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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부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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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흥부대부인 민씨는 1818년에 태어나 1898년에 사망한 인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인이자 고종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여흥 민씨이며, 인현왕후의 6대손이다. 1831년 흥선군과 혼인하여 2남 2녀를 낳았으며, 고종 즉위 후 부대부인에 봉해졌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피신시키기도 했다. 1907년 흥선대원군이 헌의대원왕으로 추존되면서 순목대원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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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부대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조선의 부대부인
재위 기간1864년 1월 16일 – 1898년 1월 8일
전임완양 부대부인
후임왕조 및 칭호 폐지
인물 정보
민치구
배우자흥선 대원군(1831년 결혼–1898년)
자녀이씨 부인
이재면, 흥친왕
이명복, 고종 (대한제국)
이씨 부인
이씨 부인
출생일1818년 3월 9일
출생지한성 양덕방 지구, 조선
사망일1898년 1월 8일 (79세)
사망지한성 용산방 공덕리 지구, 조선
묻힌 곳흥선대원묘 (현재 흥원);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본관여흥 민씨 (출생)
가문전주 이씨 (결혼)
종교천주교
작위명
초명여흥부대부인 (1864년–1898년)
추존순목대원비 (1898년–1907년)
또 다른 이름순목대원왕비
순목왕비

2. 생애

1831년(순조 31년), 14세의 나이로 남연군의 넷째 아들인 흥선군 이하응과 혼인하였다.[11] 남편 이하응이 흥선부정과 흥선정에 봉해지면서 신인(慎人, 정3품 종친의 처)과 신부인(慎夫人, 정3품 당상 종친의 처)으로 봉작되었고, 1843년(헌종 9년) 이하응이 흥선군으로 진봉되면서 민씨 역시 현부인으로 진봉되었다. 흥선군과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다.

신정왕후흥선군과 민씨의 둘째 아들 재황(고종)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益成君)의 군호를 내리고 왕으로 즉위시켰다.[13] 이에 흥선군이 왕의 사친으로 대원군에 봉작되면서 민씨 또한 대원군의 부인에게 부여하는 부대부인의 작호를 하사받고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에 봉작되었다.[14]

1864년 고종 즉위 후, 여흥부대부인은 천주교 신자로, 일과문(日課文)을 읽었으며, 운현궁에서 감사 미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에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표면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아내의 천주교 신앙을 묵인하였다.[15][16]

1886년(고종 23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으로 조선 내에서 천주교의 포교가 허용되자, 1896년 파리 외방전교회뮈텔 주교의 집전하에 세례를 받고 세례명 '마리아'를 받았다.

1882년(고종 19년) 6월,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와 밀린 월급 문제로 불만이 쌓인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이때 부대부인은 자신이 타고 온 사인교(가마)에 명성황후를 숨겨 장호원으로 피신시켰다.[17] 한편, 부대부인의 동생 민겸호는 난병들에게 살해당했다.[17]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출병한 청나라 군대는 흥선대원군톈진으로 압송했다.

1898년(광무 2년) 1월 8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8] 1907년 흥선대원군이 헌의대원왕으로 추존될 때 여흥부대부인 또한 '''순목대원비'''로 추존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흥원으로 흥선대원군과 합장되었다.

2. 1. 출생과 가계

1818년(순조 18년) 한성부 양덕방(陽德坊)에서 아버지 민치구와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11] 본관은 여흥이며,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의 6대손이다. 어머니 이씨는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후손으로, 철종 대에 역모죄로 사사당한 이하전의 고모이다.

남동생 민승호민치록의 양자로 입적되어,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의 양오빠가 되었다. 막내 남동생 민겸호선혜청 당상으로 부정부패를 일삼다 임오군란 당시 군인들에게 피살되었다.

2. 2. 흥선군과의 혼인

1831년(순조 31년), 14세의 나이로 남연군의 넷째 아들인 흥선군 이하응과 혼인하였다.[11] 남편 이하응이 흥선부정과 흥선정에 봉해지면서 신인(慎人, 정3품 종친의 처)과 신부인(慎夫人, 정3품 당상 종친의 처)으로 봉작되었고, 1843년(헌종 9년) 이하응이 흥선군으로 진봉되면서 민씨 역시 현부인으로 진봉되었다. 흥선군과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다.

