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달튼외국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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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학교법인 봉덕학원이 설립한 외국인학교로, 미국 뉴욕의 달튼 스쿨의 교육 철학을 기반으로 달튼 플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952년 설립자 이봉덕 여사의 교육 철학을 계승하여,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학교는 창의력, 적응력, 의사소통 능력 등을 함양하는 교육을 제공하며, 학생들은 다양한 과외 활동과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중·고등학생은 입학 시 수학 및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하며, 졸업생들은 국내외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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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달튼외국인학교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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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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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 봉사하는 개척자 |
설립일 | 2011년 |
학교 종류 | 외국인 학교 |
CEEB 코드 | 682195 |
설립자 | 이봉덕 |
위치 |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서구 첨단동로 344 (청라동) |
좌표 | 37°32′48.97″N 126°37′23.01″E |
인증 기관 | WASC |
교사 대 학생 비율 | 6.7:1 |
캠퍼스 | 인천 |
상징색 | 네이비 블루와 금색 |
마스코트 | 봉황 |
별칭 | CDS |
웹사이트 | 청라달튼외국인학교 공식 웹사이트 |
조직 | |
교장 | 박지호 |
초등학교/중학교 교장 | 심옥령 |
교직원 수 | 72명 |
학생 수 | 502명 (2024-2025) |
학년 | Pre-K ~ 12학년 |
학생 자치 기구 | 청라달튼외국인학교 학생회 |
하우스 | 콘도르, 이글, 랩터, 레이븐 |
스포츠 | |
운동부 | CDS 농구팀, CDS 축구팀, CDS 고등학교 대표팀 |
기타 | |
연감 | CDS 연감 (연감 동아리 학생들이 편집) |
신문 | CDS 월간 뉴스레터 (학생회 편집) |
2. 역사
wikitext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 한가람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봉덕학원이 설립하였으며, 그 학원의 설립자는 고 이봉덕 (이봉덕/Lee Bong-duk영어 1921~2010) 여사이다.
이봉덕 여사의 한국 인재 교육 및 육성 사명은 20세기 일본 식민지와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조국에서 시작되었다. 1952년 문맹과 가난을 퇴치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여사는 막사를 지어 초등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59년 이후 여사는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와 노동력 제고를 위하여 봉영여자중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현 영상고등학교)), 양천여자고등학교(현 목동고등학교)를 차례대로 설립하였으며, 1997년 한가람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한가람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대폭 확대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경직된 학교 현장의 교육틀을 탈피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현재 봉덕학원은 학원 설립 이래 72,900명 이상의 학생을 교육시켜 사회로 배출하였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미래를 살아갈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설립된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리더를 길러내기 위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를 운영하고자 한다.
이에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미래 사회에 살아갈 국가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의사소통 능력, 적응력 및 뛰어난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또한 공동체 사회와 세계 인류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갖춘 진정한 리더를 길러내기 위하여 노력하며,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세계 평화와 문화 신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비전을 심어주고자 한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영리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외국인학교로서 우수한 교사진과 함께 미국 뉴욕 달튼학교와 교육철학을 공유하여 달튼플랜에 입각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창의력, 적응력, 의사소통능력, 팀웍, 협동심, 리더쉽 등의 가치와 교육 목표를 구현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1964년 9월 9일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 전 봉덕학원 이사장은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 전 이사장 외 1명(김모형 (재)서울성로원 이사장)과 함께 농림수산부로부터 청라도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을 얻었다. 이는 이명수 전 이사장이 일본에서 수산양식업을 배운 김옥창(2000년 사망 당시 71세)씨의 사업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김옥창 씨는 1963년 10월 25일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425㏊)의 매립면허를 이미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5·16 군사정변으로 탄생한 공화당 각 지구당 개편 당시인 1963년 8월 19일 서울 영등포 을(乙)구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그는 정권을 등에 업고 공사비와 공사 완료 후 토지 분배 조건을 내세워 김옥창 씨 대신 자신을 매립면허 신청자로 바꾸었다. 명목은 실향민 실업 구제와 임해 양식장 조성, 인천해양대학 설립 등이었다. 미국 민간구조단체인 ‘케어(CARE)’가 미공법 480-Ⅱ에 따른 근로자조사업으로 청라도 매립사업에 밀과 옥수숫가루를 지원한 이유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봉덕 이사장은 서울, 인천 등지에서 가난하게 사는 고향사람 1000여명을 모아 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공사기간 중 생활비를 대주고 공사가 끝나면 가구당 2정보의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 인부들은 경서동 인근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했다.
