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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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불교 전통 연표
- 3. 일본 불교의 역사
- 3.1. 아스카 시대 (552년 ~ 645년)
- 3.2. 하쿠호 시대 (645년 ~ 710년)
- 3.3. 나라 시대 (710년 ~ 794년)
- 3.4. 헤이안 시대 (794년 ~ 1185년)
- 3.5. 가마쿠라 시대 (1185년 ~ 1333년)
- 3.6. 무로마치 시대 (1336년 ~ 1573년) 및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73년 ~ 1603년)
- 3.7.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 3.8. 메이지 시대 (1868년 ~ 1912년)
- 3.9. 다이쇼 시대 (1912년 ~ 1926년) 및 쇼와 시대 (1926년 ~ 1989년)
- 3.10. 헤이세이 시대 (1989년 ~ 2019년) 및 레이와 시대 (2019년 ~ 현재)
- 4. 일본 불교의 종파
- 참조
1. 개요
일본의 불교는 6세기 백제로부터 전래되어 중국과 한국 불교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아스카 시대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장려하고 사찰을 건립했으며, 나라 시대에는 6개의 종파가 형성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헤이안 시대에는 천태종과 진언종이 창시되었으며, 가마쿠라 시대에는 정토종, 정토진종, 선종 등이 등장하여 새로운 불교 종파들이 발전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여러 종파들이 독자적인 전통을 구축했고, 에도 시대에는 막부의 통제 아래 불교가 운영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숭신억불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불교는 현대화 노력을 통해 변화를 겪었다. 현재 일본 불교는 다양한 종파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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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불교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종교 | [[파일:Dharma Wheel.svg|18px]] 불교 (주로 동아시아 불교) |
인구 | 약 7100만 명 (정부 추정, 2022년) 또는 20% 미만 (JGSS 연구 센터, 2017년) |
지역 | 일본 전역 |
언어 | 일본어 기타 언어 |
주요 불교 종파 | |
나라 불교 | 호소 종 구사 종 산론 종 율 종 화엄 종 조지츠 종 |
헤이안 불교 | 천태종 진언종 |
가마쿠라 불교 | 정토종 정토진종 임제종 조동종 일련종 |
일본 불교의 특징 | |
신불습합 | 신토와 불교의 혼합 |
선종 | 선의 영향 |
정토 신앙 | 정토 신앙의 대중화 |
다양한 종파 | 여러 종파의 발전 |
사찰 문화 | 독특한 사찰 문화 형성 |
주요 성지 및 사찰 | |
고후쿠지 | 나라에 위치한 호소 종 사찰 |
도다이지 | 나라에 위치한 화엄종 사찰 |
엔랴쿠지 | 히에이 산에 위치한 천태종 사찰 |
고야산 | 진언종의 총본산 |
기요미즈데라 | 교토에 위치한 유명 사찰 |
금각사 | 교토의 상징적인 사찰 |
도쇼다이지 | 나라에 위치한 율종 사찰 |
호류지 | 나라에 위치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 |
코토쿠인 | 가마쿠라에 위치한 아미타불 좌상 (가마쿠라 대불) |
문화적 영향 | |
미술 및 건축 | 불교 미술과 사찰 건축 발전 |
문학 | 불교 문학과 사상 |
철학 | 불교 철학의 영향 |
생활 방식 | 불교 문화와 가치관 |
정원 | 일본 정원 조성에 영향 |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일본의 종교 |
2. 불교 전통 연표
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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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2" style="text-align:left; border-bottom:1px solid dimgray; background:WhiteSmoke; padding-left:10pt; padding-top:3pt; padding-bottom:3pt" | '''연표: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후 1300년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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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wspan="2" style='padding-left:5pt' | 동아시아 '''·''' 한'''·'''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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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5" rowspan="2" style='border:1pt solid gray; border-right:0;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천태종 '''·''' 정토종 '''·''' 일련종
| colspan="3"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ackground:indianred; text-align:center' | 밀교 '''·''' 진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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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style='border-bottom:1pt solid gray;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
2. 1. 인도 불교의 발전
{| class="wikitable" style="color:black; border-top:1px solid dimgray; border-bottom:1px solid dimgray; margin-top:10pt; margin-bottom:10pt"|-
! colspan="12" style="text-align:left; border-bottom:1px solid dimgray; background:WhiteSmoke; padding-left:10pt; padding-top:3pt; padding-bottom:3pt" | '''연표: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후 1300년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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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wspan="5" style='padding-left:5pt' | 인도
| rowspan="5" colspan="1" style='border-left:1pt solid gray; border-top:1pt solid gray; border-bottom:1pt solid gray; background:#FFFFC0; text-align:center' | 원시불교
| colspan="2"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ackground:yellow; text-align:center' |
| colspan="7"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order-right:1pt solid gray;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 rowspan=5 |
|-
| rowspan="2" colspan="4" style='background:yellow; text-align:center' | 부파불교
| colspan="2" style='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대승불교
| colspan="3" style='border-right:1pt solid gray; background:indianred; text-align:center' | 밀교'''·'''금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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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3" style='padding-left:5pt' | 스리랑카 '''·''' 동남아시아
| rowspan="3" colspan="2" |
| rowspan="3" colspan="2" style='border:1pt solid gray; border-right:0; background:gold; text-align:center' | 상좌부 불교
| colspan="5"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 rowspan="3" colspan="2"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order-bottom:1pt solid gray; background:gold; 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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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3" style='padding-left:5pt' |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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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background:#E6C220; border:1px solid gray; text-align:center' | 그레코 불교
| rowspan="3" colspan="1" |
| rowspan="3" colspan="4" style='border:1pt solid gray; border-right:0; background:indianred; text-align:center' | 티베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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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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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4" style='background:#E6C220; border:1px solid gray; text-align:center' | 비단길을 통한 불교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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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2" style='padding-left:5pt' | 동아시아 '''·''' 한'''·'''중'''·'''일
| colspan="3" rowspan="2" |
| colspan="5" rowspan="2" style='border:1pt solid gray; border-right:0;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천태종 '''·''' 정토종 '''·''' 일련종
| colspan="3" style='border-top:1pt solid gray; background:indianred; text-align:center' | 밀교 '''·''' 진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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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3" style='border-bottom:1pt solid gray; background:peru; text-align:center' |
|}
2. 2.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불교
기원전 250년경부터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1000년경까지 이 지역에서 대승불교 전통이 함께 존재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상좌부 불교가 이 지역의 주류 불교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800년경부터 1000년경까지는 밀교'''·'''금강승 전통이 존재하기도 했다.2. 3. 중앙아시아와 티베트의 불교
중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250년경부터 그레코 불교가 발전하였다. 100년경부터는 비단길을 통한 불교 전파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700년경부터는 티베트 불교가 중앙아시아에 등장하여 800년경부터 크게 발전하였다.2. 4. 동아시아의 불교 (한국, 중국, 일본)
'''범례'''
3. 일본 불교의 역사
3. 1. 아스카 시대 (552년 ~ 645년)
6세기에 백제에서 불교가 전래된 이후[7], 쇼무 천황 때 당나라 승려 감진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 불교의 초석을 쌓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7]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한국으로 전파된 후 바닷길을 통해 일본 열도로 전해졌다.[7][8] 초기 일본 불교는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중국 불교와 한국 불교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7]
『일본서기』는 백제의 성왕이 킨메이 천황에게 불상, 의식용 깃발 및 경전을 포함한 사절단을 파견한 시기를 552년으로 기록하고 있다.[4][3] 그러나 『상궁성덕법왕제설』과 『원흥사가람연기』에서는 538년을 불교 전래 시기로 보고 있으며, 역사 교과서에도 이 연호가 실려 있다. 량서에 따르면 458년에 건빈국에서 승려가 와서 불교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것이 일본을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킨메이 천황은 불교 관련 물품을 받은 후 신하들에게 일본에서 불교를 숭배해야 하는지 물었고, 소가 이나메는 찬성했지만, 모노노베 오코시와 나카토미 카마코는 일본의 신들이 외국 신의 숭배에 분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11] 천황은 소가 씨만 불교를 숭배하도록 허락하여 시험해 보았고, 소가 씨는 일본에서 불교가 초기 확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1][12] 호코지(아스카데라)가 건립되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2] 그러나 모노노베 오코시와 나카토미 카마코등은 불교에 반대했고, 역병이 유행하자 그들은 외국에서 온 신(불)을 받들었기 때문에 국진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주장하며 절을 불태우고 불상을 난바의 호리에에 버렸다.
