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포르스 37 mm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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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포르스 37 mm 포는 스웨덴의 보포스사가 주로 수출을 목적으로 개발한 대전차포이다. 1930년대 초 개발이 시작되어 1934년 보병포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개량형이 대전차포로 사용되었다. 이 포는 가볍고 높은 발사 속도를 특징으로 하며,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되었으나, 더 강력한 장갑을 갖춘 전차의 등장으로 인해 효용성이 감소했다. 덴마크, 핀란드, 폴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면허 생산 및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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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포르스 37 mm 포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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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류 | 대전차포 |
| 원산지 | 스웨덴 |
| 설계 년도 | 1934년 |
| 생산 년도 | 1935년 – |
| 무게 | 370 kg (816 lbs) |
| 전체 길이 | 3.04 m |
| 포신 길이 | 1.6 m (45 구경) |
| 너비 | 1.09 m |
| 높이 | 1.03 m |
| 포탄 | Fixed QF 37×258 mm R |
| 포탄 무게 | 0.74 kg |
| 구경 | 37 mm (1.45 in) |
| 작동 방식 | 수직 슬라이딩-블록 |
| 포가 | 분할 트레일 |
| 발사 속도 | 분당 12발 |
| 포구 초속 | 800–870 m/s (2,625-2,854 ft/s) |
| 사거리 | 4,000 m (4,374 yds) |
| 최대 사거리 | 6,500 m (7,108 yds) |
| 부앙각 | -10° ~ 25° |
| 좌우 사각 | 50° |
| 사용 정보 | |
| 사용 국가 | 운용국 참고 |
| 생산 정보 | |
| 제조사 | 보포스 |
2. 개발사
스웨덴의 보포스 사는 1920년대 초부터 독일 크루프 사의 설계를 바탕으로 대전차포 개발을 시작했다. 여러 시제품 개발과 시험을 거쳐 1930년대 초, 스웨덴 군의 요구에 따라 구경 37mm의 신형 대전차포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 포는 독일 라인메탈 사의 3.7 cm 탁(Tak) 포(3.7 cm Pak 36의 전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
1932년 첫 시제품이 제작되었고, 1934년까지 개발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머즐 브레이크 채용 등을 통해 성능을 개선하고 무게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완성된 포는 반자동 수직 슬라이딩 미닫이식 폐쇄기, 서스펜션과 바퀴가 달린 분리형 포가, 그리고 승무원 보호를 위한 5mm 두께의 방패 등을 갖추었다.
1934년 스웨덴 육군은 이 포를 '37mm infanterikanon m/34'라는 이름의 보병포로 정식 채용했으며, 1938년에는 개량형인 '37mm pansarvärnskanon m/38' 대전차포를 채용했다.
보포스 37mm 포는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1935년 네덜란드가 12문을 주문하며 첫 구매 국가가 되었고,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 포를 도입했다.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는 면허를 얻어 직접 생산하기도 했다.
2. 1. 초기 개발
보포스 사의 대전차포 개발 역사는 19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포스 사의 기술자들은 독일의 크루프 사 설계도를 바탕으로 구경 37mm 대전차포 시제품을 제작했다. 이 시제품은 훌륭하게 제작되었지만, 보포스 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개량된 포를 개발하여 스위스에서 시험에 참가시켰으나 채택되지는 못했다. 시험 1년 후, 보포스 사는 구경 47mm 대전차포를 개발하여 폴란드에 판매하려 했지만, 폴란드군은 시험 후 바로 채용하지는 않았다.이후 보포스 사는 시제품 47mm 포를 기반으로 새로운 포를 개발했다. 이 포는 구경 47mm 또는 75mm 포신을 선택하여 탑재할 수 있었으며, 47mm는 대전차포, 75mm는 경야포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포신 교환을 더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구경 37mm 또는 81mm 포신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도 개발되었다. 이 시제품 포는 1928년 태국에서 시연되었다. 만주 사변의 발발을 계기로 중화민국이 1933년에 37/81mm 포 13문을 구매했으며, 태국 또한 1934년에 47/75mm 포 30문을 구매했다.
현재 문서의 주제인 37mm 포는 주로 수출을 목적으로 스웨덴의 제조업체인 보포스(Bofors)에서 처음 설계되었다. 이는 라인메탈의 3.7 cm Tak( 3.7 cm Pak 36의 전신)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 첫 번째 시제품은 1932년에 제작되었으며, 개발 과정은 1934년까지 계속되었다. 네덜란드가 1935년에 12문을 주문하며 이 포를 처음으로 구매했고, 그 뒤를 여러 국가가 따랐다. 면허 생산은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폴란드에서 이루어졌다.