그들은 특별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 지게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루 10여m씩 제방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세찬 조류에 밀려 아침에 나가보면 반 이상이 바다에 쓸려나갔다.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자도 속출했다. 석산 폭파 때 돌에 맞아 죽거나 떠내려가는 작업선을 건지려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부들은 심하게 동요했고 일부는 새 일터를 찾아 인천 시내로 빠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인천시는 196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700t의 밀가루를, 1967년에는 쌀 400t을 지원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공사는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한미76공병대의 도움으로 급진전되었다. 공병대는 불도저 3대, 트럭 5대, 크레인 2대 등 공사 장비로 물막이 작업을 돕는 한편 주한미군항만사령부에 요청, 1967년 8월부터 상륙정을 동원해 매달 100대 트럭분의 돌을 실어다 주었다. 6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0년 10월 700~800m짜리 물막이 공사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준공을 불과 2개월 앞두고 건설부로부터'1년 안에 380만평을 해발 9m 높이로 추가 매립하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백방으로 뛰면서 노력했지만 메울 흙과 장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 땅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동아그룹으로 넘어간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국내 경제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해 악화 상황으로 치닫는다. 정부는'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해결사로 나섰다. 19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
1991년 1월 마침내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전방위 로비전을 펼친다.
그러나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동아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 계획도 진척이 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봉덕학원은 이 땅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지 1993년 경서동에 청소년수련원 경인유스호스텔을 개원한다. 그러나 이 시설은 2005년에 청라지구로 편입되면서 이마저도 폐쇄된다.
달튼외국인학교의 교훈은 '봉사하는 개척자/Pioneer to Serve영어'다. 봉덕학원은 달튼외국인학교 설립을 계기로 1960년대 청라에서 펼치다 잠시 접었던 개척정신을 다시 불사르고 있다.
2. 1. 설립 배경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한가람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봉덕학원이 설립하였다. 봉덕학원의 설립자는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된 조국에서 인재를 육성하려는 사명을 가진 고 이봉덕(1921~2010) 여사이다. 1952년, 이봉덕 여사는 문맹 퇴치와 가난 극복을 위해 막사를 지어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가르치기 시작했다.1959년 이후,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노동력 제고를 위해 봉영여자중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현 영상고등학교) , 양천여자고등학교(현 목동고등학교)를 설립했으며, 1997년 한가람고등학교를 설립했다. 한가람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확대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학교 교육의 변화에 기여했다. 현재까지 봉덕학원은 72,900명 이상의 학생을 배출했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글로벌 시민으로서 미래를 살아갈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의사소통 능력, 적응력, 창의력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동체 사회와 세계 인류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갖춘 리더를 양성하고자 한다.
