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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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속신앙은 한국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으로, '무속', '무교', '무' 등으로 불리며, 한국 민간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다. 무속은 불교, 유교, 기독교와 공존하며, 조직화된 종교라기보다는 구전으로 전승되는 비제도적인 전통이다. 무당은 무속의 핵심으로, 신령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며, 굿과 같은 의식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무속은 고조선 시대부터 시작되어 삼국 시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 유교의 억압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했으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변화해 왔다. 현대 사회에서도 무속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 의례 등을 제공하며,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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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속신앙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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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민속 신앙 |
| 다른 이름 | 무교 (巫敎) 무속 (巫俗) |
| 개요 | |
| 정의 | 한국 샤머니즘 또는 한국 민간 신앙 |
| 관련 개념 | 무, 굿, 태극 |
| 신앙 대상 | 신령 정령 조상신 |
| 종교 전문가 | 무당 |
| 특징 | 다신교 정령 숭배 조상 숭배 엑스터시 |
| 역사 | |
| 기원 | 고대 한민족의 토테미즘, 애니미즘 신앙에서 유래 |
| 발전 | 고조선 시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종교적 역할 담당 삼국 시대: 불교, 유교 유입 속에서도 민간 신앙으로 존속 고려 시대: 국가적 행사로 채택되기도 함 조선 시대: 억압 정책 속에서도 민중 속에서 명맥 유지 |
| 현대 | 일제강점기: 미신으로 탄압받음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점차 쇠퇴 1970년대 이후: 민족 문화 부흥 운동과 함께 재조명 |
| 주요 의례 | |
| 굿 | 무당이 주관하는 의례 신과 인간의 소통을 통해 복을 빌고 재앙을 막음 지역,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 존재 |
| 종류 | 내림굿: 무당이 되기 위한 입무 의례 천도굿: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의례 재수굿: 복을 빌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의례 병굿: 질병 치료를 위한 의례 |
| 신앙 체계 | |
| 신의 종류 | 천신: 하늘을 다스리는 신 산신: 산을 다스리는 신 용신: 바다와 물을 다스리는 신 조상신: 조상을 숭배하는 신 기타: 다양한 자연 현상, 사물에 깃든 신 |
| 신과의 소통 | 무당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 굿을 통해 신의 뜻을 전달하고 인간의 소원을 기원 신들림, 예언, 점술 등의 능력 발휘 |
| 지역별 특징 | |
| 강신무 | 중부, 북부 지역 중심 신내림을 통해 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음 |
| 세습무 | 남부 지역 중심 혈연을 통해 무당의 계보를 잇는 경우가 많음 |
| 사회적 영향 | |
| 민중 문화 | 한국 민중의 삶과 깊숙이 연관 전통 예술, 민속놀이 등에 영향 공동체 의식 강화에 기여 |
| 현대 사회 |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신앙 활동 이어짐 관광 상품, 문화 콘텐츠 등으로 활용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함 |
| 비판적 시각 | |
| 미신 | 과학적 근거 부족 비합리적인 믿음 체계 사회적 문제 야기 가능성 |
| 상업화 | 무당의 상업적 활동 과도한 굿 비용 요구 신앙의 본질 왜곡 우려 |
2. 용어
한국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을 부르는 말로는 '무속', '무교', '무(巫)' 등이 있다.[10] '무속'은 샤머니즘을 전통적인 관습으로 이해하는 국문학자와 민속학자들이 주로 사용한다.[10] '무교'는 샤머니즘을 기독교, 불교와 같은 독립된 종교로 존중하는 종교학자들이 사용한다.[10] '무(巫)'는 한국 샤머니즘의 독특한 개성을 강조하는 인류학자들이 사용한다.[10]
한국 무속신앙의 기원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현대 이전의 무당 의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드물고, 구전으로 전승되는 특성상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기가 더욱 어렵다.