불교의 가부를 둘러싼 다툼은 모노노베 모리야와 소가 마코토의 시대까지 이어졌고, 정미의 난에서 모노노베 씨가 쇠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소가 마코토 측에 참전했던 쇼토쿠 태자는 사천왕에게 빌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했고, 셋쓰국에 사천왕사를 건립했다. 소가 마코토는 호코지를 건립했고, 쇼토쿠 태자는 『법화경』·『유마경』·『승만경』의 해설서(『삼경의소』)를 쓰고, 『십칠조헌법』 제2조에 "두텁게 삼보를 공경하라. 삼보란 부처, 법, 승려이다"라고 쓰는 등, 불교 도입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14] 이후 불교는 국가 진호의 도구가 되고 황실 스스로 절을 짓게 되었다.
덴무 천황은 다이칸다이지(후의 다이안지)를 짓고, 지토 천황은 약사사를 지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쇼무 천황 때 정점에 달했다.
백제에서는 불교와 사찰 건축을 위해 와 등의 건축 기술이 전래되었다.[156] 최초로 채용된 것은 아스카데라이며, 7세기 무렵까지는 불교 사찰에만 사용되었다.[156]
아스카 시대(538~710) 불교는 주로 나라 분지 지역에서 발전했으며,[16] 하타 씨족과 소가 씨족과 같은 귀족 씨족의 지원과 노력을 통해 성장했다.[17] 혜관과 같은 고구려 승려가 포함되었다.[18]
3. 2. 하쿠호 시대 (645년 ~ 710년)
6세기에 백제에서 전래한 일본 불교는 쇼무 천황 때 당나라 승려 감진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 불교의 초석을 쌓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20] 하쿠호 시대(645년 ~ 710년)에는 일본 궁가가 소가 씨를 대체하여 불교를 공식적으로 후원하였다. 이 시기 일본 불교는 당나라(618~907년)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불교가 야마토 지방에서 일본의 다른 지역과 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20]
당시 중앙 집권화 개혁(대화개혁(大化改新))의 중요한 부분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불교 기관과 의식(종종 궁궐이나 수도에서 거행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21] 궁정은 불교 사찰과 승려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건설하고 관리했다.[22] 《일본서기》에 따르면 624년에는 46개의 불교 사찰이 있었다.[23] 이러한 사찰 중에는 가와라데라와 약시지가 있으며, 고고학 연구는 수도 외곽의 수많은 지역 사찰을 밝혀냈다.[24] 국가 사찰에서는 왕실의 공덕을 쌓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 의식이 행해졌으며, 《금광명경》과 같은 불교 경전을 중심으로 한 의식에 특별한 관심이 기울여졌다.[25] 승려 공동체는 승복의 색깔부터 승려 규율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복잡하고 계층적인 궁정 승려청(僧綱)이 감독했다.[26]
3. 3. 나라 시대 (710년 ~ 794년)
6세기에 백제에서 전래한 일본 불교는 나라 시대에 이르러 삼론종, 화엄종 등 6개 종파가 형성되며 발전하였다.[29][30] 쇼무 천황 때 당나라 승려 감진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 불교의 초석을 쌓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710년, 겐메이 천황은 수도를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시)로 옮겼다.[27] 이 시대에는 각 지방에 국립 사찰을 설립하여 지방 사찰을 관리하는 국분사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이 제도의 총본산은 동대사(752년 완공)였다.[27][28]
나라 시대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남도육종(난토 록슈)이라 불리는 6개의 종파가 발전했다.[29] 이들은 모두 중국 불교 종파를 계승한 것으로, 율종(율장), 성실종(달마승의), 구사종(아비달마고사), 삼론종(동아시아 중관불교), 법상종(동아시아 유가불교), 화엄종이다.[30] 이들 종파의 사찰은 불교 교리 연구의 중요한 장소가 되었으며,[29] 아스카데라와 동대사와 같은 대사찰이 건립된 수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찰들은 "난토 칠대사"(''난토 시치다이지'')로 알려져 있다.[31]
국가 사찰은 국가와 황실의 번영을 위한 수많은 의식을 거행했으며, ''금광명경''과 ''법화경''과 같은 경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32] 또한 불경 사경은 큰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져 국가 사찰의 중요한 기능이었다.[33] 불교 승려들은 광범위한 승려 법규를 통해 국가의 승려 사무소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승려의 계급은 정부 관리의 계급과 일치했다.[34] 이 시대에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으며, 승려 도지(?-744)가 편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35]
국가 지원을 받은 엘리트 중심의 나라 불교 외에도, 정식으로 서임되지 않은 비공식 승려 그룹도 있었다. 이들은 도교와 신도 등 토착 신앙 요소를 포함한 수행을 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큰 인기를 얻어 수도의 불교에 대한 비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35]
중국과 일본에서는 불교 발전과 더불어 율령에 승려와 비구니의 통제를 규정한 법령(승니령)이 도입되었다. 일본에서는 진호국가 사상 아래 승니령과 승강·도첩 제도가 도입되어 관료 조직의 일원으로까지 편입되었다. 성무 천황은 고켄 천황에게 양위하고 출가하였으며, 광명황후의 영향으로 고쿠분지, 국분니사의 건립을 명하고, 동대사에 대불을 조성하였다. 불교가 성행함에 따라 본지수적설이 생겨나 각종 신들의 본지(부처)가 정해지고, 신상이 승려의 형태로 제작되는 경우가 있었다. 감진은 동대사에 계단을 설치하고 승려들에게 계를 수여하였으며, 성무 천황도 감진으로부터 계를 받았다. 감진은 당초제사를 건립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3. 4. 헤이안 시대 (794년 ~ 1185년)
794년 간무 천황이 교토(당시 헤이안쿄)로 천도하면서, 견당사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구카이와 사이초가 각각 진언종과 천태종을 창시했다.[39][37] 이들은 고야산, 히에이 산 등 일본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간무 천황은 최창(最澄)의 천태종을 강력하게 지지했으며,[37] 최창은 히에이산(比叡山)에 연락사를 건립하고 보살계에 기반한 새로운 승려 규칙 체계를 개발했다.[38] 구카이가 일본에 설립한 진언종은 밀교적인 밀교(Vajrayana)(또는 ''밀교(mikkyō)'', "비밀 가르침") 요소를 도입했다.[39] 진언종과 천태종은 국가 통제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발전했다.[40]
이 시기에는 정토종(淨土宗) 수행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미다불(Amitābha)의 이름인 염불(nenbutsu)을 염송하여 불국토인 숙하바티(Sukhavati)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수행은 처음에는 천태종 사찰에서 유행했지만, 그 후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46] 이와 관련하여, 『末法灯明記』에서는 헤이안 시대 중기가 석가모니불 입멸 후 2000년에 해당한다고 여겨졌고, 불교가 멸망하는 암흑 시대 즉 末法의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세의 행복을 바라는 정토신앙이 유행하여, 귀족들은 아미타불에 의지하여 극락정토에 맞이해지기를 바라며 내영도 등을 활발하게 그렸고, 그 궁극적인 결과로 우지에 뵤도인을 건립했다.
