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르트 빌더르스
1. 개요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1963년 9월 6일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정치인이다. 1997년 위트레흐트 시의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여, 자유민주국민당(VVD)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탈당 후 2004년 자신의 정당인 자유당(PVV)을 창당했다. 그는 유럽 회의론자, 친이스라엘 성향, 반이슬람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특히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로 알려져 있다. 2023년 총선에서 자유당을 제1당으로 이끌었으며, 현재 네덜란드 정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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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헤이르트 빌더르스 |
|---|---|
| 출생일 | 1963년 9월 6일 |
| 출생지 | 페ンロー, 네덜란드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거주지 | 헤이그 |
| 배우자 | 크리스티나 마르파이(1992년 결혼) |
| 모교 | 네덜란드 오픈 대학교 |
| 웹사이트 | 헤이르트 빌더르스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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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1 | 자유당 대표 |
|---|---|
| 임기 시작 1 | 2006년 2월 22일 |
| 전임자 1 | 직책 설립 |
| 직책 2 | 하원 내 자유당 대표 |
| 임기 시작 2 | 2006년 11월 23일 |
| 전임자 2 | 직책 설립 |
| 직책 3 | 하원 의원 |
| 임기 시작 3 | 2002년 7월 26일 |
| 임기 시작 4 | 1998년 8월 25일 |
| 임기 종료 4 | 2002년 5월 23일 |
| 현재 정당 | PVV(2006년-현재) |
|---|---|
| 과거 정당 | 자유민주국민당(1989년-2004년) 무소속(2004년-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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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불가지론자 -
빌럼 드레이스
빌럼 드레이스는 네덜란드의 정치인으로, 사회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며 하원 의원, 총리를 역임했고 탈식민지화, 경제 재건, 복지 국가 설립에 기여했다. -
네덜란드의 활동가 -
테오 반 고흐 (영화 감독)
네덜란드의 영화 감독이자 텔레비전 프로듀서, 신문 칼럼니스트인 테오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화상 테오 반 고흐의 증손으로, 사회 문제 비판과 이슬람 비판 활동을 펼치다 2004년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
네덜란드의 활동가 -
오라녜나사우 공자빈 마벌
오라녜나사우 공자빈 마벌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회 활동가로, 인권 운동에 기여하며 요한 프리소 왕자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 -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 -
자유당 (네덜란드)
2006년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창당한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자유주의와 대중주의를 표방하며 반이슬람, 반EU 성향을 보이는 정당으로, 2023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었고 2024년 연립정부에 참여했으며, 당원은 당수인 빌더스 1명뿐이다. -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 -
개혁정치당
개혁정치당은 1918년 헤릿 헨드릭 케르스텐 목사에 의해 창당된 네덜란드의 개혁 근본주의 정당으로, 네덜란드 성경 벨트 지역의 경건주의적 개혁교회 신자들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하며, 하원과 유럽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경력
1963년 9월 6일 펜로에서 인쇄 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란서 오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청년 시절 이스라엘에서 2년간 거주했으며, 현재까지 40번이나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1997년 자유민주국민당 소속 위트레흐트 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시의원 시절, 폭한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다.
1998년 자유민주국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2.1. 출생 및 가족 배경
1963년 9월 6일, 네덜란드 림뷔르흐주 펜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쇄 및 복사 제조업체 오세의 매니저였던 요하네스 헨리쿠스 안드레아스 빌더르스이고, 어머니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현재 인도네시아) 수카부미 출신의 마리아 안네 오르딩이다. 어머니는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의 혼혈이었다. 그는 4남매 중 막내였으며,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다.
2.2. 교육
펜로에서 Mavo와 Havo 중등 교육을 받았다. 암스테르담의 Stichting Opleiding Sociale Verzekeringen에서 건강 보험 과정을 수강했고, 네덜란드 열린 대학교에서 여러 법학 자격증을 취득했다.
2.3. 이스라엘 경험
빌더르스는 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가고 싶었으나, 돈이 부족하여 이스라엘로 갔다. 서안 지구의 토메르라는 모샤브에서 1년 동안 자원 봉사했다. 그는 저축한 돈으로 인접한 아랍 세계 국가들을 여행했고, 이 지역의 민주주의 부재에 감명을 받았다.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에도 대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방식과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연대감"을 유지했다.
2.4. 초기 정치 경력
1997년 빌더르스는 네덜란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위트레흐트 시의회 의원으로 자유민주국민당(VVD)에서 선출되었다. 그는 저렴한 사회 주택과 높은 아파트 블록이 있는 교외 지역인 카날레네일란트에 살았는데, 이 지역은 비교적 많은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시의원 시절, 빌더르스는 자신의 동네에서 강도를 당했는데, 일부에서는 이것이 그의 정치적 변환을 촉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1998년 자유민주국민당 소속으로 네덜란드 국회에 선출되었지만, 처음 4년 동안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3. 정치 경력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1997년 자유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위트레흐트 시의원이 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시의원 시절, 자신의 동네에서 폭한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1998년 자유민주국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2004년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탈당하고 자유당을 창당했다.