국내 유일의 비영리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외국인학교로서, 미국 뉴욕 달튼학교와 교육 철학을 공유하며 달튼 플랜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창의력, 적응력, 의사소통능력, 팀워크, 협동심, 리더십 등의 가치와 교육 목표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2. 봉덕학원의 청라 간척 사업
1964년 9월 9일,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 전 봉덕학원 이사장은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 전 이사장 등과 함께 농림수산부로부터 청라도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을 얻었다. 이명수 전 이사장의 매립면허권은 일본에서 수산양식업을 배운 김옥창(2000년 사망 당시 71세)씨의 사업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김옥창 씨는 1963년 10월 25일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425㏊)의 매립면허를 이미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이명수 전 이사장은 5·16 군사정변으로 탄생한 공화당의 서울 영등포 을(乙)구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그는 정권을 등에 업고 공사비와 공사 완료 후 토지 분배 조건을 내세워 김옥창 씨 대신 자신을 매립면허 신청자로 바꿨다. 명목은 실향민 실업 구제와 임해 양식장 조성, 인천해양대학 설립 등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봉덕 이사장은 서울, 인천 등지에서 어렵게 사는 고향사람 1000여명을 모아 공사기간 중 생활비를 대주고 공사가 끝나면 가구당 2정보의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 인부들은 경서동 인근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했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 지게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루 10여m씩 제방을 쌓아나갔지만, 세찬 조류에 밀려 반 이상이 바다에 쓸려나갔다. 석산 폭파 때 돌에 맞아 죽거나 떠내려가는 작업선을 건지려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천광역시는 196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700t의 밀가루를, 1967년에는 쌀 400t을 지원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공사는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한미76공병대의 도움으로 급진전되었다. 공병대는 불도저 3대, 트럭 5대, 크레인 2대 등 공사 장비로 물막이 작업을 도왔다. 1967년 8월부터 상륙정을 동원해 매달 100대 트럭분의 돌을 실어다 주었다. 6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0년 10월 700~800m짜리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는 듯했으나, 준공 2개월 전 건설부로부터 '1년 안에 380만평을 해발 9m 높이로 추가 매립하라'는 공문이 오면서 결국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 땅은 이후 동아그룹으로 넘어갔다. 1980년대 정부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한 경제 악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19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
1991년 1월,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로비전을 펼쳤다.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자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했다. 동아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계획도 진척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국제도시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봉덕학원은 1993년 경서동에 청소년수련원 경인유스호스텔을 개원했으나, 2005년에 청라지구로 편입되면서 폐쇄되었다.
2. 2. 1. 간척 사업 과정
1964년 9월 9일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 전 봉덕학원 이사장은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 전 이사장 외 1명(김모형 (재)서울성로원 이사장)과 함께 농림수산부로부터 청라도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을 얻었다. 이는 이명수 전 이사장이 일본에서 수산양식업을 배운 김옥창(2000년 사망 당시 71세)씨의 사업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김옥창 씨는 1963년 10월 25일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425㏊)의 매립면허를 이미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이명수 전 이사장은 5·16 군사정변으로 탄생한 공화당 각 지구당 개편 당시인 1963년 8월 19일 서울 영등포 을(乙)구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그는 정권을 등에 업고 공사비와 공사 완료 후 토지 분배 조건을 내세워 김옥창 씨 대신 자신을 매립면허 신청자로 바꾸었다. 명목은 실향민 실업 구제와 임해 양식장 조성, 인천해양대학 설립 등이었다. 미국 민간구조단체인 ‘케어(CARE)’가 미공법 480-Ⅱ에 따른 근로자조사업으로 청라도 매립사업에 밀과 옥수숫가루를 지원한 이유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봉덕 이사장은 서울, 인천 등지에서 가난하게 사는 고향사람 1000여명을 모아 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공사기간 중 생활비를 대주고 공사가 끝나면 가구당 2정보의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 인부들은 경서동 인근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했다.
그들은 특별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 지게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루 10여m씩 제방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세찬 조류에 밀려 아침에 나가보면 반 이상이 바다에 쓸려나갔다.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자도 속출했다. 석산 폭파 때 돌에 맞아 죽거나 떠내려가는 작업선을 건지려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부들은 심하게 동요했고 일부는 새 일터를 찾아 인천 시내로 빠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인천시는 196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700t의 밀가루를, 1967년에는 쌀 400t을 지원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공사는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한미76공병대의 도움으로 급진전되었다. 공병대는 불도저 3대, 트럭 5대, 크레인 2대 등 공사 장비로 물막이 작업을 돕는 한편 주한미군항만사령부에 요청, 1967년 8월부터 상륙정을 동원해 매달 100대 트럭분의 돌을 실어다 주었다. 6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0년 10월 700~800m짜리 물막이 공사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준공을 불과 2개월 앞두고 건설부로부터'1년 안에 380만평을 해발 9m 높이로 추가 매립하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백방으로 뛰면서 노력했지만 메울 흙과 장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 땅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동아그룹으로 넘어간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국내 경제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해 악화 상황으로 치닫는다. 정부는'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해결사로 나섰다. 19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
1991년 1월 마침내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전방위 로비전을 펼친다.