신토(神道)의 산악 신앙과 불교의 융합의 한 예로 수행도(修驗道)가 유행하였고,[43] 수행도 수행자들은 험준한 산을 걸으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초자연적인 힘을 얻어 대중을 구원하고자 했다.[44][45] 또한, 가미(神)(신토의 신적인 존재)의 구제를 위해 불교 승려들이 국가로부터 널리 권장을 받았다. 본지수적(本迹垂迹, 혼지-수이자쿠) 사상은 중세 시대 내내 강한 영향을 미쳤다.[52]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사회 불안이 증대되었고, 대사찰은 소헤이(僧兵)라고 불리는 무사 승려 집단을 설립했다. 이들은 점차 세력 확장을 위한 무장 집단으로 변질되어 사회 불안의 한 요인이 되었다. 한편, 백성들에게 설법을 한 반독립적인 승려들(쇼닌(聖人)이나 히지리(聖者))도 있었는데,[48]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이 시대에 불경의 사경(寫經)은 공덕(공덕, 자업)(좋은 업)을 쌓는 것으로 여겨져 널리 퍼진 관행이었다. 다이라 가문의 안치된 경전"(平家納經, 헤이케노쿄)은 이 시대 불교 시각 예술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이다.[53] 불교를 주제로 한 와카의 예로는 센시(詮子) 공주(964~1035)의 『보신와카슈(法心和歌集)』(각성 마음의 와카 모음, 1012)가 있다.
3. 5. 가마쿠라 시대 (1185년 ~ 1333년)
가마쿠라 시대(1185년 ~ 1333년)는 국가의 지배권이 황족 귀족에서 무사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였다.[56] 1185년 가마쿠라 막부가 가마쿠라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가마쿠라 불교" 또는 "신불교"라고 불리는 새로운 불교 종파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종파들의 주요 창시자들은 모두 히에이산에서 수련하고 천태종의 외도와 내도 체계를 연구한 전 천태종 승려들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동안 이러한 새로운 종파들은 매우 영향력 있는 린자이 선종을 제외하고는 기존 종파만큼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56]
이 시대에는 임제종과 조동종이라는 두 선종이 잇따라 중국에서 소개되었다. 힘을 길러 가고 있었던 사무라이 집단이 선호한 것에 기반해 가마쿠라 등 많은 선사가 지어져 매우 번창했다. 이 대표적인 것을 「가마쿠라 오산」이라고 한다. 또한 호관사동식 불교 사서인 「원형석서」가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일본 선종의 46개 종파 창시자 중 16명은 중국 스승이었고, 15명은 송나라 시대에 중국으로 건너간 일본 스승이었으며, 나머지 15명은 원나라 시대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스승들이었다.[57]
새로운 종파에는 호넨(1133~1212)의 정토종과 신란(1173~1263)의 정토진종 등 정토 종파가 포함되는데, 두 종파 모두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불하는 수행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새로운 정토 종파들은 모두 일본이 불법 쇠퇴의 시대(''말법'')에 접어들었고, 따라서 다른 불교 수행은 무의미하다고 믿었다. 해탈의 유일한 수단은 이제 염불에 대한 충실한 신앙이었다.[58] 이러한 견해는 묘혜(1173~1232)와 같은 전통적인 인물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정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은 특정 승려들이 불교 계율과 명상의 올바른 실천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였다. 여기에는 정계(1155~1213)와 같은 교복사 승려와 전통적인 불교 수행의 기초인 윤리적 수양과 명상 수행으로 회귀하려고 했던 천태종 승려 순정(1166~1227)과 같은 인물들이 포함된다.[59]
다른 승려들은 소외된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려고 시도했다. 결핵 환자, 거지 및 기타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찰을 개방한 것으로 알려진 계곤신곤종 승려 묘혜와 마찬가지로 영존(1201~1290)과 닌쇼(1217~1303)와 같은 계율 스승들도 병자와 소외된 사람들, 특히 "비인간"(''비인'')이라고 불리는 소외 집단을 돌보는 데 적극적이었다.[60] 닌쇼는 1287년 극락사에 의료 시설을 설립하여 34년간 8만 8천 명 이상을 치료하고 중국의 의학 지식을 수집했다.
또 다른 가마쿠라 신종파는 명상(좌선)의 통찰을 통해 해탈을 강조하는 일본의 두 주요 선종(린자이와 소토종)으로, 영사와 도겐과 같은 승려들이 전파했다. 도겐(1200~1253)은 저명한 명상 스승이자 주지였으며, 조동 계열의 선종을 도입하여 소토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불법의 말세(''말법'')와 퇴마 기도와 같은 사상을 비판했다.[61]
또한 이 시대에 승려 니치렌(1222~1282)은 오로지 ''법화경''에 기반한 불교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것을 말법 시대에 유일하게 유효한 신앙의 대상으로 보았다. 니치렌은 이 시대의 갈등과 재난이 정토불교와 밀교 불교 추종자들과 같은 일본 불교도들의 잘못된 견해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믿었다.[62] 니치렌은 그의 견해 때문에 많은 반대에 직면했으며 가마쿠라 막부에 의해 두 번이나 공격받고 유배당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난립하는 것처럼 많은 새로운 종파가 탄생했다. 이들 종파는 자리 잡을 때까지 예외 없이 기존 종파의 비난을 받았지만, 동시에 구종파의 혁신도 불러일으켰다. 비난 속에서도 닛렌종의 닛렌은 과격한 것으로 알려져 다른 종파를 비난하고 어제목을 외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며, 막부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민중에게 퍼지고 일반화되자, 이 탄압도 점차 진정되었다.
