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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뷰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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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레뷰셋은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발사체를 던지는 중세 시대의 공성 무기이다. 다양한 형태의 용어로 불리며, 아랍, 중국 등 여러 문화권에서 사용되었다. 트레뷰셋은 견인식과 평형추식으로 나뉘며, 견인식은 인력으로 작동하고, 평형추식은 중력을 이용한다. 평형추식 트레뷰셋은 13세기부터 강력한 공성 무기로 사용되었으나, 화약 무기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현대에는 레크리에이션, 교육, 시위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며, 2024년에는 이스라엘 방위군이 레바논 국경에서 사용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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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뷰셋
개요
트레뷰셋
트레뷰셋
종류공성 무기
명칭
프랑스어trébuchet (트레뷔셰)
기타 표기트레뷰킷(trebucket), 트레뷰셰트(trebuchet), 트레뷰젯(trebuchet)
특징
용도긴 팔을 사용하여 투사체를 던지는 공성 무기

2. 어원 및 용어

'트레뷰셋' (trebuchet)이라는 단어는 13세기에 'trabocco', 'tribok', 'tribuclietta', 'trubechetum'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그 기원이 모호하다.[5] 아랍어로는 평형추 트레뷰셋을 'manjaniq maghribi' 또는 'majaniq ifranji'라고 불렀고,[5] 중국에서는 'húihúi pào'(회회포, 회교도 트레뷰셋)라고 불렀다.[5]

영어 단어 'trebuchet'은 14세기(앵글로-라틴어로는 13세기)에 "중세 시대의 돌 던지는 전쟁 무기"로 처음 언급되었으며,[5] (고)프랑스어 'trebuchet'(현재 'trébuchet')에서 차용되었다.[5]

프랑스어 단어는 동사 어근 'trebucher'(현재 'trébucher')에서 유래되었다. 'trebuch-' + 지소사 접미사 '-et' 형태로, 'trebucher'(10세기)는 "전복시키다, 무너뜨리다"를 의미했고, 현재는 "넘어지다"를 의미한다.[6] 아마도 이전에는 "흔들리다" 또는 "기울어지다"를 의미했을 것이다.[6] 이는 (고)프랑스어 'tre(s)-',[6] 변형 형태 'tra-' (현재 'tré-' / 'tra-')는 라틴어 'trans'에서 파생된 복합어로, 이 경우에는 "변위"를 나타낸다. + 고 프랑스어 'buc' "신체의 몸통, 덩어리"[5][6] 자체는 고대 저지 프랑코니아어 '*būk-' "배"[6]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 고지 독일어 'buh',[6] 독일어 'Bauch' "배"와 유사하다.[5]

프랑스어에서 "트레뷰셋"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 후반이며, 포위 무기로서의 '트레뷰셋'의 첫 번째 증거는 1200년경에 나타난다.[7][8] 여우 '르나르'에 대한 서사시인 ''로망 드 르나르''의 1174-77년 판에서는 "균형 잡힌 통나무 조립체로 구성된 방아쇠 메커니즘을 갖춘 덫"(1375년까지 동물 덫으로 이해됨)으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1200년경 판에서는 "돌을 던져 벽을 무너뜨리는 전쟁 무기"로 묘사되어 있다.[7][8] 'trabuchellus'라는 단어는 비첸차에서 작성된 문서에서 'manganum' 및 'prederia'와 함께 등장했다. 'Trabucha'는 10년 후 Iohannes Codagnellus의 기록에서 카스텔누오보 보카 다다의 포위 공격에서 'predariae'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평형추 트레뷰셋을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다. Codagnellus는 이 용어로 특정 유형의 기계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후 참조에서는 상당히 가벼웠다"고 암시했다.[5] 12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트레뷰셋"의 변형이 나타나고, 점점 더 강력한 기계로 묘사되거나 다양한 부품을 활용하여 평형추 트레뷰셋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었다.[5] 'machina maior/magna'와 같은 다른 용어 역시 평형추 트레뷰셋을 지칭했을 수 있다.[5]

'견인 트레뷰셋'과 '평형추 트레뷰셋'은 현대적인 용어(역성어)이며, 이 무기를 사용한 당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견인 트레뷰셋'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 유형의 무기를 당시 자료에서 종종 '망고넬'과 혼동되었던 비틀림력 기반의 투석기인 오나거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견인 트레뷰셋과 평형추 트레뷰셋 모두 한때 '망고넬'이라고 불렸다. 당시 용어에서 오나거, 망고넬, 트레뷰셋 및 기타 투석기 유형 간의 혼동으로 인해 오늘날 일부 역사가들은 보다 정확한 '견인 트레뷰셋'을 사용하며, '평형추 트레뷰셋'은 단순히 '트레뷰셋'이라고 불렸던 것을 구별하는 데 사용된다.[5]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망고넬'을 오직 견인 트레뷰셋만을 의미하는 데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견인 트레뷰셋을 '견인 망고넬'이라고 부르며, 평형추 트레뷰셋을 '평형추 망고넬'이라고 부른다.[5]

3. 기본 설계

트레뷰셋은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발사체를 던지는 복합 기계이다. 일반적으로 큰 구조물로, 빔의 길이는 15m에 달하며, 일부는 더 클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9]

