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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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폰티액은 1907년 미시간주 폰티악에서 설립된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로, 1909년 제너럴 모터스(GM)에 인수되었다. 1926년 폰티악 시리즈 6-27 출시를 시작으로, 1960~70년대에는 폰티악 GTO, 파이어버드 등 고성능 모델로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륜 구동 모델을 확대하고, 2000년대에는 SUV를 출시했지만, 판매 부진으로 2010년 GM에 의해 브랜드가 폐지되었다. 폰티액은 아메리카 원주민 이미지를 로고와 디자인에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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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액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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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폰티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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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상표 (1926–1931), 사업부 (1931–2010) |
운명 | 제너럴 모터스 챕터 11 구조조정으로 폐쇄됨 |
전신 | 오클랜드 모터 (1925–1931) |
설립 | 1926년 |
창립자 | 제너럴 모터스 |
해체 | 2010년 10월 31일 |
주요 인물 | 프랭크 허쉬 어빙 제이콥 로이터 세몬 크누센 존 딜로리언 |
위치 |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
산업 | 자동차 산업 |
서비스 지역 | 캐나다, 미국,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중동 |
제품 | 자동차 |
모회사 | 오클랜드 모터 (1925–1931), 제너럴 모터스 (1931–2010) |
웹사이트 | 폰티액 홈페이지 |
역사 | |
슬로건 | 우리는 흥분을 만듭니다 |
추가 정보 | |
관련 정보 | 미시간주 폰티액 |
2. 역사
캐딜락을 최상위 브랜드로 하는 GM의 브랜드군 중에서는 중위에 해당하며, 젊은 층을 주된 타겟으로 삼았다. 스포티한 캐릭터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특징으로 했다. 브랜드명은 디트로이트의 아메리카 원주민인 "폰티액 추장"에서 유래되었으며, 과거에는 추장의 초상을 광고에 많이 사용했다.[13][14]
최근에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NAFTA 가맹국에서만 전개되었으며, 판매망은 GMC나 뷰익과 통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GM의 경영 부진으로 2010년을 끝으로 브랜드가 폐지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일본차 등과의 경쟁이 격화되고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따라 판매량이 감소하자, 폰티액은 차종 정리를 추진하여 "파이어버드"나 "피에로" 등 과거의 인기 차종을 폐지했다. 한때 "트랜스 암"이나 "그랑프리"가 인기를 누렸던 일본 시장에서는 2000년에 철수했다.
2002년에는 미국 시장의 SUV 인기에 힘입어 브랜드 최초의 SUV인 "아즈텍"을 도입했지만, 판매 부진을 막지는 못했다.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8년 8월 "역사상 가장 못생긴 차 100선" 1위로 아즈텍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폰티액은 오스트레일리아의 GM 자회사 홀덴이 개발한 신형 "GTO"(홀덴 모나로의 형제차) 쿠페, 고급 세단 "본네빌"에서 "G8 시리즈"(홀덴 코모도어의 형제차)로의 대체, 2인승 스포츠카 "솔스티스" 도입 등을 통해 스포티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2008년 12월 2일, 250억 달러의 대출을 받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자 폰티액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를 없애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47] 2009년 2월 17일, GM은 새턴 사업부와 사브를 매각하고, 구매자를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험머를 매각 또는 폐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GM은 폰티액이 "젊고 스포티한" 부문을 겨냥한 "틈새" 모델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2009년 4월, 여러 자동차 웹사이트와 비즈니스 간행물에서 GM이 GMC와 함께 폰티액 브랜드를 없앨 수 있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23일, GM이 폰티액 브랜드를 폐지하고 GMC 트럭 라인, 쉐보레, 캐딜락, 뷰익 브랜드를 유지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폰티액 해산 결정은 6월 1일까지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파산 신청 위협이 증가했기 때문에 주로 이루어졌다. 2009년 4월 27일, GM은 폰티액을 단종하고 남은 모든 모델을 2010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에 생산과 프랜차이즈 계약이 모두 종료되었지만, 폰티액은 라이선스 목적으로 GM의 등록된 활성 상표로 남아 있다.[47]
2009년 5월 초, 미시간주 데이비슨의 폰티악 딜러인 짐 월드론은 폰티악 브랜드와 로고를 구매하고, 자동차 생산을 위해 폐쇄될 GM 공장을 구매할 자금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GM은 이미 브랜드 폐기를 결정하고 재고를 매각하기 시작했으며, 새턴, 험머, 사브와 달리 폰티악은 매각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폰티악 브랜드는 2009년 모델 연도 이후 멕시코에서 철수되었고, 브랜드는 마티즈로 이름이 변경되어 마티즈 G2 (마티즈의 로고는 폰티악과 유사함) 한 대만 판매되었다.
마지막 폰티악은 흰색 2010년 모델 G6 4도어 세단으로, 2010년 1월 오리온 타운십 조립 라인에서 제작되었다.
2. 1. 1926–1942: 탄생과 초기 성장





오클랜드 모터 카 컴퍼니는 1907년 미시간주 폰티악에서 마차 제조자 에드워드 머피가 설립했다.[1] 1908년 윌리엄 C. 듀란트가 제너럴 모터스(GM)를 설립했고, 1909년 오클랜드는 GM의 일부가 되었다.[1] 1926년, 6기통 엔진을 탑재한 폰티악 시리즈 6-27이 오클랜드의 주니어 브랜드로 출시되었다.[1] 폰티악은 상위 브랜드보다 인기가 많아, 1931년 오클랜드가 단종되면서 GM의 사업부가 되었다.[12]
폰티악은 오다와 추장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그는 자동차가 생산된 미시간주 폰티악의 도시 이름도 지었다.[13][14] 폰티악은 출시 후 몇 달 만에 오클랜드보다 많이 팔렸다.[15] 2도어 및 4도어 세단, 란도 쿠페, 스포츠 페이톤, 스포츠 란도 세단, 스포츠 카브리올레, 스포츠 로드스터 등 다양한 차체 스타일이 제공되었다. 폰티악 판매량 증가와 오클랜드 판매량 감소로, 폰티악은 모회사보다 오래 살아남은 유일한 동반 브랜드가 되었고, 1932년 오클랜드는 생산을 중단했다.
