 치워라. 오구라 준, 배 갈라 죽어라. 부끄러운 줄 모르나, 바보. 낯가죽을 벗겨라, 오구라 준. 논리 없는 부끄러움 없는 바보, 일본에서 나가라. 일본은 이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의 것이다. 무책임 바보 오구라 준, 일본에서 나가라."
* 2013년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스즈키 노부유키에게: "스즈키 노부유키! 스즈키 노부유키! 포스터에 쓰여 있는 대로다! 일본인이라면, 어서 배 갈라 죽어!"
* 2013년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야마모토 타로에게: "책임을 지고, 어서 배를 갈라 죽어라. 일본인이 아닌가. (중략) 세계를 지킬 수 있는가. (중략) 마이크를 버려라." (야마모토는 "마타요시 왔다!", "적을 잘못 보고 있다, 마타요시! 싸워야 할 상대는 여기에 없다, 마타요시!", "너는 지킬 수 있나, 나는 지키고 싶다! 마타요시는 어떻냐, 지킬 생각은 있나!" 등으로 응수)
또한, 마타요시 미쓰오는 불륜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병이 아닌가."라며 사회의 악이라고 비판하고, 도덕이 교육의 기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YouTube나 세계경제공동체당 웹사이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세계경제공동체당
1997년 마타요시 미쓰오가 '세계 경제 공동체'를 목표로 설립한 정치 단체이다. 당 차원의 종교적 활동은 하지 않는다.
도쿄도 신주쿠구 시모오치아이 1-3-19 제3마르조 빌딩 4층에 당 본부가 있다. 오키나와현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기노완시에 당 본부가 있었다.
활동 자금은 마타요시 대표가 소유한 후텐마 기지 내의 보상금과 지지자의 기부로 충당하고 있다.
2018년 6월 30일, 공식 사이트에서 마타요시 대표의 건강 악화로 인한 정치 활동 중단과 함께 당의 정치 활동 중단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10월 말 당 공식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게재되었던 콘텐츠의 일부는 "[https://matayoshi.nobody.jp/ 유일신 마타요시 예수주의를 후세에 전하는 회]" 페이지로 이전되었다.
5. 저서
又吉イエス唯一神は日本と世界をどうするか일본어 (나하출판, 2003년 5월 31일)
6. 과거 선거 결과
마타요시 미쓰오는 1997년부터 2017년까지 총 17번의 선거에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 선거일 | 선거 이름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후보자 수 | 낙선율(%) | 비고 |
|---|---|---|---|---|---|---|---|
| 1997년 7월 13일 | 기노완시 시장 선거 | 516표 | 1.9% | 3위 | 3명 | 2.77 | 몰수 |
| 1998년 7월 14일 | 제18회 참의원 선거 (오키나와현 선거구) | 4,007표 | 0.7% | 5위 | 5명 | 1.64 | 몰수 |
| 1998년 11월 15일 |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 2,649표 | 0.4% | 3위 | 3명 | 0.70 | 몰수 |
| 2001년 7월 15일 | 기노완시 시장 선거 | 2,111표 | 9.0% | 2위 | 2명 | 9.94 | 몰수 |
| 2002년 2월 3일 | 나고시 시장 선거 | 80표 | 0.3% | 3위 | 3명 | 0.39 | 몰수 |
| 2002년 11월 17일 |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 4,330표 | 0.8% | 4위 | 4명 | 1.20 | 몰수 |
| 2003년 11월 9일 | 제43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698표 | 0.3% | 5위 | 5명 | 0.66 | 몰수 |
| 2004년 7월 11일 | 제20회 참의원 선거 (도쿄도 선거구) | 8,382표 | 0.2% | 11위 | 11명 | 1.01 | 몰수 |
| 2005년 9월 11일 | 제44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1,557표 | 0.6% | 4위 | 4명 | 1.03 | 몰수 |
| 2007년 7월 29일 | 제21회 참의원 선거 (도쿄도 선거구) | 5,289표 | 0.1% | 19위 | 20명 | 0.77 | 몰수 |
| 2009년 8월 30일 | 제45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718표 | 0.2% | 8위 | 9명 | 0.50 | 몰수 |
| 2010년 7월 11일 | 제22회 참의원 선거 (도쿄도 선거구) | 4,900표 | 0.1% | 20위 | 24명 | 0.74 | 몰수 |
| 2012년 12월 16일 | 제46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1,011표 | 0.4% | 8위 | 9명 | 1.23 | 몰수 |
| 2013년 7월 21일 | 제23회 참의원 선거 (도쿄도 선거구) | 5,633표 | 0.1% | 19위 | 20명 | 0.92 | 몰수 |
| 2014년 12월 14일 | 제47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1,416표 | 0.6% | 6위 | 6명 | 1.32 | 몰수 |
| 2016년 7월 10일 | 제24회 참의원 선거 (도쿄도 선거구) | 6,114표 | 0.1% | 21위 | 31명 | 1.20 | 몰수 |
| 2017년 10월 22일 | 제48회 중의원 선거 (도쿄도 제1구) | 1,307표 | 0.6% | 6위 | 6명 | 1.4 | 몰수 |
그는 괴상한 선거운동으로 유명했는데, 상대 후보에게 할복을 하고 게헨나로 던져 버리겠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일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대형 확성기가 장착된 규격 소형 미니밴을 타고 선거운동을 했지만, 가부키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로 선거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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