추돌추의 측면도, 추 무게 해제 메커니즘의 세부 사항


팔 스윙의 원하는 지점에서 자동으로 발사체를 발사하는 슬링 해제 메커니즘의 예


트레뷰셋은 주로 튼튼한 프레임과 받침대에 의해 지면 위로 높이 매달린 차축에 부착된 긴 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빔은 넓은 호(일반적으로 180° 이상)를 통해 수직으로 회전할 수 있다. 슬링은 빔의 한쪽 끝에 부착되어 발사체를 잡고 있으며, 빔 반대쪽 끝에 을 가하여 빔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발사체가 발사된다. 기계적 이점은 주로 빔의 발사체 부분이 힘이 가해지는 반대쪽 부분보다 훨씬 길게(일반적으로 4~6배) 설계함으로써 얻어진다.[9]

트레뷰셋은 사용하는 힘에 따라 견인식과 추돌추로 나뉜다. 견인식 트레뷰셋은 인력을 사용하는 반면, 추돌추는 위치 에너지를 이용한다. 추돌추는 빔의 짧은 쪽에 부착된 매우 무거운 상자(일반적으로 돌, 모래 또는 납으로 채워짐)를 천천히 들어 올리고 명령에 따라 해제함으로써 작동한다.[9]

트레뷰셋은 슬링과 발사체가 트레뷰셋 아래에 위치할 수 있도록 슬롯을 만들고, 슬링을 늘려 사정거리를 연장하거나 궤적을 변경하는 등 추가적인 수정이 가해지기도 했다.[10] 윈치 또는 밟는 바퀴가 도르래의 도움을 받아 추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 추돌추는 견인식 트레뷰셋보다 작동 인원이 적지만, 재장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트레뷰셋이 작동하면 힘은 차축(지레의 받침점) 주위의 빔의 회전 가속도를 유발한다. 이 가속도는 빔의 투척 부분과 슬링에 전달된다. 슬링은 빔과 함께 회전하지만 더 멀리, 더 빠르게 회전하여 발사체에 더 큰 속도를 전달한다. 슬링의 길이는 탄도를 변경하여 원하는 속도와 각도로 발사체가 목표물에 도달하도록 한다. 슬링의 해제 지점을 조정하는 것은 사정거리를 미세 조정하는 주요 수단이다.[9]

투척 빔의 회전 속도는 천천히 시작하여 빠르게 증가한다. 발사체가 해제된 후, 팔은 계속 회전하며 스스로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멈춘다. 이는 오나거와 같은 다른 투석기와 달리 발사 에너지를 자체 프레임에 흡수하여 더 크고 강력한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9]

트레뷰셋 발사체는 파편, 동물 사체, 소이탄 등 거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큰 돌이다. 둥글고 매끄럽게 가공된 밀도가 높은 돌 또는 금속은 최고의 사정거리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적의 벽을 돌파할 때는 충격 시 부서지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9]

3. 1. 견인식 트레뷰셋

견인식 트레뷰셋은 일부 자료에서 망고넬이라고도 불리며, 고대 중국에서 유래되었다.[10][11][12][13]

최초의 견인식 트레뷰셋은 고대 중국에서 기록되었다. 기원전 4세기경 묵가에 의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묘사는 ''묵자''(기원전 4세기 편찬)에서 찾아볼 수 있다.[12][14] ''묵자''에 따르면, 견인식 트레뷰셋은 높이가 약 5.18m이고, 약 1.22m가 땅에 묻혔으며, 지렛대는 수레 바퀴로 만들어졌고, 투사 팔의 길이는 약 9.14m로, 받침점 위로 4분의 3, 로프가 부착된 아래쪽으로 4분의 1이 있었으며, 슬링은 약 0.85m였다. 발사체의 사거리는 약 91.44m, 약 54.86m, 약 36.58m로 제시되었다. 이것들은 성벽에 배치된 방어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불타는 숯으로 채워진 속이 빈 통나무를 던져 적의 공성 시설을 파괴하기도 했다.

서기 1세기경, 해설가들은 ''좌전''과 ''시경''과 같은 텍스트의 다른 구절을 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했다. "궤(guai)는 '돌을 올려놓은 나무의 큰 팔'이며, 이 장치[ji]를 통해 발사되어 적을 쓰러뜨린다." ''사기''에는 "날아가는 돌의 무게는 12근이며, 장치[ji]를 통해 300보를 날아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인식 트레뷰셋은 한나라 시대에 평화로운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쇠퇴했지만, 삼국 시대에 다시 일반적인 공성 무기가 되었다. 다음 세기에는 일반적으로 돌 던지는 기계, 뇌차(thunder carriages), 돌 수레(stone carriages)라고 불렸다. 서기 573년에는 적의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배에 설치된 무기로 사용되었다.

7세기 초, 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바르쿨에 있는 당 태종의 서역 원정 승리를 기념하는 비문에 따르면, 기술자 장행본(Jiang Xingben)은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트레뷰셋에 대해 큰 발전을 이루었다. 장행본은 태종의 서역 원정을 위한 공성 엔진 건설에 참여했다. 617년 이밀은 낙양 공격을 위해 300개의 트레뷰셋을 건설했고, 621년 이세민도 낙양에서 같은 일을 했으며, 1161년 송나라 시대에는 송나라 군인들이 견인식 트레뷰셋으로 금나라 해군의 배에 석회와 유황으로 만든 폭탄을 발사했는데, 이것이 채석 전투였다.[15][16]