그러나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동아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 계획도 진척이 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봉덕학원은 이 땅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지 1993년 경서동에 청소년수련원 경인유스호스텔을 개원한다. 그러나 이 시설은 2005년에 청라지구로 편입되면서 이마저도 폐쇄된다.
2. 2. 2. 동아그룹으로의 사업권 이전
1980년대에 들어서자 국내 경제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해 악화되었다. 정부는 '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해결사로 나섰다. 19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1991년 1월, 10여 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전방위 로비전을 펼쳤다.
그러나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자,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한다. 동아 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 계획도 진척이 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2. 2. 3. 청라국제도시 개발
1964년 9월 9일,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 전 봉덕학원 이사장은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 전 이사장 등과 함께 농림수산부로부터 청라도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을 얻었다. 이명수 전 이사장의 매립면허권은 일본에서 수산양식업을 배운 김옥창(2000년 사망 당시 71세)씨의 사업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김옥창 씨는 1963년 10월 25일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425㏊)의 매립면허를 이미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이명수 전 이사장은 5·16 군사정변으로 탄생한 공화당의 서울 영등포 을(乙)구 지구당위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그는 정권을 등에 업고 공사비와 공사 완료 후 토지 분배 조건을 내세워 김옥창 씨 대신 자신을 매립면허 신청자로 바꿨다. 명목은 실향민 실업 구제와 임해 양식장 조성, 인천해양대학 설립 등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봉덕 이사장은 서울, 인천 등지에서 어렵게 사는 고향사람 1000여명을 모아 공사기간 중 생활비를 대주고 공사가 끝나면 가구당 2정보의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 인부들은 경서동 인근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처를 마련했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곡괭이와 삽, 지게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루 10여m씩 제방을 쌓아나갔지만, 세찬 조류에 밀려 반 이상이 바다에 쓸려나갔다. 석산 폭파 때 돌에 맞아 죽거나 떠내려가는 작업선을 건지려다 물살에 휩쓸려가는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천광역시는 196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700t의 밀가루를, 1967년에는 쌀 400t을 지원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공사는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한미76공병대의 도움으로 급진전되었다. 공병대는 불도저 3대, 트럭 5대, 크레인 2대 등 공사 장비로 물막이 작업을 도왔다. 1967년 8월부터 상륙정을 동원해 매달 100대 트럭분의 돌을 실어다 주었다. 6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970년 10월 700~800m짜리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는 듯했으나, 준공 2개월 전 건설부로부터 '1년 안에 380만평을 해발 9m 높이로 추가 매립하라'는 공문이 오면서 결국 공사는 중단되었다.
이 땅은 이후 동아그룹으로 넘어갔다. 1980년대 정부는 중동건설 침체로 인한 경제 악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땐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끝낸 동아건설이 1980년 1월 3500만여㎡의 매립면허를 취득하고 6월 30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봉덕학원이 제방을 쌓고 물을 빼놓은 간척지도 포함되었다.
1991년 1월,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를 마친 이 땅은 '김포매립지' 혹은 '동아매립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아는 농업용지였던 이 땅의 절반이 넘는 2000여만㎡를 수도권쓰레기매립지터로 환경부에 넘기고 남은 땅의 용도변경을 위해 로비전을 펼쳤다.
