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다 야스카즈
1. 개요
하마다 야스카즈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지바현 출신이다. 힐즈데일 칼리지와 센슈 대학을 졸업하고, 와타나베 미치오의 비서와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의 비서를 역임했다. 1993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여러 차례 당선되었으며, 방위대신, 방위청 차관, 자민당 국회 대책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제2차 키시다 내각에서 방위대신을 다시 맡았고,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1선에 성공했다. 그는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하며,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에 대해서는 변화하는 입장을 보였다.
| 이름 | 하마다 야스카즈 |
|---|---|
| 원어 이름 | 浜田 靖一 |
| 로마자 표기 | Hamada Yasukazu |
| 출생일 | 1955년 10월 21일 |
| 출생지 | 지바현 후쓰시 |
| 아버지 | 하마다 고이치 |
| 학력 | 센슈 대학 경영학 학사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서명 | Yasukazu Hamada signature.svg |
| 웹사이트 | 자유민주당・하마다 야스카즈 |
| 직책 | 방위대신 |
|---|---|
| 총리 | 기시다 후미오 |
| 임기 시작 | 2022년 8월 10일 |
| 임기 종료 | 2023년 9월 13일 |
| 전임자 | 기시 노부오 |
| 후임자 | 기하라 미노루 |
| 총리1 | 아소 다로 |
| 임기 시작1 | 2008년 9월 24일 |
| 임기 종료1 | 2009년 9월 16일 |
| 전임자1 | 하야시 요시마사 |
| 후임자1 | 기타자와 도시미 |
| 직책2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2 | 지바현 3구 (1993–1996) 지바현 12구 (1996–2000; 2003–현재) 남부 간토 비례대표 (2000–2003) |
| 임기 시작2 | 1993년 7월 18일 |
| 전임자2 | 다선거구 |
| 당선 횟수 | 11회 |
| 기타 직책 |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
| 임기 시작6 | 2012년 9월 28일 - 2012년 12월 25일, 2023년 12월 22일 |
| 임기 종료6 | 2024년 9월 30일 |
| 전직 | 와타나베 미치오 대장대신 비서관 , 하마다 고이치 중의원 의원 비서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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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방위대신 -
우노 소스케
우노 소스케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일본 정치인으로, 외무대신 등 요직을 거쳐 제7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여성 스캔들로 인해 69일 만에 사임하며 최단명 내각 중 하나를 이끌었고,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일본의 방위대신 -
고이케 유리코
고이케 유리코는 카이로 대학교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하여 환경대신, 방위대신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도쿄도지사로 재임 중인 일본의 정치인으로, 도민제일회를 창당하고 희망의 당을 이끌기도 했으며 경제 자유주의와 우익 포퓰리즘 성향으로 논란을 겪기도 했다. -
센슈 대학 동문 -
나카가와 아키코
나카가와 아키코는 1994년 데뷔하여 다양한 애니메이션, 라디오, 드라마 CD, 음악 활동에 참여하고 성우 양성소 강사 경력도 가진 일본의 여성 성우이다. -
센슈 대학 동문 -
와다 준
1973년 지바현에서 태어난 일본 축구 선수 와다 준은 센슈 대학 졸업 후 FC 도쿄의 전신인 도쿄 가스에 입단하여 공격수로 활동했으나, 부상과 경쟁으로 1999년 은퇴 후 회사원으로 전념했다. -
신토 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관계자 -
세키구치 마사카즈
세키구치 마사카즈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5선 참의원 의원이자 제34대 참의원 의장으로, 사이타마현 의회 의원 출신으로 외무대신 정무관, 총무부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헌법 개정 및 방위비 증액을 주장하는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다. -
신토 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관계자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2. 생애
하마다 야스카즈는 지바현 후쓰시에서 태어나 치바현립 기사라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주 힐즈데일 칼리지에 유학한 후, 센슈 대학 경영학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와 친분이 있던 와타나베 미치오의 사무소에 취직, 1980년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와타나베가 대장대신에 취임했을 때 비서관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는 아버지의 비서를 역임했다.
1993년 아버지의 은퇴에 따라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구 치바 3구에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 이때 함께 당선된 동기로는 아베 신조, 타나카 마키코, 키시다 후미오 등이 있다.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 도입 후 처음 실시된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코스타리카 방식에 의해 비례 남관동 블록에서 3선되었다.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방위 정무차관에 취임했다. 2003년 제1차 고이즈미 제1차 개조내각에서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 아래 방위청 차관을 역임했다. 같은 해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민주당 아오키 아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나카무라 마사사부로의 은퇴로 치바 12구에서 출마, 아오키에게 비례 부활조차 허락하지 않고 크게 승리했다. 같은 해 자민당 치바현 연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아소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 입각,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가 이루지 못한 국무대신 취임을 달성했다. 같은 해 10월, 타모가미 토시오 항공막료장이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누명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자, 정부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경질했다.