폰티악은 1927년부터 1941년까지 조립 키트로 일본 오사카 조립의 GM 일본 공장에서도 제조되었다.[16]
1927년, 폰티악은 40hp, 186.7CID (3.25x3.75 in, 82.5x95mm) L-헤드 직렬 6기통 엔진을 장착한 폰티악 시리즈 6-27을 생산했다. 이 엔진의 스트로크는 당시 미국 자동차 중 가장 짧았다.[12] 시리즈 6-27은 1926년 뉴욕 오토 살롱 등장 6개월 만에 39,000대, 12개월 만에 76,742대를 판매했다. 1928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6기통 자동차, 전체 판매량 7위를 기록했다.[17] 1929년 월가 대폭락 당시, 폰티악과 오클랜드 판매량은 급격히 감소했고, 오클랜드가 더 비쌌기 때문에 GM 경영진은 폰티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12]
1932년은 폰티악 시리즈 302 V8이 처음 출시된 해였다.[12] 1932년 V8은 약 8.73cm x 약 8.57cm의 오버스퀘어 보어와 스트로크, 251cuin 배기량, 5.2:1 압축비를 가졌다. 마력은 85hp @3200 RPM으로 평가되었으며, 3개의 메인 베어링, 솔리드 밸브 리프터 및 마벨 단일 배럴 기화기를 사용했다.[12] 특이하게도 폰티악은 1933년에 직렬 8기통으로 전환하여 1954년까지 유지했다.[12]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1933년, 폰티악은 직렬 8기통 엔진을 장착한 가장 저렴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다. 이는 6기통 시보레 마스터 차체 등 많은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했다. 폰티악은 전면 후드 상단과 중앙의 대형 크롬 스트립("실버 스트릭")으로 차별화되었다. 1933년과 1934년에는 8기통 엔진만 제공되었으며, 배기량은 223.4CID, 정격 출력은 77hp이었다.
1935년, 폰티악은 "토피도" 차체 외관을 라살 및 캐딜락 시리즈 60과 공유했다.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는 1939년 딜럭스 식스가 플렉시글라스로 전면 제작된 차체 패널과 함께 전시되었다. "토피도" 차체 전시차는 버튼을 누르면 차체 앞부분이 열려 엔진과 앞좌석 실내를 보여주는 특징이 있었다.[18]
1937년, 폰티악은 올즈모빌, 라살, 소형 뷰익과 공유하는 올 스틸 B-바디를 사용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X 프레임은 2부품 드라이브 샤프트를 사용하는 핫치키스 드라이브를 갖추었다. 8기통은 약 309.88cm 휠베이스, 6기통은 약 297.18cm 휠베이스를 가졌다.[19] 두 엔진 모두 배기량이 증가하여 6기통은 222.7CID으로 85hp, 8기통은 248.9CID으로 100hp을 생산했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폰티악 토피도는 브랜드의 유일한 모델이었으며, 세 가지 다른 차체("A", "B", "C")로 제작되었다. 1941년에는 폰티악 스트림라이너가 직렬 8기통 엔진과 함께 등장했고, 1942년 2월 2일, 마지막 민간 폰티악 자동차가 제조되었으며, 모든 자동차 공장은 군용 생산으로 전환되었다.[20]
2. 2. 1946–1954: 전후 모델 변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모든 폰티악 모델은 1942년 모델에서 약간의 변경만을 거쳤다.[21] 1948년에는 하이드라매틱 자동 변속기가 도입되어, 폰티악 자동차(토피도와 스트림라이너)가 구식이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폰티악의 판매 성장을 도왔다.[21]
1949년에 완전히 새로운 폰티악 모델이 등장했다. 이 모델들은 낮은 차체 라인과 차의 후면 스타일링에 통합된 리어 펜더와 같은 스타일링을 특징으로 했다.[21] 치프틴 라인이 토피도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GM B-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스트림라이너와는 다른 스타일링을 선보였다.[21] 1950년에는 카탈리나 필러리스 하드탑 쿠페가 쉐보레 벨 에어와 유사한 "헤일로 모델"로 소개되었다.[21]
1952년, 폰티악은 스트림라이너를 단종하고 GM A-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된 치프틴 라인에 추가 모델을 추가하여 대체했다.[21] 이 단일 모델 라인은 스타 치프가 추가된 1954년까지 이어졌다.[21] 스타 치프는 A-바디 플랫폼을 약 27.94cm 연장하여 약 314.96cm 휠베이스를 제공했다.[21]
1953년 모델은 이전의 2피스 유닛 대신 일체형 윈드실드를 처음으로 사용했다.[21] 1953년과 1954년 모델은 1949-52년 치프틴 모델을 대폭 개조한 버전이었지만, 1953년 모델에 도입될 예정이었던 V8 엔진을 위해 설계되었다.[21] 그러나 뷰익 부서는 GM 경영진에게 뷰익이 1953년에 새로운 네일헤드 V8을 도입하기 때문에 도입이 판매를 빼앗을 수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21]
1954년, 폰티악은 이전 해에 상당한 업데이트를 거친 차량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21] 1953년과 1954년 모델은 1949-1952년 치프틴 모델의 개조된 버전이었지만, 1954년은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부각시켰다.[21] 폰티악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업적을 묘사한 인쇄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인쇄물은 숭고한 건설 행위부터 사냥 및 기타 생존 수단에 이르기까지 부족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었다.[21] 이 캠페인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풍부한 유산과 장인 정신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폰티악 브랜드에 문화적 공명을 더하여 잠재 고객과의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연결을 만들었다.[21]
2. 3. 1955–1960: 성능 중심 브랜드로의 전환
1955년 모델에 완전히 새로운 차체와 섀시가 도입되면서 판매량이 증가했다. 새로운 173hp 오버헤드 밸브 스트라토 스트리크 V8 엔진이 도입되었다. 이 V8 엔진의 도입으로 6기통 엔진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1977년 GM의 기업 다운사이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폰티악의 풀 사이즈 라인업에는 6기통 엔진이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1956년 세몬 "벙키" 크누센이 폰티악의 총괄 매니저가 되면서 엔지니어링 부문 신임 책임자인 E. M. 에스테스와 존 델로리언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시작했다. 첫 번째 단계 중 하나는 1933년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스타일링 특징이었던 후드와 데크 리드에서 "실버 스트리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1957년 모델이 출시되기 몇 주 전에 제거되었다. 최초의 보네빌도 도입되었다. 이 차는 폰티악 최초의 연료 분사 엔진을 선보이기 위한 스타 치프 컨버터블의 버전이었다. 1957년에 약 630대의 보네빌이 생산되었다. 폰티악 마케팅에서는 이를 "미국 최고의 로드 카"라고 묘사했다.

다음 해에 보네빌은 A-보디 플랫폼의 약 309.88cm 휠베이스로 제작된 자체 라인이 되었다. 1958년 트라이 파워 보네빌은 그 해의 인디애나폴리스 500의 페이스 카였다. 1958년 모델은 차량 전체에서 "인디언" 모티프를 최종적으로 사용한 해였다. 유일한 예외는 계기판의 인디언 헤드 하이빔 표시등이었다. 1958년의 모든 모델에는 이전의 킹핀 설계를 대체하는 볼 조인트 전방 서스펜션이 장착되었다.
1959년 모델에 폰티악은 중간에 별 디자인이 있는 "애로우헤드" 엠블럼을 선보였다. "애로우헤드" 디자인은 분할된 그릴 사이에서 후드 전체로 이어졌으며, 스타 치프 모델에는 엠블럼 디자인의 8개의 크롬 별이 차체 측면에 크롬 트림으로 적용되었다. 크누센은 폰티악이 완전히 개조된 섀시, 차체 및 내부 스타일링을 받도록 지시했다. 쿼드 헤드램프뿐만 아니라 더 길고 낮은 차체가 스타일링 변경 사항 중 일부였다.