농림부와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자 마이클 잭슨 카드를 들고 나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온 마이클 잭슨을 회장 자택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고 다음 날 매립지 현장을 둘러보게 했다. 동아측은 그가 매립지에 대단위 위락단지 개발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계획도 진척되지 않으면서 자금난에 몰린 동아건설은 농업기반공사에 땅을 팔지만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이후 이 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가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봉덕학원은 1993년 경서동에 청소년수련원 경인유스호스텔을 개원했으나, 2005년에 청라지구로 편입되면서 폐쇄되었다.
2. 3. 청라달튼외국인학교 설립
청라달튼외국인학교(CDS)는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 한가람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봉덕학원이 설립하였으며, 그 학원의 설립자는 고 이봉덕 (이봉덕/Lee Bong-duk영어 1921~2010) 여사이다.이봉덕 여사의 한국 인재 교육 및 육성 사명은 20세기 일본 식민지와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조국에서 시작되었다. 1952년 문맹과 가난을 퇴치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여사는 막사를 지어 초등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59년 이후 여사는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와 노동력 제고를 위하여 봉영여자중학교,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현 영상고등학교)), 양천여자고등학교(현 목동고등학교)를 차례대로 설립하였으며, 1997년 한가람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한가람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대폭 확대한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경직된 학교 현장의 교육틀을 탈피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현재 봉덕학원은 학원 설립 이래 72,900명 이상의 학생을 교육시켜 사회로 배출하였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미래를 살아갈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설립된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리더를 길러내기 위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학교를 운영하고자 한다.
이에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미래 사회에 살아갈 국가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의사소통 능력, 적응력 및 뛰어난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또한 공동체 사회와 세계 인류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갖춘 진정한 리더를 길러내기 위하여 노력하며,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세계 평화와 문화 신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비전을 심어주고자 한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영리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외국인학교로서 우수한 교사진과 함께 미국 뉴욕 달튼학교와 교육철학을 공유하여 달튼플랜에 입각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청라달튼외국인학교는 창의력, 적응력, 의사소통능력, 팀웍, 협동심, 리더쉽 등의 가치와 교육 목표를 구현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3. 학교 특징
3. 1. 교육 철학 및 과정
학교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 외국어 수업 및 특별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프리 앨지브라, 앨지브라 1, 사회, 과학, 체육과 같은 기본적인 과목을 배운다. 수학 면제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수학 커리큘럼에서 1년을 건너뛸 수 있다. 또한 고등학생들은 밴드와 같은 더 많은 특별 활동 기회를 갖는다. 학생들을 위한 상담 세션, AP 과정 및 대학 상담 세션이 고등학생들에게 제공되어 졸업 후 적합한 대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청라달튼외국인학교(CDS)에는 댈턴 컵(Dalton Cup)이라고 하는 팀 챔피언십이 있으며, 다양한 댈턴 컵 팀의 학생들이 스포츠, 음악, Accelerated Reader 프로그램, 글쓰기 대회 및 수학 대회와 같은 여러 과목에서 경쟁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팀은 팀 구성원에게 특별 상품을 수여받는다.
일일 시간표는 댈턴 플랜의 세 가지 원칙인 하우스, 랩, 과제에 따라 구성된다. 하우스는 학생들이 반에 모여 공지 사항, 예정된 행사 및 알림을 듣는 오전 세션이다. 랩 타임(Lab Time)으로 알려진 랩은 1교시 후 30분 동안 진행되며, 학생들은 과제를 위해 선생님을 방문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30분 동안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하는 침묵 지속 읽기(Silent Sustained Reading), 즉 SSR이라는 시간이 있다.
학교는 6C라고 알려진 6가지 원칙, 즉 인성(Character), 호기심(Curios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공동체 의식(Community)을 따른다. 학년은 초등 프로그램,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한국 국적의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학생들은 한국어 과정을 수강해야 한다. 한 반에 두 명의 담임 선생님이 있으며, 학생들은 한국사 및 한국어를 102시간 이수하면 한국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각 수업은 약 70분 동안 진행되며, 5분의 전환 시간이 있다. 또한, 학교 학생들은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또한 중고등학생을 위해 스페인어 또는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운다.
