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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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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타코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주로 활동했던 시각 장애 여성 무당을 지칭하는 말이다. 신과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여겨졌으며, 맹인 여성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타코는 다양한 의례를 수행했는데, 특히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구치요세(口寄せ) 의식이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에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유족들의 요청으로 다시 활동했다. 현대에는 이타코의 수가 감소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의 무형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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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코
기본 정보
샤미센을 연주하는 시각 장애인 여성, 1898년경 일본
샤미센을 연주하는 시각 장애인 여성, 1898년경 일본
다른 이름이치코 (市子)
오가미사마 (オガミサマ)
유형일본의 여성 영매
성별여성
특징엄격하게 시각 장애인
어원
어원'이타다키코 (頂き子)' 또는 '호토리코 (寄り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역할
주요 역할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
신탁 제공
점술
종교적 연결일본 불교, 신토, 민속 신앙
지역적 분포
주요 활동 지역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
후쿠시마현
기타 지역이바라키현 (특히 이타코시)
나가노현
니가타현
의식 및 훈련
훈련 시작 시기어린 나이에 시작 (대개 11-13세)
훈련 내용암송
금욕
순례
결혼일반적으로 결혼하지 않음
영적 능력 획득 의식'카미오로시 (神降ろし)' 또는 '후도오로시 (不動降ろし)'라는 입문 의식을 거침.
사용하는 도구샤미센
염주

문화적 중요성
중요성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
전통 문화 보존
관광 자원
현대 사회의 변화수가 감소하고 고령화됨
대중 문화에 등장 (영화, 소설 등)
참고 문헌
참고 문헌Breen, John; Teeuwen, Mark (2013). Shinto in History: Ways of the Kami. Routledge. ISBN 9781136827044.
Josephson, Jason Ānanda (2012). The Invention of Religion in Japa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SBN 9780226412351.
Blacker, Carmen (1997). Religion in the Japanese experience : sources and interpretations (2nd ed.). Belmont, CA: Wadsworth Pub. Co. pp. 130–135. ISBN 0534524613.
관련 항목
관련 항목무녀
미코
유타 (오키나와의 무당)
영매
애니미즘
관련 정보
관련 정보일본어 위키백과 문서 참조

2. 어원

이타코(イタコ)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오키나와의 유타(ユタ)와 음운론적 공통성을 가지는 점, 「신을 받들다」라는 뜻의 「이쓰쿠」(斎く)가 변한 이치코(イチコ)에서 변화했다는 설, 신의 위탁을 하는 위탁무녀라는 설, 아이누어에서 「말하다」라는 뜻의 「이탁」(イタㇰ)에서 변화했다는 설, 신내림 무구(巫具) 중에 널빤지(板, 이타)가 있었다는 설 등이 통설이다.[40]

"이타코"라는 용어는 거지와 연관되어 있어, 일부 무당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거부한다.[7] 한 이론에 따르면 이 용어는 일본의 부라쿠민 계급을 지칭하는 "에타노코", 즉 "에타의 아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계급은 한때 죽음과 연관되었다.[7] 다른 가능한 유래로는, 죽은 자의 이름을 의식적으로 쓰는 데 사용되는 나무 조각, 즉 ''이타''의 사용이 있다.[7]

''이타코''(당시에는 ''이타'')는 고대 나라 시대의 시집인 ''만요슈''의 시 #1773에서 처음 언급된다.[8] 인류학자 빌렘 쉬퍼는 맹인 여성을 무속신앙으로 끌어들이는 관행에 대한 지역 전설을 설명한다. 이 전설에 따르면, 이 관행은 불특정 시대에 맹인 아이들이 5년마다 살해되던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지역 관리는 맹인 여성의 시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묘사하는 능력에 감명을 받아, 맹인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들을 살해하는 대신 강령술을 공부하도록 압박했다.[22]

''이타코''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아키타현에서 이 여성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지역에 따라 용어가 다를 수 있다. 또한 남부 이와테현과 미야기현에서는 흔히 ''오가미사마''라고 불리며, 야마가타현에서는 ''미코, 모고도, 오나카마'' 또는 ''와카''라고 불리고, 후쿠시마현, 도치기현, 이바라키현에서는 ''와카''라고 불린다.[19]

야나기타 구니오는 아이누어로 "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의미의 itak설이나, 미쿠라이타케노카미(御倉板挙神)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의 신격화가 아닌가 하는 설 등을 소개하면서, 이타코의 어원은 "이츠키(斎)"이며, 그것이 원래의 의례를 따르면서 몰락하여 신에게 쫓겨 방랑하게 된 자의 일부[35]가 이타코, 에치코, 이타카, 이치코, 모리코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했다.

3. 역사

이타코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활동하는 무녀의 일종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대화하는 구치요세(口寄せ) 의식으로 유명하다. 이타코는 영적인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심리 상담적인 역할도 수행하며, 고객의 마음을 읽는 능력(일종의 콜드 리딩)이 필요하다.[39] 원래 이타코는 같은 씨족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축제에 불려가 죽은 자나 조상의 영혼의 말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타코는 점을 칠 때 염주를 사용하며, 일부는 교령(交靈) 시 아즈사유미(梓弓)라는 활 모양의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왜금(倭琴)이나 (태고) 등이 사용되는데, 이는 일본 고대 음악의 흔적으로, 일본 전통 음악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에 걸쳐 무녀 조직인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39] 대화종에서는 구치요세에 인경(引磬)이라는 쇠방울을 사용하며, 무녀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 활과 복숭아나무, 버드나무를 두고 의례 공간을 꾸민다.

구치요세는 영적인 감응을 통해 다양한 인종이나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린 먼로의 영혼을 불러왔을 때,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답한 사례도 있다.