견인식 트레뷰셋은 6~7세기경 중국 서쪽의 비잔틴 제국, 페르시아인, 아랍인, 아바르족 등 다양한 민족에 의해 채택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아바르족이 견인식 트레뷰셋을 서쪽으로 운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비잔틴인이 이전에 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전파 경로와 관계없이, 서기 6세기 말 동지중해에 나타났으며, 여기에서 발리스타, 오나거와 같은 비틀림식 공성 엔진을 대체했다.[17][18][19] 비틀림식 공성 엔진이 급속히 대체된 것은 견인식 트레뷰셋의 설계가 더 간단하고, 발사 속도가 빠르며, 정확도가 높고, 사거리와 위력이 비슷한데다가, 비틀린 밧줄이 있는 비틀림 무기보다 안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마 제국 말기에는 포병이 줄어들고 별도의 부대로 조직되어 후계 국가에 들어간 무기의 양이 제한적이었을 수 있다는 점과 게르마니아에서 포병 기술이 쇠퇴했다는 증거도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데메트리오스의 기적에 따르면, 620년경 테살로니키 대주교 요한은 아바르-슬라브족이 586년 견인식 트레뷰셋으로 테살로니키를 공격했다고 기록했다. 포격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조작은 부정확했고 대부분의 포탄은 목표물을 빗나갔다. 돌 하나가 목표물에 도달했을 때 "성벽 꼭대기를 보도까지 파괴했다." 비잔틴 제국은 587년 이른 시기에 견인식 트레뷰셋을 채택했고, 사산 제국은 7세기 초에, 아랍은 7세기 후반에 채택했다. 652년, 아랍은 수단의 동골라 공방전에서 트레뷰셋을 사용했다.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653년까지 아랍인도 배에 장착된 견인식 트레뷰셋을 갖게 되었다. 프랑크족과 작센족은 8세기에 이 무기를 채택했다. ''루도비쿠스 경의 생애''에는 토르토사 공방전 (808–809)에 대한 설명에서 망고넬(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서유럽 최초의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1173년, 피사 공화국은 갤리에 견인식 트레뷰셋을 사용하여 섬의 성을 점령하려 했다. 견인식 트레뷰셋은 인도에서도 사용되었다.

견인식 트레뷰셋은 대인 공격 무기로 가장 효과적이었으며, 궁수와 투석병과 함께 지원적인 위치에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기록에서 경포병 무기로 묘사되지만, 방어 시설을 실제로 관통하는 것은 갱도나 공성 탑이었다. 766년 카마차 공방전에서 비잔틴 수비군은 적 포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 덮개를 사용했고, 자체 석재 투척기로 사상자를 냈다. 시리아의 미카엘은 823년 발리스 공방전에서 포격으로 요새가 아니라 수비군이 피해를 입었다고 언급했다. 카이숨 공방전에서 압달라 이븐 타히르 알-쿠라사니는 포병을 사용하여 마을의 집을 파괴했다. 838년 아모리움 약탈에서는 견인식 트레뷰셋을 사용하여 수비군을 몰아내고 나무 방어 시설을 파괴했다. 848년 마란드 공방전에서는 견인식 트레뷰셋이 사용되었으며, "8개월간의 공방전에서 각 측면에서 100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부상했다." 865년 바그다드 공방전 동안, 방어 포병은 성문을 공격하는 것을 격퇴하는 데 책임이 있었고, 배에 탄 견인식 트레뷰셋은 수비군 1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1세기 또는 그 이후, 예외적으로 크고 강력한 견인식 트레뷰셋이 묘사되었다. 만지케르트 전투 (1054)에서 셀주크의 초기 공성 포병은 수비군 자체의 포병에 의해 격퇴되었고, 이는 포위 기계에 돌을 던졌다. 이에 대응하여 셀주크는 400명이 당기는 데 필요한 또 다른 기계를 건설하여 20kg의 돌을 던졌다. 첫 번째 발사에서 파괴되었지만 수비군에 의해 불탔다. 에데사의 매튜에 따르면, 이 기계는 3kg의 무게였으며, 도시 수비군에게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븐 알-아딤은 1089년에 사람을 던질 수 있는 견인식 트레뷰셋을 묘사했다. 1161년 하이저우 공방전에서, 견인식 트레뷰셋의 사거리가 200보(400m 이상)로 보고되었다.

중국 서쪽에서는 견인식 트레뷰셋이 12세기까지 주요 공성 엔진으로 남아 있었고, 그 후에는 카운터웨이트 트레뷰셋으로 대체되었다. 중국에서는 견인식 트레뷰셋이 몽골의 송나라 정복 동안 카운터웨이트 트레뷰셋이 도입될 때까지 주요 공성 엔진이었다.[20]

12~13세기 시칠리아-비잔틴의 견인식 트레뷰셋 묘사


나폴리 공방전 (1191), c. 1196


13세기 견인식 트레뷰셋 묘사


c. 1220년, 레스터 백작 5대 시몬 드 몽포르의 무덤에 묘사된 견인식 트레뷰셋


''무경총요''에 나오는 엎드린 호랑이 트레뷰셋


''무경총요''에 나오는 송나라 군함 위의 견인식 트레뷰셋

12세기의 견인식 트레뷰셋 묘사 (페리에라고도 함)와 스태프 슬링어 옆에 있음

3. 2. 평형추 트레뷰셋

마르디 이븐 알리 알-타르수시가 1187년경에 제작한 가장 초기의 반대추 트레뷰셋 묘사

4. 역사

트레뷰셋(Trebuchet)이라는 영어 단어는 14세기(앵글로-라틴어로는 13세기)에 "중세 시대의 돌 던지는 전쟁 무기"로 처음 언급되었다.[5] 이는 (고)프랑스어 'trebuchet'(현재 'trébuchet')에서 차용되었다.[5] 프랑스어 단어는 동사 어근 'trebucher'(현재 'trébucher')에서 유래되었는데, 'trebuch-' + 지소사 접미사 '-et', 'trebucher'(10세기)는 "전복시키다, 무너뜨리다"를 의미했고, 현재는 "넘어지다"를 의미한다.[6]

13세기에 등장한 'trabocco', 'tribok', 'tribuclietta', 'trubechetum'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단어들은 이 용어의 기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아랍어에서 평형추 트레뷰셋은 'manjaniq maghribi' 또는 'majaniq ifranji'라고 불렸다. 중국에서는 'húihúi pào'(회회포, 회교도 트레뷰셋)라고 불렸다.