민속학자 이능화가 만든 '무속|무속한국어'(무|무한국어 민속)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10] 그 이후 한국인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10] 다른 용어로는 무교|무교한국어,[10] 무의즘|무의즘한국어, 그리고 무|무한국어가 있다.[10]
이 전통의 의례 전문가를 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무당'이다.[10] 흔히 사용되지만 '무당'이라는 용어는 한국 문화에서 경멸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어 일부는 이 용어를 피한다.[10] 그 대신 '무|무한국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며, 이 용어는 의례 전문가를 지칭하는 중국어 단어 '무(巫)'와 같은 뜻이다.[10] 몇몇 현대 무당|무당한국어 옹호 단체들은 "무|무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musogin|무속인한국어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10] 무당|무당한국어이라는 용어는 남성 또는 여성에게 적용될 수 있지만, 남성 무속|무속한국어 전문가를 지칭하는 특정 용어에는 박수|박수한국어 또는 과거에 더 흔히 사용되던 격사|격사한국어가 있다.[10] 현대 옹호 단체들은 또한 지지자들을 sindo|신도한국어(信徒) 또는 musindo|무신도한국어 (무|무한국어의 방식을 믿는 사람들, 巫信徒)라고 묘사하기도 한다.[10]
무당|무당한국어은 종종 강신무|강신무한국어와 세습무|세습무한국어로 나뉜다.[10] 전자는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빙의되었다고 묘사하는 의례를 수행하고, 후자의 의례는 이러한 존재와의 상호 작용을 포함하지만 빙의는 포함하지 않는다.[10] 전자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북부와 중부에서 더 흔했고, 후자는 한강 이남의 남부에서 더 흔했다.[10] 강신무|강신무한국어 전통은 이후 확산되었고, 20세기 말에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우세하게 되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무|세습무한국어와 강신무|강신무한국어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10]
특정 지역 용어도 무당|무당한국어에 사용된다.[10] 세습무|세습무한국어는 전라남도에서 종종 당골|당골한국어이라고 불리고, 제주도에서는 심방|심방한국어이라고 불린다.[10] 강신무|강신무한국어의 또 다른 대체 용어는 만신|만신한국어인데, 이는 "만 개의 영/신"을 의미하는 용어이며, 무당|무당한국어이라는 용어보다 경멸적인 뉘앙스가 적다.[10]
3. 역사
19세기 후반부터 영어 연구에서는 무당한국어을 '샤먼'으로, 그들의 관행을 '한국 무속신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샤머니즘'이라는 용어는 17세기 말 퉁구스어족에서 영어로 도입되었으나, 명확한 정의가 없고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일반적인 정의는 영적 영역에서 의식을 수행하기 위해 환영적인 비행을 포함하는 전통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지만, 한국 전통 종교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발견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은 '샤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 종교에 대한 적용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인류학자 김종호는 한국 무속신앙의 정의가 "매우 문제적"이라고 언급하며, 불교, 유교, 기독교가 아닌 모든 한국의 종교적 관습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잔여" 범주로 특징지었다. 반면, 그리핀 딕스, 최길성, 돈 베이커와 같은 학자들은 한국 무속신앙을 한국 민간 신앙의 한 측면으로 제시했다.
