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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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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WC는 1868년 미국인 플로렌틴 아리오스토 존스가 스위스 샤프하우젠에 설립한 시계 제조 회사이다. 미국식 대량 생산 기술과 스위스 시계 장인의 기술을 결합하여 고품질 시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경영권 변동과 쿼츠 파동 등의 위기를 겪었다. IWC는 자체 무브먼트 개발과 더불어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 및 지속 가능한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컬렉션으로는 포르투기스, 파일럿 워치, 인제니어, 아쿠아타이머, 다 빈치, 포르토피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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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 (기업)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IWC 인터내셔널 워치 컴퍼니 AG 로고
IWC 샤프하우젠 로고
정식 명칭IWC 인터내셔널 워치 컴퍼니 AG
상호IWC 샤프하우젠
형태자회사
설립일1868년
설립자플로렌틴 애리오스토 존스, 샤를 키더, 하인리히 모저
소재지샤프하우젠, 스위스
서비스 제공 지역전 세계
산업시계 제조
제품시계
직원 수650명
모기업리치몬트
웹사이트IWC 공식 웹사이트
주요 인물
주요 인물알베르 펠라톤, 쿠르트 클라우스

2. 역사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IWC 매장


19세기 후반, 미국의 시계 제조 기술을 익힌 플로렌타인 아리오스토 존스는 스위스의 숙련된 장인 기술과 미국의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을 결합하고자 했다. 그는 샤프하우젠에서 하인리히 모저의 도움을 받아 1868년 IWC를 창업했다. 이는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던 서부 지역이 아닌, 라인강의 수력을 이용한 전력 확보가 용이했던 북동부 샤프하우젠에 자리 잡은 독특한 사례였다.

초기 어려움 이후 1880년 요하네스 라우셴바흐 포겔이 회사를 인수하며 라우셴바흐 가문의 경영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과 사위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에게 경영권이 이어졌다. 1903년에는 "샤프하우젠의 우수한 견실한 장인 정신"을 뜻하는 기업 이념 'Probus Scafusiala'가 제정되었다. 1915년에는 손목시계용 무브먼트 Cal.75를 탑재한 모델을 출시하며 손목시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세기 중반 IWC는 여러 상징적인 모델들을 선보였다. 1936년 군용 파일럿 워치를 시작으로, 1939년에는 대형 손목시계인 『'''포르투기저'''』(Portugieserpt)를 출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기술 책임자 알버트 페라톤이 개발한 효율적인 자동 와인딩 시스템(1946년 특허)을 선보였고, 1948년에는 파일럿 워치 『마크 XI』, 1955년에는 항자성 시계 『'''인제니어'''』(Ingenieurde), 1967년에는 다이버 워치 『'''아쿠아타이머'''』(Aquatimer영어)를 출시하며 기술력과 제품 라인업을 강화했다.

1969년 쿼츠 쇼크 시기에는 스위스 시계 업계의 위기 속에서 쿼츠 무브먼트 '''베타 21''' 개발에 참여하며 변화에 대응했다. 1978년에는 독일 VDO 그룹에 인수되었고, 포르쉐 디자인과의 협업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쿠르트 클라우스가 설계한 혁신적인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Da Vinci Perpetual Calendar영어)가 발표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창립 125주년을 맞아 『포르투기저』 라인이 부활했으며, 2000년에는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에도 IWC는 자체 무브먼트 개발과 함께 『인제니어』, 『다 빈치』, 『파일럿 워치』 등 주요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2. 1. 설립

International Watch Company - 20세기 초 펜던트 시계 예시


1868년, 보스턴의 E. Howard & Co. 이사였던 미국인 엔지니어이자 시계 제작자 플로렌타인 아리오스토 존스(Florentine Ariosto Jones영어, 1841–1916)는 IWC(International Watch Company)를 설립했다.[9] 그는 스위스의 비교적 낮은 임금과 숙련된 시계 제작 기술,[9] 그리고 미국의 선진적인 공장제 생산 시스템을 결합하여 미국 시장을 위한 고품질 시계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자 했다.[10]

존스는 남북 전쟁 종군 후, 당시 미국 최고 시계 제조사 중 하나였던 하워드에서 공장 부감독으로 일하며, Aaron Lufkin Dennison영어 등이 확립한 부품 호환성을 갖춘 대량 생산 방식, 즉 미국식 시계 제조 기술을 익혔다.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은 숙련된 장인들이 많았지만, 주로 수공업 방식으로 이루어져 생산 효율이 낮고 제품 가격이 높아 세계적인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다.[9]

존스는 이러한 스위스의 장점과 미국의 생산 시스템을 결합하는 데 사업 기회를 보고, 시계 장인 찰스 키더(Charles Kidder영어)와 함께 스위스로 건너가 공장 설립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다. 하지만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던 서부 프랑스어 사용 지역에서는 존스가 구상한 공장 시스템에 대한 반대가 있었고,[9] 또한 공장제 기계 생산에 필요한 동력을 충분히 공급할 만한 시설도 부족했다.

이때 독일 국경 근처 샤프하우젠에서는 러시아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자 시계 장인이었던 하인리히 모저(Heinrich Moserde, 1805-1874)가 라인강의 수력을 이용한 수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며 산업화를 이끌고 있었다.[11][12] 대량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시계 공장을 세우려던 존스와 새로운 발전소의 전력 수요처를 찾던 모저는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고, 시계 제작자이기도 했던 모저의 도움으로 존스는 샤프하우젠에 공장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스위스 북동부의 유일한 시계 제조업체인 IWC가 탄생하게 되었다.