오나거(onager)는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유럽에서 사용된 비틀림력 기반 무기였다.


프랑스어에서 "트레뷰셋"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 후반이며, 포위 무기로서의 '트레뷰셋'의 첫 번째 증거는 1200년경에 나타난다. 12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트레뷰셋"의 변형이 나타나고, 점점 더 강력한 기계로 묘사되거나 다양한 부품을 활용하여 평형추 트레뷰셋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견인 트레뷰셋'과 '평형추 트레뷰셋'은 현대적인 용어(역성어)이며, 이 무기를 사용한 당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견인 트레뷰셋'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 유형의 무기를 당시 자료에서 종종 '망고넬'과 혼동되었던 비틀림력 기반의 투석기인 오나거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차륜식 회전식 견인 트레뷰셋, 《무경총요


바그다드 공방전 (1258) - ''자미 알-타와리흐''에서, c. 1306-18


''라 모르 르 루이 아르튀''에 묘사된 평형추 투석기, c. 1316


"중세 시대 가장 강력한 무기"로 묘사되는 평형추 투석기의 기원과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평형추 투석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187년 살라딘의 정복에 대한 마르디 이븐 알리 알-타르수시의 해설에서 찾을 수 있다.[21][22]

화약의 도입으로 인해 트레뷰셋은 대포에 밀려 공성 무기로서의 입지를 잃기 시작했다. 트레뷰셋은 부르고스 공방전 (1475-1476)과 로도스 공방전 (1480)에서도 사용되었다.[35]

4. 1. 견인식 트레뷰셋의 역사

견인식 트레뷰셋은 일부 자료에서 망고넬이라고도 불리며, 고대 중국에서 유래되었다.[10][11][12][13]

최초의 견인식 트레뷰셋은 기원전 4세기경 묵가에 의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묘사는 ''묵자''(기원전 4세기 편찬)에서 찾아볼 수 있다.[12][14] ''묵자''의 기록에 따르면, 견인식 트레뷰셋은 다음과 같은 구조와 성능을 가졌다.

항목내용
높이약 5.18m (약 1.22m는 땅에 묻힘)
지렛대수레 바퀴로 제작
투사 팔 길이약 9.14m (받침점 위로 3/4, 로프 부착된 아래쪽으로 1/4)
슬링약 0.85m
발사체 사거리약 91.44m, 약 54.86m, 약 36.58m
용도성벽 방어, 불타는 숯을 채운 통나무 발사



서기 1세기경, ''좌전''과 ''시경''의 구절들이 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되었다. ''사기''에는 "날아가는 돌의 무게는 12근이며, 장치를 통해 300보를 날아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시대에 쇠퇴했지만, 삼국 시대에 다시 공성 무기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돌 던지는 기계, 뇌차(thunder carriages), 돌 수레(stone carriages) 등으로 불렸다. 573년에는 배에 설치되어 적 요새 공격에 사용되기도 했다.

7세기 초, 당 태종의 서역 원정에 참여한 장행본(Jiang Xingben)이 트레뷰셋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617년 이밀은 낙양 공격을 위해 300개의 트레뷰셋을 건설했고, 621년 이세민도 낙양에서 같은 일을 했다.[15] 1161년 채석 전투에서는 송나라 군인들이 견인식 트레뷰셋으로 금나라 해군에 석회와 유황 폭탄을 발사했다.[16]

견인식 트레뷰셋은 6~7세기경 중국 서쪽의 비잔틴 제국, 페르시아인, 아랍인, 아바르족 등 다양한 민족에게 전파되었다.[17][18][19] 6세기 말 동지중해에서 비틀림식 공성 엔진을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견인식 트레뷰셋의 단순한 설계, 빠른 발사 속도, 높은 정확도, 그리고 비틀림 무기의 안전 문제 때문이었다.

데메트리오스의 기적에 따르면, 620년경 아바르-슬라브족이 견인식 트레뷰셋으로 테살로니키를 공격했다. 비잔틴 제국은 587년, 사산 제국은 7세기 초, 아랍은 7세기 후반에 견인식 트레뷰셋을 채택했다. 652년 아랍은 수단의 동골라 공방전에서, 653년에는 배에 장착된 견인식 트레뷰셋을 사용했다. 프랑크족과 작센족은 8세기에 이 무기를 채택했다. ''루도비쿠스 경의 생애''에는 토르토사 공방전 (808–809)에 대한 설명에서 망고넬(견인식 트레뷰셋)에 대한 서유럽 최초의 언급이 있다. 1173년 피사 공화국은 갤리에 견인식 트레뷰셋을 사용했다.

