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요시마사
1. 개요
하야시 요시마사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이물산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야마구치현 선거구에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참의원 의원과 농림수산대신, 문부과학대신, 외무대신 등을 역임했으며, 2021년 중의원 의원으로 전향했다. 그는 외교, 안보,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며, 소비세 인상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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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林 芳正 (はやし よしまさ) |
|---|---|
| 출생일 | 1961년 1월 19일 |
| 출생지 | 시모노세키 |
| 배우자 | 유코 하야시 |
| 자녀 | 2명 |
| 공식 웹사이트 | 하야시 요시마사 중의원 의원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가토파 → 고가파 → 기시다파 → 무파벌) |
|---|---|
| 학력 | 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하버드 케네디 스쿨 졸업 (MPA) |
| 이전 직업 | 미쓰이물산, 산덴교통, 야마구치 합동 가스 직원, 하야시 요시로 중의원 의원 정책 비서 |
| 중의원 의원 | 야마구치 3구 (2021년 11월 3일 ~ 현재) |
|---|---|
| 참의원 의원 | 야마구치현 (1995년 7월 ~ 2021년 8월 16일) |
| 내각관방장관 | 제87-89대 (2023년 12월 14일 ~ 현재) |
|---|---|
| 겸임 | 오키나와 기지 부담 경감 담당 대신, 납치 문제 담당 대신 |
| 외무대신 | 제151대 (2021년 11월 10일 ~ 2023년 9월 13일) |
| 문부과학대신 | 제22-23대 (2017년 8월 3일 ~ 2018년 10월 2일) |
| 겸임 | 교육 재생 담당 대신 |
| 농림수산대신 | 제54·57대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9월 3일, 2015년 2월 23일 ~ 2015년 10월 7일)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재정정책) | (2009년 7월 2일 ~ 2009년 9월 16일) |
| 방위대신 | 제5대 (2008년 8월 2일 ~ 2008년 9월 24일) |
| 학위 | 법학사 (도쿄 대학, 1984년), 공공 경영학 석사 (하버드 대학교, 1994년) |
|---|
| 아버지 | 하야시 요시로 (전 중의원 의원) |
|---|---|
| 어머니 | 하야시 마리코 |
| 자매 | 하야시 레이코 |
| 조부 | 하야시 가이스케 (전 중의원 의원) |
| 고조부 | 하야시 헤이시로 (전 귀족원 의원, 전 중의원 의원) |
| 외삼촌 | 히로세 가쓰사다 (전 오이타현 지사) |
| 종제 | 히로세 다쓰루 (중의원 의원) |
| 증조부 | 다와라다 아키라 (우베 흥산 창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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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농림수산대신 -
하타 쓰토무
하타 쓰토무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농림수산대신, 대장대신 등을 거쳐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자민당을 탈당 후 신생당을 창당,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짧은 수상 임기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
일본의 농림수산대신 -
가노 미치히코
가노 미치히코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자유민주당에서 활동하며 운수성 정무차관, 농림수산대신 등을 지냈고, 여러 정당을 거쳐 간 나오토 내각과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농림수산성 장관을 세 차례 역임했으며, 농림수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
일본의 문부과학대신 -
다나카 고타로
다나카 고타로는 일본의 법학자이자 판사로,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상법 연구와 정치 활동을 거쳐 최고재판소 장관과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했으며, 1974년에 사망했다. -
일본의 문부과학대신 -
가와무라 다케오
가와무라 다케오는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졸업하고 야마구치현 의회 의원과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으며, 문부과학대신과 내각관방장관,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지냈으나 정치자금 문제 등 논란 속에 2021년 정계를 은퇴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1961년 출생 -
박래군
박래군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생 박래전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 운동에 참여하여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및 정책실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국 국장, 다산인권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및 소장, 서울특별시 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부위원장, 2014년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이다. -
1961년 출생 -
이진숙 (언론인)
이진숙은 문화방송의 기자 및 간부로 활동하다가 대전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했고, 걸프 전쟁 등 다양한 보도 활동을 펼쳤으며,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2024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직무가 정지되었다.