2. 2. 초기 발전과 파산

1869년, F.A. 존스는 라인슈트라세에 있는 J.H. 모저 소유의 산업 건물에서 첫 번째 공장 부지를 임대했다. 1874년까지 오버하우스에 추가 방을 임대해야 했고, 이미 새 공장 계획이 수립되어 모저의 수력 발전 회사에서 부지를 매입했다. 샤프하우젠 건축가 G. 마이어가 공장 설계 및 건설을 수주했다. 1년 뒤인 1875년 봄, 건설 공사가 완료되었다. 처음에는 45m 길이의 공장에서 196명이 근무했으며 최대 300개의 작업 공간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F.A. 존스는 관세, 자금 조달, 기술적 기계 문제로 인해 미국에서 시계를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10] 1875년까지 주주들은 회사가 붕괴 직전에 있다고 주장했고, 존스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국 회사는 파산을 신청했고 존스는 회사의 지배권을 포기해야 했다.[10]

2. 3. 라우헨바흐 가문

IWC 주주 중 한 명이자 샤프하우젠 출신의 기계 제조업자인 요한 라우헨바흐-포겔[10]은 1880년 2월 17일 '인터내셔널 시계 공장'(''Internationale Uhrenfabrik'')을 인수했다. 그는 28만스위스 프랑에 회사를 매입했으며,[10] 이후 라우헨바흐 가문은 여러 이름으로 4대에 걸쳐 IWC를 소유하게 된다.

인수 1년 후 요하네스 라우헨바흐-포겔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요하네스 라우헨바흐-쉥크가 25세의 나이로 '유렌파브릭 폰 J. 라우헨바흐'(''Uhrenfabrik von J. Rauschenbach'')를 물려받아 1905년 3월 2일 사망할 때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한편, 졸로투른주 눈닝겐 출신인 아우르스 헹기(Urs Haenggi)는 프랑스어권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시계 사업 경험을 쌓고 1883년 IWC에 합류하여 52년간 근무했다. 그는 공장 운영을 원활하게 하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외부 세력이 IWC를 인수하는 것을 막아 라우헨바흐 가문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1905년 J. 라우헨바흐-쉥크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와 두 딸 베르타 마르게리테 라우헨바흐, 엠마 라우헨바흐(훗날 카를 융과 결혼) 및 사위들인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샤프하우젠 G. 피셔 AG 이사)와 카를 구스타프 융이 '유렌파브릭 폰 J. 라우헨바흐'스 에르벤'(''Uhrenfabrik von J. Rauschenbach's Erben'', J. 라우헨바흐 상속인의 시계 제조사)이라는 합자 회사 형태로 공장을 상속받았다. 이때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가 유일한 서명 권한을 가졌고, 헹기와 포겔은 이사로 참여했다.

장인의 사망 이후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는 IWC 경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럽 역사의 격동기를 헤쳐나갔다. 그는 세계 경제 위기 직전에 회사의 단독 소유주가 되었고, 회사 이름을 '유렌파브릭 폰 에른스트 홈버거-라우헨바흐'(''Uhrenfabrik von Ernst Homberger-Rauschenbach'', 이전 인터내셔널 시계 회사)로 변경했다. 그의 경영 성과는 1952년 장크트갈렌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며 인정받았다. 그는 1955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의 아들인 한스 홈버거는 라우헨바흐 가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독 소유주로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1934년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여 1955년 4월 아버지가 사망하자 회사를 물려받았다. 1957년에는 공장 건물을 증축하고 현대적인 직원 연금 기금을 마련했으며, 새로운 수요에 맞춰 기계를 도입하고 생산 기술을 지속적으로 현대화했다. 그는 1986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4. 홈버거 가문

1905년 요하네스 라우헨바흐-쉥크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와 두 딸 베르타 마르게리테 라우헨바흐, 엠마 라우헨바흐(이후 융), 그리고 사위인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샤프하우젠 G. 피셔 AG 이사)와 카를 구스타프 융이 회사를 공동으로 인수했다. 이들은 '유렌파브릭 폰 J. 라우헨바흐스 에르벤'(Uhrenfabrik von J. Rauschenbach's Erben|J. 라우헨바흐 상속인의 시계 제조사de)이라는 이름의 합자 회사 형태로 시계 공장을 운영했다. 이때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는 유일한 서명 권한을 가졌으며, 아우르스 헹기와 포겔이 이사로 참여했다.

장인의 사망 이후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는 회사의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럽 역사의 격동기를 헤쳐나갔다. 세계 경제 위기 직전, 그는 회사의 단독 소유주가 되었고, 1939년에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완전한 개인 소유권을 확보했다. 회사 이름은 '유렌파브릭 폰 에른스트 홈버거-라우헨바흐'(Uhrenfabrik von Ernst Homberger-Rauschenbach|에른스트 홈버거-라우헨바흐의 시계 제조사de), 이전 인터내셔널 시계 회사로 변경되었다. 그의 공로는 1952년 장크트갈렌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며 인정받았다.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는 1955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에른스트 야콥 홈버거의 아들인 한스 홈버거는 라우헨바흐 가문의 마지막 단독 소유주로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1934년 아버지의 회사에 합류했으며, 1955년 4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 회사를 물려받았다. 한스 홈버거는 1957년 공장에 새로운 건물을 증축하고 같은 해 직원들을 위한 현대적인 연금 기금을 마련하는 등 회사의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새로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고 생산 기술을 지속적으로 현대화했다. 그는 1986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 5. 주요 기술자