한국 무속신앙은 방언 종교, 민간 종교, 대중 종교, 토착 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조직화된 종교라기보다는 비제도적인 전통이며, 교리나 전반적인 위계도 없고, 구전으로 전승된다. 지역적 변이가 심하고, 실천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민속학자 이능화가 만든 무속한국어(무속 민속)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한국인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다른 용어로는 무교한국어, 무의즘한국어, 무한국어 등이 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한국인들은 도교, 불교, 유교, 무속한국어을 동시에 실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기본적인 신념을 공유하면서도 의례적, 우주론적 책임을 분담했다. 예를 들어, 유교 의례는 주로 조상 숭배와 관련되었고, 무당한국어은 더 드물게 불려졌다. 한국에서는 무속한국어과 불교 사이의 혼합주의가 나타나기도 했다. 무당한국어은 종종 불교 신자로 스스로를 식별하고, 불교 신을 숭배하며, 일부 한국 불교 사찰은 전통적으로 무속한국어과 관련된 신을 숭배한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의 종교(기독교 제외) 신자들이 무속한국어에 참여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
3. 1. 고조선과 삼국 시대
무속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군신화에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적 요소가 나타나며, 당시 제정일치 사회에서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가 구분되지 않았다.[1] 김영하 교수 등은 단군을 몽골의 천신인 텡그리와 같다고 주장한다.[1] 단군왕검에서 단군은 제사장, 즉 종교의 우두머리를 뜻하며 왕검은 왕을 뜻한다는 설이 있다.[1]
고삼국 시대에는 솟대나 당산목 등이 종교적 상징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이때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 솟대는 새를 꽃은 나무로, 새를 하늘과 땅의 중개자로 보는 신앙에서 비롯되었다.[1] 철기 사용으로 농업이 발달하고 국가 간 전쟁이 치열해지자, 고대 국가들은 백성들을 단합한다는 취지에서 제천 의식을 열었다.[1]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예, 마한 등이 모두 제천의례를 거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1]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백제의 무천, 마한의 천제는 신라와 고려대에 이르러 팔관회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다.[1]
3. 2.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
통일 신라 시대에는 유교, 불교와 같은 외래사상의 수용과 건국 시조와의 연관성을 통한 왕권 계승자 의식 확립으로 제천의례가 쇠퇴하였다.[14] 고려 시대는 무속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개인적인 굿 또는 무당이 개입한 제의의 역사가 구체화된 시기이다.[15] 신이 내리는 데는 남녀와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15] 충선왕 때 내부령(內府令)을 지냈고 충숙왕 때에 찬성사(贊成事)가 된 강융(姜融)의 누이는 무당이 되어 송악사(松岳祠)에 기식하였고, 공민왕 때 판숭경부사가 된 지윤(池奫)의 어머니도 무당이었다.[15]
처용무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궁중 의례화되었다.[16] 고려시대 무속은 몇 가지 점에서 근래와 유사한 상태를 보여 주며,[16] 고려시대 무의(巫儀)가 이미 현대의 굿과 같은 구조를 지녔다.[16][17]
고려시대에 와서 하늘에 대한 제사가 다시 중시되었다.[14] 고려의 국조 세계 설화에 평나산 산신이 등장하는 것을 비롯하여, 산신이 대단히 중요시되었다.[18]
3. 3. 조선 시대
유교가 조선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무속은 음사(淫祀)로 규정되어 탄압받았고, 무당은 천민으로 전락했다.[11] 그러나 무당들은 백성들의 질병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11] 세종 시대부터 불교 승려들과 함께 무당들도 도성에서 쫓겨났다.[22] 무당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천민 부류에 속했지만,[23] 조선 후기에는 주로 양인 신분이었다.[24] 호구 수에서 대체로 무당의 숫자가 적어 대규모의 굿을 행하기는 어려웠다.[25] 영조 시대에는 영조실록에 궁궐과 사대부들이 무속을 겉으로는 경시하면서도 속으로는 깊이 믿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26]
3. 4.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유교가 조선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무속은 탄압받았고, 무당은 천민으로 전락했다. 일제강점기에도 탄압은 계속되었다.[11]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은 신앙심을 유지했으며, 일제가 신토를 강요하며 국사당을 강제로 옮기기도 했다. 조선 후기부터 구국의 성지로 여겨진 태백산 천제단에서는 구국 의례가 행해졌고,[27] 한국전쟁 중에는 헬기 착륙장 조성으로 훼손되기도 했다.[14]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무속이 미신으로 간주되어 거의 사라졌다.[12] 대한민국에서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지만, 박정희 정권의 '미신타파운동'으로 탄압받았다.[12][13]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신타파운동은[28] 집안과 마을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29] 무속신앙이 제대로 존중받았다면 사회적 병폐가 줄고, 개인, 가족, 마을의 결속력이 강화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29]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신자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4. 강신무와 세습무
무속에서 신령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자를 무당이라고 한다.[30] 한국에서는 무당을 당골이라고도 부르며,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눈다. 강신무는 무병을 앓고 내림굿을 통해 신내림을 받아 신령을 몸주신으로 모시는 무당을 말하며, 한강 이북에서 주로 나타난다. 세습무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화처럼 집안의 인척 관계로 계승되는 무당을 말하며, 한강 이남과 동해안 일대에서 주로 나타난다.