이타코는 구치요세 외에도 오시라사마 신앙과 관련된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지낼 책임을 진다. 오시라아소바세는 오시라사마의 신체(神体)인 두 개의 인형을 놀게 하는 의식으로, 이타코가 각 가정의 가족을 대신하여 오시라 제문(おしら祭文)을 낭독한다.

오키나와현가고시마현 아마미 군도에서는 유타라는 영능력자들이 이타코와 유사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은 관혼상제 자체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이타코는 근대 이전 일본 사회에서 시각 장애가 영적인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시각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주로 맡았다.[12] 에도 시대에는 시각 장애 여성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어린 소녀(11~13세) 때부터 민간 신앙 훈련을 받아 신과 결혼하고 영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춘 이타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1] 그러나 이타코는 공동체 내에서 가장 낮은 사회 계층 중 하나로 여겨졌다.[19]

이타코는 에도 시대의 야마부시(yamabushi) 숭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8] 9~10세기 구마노 산맥으로 순례를 떠난 야마부시 승려들은 부적을 팔고 혼절을 통해 죽은 자를 불러내는 아내를 두었다. 북부 지방의 여성들은 신사 무녀(miko)의 춤과 의식을 수행했다.[8] 시간이 지나면서 두 그룹이 합쳐져 현대적인 이타코가 되었다.[8]

1873년, 메이지 시대 정부는 현대 의학 도입을 장려하기 위해 이타코와 구치요세 의식을 금지하려 했다.[2] 당시 약 200명의 이타코가 활동하고 있었다.[10] 이 법으로 인해 일본 전역의 무당들이 체포되었고, 1875년에는 이타코와 그들의 치유 의식이 특별히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체포될 수 있었다.[2] 체포 이유는 미신 전파, 의료 행위 방해 등이었다.[4] 당시 신문 보도는 이타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매춘부와 연관 짓는 경향이 있었다.[4]

그러나 대중의 지지는 계속되었고, 1945년 일본 항복 직전과 직후에는 많은 가족들이 전쟁 사망자와 소통하기 위해 이타코를 찾았다.[4] 전쟁 직전에는 이타코에게 해외 군인들과의 "산 자의 강신술"(ikiguchi)을 요청하기도 했다.[4] 당시 지식인 오리쿠치 시노부는 아오모리현의 이타코는 다른 현의 무당과 달리 "금지 대상이 아니며", "박해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언급했다.[4] 지역 주민들이 이타코 체포를 방해했다는 보도도 있었다.[4]

오늘날, 소수의 이타코들은 매년 본 축제(오본) 기간 동안 오소레 산에 모인다.[5] 이 모임은 1960년대부터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타코는 여러 유물을 소지하는데, 여기에는 게호바코(보호 영이나 가미를 나타내는 비밀 물품이 들어 있는 상자),[22][14] 검은 원통(보호 부적과 이타코 훈련 증명서가 들어 있으며, 대나무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음),[22][14] 이라타카 넨주(의식에 사용되며 구슬과 동물 뼈로 만들어짐)가 포함된다.[22][14] 뼈는 주로 사슴이나 여우의 턱뼈이지만, 곰 이빨, 독수리 발톱, 조개 껍데기 등도 사용되었다.[14]

"이타코"라는 용어는 거지와 연관되어 있어 일부 무당들은 이 용어 사용을 거부한다.[7] 이 용어는 일본의 부라쿠민 계급을 지칭하는 "에타노코"("에타의 아이")에서 유래했다는 설과,[7] 죽은 자의 이름을 쓰는 데 사용되는 나무 조각인 ''이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7]

''이타코''(당시에는 ''이타'')는 고대 나라 시대의 시집인 ''만요슈''의 시 #1773에서 처음 언급된다.[8] 인류학자 빌렘 쉬퍼는 맹인 여성을 무속신앙으로 끌어들이는 관행에 대한 지역 전설을 소개하는데, 이 전설에 따르면 맹인 아이들이 5년마다 살해되던 시대에 한 지역 관리가 맹인 여성의 능력에 감명을 받아 맹인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고 판단하고, 살해 대신 강령술을 공부하도록 했다고 한다.[22]

''이타코''는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아키타현에서 이 여성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이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와테현 남부와 미야기현에서는 ''오가미사마'', 야마가타현에서는 ''미코, 모고도, 오나카마, 와카'', 후쿠시마현, 도치기현, 이바라키현에서는 ''와카''라고 불린다.[19]

이타코는 부적을 쫓는 의식, 악마를 쫓는 의식, 벌레를 쫓는 의식, 마귀를 쫓는 의식, 몸의 부적 등을 행할 때 이라타카 염주를 사용한다.[25] 이라타카 염주는 300개 이상의 검은 무크로지 열매를 연결하고, 사슴 뿔, 멧돼지 어금니, 곰 발톱, 매 발톱, 여우나 늑대의 턱뼈 등을 붙인 것이다.[25] 쓰가루 지방에서는 이타코가 아즈사 활의 현을 대나무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내고 영혼을 활에 깃들게 한 후, 자신의 몸에 빙의시키는 형태도 보였다.[25]

도카이도 주히자쿠리게 등에 등장하는 이치코[26]는 히타치[27]나 교토·오사카 지방에서는 "신사에 앉아 끓는 물을 내리는" 무녀를 칭하지만, 도쿄 근처에서는 이타코와 같은 무녀를 가리킨다.