더욱이 기존 불교 내부에서도 현실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높아졌다. 특히 율종이나 그로부터 파생된 진언율종 등에서는 사회 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민중 구제에 힘쓸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국가가 지정한 계단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수계 의식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종파보다 더 혁신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3. 6. 무로마치 시대 (1336년 ~ 1573년) 및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1573년 ~ 1603년)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는 가마쿠라 시대에 등장한 여러 불교 종파들이 독자적인 전통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63]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불교 제도권의 권력 주변부에 머물렀으며, 15세기 후반부터 일본 불교 신앙과 수행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63][64] 임제종은 13세기에 이미 두각을 나타낸 예외적인 경우였다.[64] 한편, 기존의 종파와 계보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계속 발전하여 영향력을 유지했다.[64]
새로운 종파의 독립은 즉각적이지 않았고, 상당 기간 동안 구 종파의 교리적, 정치적 영향 아래 있었다. 예를 들어, 정토종은 주로 천태종의 보조적인 분파로 여겨졌다.[65] 또한 모든 구 종파 승려들이 새로운 종파에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65]
중세 시대에는 정치 권력이 분권화되었고, 신사와 사찰 복합 단지는 종종 영향력과 권력을 놓고 경쟁하며 무사 승려 군대를 유지했다.[66] 이러한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불교 연구와 학습의 문화는 계속 번창했다.[67] 많은 승려들은 여러 사찰과 서원에서 공부하고 배우기 위해 여행하는 ''쇼슈 켄가쿠'' 경향을 보였다.[68]
가마쿠라 막부와 아시카가 막부는 오산 문화를 지원하고 후원했다. 이 임제종 전통은 교토와 가마쿠라의 "오산"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밀교, 서예, 시 등 특정 예술 형식을 연구했다.[67] 초기 임제종의 중요한 인물인 엔니 벤엔은 천태종과 진언종에 입문한 고위층 승려였다.[67]
엔니와 같은 임제종 인물들의 천태종과 진언종 자격은 초기 선종이 다른 "구" 종파와 완전히 분리된 계보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69] 실제로 선 승려 규칙에는 불공양, 장례식, 추도 의식 등 다양한 의례 절차가 포함되어 있었다.[70]
중세 임제종은 이산 일정과 같은 중국 스승들에 의해 활기를 띠었다.[71] 이산은 중국 문학, 서예 및 그림에 대한 일본의 관심에 영향을 미쳤고, 오산의 일본 문학(''고잔 분가쿠'')에 반영되었다.[71]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무소 소세키는 선 승려이자 서예가, 시인이자 정원 디자이너였다.[71] 세손 유배와 고칸 시렌도 이산 밑에서 공부했으며,[72] 시렌은 불교 역사 ''겐코 삭쇼''를 저술했다.[72] 익규 소준은 일본 선불교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친 시인이었다.[73]
수도의 왕실과 엘리트 가문은 오산 임제종 사찰에서 고전 중국 예술을 공부했고, 쇼군 가문은 자신의 거주지 궁전에 선 사찰을 지었다. 오산 사찰은 다양한 문학을 복사하고 보급하기 위해 자체 인쇄 프로그램(''고잔반'')을 설립했다.[74]
이 시기에는 "신토" 신앙이 불교 사찰 단지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불교도들은 신과 부처 및 보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곤겐''은 신을 부처의 발현된 형태로 숭배하는 것을 장려했다.[75] 히에이산의 천태종 승려들은 ''홍각'' 사상을 산노 신의 숭배에 통합했다.[76]
오닌의 난(1467~1477) 이후, 후기 무로마치 시대에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다이묘(大名)''라 불리는 지방 사무라이 군벌들이 등장하면서 "전국 시대"(''센고쿠키(戦国記)'')가 시작되었다.[77] 이 시대에 많은 불교 사찰과 수도원들이 파괴되었고, 16세기와 17세기까지 재건되지 못했다.[77]
이 시기에 새로운 가마쿠라 학파가 새로운 수준의 명성과 영향력을 얻었다.[78] 정토진종 승려 홍간사(Honganji)를 재건하고, 신란(親鸞)과 염불(念仏)이 적힌 본존(本尊) 두루마리에 초점을 맞춘 헌신적인 수행을 개혁했다.[78]
선종 계보는 전국으로 널리 전파되었는데, 장례 및 장례 의식에서의 활동이 주요 요인이었다.[79] 소토 선종, 법화(니치렌) 학파, 렌뇨의 정토 학파는 교리 연구를 위한 종합적인 교육 과정을 개발하여 더욱 자급자족적인 독립적인 학파가 되었다.[80]
익코 익키("일심동체" 정토 동맹) 및 법화익키(法華一揆)(니치렌 "법화경" 동맹)와 같은 무장 불교 동맹(''익키'')이 등장하여 사무라이 영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특정 지역에서 자치를 수립했다.[82] 이들은 때때로 서로 그리고 주요 사찰과 전쟁을 벌였다.[82]
천태종 무장 승려들과 익코 익키 동맹은 이시야마 홍간사 전투(1570~1580)에서 익코 익키를 정복했다.[83]
16세기 중반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일본에 도착하여 기독교를 소개했고, 이는 기독교인과 불교도 간의 수많은 논쟁으로 이어졌다.[82]
1333년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 남북조 시대를 거쳐 무로마치 시대에는 정치적 중심지가 교토로 옮겨졌다. 고다이고 천황의 겐무 신정으로 오잔은 가마쿠라에서 교토 중심으로 바뀌고, 교토 오잔이 성립되었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에 무가 정권을 수립하자, 무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선종의 오잔이 정해지고, 임제종은 막부의 보호를 받았다.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는 난젠지 등의 선종과 연력사 등의 천태종이 대립하여 정치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무소 석옥과 그의 제자 슌야 묘하는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가지고, 그들의 제자 승려들은 아시카가 요시미쓰 시대에 명나라와 일명 무역(감합무역)을 시작할 때 외교 고문이 되기도 했다.
무가와 불교계의 접근은 귀족문화 및 무사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요시미쓰 시대의 록원지(금각사) 등 호쿠잔 문화와 아시카가 요시마사 시대의 지쇼지(은각사) 등 도잔 문화에 융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무로마치 시대의 문화에는 수묵화·서원조·다도·생화·가레산스이 정원 등 후세에 남는 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사찰 중에는 영지에서의 수입이나 사당전(공양료) 등을 자본으로 금융업에 진출하는 곳도 있었고, 당시 성채화가 진행되고 있던 사찰에 자산을 예탁하는 사람들의 자산도 자본이 되었다. 하지만, 고리대금 대출에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덕정일기를 일으켜 사찰이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승병의 무술도 무사처럼 세련되고, 보조원류 창술처럼 유파로 확립된 예도 있었다.
조동종은 지방과 서민 사이에서 영향력을 가졌다. 교토의 도시 상공업자 사이에서는 일련종이 보급되었다. 이 시대의 포교자로는 정토진종의 렌뇨와 일련종의 닛폰 등이 유명하다.
응인의 난 이후 치안이 악화되면서 종교 세력도 승병을 강화하여 무력을 증강했다. 법화종에 의한 산가 본원사 방화, 천태종에 의한 덴몬 법화의 난 등 극렬파 종교 단체에 의한 종교 전쟁도 발생했다. 가가 국 일치 등의 일향 일치는 수호 다이묘인 후가시 씨를 멸망시키고 약 80년에 걸쳐 가가 일국을 지배했다(주로 조세권과 재판권). 이시야마 본원사 등은 마치 다이묘가(家)와 같은 강고한 조직이 되어, 그들의 세력은 수호 다이묘 및 전국 다이묘가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어떤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일 정도로 커졌다.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방침 아래, 실력으로 대항하는 종교 세력을 철저하게 토벌했다. 연력사 방화, 나가시마 일향 일치, 이시야마 전투 등이 유명하다. 또한 노부나가는 일련종의 승려와 정토종의 승려 사이의 종론(안토 종론)을 주최하여 정토종이 승리하자 법화종에게 타종파를 비난하지 않도록 약속하게 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에서 죽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실질적인 후계자의 자리에 올랐다. 히데요시는 대체로 노부나가의 노선을 계승하여 자신에게 적대적인 네가미지와 고야산을 복종시켰다. 일향 일기는 히데요시군과 우에스기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와해되었다. 유력한 사찰들을 오사카성 성하 마을로 이주시키거나, 승병의 영향력이 컸던 야마토에 동생인 도요토미 히데나가를 파견하는 등, 도가리·소부지령에 의해 사찰의 무장 해제를 크게 진척시키는 등 사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루이스 프로이스가 1585년에 저술한 일유 문화 비교에서는 이 시대 불교 사찰의 타락이 지적되고 있다.