치프턴 라인은 카탈리나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스타 치프는 단종된 슈퍼 치프 시리즈를 대체하기 위해 등급이 낮아졌으며, 처음으로 2도어 하드탑이 없어졌고 2도어 세단과 4도어 하드탑 및 4도어 세단만 있었으며, 스타 치프 왜건도 없었다. 보네빌은 이제 최상위 라인으로, 2도어 하드탑, 4도어 하드탑, 4도어 스테이션 왜건의 세 가지 차체 스타일로 출시되었다. 스타 치프의 4도어 "비스타" 하드탑은 보네빌과도 공유되었다. 카탈리나 모델에는 2도어 하드탑, 2도어 세단, 4도어 세단, 4도어 하드탑, 6인승 2열 시트, 9인승 3열 시트가 있는 2개의 스테이션 왜건이 포함되었다. 보네빌과 스타 치프는 약 314.96cm 휠베이스로 제작되었으며, 보네빌 왜건을 제외한 모든 카탈리나 모델과 보네빌 왜건은 약 309.88cm 휠베이스를 사용했다. 또한 카탈리나는 보네빌과 스타 치프보다 약 17.78cm 짧았고, 롱 휠베이스 모델보다 약 45.36kg 가벼웠다. 1959년의 모든 폰티악에는 389CID V8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마력은 215hp에서 345hp "트라이 파워" 기화기 버전까지 다양했다. 모든 자동 변속기는 4단 슈퍼-하이드라-매틱 또는 이를 설계하고 제작한 하이드라매틱 부서에서 부른 "컨트롤드 커플링 하이드라매틱"이었다. 올즈모빌은 이와 동일한 변속기를 사용하여 제타웨이 하이드라매틱이라고 불렀고, 캐딜락도 이를 사용하여 315 또는 P 315 하이드라매틱이라고 불렀다.[22] 3단, 컬럼 장착 스틱 시프트는 모든 폰티악에 표준으로 제공되었다. 이는 증가된 유리 면적, 트윈 V자형 핀 및 낮은 후드 프로파일을 도입한 모든 모델에서 주요 차체 스타일링 변경과 일치했다. ''Motor Trend'' 잡지는 폰티악 라인을 1959년 올해의 차로 선정했다. 1959년 모델은 약 12.70cm 더 넓은 트랙을 특징으로 했다.[23] 약 162.56cm으로 증가한 이유는 크누센이 새롭고 더 넓은 차체가 1958년의 프레임 위에 얹혀 어색해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와이드 트랙" 폰티악은 스타일이 개선되었고, 핸들링이 더 좋아졌으며, 폰티악의 시장 재기에 기여했다.
1960년 모델은 차체의 캐노피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재설계되었으며, 이는 1959년 모델과 동일했지만, 테일 핀과 독특한 분할 그릴은 제거되었다. 1960년 모델의 표준 엔진은 0.25의 압축률 증가로 인해 3 hp의 출력이 향상되었다. 벤츄라가 도입되었고, 더 고급스러운 하드탑 쿠페는 더 짧은 약 309.88cm 휠베이스 플랫폼으로 제작된 4도어 하드탑과 함께 카탈리나와 스타 치프 모델 사이에 위치했다. 벤츄라는 더 짧고 가벼운 카탈리나 차체에 보네빌의 고급 기능을 탑재했다.
2. 4. 1961–1970: 머슬카 시대와 전성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폰티액이 생산한 대부분의 모델은 다른 GM 브랜드(캐딜락 제외)와 스타일이 비슷하거나 형제 모델이었다. 폰티액은 자체적인 전면 및 후면 스타일, 인테리어, 엔진을 유지했다.1961년 모델은 스타일을 변경했다. 분할 그릴이 다시 등장했고, 완전히 새로운 차체와 모든 풀 사이즈 모델에 새로운 디자인의 주변 프레임 섀시가 적용되었다(이는 1964년 모든 GM의 중간 크기 자동차, 1965년 모든 풀 사이즈 자동차에 채택될 예정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섀시는 무게를 줄이고 차체 크기를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스타일이 비슷한 쉐보레는 1960년대 초반부터 "X" 프레임을 계속 사용했다.
1961년 모델에는 새로운 소형 템페스트가 출시되었다. 이는 그 해에 출시된 세 개의 뷰익-올즈-폰티액(BOP) 모델 중 하나로, 뷰익 스페셜, 스카이락, 올즈모빌 F-85와 플랫폼을 공유했다. 템페스트 모델 라인에는 4기통 엔진도 도입되었다.
세 BOP 자동차 모두 차체와 프레임을 일체형으로 결합한 Y-바디 플랫폼을 사용하여 비교적 가볍고 작았다. 세 자동차 모두 존 델로리언이 추진하여 GM이 수년 동안 연구해 온 새로운 기술을 생산에 투입했지만, 템페스트가 단연 가장 혁신적이었다.[24] 엔진 속도로 회전하는 유연한 강철 샤프트가 전면에 장착된 엔진에서 "토크 튜브"를 통해 후면에 장착된 트랜스액슬로 동력을 전달했다. 이를 통해 50/50에 가까운 전후 무게 배분이 가능하여 핸들링이 개선되었고 4륜 독립 서스펜션이 통합되었다. 이 설계는 전면 엔진, 후륜 구동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바닥 "혹"을 거의 제거했다.
템페스트의 트랜스액슬은 전년도에 출시된 코베어의 트랜스액슬과 유사했지만, 본질적으로 공통 부품을 공유하지 않았다. GM은 폰티액 버전의 코베어("폴라리스"라고 불림)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코베어 사고로 조카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벙키 너드슨은 이 아이디어에 반대하는 데 성공했다. 폴라리스 디자인은 취소되기 전에 실물 크기 점토 모형까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델로리언의 "로프 샤프트" 디자인이 승인되었다.
템페스트는 1961년 ''모터 트렌드'' "올해의 자동차" 상을 수상했다. 1961년 말에는 템페스트의 고급 버전인 르망이 출시되었다.
템페스트는 폰티액의 389 V8의 오른쪽 뱅크에서 파생된 194.5CID 인라인 슬랜트 4기통 엔진을 탑재하여 동일한 생산 라인에서 가동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엔진은 4기통용으로 설계된 크랭크축을 받았지만, 밸런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 엔진은 마치 농기계처럼 격렬하게 튀는 경향이 있어 "건초 묶는 기계"라는 별명을 얻었다.[25]
선택 사양인 뷰익 215CID V8은 1961년과 1962년 템페스트에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인기가 없었다. 1963년에 폰티액은 이를 보어 3.78, 스트로크 3.75(389와 동일한 스트로크)인 336CID V8인 새로운 "326"으로 교체했다. 이는 389를 기반으로 하며 부품을 공유했지만 보어가 변경되고 줄었다. 자동차의 차체와 서스펜션도 낮고 길고 넓게 변경되었다. 그 결과 1963년 템페스트와 르망의 절반 이상(해당 연도에만 별도의 라인)이 V8을 주문했다. 다음 해에 326은 새로운 보어 크기 3.72로 진정한 326이 되었다. 템페스트의 인기는 폰티액이 1962년 미국 자동차 브랜드 중 3위로 올라서는 데 기여했으며, 폰티액은 1970년까지 이 자리를 유지했다.