견인식 트레뷰셋은 대인 공격 무기로 가장 효과적이었으며, 주로 지원 역할로 사용되었다. 766년 카마차 공방전, 823년 발리스 공방전, 카이숨 공방전, 838년 아모리움 약탈, 848년 마란드 공방전, 865년 바그다드 공방전 등에서 견인식 트레뷰셋이 사용된 기록이 있다.

11세기 이후, 만지케르트 전투 (1054)와 에데사의 매튜의 기록에서 크고 강력한 견인식 트레뷰셋이 묘사되었다. 이븐 알-아딤은 1089년에 사람을 던질 수 있는 견인식 트레뷰셋을 묘사했다. 1161년 하이저우 공방전에서는 견인식 트레뷰셋의 사거리가 200보(400m) 이상으로 보고되었다.

중국 서쪽에서는 12세기까지 주요 공성 엔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카운터웨이트 트레뷰셋으로 대체되었다.[20]

4. 1. 1. 동아시아에서의 발전

금나라의 사령관 챵 선이 "체포 투석기"라는 장치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20] 1268년 몽골군이 판청과 샹양을 포위할 때, 두 명의 페르시아 엔지니어가 힌지형 대추력 투석기를 건설하면서 중국에서 대추력 투석기가 확실하게 등장한다.[20] 이 투석기는 회회포(回回砲) 또는 샹양포(襄陽砲)라고 불렸다.[20] 중국과 무슬림 엔지니어들은 몽골 군대를 위해 포병 및 공성 무기를 작동시켰다.[31]

정사소(正史)에 따르면, 무슬림 투석기는 이전의 투석기보다 강력했으며, 가장 큰 투석기는 땅에 구멍을 파고 설치해야 했다. 발사체는 지름이 수 피트에 달했고, 땅에 떨어지면 3~4피트 깊이의 구멍을 만들었다.

1283년에는 참족원나라에 대항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대추력 투석기를 사용했다.[20]

송나라는 추중 트레뷰셋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짚 로프를 건물에 드리우고 젖은 점토를 덮는 방어책을 사용했다. 이 방법으로 투석기에서 발사되는 소이 화살, 폭탄, 돌 등이 건물에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20]

추중 트레뷰셋은 견인식 트레뷰셋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홍무제는 1388년에 구형 트레뷰셋이 더 편리하다고 언급하며, 운반과 설치의 용이성을 강조했다.[20] 견인식 트레뷰셋은 대인용 무기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1240년 노르웨이 텍스트인 ''레갈의 거울''에는 견인식 트레뷰셋이 방어되지 않은 지역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명시되어 있다.[20]

추중 트레뷰셋과 견인식 트레뷰셋은 15세기 중반 경 화약 무기의 등장으로 점차 사라졌다.[20]

4. 1. 2. 서양에서의 발전

중국의 대추력 투석기, 수송을 위해 포장됨, 17세기, ''무비지''


대추력 투석기는 1268년경까지 중국 역사 기록에 확실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1232년 금나라 사령관 챵 선이 "체포 투석기"라는 장치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20]

1268년 샹양 포위전에서 몽골군은 이스마일과 알 아우딘이라는 두 명의 페르시아 엔지니어를 통해 힌지형 대추력 투석기를 도입했다. 이 투석기는 회회 투석기(回回砲) 또는 샹양 투석기(襄陽砲)로 불렸다.[20] 중국과 무슬림 엔지니어들은 몽골 군대를 위해 포병 및 공성 무기를 작동시켰다.[31] 1283년에는 참족원나라에 대항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대추력 투석기를 사용했다.

정사소중국어에 따르면, 무슬림 투석기는 원래 무슬림 국가에서 왔으며 일반 투석기보다 더 강력했다. 가장 큰 투석기는 나무 구조물을 땅에 있는 구멍 위에 설치했고, 발사체는 지름이 수 피트에 달했으며 땅에 떨어지면 3~4피트 깊이의 구멍을 만들었다. 멀리 던지려면 평형추에 무게를 더하고 팔을 뒤로 설정했고, 짧은 거리가 필요했을 때는 팔을 앞으로, 지렛대에 더 가깝게 설정했다.

4. 2. 평형추 트레뷰셋의 역사



"중세 시대 가장 강력한 무기"[21]로 묘사되는 평형추 트레뷰셋의 기원과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22] 평형추 트레뷰셋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187년 살라딘의 정복에 대한 마르디 이븐 알리 알-타르수시의 해설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187년 이전에 유럽과 무슬림 세계에서 평형추 트레뷰셋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1090년 할라프 이븐 물라이브는 살라미야 요새에서 기계를 사용하여 사람을 던졌고, 12세기 초 무슬림 공성 무기는 십자군 요새를 돌파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니콜은 이러한 정황들이 평형추 트레뷰셋을 사용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알-타르수시는 평형추 트레뷰셋에 대한 최초의 설명과 그림을 제공했지만, 그의 기록은 이 기계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알-타르수시는 평형추 트레뷰셋을 "페르시아" 투석기라고 불렀고, "프랑크" 투석기는 가벼운 견인 기계였다. 13세기 후반 무슬림들은 평형추 투석기를 지칭하기 위해 ''manjaniq maghribi''(서부 투석기)와 ''manjaniq ifranji''(프랑크 투석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폴 E. 체베덴은 ''manjaniq maghribi''가 이전의 고정식 또는 매달린 평형추 투석기와 대조적으로 경첩식 평형추 기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제안한다.

