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보
1. 개요
서일보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성왕후 상사 때 관직에 등용되어 영조, 정조, 순조 시대에 걸쳐 활동했다. 그는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으며, 특히 정조는 서일보를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봉사손으로 예우했다. 1804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순조에 의해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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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출생 -
대니얼 분
대니얼 분은 1734년에 태어나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이끌며 사냥, 탐험, 정착 활동을 했고, 윌더니스 로드를 개척하고 분즈보로 마을을 건설했으며, 미국 독립 전쟁에도 참여하여 버지니아 주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820년에 사망했다. -
1734년 출생 -
로버트 모리스
로버트 모리스는 영국 태생의 미국 독립 전쟁 시기 상인이자 정치인으로, 미국 독립 선언서, 연합 규약, 미국 헌법 모두에 서명하고, 대륙군 재정 지원, 북미 은행 설립, 미국 재무 감독관 역임 등 미국 재정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으나, 말년에는 토지 투기 실패로 불운을 겪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정치인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생애
서일보는 서종제의 아들 서명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서덕수이고, 아버지는 신천군수를 지낸 서유호(徐有祜)이며, 어머니는 남익명(南益明)의 딸 의령남씨이다. 1757년(영조 33년) 빈전도감에 참여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활동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영조 시대 활동'과 '정조 시대 활동'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1802년(순조 2년) 돈녕부도정에 다시 임명되었고, 1804년(순조 4년) 호조참의에 추증되었으나, 이는 이미 그해 1월 3일에 사망한 뒤였다.
2.1. 영조 시대 활동
1757년(영조 33년) 2월 정성왕후의 상사 때 빈전도감에 참여하였으며, 2월 16일 영조가 그를 특별히 불러들여 별군직에 임명하여 관직에 임용되었다. 6월 5일에는 정성왕후의 상사에 참여한 이들을 포상할 때 반숙마 1필을 하사받았다. 1758년(영조 34년) 9월 7일 휘령전참봉에 임명되었다. 당시 그는 전라도용담현에 있다가 발령받고 부임하였으므로 충의의 한명현(韓命玄)이 대신 가(假)참봉에 임명되어 그의 임무를 대행하였다. 그해 12월 29일 신병으로 입직을 서지 못해 추고를 받았다. 1759년(영조 35년) 2월 3일 돈녕부주부가 되었고, 2월 11일 돈녕부참봉이 되었다가 같은 날 6품으로 승진했다. 1759년 7월 19일 장례원사평(司評), 12월 28일 돈녕부판관을 지냈다.
1761년(영조 37년) 9월 24일 진안현감으로 부임했다가 1762년(영조 38년) 9월 사직하고 되돌아왔다. 그해 12월 21일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763년(영조 39년) 7월 28일 고양군수로 부임하였다가 1765년 5월 5일 면직되고 함경도 북청부로 유배되었다. 1765년(영조 41년) 6월 22일 제용감주부로 복직되어 되돌아왔다. 7월 21일 강원도 평강현감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면직되었다. 그해 윤 7월 5일 탄핵당했고, 윤 7월 20일 곤장 80대형을 받았다.
1767년(영조 43년) 달성부원군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서용되었고, 창덕궁위장이 되었다. 1769년(영조 45년) 2월 22일 병조의 추천으로 부사과에 임명되었다. 1771년(영조 47년) 12월 5일 장악원주부에 임명되고, 1772년(영조 48년) 7월 28일 한성부서윤, 1773년(영조 49년) 2월 28일 청풍부사로 부임하였다. 1775년(영조 51년) 병조판서 이휘지, 참판 홍낙인 등의 추천으로 행 부사과에 임명되어 되돌아왔다.
2.2. 정조 시대 활동
1776년(정조 즉위) 3월 7일 도감 낭청이 되고, 정조 즉위 후 같은 해 7월 28일 영조의 묘호, 시호 등을 올리는데 관여한 관료들을 포상할 때 부사과로 반숙마 1필을 하사받았다. 8월 11일 세자시강원 분익위(分翊衛)에 임명되었다가 10월 26일 평창 군수로 부임하였다. 1778년(정조 2년) 1월 24일 의릉령(懿陵令)으로 발령되었다.
1779년(정조 3년) 4월 4일 장악원첨정에 임명되었고, 5월 5일 경모궁 제관과 영우원 제관을 겸직하였다. 같은 해 12월 2일 이조의 천거로 해주판관으로 부임하였다. 정조가 즉위한 뒤에도 그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이라 하여 정조가 그를 특별히 지우하였다.
1783년(정조 7년) 1월 19일 사복시주부에 임명되었고, 1785년 판관, 1791년(정조 15년) 12월 7일 병조의 추천으로 부사과가 되었다. 12월 22일 돈녕부주부에 임명되었다. 1792년(정조 16년) 2월 13일 장악원첨정에 임명되었고, 4월 2일 금산 군수를 역임하고 1794년 2월 12일 사퇴하였다. 그가 사직하자 정조는 경관직을 그에게 제수하라고 특별 지시하였다. 같은 해 2월 12일 돈녕부판관이 되었다. 1796년(정조 20년) 5월 29일 사재감첨정에 임명되었고, 7월 19일 다시 돈녕부판관이 되었다. 같은 날 정조는 그가 서종제의 봉사손이라 하여 통정대부로 발탁하고, 7월 20일 돈녕부도정에 임명되었다.
1796년 12월 20일 공조참의 겸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1797년(정조 21년) 6월 13일 공조참의 겸 부호군에서 면직되고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12월 7일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