3. 1. 1. 교육 과정
학교 학생들은 한국어 수업, 외국어 수업 및 특별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프리 앨지브라, 앨지브라 1, 사회, 과학, 체육과 같은 기본적인 과목을 배운다. 수학 면제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수학 커리큘럼에서 1년을 건너뛸 수 있다. 또한 고등학생들은 밴드와 같은 더 많은 특별 활동 기회를 갖는다. 학생들을 위한 상담 세션, AP 과정 및 대학 상담 세션이 고등학생들에게 제공되어 졸업 후 적합한 대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청라달튼외국인학교(CDS)에는 댈턴 컵(Dalton Cup)이라고 하는 팀 챔피언십이 있으며, 다양한 댈턴 컵 팀의 학생들이 스포츠, 음악, Accelerated Reader 프로그램, 글쓰기 대회 및 수학 대회와 같은 여러 과목에서 경쟁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팀은 팀 구성원에게 특별 상품을 수여받는다.
일일 시간표는 댈턴 플랜의 세 가지 원칙인 하우스, 랩, 과제에 따라 구성된다. 하우스는 학생들이 반에 모여 공지 사항, 예정된 행사 및 알림을 듣는 오전 세션이다. 랩 타임(Lab Time)으로 알려진 랩은 1교시 후 30분 동안 진행되며, 학생들은 과제를 위해 선생님을 방문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30분 동안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하는 침묵 지속 읽기(Silent Sustained Reading), 즉 SSR이라는 시간이 있다.
학교는 6C라고 알려진 6가지 원칙, 즉 인성(Character), 호기심(Curios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공동체 의식(Community)을 따른다. 학년은 초등 프로그램,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한국 국적의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학생들은 한국어 과정을 수강해야 한다. 한 반에 두 명의 담임 선생님이 있으며, 학생들은 한국사 및 한국어를 102시간 이수하면 한국의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각 수업은 약 70분 동안 진행되며, 5분의 전환 시간이 있다. 또한, 학교 학생들은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또한 중고등학생을 위해 스페인어 또는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운다.
3. 2. 시설
학교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교실과 시설은 완벽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두 개의 도서관과 여러 개의 과학 실험실이 있다. 달튼 홀(Dalton Hall)로 알려진 강당은 학부모 및 교직원 행사, 공연 예술 작품 및 콘서트에 사용되며 조명 및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음악 시설에는 오케스트라 및 합창실, 방음 연습실이 있다.
운동 시설에는 체육관, 4마리의 말을 갖춘 승마 코스, 테니스 코트, 온수 수영장, 잔디 구장의 축구장 및 무용실이 있다.
학교 입구에는 봉덕학원 설립자 이봉덕(1921–2010) 여사의 금색 동상이 있다.
캠퍼스는 고등학교 건물, 중학교 건물, "First Program"(초등학교), 축구장, 그리고 학생 기숙사, 외국인 교사를 위한 타운 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를 포함한 주거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3. 2. 1. 주요 시설
학교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교실과 시설은 완벽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두 개의 도서관과 여러 개의 과학 실험실이 있다. 달튼 홀(Dalton Hall)로 알려진 강당은 학부모 및 교직원 행사, 공연 예술 작품 및 콘서트에 사용되며 조명 및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음악 시설에는 오케스트라 및 합창실, 방음 연습실이 있다.운동 시설에는 체육관, 4마리의 말을 갖춘 승마 코스, 테니스 코트, 온수 수영장, 잔디 구장의 축구장 및 무용실이 있다.
학교 입구에는 봉덕학원 설립자 이봉덕(1921–2010) 여사의 금색 동상이 있다.
