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앵글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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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은 6세기 앵글인들의 브리튼 섬 진출로 건국되어 오늘날의 노퍽, 서퍽, 캠브리지셔 지역을 지배했다. 7세기에는 우핑가스 왕조가 번성했으나, 794년 머시아 왕국에 종속되었고, 869년 데인족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918년에는 웨섹스 왕국에 정복되어 잉글랜드 왕국에 통합되었다. 이스트앵글리아는 앵글로색슨 시대에 중요한 왕국 중 하나였으며, 초기 기독교화와 데인족의 정착 등 잉글랜드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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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앵글리아 왕국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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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고유 명칭 | ang: Ēastengla Rīċe la: Regnum Orientalium Anglorum |
일반 명칭 | 이스트 앵글리아 왕국 |
상태 | 독립 왕국 (6세기–794년; 796년–기원후 799년경; 825년–869년) 머시아의 속국 (794년–796년; 기원후 799년경–825년) 데인로의 일부 (869년–918년) |
정부 형태 | 군주제 |
종교 | 앵글로색슨족 이교 (7세기 이전) 기독교 (7세기 이후) |
공용어 | 머시아 앵글리아 방언 고대 노르드어 (데인족 통치 기간) |
지도 | |
![]() | |
역사 | |
시작 | 6세기 |
종료 | 918년 |
사건 시작 | 건국 (6세기) |
주요 사건 | 머시아의 속국화: 654년 - 655년, 794년 - 796년, 798년 - 825년 데인인의 왕국 (데인인의 속국): 869년 - 918년 |
사건 종료 | 웨식스 왕국에 합병 (918년) |
이전 국가 | 후기 로마 브리튼 |
이후 국가 | 잉글랜드 왕국 |
수도 | |
수도 | 렌델셤 도모크 |
통치자 | |
초대 왕 | 웨하 |
주요 왕 | 레드왈드 (593년 - 623년) |
마지막 왕 | 구드룸 2세 (902년 - 918년) |
상징 | |
상징 | 세 개의 황금 왕관 |
기타 | |
화폐 | 알 수 없음 |
참고 문헌 | 이스트 앵글리아 (EB1911) |
2. 역사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은 6세기 초 웨하를 초대 왕으로 하여 형성되었다.[53] 그의 뒤를 이은 우파의 이름을 딴 우핑가스 왕조가 749년까지 왕국을 다스렸다.
이스트앵글리아의 래드왈드 왕(593년경-624년경) 통치 시기, 이스트앵글리아는 강력한 앵글로색슨 왕국 중 하나였다. 많은 학자들은 우드브리지 인근 서튼후의 배무덤에 묻힌 인물이 래드왈드 왕이라고 추정한다. 래드왈드 사후, 이스트앵글리아는 머시아 왕국의 지배를 점차 받게 되었다. 시게버트 (641년 전사) 등 래드왈드의 후계자들은 전투 중 사망하기도 했다.
794년 애설버트 2세가 머시아인들에게 살해당한 후, 이스트앵글리아는 825년까지 독립을 잃었다. 796년 애드왈드 치세에 잠시 독립을 되찾았으나, 곧 다시 머시아에 복속되었다. 869년 바이킹과의 전투에서 순교왕 에드먼드가 전사할 때까지 왕국은 존속했다. 879년 이후 바이킹은 이스트앵글리아에 영구 정착했다.
903년, 망명 중이던 애슬링의 애설울드는 이스트앵글리아의 데인족을 부추겨 대 애드워드에게 전쟁을 일으켰다. 917년, 데인족의 패배 이후 이스트앵글리아는 에드워드에게 복속되어 잉글랜드 왕국에 통합되었고, 이후 백작령이 되었다.