광복 이후, 세습무들은 조선시대 때 무당이라는 이유로 받던 괄시를 피하고자 무당 집안임을 숨기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대한민국으로 옮겨온 강신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무당이라고 하면 대부분 강신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동해안과 호남 지역에는 여전히 세습무의 전통이 남아있으며, 강릉 단오굿, 동해안 별신굿, 진도 씻김굿 등 세습무가 주관하는 굿들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진도에서는 씻김굿을 하는 무당을 당골이라고 부른다.)
강신무(mr|강신무한국어)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으로,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빙의되었다고 묘사되는 의례를 수행한다. 반면 세습무(mr|세습무한국어)는 그러한 존재와 상호작용은 하지만 빙의는 포함하지 않는 의례를 수행한다. 역사적으로 강신무는 한반도 북부와 중부에서, 세습무는 한강 이남에서 더 흔하게 나타났다. 이후 강신무 전통이 확산되어 20세기 말에는 대한민국 전역에서 우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무와 강신무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세습무는 일반적으로 세습을 통해 역할을 물려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든 세습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강신무는 마치 세습 전통을 유지하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에게 역할을 물려주기도 한다.
5. 신령
무속신앙에는 다양한 신령들이 존재하며, 크게 하늘, 땅, 바다를 다스리는 신령과 특정 지역이나 인물과 관련된 토착 신령,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과 관련된 신령으로 나눌 수 있다.
5. 1. 하늘, 땅, 바다 신령
무속신앙에는 다양한 신령들이 존재한다. 하늘, 땅, 바다를 다스리는 대표적인 신령들은 다음과 같다.- 하늘 신령:
- 옥황상제: 하늘의 신[1]
- 서낭대모: 하늘의 신[1]
- 천동대신 지동대신: 하늘의 신[1]
- 무장승: 하늘의 신[1]
- 일월성신: 하늘의 신[1]
- 칠원성군[1]
- 삼신제석[1]
- 뇌공신장[1]
- 불사[1]
- 단군왕검: 때때로 최초의 무당으로 여겨진다.[1]
- 웅녀[1]
- 환웅[1]
- 땅 신령:
- 산신: 산의 신령으로, 가장 중요한 땅의 영으로 여겨진다. 보통 흰 수염, 파란색 가운, 호랑이를 동반한 남자로 묘사된다.[1]
- 풍신[1]
- 오방신장신[1]
- 오방장군신: 다섯 방위의 장군[1]
이 외에도 바람의 여신 영등할망, 물의 신인 용 등 다양한 신령이 존재한다.[1]
5. 2. 토착 신령
한국 무속 신앙에서 숭배되는 토착 신령은 다음과 같다.- 단군
- 장군신: 최영, 남이, 김유신, 이순신, 왕건, 문무왕, 무열왕, 김덕령, 임경업
- 별상
- 군웅
- 궁예
- 바리공주
- 배서낭
- 창부씨
- 산신
- 삼대신
- 십이대신
- 김근철선생신
- 영등할망
- 조왕신
- 태조대왕
- 대감
- 처용
- 호구별성마마
- 조선 단종
- 왕자신: 마의태자, 사도세자[31], 금성대군, 호동왕자
- 법우화상
- 원효대사
- 의상대사
- 일연대사
- 경순왕
5. 3. 뒷전무당 신령과 넋무당 신령
뒷전무당 신령에는 걸립, 말명, 맹인신장, 성황, 서낭, 사신, 시왕, 사재 등 다양한 신령이 존재한다.