1961년 11월, 너드슨은 쉐보레로 이동했다. 피트 에스테스가 폰티액의 총괄 매니저가 되었고 델로리언은 폰티액 수석 엔지니어로 승진했다. 두 사람 모두 폰티액을 성능 지향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만들려는 너드슨의 노력을 이어갔다. 폰티액은 1962년에 스포츠적인 버킷 시트 쿠페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를 활용하여 그랑프리를 출시하여 벤투라를 대체했다. 벤투라는 이제 카탈리나의 트림 옵션이 되었다. 1963년 1월 GM은 공식적으로 모든 브랜드의 모든 레이싱 활동에 대한 공장 지원을 종료했지만, 폰티액은 모든 모델 라인에서 더 많은 출력을 제공하는 더 큰 엔진을 계속 제작했다.
1963년형 그랑프리는 수직 헤드라이트와 덜한 크롬 장식과 함께 꺾인 뒷창이 있는 사각형 지붕 라인을 특징으로 하는 다른 풀 사이즈 폰티액과 동일한 스타일 변경을 받았다. 1964년과 1965년에는 템페스트/르망 4도어 중형차에 꺾인 뒷창이 적용되었다.
1964년에 템페스트와 르망의 트랜스액슬 디자인은 폐지되었고, 자동차는 GM의 새로운 A-바디 플랫폼 - 프레임 자동차(전면 엔진, 후륜 구동 레이아웃)으로 재설계되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GTO이다. GM의 중간 크기 자동차의 엔진 크기를 330CID 이상으로 금지하는 비공식적인 지침에도 불구하고, 델로리언(폰티액 광고 대행사의 짐 왱거의 지원을 받아)은 325or으로 평가되는 389CID 엔진을 포함하는 GTO를 옵션 패키지로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모든 폰티액 라인업은 1965년 모터 트렌드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었으며, 폰티액이 이 인정을 받은 것은 세 번째였다. 1965년 2월호 모터 트렌드는 거의 전적으로 폰티액의 올해의 자동차 상에 할애되었으며, 이 부문의 마케팅, 스타일링, 엔지니어링 및 성능 노력에 대한 특집 기사와 여러 모델의 로드 테스트가 포함되었다. GTO는 템페스트 르망 시리즈의 옵션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GTO 시리즈가 되었다.
1966년 모델에는 템페스트에 완전히 새로운 오버헤드 캠샤프트(OHC) 6기통 엔진이 도입되었다. 1962년 지프 토네이도 엔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설계된 최초의 대량 생산 OHC 엔진인 반면, 폰티액 OHC I6는 대중적인 가격대의 국산차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26] 업계 최초로 여러 모델에 플라스틱 그릴이 사용되었다.
1967년 모델에는 폰티액 파이어버드 포니 카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쉐보레 카마로의 변형 모델이다. 중간 크기 자동차(템페스트, 르망, GTO)는 약간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지만, 모든 풀 사이즈 자동차와 GTO는 트라이 파워 엔진 옵션을 잃었지만, 이전의 389를 대체하는 더 큰 400CID V8을 받았다. 풀 사이즈 자동차는 둥근 허리 라인, 스타 치프에서 이그제큐티브로의 미들 라인 시리즈의 이름 변경, 1년 한정 그랑프리 컨버터블과 함께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받았다.
1968년에는 GTO에 현대 자동차의 통합 범퍼의 전신인 엔듀라 '고무' 전면 범퍼가 도입되었고, 더 많은 출력을 위해 기화기에 찬 공기를 유도하는 일련의 "램 에어" 엔진이 처음 도입되었다. 트라이 기화기 삭제는 GM 사장 에드 콜이 이끄는 GM 14층에서 다중 기화기를 금지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램 에어 V 옵션은 인기가 없었습니다. 풀 사이즈 자동차와 중형차는 수직 헤드라이트에서 수평 헤드라이트로 되돌아갔고, 2+2는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1969년에는 폰티액이 그랑프리를 풀 사이즈 라인업에서 A-바디 중형 4도어를 기반으로 한 자체 G-바디 모델로 옮겼다. A-바디 중형 4도어는 약 294.64cm에서 약 299.72cm 휠베이스 섀시로 수정되었지만, 다른 스타일과 긴 후드/짧은 데크 비율을 사용하여 중형 개인용 럭셔리 자동차 세그먼트에서 경쟁했다. 1966년에 쉐보레 총괄 매니저가 된 너드슨처럼, 폰티액 부문 총괄 매니저였던 피트 에스테스와 델로리언은 풀 사이즈 그랑프리의 부진한 판매를 대체할 자동차가 필요했지만, 이 자동차의 개발 비용은 폰티액 부문 단독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델로리언은 새로운 "G" 바디 그랑프리의 개발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 쉐보레에서 옛 상사에게 갔다. 에스테스는 비용을 분담하고 폰티액이 이 새로운 자동차에 1년 동안 독점권을 갖도록 동의했다. 다음 해에 쉐보레는 쉐보레 몬테 카를로라는 자체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었다. 새로운 그랑프리는 1969년에 큰 성공을 거두어 딜러가 112,000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1968년에 판매된 그랑프리의 4배가 넘는 수치였다. 풀 사이즈 폰티액도 스타일이 변경되었지만, 1965년 모델과 동일한 기본 언더 바디 구조와 섀시를 유지했다. 4도어 필러 세단과 사파리 왜건의 루프 라인은 1965년 모델과 동일했고, 2도어 세미 패스트백 디자인은 각진 노치백 스타일로 바뀌었고, 4도어 하드탑 세단도 1967년과 1968년 모델보다 더 각진 스타일이었습니다. GTO와 파이어버드는 램 에어 옵션을 받았고, GTO는 "Judge" 성능/외관 패키지를 추가했으며, 파이어버드도 "Trans Am" 패키지를 받았습니다. 원래 303CID 모델로 Trans Am 레이싱 시리즈에서 경쟁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폰티액 트랜스 암은 표준 400CID 엔진을 장착하여 데뷔했다. 올해는 델로리언이 폰티액 부문 총괄 매니저직을 사임하고 GM의 쉐보레 부문에서 유사한 직책을 맡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후임자는 F. 제임스 맥도널드였다.
1960년대 후반에 생산된 폰티액은 새로운 미국의 연방 자동차 안전 기준을 준수했다. 여기에는 스티어링 칼럼, 스티어링 휠, 손잡이 및 핸들, 이중 회로 유압 브레이크 시스템, 숄더 벨트, 측면 마커등 및 헤드 레스트와 같은 에너지 흡수 내부 부품이 포함되었다.