2. 1. 초기 정착과 앵글로색슨족의 도래 (5세기)
이스트앵글리아 지역은 대략 5세기 초,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먼저 앵글로색슨족이 정착한 곳으로 추정된다.[54] 이스트앵글리아는 옛 이케니족의 영역과 케이스터세인트에드먼드 근처 벤타 이케노룸을 중심지로 한 로마의 키비타스라는 대략적인 위치에서 정치적 결합으로 생겨났다.[55] 4세기경 이스트앵글리아가 된 지역은 인구가 어느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켄 다크는 "최소한 이 지역 내, 더 넓게는 잉글랜드 동부의 넓은 지역들이 모든 '작은 마을'들을 포함하여 4세기 말에 버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착지의 위치, 규모 또는 성격상에 국한된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유기라고 생각된다."라고 썼다.[56]베다에 따르면, 동앵글인들 (그리고 중앵글인, 머시아인, 노섬브리아인)은 앙겔른반도 (현재 독일 지역) 출신이다.[57] 동앵글인에 대한 첫 언급은 대략 704년-713년 사이에 ''Life of St Gregory''에서다.[58] 고고학 및 언어학적 증거들은 유럽 대륙의 게르만족 화자들의 대규모 이주 및 정착이 일어났음을 보여주지만,[59] 모든 이주민들이 스스로를 앵글족이라고 규정했는지는 의문이다.[60][61]
동앵글인들은 중세 이후 역사가들에게 칠왕국이라고 알려진 7개 왕국들 중 하나를 형성했는데, 이는 12세기에 헌팅던의 헨리가 사용한 용어이다. 몇몇 현대 역사가들은 7개 왕국들이 동시대에 존재했는지에 의심하며 정치적 상황이 훨씬 복잡했을 것이라 주장한다.[62]
2. 2. 우핑가스 왕조와 기독교화 (6-8세기)
웨하가 동앵글리아의 초대 왕으로 기록되고, 그 뒤를 우파가 이었다.[53] 749년까지 이스트앵글리아의 왕들은 반신화적인 인물인 우파의 이름을 딴 우핑가스 왕조 출신들이었다. 래드왈드의 재위 당시인 7세기 초에, 앵글로색슨 왕국들은 평화로운 상태였다. 기독교 신자로 세례를 받은 첫 이스트앵글리아의 왕인 래드왈드는 우드브리지 인근 서튼후에서 배무덤 양식으로 묻힌 인물이라고 많은 학자들에게 여겨진다.
794년에 애설버트 2세가 머시아인들에게 사망하고부터 825년까지,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은 796년에 애드왈드의 잠깐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독립 왕국으로서 기능을 상실했었다. 바이킹들이 전투에서 이스트앵글리아군과 전투 중에 전사한 순교왕 에드먼드를 패배시킨 869년까지 왕국은 남아있었다. 879년 이후 바이킹들은 이스트앵글리아에 영구적으로 정착했다. 903년에 추방당한 애슬링의 애설울드가 이스트앵글리아의 데인인들에게 자신의 조카인 대 애드워드에게 전쟁을 일으키게끔 부추겼다. 데인족들의 계속된 패배가 이어진 후인 917년경에 이스트앵글리아는 에드워드에게 복속되었고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되었으며, 이후 백작령이 되었다.
동앵글인들은 초기에는, 분명하게 우파 왕의 이름을 따서 이름지어진 우핑가스 왕조 (비록 우파의 이름이 "늑대의 후손들"을 뜻하는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한 후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55])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 왕조는 전통 신앙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의 초기 역사와 이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자료가 비드의 『잉글랜드 민족 교회사』이기는 하지만,[63] 비드는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의 왕들의 연대기나 이들의 재위 시기에 대해선 전하지는 않았다.[64]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의 권력의 중심이 서퍽주의 동부인 스네이프와 서튼후에 있는 배무덤 집결지라는 점을 제외하면, 초기 왕들이나, 왕국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노스퍽과 사우스퍽은 초기 동앵글리아 왕들이 도착하기 전에 있었을 수도 있다.[65]