플로렌타인 아리오스토 존스는 미국 엔지니어이자 시계 제작자로, 보스턴의 하워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는 1868년 하인리히 모저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 샤프하우젠에 IWC를 설립했다.[9] 존스는 스위스에서 시계를 조립하여 미국으로 수입할 계획이었다.[10]

기술 이사였던 '''요한 포겔'''은 방엔 안 데어 아레 출신으로, 졸로투른에서 IWC의 기술 부문을 이끌었다. 그는 1919년까지 칼리버 설계 및 개발을 담당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885년, IWC는 오스트리아인 요제프 팔베버의 특허를 기반으로 최초의 디지털 시계를 제작했다. 이 시계는 숫자로 시간을 표시하는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인 방식이었으나, 당시 널리 사용되던 전통적인 아날로그 디스플레이를 대체하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여러 기술자들이 IWC의 발전에 기여했다. '''알버트 페라톤'''(Albert Pellaton)은 1944년 입사하여 기술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1946년에는 효율적인 자동 와인딩 메커니즘(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1966년 퇴직했다. '''쿠르트 클라우스'''(Kurt Klaus)는 1957년 IWC에 합류하여, 1985년 ETA의 Cal.7750 무브먼트에 영구 캘린더 모듈을 결합한 혁신적인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를 설계했다. 유명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는 1976년 발표된 『'''인제니어 SL'''』 모델을 디자인했으며, 그의 특징적인 5개의 나사 구멍 디자인 코드는 이후 인제니어 모델에도 계승되었다.

2. 6. 전기 시대

1888년, 전기가 시계 공장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 경영자였던 요하네스 라우센바흐(J. Rauschenbach)는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선을 설치했다. 세기 전환 무렵(19세기 말~20세기 초), 회사는 생산 기계를 전기로 작동하도록 전환하기 시작했다. 바덴의 브라운 보베리(Brown, Boveri & Cie)에서 제작한 전기 모터가 공장 기계에 동력을 공급했다. 이 중앙 집중식 동력 공급 방식은 1930년대에 들어 개별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 7. 1900년대 – 1960년대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시기, 에른스트 야콥 호무버거(Ernst Jakob Hombergerde)는 여러 사회 기관 설립에 기여했다. 그는 공장 직원을 위한 주거 공간을 늘리고, 전쟁 미망인과 고아를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이 기금은 1929년에 J. 라우센바흐 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49년에는 시계 회사 복지 재단이 추가로 설립되었다. 1903년에는 기업 이념인 '''Probus Scafusia|프로부스 스카푸시아la'''("샤프하우젠의 우수한 견실한 장인 정신")가 제정되었으며, 1905년 에른스트 야콥 호무버거가 장인 요하네스 라우셴바흐 쉥크의 사위로서 경영권을 일부 상속받아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15년에는 손목시계용으로 개발된 '''Cal.75'''를 탑재한 모델을 상품화하며 손목시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1930년대 독일의 군비 증강은 정밀 시계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이 시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말까지 IWC는 독일 공군(Luftwaffe)을 위한 B-Uhren(관측 시계)을 제작한 5개의 시계 제조업체 중 하나였다. 다른 4개 업체는 Stowa, Laco, Wempe, A. Lange & Söhne였다.[13] 1936년에는 군 전용 파일럿 워치를 출시했으며, 1939년에는 에른스트 야콥 호무버거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개인 소유주가 되었다. 같은 해 회중시계 무브먼트를 사용한 대형 손목시계 『'''포르투기저'''』(''Portugieser'')가 처음 출시되었다.

1944년 4월 1일, 샤프하우젠미국 육군 항공대의 폭격을 받았다. IWC 공장 건물은 폭탄에 맞았으나 불발되었고, 인근에서 터진 소이탄으로 인한 화재가 창문을 통해 번졌지만 회사 자체 소방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같은 해 알버트 펠라톤(Albert Pellaton프랑스어)이 IWC에 입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IWC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동유럽 시장이 철의 장막으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워졌고, 독일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IWC는 서유럽, 아메리카, 호주, 극동 지역 국가들과의 기존 관계를 강화하고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기술 개발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1946년, 기술 책임자가 된 알버트 펠라톤은 효율적인 자동 와인딩 메커니즘(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1948년에는 파일럿 워치 『마크 XI』(''Mark XI'')를 출시했다. 20세기 중반에는 IWC의 대표적인 수동 무브먼트 중 하나인 칼리버 89(Calibre 89)가 출시되어 1990년대 초까지 여러 IWC 모델에 사용되었다. 1955년에는 자기장의 영향을 막는 연철 내부 케이스를 특징으로 하는 『'''인제니어'''』(''Ingenieur'') 모델이 출시되었다. 1957년에는 훗날 퍼페추얼 캘린더 개발에 기여하게 될 쿠르트 클라우스(Kurt Klausde)가 입사했다. 한편, 1939년에 처음 선보였던 『포르투기저』 라인은 195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알버트 펠라톤은 1966년에 IWC를 퇴직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새로운 모델들이 등장했다. 1967년에는 케이스 내부에 회전 베젤을 장착하고 용두로 조작하는 다이버 워치 『'''아쿠아타이머'''』(''Aquatimer'')가 출시되었다. 1969년에는 스위스 시계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온 쿼츠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쿼츠 무브먼트인 '''베타 21'''(Beta 21)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2. 8. 쿼츠 파동과 이후