평형추 트레뷰셋은 평형추가 부착된 방식에 따라 고정식, 매달린 식, 경첩식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고정식 평형추는 스윙 암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그 궤적은 원형이다.[23] 매달린 평형추는 팔 아래에 매달려 수직으로 떨어진다. 경첩식 평형추는 스윙 조인트에 의해 팔에 부착된다. 알-타르수시가 묘사한 유형은 매달린 평형추였다. 1280년에 저술한 로마의 길스는 경첩식 평형추 트레뷰셋이 고정식 평형추 유형보다 더 넓은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체베덴은 1187년 이전에 유럽에서 평형추 트레뷰셋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초기 자료에서 평형추 투석기였을 가능성이 있는 기록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12세기 비잔틴 역사가 니케타스 코니아테스는 1165년 제브미논 공성전에서 윈드래스가 장착된 평형추 투석기를 묘사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평형추 기계에만 유용하다.[24] 1097년 니케아 공방전에서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는 기존 설계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준 새로운 중포를 발명했다고 한다.[25] 타이어 2차 공방전(1124)에서도 평형추 투석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십자군이 "거대한 투석기"를 사용했다고 한다.[26] 체베덴은 1120~30년대까지 새로운 투석기에 대한 언급과 더 나은 투석기들이 십자군 국가, 시칠리아의 노르만과 셀주크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평형추 투석기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27]

유럽 자료에서 "투석기"에 대한 가장 초기의 명확한 언급은 1199년 카스텔누오보 보카 다다 공방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것이 평형추 투석기를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다. 1205년경부터 독일에서 사용되었을 수 있다. 121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투석기"에 대한 언급이 더 강력한 기계와 다양한 부품을 묘사하며 평형추 투석기의 특징과 더 가깝게 일치한다. 툴루즈 공방전 (1217–1218)에서 ''trabuquets''이 배치되었다고 언급되었지만,[28][29] 곧 평형추 기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나타났다. 1230년대에 이르러 평형추 투석기는 공성전의 일반적인 품목이 되었다. 12세기 후반과 13세기 초에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용어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과 유럽인 모두 이미 그 전에 평형추 투석기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1차 십자군 (1096–1099) 이후, 무슬림과 프랑크 군대가 사용한 공성 기계 기술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제3차 십자군 (1189–1192) 시대에는 양측 모두 적의 공성 무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이는 "놀랍도록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30]

4. 3. 쇠퇴

바그다드 포위전(1258)


화약의 도입으로 인해 트레뷰셋은 대포에 밀려 공성 무기로서의 입지를 잃기 시작했다. 트레뷰셋은 부르고스 공방전 (1475-1476)과 로도스 공방전 (1480)에서도 사용되었다.[35]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 포위전에서 화약 부족으로 트레뷰셋을 사용하려 했으나, 발사된 투사체가 트레뷰셋에 떨어져 실패했다.[35]

중국에서는 1480년에 마지막으로 트레뷰셋을 군사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했고, 그 이후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2024년, 이스라엘 방위군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목표물에 대해 트레뷰셋을 부분적으로 사용했다.[36]

5. 다른 트레뷰셋

혼성 트레뷰셋


쿠이아르


폴 E. 체베덴은 도르래와 인력 추진 방식을 모두 사용한 혼성 트레뷰셋이 존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장치가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시대의 그림이나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성 트레뷰셋 존재에 대한 모든 주장은 점점 더 효과적인 공성 무기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는데, 피터 퍼튼은 이것이 단순히 기계가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혼성 트레뷰셋의 가장 초창기 묘사는 1462년으로, 트레뷰셋은 이미 대포로 인해 쓸모없게 된 시점이었다.[1]

쿠이야르는 일반적인 이중 "A" 프레임 대신 단일 프레임을 가진 평형추 트레뷰셋의 소형 버전이다. 평형추는 중앙 프레임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5. 1. 수동 트레뷰셋

수동 트레뷰셋(χειρομάγγανον|케이로망가논el)은 지렛대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발사체를 추진하는 막대 슬링을 기둥에 장착한 형태이다. 기본적으로 1인용 견인 트레뷰셋으로, 965년경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 황제의 군대가 개활지에서 적의 대형을 붕괴시키기 위해 사용했다. 니케포로스 우라노스의 Taktika(약 1000년)에도 언급되었으며, 익명의 저자가 쓴 ''De obsidione toleranda''에는 포병의 한 형태로 기록되었다.[37]

중국에서는 수동 트레뷰셋("수파오")이 유용시(Liu Yongxi)에 의해 발명되어 1002년에 황제에게 진상되었다. 이것은 팔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핀이 상단에 있는 기둥이었다. 기둥은 땅에 고정하기 위한 발사체로 사용되었고, 사용자는 정지된 위치에서 적에게 투사체를 던질 수 있었다.

5. 2. 하이브리드 트레뷰셋

폴 E. 체베덴은 도르래와 인력 추진 방식을 모두 사용한 하이브리드 트레뷰셋이 존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장치가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시대의 그림이나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 트레뷰셋 존재에 대한 모든 주장은 점점 더 효과적인 공성 무기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는데, 피터 퍼튼은 이것이 단순히 기계가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이브리드 트레뷰셋의 가장 초창기 묘사는 1462년으로, 트레뷰셋은 이미 대포로 인해 쓸모없게 된 시점이었다.[1]

5. 3. 쿠이야르 (Couillard)

쿠이야르는 일반적인 이중 "A" 프레임 대신 단일 프레임을 가진 평형추 트레뷰셋의 소형 버전이다. 평형추는 중앙 프레임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6. 다른 포병 무기와의 비교