오키나와현이나 가고시마현 아마미 제도에는 유타라는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비슷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장례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도호쿠 지방의 무녀 습속
지방명칭무형 민속 문화재
선택 연월일
아키타현이타코1983년 12월 16일[28]
아오모리현쓰가루 지방1979년 12월 7일[29]
난부 지방
이와테현
구 센다이 번 (구 이치노세키 번) 영역오가미사마1982년 12월 21일[30]
미야기현1981년 12월 24일[31]
후쿠시마현미코사마1980년 12월 12일[32]
야마가타현무라야마 지방오나카마1978년 12월 8일[33]


4. 종류

이타코는 영적인 힘을 가진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심리 상담적인 면도 크다. 고객의 심정을 읽어내는 콜드 리딩 능력은 필수적이다. 본래는 죽은 자나 조상의 영혼과 산 사람을 중개하며, 같은 씨족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축제에 불려 죽은 자와 조상의 말을 전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39]

이타코는 점을 칠 때 염주를 사용하지만, 일부는 영혼을 부를 때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사용되는 악기는 아즈사유미(梓弓)라고 불리는 활 모양의 악기이다. 이 외에도 왜금(倭琴)이나 태고 등도 사용된다. 이러한 악기들은 농촌 신앙 등에서 사용된 일본 고대 음악의 흔적으로 보이며, 일본 전통 음악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의 무녀 조직인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유래가 있다고 한다.[39] 대화종에서는 구치요세 도구로 인경(引磬, 쇠방울)을 사용하며, 무녀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 활과 복숭아나무나 버드나무를 두고 의례 공간을 갖춘다.

구치요세는 영적 감응에 따라 다양한 인종,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린 먼로의 구치요세를 할 때, 마릴린 먼로의 영혼은 완전한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답하기도 했다.

구치요세 외에도 이타코는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지낼 책임이 있다. 오시라아소바세는 도호쿠 지방의 민간 신앙인 오시라사마의 신체(神体)인 두 개의 인형을 놀게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서 모셔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타코가 가족을 대신하여 오시라 제문을 낭독한다.

이타코는 부적, 악마, 벌레, 마귀를 쫓는 의식이나 몸의 부적을 만들 때 이라타카 염주를 사용한다.[25] 이라타카 염주는 300개 이상의 검은 무크로지 열매를 연결하고, 암수 사슴 뿔, 멧돼지 어금니, 곰 발톱, 매 발톱, 여우 턱뼈나 늑대 등 야수 뼈를 붙인 것이다.[25] 쓰가루 지방에서는 이타코가 아즈사 활의 현을 가는 대나무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내고, 영혼을 아즈사 활에 깃들게 하여 자신의 몸에 빙의시키는 형태도 있었다고 한다.[25]

도카이도 주히자쿠리게 등에 등장하는 이치코[26]는 히타치[27]나 교토·오사카 지방에서는 "신사에 앉아 끓는 물을 내리는" 무녀를 뜻하지만, 도쿄 근처에서는 이타코와 같은 무녀를 가리킨다.

오키나와현가고시마현 아마미 제도에는 유타라는 재야의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비슷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장례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가미사마는 다른 무녀 집단과 유사점을 보인다. 가미사마와 이타코는 모두 영과의 결혼을 믿으며, 후도 묘오를 따른다.[5] 그러나 가미사마는 시현을 보이며, 일반적으로 외상성 질병 이후 예언 능력을 주장한다.[5] 이타코와 달리, 그들은 작은 신토 신사와 연관되어 있으며, 신사를 직접 운영할 수도 있다. 가미사마는 이타코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지만, 민족지학자들은 가미사마가 종종 자신들을 이타코 및 이타코 전통과 연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5]

도호쿠 지방의 무녀 습속
지방명칭무형 민속 문화재 선택 연월일
아키타현이타코1983년 12월 16일[28]
아오모리현쓰가루 지방1979년 12월 7일[29]
난부 지방
이와테현
구 센다이 번 (구 이치노세키 번) 영역오가미사마1982년 12월 21일[30]
미야기현1981년 12월 24일[31]
후쿠시마현미코사마1980년 12월 12일[32]
야마가타현무라야마 지방오나카마1978년 12월 8일[33]


5. 의례

이타코는 신과 죽은 자 모두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여겨지며[3], 연결된 영혼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3] 의례는 현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풍작을 기원하거나 조언을 얻기 위해 신령과 소통하고, 특히 최근에 죽은 망자의 영혼과 소통하기 위해 불려진다.[3] 의식은 전통적으로 죽은 자의 조상 집에서 열렸지만,[3] 메이지 정부의 압력을 피해 오소레 산으로 물러났다는 증거도 있다.[9]

의례는 신토 관행을 활용하지만, 대부분 불교 신을 부른다.[10] 일부 이타코의 염불은 요시다 신토의 비밀 수행과 유사하며, 이세 신궁에서의 수행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8] 이타코는 쓰가루 방언과 모든 일본 원어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금기어"[9]를 사용하여 의식을 수행한다. 따라서 쓰가루 방언을 이해하는 현지인들이 이타코의 통역사로 고용되기도 한다.[9] 민속학자들은 이를 통해 이타코가 떠난 영혼과의 소통을 개인화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9]

水子供養|미즈코 쿠요일본어는 출산 중이거나 낙태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를 위해 수행되는 의식이다.[1] 불교적 성격을 가진 이 의식은 태어나지 못한 아이나 사산된 아이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지장보살의 보호를 요청한다. 1960년대에 시작된 비교적 최근의 의식으로, 슬픔에 잠긴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 행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1948년 일본의 낙태 합법화로 인해 생긴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의견도 있다.[15]

이타코는 봄에 여행을 통해 전달되는 새해 축하 행사, 正月えべす|쇼가츠-에베스일본어 염불을 배워야 한다.[8] 이 염불은 불교적 언급(공작새 등)과 일본 국가의 측면을 혼합하며, 학자들은 이 언어가 히닌과 관련된 노래에서 파생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제안한다.[8]