2009년 북한 미사일 발사 실험에 앞서,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하여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 “우리나라 영토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파괴 조치 명령 발령을 표명했다. 재임 중 해적 대책법을 성립시켰다. 같은 해 8월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6선했으나, 민주당 나카고 준에게 비례 부활을 허용했다.
2011년 10월, 타니가키 요이치 총재 아래 국회 대책 위원장 대리를 맡았다.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했으나, 아베 신조에게 패했다. 아베 총재 아래에서 국회 대책 위원장 대리에서 승격, 자유민주당 국회 대책 위원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12월,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맡았다. 2013년 1월 31일, 무파벌 연락회 첫 회합에 참가했다.
2021년 5월, 치바현 지사 선거 대패에 따라 사임한 와타나베 히로미치의 뒤를 이어 자민당 치바현 연회장에 취임했다. 2022년 8월, 아베 신조 총격 사건의 발단이 된 구 통일교회 관련 의원 배제를 위해 제2차 키시다 제1차 개조내각이 발족, 방위대신에 재취임했다.
2023년 6월, 방위대신 겸임으로 인한 과로를 이유로 현 연회장을 사퇴했다. 같은 해 9월 내각 개조로 방위대신에서 물러났다. 12월 22일, 자민당 5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뒷돈 문제로 사퇴한 타카기 코우의 후임으로 국회 대책 위원장에 재취임했다. 2024년 10월 27일,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1선에 성공, 11월 13일,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에 취임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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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현 후쓰시에서 태어났다. 치바현립 기사라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 힐즈데일 칼리지에 유학했다. 그 후 센슈 대학 경영학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와 친분이 있던 와타나베 미치오의 사무소에서 일했다. 1980년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와타나베가 대장대신에 취임하자 비서관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 아버지의 비서를 역임했다.
2.2. 정치 입문
치바현 기사라즈시 출신으로, 치바현립 기사라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힐즈데일 칼리지에 유학한 후, 센슈 대학 경영학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의 지인이었던 와타나베 미치오의 사무소에서 일했으며, 1980년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와타나베가 대장대신이 되자 비서관을 맡았다. 1984년부터는 아버지의 비서로 일했다.
1993년 아버지의 은퇴 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구 치바 3구에서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다. 이때 함께 당선된 동기로는 아베 신조, 타나카 마키코, 키시다 후미오 등이 있다.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 도입 후 처음 치러진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코스타리카 방식에 따라 비례 남관동 블록에서 출마하여 3선에 성공했다.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는 방위 정무차관을 맡았다.
2.3. 중의원 의원 활동
1993년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의 은퇴에 따라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구 치바 3구에서 출마하여 첫 당선되었다. 함께 당선된 동기로는 아베 신조, 타나카 마키코, 키시다 후미오 등이 있다.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 도입 후 처음 실시된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코스타리카 방식에 의해 비례 남관동 블록에서 3선되었다.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방위 정무차관에 취임했다. 2003년 제1차 고이즈미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 아래에서 방위청 차관을 역임했다. 같은 해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다시 치바 12구에서 출마하여 민주당 아오키 아이 후보를 큰 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원래 나카무라 마사사부로가 치바 12구, 하마다가 비례대표로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나카무라가 우정민영화법안 표결에 불참하여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되자 불출마 및 은퇴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하마다가 치바 12구에서 출마하여 아오키 후보에게 비례 부활조차 허락하지 않고 크게 승리했다. 같은 해, 자민당 치바현 연회장에 취임했다.
2008년 아소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 입각했다. 이는 아버지 하마다 코이치가 이루지 못했던 국무대신 취임을 달성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 타모가미 토시오 항공막료장이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누명이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자, 정부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경질했다.
2009년 북한 미사일 발사 실험에 앞서,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며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우리나라 영토 위를 날아가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발언하며 파괴 조치 명령을 발령할 생각을 표명했다. 재임 중 해적 대책법을 성립시켰다.
같은 해 8월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치바 12구에서 6선에 성공했지만, 민주당 나카고 준 후보에게 비례 부활을 허용했다. 이듬해 9월, 아소 내각 총사퇴로 방위대신에서 물러났다.
