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9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899년은 당나라 광화 2년, 일본 쇼타이 2년 등에 해당하는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6세의 네 번째 결혼 허용 조치에 대한 반발, 바이킹의 파리 재공격, 마자르족의 이탈리아 침략, 헝가리인의 브렌타 전투 패배, 에설월드의 반란 등이 있었다. 또한, 아랍 제국에서는 카르마타이아인이 바레인을 점령하고, 여러 인물의 탄생과 사망이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899년 |
---|
2. 연호
3. 기년
4. 사건
-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6세는 네 번째 결혼을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이는 정교회 내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바이킹이 프랑크 왕국의 파리를 다시 공격했다.
- 일본에서는 관백 후지와라노 토키히라가 우다 천황의 섭정이 되었다.
- 12월 8일 - 카린티아의 아르눌프가 뇌졸중으로 마비되어 사망하고 레겐스부르크 (바이에른)의 성 엠머람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동프랑크 왕국의 통치권은 그의 6세 아들 루이 3세('''어린이''')에게 계승되었다. 아르눌프의 조언자인 마인츠의 하토 1세가 어린 왕의 섭정이자 후견인이 되었다. 루이는 하토의 사주를 받아 이복 형제 즈벤티볼트에게 로트링겐을 요구했고, 동프랑크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내전이 일어났다. 롬바르드 왕위는 일시적으로 공석이 되었다.
- 프륌의 레기노는 베네딕토회 성직자로, 프륌에서 추방되어 트리어의 성 막시미누스 수도원(바이킹에게 파괴됨) 수도원장이 되었다.
4. 1. 유럽
- 여름 - 카린티아의 아르눌프 왕은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마자르족의 지원을 받았다. 마자르족은 롬바르드 평원을 넘어 파비아까지 진격했다. 베렌가리오 1세 왕은 마자르족에 맞서 대규모 군대를 소집하고, 아다강 근처에서 그들과 대치했다. 강력한 군대에 겁을 먹은 아르파드 (헝가리 부족 연맹의 수장)는 이탈리아를 무사히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한다면 평화를 맺고 빼앗은 많은 것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베렌가리오는 이를 거절했고, 마자르족은 브렌타강으로 물러났다. 아르파드는 다시 제안하며 모든 전리품과 심지어 인질까지 남겨두겠다고 제안했으나, 베렌가리오는 또다시 거절하고 마지막 전투를 위해 브렌타강을 건너기를 기다렸다.[1]
- 9월 24일 - 브렌타 전투: 5,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마자르족은 산을 통해 우회하여 브렌타강을 건너 남쪽으로 진격하여 카르티글리아노에 주둔한 롬바르드 군대(15,000명)를 공격했다. 마자르족은 준비되지 않은 베렌가리오의 군대를 대량 학살했고, 베렌가리오는 군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파비아로 도망쳤다. 아르파드는 공세를 재개하고 롬바르디아를 가로질러 트레비소, 비첸차, 베르가모 및 베르첼리까지 시골을 약탈했다. 그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아에밀리아 가도를 따라 내려가 레조 에밀리아, 모데나 및 볼로냐를 약탈했다.[1]
- 겨울 - 마자르족은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베네치아 석호 해안으로 향했다. 그들은 키오자와 펠레스트리나를 약탈하고 말라모코로 진격했다. 석호로의 진격은 도제 피에트로 트리부노 휘하의 베네치아 함대가 알비올라에서 마자르족의 강을 건너는 배를 격파하면서 저지당했고, 그들은 후퇴했다. 마자르족과의 이 위급한 상황은 베네치아인들이 리알토를 요새화하고 대운하에 방어용 쇠사슬을 설치하도록 촉구했다.[1]
4. 2. 영국
- 10월 26일 - 알프레드 대왕은 28년간 잉글랜드를 통치하면서 덴마크 바이킹의 침략을 막아내고, 웨섹스 주변의 잉글랜드를 통합했으며, 머시아 일부를 샤이어로 나누었다. 또한 이전 왕들의 훌륭한 법을 편찬하고, 유명한 학자들을 웨섹스로 초빙하여 학문을 장려했으며, 라틴어 작품을 직접 번역하기도 하였다. 알프레드 대왕 사후, 그의 장남인 에드워드 장로가 웨섹스의 왕위를 계승하였다.[1]
- 겨울 - 에설월드의 반란: 알프레드 대왕 사후, 에설레드 1세의 막내 아들 에설월드가 에드워드 장로의 왕위 계승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에설월드는 웨스트 색슨 왕들의 상징적인 매장지인 윔본 민스터와 크라이스트처치, 도싯의 왕실 영지를 점령하였다. 에드워드는 배드버리 링스에 군사 캠프를 설치하였다. 에설월드는 처음에 윔본에서 '살거나 죽겠다'고 선언했지만, 이후 노섬브리아 왕국으로 도망쳤다.[2]
4. 3. 아랍 제국
-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알-샤이바니는 디야르 바크르의 무슬림 통치자였는데, 포위된 수도인 아미드 (오늘날의 터키)에서 칼리프 알-무타디드에게 항복하여 관용을 얻었다. 알-무타디드의 아들 알-무크타피는 자지라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870년대부터 디야르 바크르를 통치해 온 반독립적인 샤이반 왕조가 종말을 맞이하였다.[1]
- 아부 사'이드 알-잔나비가 이끄는 카르마타이아인은 바레인의 수도 하지르와 알-하사 (동아라비아)를 점령했다. 아부 사'이드는 이곳을 자신의 거주지로 삼고 종교적 유토피아 공화국을 세웠다.[2]
4. 4. 동아시아
899년한국어은 동아시아에서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5. 탄생
- 고려의 승려 혜거국사
- 알카히르,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القاهر بالله|알 카히르 빌라ar, 950년 사망)
- 곤살로 페르난데스, 카스티야 왕국 백작 (915년 사망)
- 마시판, 오대십국 시대 초의 왕 (947년 사망)
- 마시성, 초의 왕 (932년 사망)
- 왕종언, 전촉의 황제 (926년 사망)
- 베르너 5세, 프랑크 귀족 (추정)
- 예율배, 요나라의 황자 (937년 사망)
- 왕연, 오대십국 시대의 전촉 제2대 황제 (926년 사망)
- 스가와라노 후미토키, 헤이안 시대의 공경, 문인, 정치가 (981년 사망)
- 야율돌욕, 거란 제국의 황태자, 동단국의 국왕 (936년 사망)
6. 사망
참조
[1]
서적
AF(B)
[2]
서적
The Viking Wars of Alfred the Great
200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