神降ろし|가미오로시일본어 의식은 가족의 신인 오시라스마에게 바쳐지는 음악 공연이다.[20] 이 의식에는 젊은 소녀와 사랑에 빠져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말을 묘사하는 노래가 포함된다. 소녀는 병에 걸리지만 말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인도까지 날아갈 때 치유된다.[8] 이야기는 말과 소녀의 머리가 각 측면에 있는 막대기를 포함한 춤을 통해 전해지며,[8] 이 춤은 에비스 마이, 즉 "재물의 신 춤"으로 알려져 있고, 공연 중에 인형이 신령에게 사로잡힌다고 한다.[14]

이타코는 죽은 자를 소환하는 것과 관련된 현악기인 梓弓|아즈사 유미일본어와 연관되어 있다. 현악기의 강령 의식은 일본 역사의 가장 오래된 문서인 ''고지키''에서 발견되며, 매개체의 빙의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과 관련하여 고토의 소리를 묘사한다. 또 다른 시는 이 악기의 소리를 아내의 영혼이 악기에 깃든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묘사한다.[16] 떠돌이 장님 승려인 ''비와 호시''도 이 악기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16]

''가미오로시'' 의식을 시작하는 창(chant)은 뜯는 활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한다. 이 창은 현을 처음 뜯으면 마을의 신이 내려오고, 두 번째는 현의 신이 내려오고, 세 번째는 일본의 모든 현의 신을 부른다고 선언한다. 추가적인 음은 더 강력한 신들을 소환하며, 이 신들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토지와 영적 영역을 관장한다.[8] 이 신들은 의식의 끝에서 역순으로 되돌려 보낸다.[8]

구술 외에도 이타코는 "오시라 아소바세"를 행하는 역할이 있다. "오시라 아소바세"는, 도호쿠 지방의 민간 신앙인 오시라 님의 어신체인 두 개의 인형을 놀게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 모셔져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 가정의 가족을 대신하여 이타코가 오시라 제문을 읊는다. 야나기타 쿠니오와 오리쿠치 시노부는 오시라사마의 기반인 주걱, 표주박과 국자에 관한 신앙을 "영혼을 모으는 채취물"이자 마나를 모으기 위한 의뢰라고 설명한다.

이타코는 부적을 쫓는 의식, 악마를 쫓는 의식, 벌레를 쫓는 의식, 마귀를 쫓는 의식, 몸의 부적 등에 이라타카 염주를 사용한다.[25] 이라타카 염주는 300개 이상의 검은 무크로지 열매를 연결한 것으로, 암수 사슴의 뿔, 멧돼지의 어금니, 곰, 매, 여우, 늑대 등의 야수 뼈 등을 붙인 것이다.[25] 쓰가루 지방에서는 이타코가 아즈사 활의 현을 가는 대나무 막대기로 쳐서 소리를 내고, 영을 아즈사 활에 깃들게 하여, 그것을 더욱 이타코 자신의 몸에 빙의시키는 형태도 보였다고 한다.[25]

도카이도 주히자쿠리게 등에 등장하는 이치코[26]는 히타치[27]의 나라나 교토·오사카 지방에서는 "신사에 앉아 끓는 물을 내리는" 무녀의 칭호이지만, 도쿄 근처에서는 이타코와 같은 무녀를 가리킨다.

오키나와현이나 가고시마현아마미 제도에는 유타라는 재야의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비슷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쪽은 장례 그 자체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도호쿠 지방의 무녀 습속
지방명칭무형 민속 문화재
선택 연월일
아키타현이타코1983년 12월 16일[28]
아오모리현쓰가루 지방1979년 12월 7일[29]
난부 지방
이와테현
구 센다이 번 (구 이치노세키 번) 영역오가미사마1982년 12월 21일[30]
미야기현1981년 12월 24일[31]
후쿠시마현미코사마1980년 12월 12일[32]
야마가타현무라야마 지방오나카마1978년 12월 8일[33]


5. 1. 구치요세(口寄せ)의 절차

이타코는 영적인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 구치요세(口寄せ)는 심리 상담적인 면이 크다. 이때 고객의 심정을 읽어내는 힘(일종의 콜드 리딩)은 필수적이다. 본래 구치요세는 죽은 자 혹은 조령(祖靈)과 살아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개자로서, 같은 씨족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축제에 불려 죽은 자와 조령의 말을 전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이타코는 점을 칠 때 수주나 염주를 사용하지만, 일부는 교령(交靈) 시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사용되는 악기는 아즈사유미(梓弓)라고 불리는 활 모양의 악기가 많으며, 그 외에 왜금(倭琴)이나 태고 등도 사용된다. 이러한 악기들은 농촌 신앙 등에서 사용된 일본 고대 음악의 흔적으로 보이며, 일본 전통 음악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의 무녀 조직인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39] 대화종에서는 구치요세 시 인경(引磬, 쇠붙이로 된 방울)을 사용하며, 무녀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 활과 복숭아나 버들을 배치하여 의례 공간을 구성한다.

구치요세는 영적 감응을 통해 다양한 인종,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린 먼로의 구치요세를 진행했을 때, 마릴린 먼로의 영(霊)은 완전한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응답하기도 했다.

이타코는 구치요세 외에도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주관할 책임을 진다. 오시라아소바세는 도호쿠 지방의 민간 신앙인 오시라사마(おしら様) 신체(神体)인 두 개의 인형을 즐겁게 하는 의식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서 모시며, 일부 지역에서는 가족을 대신하여 이타코가 오시라 제문(おしら祭文)을 낭독한다.