2011년 10월, 타니가키 요이치 총재 아래에서 국회 대책 위원장 대리에 취임했다. (국회 대책 위원장은 동기 당선자인 키시다 후미오)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같은 방위대신 경험자인 이시바 시게루를 지지했지만, 이시바는 아베 신조에게 패했다. 총재 선거 후, 아베 총재 아래에서 국회 대책 위원장 대리에서 승격하여 자유민주당 국회 대책 위원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12월,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맡았다. 2013년 1월 31일, 무파벌 연락회 첫 회합에 참가했다.
2021년 5월, 치바현 지사 선거 대패에 따라 자민당 치바현 연회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한 와타나베 히로미치 중의원 의원의 뒤를 이어 두 번째 현 연회장에 취임했다.
2022년 8월 10일, 아베 신조 총격 사건의 발단이 된 구 통일교회 관련 의원 배제를 목적으로 내각 개조가 앞당겨져 제2차 키시다 제1차 개조내각이 발족하면서 방위대신에 다시 취임했다.
2023년 6월, 방위대신 겸임으로 인한 과로를 이유로 현 연회장을 사퇴했다. (후임은 사쿠라다 요시타카 중의원 의원) 같은 해 9월 내각 개조로 방위대신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12월 22일, 자민당 5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를 둘러싼 뒷돈 문제로 국회 대책 위원장을 사퇴한 타카기 코우의 후임으로 국회 대책 위원장에 다시 취임했다. 약 11년 만의 재취임이며, 과거 국회 대책 위원장 대리로서 지원했던 키시다 후미오에게 지명받는 형태가 되었다.
2024년 10월 27일,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1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 11월 13일, 중의원 의원 운영 위원장에 취임했다.
| 선거명 | 선거구 |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당락 | 비고 |
|---|---|---|---|---|---|---|
|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구 지바 3구 | 자유민주당 | 82,039 | 19.46% | 당선 |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02,570 | 54.04% | 당선 |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비례 남관동 블록 | 자유민주당 | 당선 | 코스타리카 방식 |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15,708 | 53.93% | 당선 |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43,780 | 57.62% | 당선 |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34,298 | 53.10% | 당선 |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39,935 | 65.18% | 당선 |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34,037 | 74.29% | 당선 | |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20,075 | 63.35% | 당선 |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23,210 | 64.01% | 당선 |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105,510 | 56.50% | 당선 |
2.4. 한국과의 관계
하마다 야스카즈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다. 그는 방위대신(국방부 장관에 해당)을 두 차례 역임하는 등 일본의 안보 정책에 깊이 관여해 왔다.
하마다 야스카즈는 2008년 아소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재임하던 중, 타모가미 토시오 항공막료장(공군 참모총장에 해당)이 "일본이 침략 국가였다는 것은 누명이다"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자, "정부견해와 다른 의견"이라며 경질했다. 이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2009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 "우리나라(일본) 영토 위를 날아가는 것을 발사하는 것은 매우 불쾌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고, 파괴 조치 명령 발령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3. 정책 및 입장
* 헌법 개정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한다.
* 아베노믹스를 평가한다.
* 원자력 발전은 일본에 필요하다.
* 헤이트 스피치의 법적 규제에 찬성한다.
*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문제 없다.
* 무라야마 담화("전후 50주년 종전 기념일에 즈음하여")는 재검토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고노 담화(위안부 관련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관방장관 담화)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에 대해 2001년에는 찬성했지만, 2014년 조사에서는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2021년 3월 자민당 유지들이 설립한 "선택적 부부 별성의 조기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의원 연맹"에서는 노다 세이코와 기시다 후미오 등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회장에 취임했다.
* "소비세 0% 검토"를 내건 「국민을 지키기 위한 '순수 100조 엔' 레이와 2년도 제2차 보정 예산을 향한 제언」에 동의하고 있다.
4. 논란
* 2009년(헤이세이 21년) 1월, 하마다의 정치자금 관리 단체인 "시코우카이"에서 비서 5명이 노동보험에 미가입 상태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하마다의 사무실에서는 "인식이 부족했다"며 사과하고 2008년(헤이세이 20년) 12월에 노동보험에 가입하여 2006년도(헤이세이 18년도)까지 소급하여 보험료를 납부했다.