2008년에는 반이슬람 단편 영화 《피트나》를 제작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4년 지방 선거 연설에서 "모로코인이 늘어나는 것과 줄어드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습니까?"라는 발언으로 인종 차별 논란을 일으켜 기소되었고, 2016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7년3월 15일 총선에서는 마르크 뤼터와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자유당은 제2당에 머물렀다. 2023년11월 22일 총선에서 자유당은 37석을 확보하여 제1당이 되었으나, 빌더르스는 연립 정부 구성의 어려움을 이유로 총리직을 포기했다. 2024년 7월 2일 자유당 등이 참여하는 연립 정권이 발족했으며, 빌더르스는 입각하지 않았지만 제1당 대표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3.1. 자유민주국민당(VVD) 시절
1997년, 빌더르스는 네덜란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위트레흐트 시의회 의원으로 자유민주국민당 (VVD)에서 선출되었다. 그는 저렴한 사회 주택과 높은 아파트 블록이 있는 교외 지역인 카날레네일란트에 살았는데, 이 지역은 비교적 많은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시의원 시절, 빌더르스는 자신의 동네에서 강도를 당했는데, 일부에서는 이것이 그의 정치적 변환을 촉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1년 후, 그는 네덜란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국회에서의 첫 4년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 VVD의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빌더르스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솔직한 비판으로 더 유명해졌다. 빌더르스가 대부분의 당원보다 우익에 가깝다는 것이 알려졌고, 공개 발언에서 당론에 도전하면서 당내 긴장이 즉시 고조되었다. 2004년 9월, 1989년부터 당원이던 빌더르스는 VVD를 탈당하여 자신의 정당인 그루프 빌더르스를 결성했고, 이후 자유당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VVD 당론과의 핵심 쟁점은 터키와의 유럽 연합 가입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었다.
3.2. 자유당(PVV) 창당 및 활동
2004년 9월, 빌더르스는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 협상에 대한 자유민주국민당(VVD)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아 당내 갈등을 겪고 VVD를 탈당했다. 이후 그는 '흐루프 빌더르스(Groep Wilders)'를 결성했고, 이는 나중에 자유당(PVV)으로 개칭되었다.
자유당은 160억 유로의 감세, 오락성 약물 사용에 대한 엄격한 정책, 도로 및 기반 시설 투자 확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동물 권리의 네덜란드 헌법 포함 등을 주장했다. 2006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자유당은 150석 중 9석을 얻었다.
2010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PVV는 24석을 확보하여 제3당이 되었다. 이후 PVV는 VVD와 기독교 민주당(CDA) 연립 정부를 국회에서 지원하는 협정을 맺었다.
2012년 4월, 빌더르스는 긴축 조치에 대한 반대로 연정 지지를 철회했고, 이는 조기 총선으로 이어졌다. 2012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PVV는 15석을 얻었다.
2014년 지방 선거에서 빌더르스는 "모로코인 감소"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는 재판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201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PVV는 4석을 확보했다.
2017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PVV는 20석을 얻어 제2당을 유지했다. 2021년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17석을 확보했다.
2023년 네덜란드 총선에서 PVV는 37석을 확보하여 제1당이 되었다. 이후 빌더르스는 연립 정부 구성 협상 과정에서 총리 후보직을 철회했다. 자유당(PVV)은 자유민주국민당(VVD), 새로운 사회 계약(NSC), 농민-시민 운동(BBB)과 연립 정부를 구성했다. 딕 스호프가 총리로 선출되었고, 그의 내각은 2024년 7월 2일에 취임했다.
4. 정치적 입장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유럽 회의론자로, 우익 또는 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빌더르스 본인은 요르크 하이더나 장마리 르 펜과 같은 파시스트로 분류되는 것을 강하게 부정한다.
빌더르스는 반이슬람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정치 이념으로 규정한다. 그는 모스크와 마드라사의 폐쇄 및 신규 건설 금지, 급진적 무슬림의 국외 추방 등을 주장한다.
또한, 빌더르스는 "이스라엘은 서방 국가의 첫 번째 방위선이다"라고 언급하며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인다.
그는 소셜 미디어 활용, 독특한 헤어스타일, 기득권층 타도, 이슬람교도 배척, 보호 무역 등을 주장하며,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들의 것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4.1. 이슬람에 대한 입장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이슬람을 종교가 아닌 전체주의적 정치 이념으로 규정하고, 파시즘 및 공산주의와 비교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코란을 "파시스트 서적"으로 비판하며 네덜란드 내 판매 금지를 주장하고, 무함마드를 "악마"로 지칭한다.