3. 7.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에도에 막부를 열고 불교와 관련하여 사사제법도를 정하였다.[84][85] 1654년 명나라에서 건너온 승려 은원룡기는 황벽종을 창시하였다.[86] 에도 시대 일본에서 최대 불교 종파는 정토진종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전란 이후,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1600~1868)에 의해 재통일되었고, 막부는 지역 다이묘를 통한 봉건 제도로 국가를 통치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대부분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고, 유일하게 허용된 무역상은 데지마 섬에 거주하는 네덜란드인들이었다.[84]
17세기 동안,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국가의 종교 통제를 강화하고 기독교를 근절하기 위해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도쿠가와 쇼군 이에미쓰의 개혁은 본말 제도(本末制度)와 사찰 가입 제도(寺檀制; 다른 표현으로는 단가 제도(檀家制度))를 발전시켰다. 이 제도는 이미 존재하는 불교 기관과 교류를 이용했지만, 공식적인 정부 통제하에 두려고 시도했으며 모든 사찰이 정부가 인정하는 계보와 연계될 것을 요구했다.[84] 천태종, 정토종, 진언종은 16세기에 사회 정치적 혼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는 정토진종, 일련종보다 더 우대받았다.[85] 불교 지도자들은 종종 정부와 협력하여 통치에 대한 종교적 지원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선승 다쿠안 소호(1573~1645)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이 신(神)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사무라이를 위해 선과 무술에 관한 책 (''무애심(The Unfettered Mind)'')을 저술했다. 한편, 스즈키 쇼산은 도쿠가와 쇼군을 "성왕(聖王)"(''쇼오'')라고 부르기도 했다.[86]
에도 시대에 불교 기관은 부적, 사후 이름과 칭호, 기도 청원, 약품 판매와 같은 다양한 의식적 수단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87] 고야산, 금병산, 오야마산(사가미국)과 같은 많은 사찰과 성지가 이 시대 내내 불교 순례자와 산행 수행자들을 맞이했다.[88] 17세기 동안, 중국 승려 인원에 의해 선종의 오바쿠종 계보가 소개되었다. 인원룡기는 명나라의 임제종에 속해 있었다. 좌선과 염불의 이중 수행을 장려한 이 계보는 18세기 중반까지 1,000개가 넘는 사찰을 거느릴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86] 한편, 새로운 유형의 대중 설교가들이 공공 장소에 자주 출몰하여 새로운 설교 방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낙어 유머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정토종 승려 안라쿠안 사쿠덴(1554~1642)이 있으며, 그는 유머러스한 일화를 모은 ''세이스이쇼''(웃음으로 당신을 깨우다)를 저술했다. 이야기와 서술을 활용한 당시의 다른 순회 설교가로는 진언율종 승려 렌타이(1663~1726)와 정토종 승려 아사이 료이(사망 1691)가 있다.[89]
박은각(1685~1768)은 중국 의학과 도교의 사상을 바탕으로 신체적 수련과 결합하여 공안 수행을 그의 전통의 원래 교육 수단으로 강조했다. 하쿠인 에카쿠는 또한 선과 정토의 혼합을 비판했다.[90] 그의 견해는 그의 법맥이 일본 임제종을 지배하게 된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부분적으로 도쿠가와 정권의 지원 덕분에) 전례 없는 인쇄 출판의 성장이 있었고, 인쇄된 불교 작품의 제작과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91] 이에미쓰의 지원을 받은 천태종 승려 텐카이는 불교 "대장경"(''일체경'', 즉 ''대장경'')의 인쇄를 주도했다.[91]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오바쿠종의 유명한 스승인 철원 도코가 명나라 시대의 ''대장경''을 매우 높은 품질로 재인쇄하여 출판한 것이다.[91] 출판 붐의 중요한 부분은 ''간게본'' 또는 ''단기본''이라고 불리는 불교 설교 책이었다.[88]
막부의 지원을 받아 에도 시대에는 불교 학문도 번영했고, 주요 불교 종파는 학교의 서원(壇林)에서 새로운 학문 연구 시스템을 구축했다.[87] 예를 들어,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을 받은 관동 18단린이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조사이다. 정토진종 계보는 광범위한 서원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는 결국 류코쿠 대학이 되었다. 진언종에서는 조곤(1639~1702)과 지운 손자(1718~1804)와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산스크리트어 연구의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한편, 선종에서는 면산 추호(1683~1769)를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이 도겐의 작품을 출판하고 연구하기 위한 주요 시도를 했다.[92]
또한 이 기간 동안 많은 불교 종파 사이에서 불교 계율의 적절한 사용으로 돌아가려는 광범위한 운동이 있었다. 오바쿠종, 진언종, 진언율종, 일련종, 정토종, 선종의 수많은 인물이 불교 윤리 규율을 강화하고 개혁하기 위한 이 노력에 참여했다.[92]
豊臣秀吉 사후 권력을 장악한 徳川家康는 사찰제법도(寺院諸法度)를 제정하고 사찰봉행(寺社奉行)을 두어 불교를 단속했다. 백성들을 반드시 어느 사찰에든 등록하도록 (사찰청부제도(寺請制度)) 사실상 포교 활동을 금지했다. 가마쿠라 불교의 경우 단가제도(檀家制度)에 의해 전국에 사찰이 건립되면서 전면적인 전개가 이루어졌다. 정토진종의 본원사(本願寺)는 동서로 분열되어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최대 종파로 남아있다. 전국의 수행도(修験道)는 성호원(聖護院)을 본산으로 하는 본산파(本山派)와 다이고지(醍醐寺)를 본산으로 하는 당산파(当山派) 중 하나에 속하도록 규제되었다. 또한, 주자학이나 국학(国学)의 입장에서 배불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1665년에 에도 막부는 관문인지(寛文印知)와 제종사찰법도(諸宗寺院法度)를 제정하여 불교 사찰에 사찰 영지를 안도하는 한편 더욱 강력한 통제(단가제도(檀家制度))를 실시했다. 막부는 학문을 장려했기 때문에 각 종파에서 단린(檀林), 학료(学寮) 등이라 불리는 학교가 정비되고 교학 연구가 진행되는 한편, 신의(新義), 이의(異義)는 금지되었다. 에도 막부가 니치렌의 교리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르기를 거부한 일련종의 한 분파인 불수불시파(不受不施派)는 금교령(禁教令)의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161]
이러한 막부의 통제로 인해 에도 시대의 불교는 타락했다는 “근세 불교 타락론(近世仏教堕落論)”은 전전(戰前)의 종교사의 정설이었으나, 전후(戰後)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근세 불교 사상의 재검토는 아직 미흡한 단계이다.[162] 위에서부터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쉬운 사찰청부제도이지만, 사회의 안정과 함께 보디사(菩提寺)를 구하는 민중의 의사도 무시할 수 없다. 불상도 규격화된 것이 대량 생산되어 각지의 사찰에 안치되었지만, 미술적인 관점은 차치하고라도 신앙의 대상이 가까이 존재함으로써 인심 안정에 큰 의미가 있다.