IWC 다 빈치 모델. 스위스 라쇼드퐁 국제 시계 박물관 소장.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쿼츠 파동은 스위스 시계 산업에 큰 기술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에는 소형 전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손목시계가 처음 등장했으며, 전자식 밸런스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당시 'Uhrenfabrik H. E. Homberger'라는 이름이었던 IWC는 뇌샤텔의 전자 시계 센터(Centre Électronique Horloger, CEH) 공동 창립자이자 주주로서, 1969년 바젤 산업 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Beta 21 쿼츠 손목시계 무브먼트 개발에 재정적으로 참여했다. 이 무브먼트는 오메가의 일렉트로쿼츠 시계 등 다른 제조사들도 사용했으며, 전체 쿼츠 시계 판매량의 약 5~6%를 차지했다. 동시에 IWC는 기계식 무브먼트를 탑재한 여성용 시계를 포함하여 주얼리 시계 컬렉션을 확장하기도 했다. 1973년은 IWC에게 전후 가장 성공적인 해였다.

그러나 1974년 가격 급등은 시계 수출 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1970년부터 1974년 사이 금 가격은 4,850 프랑에서 18,000 프랑으로 치솟았고, 미국 달러 대비 스위스 프랑의 가치는 최대 40%까지 하락했다. 이로 인해 시계 수출 가격은 최대 250%까지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IWC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이사 겸 CEO 오토 헬러의 지휘 아래 포켓 워치 라인을 구축하고, 자체적인 현대식 손목시계 및 케이스 제조 시설을 갖추는 한편, 외부 디자이너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와 긴밀히 협력하기 시작했다. 또한 1978년에는 세계 최초의 티타늄 소재 시계 팔찌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시계 제작 기술을 선도했다. 1976년에는 유명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새로운 '인제니어' 모델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IWC는 많은 벤처 자본이 필요했고, 스위스 은행 공사의 도움을 받아 독일의 VDO Adolf Schindling AG와 접촉하게 되었다. 1978년, VDO는 IWC의 지분 과반수를 인수했다.

이 시기에 IWC는 창립자 F.A. 존스가 처음 부여했던 이름인 'International Watch Co. AG'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1년, 귄터 블럼라인이 새로운 총지배인으로 취임하면서 IWC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블럼라인은 계획된 변화들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효과적인 광고 캠페인을 통해 고객 기반을 넓혔으며, 회사의 재정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

1985년, 블럼라인은 당시 기술 책임자였던 쿠르트 클라우스에게 손목시계 크기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제작을 의뢰했다. 당시 시장에 나와 있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들은 모두 포켓 워치 크기였기 때문에 이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1986년에는 도미닉 르노와 줄리오 파피(훗날 Manufacture d'Horlogerie Renaud et Papi SA 설립, 1992년 오데마 피게에 인수됨)가 무브먼트의 리피터 기능 설계를 지원했다. 마침내 1990년, IWC는 크로노그래프, 미닛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모두 갖춘 최초의 손목시계 크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인 'IWC ref.3770'을 출시했다. 같은 해 쿠르트 클라우스가 설계한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도 발표되었는데, 이는 ETA의 Cal.7750 무브먼트에 영구 캘린더 모듈을 결합한 것이었다.

1991년, 귄터 블럼라인은 샤프하우젠에 본사를 둔 LMH 그룹을 설립했다. 이 그룹은 IWC 지분 100%, 예거 르쿨트르 지분 60%(나머지 40%는 오데마 피게 소유), 독일 작센 지방의 시계 제조사 A. 랑에 운트 죄네 지분 90%를 소유하며 약 1,44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2000년 7월, LMH 그룹은 리치몬트 그룹에 28억스위스 프랑에 인수되었다. 인수 후에도 IWC는 기존 LMH 그룹 경영진에 의해 계속 운영될 것이 보장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IWC는 혁신을 지속했다. 2001년에는 온라인 컬렉터 포럼을 개설했으며, 2011년에는 개발에 10년이 걸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 '시데랄레 스카푸시아'를 출시했다. 이 시계는 고객의 위치에 맞춰 일출 및 일몰 시간을 표시하는 천체도를 특징으로 한다. 2021년에는 CEO 크리스토프 그레인저가 상하이에서 열린 워치스 & 원더스 박람회에 홀로그램 기술(PORTL 장치)을 이용해 등장하여 주목받았다. 2023년에는 1970년대 제랄드 젠타 디자인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 인체공학, 마감, 기술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잉제니어 오토매틱 40'을 4가지 색상으로 출시했다.

2. 9. 리치몬트 그룹 인수

1991년 IWC 이사 귄터 블럼라인은 샤프하우젠에 본사를 둔 LMH 그룹을 설립했다. 이 그룹은 IWC 지분 100%, 예거 르쿨트르 지분 60%(나머지 40%는 오데마 피게 소유), 작센에 본사를 둔 시계 제조 회사인 A. 랑에 운트 죄네 지분 90%를 소유했다. 당시 그룹은 약 1,44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2000년 7월, LMH 그룹은 리치몬트에 28억스위스 프랑에 인수되었다. 인수 후에도 IWC는 LMH 그룹 시절과 동일한 임원진에 의해 계속 관리될 것이 보장되었다.