1969년형 파이어버드는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지만, 그 외에는 1967년 오리지널 모델과 거의 동일했다. 이는 파이어버드와 중형차에서 오버헤드 캠 6기통 엔진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해였으며, 파이어버드 컨버터블도 마찬가지였다(1991년까지). 1969년형 파이어버드의 생산은 1970년 모델의 처음 3개월까지 연장되었다(다른 모든 1970년형 폰티액은 1969년 9월 18일에 데뷔). 1970년 2월 26일까지 완전히 새로운 1970년형 파이어버드(및 쉐보레 카마로)의 출시를 연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 5. 1970–1982: 다운사이징과 변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석유 파동과 일본차와의 경쟁 등의 영향으로 폰티액은 다운사이징을 진행했다. 쉐보레나 올즈모빌 등 다른 제너럴 모터스 브랜드와 공통의 차대를 이용한 컴팩트 및 서브컴팩트 모델을 투입하고, "세크리터리 카"(젊은 OL을 위한 차. 'Secretary'는 '비서'의 뜻) 시장을 겨냥한 모델을 만들었다.[28]1971년 중반, 폰티액은 소형, 저가형 쉐보레 노바를 기반으로 한 벤츄라 II를 출시했다. 같은 해 풀 사이즈 자동차 라인업을 완전히 개편하여 주력 모델인 봉네빌을 더욱 화려한 그랜드 빌로 대체했고, 새로운 세대의 풀 사이즈 사파리 스테이션 왜건을 출시했다. 이 왜건은 '조개 껍질' 디자인 테일게이트를 특징으로 했는데, 위나 밖으로 스윙하는 대신 강철 부분이 화물 바닥 아래 차체로 내려가고 뒷 유리가 지붕으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1972년 모델은 배출가스 감소 및 안전 장비 업데이트가 이루어졌다. GTO는 르망의 하위 시리즈가 되었고, 템페스트는 단종되었다. 1972년 기본형 중형 폰티악은 르망이라고 불렸다.

1973년, 폰티악은 중형 르망과 그랜드 앰을 포함한 새로운 GM "A" 바디의 변형 모델을 출시했다. 소형 벤츄라와 개인용 고급 그랑프리도 1973년에 스타일을 변경했다.
1973년 파이어버드 트랜스 앰의 후드 데칼은 원주민 조류 디자인의 존 시넬라가 스타일을 적용한 것으로 후드의 사용 가능한 공간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새로운 슈퍼 듀티 455 엔진이 출시되었는데, 소수의 SD 455 엔진만이 그해 파이어버드 트랜스 앰에 장착되었다.


1975년, 폰티액은 쉐보레 베가의 변형 모델인 서브컴팩트 아스트레를 출시했다. 1975년은 폰티악 컨버터블의 다음 10년의 종말이 될 것이다.
1976년, 선버드가 라인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노치백으로 제공되었으며, 1977년에 해치백 차체 스타일이 추가되었다. 1978년에는 베가 왜건 차체 스타일이 추가되어 아스트레 사파리 왜건을 대체하는 선버드 사파리 왜건이 출시되었다.
1977년, 풀 사이즈 폰티악은 GM의 다른 "B" 바디 자동차와 동일한 "다운사이징"을 받았다. 그랜드 빌은 단종되었지만, 새로운 봉네빌과 카탈리나는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1977년 중반, 폰티악은 벤츄라의 고급 버전인 피닉스를 출시했는데, 1977년 모델 연도가 끝난 후 벤츄라를 완전히 대체했다. 폰티악은 또한 "아이언 듀크" 4기통 오버헤드 밸브 엔진을 출시했다.
1970년대 나머지 기간과 1980년대 초반에는 고급스러움, 안전성, 경제성이 폰티악 제품의 점점 더 중요한 판매 포인트가 되었다. 후륜 구동은 최초의 전륜 구동 폰티악인 1980년 피닉스(쉐보레 시테이션의 변형)의 도입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파이어버드는 영화 '스모키 앤 더 밴딧'과 TV 쇼 '더 록포드 파일'에서 제품 배치를 통해 성공적으로 마케팅되었다. 파이어버드는 포뮬러 및 트랜스 앰 패키지로 제공되었으며, 1980년과 1981년 모델 연도에는 폰티악 최초의 터보차저 V8도 제공되었다.
2. 6. 1982–1988: 기술 혁신과 새로운 시도

1982년 쐐기 모양의 파이어버드가 소개되었다. 이는 1970년 이후 머슬카의 첫 번째 주요 디자인 변경이었다. 텔레비전 시리즈 전격 Z 작전에 대한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다.[48] 폰티악은 이후 10년 동안 더 성능 지향적인 모델을 선보였다. 트랜스 암은 생산 공기역학적 기록(0.32cd)을 세웠다. 9년 만에 컨버터블 차체가 다시 도입되었다. GM은 J-바디 자동차를 개조했고, 완전히 새로운 1982년형 J2000(이후 선버드로 변경)은 라인업의 일부로 컨버터블을 갖추고 있었다.

1984년형 피에로는 이전 폰티악 생산 모델들과 크게 달랐다. 2인승 미드 엔진 쿠페인 피에로는 폰티악이 4년 만에 처음으로 판매 증가를 기록하는데 기여했다.[48] 폰티악은 기술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1984년 6000 라인에 특별 투어링 에디션(STE)이 추가되어 메르세데스 190과 같은 유럽 로드카와 경쟁했다. STE는 디지털 계기판 및 기타 전자 장치, 더 강력한 V6 엔진, 재조정된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이후 폰티악 최초로 안티록 브레이크, 스티어링 휠 장착형 라디오 컨트롤 등이 도입되었다.
폰티악은 캐나다 시장용 폰티악 파리지엔을 수입했는데, 본빌의 고급 트림을 특징으로 했다. 이 자동차는 이름만 폰티악일 뿐, 약간 재조정된 카프리스였다. 파리지엔은 수익성 있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세단은 1986년까지, 사파리 스테이션 왜건은 1989년까지 생산되었다.
파리지엔 사파리, 파이어버드, 피에로를 제외하고 1988년부터 파이어버드를 제외한 모든 폰티악은 전륜 구동 플랫폼으로 전환되었다. 1970년 이후 처음으로 폰티악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었다. 폰티악 소유주의 중간 연령은 1981년 46세에서 1988년 38세로 감소했다.