죽은 자와의 접촉 의식인 口寄せ|kuchiyose일본어는 무형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11] 이 의식은 栄花物語|에이가 모노가타리일본어에 1024년경에 기록되었다.[12]

구치요세 의식은 장례식이나 기일에 거행되지만,[20] 일부 이타코는 죽은 자와 접촉하려면 100일이 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7] 영혼이 사후 자신의 상태를 전달하면, 의뢰인은 미래에 대한 조언과 예언을 받는다.[9]

이타코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과일, 사탕 등의 선물을 가져오며, 고인의 나이, 관계, 성별은 알려주지만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7]

의식 중에는 정화된 쌀과 소금이 뿌려지고, 영혼이 이타코의 몸에 들어온다고 여겨진다.[20] 신들을 불러 원하는 영혼이나 유령이 나타나도록 한다.[20] 죽은 자를 부를 때는 일반적으로 카미(신)부터 시작하여 유령 순서로 영혼의 계층을 역순으로 불러낸다.[3] 이후 의식 참석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 카미를 부른다. 망자를 소환하는 동안(''hotoke oroshi'') 이타코는 ''kudoki''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는 접촉된 영혼이 전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20][13] 죽은 자의 영혼은 삶과 사후의 기억을 공유하고 의뢰인의 질문에 답한다.[7] 그 후 영혼이 떠나면 "지옥, 곤충, 새"에 대한 노래가 불린다.[20][13] 마지막 주문은 "시노다 숲의 늙은 여우는, 낮에 울 때, 밤에는 울지 않는다"이며, 세 번 반복된다.[8] 이러한 상호작용은 약 15분간 지속된다.[7]

1962년, 이타코 의식을 관찰한 민족학자들은 이타코가 죽은 자를 불러낼 때 손을 떨고 특별한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기록했다.[14] 그러나 최근 관찰자들은 이타코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는 시각적 연출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했다. 의식 노래는 일반적으로 여러 의뢰인에게 반복되는데, 이는 이타코가 의뢰인을 연극 배우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타코의 고향인 오소레잔 산 주변 지역의 만성 질환자 6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환자의 35%가 ''kuchiyose''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타코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11]

6. 수행

이타코에게는 영적인 힘을 가진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의 구치요세(口寄せ)는 심리상담적인 면도 크다. 고객의 심정을 읽어내는 힘(일종의 콜드리딩)은 필수적이지만, 본래는 죽은 자 혹은 조령(祖靈)과 살고 있는 자와 교감할 때 중개하는 것으로, 같은 씨족신을 섬기는 무리들의 모임이나 축제 따위에 불려 죽은 자와 조령의 말을 전하는 역할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타코는 점칠 때 수주나 염주를 쓰지만, 일부 이타코는 교령(交靈)할 때에 악기를 쓰기도 하며, 그 때의 악기는 아즈사유미(梓弓)라고 불리는 활 모양의 악기가 많다. 이 외에 왜금(倭琴)이나 태고 따위도 쓰인다. 이들은 농촌신앙 등에서 쓰인 일본의 고대음악의 흔적으로 보이며, 일본의 전통음악사에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의 무녀로 조직된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의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유래가 있다고 한다.[39] 대화종(大和宗)에서는 구치요세의 용구(用具)에는 인경(引磬, 쇠붙이로 된 방울)을 쓰지만, 무녀의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로 된 활과 복숭아나 버들을 두고서 의례공간을 갖춘다.

구치요세는 영적 감작에 따른 여러 가지 인종,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런 먼로의 구치요세를 할 때, 마릴런 먼로의 영(霊)은 완전한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답했었다.

구치요세 이외에도 이타코에게는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지낼 책임이 있다. 오시라아소바세란, 도호쿠의 민간신앙인 오시라사마(おしら様)의 신체(神体)인 두 체의 인형을 놀리는(즐겁게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서 모셔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 가정의 가족의 대신하여 이타코가 오시라 제문(おしら祭文)을 낭독한다.

오키나와현가고시마현 아마미군도에서는 유타라고 하는 재야의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닮은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쪽은 관혼상제 그 자체를 다루는 일도 많다.

이타코는 항상 시각 장애가 있거나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12] 근대 이전의 일본 사회에서 시각 장애는 널리 영적인 능력과 연관되었으며, 불교가 도입된 후에는 업보의 빚의 증거로 여겨졌다.[16] 이러한 믿음은 시각 장애인에게 "모호한 신성한 지위"의 아우라를 부여했다.[16]

에도 시대 동안 여성들은 가족의 수입에 기여해야 했다.[19] 그러나 당시 시각 장애가 있는 여성들은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할 기회가 제한적이었다.[1] 시각 장애와 영적 능력에 대한 평판은 많은 가족들이 어린 소녀(보통 11세에서 13세)에게 민간 종교 전통을 배우도록 했으며, 이 전통에서 어린 소녀는 신과 결혼하여 영과 소통할 수 있었다.[1] 이러한 힘에도 불구하고, 이타코가 된 시각 장애 여성들은 여전히 공동체 내에서 가장 낮은 사회 계층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특히 훈련 자금을 공동체의 지원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랬다.[19]

이타코는 에도 시대의 수도승 숭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9-10세기에 구마노 산맥으로의 대중적인 순례 중에 만날 수 있었던 남성 승려인 야마부시(yamabushi)이다.[8] 이 승려들에게는 부적이 판매되고 혼절을 통해 죽은 자들을 불러내는 아내들이 있었다. 한편, 북부의 여성들은 신사 무녀(miko)의 춤과 의식을 수행했다.[8]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그룹이 합쳐져 현대적인 이타코의 개념을 만들었다.[8]

1873년, 메이지 시대 정부는 현대 의학의 도입을 장려하기 위해 이타코와 그들의 관련 의식인 '구치요세(kuchiyose)'를 금지하려 했다.[2] 당시 약 200명의 이타코가 활동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10] 이 법은 일본 전역의 무당을 체포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1875년까지 이타코와 그들의 치유 의식은 특별히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체포될 수 있었다.[2] 이타코의 체포는 미신 전파, 의료 행위 방해 등의 혐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4] 이러한 체포에 대한 신문 보도는 이타코가 흔히 질병을 환자의 고양이 또는 여우의 빙의로 돌렸음을 나타낸다.[4] 당시 신문 보도는 이타코에 대해 부정적인 용어로 언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타코의 체포와 매춘부의 체포를 종종 연관시켰다. 한 사설은 "이 무녀들은 무모하고 헛된 소문을 쏟아내며, 일반 백성의 주머니를 짜내고, 매춘부들은 부정한 남자들을 유혹하여 돈을 빼앗는다. 직업은 다르지만, 공공의 도덕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재산을 속이는 면에서는 같다."라고 썼다.[4]