포신은 일체형이었으며, 반자동 수직 슬라이딩 폐쇄기와 작은 머즐 브레이크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서스펜션과 고무 타이어가 장착된 금속 바퀴가 있는 분리형 포가에 장착되었다. 승무원을 소화기와 포탄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 포에는 접이식 하부판이 있는 5mm 두께의 방패가 장착되었다.
2. 2. 1930년대 개발
이 포는 주로 수출을 목적으로 스웨덴의 제조업체인 보포스에서 처음 설계되었다. 1930년대 초, 스웨덴은 보포스사에 구경 37mm의 신형 대전차포를 발주했고, 보포스사는 1931년에 개발을 시작했다. 이 포는 독일의 라인메탈이 개발한 3.7 cm Pak 36의 전신인 3.7 cm 탁(Tak)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첫 번째 시제품은 1932년에 제작되었다. 초기 시제포는 반동을 억제하기 위해 무게가 800kg에 달했지만, 다공식 머즐 브레이크 개발로 무게를 400kg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말에 의한 수송을 고려하여 전체를 11개의 부품으로 분해할 수 있었으며, 분해에는 약 4분이 소요되었다. 말에 의해 견인될 경우, 견인 상태에서 사격 태세로 전환하는 데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전차포로서의 성능은 1000m 거리에서 30도로 경사진 20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었다. 개발 과정은 1934년까지 계속되었다.
포의 포신은 일체형이었으며, 반자동 수직 슬라이딩 폐쇄기와 작은 머즐 브레이크를 갖추고 있었다. 서스펜션과 고무 타이어가 장착된 금속 바퀴가 있는 분리형 포가에 장착되었다. 승무원을 소화기와 포탄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접이식 하부판이 있는 5mm 두께의 방패(방순)가 장착되었으며, 특징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프로토타입 개발은 1932년까지 완료되었으며, 약간의 개량을 거쳐 1934년에 "37mm infanterikanon m/34"라는 이름의 보병포로 스웨덴 육군에 정식 채용되었다. 1938년에는 더욱 개량된 형태인 "37mm pansarvärnskanon m/38"이 대전차포로 채용되었다. m/38은 와이어 스포크가 달린 바퀴와, 위장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상부를 불규칙한 파형으로 만든 방순으로 m/34와 구별된다.
네덜란드가 이 포를 처음으로 구매했으며, 1935년에 12문을 주문했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이 포를 구매했으며,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폴란드에서는 면허 생산도 이루어졌다.
2. 3. 채용
이 포는 주로 수출을 목적으로 스웨덴의 보포스(Bofors)사에서 처음 설계되었다.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사의 3.7 cm 탁(Tak) 포(3.7 cm Pak 36의 전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2] 1931년 스웨덴의 주문을 받아 개발이 시작되었고, 첫 시제품은 1932년에 만들어졌으며, 개발은 1934년까지 계속되었다.초기 시제품 포는 반동을 줄이기 위해 무게가 800kg에 달했지만,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머즐 브레이크를 개발하여 무게를 400kg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말을 이용한 수송을 고려하여 포 전체를 11개의 부품으로 4분 안에 분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말이 끄는 상태에서도 사격 준비까지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전차포로서의 성능도 뛰어나, 1000m 거리에서 30도로 기울어진 20mm 두께의 장갑판을 뚫을 수 있었다.
포신은 하나로 된 구조였고, 반자동으로 작동하는 수직 미닫이식 폐쇄기와 작은 머즐 브레이크가 달려 있었다. 포는 서스펜션과 고무 타이어가 달린 금속 바퀴가 있는 분리형 포가에 얹혔다. 포를 운용하는 병사들을 총알이나 포탄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접이식 아래쪽 판이 달린 5mm 두께의 방패가 장착되었다. 이 방패는 특징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1934년 스웨덴 군은 이 포를 '37mm infanterikanon m/34'(m/34 보병포)라는 이름으로 정식 채용했다. 4년 뒤인 1938년에는 더욱 개량된 형태가 '37mm pansarvärnskanon m/38'(m/38 대전차포)로 채용되었다. m/38은 바퀴에 와이어 스포크가 있고, 위장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방패 윗부분이 불규칙한 물결 모양으로 만들어진 점이 m/34와의 차이점이다.
스웨덴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이 포를 사용했다. 네덜란드가 1935년에 12문을 주문하며 처음으로 구매했고, 이후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 면허 생산 방식으로 직접 만들기도 했다.
3. 제원 및 성능
(상세 내용은 아래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