트레뷰셋은 다른 포병 무기들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로마 시대에는 발리스타오나거와 같은 비틀림식 투석기가 사용되었다. 발리스타는 0.6kg의 돌이나 0.4kg의 납을 180m에서 300m까지 발사할 수 있었고,[1] 더 큰 발리스타는 26kg의 발사체를 82m까지 날려 보냈다.[1] 오나거는 130m 이상에서는 벽에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며,[1] 비트루비우스가 재구성한 오나거는 26kg의 발사체를 90m까지 발사했다.[2]

중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트레뷰셋이 사용되었다. 회오리 트레뷰셋은 50명이 회전시켜 1.8kg의 투사체를 78m까지 발사했고, 웅크린 호랑이 트레뷰셋은 70명이 7.25kg의 투사체를 78m까지, 네 발(외팔) 트레뷰셋은 40명이 1.1kg의 투사체를 78m까지 발사했다. 네 발(양팔) 트레뷰셋은 100명이 11.3kg의 투사체를 12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평형추 트레뷰셋은 10명의 인원으로 86kg 정도의 투사체를 200m에서 275m까지 발사 가능했다.

평형추 트레뷰셋의 추정치에 따르면, 15000kg의 추를 사용하면 60kg의 투사체를 365m까지, 100kg의 투사체를 217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1] 30000kg의 추를 사용하면 100kg의 투사체를 400m까지, 250kg의 투사체를 16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1]

공성 석궁은 마운티드 다중 볼트 석궁의 경우 460m, 마운티드 단궁 석궁은 250m에서 500m까지 발사 가능했다. 마운티드 이중궁 석궁은 350m에서 520m, 마운티드 삼중궁 석궁은 460m에서 106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15세기 유럽 공성 석궁은 545kg의 인발 중량으로 364m에서 420m까지 발사 가능했다.

재현된 견인식 트레뷰셋은 6-9명이 5kg에서 15kg의 투사체를 최대 100m까지 발사할 수 있었고, 14명이 당기는 경우 3.1kg의 투사체를 145m까지, 20명이 당기는 경우 1.9kg의 투사체를 분당 4-6회 발사하여 최대 137m까지 발사했다.

재현된 평형추 트레뷰셋의 경우, 2000kg의 추는 12kg에서 15kg의 투사체를 120m에서 168m까지 발사했다. 4000kg의 추는 8kg에서 12kg의 투사체를 445m까지, 100kg의 투사체를 185m까지 발사했다. 6000kg의 추는 55kg의 투사체를 320m까지, 100kg의 투사체를 200m까지 발사했다. 30000kg의 추는 476kg의 투사체를 80m까지 발사했다.

6. 1. 로마 시대의 비틀림식 투석기

로마 시대의 비틀림식 투석기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무기발사체 무게 (kg/파운드)사거리 (m/피트)
발리스타 (재구성)0.6kg (돌)/0.4kg (납)180m/300m[1]
발리스타 (재구성)26kg82m[1]
오나거 (재구성)130m–275m (130m 이상에서는 벽에 피해 없음)[1]
오나거 (비트루비우스 재구성)26kg90m[2]


6. 2. 중국의 트레뷰셋

무기승무원투사체 무게사거리
회오리 트레뷰셋50명 (회전)1.8kg78m
웅크린 호랑이 트레뷰셋70명 (회전)7.25kg78m
네 발 (외팔) 트레뷰셋40명 (회전)1.1kg78m
네 발 (양팔) 트레뷰셋100명 (회전)11.3kg120m
네 발 (오팔) 트레뷰셋157명 (회전)44.5kg78m
네 발 (칠팔) 트레뷰셋250명 (회전)56.7kg78m
평형추 트레뷰셋10명~86kg200m~275m


6. 3. 평형추 트레뷰셋 (추정치)

추: 킬로그램(파운드)투사체 무게: 킬로그램(파운드)사정거리: 미터(피트)
15000kg60kg365m[1]
100kg217m[1]
30000kg100kg400m[1]
250kg160m[1]
수만900kg~1360kg[2]


6. 4. 공성 석궁

무기승무원인발 중량사거리
마운티드 다중 볼트 석궁460m
마운티드 단궁 석궁4–7250m–500m
마운티드 이중궁 석궁10350m–520m
마운티드 삼중궁 석궁20–100950kg–1200kg460m–1060m
유럽 공성 석궁 (15세기)545kg364m–420m


6. 5. 재현된 견인식 트레뷰셋

당기는 사람투사체 무게
(kg/lb)
분당 발사수최대 사거리
(m/ft)
6-95kg~15kg~100m
143.1kg145m
201.9kg4–6137m


6. 6. 재현된 평형추 트레뷰셋

재현된 평형추 트레뷰셋의 성능
추의 무게 (kg)투사체 무게 (kg)사거리 (m)
2000kg12kg ~ 15kg120m ~ 168m
4000kg8kg ~ 12kg445m
4000kg100kg185m
6000kg55kg320m
6000kg100kg200m
30000kg476kg80m


7. 현대적 사용

화약의 도입으로 트레뷰셋은 대포에 밀려 공성 무기로서의 입지를 잃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고스 공방전(1475-1476)과 로도스 공방전 (1480)에서 여전히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군사적 사용 중 하나는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 포위전에서 화약 부족을 이유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했는데, 발사된 투사체가 트레뷰셋 자체에 떨어져 파괴되었기 때문이다.[35]