그러나 대중의 지지는 계속되었다. 1945년 일본 항복 직전과 직후, 많은 가족들은 특히 해외 전투에서 사망한 전쟁 사망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이타코를 찾았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이타코는 또한 해외 군인들과 "산 자의 강신술"(ikiguchi)을 수행하도록 요청받았다.[4] 당시 지식인 오리쿠치 시노부의 사설은 아오모리현의 이타코는 다른 현의 이타코 및 무당과 달리 "금지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박해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언급했다.[4] 뉴스 기사는 지역 주민들이 눈에 띄는 이타코를 체포하려는 경찰의 시도를 가끔 방해했다고 보도했다.[4]

오늘날, 살아있는 소수의 이타코들은 현지에서 "공포의 산"으로 알려진 오소레 산에서 본 축제(오본) 기간 동안 매년 모인다. 이 모임은 1960년대부터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받았다.[5]

여성들은 보통 초경 전에, 부모님의 권유로 젊은 나이에 ''이타코'' 훈련을 시작한다.[3][19] 일본에 특수 교육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전에는, 맹인 딸이 가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족의 선택이었다.[3] 영매 역할을 하는 것은 시각 장애가 있는 여성들이 지역 마을과 가계에 기여하고 가족에게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용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다.[19]

''이타코'' 훈련은 종종 가족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19] 1920년대와 1930년대 야마가타 현, 아오모리 현, 미야기 현에서 훈련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여성들의 입문 의식의 일반적인 측면이 관찰되었다. 그들은 신토불교 기도문과 경전 암송을 포함한 다양한 실습을 훈련받는다. 훈련에는 일반적으로 차가운 물 정화 목욕이 포함되며,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는 며칠 동안 얼음물에 완전히 지속적으로 담그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3] 이러한 의식은 공동체에 의해 관찰되며, 결혼 신의 빠른 강림을 통해 빠른 해결을 기원한다.[19]

견습 기간은 일반적으로 3년이며, 암기 위주의 훈련과 신체적 정화 의례를 포함한다.[19] 이 기간 동안, 훈련 중인 ''이타코''는 사실상 실제로 활동하는 무당에게 입양되어 그 가족을 위해 가사 일을 한다.[19]

수행식(initiation ceremony)을 앞두고, 이타코는 며칠 동안 흰색 기모노를 입는데, 이는 장례복과 유사하다.[19] 그녀는 곡물, 소금, 고기를 섭취할 수 없으며, 의식 전 3주 동안 인공적인 열을 피해야 한다.[17] 의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불면, 부분적인 굶주림, 극심한 추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묘사된다.[18]

이 과정은 대개 의식 상실로 이어지는데, 이는 부동명왕, 또는 닛텐사마(Nittensama), 또는 다른 어떤 신이 이타코의 몸을 소유하는 순간으로 묘사된다.[3] 어떤 경우, 이타코는 영의 이름을 부르면서 쓰러져야 한다.[19] 다른 경우, 다양한 신들의 이름이 적혀 흩어져 있고, 이타코는 붓으로 그 위를 쓸어내려 그중 하나가 잡히면, 그것이 소유 영의 이름을 나타낸다.[19]

이 시점에서, 결혼식인 '가미즈케시키'(kamizukeshiki)[20]가 입문식으로 수행된다.[3] 이타코 수련생은 붉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붉은 쌀과 생선을 먹으며 영과의 결혼을 축하한다.[3] 이 의식은 이타코의 삶이 짐으로 끝나는 것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그녀의 환생을 알리는 신호로 제시된다.[19]

이타코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거나 약시인 여성의 직업이었다. 일본의 도호쿠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습속·민간 신앙으로, 여름의 오소레산 대제(아오모리현)에서 행해지는 것이 특히 알려져 있다. 아오모리현의 "쓰가루의 이타코 습속"과 아키타현의 "우고의 이타코 습속"은 국가의 선택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맹인이나 약시 여성들이 이타코가 된 것은 과거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생활 환경도 크게 변화해 갔다. 이와 동시에, 혹독한 수행[36]을 필요로 하는 이타코가 되려는 사람은 극히 적어졌다. 그 때문에, 현역 이타코의 대부분은 고령자이다.

호리 이치로에 따르면, 시력이 좋지 않은 아이는 이타코의 스승에게 쌀, 숯을 가지고 입문하여, 1년에서 3년, 혹은 4, 5년 정도, 널빤지 바닥을 치면서 액을 쫓는 문구, 오시라 제문을 배운다. 그리고 실력이 향상된 후, 다이지유리, 덴쥬, 유루시, 우즈메소라고 불리는 이른바 이니시에이션을 행하고, 일주일 정도 씨족 신사에 틀어박힌 후 일을 한다.[37]

7. 현대의 이타코

이타코는 영적인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심리 상담적인 면이 크다. 고객의 심정을 읽어내는 일종의 콜드리딩 능력은 필수적이다.[39] 본래 이타코는 죽은 자나 조상의 영혼과 산 사람을 중개하며, 같은 씨족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축제에 불려 죽은 자와 조상의 말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타코는 점을 칠 때 수주나 염주를 사용하지만, 일부는 교령(交靈)할 때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사용되는 악기는 아즈사유미(梓弓)라고 불리는 활 모양의 악기가 많으며, 그 외에 왜금(倭琴)이나 태고 등도 사용된다. 이러한 악기들은 농촌 신앙 등에서 사용된 일본 고대 음악의 흔적으로 보이며, 일본 전통 음악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의 무녀 조직인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유래가 있다고 한다.[39] 대화종에서는 구치요세에 인경(引磬, 쇠붙이로 된 방울)을 사용하며, 무녀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 활과 복숭아나 버들을 두고 의례 공간을 갖춘다.