2. 3. 부대부인 봉작과 고종 즉위

신정왕후흥선군과 민씨의 둘째 아들 재황(고종)을 익종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益成君)의 군호를 내리고 왕으로 즉위시켰다.[13] 흥선군이 왕의 사친으로 대원군에 봉작되면서 민씨 또한 대원군의 부인에게 부여하는 부대부인의 작호를 하사받고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에 봉작되었다.[14]

1864년 가을, 이명복은 고종으로 즉위했고, 남편 흥선군은 대원군의 작위를 받았으며, 민씨는 여흥부대부인이 되었다.

2. 4. 천주교 신앙

여흥부대부인은 천주교 신자로, 일과문(日課文)을 읽었으며, 아들 재황이 임금이 되자 운현궁에서 감사 미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에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표면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아내의 천주교 신앙을 묵인하였다.[15][16]

병인박해 당시, 부대부인은 아들 고종의 유모이자 천주교 신자인 박 마르타를 통해 베르뇌 주교와 접촉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86년(고종 23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으로 조선 내에서 천주교의 포교가 허용되자, 1896년 파리 외방전교회뮈텔 주교의 집전하에 세례를 받고 세례명 '마리아'를 받았다.

2. 5. 임오군란과 그 이후

1882년(고종 19년) 6월,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와 밀린 월급 문제로 불만이 쌓인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명성황후를 군란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궁궐에 난입하여 왕비를 찾으려 했다. 이때 부대부인은 자신이 타고 온 사인교(가마)에 명성황후를 숨겨 장호원으로 피신시켰다.[17] 한편, 부대부인의 동생이자 선혜청 당상이었던 민겸호는 난병들에게 살해당했다.[17] 그는 명성황후와 함께 민씨 척족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임오군란 진압을 위해 출병한 청나라 군대는 흥선대원군톈진으로 압송했다.

2. 6. 사망

1898년(광무 2년) 1월 8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8] 1907년 흥선대원군이 헌의대원왕으로 추존될 때 여흥부대부인 또한 '''순목대원비'''로 추존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흥원으로 흥선대원군과 합장되었다.

3. 가족 관계

아버지민치구(1795년 ~ 1874년)
어머니전주 이씨
형제자매
배우자흥선대원군 이하응(1820년 ~ 1898년)
자녀


4.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등장하는 작품

참조

[1] 서적 承政院日記: 순종 https://books.google[...] King Sejong the Great Memorial Business Association 1994
[2] 웹사이트 여흥부대부인민씨(驪興府大夫人閔氏)우여곡절 많은 생애 https://m.blog.naver[...] Naver 2019-08-08
[3]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2021-04-26
[4] 문서 고종실록 3권, 3년(1866 병인 / 청 동치(同治) 5년) 3월 6일(을축) 2번째기사
[5] 서적 Korea's Place in the Sun: A Modern History W.W. Norton & Company 2005
[6]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2021-04-26
[7] 서적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 경인문화사 2007-04
[8] 서적 매천야록 일문서적 2011
[9] 웹사이트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 2021-04-26
[10] 서적 매천야록 일문서적 2011
[11] 문서 순목대원비원지(純穆大院妃園誌)
[12] 문서 "《[[철종실록]]》 15권, 철종 14년(1863년 청 동치(同治) 2년) 12월 8일 (경진)\n----'''대왕대비전에서 흥선군의 제2자에게 사위를 시킬 것을 명하다'''"
[13] 문서 "《[[고종실록]]》 1권, 고종 즉위년(1863년 청 동치(同治) 2년) 12월 8일 (경진)\n----'''대왕대비가 국상 중에 정사를 대리할 사람을 정하고 철종의 뒤를 흥선군의 두 번째 아들로 정하다'''"
[14] 문서 "《[[고종실록]]》 1권, 고종 즉위년(1863년 청 동치(同治) 2년) 12월 9일 (신사)\n----'''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의 임명장이 내리다'''\n----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에게 봉작하였다. 하비(下批)로 제수한 것이다."
[15] 서적 한국 근대사 산책 1 인물과 사상사 2011-03-31
[16] 서적 한국 기독교회의 역사(상) 2008-07-30
[17] 서적 매천야록 일문서적 2011
[18] 문서 "《[[고종실록]]》 37권, 고종 35년(1898년 대한 [[광무 (연호)|광무]](光武) 2년) 1월 8일\n----'''여흥부대부인이 훙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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