2. 생애
도쿄도에서 통상산업성 관료인 하야시 요시로의 장남으로 태어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자랐다. 1984년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쓰이물산에 입사했다. 1992년 9월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12월 부친이 미야자와 개조 내각에서 대장상에 취임하자 대학원을 휴학하고 귀국해 비서직을 수행했다.
1995년 제17회 참의원 의원 선거에 자유민주당 공인으로 야마구치현에서 출마해 당선된 후, 2001년 제19회, 2007년 제21회, 2013년 제23회, 2019년 제25회 참의원 의원 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며 5선 참의원 의원을 지냈다. 참의원 외교방위위원장, 정부 개발 원조 등에 관한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개조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첫 입각했으나, 한 달여 만에 퇴임했다.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5명 중 최하위로 낙선했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어 2014년 9월까지 재임했고, 2015년 2월에 다시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제3차 아베 제3차 개조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에 취임했다.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야마구치현 제3구에서 입후보하며 참의원 의원을 사임하고,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된 후 야마구치 3구 공천을 받아 해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21년 11월,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대신에 취임,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직을 사임했다. 2022년 4월, 미국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을 시찰했고, 7월에는 한국의 박진과 한일 외상 회담을 열어 징용공 문제의 조기 해결에 대해 일치했다. 2023년 9월 개각에서 내각관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61년 1월 19일 도쿄도에서 통상산업성 관료 하야시 요시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성장했다. 1979년 시모노세키니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에 입학했다. 1984년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대학 합창단과 록 밴드 멤버로 활동했다.
1984년 미쓰이물산에 입사했으며, 니카라과에 잠시 파견되어 담배 계약을 갱신하면서 니카라과 혁명의 영향을 접했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정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89년 미쓰이물산을 퇴사하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92년 9월,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가 미야자와 개조 내각에서 대장상에 취임하자 케네디 스쿨을 휴학하고 귀국하여 대장상 비서관을 맡았다. 1994년 2월 케네디 스쿨에 복학하여 같은 해 6월 졸업했다.
2.2. 정치 경력
하야시 요시마사는 1992년 12월 미야자와 내각 1차 개각에서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가 재무대신으로 임명되면서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5년 참의원에 처음 당선된 그는 가문의 4대 정치인이다. 정치 경력 초기에 행정 및 세제 개혁에 집중했다.
자유민주당 내 온건 보수적 견해를 가진 고치카이 파벌에 합류했는데, 이 파벌은 전통적으로 경제 번영, 자유주의적 가치, 국제 협력을 강조하고 민족주의에 대한 의존을 반대했다. 그의 아버지와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 모두 이 파벌에 속했다. 오부치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역임하던 미야자와 아래에서 1999년 10월 재무정무차관으로 임명되었다.
2008년 8월 1일 후쿠다 야스오 내각 개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처음 내각에 임명되었으나, 곧 하마다 야스카즈로 교체되었다. 2009년 총선 이후에는 그림자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지만, 아베 신조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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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에 임명되어 2014년 9월까지 역임했다. 이후 니시카와 코야의 사임으로 2015년 2월에 다시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 제3차 아베 제3차 개조 내각에서 문부과학대신에 취임하여, 2018년 3월 고등학교 학습 지도 요령을 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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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야마구치 3구에서 입후보할 의향을 표명하고, 참의원 의원을 사임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된 후, 하야시는 야마구치 3구 공천을 받았다. 이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야마구치 3구에 당선되었다.
2021년 11월,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대신에 취임하여,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직을 사임했다.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대사의 면회 요청이 1개월 동안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같은 해 4월, 미국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을 시찰했다. 7월에는 한국의 박진과 한일 외상 회담을 열어 징용공 문제의 조기 해결에 대해 일치했다. 11월에는 독일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 강화를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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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참의원 의원 시절
하야시는 1995년 제17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야마구치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1년 제19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재선, 2007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3선,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4선, 2019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5선에 성공하며 참의원 의원직을 역임했다.