캠퍼스는 고등학교 건물, 중학교 건물, "First Program"(초등학교), 축구장, 그리고 학생 기숙사, 외국인 교사를 위한 타운 하우스와 게스트 하우스를 포함한 주거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3. 3. 과외 활동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초등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펜싱 클럽, 승마 클럽, 영화 클럽 등의 클럽 활동이 있다. 또한, 학교는 농구, 축구, 수영과 같은 스포츠 활동을 제공한다. 중고등학교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 분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더불어, 학교는 봉사 학습 프로젝트를 제공한다. 또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겨울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과 후 활동(ASP)에는 드라마 클럽, 수영, 댄스, 승마 등이 있다.
3. 3. 1. 클럽 활동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초등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펜싱 클럽, 승마 클럽, 영화 클럽 등의 클럽 활동이 있다. 또한, 학교는 농구, 축구, 수영과 같은 스포츠 활동을 제공한다. 중고등학교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 분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더불어, 학교는 봉사 학습 프로젝트를 제공한다. 또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겨울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과 후 활동(ASP)에는 드라마 클럽, 수영, 댄스, 승마 등이 있다.
4. 입학 및 진학
## 입학 조건
청라달튼외국인학교에 입학하려는 중·고등학생은 수학 및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입학을 위해 서류와 면접만 필요하다. 학교 입학 조건으로, 학생은 외국 여권을 소지한 부모 중 적어도 한 명 이상을 두거나, 입학 당시 대한민국 국외에서 1,095일(3년) 이상 체류해야 한다.
## 대학 진학
청라달튼외국인학교 학생들은 약 60%가 해외 대학교에 합격한다. 하지만 조기 졸업을 한 학생의 경우,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시, 학생의 절반은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 해외 대학 진학(일부)
- 프린스턴 대학교
- 코넬 대학교
- 다트머스 칼리지
- 노스웨스턴 대학교
- 에모리 대학교
- 존스 홉킨스 대학교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 미시간 대학교 앤아버
- 뉴욕 대학교
- 위스콘신 대학교-매디슨
- 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acy and Health Science
- Washington University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그리고 기타
### 한국 대학 진학(일부)
그리고 기타
4. 1. 입학 조건
청라달튼외국인학교에 입학하려는 중·고등학생은 수학 및 영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입학을 위해 서류와 면접만 필요하다. 학교 입학 조건으로, 학생은 외국 여권을 소지한 부모 중 적어도 한 명 이상을 두거나, 입학 당시 대한민국 국외에서 1,095일(3년) 이상 체류해야 한다.4. 2. 대학 진학
청라달튼외국인학교 학생들은 약 60%가 해외 대학교에 합격한다. 하지만 조기 졸업을 한 학생의 경우,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시, 학생의 절반은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해외 대학교 합격생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프린스턴 대학교
- 코넬 대학교
- 다트머스 칼리지
- 노스웨스턴 대학교
- 에모리 대학교
- 존스 홉킨스 대학교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 미시간 대학교 앤아버
- 뉴욕 대학교
- 위스콘신 대학교-매디슨
- 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acy and Health Science
- Washington University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그리고 기타
한국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기타
4. 2. 1. 해외 대학 진학(일부)
청라달튼외국인학교 학생들은 약 60%가 해외 대학교에 합격한다. 하지만 조기 졸업을 한 학생의 경우,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시, 학생의 절반은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해외 대학교 합격생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프린스턴 대학교
- 코넬 대학교
- 다트머스 칼리지
- 노스웨스턴 대학교
- 에모리 대학교
- 존스 홉킨스 대학교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 미시간 대학교 앤아버
- 뉴욕 대학교
- 위스콘신 대학교-매디슨
- 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acy and Health Science
- Washington University
-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그리고 기타
4. 2. 2. 한국 대학 진학(일부)
청라달튼외국인학교 학생들은 약 60%가 해외 대학교에 합격한다. 하지만 조기 졸업을 한 학생의 경우,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시, 학생의 절반은 한국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한국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기타