『잉글랜드 민족 교회사』에 따르면, 우핑가스 왕조의 왕 중 가장 강력했던 이는 "우파를 아버지로 두었던 티틸의 아들" 래드왈드였다고 한다.[55] 7세기 초 짧은 기간에, 래드왈드의 통치를 받던 이스트앵글리아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의 왕국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으며, 비드는 그를 험버강 이남에 있는 왕국들의 대군주로 묘사했다.[66] 앵글로색슨 연대기에는 그를 브레트왈다로 지칭하고 있다. 616년에, 그는 노섬브리아의 왕 애설프리트를 리버이들 전투에서 패배시켜 전사시키고 노섬브리아의 에드윈을 왕위에 앉힐 만큼 강력했다.[67] 그는 서튼후에 있는 사치스러운 배무덤으로써, 개인적인 영예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68] 우핑가스 왕조가 동부 스웨덴의 왕족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며, 서튼후에 있는 봉분 1호에서 발견된 유물과 스웨덴의 벤델에서 발견된 유물들 간의 공통점의 정도를 증거로, 블레어가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이전엔 스웨덴에서 왔다고 여겨졌던 유물들은 현재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며, 우핑가스 왕조가 스웨덴을 기원으로 했다는 것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69]

앵글로색슨 기독교는 7세기에 자리를 잡았다. 전통신앙이 대체된 그 정도는 옛 신들의 이름에서 붙여진 이스트앵글리아 정착지들의 부족이라는 점으로써 잘 나타나있다.[70]
604년에 래드왈드는 세례를 받은 첫 이스트앵글리아의 왕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 제단을 유지하긴 했지만, 동시에 전통 신들을 섬기는 걸 계속했다.[75] 전통신앙을 믿던 군주들이 잠시 켄트와 에식스로 돌아갔던 616년부터 래드왈드가 사망할 때까지 이스트앵글리아는 세례를 받은 왕이 군림한 유일한 앵글로색슨 왕국이었다. 624년 무렵에 래드왈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외르프왈드가 계승했으며, 그는 얼마 안 있어 에드윈의 영향으로 전통신앙에서 개종했지만,[55] 그의 새 종교는 명백히도 이스트앵글리아에서 반대에 직면했고 외르프왈드는 전통신앙자인 리치버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배교가 일어난 지 3년 뒤, 기독교는 외르프왈드의 형제 (혹은 이복형제)이자 프랑키아에서 망명 중에 세례를 받은 시거브뤼트의 왕위 계승과 함께 널리 퍼졌다.[71] 시거브뤼트는 아마 더니스로 추정하는 돔모크에 부르군트의 펠릭스가 관장하는 최초의 이스트앵글리아 주교좌의 설립을 목격했다.[72] 그는 이후 형제 에크그리크를 위해 왕위에서 물러나 수도원에서 은퇴했다.[73]
안나의 세 딸, 에델드리드, 웬드레다, 엘리의 색스부르는 수도원 창립과 관련이 있다.
우핑가스 왕조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이름 | 재위 기간 | 비고 |
---|---|---|
웨하 | ||
우파 | ||
티틸라 | ||
래드왈드 | 593년 - 623년 | 브레트왈다 |
에알프왈드 | 623년 - 628년 | |
시게베르트 | 631년 - 634년 | |
안나 | 635년 - 654년 | |
에텔레레 | 654년 - 655년 | |
에텔왈드 | 655년 - 664년 | |
에알드울프 | 664년 - 713년 | |
엘프왈드 | 713년 - 749년 |
2. 3. 머시아의 압력과 쇠퇴 (8-9세기)