* 2023년(레이와 5년) 3월, 하마다는 야마나시현의 사찰에서 열린 지인의 출가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반사회 세력의 전직 구성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같은 해 9월 8일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자 "사진 촬영을 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이 참석하고 있었는지 몰랐고, 면식도 없다. 하자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적받은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 일한의원연맹
* 재도전 지원 의원연맹
* 예외적으로 부부의 별성을 실현하는 모임
* TPP 협상에서 국가이익을 끝까지 지키는 모임
* 기인즈
* 일본의 산업 기반과 미래 전투기를 생각하는 연구회(회장)
* 무파벌 유지 모임(회장)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를 조기에 실현하는 의원연맹(회장)
6. 기타
* 하마다 야스카즈는 온화한 성격으로, 텔레비전 출연이나 언론 노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소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재직 시 안정된 국회 답변과 보도 대응으로 부처 내 평가는 높았지만, 발신력 부족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 방위 정무차관, 방위청 차관, 방위대신, 당 국방부 회장을 역임한 "신 국방족" 의원 중 한 명이다. 제1차 고이즈미 제1차 개조내각에서는 외교·안보 정책 라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신 국방족으로 분류되는 이시바 시게루 방위청 장관 밑에서 차관을 역임했다.
* 1994년 6월 29일, 하타 내각의 총사퇴에 따른 내각총리대신 지명선거에서 자민당, 사회당, 사키가케 신당 3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사회당 위원장을 지지했지만,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와타나베 미치오 등이 이에 반발했다. 하마다도 투표에서 반란을 일으켜, 구 연립여당 측이 지지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에게 투표했다(결선 투표에서 가이후는 무라야마에게 패배했다).
* 당선 후에는 와타나베 미치오도 소속되어 있던 나카소네파(정책과학연구소)에 소속되었지만, 1998년 12월 야마자키파(근미래정치연구회)가 분열했을 때 탈퇴했다. 또한 1기 위인 사쿠라이 이쿠조, 1기 아래인 야마구치 슌이치도 함께 탈퇴했다.
* 하야시 요시마사(보컬 & 피아노), 오코노기 하치로(보컬), 마쓰야마 마사시(보컬 & 기타)와 함께 "Gi!nz(기인즈)"라는 유닛을 결성하여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하마다는 보컬). 1998년 10월 발족 이후 각지에서 자선 콘서트 등을 계속하여, 2005년 1월에는 첫 번째 앨범 "GIIN-010"을 발매했다.
* 2014년 제186회 국회에서 과거에 국무대신, 부대신, 정무관, 보좌관, 중의원 의장, 부의장, 위원장 직책을 지낸 중의원 의원 중 질문, 의원입법, 질문주의서를 제출한 적이 없는 24명의 의원 중 한 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 당선 동기인 노다 세이코와 가깝고,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노다의 추천인 모집에 힘썼다. 2024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노다가 출마를 포기한 탓에 9명이 출마하는 혼란스러운 선거가 되었지만, 누구의 추천도 받지 않았다(노다는 고이즈미 신지로의 추천인이 되었다).
* 2009년 1월, 하마다의 정치자금 관리 단체인 "시코우카이"에서 비서 5명이 노동보험에 미가입 상태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하마다의 사무실에서는 "인식이 부족했다"며 사과하고 2008년 12월에 노동보험에 가입하여 2006년도까지 소급하여 보험료를 납부했다.
* 2023년 3월, 하마다는 야마나시현의 사찰에서 열린 지인의 출가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반사회 세력의 전직 구성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같은 해 9월 8일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자 "사진 촬영을 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이 참석하고 있었는지 몰랐고, 면식도 없다. 하자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적받은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선거명 | 선거구 | 정당 | 연령 | 득표수 | 득표율 | 정수 | 득표순 | 후보자 | 당락 |
|---|---|---|---|---|---|---|---|---|---|
|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구 지바 3구 | 자유민주당 | 37 | 82,039 | 19.46% | 5 | 2 | 7 | 당선 |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40 | 102,570 | 54.04% | 1 | 1 | 3 | 당선 |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비례 남관동 블록 | 자유민주당 | 44 | - | - | 21 | 1 | 6 | 당선 |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48 | 115,708 | 53.93% | 1 | 1 | 3 | 당선 |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49 | 143,780 | 57.62% | 1 | 1 | 3 | 당선 |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53 | 134,298 | 53.10% | 1 | 1 | 3 | 당선 |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57 | 139,935 | 65.18% | 1 | 1 | 3 | 당선 |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59 | 134,037 | 74.29% | 1 | 1 | 2 | 당선 |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62 | 120,075 | 63.35% | 1 | 1 | 4 | 당선 |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66 | 123,210 | 64.01% | 1 | 1 | 3 | 당선 |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지바 12구 | 자유민주당 | 69 | 105,510 | 56.50% | 1 | 1 | 4 |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