5. 이사장 이옥식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진력이 강한 교육자 중 한 명이다. 어머니 이봉덕 여사가 세운 봉덕학원을 이어받아 교육자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사대부고와 홍익대학교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80년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한가람고등학교, 청라달튼외국인학교를 설립했다. 영등포여상에서는 1999년 6월까지, 한가람고에서는 2011년 8월까지 교장으로 일했고, 이후 봉덕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학교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믿으며, 학교는 제자리에 머물면서 학생들끼리만 경쟁시키는 교육에 반대한다. 교과교실제, 교과 선택제, 반바지에 티셔츠 교복, 직영급식 등 한국 교육을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를 여럿 주도했고, ‘전례가 없다’는 교육계 곳곳의 저항과 타성에 맞서 싸웠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 대우 계약직) 자리를 공모한 결과 이옥식 한가람고 교장을 본부장으로 내정, 신원조회 등을 거쳐 인사 발령을 낼 예정이었다. 학교교육지원본부장은 교육과정, 교원정책, 자율고 및 특목고, 유아교육 등 전국 유초중등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사립고 교원 출신이 내정된 것은 처음이며, 여성이 교과부 1급 자리를 맡은 것도 처음이어서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교장은 오랫동안 교원평가, 교과교실제 등을 추진해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등이 심사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옥식 이사장은 과거 한가람고등학교 교장 시절,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무단 정정을 방조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징계 대상이 된 상태에서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 대우 계약직)에 내정돼 논란을 낳았고, 한겨레 - (이옥식 교장, 교과부 간부직 자진사퇴)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72896.html], 조선일보 - (이옥식, 학교교육지원본부장 자진 사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4/13/2011041300823.html], 동아일보 - (이옥식 한가람고 교장 “교과부 본부장직 사퇴)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10414/36398925/1] 등의 언론 보도 이후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직을 사퇴하였다.
5. 1. 교육계 활동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진력이 강한 교육자 중 한 명이다. 어머니 이봉덕 여사가 세운 봉덕학원을 이어받아 교육자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사대부고와 홍익대학교 수학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1980년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한가람고등학교, 청라달튼외국인학교를 설립했다. 영등포여상에서는 1999년 6월까지, 한가람고에서는 2011년 8월까지 교장으로 일했고, 이후 봉덕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학교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믿으며, 학교는 제자리에 머물면서 학생들끼리만 경쟁시키는 교육에 반대한다. 교과교실제, 교과 선택제, 반바지에 티셔츠 교복, 직영급식 등 한국 교육을 바꾸는 획기적인 변화를 여럿 주도했고, ‘전례가 없다’는 교육계 곳곳의 저항과 타성에 맞서 싸웠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 대우 계약직) 자리를 공모한 결과 이옥식 한가람고 교장을 본부장으로 내정, 신원조회 등을 거쳐 인사 발령을 낼 예정이었다. 학교교육지원본부장은 교육과정, 교원정책, 자율고 및 특목고, 유아교육 등 전국 유초중등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사립고 교원 출신이 내정된 것은 처음이며, 여성이 교과부 1급 자리를 맡은 것도 처음이어서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교장은 오랫동안 교원평가, 교과교실제 등을 추진해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등이 심사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옥식 이사장은 과거 한가람고등학교 교장 시절,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무단 정정을 방조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징계 대상이 된 상태에서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 대우 계약직)에 내정돼 논란을 낳았고, 한겨레, 조선일보, 동아일보등의 언론 보도 이후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직을 사퇴하였다.
5. 2. 논란
이옥식 이사장은 과거 한가람고등학교 교장 시절,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무단 정정을 방조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징계 대상이 된 상태에서 교육과학기술부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 대우 계약직)에 내정돼 논란을 낳았고, 결국 학교교육지원본부장직을 사퇴하였다.참조
[1]
웹사이트
Cheongna Dalton School - Location
http://daltonschool.[...]
[2]
웹사이트
Cheongna Dalton School - Eligibility & Applications Process
http://dalton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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