한국 민간 신앙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사후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인간 세계를 떠돈다고 믿는다. 죽은 영혼은 시왕이 지키는 문을 통과하여 법정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며, 생전의 행실에 따라 평가받는다. 지옥의 십대왕은 악한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바리공주 설화에서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죽은 자는 산 자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와 관계없이, 그 접촉만으로도 고통을 줄 수 있기에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1] 특히, 조기에 죽거나 삶이 불만족스러웠던 영혼(조부모가 손주를 보지 못하고 죽거나, 두 번째 아내에게 자리를 내준 첫 번째 아내, 익사한 사람, 결혼 전 죽은 젊은이 등)은 산 자에게 더욱 적대적이라고 한다.[2]
성가신 유령은 천 조각, 옷, 밝은 물건 등을 통해 집에 들어온다고 믿어진다.[3]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거나 부적절한 곳에 묻힌 조상은 후손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진다.[4] 비극적이거나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영혼은 삶과 죽음 사이를 맴돌며 가족에게 불행을 가져올 수 있어, 의식을 통해 달래야 한다.[5] 떠도는 영혼은 잡귀한국어[6], 객사한국어[7]라고 불리며, 무당한국어이 이들을 다루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진다.[8]
제주도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심방한국어이 참여하여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공적인 애도를 진행해왔다.[9]
6. 현대 한국 사회와 무속
무당은 인간과 초자연적인 세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굿이나 점을 통해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1] 이들은 신과 조상신과 소통하며, 그들의 뜻을 점치고, 그들을 달래기 위해 의식을 수행한다.[1]
현대 한국 사회에서 무당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자유로운 행위자로, 정식 성직자는 아니다.[1] 많은 무당이 이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1]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전단, 신문, 인터넷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1] 이러한 모습에 일부 무속신앙 추종자들은 무속이 자본주의와 현대화로 인해 변질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1]
많은 무당들은 무당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기도 한다.[1] 그러나 무속에서는 신이 무당이 될 사람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고통, 질병, 광기 등을 통해 직업을 선택하도록 만든다고 믿는다.[1] 이러한 과정을 신병이라고 부른다.[1]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승을 찾아 제자가 되어야 한다.[1] 제자는 내림굿이라는 입문 의식을 통해 신의 말을 받을 수 있게 된다.[1]
사람들은 악몽, 재정 문제, 사업 문제,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무당을 찾는다.[1] 무당은 점술과 무아지경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의식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1] 무속에서는 조상과 신을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진다.[1]
무속 의례는 대부분 제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1] 제단은 무당이 초자연적 존재와 소통하는 장소이며, 신당 등으로 불린다.[1] 무당은 집에 신과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두는 경우가 많으며,[1] 사당에는 신의 그림인 무신도나 신상 등이 놓인다.[1]
대부분의 무당은 여성이지만, 남성 무당도 존재한다.[1] 무당은 전통적으로 낮은 사회 계층에 속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1]
무당의 정확한 수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20세기 초에는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1] 무당은 서울과 제주도에 집중되어 있으며,[1] 해외에서도 활동하는 무당들이 있다.[1]
무속은 한국 역사에서 유교, 일제강점기, 개신교 등 지배적인 이념에 의해 억압받아 왔다.[1] 21세기 초에도 무당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 직면해 있지만,[1] 점차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이다.[1]
무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비판론자들은 무당을 사기꾼으로 여기거나, 그들이 요구하는 비용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1] 또한, 무당의 의식이 사회 질서를 파괴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1] 특히 개신교 신자들과 무당 사이에는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1]
1960년대부터 무당은 한국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1] 초기에는 부정적이고 반현대적인 인물로 묘사되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현대 사회에 적응한 전통문화의 일부로 그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1]
무속은 천도교, 증산교 등 한국 신종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일부 한국 기독교 교회는 무속에 뿌리를 둔 관습을 활용하기도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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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に代わり朝鮮を牛耳った独裁王妃の末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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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편 (老巫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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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3. 민속종교 > 2) 민속종교의 신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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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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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장거리굿의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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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군복(具軍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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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탄압과 무당의 역할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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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과 승려의 도성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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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컨텐츠상세보기 조선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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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천민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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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단성현 무당의 존재양상과 생활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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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조 무당의 사회적 위상-무녀 독갑방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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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 타파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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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과 미신타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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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인뉴스
200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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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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