2001년에는 온라인 컬렉터 포럼을 개설했다.

2011년, IWC는 개발에 10년이 걸린 또 다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계인 '시데랄레 스카푸시아'를 출시했다. 이 시계는 각 고객의 위치에 맞춰 일출 및 일몰 시간을 표시하는 천체도를 특징으로 한다.

2021년, IWC CEO 크리스토프 그레인저는 상하이에서 열린 워치스 & 원더스 박람회에 PORTL 장치를 사용하여 등장했다.

3. 시계 제조

IWC는 회중시계가 주류였던 시기부터 정확도와 내구성이 높고 마감이 뛰어난 시계로 명성을 얻었으며, 일본 등지에서도 고급 회중시계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손목시계 시대로 전환된 이후에도 천문대 콩쿠르나 크로노미터 인증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우수 등급 크로노미터를 능가하는 엄격한 품질 기준을 설정하고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고급 시계를 제작하여 높은 인지도를 유지했다.

1868년, 미국인 기술자이자 하워드 출신인 플로렌틴 아리오스토 존스가 시계 장인 하인리히 모저(Heinrich Moser|하인리히 모저de)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 샤프하우젠에서 북미 시장을 겨냥한 회중시계 제조를 시작하며 창업했다. 이후 1880년 요하네스 라우셴바흐 포겔이 경영권을 인수했고, 그의 아들 요하네스 라우셴바흐 쉥크가 1881년 경영권을 상속받았다. 1885년부터는 생산된 모든 시계의 캘리버, 소재, 케이스 등 상세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1899년에는 여성용 회중시계 무브먼트인 캘리버 64를 활용하여 첫 손목시계를 출시했다. 1903년에는 "샤프하우젠의 우수한 견실한 장인 정신"을 뜻하는 라틴어 문구 '''Probus Scafusia|프로부스 스카푸시아la'''를 기업 이념으로 제정했다. 1905년, 요하네스 라우셴바흐 쉥크의 사위인 에른스트 야콥 호무버거가 일부 지분을 상속받으며 경영에 참여했고, 1939년에는 카를 구스타프 융이 보유했던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하여 개인 소유주가 되었다.

1915년, IWC는 손목시계 전용으로 개발한 '''Cal.75'''를 탑재한 모델을 선보이며 손목시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는 1938년 개발된 Cal.60에서 초침을 다이얼 중앙에 배치하는 센터 세컨드 방식을 빠르게 채택하는 등, 당시 경쟁사들이 스몰 세컨드(초침을 별도 서브 다이얼에 배치) 파생형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앞서 나간 행보였다. 이후에도 수동식 Cal.83, 사각형 수동식 Cal.87 등 정밀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마감이 우수한 자체 무브먼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1936년에는 군용 파일럿 워치를 출시했으며, 1939년에는 회중시계 무브먼트를 사용한 대형 손목시계 『'''포르투기스'''』를 선보였다.

1926년 제작 회중시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4년 바쉐론 콘스탄틴에서 이적한 시계 기술자 알베르 페라톤(Albert Pellaton|알베르 페라톤프랑스어, 1898-1976)이 기술 부문을 이끌게 되었다. 페라톤의 지휘 아래 생산 공정 합리화와 고품질 무브먼트 개발이 동시에 추진되었다. 1946년에 기존 모델을 개선하여 선보인 수동식 Cal.89는 높은 완성도로 1974년까지 생산된 롱셀러 무브먼트가 되었다. 또한 페라톤은 독자적인 양방향 자동 감기 방식인 '페라톤식 자동 감기 기구'(1946년 개발, 특허 취득)를 개발하여 Cal.85 시리즈(1950년 설계)에 적용, 자동 시계 시장에 빠르게 대응했다. 이 시기에 출시된 파일럿 워치 『마크 XI』(1948년)와 항자성 시계 『'''인제니어'''』(''Ingenieur'', 1955년)는 당시의 선진적인 기능 덕분에 "'''올드 인터'''"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앤티크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57년에는 훗날 IWC의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쿠르트 클라우스가 입사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방수 시계 『'''아쿠아타이머'''』(''Aquatimer'', 1967년)를 출시했다. 그러나 1969년 쿼츠 파동으로 저렴한 일본제 쿼츠 시계가 시장을 장악하자, IWC 역시 다른 스위스 제조사들과 협력하여 쿼츠 무브먼트 '''베타 21''' 개발에 참여했고, 1970년 이를 탑재한 쿼츠 시계 『다 빈치』를 출시했다. 이 시기 기계식 시계 부문에서는 자체 무브먼트 개발 및 생산을 중단하고 ETA 등 외부 공급사의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하게 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76년에는 유명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새로운 『인제니어』를 발표했고, 1978년에는 포르쉐 디자인과의 협업으로 첫 시계인 『컴퍼스 워치』를 선보였다. 1984년에는 고전적인 디자인의 『포르토피노』 라인을 출시했다.