2. 7. 1989–1997: 전륜구동 모델 확대와 쇠퇴
폰티악의 신차는 ABS, GM의 쿼드-4 엔진, 에어백, 복합 재료를 포함했다.[30] 1989년에 사파리 스테이션 왜건 생산이 종료되었으며, 이는 2009년 G8까지 V8 엔진을 사용하는 풀 사이즈 후륜구동 폰티악의 마지막 모델이었다. 1990년에는 폰티악 최초의 미니밴이자 소형 트럭인 트랜스 스포츠가 출시되었다. 같은 해, 그랑프리 라인에는 LE 및 STE 트림으로 제공되는 최초의 4도어 모델이 추가되었다. 1991년, 6000은 새롭게 확장된 그랑프리 라인업과 6000 스테이션 왜건을 대체하는 새로운 트랜스 스포츠 미니밴을 위해 단종되었다.1992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본네빌이 출시되었다. 이 풀 사이즈 모델은 공기역학적 스타일, 넓은 곡선형 유리, 전륜구동 및 3800 시리즈 I V6를 기본 장비로 갖추었다. 새로운 하위 모델인 SSEi는 같은 해 출시되었으며 SSE 모델의 모든 표준 장비와 205마력 슈퍼차저 3800 V6를 탑재했다. 1993년형 본네빌은 SE 모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포츠 럭셔리 에디션(SLE)이라는 새로운 옵션 패키지(H4U)를 추가했다. 이 패키지에는 가죽 버킷 시트, 특정 그릴, 측면 트림, 배기구, 대시 트림, 레이스 스타일 합금 휠, 리어 스포일러, 스포츠 핸들링 서스펜션 시스템, ABS가 포함되었다.
1993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파이어버드가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160hp의 3.4L V6 엔진 또는 트랜스 암(Trans Am)의 경우 275hp LT-1, 350CID V8 엔진을 탑재했으며 T-56 6단 수동 변속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썬버드는 1995년에 (여전히 J-바디) 선파이어로 대체되었다. J-카에서는 더 이상 V6 엔진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세단, 쿠페 및 컨버터블 바디 스타일은 유지되었다. 1996년형 본네빌은 업데이트된 전면 및 후면 파시아와 여러 다른 개선 사항을 받았다. 3800 시리즈 II V6는 1995년에 표준으로 채택되었으며 205마력을 제공했다. 업데이트된 슈퍼차저 3800 시리즈 II는 이제 240hp로 평가되었다.
'''부문별 판매 수치'''[30]
연도 | 판매량 |
---|---|
1989 | 801,600 |
1990 | 636,390 |
1991 | 518,598 |
1992 | 519,925 |
1993 | 533,776 |
1994 | 577,022 |
1995 | 589,192 |
1996 | 479,973 |
1997 | 563,897 |
2. 8. 1997–2004: 재도약 노력
1996년 모델은 5세대 그랑프리의 마지막 해였다. 1997년에 "더 넓은 것이 더 좋다"는 광고 캠페인과 함께 데뷔한 그랑프리에는 GTP 트림 레벨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240hp 출력과 280lb·ft 토크를 내는 슈퍼차저 3.8 L V6 엔진을 특징으로 했다. 이 세대 그랑프리의 디자인적 특징 중 하나는 쿠페와 세단 모델 간에 지붕 판금을 공유한다는 것이었다.1998년에는 파이어버드가 업데이트되었다. 트랜스앰은 305hp 출력을 내는 LS-1 모터를 받았고, WS6 옵션은 이 수치를 320hp까지 증가시키고 램 에어와 더 튼튼한 스프링을 추가했다. 1999년 모델에서는 트랜스 스포트가 더 큰 몬타나 미니밴으로 대체되었다.
2000년에 본네빌은 1992년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재설계를 거쳤으며, 올즈모빌 오로라 및 뷰익 르세이버와 공유하는 G-바디를 기반으로 했다. 2001년에는 폰티악은 신흥 SUV 시장에 아즈텍을 출시했다.
2002년에는 파이어버드/트랜스 암과 카마로가 판매 부진과 스포츠 시장의 포화로 인해 단종되었다. 그랑프리의 쿠페 버전도 단종되었다. 2003년 바이브는 2002년 봄에 출시되었으며, 토요타를 기반으로 한 소형 왜건으로 NUMMI 합작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또한 2003년에는 그랑프리가 2004년을 위해 개선된 7세대가 나올 예정으로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폰티악의 마지막 NASCAR 참가 해이기도 했다. 폰티악의 마지막 NASCAR 컵 시리즈 우승은 NASCAR 역사상 가장 근접한 결승전 중 하나에서 리키 크레이븐에 의해 달성되었으며, 데이비드 그린은 캔자스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Mr. Goodcents 300에서 마지막 2부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폰티악 GTO가 다시 출시되었다 (호주에서 개발된 홀덴 모나로를 기반으로). GTO는 첫 해 모델에 350 HP LS-1 V8 엔진을 탑재했다. 독립식 전후 서스펜션과 고급스러운 풀 가죽 인테리어를 갖추었다. 판매량은 GM이 예측한 18,000대를 넘지 못했다. LS1 엔진은 2004년에 단종되었다. 폰티악은 2005년과 2006년 모델에 추가 비용 없이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 400 HP LS2 V8 엔진을 추가했다. 추가 업그레이드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듀얼 배기구, 더 큰 코르벳에서 가져온 PBR 브레이크 (EBD 포함), 더 큰 전면 통풍 로터와 통풍 후면 로터, 기능적인 히트 추출기 후드 스쿠프가 포함되었다. 본네빌은 SSEi를 대체하기 위해 GXP 트림 레벨을 도입했다. 본네빌 GXP는 캐딜락에서 빌려온 4.6 노스스타 V8 엔진을 탑재했으며, 슈퍼차저 3800 시리즈 II 엔진을 대체했다. 재설계된 그랑프리가 등장하여 GT 및 GTP 트림 레벨을 특징으로 했다. GTP의 새로운 3.8 L 슈퍼차저 V6는 이전 세대보다 20 더 증가한 260hp를 냈다. TAPshift와 함께 컴피티션 그룹 패키지 (Comp G)도 도입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일본차 등과의 경쟁이 격화되고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따라 판매 대수가 감소를 지속했기 때문에 차종 정리를 추진, "파이어버드"나 "피에로" 등 과거의 인기 차종을 폐지했으며, 한때 "트랜스 암"이나 "그랑프리"가 인기를 누렸던 일본 시장에서 2000년에 철수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SUV 인기를 받아 2002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SUV가 되는 "아즈텍"을 도입했지만, 판매 부진에는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해당 차량은 그 특이한 디자인이 시장의 반감을 사, 영국의 대중지인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008년 8월에 발표한 "역사상 가장 못생긴 차 100선"의 1위에 선정되었다.
그럼에도 폰티악은 오스트레일리아의 GM 자회사인 홀덴의 개발에 의한 신형 "GTO"(홀덴 모나로의 형제차) 쿠페나, 자사의 고급 세단 "본네빌"에서 "G8 시리즈"(동·코모도어의 형제차)로의 대체, 더 나아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2인승 스포츠카 "솔스티스"의 도입으로 스포티 이미지를 유지하려 했다.