1654년에 일본에 온 명나라의 은원룡기는 황벽종(黄檗宗)을 포교했다.
막부의 사찰 정책을 담당한 이심숭전(以心崇伝), 천해(天海), 일상의 직업 생활 속에서의 신앙 실천을 설파한 스즈키쇼조, 독력으로 대장경을 간행한 철안도광(鉄眼道光), 산스크리트 연구, 계율 부흥을 제창한 자운(慈雲), 임제종 중흥의 조상으로 불리는 백은(白隠) 등이 활약했다.
3. 8. 메이지 시대 (1868년 ~ 1912년)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메이지 정부는 신토(神道)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崇神抑佛) 정책을 펴 일본 불교계는 초유의 난관을 겪었다.[93] 전국 각지의 사찰은 폐쇄되기도 하고 철거되기도 하고 매각되기도 했다.
메이지 정부는 1868년 “신불 분리령(神佛判然令)”을 내려 ''신불분리(神仏分離)''(불교와 신토의 분리)라는 공식적인 국가 정책을 시행했다.[93] 이는 불교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한 신토(神道)를 국교로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와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와 같은 국학(國學, 고쿠가쿠(国学)) 인물들은 불교를 강하게 비판하며, 불교라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타락하기" 이전의 순수한 일본 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94] 이로 인해 수 세기 동안 존재해 온 사찰과 신사가 결합된 복합 시설은 해체되었고, 불교 승려들은 신사에서 종교 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불교 유물은 신사에서 제거되었다.[95]
이러한 배경에는 불교를 퇴보하고 외래적인 것으로 여기고 부패한 막부와 연관시키면서, 불교를 근절하려는 대중적이고 종종 폭력적인 운동이 있었다. 도쿠가와 단카 제도(檀家制度)는 가족들이 불교 사찰과 제휴하여 금전적 기부 의무를 지도록 강요했기 때문에 민중 사이에는 많은 억눌린 분노가 있었고, 많은 불교 사찰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여 신도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었다.[96][97]
''배불훼석(廃仏毀釈)''(문자 그대로 "불교를 폐지하고 석가모니를 파괴하라")로 알려진 불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는 일본 전역의 많은 불교 기관의 파괴와 폐쇄, 토지 몰수, 불교 승려들의 강제 환속, 불교 서적과 유물의 파괴를 가져왔다.[98] 어떤 경우에는 승려들이 공격받아 살해되기도 했다.[95] 일본학자 마틴 콜컷(Martin Collcutt)은 일본 불교가 완전한 멸절 직전에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약 4만 개의 불교 사찰이 파괴된 것으로 추산되며, 특정 지역에서는 파괴된 불교 사찰의 비율이 80%에 달했다.[99][100]
1872년 4월 정부 포고령은 불교 계율을 국가 법률의 지위에서 제외하고 승려들의 결혼과 고기 섭취를 허용했으며, 단발령과 복장 규정을 중단시켰다.[101] 결과적으로 일본의 대부분의 불교 승려들이 결혼하게 되었고 많은 사찰들이 가족 내의 세습 재산이 되었다.[102]
반불교적인 정부 정책과 종교 박해는 많은 불교 기관들이 일본 국민의 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에 맞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했다.[103][104] 이는 일본 불교 기관들이 국가 신토를 지지하는 현대화된 일본 국가에서 불교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재창조하게 만들었다.[104] 현대화되는 일본에 유용한 파트너로서 불교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광범위한 개혁 전략과 운동들이 있었으며, 규율을 강화하기 위한 승려 개혁뿐만 아니라 교리와 실천에 관한 개혁도 포함되었다. 일부 불교도들은 서구 과학과 철학과 결합하여 불교 사상을 현대화하려고 했다.[102]
개혁된 "신불교(新仏教)"는 사카이노 고요(酒井孝養)와 타카시마 베이호(高島米峰)와 같이 1899년 신불교도우시카이(新仏教同志会, 신불교 동지회)를 설립하고 사회 정의 활동을 장려한 평신도들에 의해 종종 장려되었다.[105] 신불교도들은 종종 일본 민족주의적 애국심과 불교적 미덕을 결합시켰다. 일부 신불교 단체들은 다나카 치가쿠(田中智學)의 ''고쿠추카이(国柱会)''(국주회)와 같이 일본 민족주의(Japanese nationalism)를 완전히 받아들여 연화경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방법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장려했다. 또 다른 신불교 단체는 1894년에 설립된 ''케이이카이(経緯会)''(경위회)로, 전통 불교의 교리적 경직성을 비판하고 당시의 급속한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자유 탐구"(自由探究, 지유 토큐)를 지지했다.[106]
기요자와 만시(清沢満之)의 ''세이신슈기(精神主義)''(정신주의) 운동은 불교도들이 조직된 불교나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수양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장려했다. 기요자와와 그의 친구들은 고코도(広大洞, 광대동)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했고, ''세이신카이(精神界)''(정신계)라는 잡지를 발행했다.[105] 다른 불교도들은 샤쿠 운쇼(釈雲照)와 같이 십계(十戒)를 준수하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 그는 ''쥬젠카이(十善会)''(십선회)로 알려진 평신도 단체를 만들었다.[107]
이 시대 불교 개혁의 영향력 있는 인물은 철학자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1858~1919)였다. 도쿄 제국대학 출신인 그는 기독교 비판과 불교 기관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더 합리적인 렌즈를 통해 불교 사상을 해석하려고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서구 철학(Western philosophy)과 역사적 붓다의 가르침을 활용했다. 그는 1904년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칸트에게 헌정된 철학도(哲學堂)(철학당)를 개관했다. 그는 또한 사회 복지 활동을 옹호했다.[108]
일본 불교 연구가 학문 분야로 시작된 것도 메이지 시대였다. 일본 학자들이 서구 대학으로 해외 여행을 가서 불교 문헌 연구, 특히 인도 불교와 그 언어(산스크리트어(Sanskrit)와 팔리어(Pali)) 연구를 접하게 된 것에서 촉발되었다.[109] 당시 일본 정부는 불교가 공교육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주저했고, 그 결과 불교 연구는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분류되었으며, "인도 연구"와 같은 용어가 "불교 연구"보다 선호되었다.[110]
초기 일본 학자 중 한 명은 옥스퍼드에서 맥스 뮬러(Max Müller)와 함께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나중에 도쿄 제국대학에서 직위를 맡은 난죠 분유(Nanjō Bunyū)(1849~1927)였다. 한편, 센쇼 무라카미(Senshō Murakami)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경전과 불교 역사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세계 불교의 보편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대승불설론비판(大乗仏説論批判)''(대승이 역사적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는 이론에 대한 비판, 1903)과 같은 작품에서 일본 불교의 역사적 편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했다.[111]
메이지 시대부터 1945년까지 인기를 얻은 새로운 불교 운동도 여러 가지 있었다. 이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 중 일부는 소카가카이(Soka Gakkai), 레이유카이(Reiyūkai), 리스쇼코세이카이(Risshō Kōsei Kai)의 니치렌파/연화 운동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인 포교와 세속적인 개인적 이익에 중점을 두었다.[111]
3. 9. 다이쇼 시대 (1912년 ~ 1926년) 및 쇼와 시대 (1926년 ~ 1989년)
1868년 메이지 정부는 신토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신억불(崇神抑佛) 정책을 펴, 일본 불교계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국 각지의 사찰은 폐쇄, 철거, 매각되기도 했다.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學)는 내야마 구도 등의 승려가 대역사건에 연루된 것에 충격을 받고, 니치렌의 가르침을 국가와 사회 활동의 기본 지도 이념으로 하는 "니치렌주의"와 내셔널리스트적인 불교적 국체론을 결합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는 군인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다이쇼 시대의 유행 사상이 되었다. 미야자와 겐지, 이시하라 간지 등이 니치렌주의자로 유명하다. 1924년에는 법화계 신종교인 영우회가 발족했다. 기존 종파도 사회복지 사업에 힘쓰며 근대적인 종교 단체로 변혁하려 노력했다. 1915년에는 불교 각 종파 곤와회를 개칭한 불교연합회가 발족하여, 정치와 종교에 관한 여러 문제에 불교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163]