1980년대 중반, 기계식 시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IWC는 다시 한번 기술력을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페라톤의 제자이기도 한 기술자 쿠르트 클라우스(Kurt Klaus|쿠르트 클라우스de)는 1985년, ETA의 7750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영구 캘린더 모듈을 결합한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를 개발했다. 이 시계는 큰 성공을 거두며 IWC가 매뉴팩처로서의 명성을 되찾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IWC는 클라우스의 지휘 아래 자체 무브먼트 개발과 범용 무브먼트의 철저한 개량을 병행하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1993년 창립 125주년을 맞아 본사 건물 내 박물관 개설을 결정하고, 기념 모델로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 『'''Il Destriero Scafusia|일 데스트리에로 스카푸시아it'''』를 125개 한정 판매했다. 이 시계는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문페이즈, 4자리 연도 표시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등 75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당시 가장 복잡한 시계 중 하나였다. 같은 해, 생산이 중단되었던 『포르투기스』 라인이 부활했고, 파일럿 워치 『마크 XII』가 출시되었다. 1995년에는 포르쉐 디자인과의 제휴를 해소했으며, 1997년 『GTS』 라인을, 1999년에는 『GTS 딥원』과 파일럿 워치 『마크 XV』를 출시했다.

일 데스트리에로 스카푸지아


2000년, IWC는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었다. 같은 해, 페라톤식 자동 감기 기구를 채용한 자체 개발 Cal.5000 무브먼트를 탑재한 대형 『포르투기스 오토매틱 2000』을 발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2005년에는 단종되었던 『인제니어』 라인이 부활했고, 2007년에는 자체 제작 무브먼트를 탑재한 신형 『다 빈치』를, 2012년에는 자체 무브먼트 중심의 『탑건』 등 새로운 파일럿 모델들을 선보였다. 2017년에는 『다 빈치』 라인을 전면 개편하여 컴플리케이션 모델과 기본 3침 모델 등을 발표했다. 2023년에는 제랄드 젠타 디자인의 특징적인 베젤 나사 구멍 디자인을 부활시킨 리뉴얼된 『인제니어』를, 2024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세큘러 캘린더(Secular Calendar, 400년에 한 번 조정이 필요한 영구 캘린더) 모델인 『포르투기스 이터널 캘린더』를 발표하며 "가장 정밀한 문페이즈 손목시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현재 IWC의 제품 라인은 "포르토피노", "인제니어", "포르투기스", "아쿠아타이머", "파일럿 워치", "다 빈치"의 6개 컬렉션으로 구성된다. 과거 GST 라인에서 사용되던 모델명이 각 컬렉션의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몇 년간 특정 라인을 매년 리뉴얼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반드시 규칙적인 업데이트를 따르지는 않는다. 전 라인에 걸쳐 무브먼트의 자체 제작 비율을 높이는 추세지만, 동시에 ETA/Valjoux 7750 기반 무브먼트처럼 기술적으로 검증되고 완성도 높은 개량형 범용 무브먼트의 장점을 살린 시계 제작도 병행하고 있다.

3. 1. 생산 기록

IWC는 1885년부터 공장에서 출고된 모든 시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 기록에는 1885년부터 제작된 시계의 무브먼트, 사용된 소재, 케이스 등에 대한 세부 정보가 포함된다. 이후 모델의 기록에는 레퍼런스 번호, 배송 날짜, 공식 판매점 이름까지 기재되어 있다. 시계 소유자는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자신의 시계가 최소 10년 이상 된 경우 해당 시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IWC로부터 얻을 수 있다.[22]

또한, IWC는 자사의 서비스 부서가 필요한 부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1868년 창립 이후 제작된 모든 시대의 시계를 수리하고 유지 관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23] 이는 구매한 제품이 대를 이어 사용될 것을 전제로, 창업 이후 판매한 모든 제품에 대해 '''영구 수리'''를 보장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3. 2. IWC 무브먼트

IWC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제작한 무브먼트와 외부 공급사의 무브먼트를 수정하여 사용한다.

자체 제작 무브먼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알베르 페라톤이 개발한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을 특징으로 하는 50000/52000, 80000/82000/89000 칼리버가 있다. 이 시스템은 로터와 배럴 사이에 직접 기어가 아닌 특수한 톱니(폴)를 사용하여 양방향 와인딩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24] 또한, 회중시계 시절부터 내려오는 포켓 워치 무브먼트(포르투기스 F.A. 존스 등에 사용)와 문페이즈 또는 투르비용 기능을 갖춘 수동 무브먼트 59000 칼리버,[25] 그리고 IWC의 특허 기술인 컨스턴트 포스 투르비용 메커니즘을 적용한 94000 칼리버도 자체 제작 무브먼트에 해당한다.[26]

1970년대 쿼츠 파동 이후, 스위스 시계 산업 전반의 위기 속에서 IWC 역시 ETA SA와 같은 외부 공급사의 범용 무브먼트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ETA의 무브먼트 공급 축소 정책에 대응하고 기술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IWC는 자체적인 오토매틱 및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개발에 다시 집중했다. 그 결과 32000 칼리버와 69000 칼리버 시리즈가 개발되어 파일럿, 포르투기스, 인제니어 컬렉션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69000 칼리버 시리즈 중 69370은 같은 리치몬트 그룹 소속인 몽블랑의 MB 25.10 무브먼트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27]

외부 무브먼트를 수정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모델에는 주로 셀리타(Sellita) 사의 SW300 무브먼트를 IWC의 기준에 맞게 대폭 수정하여 35111 칼리버로 탑재한다. 또한, ETA/Valjoux 7750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는 오랜 기간 IWC의 여러 모델에 맞게 개량되어 사용되었다. 기술 책임자였던 쿠르트 클라우스는 1985년, 이 ETA 7750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영구 캘린더 모듈을 결합한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IWC가 매뉴팩처로서의 명성을 되찾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IWC는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할 때도 품질 향상을 위해 상당한 수정을 가하며, 때로는 ETA와 같은 공급사에 개선 요구를 전달하여 범용 무브먼트 자체의 정밀도 향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이 완료되어 완성도가 높은 개량형 범용 무브먼트, 특히 ETA 7750 기반 무브먼트는 IWC 내부 기술자들도 "흠잡을 데 없다"고 평가할 정도로 신뢰성이 높아 현재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시계 기술자 알베르 페라톤의 주도로 개발된 수동 Cal.89나 페라톤식 자동 감기 기구를 갖춘 Cal.85 시리즈 역시 IWC 무브먼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Cal.89는 높은 완성도로 1974년까지 생산된 롱셀러 무브먼트였다.