7세기 중반부터 9세기 초까지 머시아의 세력이 커져 템스 강에서 험버 강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머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이스트앵글리아 역시 여기에 포함되었다.[74] 640년대 초, 펜다는 에크그리크와 시게버트를 전투에서 패퇴시키고 전사시켰다.[75] 시게버트는 이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76] 에크그리크의 후임자 안나와 그의 아들 유르민(Jurmin)은 654년 블리스버러 인근인 벌캠프 전투에서 전사했다.[77] 펜다는 안나의 도전을 벗어나 이스트앵글리아를 머시아에 종속시켰다.[78] 655년 이스트앵글리아의 애설헤레는 위네드 전투에서 펜다와 함께 오스위를 상대로 싸웠으나, 이 전투에서 머시아군이 대패하면서 펜다와 애설헤레 모두 전사했다.[79]마지막 우핑가스 왕조 출신 왕은 749년에 사망한 앨프왈드였다.[80] 7세기 말과 8세기 동안 이스트앵글리아는 계속해서 머시아의 패권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794년, 머시아의 오파는 이스트앵글리아의 왕 애설버트를 처형한 뒤에 이스트앵글리아의 지배권을 장악했다.[81] 796년에 오파가 죽은 뒤, 애드왈드 치하에서 동앵글리아의 독립이 일시적으로 부활했지만, 새로운 머시아의 왕 코엔울프에게 진압되었다.[82]
이스트앵글리아의 독립은 825년에 애설스턴이 이끈 반머시아 반란으로 되찾았다. 머시아의 지배력을 회복하려는 머시아의 베오른울프의 시도는 베오른울프의 패배와 전사로 이어졌고, 그의 후임자 루데카도 827년에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동앵글인들은 웨식스의 에그버트에게 머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요청했고, 애설스턴은 에그버트를 자신의 대군주로 받아들였다. 웨식스는 8세기에 머시아에 흡수당한 이스트앵글리아의 남동부 지역의 지배권을 가져가는 한편, 이스트앵글리아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83]
2. 4. 바이킹의 침략과 데인로 편입 (9세기)
865년에 이스트앵글리아는 덴마크의 이교도 대군세의 침입을 받았다. 이들은 겨울 주둔지를 점령하고 노섬브리아로 떠나기 전에 말을 확보했다.[84] 덴마크인들은 869년에 테트퍼드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돌아왔고, 그 후 이스트앵글리아의 에드먼드 군대에 공격을 받아 ''Hægelisdun''에서 패배하여 사망했다. 이 지명은 983년에는 베리세인트에드먼즈와 근처에 있던 브래드필드세인트클레어, 985년경에 Hægelisdun라고 기록됐던 노퍽주의 헬리스던 혹은 서퍽주의 학슨[85], 그리고 현재는 에식스의 맬든 등 다양한 곳으로 여겨진다.[55][86][87] 에드먼드의 죽음 이후 그는 '순교자'로 알려졌으며 수호성인으로 존경받았고 버리 세인트 에드먼즈 마을이 그곳에 세워졌다.그 이후 이스트앵글리아는 사실상 독립 왕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이스트앵글리아인들을 물리친 덴마크인들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통치할 허수아비 왕들을 세웠고, 머시아와 웨섹스에 대한 공세를 재개했다.[88] 878년, 대 이교도 군대의 마지막 활동 부대는 앨프레드 대왕에게 패배했고, 평화를 맺고 덴마크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에 동의한 후 웨섹스에서 철수했다. 알프레드와 구스룸 사이의 조약은 후자의 이스트앵글리아에서의 토지 소유를 인정했다. 880년 바이킹들은 중세 역사가 폴린 스태포드에 따르면, "영토 왕국과 그 부속물, 동전 주조를 포함하여" 구스룸 아래 이스트앵글리아로 돌아왔다.[89]
이스트앵글리아의 전통적인 영토와 함께, 캠브리지셔와 베드퍼드셔와 허트퍼드셔의 일부를 포함하여 구스룸의 왕국은 아마도 덴마크의 지배를 받은 웨섹스의 한 부분인 에식스를 포함했을 것이다.[90] 880년대 어느 시점에 알프레드와 구스럼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91]
스칸디나비아의 통제하에, 이스트앵글리아에는 '-토프', '-비'와 같은 고대 노르드 요소가 있는 지명을 가진 정착지가 있다.
903년에 망명한 애슬링의 애설울드는 이스트앵글리아 데인족이 사촌인 대 애드워드에게 치명적인 전쟁을 걸도록 유도했다. 917년, 덴마크의 연이은 패배 이후 이스트앵글리아는 에드워드에게 복종했고,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되었다.