또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에 "머리 가리개 세금" 부과를 제안하고, 모든 무슬림 이민 중단 및 정착 이민자 송환을 주장한다. 2008년에는 반이슬람 단편 영화 "피트나(Fitna)"를 제작했다.
4.2. 유럽 연합(EU)에 대한 입장
빌더르스는 강경한 유럽 회의론자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유럽 연합 탈퇴(Nexit)를 주장하며 국민투표를 요구해 왔다. 또한 유럽 연합의 권한 축소 및 해체를 주장한다. 다만, 2023년 총선 이후 이러한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4.3.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에 대한 입장
빌더르스는 친이스라엘 성향으로, 이스라엘을 "서방의 첫 번째 방어선"이라고 칭한다. 그는 요르단을 팔레스타인 국가로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요르단강 서안 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및 합병을 지지한다. 2024년 12월에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둘러보고 이츠하크 헤르조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기도 했다. 이 방문은 국제형사재판소 (ICG)가 네타냐후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지 몇 주 후에 이루어졌으며, 빌더르스는 이에 대해 "세상이 미쳐 돌아갔다"라고 비판했다.
4.4.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초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애국자"이자 테러와의 전쟁 동맹으로 묘사하며 유럽 연합-우크라이나 연합 협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2018년에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러시아 고위 관리들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러시아를 비난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는 반대하며, 네덜란드의 국방력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4.5.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에 대한 입장
빌더르스는 유럽의 성소수자(LGBT) 커뮤니티가 이슬람 세계로부터의 대규모 이민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며, 이를 네덜란드의 관용 가치 중 일부로 간주한다. 또한, 그는 "깨어있는 의식(woke) 주입"을 비판한다.
4.6. 기타 입장
빌더르스는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럽 회의론자로 분류되며, 일반적으로 우익·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5. 논란 및 비판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2009년 빌더르스는 자신의 평판에 대해 "네덜란드인의 절반은 나를 좋아하고, 나머지 절반은 나를 싫어한다. 그 중간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극명하게 의견이 갈린다.
그는 포퓰리스트, "극우", 극우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빌더르스 자신은 이러한 평가를 "스캔들"이라며 강하게 부인한다. 2023년 BBC는 빌더르스를 "과격하고 급진적"이지만 사적으로는 "상냥하다"고 묘사하며, 그가 많은 정치적 반대자들과 잘 지낸다고 주장했다.
빌더르스는 공포와 분노를 이용해 인기를 얻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이민의 문제점과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구 가치관의 "양립 불가능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옹호를 받기도 한다.
2011년 10월, 자유민주국민당 (VVD) 출신 은퇴 정치인이자 빌더르스의 '멘토'였던 프리츠 볼케스타인은 "빌더르스는 옳지 않은 말을 하고, 과장한다"며 부르카 금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일부 무슬림들은 빌더르스가 쿠란 구절을 문맥에서 벗어나 사용하고, 원래 의미와 다르게 조작한다고 비판한다. 빌더르스는 이슬람 혐오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나는 무슬림을 혐오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책과 이념을 혐오한다"고 답했다.
몬트리올 가제트, 월스트리트 저널, 가디언, 뉴욕 타임스는 빌더르스가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쿠란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2월, 빌더르스는 그의 정당이 동유럽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한 후 반폴란드 정서를 보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웹사이트는 네덜란드 주재 폴란드 대사관의 폐쇄 요청과 루마니아 대사관의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3월, 지방 선거 유세에서 "모로코인 감소"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여러 당 관계자들이 사임했다. 많은 정치인이 이 사건을 비난했고, '여기서 태어났습니다'라는 소셜 미디어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2016년 12월 9일, 법원은 이 발언이 "차별을 선동한 죄"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지만, "혐오 선동"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2014년 5월, 네덜란드 외무 장관 프란스 티머만스는 빌더르스의 반 이슬람 스티커를 비난하며 "네덜란드는 단일 의원의 미성숙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외교 기밀 유출에서 빌더르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보고되었으며,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조장한다"고 묘사되었다.
2011년 7월, 2011년 노르웨이 테러를 저지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빌더르스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지만, 빌더르스는 즉시 거리를 두었다.
2015년 7월, 비엔나 검찰청은 빌더르스가 코란을 나의 투쟁에 비유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시작했다.
2020년 10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빌더르스를 고소했고,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이를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며 비판했다.
5.1. 국제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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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르스는 국제적인 반지하드 운동의 일원으로 여겨지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반 지하드 정치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유럽 전역에서 주요 반 지하드 기수이며... 북미의 캠페인 조직에서 환영받는 인물"로 묘사된다.