구치요세는 영적 감응에 따라 다양한 인종,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런 먼로의 구치요세를 할 때, 마릴런 먼로의 영(霊)은 완전한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답하기도 했다.

구치요세 외에도 이타코는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지낼 책임이 있다. 오시라아소바세는 도호쿠 민간 신앙인 오시라사마(おしら様)의 신체(神体)인 두 체의 인형을 놀리는(즐겁게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서 모셔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타코가 가족을 대신하여 오시라 제문(おしら祭文)을 낭독한다.

오키나와현가고시마현 아마미군도에서는 유타라고 하는 재야의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비슷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관혼상제 자체를 다루는 일도 많다.

오소레산의 지장 보살상


현대 일본에서 "이타코"는 쇠퇴하고 있다. 2009년에는 40세 이상의 "이타코"가 20명 미만으로 남아 있었다.[21] "이타코"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경멸이 증가하고 있으며, 현대 교육 기준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문적인 훈련의 필요성을 거의 없앴다.[21]

오소레산에서는 매년 오본 휴가와 일치하는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연례 축제가 열린다.[22][23] 이들은 또한 카와쿠라 사이노카와라의 여름 축제에도 참석한다.[5] 비록 많은 종교 단체와 사찰들이 부인하지만, 두 행사 모두 수백 명의 군중을 끌어들이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지방 정부는 관광 팜플렛에 "이타코"의 이미지를 포함시켰고, 연중 지속적인 관광을 장려하기 위해 인근 사찰에 영구적인 "이타코" 직책을 지원하려고 시도했다.[5]

"이타코"는 수가 적지만, "이타코-코"라는 협회를 결성했으며, 가끔 불교 사찰과 협력하여 주로 장례를 지원한다.[5]

구술 외에도 이타코는 "오시라 아소바세"를 행하는 역할이 있다. 오시라 님의 어신체인 두 개의 인형을 놀게 하는 것이다. 오시라사마는 각 가정에 모셔져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 가정의 가족을 대신하여 이타코가 오시라 제문을 읊는다. 오시라사마의 기반인 주걱, 표주박과 국자에 관한 신앙을 방대하게 모아, 이것이 "영혼을 모으는 채취물"이라고 한 야나기타 쿠니오의 설을 계승한 오리쿠치 시노부에 따르면, 이것은 마나를 모으기 위한 의뢰이다.

이타코는 부적을 쫓는 의식, 악마를 쫓는 의식, 벌레를 쫓는 의식, 마귀를 쫓는 의식, 몸의 부적 등의 때, 이라타카 염주를 사용한다.[25] 이라타카 염주는 300개 이상의 검은 무크로지 열매를 연결한 것으로, 암수 사슴의 뿔, 멧돼지의 어금니, 곰의 발톱, 매의 발톱, 여우의 턱뼈나 늑대 등의 야수의 뼈 등을 붙인 것이다.[25] 또한 쓰가루 지방에서는 이타코가 아즈사 활(가래나무과의 낙엽 고목인 아즈사의 나무로 만들어진 둥근 나무 활)의 현을 가는 대나무 막대기로 쳐서 소리를 내고, 영을 아즈사 활에 깃들게 하여, 그것을 더욱 이타코 자신의 몸에 빙의시키는 형태도 보였다고 한다.[25]

도카이도 주히자쿠리게 등에 등장하는 이치코[26]라고 불리는 무녀는, 히타치[27]의 나라나 교토·오사카 지방에서는 "신사에 앉아 끓는 물을 내리는" 무녀의 칭호이지만, 도쿄 근처에서는 이타코와 같은 무녀를 가리킨다.

오키나와현이나 가고시마현아마미 제도에는 유타라는 재야의 영능력자가, 이타코와 비슷한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쪽은 장례 그 자체를 다루는 경우도 많다.

도호쿠 지방의 무녀 습속
지방명칭무형 민속 문화재
선택 연월일
아키타현이타코1983년 12월 16일[28]
아오모리현쓰가루 지방1979년 12월 7일[29]
난부 지방
이와테현
구 센다이 번 (구 이치노세키 번) 영역오가미사마1982년 12월 21일[30]
미야기현1981년 12월 24일[31]
후쿠시마현미코사마1980년 12월 12일[32]
야마가타현무라야마 지방오나카마1978년 12월 8일[33]



이타코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거나 약시인 여성의 직업이었다. 일본의 도호쿠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습속·민간 신앙으로, 여름의 오소레산 대제(아오모리현)에서 행해지는 것이 특히 알려져 있다. 아오모리현의 "쓰가루의 이타코 습속"과 아키타현의 "우고의 이타코 습속"은 국가의 선택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맹인이나 약시 여성들이 이타코가 된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생활 환경도 크게 변화해 갔다. 이와 동시에, 혹독한 수행[36]을 필요로 하는 이타코가 되려는 사람은 극히 적어졌다. 그 때문에, 현역 이타코의 대부분은 고령자이다.

