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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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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87년은 당나라 수공 3년, 신라 신문왕 7년, 일본 지토 천황 원년에 해당하며, 주요 사건으로 불가리아 제국의 반란, 아스파루흐의 도나우강 침공, 테우데시우스의 바이에른 공작, 빈데미르의 서고트 왕국 군주 살해 등이 일어났다. 또한, 12월 15일에는 교황 세르지오 1세가 84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했으며, 10월 9일에는 고승 300명이 아스카데라에서 덴무 천황의 의복을 하사받았다. 이 해에는 신라 효소왕, 에우케리우스, 위젠수 등이 태어났고, 커스버트, 교황 코논 1세 등이 사망했다.

2. 연호

3. 기년

4. 사건


  • 불가리아 제국이 비잔틴 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아스파루흐는 도나우강을 건너 소 스키티아를 침공하여 불가리아의 정착지를 건설했다.
  • 프랑크 왕국의 테우데시우스가 바이에른 공작령의 군주가 되었다.
  • 카르타헤나에서 벌어진 반란으로 서고트 왕국의 군주 빈데미르가 살해되었다.
  • 도리아에서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 아일랜드의 아도므난은 아이오나 수도원의 수도원장으로, 노섬브리아의 습격에서 포획된 60명의 게일족 등 아일랜드 포로를 몸값을 치르기 위해 노섬브리아의 에그프리드 왕의 궁정을 방문했다.
  • 10월 9일 (지토 천황 원년 8월 28일) - 고승 300명이 아스카데라에 소환되어 덴무 천황의 의복으로 만든 가사를 하사받았다.

4. 1. 서유럽


  • 테르트리 전투: 네우스트리아의 왕 테우데리크 3세는 오스트라시아 궁재 헤르스탈의 피핀에게 소뮈 강 인근 페론 (현재 프랑스)에서 패배했다. 테우데리크는 파리로 물러나 평화 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피핀은 프랑크 왕국의 ''"사실상"'' 지배자가 되었고, 스스로를 프랑크 공작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피니드와 카롤링거 왕조의 미래 부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피핀은 노르데베르트를 부르고뉴 공작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고뉴 왕국을 (일종의 섭정으로서) 맡겼다.[1]
  • 에르비그 왕은 7년간의 통치 후 사망하고, 그의 사위 에기카가 서고트 왕국의 통치자로 즉위했다.[1]
  • 켄트의 물(Mul of Kent)과 12명의 동료가 켄트 반란 동안 화형을 당했다. 그의 형제인 웨섹스 왕 카에드왈라(Cædwalla of Wessex)는 복수하기 위해 왕국을 유린한다.[1]

4. 2.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우마이야 칼리파조와 강화 조약을 맺고, 칼리프 압드 알-말리크 이븐 마르완은 조공을 바치게 된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아랍인에게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12,000명의 기독교 마론파 신자들을 레바논에서 이주시켰다.[1] 또한 키프로스의 비잔틴 해군을 강화하고, 아나톨리아의 트라케시안 테마에서 테마 오브 트라케의 기병 부대를 발칸 반도로 이동시켰다.

4. 3. 종교

5. 탄생

6.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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