2. 5. 잉글랜드 왕국으로의 통합 (10세기)
10세기 초, 이스트앵글리아의 데인족은 웨섹스의 왕 에드워드의 압박을 받았다. 902년, 왕위 찬탈에 실패하여 추방당한 에드워드의 사촌 애설월드는 노섬브리아에 머물다 에식스에 도착했다. 그는 잉글랜드의 일부 또는 모든 데인족에게 왕으로 받아들여졌고, 903년에 이스트앵글리아의 데인족을 부추겨 에드워드에게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902년 12월 펜스 전투에서 애설월드와 외흐리크의 죽음으로 재앙으로 끝났다.[92]911년부터 917년까지 에드워드는 험버 강 이남의 잉글랜드 전역으로 통제력을 확대하여, 에식스와 머시아에 부르크를 설치했다.[93] 917년, 이스트앵글리아에서 데인족의 입지가 갑작스럽게 붕괴했다. 잇따른 패배는 에식스의 나머지 영토와 더불어 노샘프턴과 헌팅던 지역의 상실로 이어졌고, 아마도 이스트앵글리아의 데인족 왕이 템스퍼드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부터의 지원군에도 불구하고, 데인족의 반격은 격퇴당했고, 에드워드의 군대로서 많은 잉글랜드 봉신들의 파견군들이 도착하자, 이스트앵글리아와 케임브리지의 데인족들은 항복했다.[94]
이스트앵글리아는 잉글랜드 왕국으로 흡수되었다. 노퍽과 서퍽은 1017년 크누트 대왕에 의해 장신의 토르켈이 백작으로 임명되었을 때 새로운 이스트앵글리아 백작령의 일부가 되었다.[95] 복원된 교구는 과거 두 개의 이스트앵글리아 주교좌가 노스엘럼에 있는 하나의 주교좌로 대체되는 걸 겪었다.[55]
3. 지리
스투어강이 역사적으로 남쪽의 동색슨인들과 분리하고 있는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은 북쪽과 동쪽으로는 북해를 접하고 있었다. 역사가 리처드 호게트는 북해가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북부를 잇는 번영하는 해상 연결로"를 제공했다고 설명한다.[101] 서부 경계는 우즈강, 러크강, 케넷강부터 현재 캠브리지셔에 있는 더 서쪽의 캠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최대 영토일 때는, 오늘날의 노퍽, 서퍽과 캠브리지셔의 동부 일부로 이뤄졌었다.[101]
동부 국경의 침식과 북부 해안가의 퇴적은 로마와 앵글로색슨 시기의 이스트앵글리아의 해안선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는 지속되고 있다). 북부 해안가에선, 북해가 저지대인 펜스 지역을 범람시킨다. 해수면이 내려가면서, 충적층이 커다란 강 어귀 근처에 쌓였고 부르크성 근처 "Great Estuary"는 커다란 사주로 인해 고립되었다.[102]
4. 고대 이스트앵글리아 방언
이스트앵글리아인들은 고대 영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5세기에 브리타니아섬에 도착한 최초의 게르만족 정착자들 중 하나였기에 이들의 언어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Kortmann and Schneider에 따르면 이스트앵글리아 지역은 "이 세상에서 영어가 사용된 최초의 장소라고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다."라고 한다.[96]
고대 영어 방언에 대한 증거는 문헌, 지명, 인명, 주화 등에서 등장한다.[97] A. H. Smith는 노섬브리아, 머시아, 웨스트 색슨, 켄트 방언 외에도 별도의 고대 이스트앵글리아 방언이 존재한다고 처음으로 인식했다. 그는 이런 방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인정했고, "고대 영어의 방언에 대한 언어학적 경계들이 보장된 안정성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라고 시인했다.[98] 이스트앵글리아의 필사본, 고대 영어 비문 혹은 인가서 같은 문헌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아, 방언의 존재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 1930년대에 Von Feilitzen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둠스데이 북'' 속의 많은 지명들에 대한 기록이 "결국에는 토착 자문원단의 증거를 근거"로 하고 따라서 앵글로색슨 장소와 인물들에 대한 형태는 방언의 방식으로서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99] ''둠스데이 북''과 이후 사료에서 증거는 방언 경계가 한때 존재했고, 캠브리지셔 (한때 드물게 살았던 펜스를 포함해서), 노퍽, 서퍽 등의 지역이 이웃한 잉글랜드의 주들과 차별되는 표현이 일치한다는 점을 암시한다.[100]
5. 군주 목록
이스트앵글리아 군주 목록 문서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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