중국에서는 1480년에 마지막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트레뷰셋을 진지하게 고려한 이후, 트레뷰셋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2024년, 이스라엘 방위군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목표물에 대해 트레뷰셋을 사용했다.[36] 같은 해 6월 15일 CNN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에서 접근하는 전투원을 더 잘 식별하기 위해 덤불을 태우는 수단으로 트레뷰셋을 사용했다고 한다.[66]

7. 1. 레크리에이션 및 교육

최근 수 세기 동안 트레뷰셋은 군사적 목적보다는 레크리에이션이나 교육용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역사 재현 애호가들이 새로운 기계를 제작하고, 낡은 기계는 역사 재연 및 기타 역사적 기념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복원되었다. 현대 무기보다 건설이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트레뷰셋은 공학적 과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40][41]

트레뷰셋 건설 방법은 16세기 초에 사라졌다. 1984년, 프랑스 엔지니어 르노 베페테는 1324년의 문서를 기반으로 최초의 현대적 트레뷰셋을 재건했다.[42]

13세기 도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워릭 성 (잉글랜드)의 작동하는 트레뷰셋


2012년 워릭 성 트레뷰셋 시연 (10:30 발사)


현재 작동하는 세계 최대의 트레뷰셋은 2005년에 건설된 워릭 성 (잉글랜드)의 22000kg 기계이다. 역사적 설계를 바탕으로 18m 높이이며, 일반적으로 36kg의 투사체를 최대 300m까지 던진다. 2015년, 이 트레뷰셋이 발사한 불타는 투사체가 근처 에이번 강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보트하우스를 손상시키면서 무기의 위력을 의도치 않게 보여주었고, 수많은 뉴스 매체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트레뷰셋은 덴마크 미델알데르센터트에 있는 유사한 트레뷰셋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43] 1989년, 미델알데르센터트는 현대 시대에 작동하는 트레뷰셋을 갖춘 최초의 장소가 되었다.[43]

트레뷰셋은 미국 델라웨어주 서섹스군에서 열리는 연례 호박 던지기 대회에서 호박을 던지는 기계 분류 중 하나로 경쟁한다. 이 대회 트레뷰셋 부문 기록 보유자는 뉴햄프셔주 출신의 Yankee Siege II로, 2013년 WCPC 챔피언십에서 호박을 864.35m 던졌다. 약 15.54m 높이의 이 약 24947.56kg 트레뷰셋은 WCPC 대회의 모든 출품작에 지정된 표준 약 3.63kg~약 4.54kg 호박을 던진다.[44]

2017년 말, 대형 트레뷰셋이 벨파스트에서 텔레비전 드라마 ''왕좌의 게임'' 세트의 일부로 테스트되었다.[45]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에 관한 데이비드 매켄지의 영화 ''아웃로 킹''(2018)의 한 장면을 위해 에드워드 1세의 "워울프"를 기반으로 한 대형 트레뷰셋이 제작되었다. 영화에서 이 트레뷰셋은 스털링 성에 소이탄을 던진다. 영화 속 트레뷰셋 제작에는 약 3개월이 걸렸으며, 에드워드 1세가 트레뷰셋을 사용하기 전까지 적의 항복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실화를 재현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동차를 던질 수 있는 트레뷰셋도 몇 개 제작되었다.[46][47] ''그랜드 투어'' 시리즈 4의 에피소드 "Carnage A Trois"에서 진행자들은 도버 해협 건너 도버 해안에서 시트로엥 C3 플루리엘을 던지기 위해 트레뷰셋을 사용했다.[48][49] 스탬퍼드에 거주하는 유튜브 인물 겸 발명가 콜린 퍼즈는 2020년 12월에 세탁기를 던질 수 있는 14m 높이의 트레뷰셋을 만들었다.[50][51]

7. 2. 시위 및 저항 운동

2013년 시리아 내전 중 알레포 전투에서 반군은 트레뷰셋을 사용했다.[58] 이 트레뷰셋은 정부군을 향해 폭발물을 투사하는 데 사용되었다.[59]

2014년 2014년 흐루셰우흐스키 거리 폭동 당시 우크라이나 폭동 참가자들은 임시로 제작한 트레뷰셋을 사용하여 벽돌과 화염병을 베르쿠트에게 던졌다.[60]

7. 3.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국경에서의 사용 (2024년)

2024년, IDF레바논으로 불타는 투사체를 던지기 위해 트레뷰셋을 사용했다.[61]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국경 벽을 따라 자란 수풀을 불태워 헤즈볼라 군대가 은폐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62] IDF는 나중에 트레뷰셋 사용이 이스라엘 군대에서 널리 사용되는 도구가 아닌 "지역적 발상"이라고 주장하는 답변을 발표했다.[63]

2024년 6월 15일 CNN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에서 접근하는 전투원을 더 잘 식별하기 위해 덤불을 태우는 수단으로 트레뷰셋을 사용했다고 한다.[66]

8. 갤러리

19세기 프랑스 그림에 묘사된 중세 시대 평형추 트레뷰셋


2014년 키예프 흐루셰브스코호 거리에서 시위대가 세운 현대식 임시 트레뷰셋 (평형추 작동 방식)


프랑스 레보 드 프로방스 레보 드 프로방스 성에 있는 평형추 트레뷰셋

참조

[1] 문서 OED, Random House Unabridged Dictionary
[2] 문서 Random House Unabridged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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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웹사이트 Etymology Online : trebuchet https://www.etymon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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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웹사이트 Estonian Journal of Archaeology https://books.google[...] Estonian Academy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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