2010년 7월, 빌더르스는 "이슬람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단체와 개인의 네트워크인 국제 자유 연합(International Freedom Alliance, IFA)을 발표했다. 빌더르스는 2010년 말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 IFA 지부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이슬람을 멈추고 자유를 옹호하라"는 메시지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서구 세계 전체에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단체에 극우 극단주의자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 8월, 빌더르스는 9.11 테러 10주년 기념일에 뉴욕에서 열리는 Park51 계획 반대 집회에서 연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집회는 미국의 이슬람화 중단이 조직했다.
2015년 5월, 빌더르스는 텍사스주 가랜드에서 열린 무함마드 묘사 그림 전시회에 초청되었다. 행사 막바지에 두 명의 무장 괴한이 커티스 컬웰 센터 공격을 벌였다.
2012년, 빌더르스는 호주 Q 협회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비자 발급이 지연되어 2013년 2월로 연기되었다.
2010년 3월, 빌더르스는 독일 몬샤우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빌더르스를 초청한 르네 슈타트케비츠는 CDU에서 제명되었다. 2015년 4월, 빌더르스는 드레스덴에서 페기다를 위한 연설을 했다.
;입국 금지
말콤 피어슨, 래노크 남작 피어슨 경과 캐롤라인 콕스, 콕스 남작 부인은 2009년 2월 12일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열리는 피트나 시사회에 빌더르스를 초청했다. 그러나 시사회 이틀 전, 내무장관 재키 스미스는 빌더르스를 입국 금지 인물로 규정하고 영국 입국을 금지했다. 빌더르스는 금지령을 무시하고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으나, 영국 국경 관리청에 의해 구금되어 추방되었다.
;금지령 철회
2009년 10월, 영국의 이민 재판소는 빌더르스에 대한 입국 금지령을 철회했다. 빌더르스는 이 판결을 "언론의 자유의 승리"라고 칭찬했다.
;방문
2009년 10월 16일, 빌더르스는 영국에 도착했다. 2010년 1월, 빌더르스는 영국 독립당 (UKIP)의 피어슨 경과 무소속 콕스 남작 부인에 의해 그의 반 코란 영화 피트나를 영국 상원에서 상영하도록 다시 초청받았다. 빌더르스는 이 초대를 받아들였고, 3월 5일 상원에서 영화 상영에 참석했다.
6. 개인사
빌더르스는 엘제비어 주간지의 프로필에서 20세에 짧은 결혼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1992년 7월부터 헝가리 출신의 전 외교관이자 유대인 혈통인 크리스티나 빌더르스(결혼 전 성씨: 마르파이)와 결혼했다.
빌더르스는 불가지론자이지만, 기독교인들이 "나의 동맹"이며 근본적으로 같은 것을 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머리를 과산화물-백금 금발로 탈색 및 염색해왔으며, 보안 문제로 중단되기 전까지 위트레흐트 중앙역 근처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머리가 희게 세면서 빌더르스의 검은 뿌리가 덜 보이게 되었다. 그의 화려한 백금 금발 헤어스타일 때문에 "모차르트"와 "캡틴 과산화수소"와 같은 별명을 얻었다. 라디오 네덜란드는 그를 "마릴린 먼로 이후 가장 유명한 탈색 금발"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 혼혈이며, 빌더르스의 금발은 염색한 것이다.
6.1. 신변 위협 및 경호
2004년 11월 10일, 헤이그의 한 건물에서 수류탄 3개를 소지한 두 명의 용의자가 체포되었는데, 이들은 헤이르트 빌더르스와 아야안 히르시 알리를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빌더르스는 생명에 대한 잦은 위협으로 인해 지속적인 경호를 받고 있다. 2008년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협받는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빌더르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으로 인해 약 6명의 사복 경찰관으로 구성된 상시 경호팀의 경호를 받으며, 패닉 룸이 있는 안전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방탄 차량을 이용하고 방탄 조끼를 착용하며, 그의 사무실은 네덜란드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가장 고립된 구석에 위치해 있다.
2010년에는 잡지 HP-De Tijd의 저널리스트가 보안 침해를 폭로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네덜란드 군사 경찰의 특수 보안 임무 여단이 빌더르스의 사무실에 무기를 밀반입하는 데 성공하는 등 보안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 9월, 인터넷 채팅방에서 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설교자 페이즈 모하마드는 빌더르스를 참수하라고 촉구했으며, 안와르 알 아울라키는 인스파이어 잡지에 빌더르스를 포함한 "살해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파키스탄 남성 주나이드 I.가 빌더르스에 대한 위협적인 내용의 동영상을 게시한 후 체포되어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빌더르스는 2022 BJP 무하마드 발언 논란 이후 누푸르 샤르마가 언급된 내용으로 인해 수백 건의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