근대 일본 정부는 1939년 종교단체법을 제정하여 종교 단체를 통제했다. 이전까지는 신불판연령 이후 태정관포달과 단편적인 법령, 행정상의 통달을 통해 종교를 관리해왔다. 종교단체법 제정으로 일반 종교 단체는 처음으로 법인이 되었고, 기독교도 처음으로 법적 지위를 얻었지만, 감독·통제 색채가 강한 법률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대부분의 일본 불교 기관들은 일본의 군사화를 지지했다.[112][113][114][115][116][117] 이는 메이지 시대부터 불교가 일본의 근대화 및 강대국화 노력에 부합하는 좋은 시민임을 보여줄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118] 일부 불교도들은 전쟁을 불교 전파 수단으로 여기기도 했다.[118] 러일 전쟁 당시 불교 지도자들은 군대에 군목을 파견하고, 승리를 위한 의례를 행하고, 전사자 가족과 협력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지원했다.[118] 15년 전쟁(1931년 만주사변~1945년 일본의 항복) 동안에도 일본 불교도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전쟁을 지원했고, 불교 승려들은 제국 육군 연대에 배속되었다.[118] 초종파 불교 단체인 명화회(明和会, Society for Light and Peace)는 "자비로운 강력함"이라는 개념을 홍보하며 전쟁을 정당화했다.[118] 이노우에 니쇼의 테러 단체인 혈맹단은 5·15 사건을 일으켜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암살했다.[118]
전쟁 중 일본 정부는 불교 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119] 불교 학교들은 교리에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지 않거나 신도 신의 중요성을 떨어뜨리는 내용을 제거하도록 강요받았다.[119] 여기에는 신란과 니치렌의 글 중 통치자가 다르마에 반할 경우 비판하는 것이 옳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119] 불교도들은 이세 신궁의 부적을 숭배하도록 강요받았고, 거부하는 자들은 탄압받았다.[120][121][122] 예를 들어, 1940년대에는 본문법화종과 창가학회 지도자들이 국가 신도에 대한 존경을 의무화한 전시 정부의 종교 정책에 반항하여 투옥되었다.[120][121][122] 린자이파 승려 이치카와 하쿠겐과 전 조도신슈 승려 이토 쇼신 등 소수의 개인들은 전쟁에 반대하여 정부의 표적이 되었다.[119][123]
1932년 혈맹단 사건이 발생했다. 1941년 3월 24일, 대일본불교회(재단법인)가 결성되었고, 10월 6일에는 도쿄에서 불교도 銃後奉公대회가 열렸다. 일본군에는 종군 승려가 있었지만, 군속 취급이었고, 종교인도 징병 대상이었기 때문에 승려였던 병사가 임시로 법사를 집행하는 등 개인적인 활동이 중심이었다. 정토진종의 각 교단은 군대 포교사라 부르는 포교사를 파견하여 군인들에게 포교 활동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1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 불교계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의 불교 단체에서 세운 대학으로 입정, 고마자와, 무사시노, 용곡, 창가 등이 있다.
3. 10. 헤이세이 시대 (1989년 ~ 2019년) 및 레이와 시대 (2019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점령군은 국가 신토를 폐지하고 종교의 자유와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확립했으며, 이는 1947년 일본 헌법 개정의 공식적인 부분이 되었다.[124] 1951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제정되어 불교계는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164]
일본 국민들은 불교가 전쟁을 돕고 증진하는 데 관여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 계보들은 전시 활동에 대해 회개 행위를 해왔다. 불교 단체들은 전후 평화 운동에서 활동적이었다.[125]
전후 일본의 불교 사찰들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수리해야 할 피해가 많았고 자금이 부족했다. 1950년대에 상황은 서서히 개선되었는데, 특히 관광이나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활용할 수 있었던 사찰들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전후 토지 개혁과 점점 더 이동성이 높아지고 도시화되는 인구 때문에 사찰들은 신도와 토지 소유권 모두를 잃었다.[126]
1960년대에 많은 사찰들은 장례식과 매장과 같은 서비스 제공에만 집중했다. 1963년, 다마무로 타이죠(Tamamuro Taijō)는 전후 일본의 사찰 불교의 의례적 형식주의를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람들의 영적 욕구와 분리된, 소시키 불교(sōshiki bukkyō, 장례 불교)라는 용어를 만들었다.[127] 전후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사찰 불교가 감소하여 매년 약 100개의 불교 단체가 사라졌다.[128][1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장례식의 약 90%는 불교 의례에 따라 치러진다.[130]
전후 시대에는 전통적인 사찰 불교와는 대조적으로, 특히 소카가카이(Sōka Gakkai)와 릿쇼코세이카이(Risshō Kōseikai)와 같은 니치렌(Nichiren)/법화경(Lotus Sūtra) 기반 운동과 같은 불교계 신종교가 급속히 성장했는데, 이들은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큰 재가 불교 단체이다.[132] 소카가카이는 "...전후 일본의 혼란 속에서 급속히 성장하여[122] 1951년 약 3,000명의 회원에서 2000년에는 800만 명 이상의 회원으로 증가했고,[133] 학교, 대학, 문화 기관을 설립했다.[134] 소카가카이는 종교 정당인 공명당을 조직하여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가 신자의 증가와 사회 참여 증가의 이유에 대한 연구는 니치렌의 '사회적 책임' 가르침을 그 원인으로 돌린다. "그러나 니치렌 불교의 전통에서 우리는 법화경이 독특한 사회적 책임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135] 학술 연구에 따르면, 불교 재가 신자들은 "...그들의 불교 형태가 평화롭고 심리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종교적 기반을 형성하는 일본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를 제공한다".[136]
1970년대 일본의 기적 시기에 "신신종교(shin shin shūkyō)"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교 운동의 물결이 있었다. 밀교 계 신흥 종교인 아함종과 신뇨엔이 성장했고, 염불종 삼보산 무량수사(무량수회)도 이 시기에 생겨났다. 또한, 한역 경전을 중심으로 했던 일본에서 티베트 불교, 원시 불교, 상좌부 불교, 힌두교 등의 영향을 받은 신흥 종교가 증가했다. 신종교는 니치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지만, "신신" 불교 종교는 다른 많은 불교 전통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불교 신신종교에는 아곤슈(Āgama School), 게다츠카이(깨달음 사회, 싱온과 신토에서 영향을 받음), 신뇨엔(진실의 정원, 싱온 기반 종교)이 포함된다.[137] 이러한 신신종교 중 가장 악명 높은 오움진리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원흉인 위험한 사이비 종교이다. 1980년대에는 이른바 신신종교 붐이 일어났다. 오움진리교는 1980년대 후기부터 1990년대 중기까지 오움진리교 사건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 발각되었고, 이를 계기로 1995년에는 종교법인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전후 일본에는 주로 교토 대학 교수들인 니시다 기타로, 타나베 하지메, 니시타니 게이지가 이끄는 교토학파라고 불리는 불교 지식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철학 운동이 나타났다. 이 사상가들은 칸트, 헤겔, 니체와 같은 서양 철학자들과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을 표현했다. 관심을 끌고 있는 또 다른 지적 분야는 비판적 불교인데, 하카마야 노리아키와 마츠모토 시로와 같은 소토젠 승려들과 관련이 있으며, 일본 대승불교(주로 불성과 홍각)의 특정 핵심 개념이 붓다의 무아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비판적 불교는 또한 민족주의적 폭력과 사회적 차별에 대한 지지와 같이 일본 불교의 도덕적 실패를 검토했다.[138]
4. 일본 불교의 종파
남도 육종(南都六宗)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종파들이다.[140] 이 종파들은 6세기 후반과 7세기 초에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이들은 고대 수도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와 관련이 있으며, 그곳에서 유명한 "남도 칠대사"(''Nanto Shichi Daiji'' 南都七大寺)를 세웠다.