2. 9. 2005–2010: 브랜드 폐지와 마지막 모델
제너럴 모터스(GM)는 2008년 12월 2일, 250억 달러의 대출을 받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자 폰티액을 포함한 여러 브랜드를 없애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47] 2009년 2월 17일, GM은 새턴 사업부와 사브를 매각하고, 구매자를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험머를 매각 또는 폐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GM은 폰티액이 "젊고 스포티한" 부문을 겨냥한 "틈새" 모델에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폰티액은 모델 수를 4개로 줄일 예정이었지만, 한 모델만 유지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2009년 4월까지 여러 자동차 웹사이트와 비즈니스 간행물에서 GM이 자매 트럭 브랜드인 GMC와 함께 폰티액 브랜드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4월 23일, 회사가 폰티악 브랜드를 폐지하는 동시에 GMC 트럭 라인, 쉐보레, 캐딜락, 뷰익 브랜드를 유지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폰티악을 해산하기로 한 결정은 6월 1일까지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파산 신청의 위협이 증가했기 때문에 주로 이루어졌다. 2009년 4월 27일, GM은 폰티액을 단종하고 남은 모든 모델을 2010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에 생산과 프랜차이즈 계약이 모두 종료되었지만, 폰티액은 라이선스 목적으로 GM의 등록된 활성 상표로 남아 있다.[47]
2009년 5월 초, 미시간주 데이비슨의 폰티악 딜러인 짐 월드론은 폰티악 브랜드와 로고를 구매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곧 폐쇄될 GM 공장과 함께 이를 구매할 자금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GM은 이미 브랜드를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남아 있는 재고를 매각하기 시작했으며, 새턴, 험머, 사브와 달리 폰티악은 매각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폰티악 브랜드는 2009년 모델 연도 이후 멕시코에서 철수되었고, 브랜드는 마티즈로 이름이 변경되어 마티즈 G2 (마티즈의 로고는 폰티악과 유사함) 한 대만 판매되었다.
마지막 폰티악은 흰색 2010년 모델 G6 4도어 세단으로, 2010년 1월 오리온 타운십 조립 라인에서 제작되었다.
3. 한국 시장에서의 폰티악
폰티액은 대한민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지 않았고, GM의 다른 브랜드나 수입차 딜러를 통해 일부 모델이 판매되었다. 폰티액 브랜드는 2010년에 단종되었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폰티액 신차를 구매할 수 없다.
4. 모델
- G6
- GTO
- 그랜드 프릭스
- GTP
- 토런트
- 바이브
- 몬타나
- 파이어버드
- 솔스티스
- 그랑프리
- 폰티악 2+2 (1964–1970)
- 폰티악 1000 (1983–1987)
- 폰티악 2000 (1983)
- 폰티악 2000 선버드 (1983–1984)
- 폰티악 6000 (1982–1991)
- 폰티악 아카디안 (1976–1987, 쉐보레 쉐베트/폰티악 T1000/1000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아스트레 (1975–1977; 1973–1977 캐나다)
- 폰티악 아즈텍 (2001–2005)
- 폰티악 본네빌 (1957–2005)
- 폰티악 카탈리나 (1959–1981)
- 폰티악 치프틴 (1949–1958)
- 폰티악 커스텀 S (1969)
- 폰티악 드-럭스 (1937)
- 폰티악 이그제큐티브 (1967–1970)
- 폰티악 파라고 (1969)
- 폰티악 피에로 (1984–1988)
- 폰티악 파이어플라이 (1985–2001, 쉐보레 스프린트/지오 메트로/스즈키 컬투스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G3 (2006–2009 (멕시코), 2009 (미국), 쉐보레 아베오/대우 젠트라의 배지 엔지니어링)
- 폰티악 G4 (2005–2009, 쉐보레 코발트의 배지 엔지니어링, 멕시코)
- 폰티악 G5 (2007–2009, 쉐보레 코발트의 배지 엔지니어링)
- 폰티악 G8 (2008–2009, 홀덴 VE 코모도어의 배지 엔지니어링, 호주)
- 폰티악 GT–37 (1970–1971)
- 폰티악 그랜드 앰 (1973–1975, 1978–1980, 1985–2005)
- 폰티악 그랜드 사파리 (1971–1978)
- 폰티악 그랜드 빌 (1971–1975)
- 폰티악 그란데 파리지엔 (1966–1969, 캐나다)
- 폰티악 J2000 (1982)
- 폰티악 로렌시안 (1955–1981, 캐나다)
- 폰티악 르망 (1962–1981, 1988–1993)
- 폰티악 마티즈 (1998–2005, 쉐보레 마티즈의 배지 엔지니어링, 멕시코)
- 폰티악 마티즈 G2 (2006–2010, 쉐보레 마티즈의 배지 엔지니어링, 멕시코)
- 폰티악 몬타나 SV6 (2005–2006, 2009년까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생산 지속)
- 폰티악 파리지엔 (1983–1986; 1958–1986, 캐나다)
- 폰티악 패스파인더 (1955–1958, 캐나다)
- 폰티악 피닉스 (1977–1984)
- 폰티악 퍼슈트 (후기 G5 퍼슈트) (2005–2006, 쉐보레 코발트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사파리 (1955–1989)
- 폰티악 실버 스트릭
- 폰티악 스타 치프 (1954–1966)
- 폰티악 스타 치프 이그제큐티브 (1966)
- 폰티악 스트라토-치프 (1955–1970, 캐나다)
- 폰티악 스트림라이너 (1942–1951)
- 폰티악 선버드 (1975–1980, 1985–1994)
- 폰티악 선버스트 (1985–1989, 쉐보레 스펙트럼/이수즈 제미니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선파이어 (1995–2005)
- 폰티악 선러너 (1994–1997, 지오 트래커/스즈키 에스쿠도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슈퍼 치프 (1957–1958)
- 폰티악 T1000 (1981–1982)
- 폰티악 T-37 (1970–1971)
- 폰티악 토잔 (1985–1991)
- 폰티악 템페스트 (1961–1970; 1987–1991, 쉐보레 코르시카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 폰티악 토페도 (1940–1948)
- 폰티악 트랜스 암 (1969–2002)
- 폰티악 트랜스 스포츠 (1990–1998)
- 폰티악 벤츄라 (1960–1970 풀 사이즈, 1973–1977 컴팩트)
- 폰티악 벤츄라 II (1971–1972)
- 폰티악 웨이브 (후기 G3 웨이브) (2004–2010, 쉐보레 아베오/대우 젠트라의 배지 엔지니어링, 캐나다)
5. 디자인 특징
1956년까지 아메리카 원주민 머리 장식이 로고로 사용되었다. 1957년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빨간색 화살표 디자인으로 변경되어 1970년까지 사용되었다. 이 화살표 로고는 다트(Dart)라고도 불렸다.[1]
폰티악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릴에서 후드 중앙까지 이어지는 "실버 스트릭(Silver Streaks)"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밴드였지만, 1955년과 1956년에 두 개로 늘어났다. 실버 스트릭은 1957년에 단종되었다.[1]