하야시는 참의원 의원 시절 외교방위위원장, 정부 개발 원조 등에 관한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오부치 내각 및 제1차 모리 내각에서는 대장 정무 차관을, 제1차 아베 내각에서는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했다.
2008년 후쿠다 야스오 개조 내각에서 방위대신으로 첫 입각했으나,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사임으로 한 달여 만에 퇴임했다. 2009년 아소 내각에서는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 재정 정책)을 역임했다.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5명 중 최하위로 낙선했다.
2.2.2. 농림수산대신 및 문부과학대신
2012년 12월 26일에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에서 하야시는 농림수산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2014년 9월 3일 제3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기 전까지 농림수산대신 직책을 맡았다. 이후 니시카와 고야가 스캔들로 인해 사임하면서, 하야시는 2015년 2월 23일부터 2015년 10월 7일까지 농림수산대신으로 다시 재임했다. 국내 시장이 축소됨에 따라, 하야시의 지도력 하에 있는 많은 농업 정책은 산업을 더욱 수출 지향적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FBI' 전략을 추진했는데, 이는 해외에서 일본 으로부터의 정통 요리를 홍보하고, 일본 기업 에 의해 해외에서 식품 사업을 육성하며, 일본 에서 만들어진 식품을 수출한다는 의미였다. 2012년까지 연간 약 450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던 일본의 식품 수출은 2015년까지 745으로 증가했다.
2017년 8월 3일, 하야시는 제3차 아베 내각 개편에서 문부과학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같은 해 11월에 구성된 제4차 아베 내각에서도 문부과학대신 자리를 유지했으며, 2018년 10월 내각 개편까지 이 직을 수행했다.
2.2.3. 중의원 의원 전향
하야시는 2021년 7월 15일 기자 회견을 통해 그해 치러질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야마구치현 제3구에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참의원에서 중의원으로 전향할 것을 발표했다. 2021년 8월 16일 참의원 의원직을 사임했다.
당시 야마구치현 제3구의 현역 중의원 의원은 자민당 소속의 가와무라 다케오였는데, 가와무라는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고 있어 자민당 공천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21년 9월 29일, 고치카이파 소속이자 하야시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기시다 후미오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민당 야마구치현 연합은 하야시를 공천할 것을 요청했고, 아마리 아키라는 하야시가 가와무라보다 지역구에서 두 배 이상 인기가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가와무라를 설득했다. 결국 가와무라는 불출마를 결정했다.
이후 자민당 공천을 받은 하야시는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77%의 득표율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2.2.4. 외무대신 및 내각관방장관
2021년 11월,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대신에 취임했다. 같은 해 11월 11일 외무대신 취임 회견에서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직 사임을 표명했다. 2022년 4월, 하야시는 브뤼셀에서 열린 NATO 외무 장관 회의에 참석한 최초의 일본 외무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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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정세의 긴박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코르순스키 주일본 대사가 하야시 요시마사에게 면회를 요청했지만, 약 1개월 동안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민민주당 가와이 다카노리 의원의 질의로 밝혀졌다. 하야시는 "본인은 대사의 면회 요청을 알지 못했다"라고 해명했고, 가와이는 "외무성이 마음대로 막고 있었다면, 이것은 현저한 월권 행위이다"라고 추궁했다. 하야시와 코르순스키는 3월 2일 저녁에 면회했다.
같은 해 4월 23일, 에마뉴엘 주일 미국 대사와 함께 미국 해군의 원자력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을 시찰했다. 아쓰기 기지에서 MV-22에 탑승해 태평양 상에 전개된 해당 함을 방문했다.
같은 해 7월 18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조문 외교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의 박진과 한일 외상 회담을 열어, 징용공 문제의 조기 해결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8월에는 아세안 관련 외상 회의 참석차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했다. 8월 4일, 방문지인 프놈펜에서 전달에 이어 한일 외상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 등에 대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2022년 11월 2일부터 6일까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독일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 강화를 도모했다. 체류 중 독일 안나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과 회담하여 안보 협력, 경제적 파트너십, 우크라이나 분쟁의 영향 등을 논의했다. 하야시 대신은 유엔과 G7 등 다자간 포럼에서의 협력 및 일본과 독일의 경제·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방문은 양국의 규칙 기반 국제 질서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공통된 노력을 명확히 했다.