호리 이치로에 따르면, 시력이 좋지 않은 아이는 이타코의 스승에게 쌀, 숯을 가지고 입문하여, 1년에서 3년, 혹은 4, 5년 정도, 널빤지 바닥을 치면서 액을 쫓는 문구, 오시라 제문을 배운다. 그리고 실력이 향상된 후, 다이지유리, 덴쥬, 유루시, 우즈메소라고 불리는 이른바 이니시에이션을 행하고, 일주일 정도 씨족 신사에 틀어박힌 후 일을 한다.[37]

8. 한국의 샤머니즘과의 비교 및 한국적 관점

이타코는 영적인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심리 상담적인 면이 크다. 이들은 고객의 심정을 읽어내는 능력(일종의 콜드리딩)을 활용하여, 죽은 자나 조상의 영혼과 산 사람을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씨족신을 섬기는 모임이나 축제에서 죽은 자와 조상의 말을 전하는 역할이었다고 전해진다.[39]

이타코는 점을 칠 때 염주를 사용하며, 일부는 영혼을 부를 때 아즈사유미(梓弓)라는 활 모양의 악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왜금(倭琴)이나 태고와 같은 악기를 사용하는데, 이는 농촌 신앙 등에서 쓰인 일본 고대 음악의 흔적으로, 일본 전통 음악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테현 남부에서 미야기현 북부의 무녀 조직인 대화종(大和宗)의 다이조지(大乗寺) 유래에 따르면, 구치부쿠(クチブク)라고 불리는 강신굿은 목련구모전설(救母伝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39] 대화종에서는 구치요세(口寄せ)를 할 때 쇠붙이로 된 방울인 인경(引磬)을 사용하며, 무녀 주위에 삼실을 단 가래나무 활과 복숭아나무나 버드나무를 두고 의례 공간을 갖춘다.

구치요세는 영적 감작에 따라 다양한 인종, 동물을 불러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거 텔레비전 방송에서 마릴린 먼로의 영혼을 불러냈을 때, 시모키타 방언으로 대화에 답했던 사례가 있다.

이타코는 구치요세 외에도 오시라아소바세(オシラアソバセ)를 지낼 책임을 진다. 오시라아소바세는 도호쿠 지방의 민간 신앙인 오시라사마(おしら様)의 신체(神体)인 두 개의 인형을 즐겁게 하는 의식이다. 각 가정에서 오시라사마를 모시며, 일부 지역에서는 가족 대신 이타코가 오시라 제문(おしら祭文)을 낭독한다.

오키나와현가고시마현 아마미 군도에는 이타코와 유사하게 영적 상담을 생업으로 하는 유타(ユタ)라는 재야 영능력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 유타는 관혼상제 자체를 다루는 일도 많다.

참조

[1] 서적 Shinto in History: Ways of the Kami Routledge 2013
[2] 서적 The invention of religion in Japa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3] 서적 Religion in the Japanese experience : sources and interpretations Wadsworth Pub. Co. 1997
[4] 웹사이트 Local Newspaper Coverage of Folk Shamans in Aomori PrefectureI http://www2.kokugaku[...] 2016-03-12
[5] 서적 Immortal wishes : labor and transcendence on a Japanese sacred mountain Duke University press 2003
[6] 서적 Collected Writings of Modern Western Scholars on Japan Routledge 2013
[7] 서적 In near ruins : cultural theory at the end of the century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8
[8] 간행물 The itako of North-Eastern Japan and Their Chants https://www2.uni-ham[...] 1992
[9] 서적 Discourses of the vanishing modernity, phantasm, Japa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10] 뉴스 Japan's Blind Women Seers Becoming An Endangered Species https://www.chicagot[...] Chicago Tribune 2016-03-12
[11] 뉴스 Benefits of shaman on patients studied https://www.highbeam[...] Yomiuri Shimbun 2006-08-04
[12] 간행물 Shamanism in Japan http://nirc.nanzan-u[...] 1975-12
[13] 서적 Asian Musics in an Asian Perspective: Report of Asi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eibonsha 1977
[14] 간행물 Shamanism in Japan (1–122) http://nirc.nanzan-u[...] 1962
[15] 뉴스 Beliefs https://www.nytimes.[...] 2016-03-12
[16] 서적 The Last Biwa Singer: A Blind Musician in History, Imagination and Performance http://muse.jhu.edu/[...] East Asia Program, Cornell University 2009
[17] 웹사이트 The Itako—a Spiritual Occupation for Blind Japanese Girls http://www.nfb.org/I[...]
[18] 서적 The Catalpa Bow: A Study of Shamanistic Practices in Japan Taylor & Francis
[19] 웹사이트 The Life of a Shamaness: Scenes from the Shamanism of Northeastern Japan http://www2.kokugaku[...] 2016-02-01
[20] 웹사이트 Itako no Kuchiyose http://www.accu.or.j[...] 2016-03-09
[21] 뉴스 As Japan's Mediums Die, Ancient Tradition Fades https://www.nytimes.[...] 2016-02-01
[22] 간행물 Necromancers in the Tohoku http://nirc.nanzan-u[...] 1967
[23] 서적 A Popular Dictionary of Shinto Routledge 2005
[24] 문서 神仙や死者・行方不明者の[[霊]]などを自身に乗り移らせてその言葉を語ること。
[25] 웹사이트 大森康宏「梓弓とイラタカ数珠」 http://test-minpaku.[...] 国立民族学博物館 2007-03-14
[26] 문서 この呼称は[[吾妻鏡]]にも見られる。
[27] 문서 現在の茨城県辺り。
[28] 웹사이트 羽後のイタコの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29] 웹사이트 津軽のイタコの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30] 웹사이트 南部のオガミサマの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31] 웹사이트 陸前磐城のオガミサマの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32] 웹사이트 磐城・岩代のミコサマの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33] 웹사이트 村山地方のオナカマ習俗 https://bunka.nii.ac[...] 文化庁
[34] 문서 笹森建英 『つがる音の泉―随想と論考―』136頁
[35] 문서 地方によってはミコがその種の巫女を指す。
[36] 문서 堀一郎の『我が国民間信仰史の研究』
[37] 서적 我が国民間信仰史の研究
[38] 문서
[39] 서적 寺社縁起の文化学 森話社
[40] 문서 つがる音の泉―随想と論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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