최근 IWC는 전 라인에 걸쳐 무브먼트의 자체 제작 비율을 높이는 추세지만, 동시에 기술적으로 검증되고 완성도 높은 개량형 범용 무브먼트의 장점을 살린 시계 제작도 병행하고 있다.

3. 3. 환경 등급

2018년 12월, 세계자연기금(WWF)은 스위스의 15개 주요 시계 제조업체 및 보석상에 대한 환경 등급을 담은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28][29] 이 보고서에서 IWC는 15개 제조업체 중 가장 높은 순위인 "야심적" 등급을 받았다.[30] WWF는 IWC가 이 등급을 받은 유일한 제조업체로서 "지속 가능한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면서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28] IWC는 2000년대 초부터 환경 보호 및 지속 가능한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31][32][33] 2018년에는 글로벌 보고 이니셔티브(GRI)의 국제 표준에 따라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32][34]

시계 및 보석 산업 전반적으로는 제조 과정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과 같은 귀금속 조달 과정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금 채굴은 오염, 토양 황폐화, 산림 벌채 등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35][29] 이러한 문제는 금 생산 상위 국가인 중국, 러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개발 도상국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36][37][38][39] 시계 및 보석 부문은 전 세계 연간 금 생산량의 50% 이상(2000ton 이상)을 소비하지만, 많은 시계 회사들은 원자재의 출처나 공급업체가 친환경적인 방식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밝히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35]

4. 주요 컬렉션

IWC는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계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라인업으로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포르투기저, 항공 시계의 전통을 잇는 파일럿 워치, 높은 내구성과 기술력을 강조하는 인제니어, 전문 다이버를 위한 아쿠아타이머,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의 다 빈치, 우아하고 세련된 포르토피노 등이 있다. 각 컬렉션은 IWC의 시계 제작 철학과 기술력을 반영하며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4. 1. 포르투기저 (Portugieser)

포르투기스


1939년 포르투갈의 시계 상인이었던 로드리게스와 티셰이라의 특별한 주문으로 탄생했다. 이들은 "크기는 상관없으니, 회중시계용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마린 크로노미터급 정밀도를 가진 스틸 케이스의 손목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IWC는 당시 회중시계용으로 가장 얇았던 Cal.74와 Cal.98 무브먼트를 사용하여 이 시계를 제작했다.

1958년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1993년 IWC 창립 125주년을 기념하여 '포르투기스 주빌리'라는 한정판 모델로 부활했다. 이후 큰 호응을 얻어 일반 라인으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발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베젤이 얇고 케이스가 크며, 단순하면서도 가독성이 뛰어난 다이얼 디자인이 특징으로, 우아하고 고전적인 매력을 지닌다.

=== 주요 모델 ===

  • '''포르투기스 크로노그래프''' (Portugieser Chronograph): 1998년 처음 출시된 이후 디자인이나 크기에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사랑받는 롱셀러 모델이다. 2019년에는 기존의 ETA/Valjoux 7750 무브먼트 대신 IWC 최초의 양산형 자사 제작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69000계를 탑재하여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여전히 IWC를 대표하는 인기 모델 중 하나이다.
  • '''포르투기스 퍼페추얼 캘린더''' (Portugieser Perpetual Calendar): 2003년에 발표되었다. 기존의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의 영구 캘린더 모듈을 더욱 정밀하게 개선하여 자사 제작 5000계 무브먼트에 탑재했다. 이 모델은 문페이즈 오차를 577.5년에 단 하루로 줄였으며,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 모양을 동시에 보여주는 더블 문페이즈 기능이 추가된 모델도 있다. 이후 2006년2015년에도 무브먼트를 교체하며 지속적으로 정밀도를 높여왔다.
  • '''포르투기스 에터널 캘린더''' (Portugieser Eternal Calendar): 2024년에 발표된 IWC 최초의 세큘러 캘린더 모델이다. 세큘러 캘린더 손목시계를 개발한 것은 파텍 필립, 스벤 안데르센, 프랭크 뮬러, 파란 마리에 이어 IWC가 5번째(손목시계로는 4번째)이다. IWC는 기존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에 단 8개의 고정밀 부품(400년 주기 기어 포함)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그레고리력의 복잡한 윤년 규칙(400년에 3번의 윤년 생략)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여, 이론적으로 수동 조정이 필요 없는 캘린더를 구현했다. 또한, 문페이즈 기능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22조 개 이상의 기어 조합을 검토하고 3개의 중간 기어를 갖춘 감속 기구를 개발하여, 오차를 무려 45,361,055년에 단 하루 수준으로 줄였다. 이 시계는 2024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최고상인 "황금 바늘상"을 수상했으며, "가장 정밀한 문페이즈 손목시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4. 2. 파일럿 워치 (Pilot's Watches)

1936년 군 전용 파일럿 워치를 처음 출시했다. 이후 1948년에는 파일럿 워치 '''마크 XI'''를 선보였다. 시간이 흘러 1993년에는 파일럿 워치 '''마크 XII'''가, 1999년에는 '''마크 XV'''가 출시되었다. 마크 시리즈는 꾸준히 계승되며 발전해왔다. 2012년에는 자체 제작 무브먼트를 중심으로 한 '''Top Gun|탑건eng''' 등 새로운 파일럿 모델들을 발표하며 라인업을 확장했다.