2023년 9월 개각에서 하야시는 내각을 떠나 자유민주당 세제조사회 소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지만, 12월 마쓰노 히로카즈의 사임 이후 내각관방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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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일, 하야시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1차 투표에서 8.84%의 득표율로 4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이후 신임 총리 이시바 시게루는 하야시를 내각관방장관으로 유임시켰다.
3. 정책 및 주장
하야시 요시마사는 소비세 인상에 긍정적이다. 2014년 4월로 예정되었던 소비세 8% 인상에 대해 "예정대로 인상해야 한다"고 답변했고, 2019년 10월로 예정되었던 10% 인상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인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재정 건전화와 프라이머리 밸런스 흑자화를 강조했다. 2015년에는 재정 재건 관련 국회 논의 활성화를 위해 국회에 경제·재정 관련 독자적 조사 기능 설치를 위한 의원 입법을 검토했고, 2021년에는 국가 지출 감시 독립 기관 설치를 목표로 하는 초당파 의원 연맹의 공동 대표 발기인이 되었다. 재정 재건에 대해서는 "너무 좋은 이야기는 미심쩍다"며 적극적 재정 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정부 채무의 실질적 감소를 목표로 하는 심스 이론은 비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보였고, "프라이머리 밸런스의 흑자화를 달성하고, 항상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 재건의 열쇠로 '모노즈쿠리(제조)'와 스타트업 기업 육성을 주장하며,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소득 배증 계획을 본받아 레이와 시대 일본이 목표로 해야 할 "큰 틀"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하며, 동성혼을 법률에 명기하는 것에 다소 반대한다.
3.1. 외교 및 안보
*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것에 다소 찬성한다.
* 코로나19이 확산되는 북한에 대해 국교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할 수 없다며 지원 의향을 밝혔다.
*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을 맡는 등 일각에서는 "친중파"라고도 불리지만, 본인은 "지중파"를 자처하며, "미국 내에서 친일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중파여도 괜찮다. 친중은 안 된다"고 말했다. 2019년 5월,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으로 방중했을 때 하야시는 "지난 1년은 중일 관계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인 1년이 되었다. 현재의 중일 관계는 바로 '레이와'라는 연호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운 '화'가 있다는 상황이 되었다. 중일 양측 관계자들의 노력의 축적이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제2차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취임함에 따라 "직무 수행에 있어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을 사임했다.
* 2022년 5월, 하야시는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방한하여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이후 외교부 장관 취임)와 회담하여 어려운 지역 정세 속에서 조속한 양국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일치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대해 협의했다. 또한 하야시는 선물로 하모니카를 선물한 것을 박진이 6월 9일에 밝혔다.
3.2. 경제 및 재정
하야시 요시마사는 소비세 인상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4년 4월로 예정되었던 소비세 8% 인상에 대해 "예정대로 인상해야 한다"고 답변했고, 2019년 10월로 예정되었던 10% 인상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인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재정 건전화와 프라이머리 밸런스 흑자화를 강조했다. 2015년에는 재정 재건 관련 국회 논의 활성화를 위해 국회에 경제·재정 관련 독자적 조사 기능 설치를 위한 의원 입법을 검토했고, 2021년에는 국가 지출 감시 독립 기관 설치를 목표로 하는 초당파 의원 연맹의 공동 대표 발기인이 되었다. 재정 재건에 대해서는 "너무 좋은 이야기는 미심쩍다"며 적극적 재정 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정부 채무의 실질적 감소를 목표로 하는 심스 이론은 비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보였고, "프라이머리 밸런스의 흑자화를 달성하고, 항상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 재건의 열쇠로는 '모노즈쿠리(제조)'와 스타트업 기업 육성을 주장한다.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소득 배증 계획을 본받아 레이와 시대 일본이 목표로 해야 할 "큰 틀"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3.3. 기타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 동성혼을 법률에 명기하는 것에 다소 반대한다.