1959년에 도입된 분할 그릴 디자인은 폰티악의 특징적인 스타일링 요소였다. 1960년 모델은 전체 너비 그릴 스타일을 사용했지만, 1961년부터 분할 그릴이 다시 등장하여 브랜드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스타일링 요소로는 뾰족한 "화살표" 노즈(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릴 오버(grilled-over)"(1960년대), 여러 개의 가로 줄무늬 테일램프 등이 있었다. 이 중 가로 줄무늬 테일램프는 1963년 그랑프리에서 시작되었다.[1]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폰티악 자동차의 문과 펜더에 "클래딩(cladding)"이 사용되었다. 폰티악 디자이너들은 측면 범퍼를 최소화하는 대신, 범퍼 길이를 따라 두 개의 홈을 만들었다. 2004년부터는 새로운 폰티악 자동차들이 더 깔끔한 스타일을 갖추었지만, 전통적인 분할 그릴은 유지했다.[1]
6. 엔진
폰티액의 엔지니어 클레이튼 리치는 베어링이 장착된 로커 암을 대체하는 간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스탬프 스틸 밸브트레인 로커 암을 설계했다. 이 디자인은 이후 거의 모든 OHV 엔진 제조업체에서 채택했다.[12]
폰티액은 1946년에 V8 구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L-헤드 엔진이 될 예정이었으며, 1940년대 말까지 8개의 실험 장치가 제작되어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쳤다. 그러나 OHV 올즈모빌 V8과의 테스트 비교 결과 L-헤드는 성능 면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1949년부터 1951년까지 새로운 폰티액 엔지니어링 건물을 짓는 것 외에도, V8을 OHV 디자인으로 재지정하기로 결정하면서 1953년 모델 연도까지 출시가 지연되었다. 하지만 뷰익 사업부는 1953년에 새로운 엔진(네일 밸브 V-8)을 출시할 예정이었고, 폰티액의 V8 출시를 1955년 모델 연도까지 보류하거나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되었다.[12]
1956년 중반, 폰티액은 V8의 고출력 버전을 출시했다. 이 버전의 엔진에는 고성능 레이싱 캠축과 듀얼 4배럴 기화기가 장착되었다. 이것은 일련의 NASCAR 준비 완료 슈퍼 듀티 V8 엔진 중 첫 번째였으며, 폰티액이 1960년대 머슬카와 포니카 시대에 주요 선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한 다양한 다중 기화기 장착 엔진의 긴 역사를 시작했다. 확대된 1956년 폰티액 V8은 경량 GMC 픽업 트럭에도 탑재되었다.
폰티액의 2세대 V8 엔진은 수많은 유사점을 공유하여, 1959년에 처음 출시되어 1979년에 단종될 때까지 많은 부품을 호환할 수 있었다. 배기량은 287CID에서 455CID이었다. 엔진의 유사성(301 & 265 버전 제외)으로 인해 이 엔진의 재조립이 비교적 쉬워졌다. 이 기능은 또한 폰티액이 두 번째로 큰 배기량의 엔진인 389CID을 미드 사이즈 자동차인 르망에 장착하여 폰티액 르망 GTO를 만드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을 통해 현대적인 머슬카를 개발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폰티액 엔진은 성능으로 유명했다. 455CID V8은 가장 컸으며, 콤팩트 사이즈의 차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폰티액에 장착되었다. 마력 시대의 절정기에 폰티액 엔진은 390hp(SAE 총)의 출력을 기록했지만, 다른 엔진은 훨씬 더 높은 출력을 달성했다. 연방 배출 가스 규정으로 인해 마력 시대가 막을 내리고 폰티액 엔진의 지속적인 감소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업계 전반의 하락에 대한 유일한 버팀목은 1973-1974년의 슈퍼 듀티 455 엔진이었다. 파이어버드 포뮬러와 트랜스 암 모델에만 제공되었으며, 초기에는 310hp 넷으로 평가되었지만, EPA 배출 가스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문제가 발생한 후 캠축이 구형 RA III 캠으로 변경되었고, 그 변경과 함께 290hp 넷 등급이 나왔다. 이 엔진은 폰티액 엔진 개발의 정점으로, 드라이 섬프 오일링과 같은 몇 가지 레이스 전용 기능을 포함하는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전통적이지 않은 폰티액 V8 엔진은 301CID과 265CID뿐이었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된 이 엔진은 폰티액이 생산한 마지막 V8 엔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GM은 1980년에 다양한 브랜드의 엔진을 General Motors Powertrain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했다. 301은 쉐보레 소형 블록 엔진 및 포드 보스 302 엔진과 동일한 약 10.16cm 보어와 약 7.62cm 스트로크를 가지고 있었다.
폰티액 엔진은 캐나다에서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크기와 출력을 가진 쉐보레 엔진으로 대체되어 쉐보레 빅 블록 396CID V8을 장착한 베오몽 SD-396과 같은 모델이 출시되었다.
폰티액은 오랫동안 카터(Carter) 1 배럴 기화기를 사용했지만, 2세대 모델이 나올 즈음에는 V8 엔진이 대부분 2 배럴 기화기로 전환되었다. 이들은 또한 엔진의 트라이파워 설정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트라이파워 설정은 아이들 제어 기능이 있는 중앙 기화기 1개와, 스로틀이 절반 이상 열릴 때까지 작동하지 않는 양쪽 끝의 기화기 2개로 구성되었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현되었는데, 수동 변속기 모델에서는 기계적으로, 자동 변속기 모델에서는 진공 스위치를 통해 작동했다. 이 방식은 1957년부터 1966년까지 공장에서 설치되는 옵션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변형을 거쳤다.
폰티액은 또한 당시 사각 보어 4 배럴 기화기를 사용했지만, 이는 트라이파워보다 낮은 마력으로 평가되었다. 이 기화기는 나중에 쿼드라제트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스프레드 보어 방식이었다. "스프레드 보어"라는 용어는 1차와 2차 사이의 크기 차이를 나타내며, 더 넓은 스로틀에서 공기 흐름을 증가시키기 위해 더 작은 1차와 더 큰 2차를 사용하며, 연료 공급 변화는 트라이파워의 2+4 방식과 유사하지만 단일 기화기를 사용한다. 쿼드라제트는 최고 사양의 GTO 400 엔진과 428 H-O 엔진이 389 및 421과 동일한 마력을 낼 수 있게 한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다. 새로운 엔진은 다른 밸브 각도와 더 큰 포트를 가진 재설계된 실린더 헤드를 가지고 있어 더 큰 직경의 흡기 및 배기 밸브를 사용할 수 있었다.
머슬카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쿼드라제트 방식이 폰티액 엔진에 널리 사용되었다. 쿼드라제트 설계는 배출가스 및 연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컴퓨터 제어가 추가된 채로 1990년까지 올즈모빌 V8 엔진에 적용되었다.
7. 논란
GM이 폰티액 브랜드를 단종했음에도 불구하고, GM이 이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2021년 체로키 네이션이 지프에게 인기 있는 지프 체로키와 그랜드 체로키 차량의 이름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어느 정도 논란이 되었다. 체로키 네이션은 성명에서 GM의 폰티액 사용과 함께 RV 제조 회사인 윈네바고 인더스트리를 차량에 아메리카 원주민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사례로 언급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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