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년
1. 개요
169년은 후한 건녕 2년으로, 기유년에 해당한다. 주요 연호로는 고구려 신대왕 5년, 신라 아달라왕 16년, 백제 초고왕 4년 등이 있다. 주요 사건으로는 로마 황제 코모두스의 단독 집정관 취임, 제노비아의 반란, 후한 영제의 즉위, 게르만족과 무어인의 로마 제국 침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로마 황제 즉위 등이 있었다. 또한, 후한에서는 두무의 환관 제거 시도가 실패하고 당인들이 탄압받는 제2차 당고의 금이 발생했다. 이 해에는 루키우스 베루스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가 사망했으며, 진구 황후와 장료가 태어났다.
2. 연호
* 후한(後漢) 건녕(建寧) 2년
* 간지 : 기유
* 일본
성무 천황 39년
황기 829년
* 고구려 : 신대왕 5년
* 신라 : 아달라왕 16년
* 백제 : 초고왕 4년
* 단기 2502년
* 불멸기원 : 712년
* 유대력 : 3929년 - 3930년
3. 기년
* 후한 영제 2년
* 신라 아달라 이사금 16년
* 고구려 신대왕 5년
* 백제 초고왕 4년
* 간지 : 기유
* 일본
성무 천황 39년
황기 829년
* 중국
** 후한 : 건녕 2년
* 단기 2502년
* 불멸기원 : 712년
* 유대력 : 3929년 - 3930년
4. 사건
* 1월 1일 - 로마 제국의 황제 코모두스가 단독으로 집정관이 되었다.
* 팔미라의 왕 오데나투스의 아내 제노비아가 안티오크에서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
* 중국 후한 왕조에서 영제가 즉위했다.
* 페르티낙스가 알리피우스를 이어 비잔티움의 주교가 된다.
*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가 안티오키아 교회의 총대주교가 된다.
* 게르만족이 마르코만니 전쟁을 일으켜 로마 제국의 변경, 특히 라에티아와 모이시아 속주를 침략했다.
*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현재의 스페인을 침략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루키우스 베루스의 사망으로 유일한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딸 루킬라를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 갈레노스가 다시 로마로 완전히 이주했다.
* 후한의 실권자 두무(竇武)는 167년에 있었던 당인(黨人)의 금고(禁錮)를 해제하고 청류당 사람들을 등용하여 환관을 일소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이 누설되어 환관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두무는 자살했다. 이응 등 당인들은 다시 붙잡혔다.
* 당인(黨人) 중 하나인 장검(張儉)은 후람(侯覽)과의 불화로 역도의 수괴로 모함받았다.
* 당시 대장추(大長秋)였던 조절과 장양 등 환관은 영제를 부추겨 이응을 포함한 당인 백여 명을 죽였다. 이때 1백여 명이 죽고, 6백~7백 명이 사죄(死罪), 유죄(流罪), 금고(禁錮) 처분을 받았다. 제2차 당고로 청류당은 탄압받아 해체되고, 환관의 전제가 확립되었다.(→제이차 당고의 금)
* 유교 학자들은 조정 환관들을 비난했고, 낙양에서 체포, 살해 또는 추방되거나, 당고의 금의 두 번째 사건 동안 관료 생활에서 추방되었다. 이는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184년까지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4.1. 로마 제국
게르만족이 마르코만니 전쟁을 일으켜 로마 제국의 변경, 특히 라에티아와 모이시아 속주를 침략했다.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현재의 스페인을 침략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루키우스 베루스의 사망으로 유일한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딸 루킬라를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갈레노스가 다시 로마로 완전히 이주했다.
4.2. 후한
후한의 실권자 두무(竇武)는 167년에 있었던 당인(黨人)의 금고(禁錮)를 해제하고 청류당 사람들을 등용하여 환관을 일소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이 누설되어 환관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두무는 자살했다. 이응 등 당인들은 다시 붙잡혔다. 당인(黨人) 중 하나인 장검(張儉)은 후람(侯覽)과의 불화로 역도의 수괴로 모함받았다. 당시 대장추(大長秋)였던 조절과 장양 등 환관은 영제를 부추겨 이응을 포함한 당인 백여 명을 죽였다. 이때 1백여 명이 죽고, 6백~7백 명이 사죄(死罪), 유죄(流罪), 금고(禁錮) 처분을 받았다. 제2차 당고로 청류당은 탄압받아 해체되고, 환관의 전제가 확립되었다.(→제이차 당고의 금)
유교 학자들은 조정 환관들을 비난했고, 낙양에서 체포, 살해 또는 추방되거나, 당고의 금의 두 번째 사건 동안 관료 생활에서 추방되었다. 이는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 184년까지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4.3. 기타
5. 문화
루키아누스는 숙명론의 부조리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