- '''화엄종'''(華厳宗, Kegon-shū): 인도 승려 보리세나(Bodhisena)에 의해 736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수많은 경전들을 모아놓은 《화엄경》과 모든 법(불교적 의미에서의 'dharma')의 상호관입에 대한 화엄종 조사들의 저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본에서의) 개조는 심상 등이며, 본산은 동대사이다.
- '''법상종'''(法相宗, Hossō-shū): 중국에서 현장(Xuanzang) 밑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일본 승려 도소(Dōshō)에 의해 654년 일본에 전래되었다.[141] 이 종파는 아상가(Asanga)와 바수반두(Vasubandhu)의 ''유가행파'' 철학, 즉 의식과 마음을 닦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조는 도소(도조라고도 함)이며, 본산은 흥복사・약사사이다.
- '''삼론종'''(三論宗, Sanron-shū): 고구려 승려 혜관(Hyegwan)에 의해 625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모든 법의 공에 대한 나가르주나(Nāgārjuna)와 아리아데바(Āryadeva)의 ''중관사상'' 철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 '''율종'''(律宗, Risshū-shū): 중국 승려 감진(Jianzhen)에 의해 753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율장》의 ''대승율'' 번역본과 엄격한 ''범행'' 수행 규칙의 준수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조는 감진(감진화상)이며, 본산은 당장사이다.
- '''성실종'''(成実宗, Jōjitsu-shū): 고구려 승려 엑관(Ekwan)에 의해 625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철학자 하리바르만(Harivarman)의 《달마실지론》(Tattvasiddhi-Śāstra), 즉 아비달마 경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진정한 독립적인 종파가 된 적이 없었고, 삼론종 교리와 함께 연구되었다.
- '''구사종'''(倶舎宗, Kusha-shū): ''아비달마구사론''(Abhidharmakośabhaṣya), 즉 철학자 바수반두(Vasubandhu)의 아비달마 경전에 초점을 맞춘 설일체유부 종파이다. 그것은 진정한 독립적인 종파가 된 적이 없었고, 법상종 교리와 함께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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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나라 불교계 (남도육종)
난토 육종(南都六宗)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종파들이다.[140] 이 종파들은 6세기 후반과 7세기 초에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이들은 고대 수도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와 관련이 있으며, 그곳에서 유명한 "남도 칠대사"(''Nanto Shichi Daiji'' 南都七大寺)를 세웠다.
- '''화엄종'''(華厳宗, Kegon-shū): 인도 승려 보리세나(Bodhisena)에 의해 736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수많은 경전들을 모아놓은 《화엄경》과 모든 법(불교적 의미에서의 'dharma')의 상호관입에 대한 화엄종 조사들의 저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본에서의) 개조는 심상 등이며, 본산은 동대사이다.
- '''호소종'''(法相宗, Hossō-shū): 중국에서 현장(Xuanzang) 밑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일본 승려 도쇼(Dōshō)에 의해 654년 일본에 전래되었다.[141] 이 종파는 아상가(Asanga)와 바수반두(Vasubandhu)의 ''유가행파'' 철학, 즉 의식과 마음을 닦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조는 도소(도조라고도 함)이며, 본산은 흥복사・약사사이다.
- '''삼론종'''(三論宗, Sanron-shū): 고구려 승려 혜관(Hyegwan)에 의해 625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모든 법의 공에 대한 나가르주나(Nāgārjuna)와 아리아데바(Āryadeva)의 ''중관사상'' 철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 '''율종'''(律宗, Risshū-shū): 중국 승려 감진(Jianzhen)에 의해 753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율장》의 ''대승율'' 번역본과 엄격한 ''범행'' 수행 규칙의 준수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조는 감진(감진화상)이며, 본산은 당장사이다.
- '''성실종'''(成実宗, Jōjitsu-shū): 고구려 승려 엑관(Ekwan)에 의해 625년경 일본에 전래되었다. 이 종파는 철학자 하리바르만(Harivarman)의 《달마실지론》(Tattvasiddhi-Śāstra), 즉 아비달마 경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진정한 독립적인 종파가 된 적이 없었고, 삼론 교리와 함께 연구되었다.
- '''구사종'''(倶舎宗, Kusha-shū): ''아비달마구사론''(Abhidharmakośabhaṣya), 즉 철학자 바수반두(Vasubandhu)의 아비달마 경전에 초점을 맞춘 설일체유부 종파이다. 그것은 진정한 독립적인 종파가 된 적이 없었고, 호소 교리와 함께 연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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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 헤이안 불교 (밀교계)
관무 천황이 수도를 헤이안쿄(현재의 교토)로 천도하면서, 사초가 창시한 천태종과 구카이가 창시한 진언종이 탄생하게 되었다.- '''천태종'''은 805년 사초에 의해 일본에 전래되었으며, 법화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지만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히에이잔연력사를 본산으로 한다.
- '''진언종'''은 816년 구카이에 의해 일본에 전래된 밀교의 한 갈래이다.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며, 과 ''대일여래경''을 주요 경전으로 삼는다. 동사(동사진언종), 고야산금강봉사 등이 본산이다.
이 시대에는 불교와 신토 요소를 결합한 수행도가 엔노 굥자에 의해 창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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