4. 가족 및 친족
하야시 가문은 "오쓰야"라는 상호로 시모노세키시에서 대대로 간장 양조업을 운영했다. 버스 사업자인 산덴 교통, 일반 가스 사업자인 야마구치 합동 가스 (모두 본사는 시모노세키 시) 등의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오쓰야의 기원은 1717년이며, 1781년부터 1789년까지 덴메이 연간에 초대 헤이지로가 무카이쓰구에서 아카마세키(현재의 시모노세키)로 이주했다. 『간몬 와카쿠라 정화 제1편』에 따르면 "헤이지로는 가난에서 시작하여 천금을 모으고 쌀, 전당 두 가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메이지 초기에 호적 제도가 실시되면서 하야시 성을 사용했다.
* 고조부: 하야시 헤이시로 - 하야시 가 4대. 중의원 의원, 귀족원 의원, 자산가이며, 오쓰야 본점, 슌판로, 생납 간장 양조업 및 요리 여관업을 운영했다. 1941년 12월 11일 사망. 정5위를 추증받았다.
* 증조부: 하야시 초고로 - 하야시 헤이시로의 장남.
* 조부: 하야시 요시스케 - 실업가, 중의원 의원 (일본진보당).
* 부친: 하야시 요시로 -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후생 대신 (제1차 나카소네 내각) · 대장 대신 (미야자와 개조 내각) 역임.
* 모친: 하야시 마리코 - 조부가 우베흥산 사장 다와라다 아키라 (다와라다 가문의 옛 저택을 우베 사무소로 사용). 부친은 우베흥산 부사장 다와라다 히로오 (미쓰이 광산에서 이사를 지낸 조쿠 사이키치의 차남으로, 우베흥산 사장 다와라다 아키라의 데릴사위). 조선 출신 음악 평론가 조쿠 게이세이 (구 성명: 박계성)는 처남.
* 숙부: 하야시 고스케 - 산덴 교통 이사회 회장, 산요 자동차 학교 상담역, 야마구치현 버스 협회 회장 이사, 오쓰야 전 대표 이사 사장.
* 사촌: 하야시 슌사쿠 - 숙부 하야시 고스케 장남. 오쓰야 대표 이사 사장, 야마구치현 PTA 연합회 회장.
* 여동생: 하야시 레이코 -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부소장
* 남동생: 하야시 테쓰로 - 미쓰이물산 근무
* 아내: 하야시 히로코 - 야마구치 대학대학원기술경영연구과 특명 교수
* 장녀: 아쓰코 (1994년생)
* 차녀:
* 외조부: 다와라다 히로오 - 우베흥산 부사장.
* 외숙부: 히로세 가쓰사다 - 전 오이타현 지사(공선 제15-19대).
* 히로세 미치사다 - 주식회사 TV 아사히 고문. 제13대 일본민간방송연맹(민방련) 회장.
* 히로세 사다오 - 후지 방적 전 대표이사 사장.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 국제 연합 식량 농업 기구(FAO) 의원 연맹 회장
*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 일중 우호 의원 연맹 전 회장
6.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95년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야마구치현 | 자유민주당 | 287,099표 | 46.10% | 1위 | 당선 | |
| 2001년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야마구치현 | 자유민주당 | 428,122표 | 61.40% | 1위 | 당선 | |
| 2007년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야마구치현 | 자유민주당 | 419,947표 | 56.73% | 1위 | 당선 | |
| 2013년 제23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야마구치현 | 자유민주당 | 455,546표 | 79.36% | 1위 | 당선 | |
| 2019년 제2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야마구치현 | 자유민주당 | 374,686표 | 69.97% | 1위 | 당선 | |
| 2021년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야마구치현 제3구 | 자유민주당 | 96,983표 | 76.94% | 1위 | 당선 | |
|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야마구치현 제3구 | 자유민주당 | 115,687표 | 69.67% | 1위 | 당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