4. 3. 인제니어 (Ingenieur)

1955년에 처음 출시된 라인으로, 이름은 Ingenieur|인제니어de이며 '엔지니어'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이 시계는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하는 환경에서도 정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높은 내자성을 갖춘 모델로 개발되었다.

1976년에는 유명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새로운 '인제니어 SL' 모델이 발표되었다. 1989년에는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준인 500,000A/m의 내자 성능을 갖춘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9년에 잠시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2005년에 다시 부활하여 현대적인 스포츠 워치 라인으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에는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했던 초기 모델의 특징적인 나사 구멍 디자인을 복각하여 새롭게 리뉴얼된 모델을 발표하며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현재는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갖춘 모델들이 출시되고 있다.

4. 4. 아쿠아타이머 (Aquatimer)

아쿠아타이머


'''아쿠아타이머'''(Aquatimereng) 라인은 1967년에 처음 출시되었다. 당시 높아지던 스쿠버 다이빙의 인기에 발맞춰 제작된 다이버 시계이다. 초기 모델은 케이스 내부에 위치하며 전용 용두로 조작 가능한 회전 베젤을 갖춘 방수 시계였다.

1988년에는 독일 연방군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모델이 등장했다. 이는 기뢰 제거 임무를 수행하는 다이버를 위한 것으로, 기뢰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비자성 소재를 무브먼트에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1999년에는 전문가용 사양인 '딥 원'(Deep Oneeng) 모델이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기계식 수심계를 탑재했으며, 이후 3세대 모델까지 출시되었다.

4. 5. 다 빈치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혁신적인 사고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라인이다.

1985년에는 시계 역사상 중요한 모델로 평가받는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가 발표되었다. 이 시계는 ETA의 Valjoux 7750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쿠르트 클라우스가 설계한 영구 캘린더 모듈을 탑재했다. 서기 4자리 숫자로 2499년까지 연도를 디지털 방식으로 표시하며, 122년에 단 하루의 오차를 가지는 문페이즈 기능과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추었다. 개발자인 쿠르트 클라우스는 "견고하고 사용하기 쉬우며, 산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계 철학을 반영하여, 비교적 단순한 설계와 적은 부품 수로 높은 기능성과 정밀도를 구현했다. 이 모델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여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했으며, 용두 하나만으로 캘린더를 쉽게 조정할 수 있는 편리성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발매 첫해 판매량이 당시 시장에 나온 모든 영구 캘린더 시계의 판매량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2017년에는 새로운 '다 빈치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가 발표되었다. 이 모델은 IWC 자체 제작 무브먼트인 Cal.89000 계열을 탑재하여 성능을 향상시켰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추가하고, 문페이즈의 오차를 577.5년에 1일로 줄였으며, 파워 리저브는 약 68시간으로 기존 모델(44시간)보다 크게 늘어났다.

4. 6. 포르토피노 (Portofino)

이탈리아의 유명한 항구 도시 포르토피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라인으로,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 특징이다.[1] 1984년에는 포르토피노 핸드 와인드 문페이즈 모델이 처음으로 선보여졌다.[2] 이후 1995년에는 로마나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이 발표되며 라인업을 확장했다.[3]

5. 사회 공헌

IWC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자선 경매를 통한 수익금 기부와 고객 대상 잡지 ''Watch International'' 발행 등이 있다.

5. 1. 자선 경매

홍콩의 IWC 플래그십 스토어


1997년부터 IWC는 웹사이트에서 매년 시계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말리에 있는 에콜 데 사블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학교에 기부해왔다.[40] 이 학교는 투아레그족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2007년, IWC는 프랑스 작가이자 항공 선구자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를 기리기 위해 제작된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에디션 플래티넘 버전(Ref. 3201)을 경매에 부쳤다. 이 시계는 생텍쥐페리의 데뷔 소설인 ''남방 우편'' 원본과 함께 경매에 부쳐졌으며, 해당 원본에는 작가의 친필 헌사가 담겨 있었다.[41] 2009년 IWC는 빅 파일럿 에디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점을 출시했으며, 이 중 플래티넘으로 제작된 한 점은 자선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었다.

5. 2. ''Watch International''

IWC는 연 4회 고객 잡지인 ''Watch International''을 발행한다.[42] 이 간행물은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제공된다. 이 잡지에는 IWC에 대한 특집 기사와 기타 기사가 포함되어 있다.[43]

참조

[1] 웹사이트 Company Overview of IWC International Watch Co. AG https://www.bloomber[...]
[2] 웹사이트 Compagnie Financière Richemont SA - Home https://www.richemon[...] 2019-02-02
[3] 웹사이트 IWC - 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https://www.hautehor[...] 2019-02-02
[4] 웹사이트 History - 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https://www.hautehor[...]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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