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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빌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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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더 해빌런드는 제프리 더 해빌런드가 설립한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이다. 1920년에 설립되어 복엽기, 단엽기, 제트기 등 다양한 항공기를 개발했다. 특히, DH.60 모스, DH.82 타이거 모스와 같은 경비행기 시리즈와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인 DH.106 코멧을 개발하여 항공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더 해빌런드는 자회사로 드 해빌랜드 캐나다, 드 해빌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드 해빌랜드 엔진, 드 해빌랜드 프로펠러 등을 두었으며, 1960년 호커 시들리에 합병되었다.

2. 역사

1920년 제프리 더 해빌런드가 설립한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이다. 초기에는 에어코(Airco)에서 개발했던 DH 시리즈 항공기를 개량하고, 자체 개발한 집시 엔진을 탑재한 모스(Moth) 시리즈 경비행기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8] 모스 시리즈는 여러 항공 기록 수립에 기여했으며, 1928년에는 공개 회사로 전환되었다.[9]

1943년, 해트필드의 더 해빌런드 공장에서 모스키토 항공기 제작 중


이후 DH.88 코멧 레이서와 같은 고성능 항공기를 개발했으며,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목재 구조를 활용한 모스키토 폭격기/전투기를 개발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모스키토는 알루미늄 등 전략 물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으며, 더 해빌런드는 목재 및 금속 접착 기술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전쟁 중 로스톡에 설립한 가변 피치 프로펠러 공장은 독일 공군의 공격 목표가 되기도 했다.[10][11]

1949년 하트필드에서 촬영된 최초의 더 해빌런드 DH.106 코멧 시제품, 새로운 기술 시대를 상징한다.


전후에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인 DH.106 코멧을 개발하여 1952년 상업 운항을 시작하며 제트 시대를 열었다.[12] 그러나 실험기 DH.108 스왈로 추락 사고로 창업자의 아들 제프리 드 해빌랜드 주니어가 사망하고, 코멧 여객기 역시 금속 피로 등으로 인한 연이은 추락 사고를 겪으며 큰 위기를 맞았다. 사고 조사 후 재설계된 코멧 4가 1958년 다시 운항했지만, 이미 보잉 707, 더글러스 DC-8 등 경쟁 기종에게 시장 주도권을 내준 상태였다.

결국 경영난으로 인해 1960년 호커 시들리 그룹에 인수되었고, 1963년 호커 시들리 항공의 사업부로 통합되면서 독립적인 회사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13] 더 해빌런드의 마지막 설계는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와 호커 시들리 HS.125 비즈니스 제트기가 되었다. 한편, 회사는 장거리 탄도 미사일인 블루 스트릭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군사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하고 우주 발사체 유로파의 1단 로켓으로 활용되었다.[14][15]

2. 1. 초창기 (1920년대)

창업주 제프리 더 해빌런드는 젊은 시절부터 항공기에 관심을 가져 여러 비행기를 제작했으며, 에어코(Airco) 사에 입사하여 DH.1, DH.2 전투기 및 DH.4 폭격기 등을 설계했다. 그는 자신의 이니셜 'DH'를 항공기 명칭에 사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민간 항공기 수요 부족으로 에어코는 재정난을 겪었고, 1920년 1월 항공 사업에 관심이 없던 버밍엄 소형 무기 회사(BSA)에 인수되었다.[1] BSA의 경영진은 항공기 사업을 지속할 의사가 없었기에, 제프리 더 해빌런드는 조지 홀트 토마스(George Holt Thomas)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BSA로부터 에어코의 항공기 관련 자산 일부를 인수했다.[5]

이를 바탕으로 더 해빌런드는 1920년 9월 26일, 런던 인근의 스태그 레인 비행장(Stag Lane Aerodrome)에 더 해빌런드 항공기 회사(de Havilland Aircraft Company Limitedeng)를 설립했다.[3] 초기 자본금은 5만파운드였으며, 제프리 더 해빌런드(3천파운드)와 조지 홀트 토마스(1만파운드)가 주요 투자자였다.[4] 아서 에드윈 터너(Arthur Edwin Turner)가 회장을 맡았고, 찰스 클레멘트 워커(Charles Clement Walker)가 수석 엔지니어, 윌프레드 E. 닉슨(Wilfred E. Nixon)이 비서, 프란시스 E. N. 세인트 바브(Francis E. N. St Barbe)가 사업 및 판매 담당, 프랭크 T 히얼(Frank T Hearle)이 공장 관리자를 맡는 등 에어코 시절의 핵심 인력들이 합류했다.[7][8] 이후 앨런 새뮤얼 버틀러(Alan Samuel Butler)가 개인 항공기 제작을 의뢰하며 회사에 상당한 투자를 하기도 했다.[4] 회사는 1922년 스태그 레인 비행장을 2만파운드에 매입했다.[6]

초기에는 에어코 시절 개발된 DH 시리즈 복엽기를 개량하여 생산했으나, 곧 자체 개발한 집시 엔진을 탑재한 경비행기 개발에 집중했다. 1925년 2월 22일 첫 비행을 한 DH.60 모스(Moth)는[8]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성능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더 해빌런드는 모스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집시 모스, 타이거 모스 등 다양한 파생형을 선보였다. 이 경비행기들은 여러 항공 기록 수립에 기여했으며, 대표적으로 에이미 존슨(Amy Johnson)은 1930년 집시 모스를 타고 영국에서 호주까지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여 1928년 주식 시장에 상장하며 공개 회사가 되었고,[9] 같은 해 캐나다 시장을 겨냥한 모스 시리즈 생산을 위해 캐나다에 자회사인 데 하빌랜드 캐나다를 설립했다.

2. 2. 1930년대-1940년대: 발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제프리 더 해빌런드는 집시 엔진을 탑재한 DH.60 모스(Moth)를 설계했는데, 이 경비행기는 합리적인 가격과 우수한 성능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더 해빌런드는 모스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며 많은 경비행기를 판매했다. 1934년에는 호주의 콴타스를 위해 개발한 DH.86 익스프레스(Express)가 임페리얼 항공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중·단거리용 경여객기 주문을 확보했다. 같은 해, 맥로버트슨 항공 경주 우승을 목표로 개발된 쌍발 고성능 항공기 DH.88 코메트(Comet)는 실제로 해당 경주에서 우승하며 기술력을 입증했으며, 소형 여객기 DH.89 드래곤 래피드(Dragon Rapide) 역시 취항하여 이후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운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 더 해빌런드는 주로 민간 항공기 생산에 집중했다. 이 시기 생산된 군용기는 훈련기 및 표적기로 사용된 DH 타이거 모스 정도였으며, 그 외에는 경비행기, 농약 수송기 등을 제작했다. 군용기 개발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개발했던 폭격기들은 다른 회사들의 설계안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전쟁 직전, 더 해빌런드는 전체를 나무로 만든 DH.91 알바트로스(Albatross) 여객기를 제국항공에 납품했다. 이 기체의 성공적인 개발 경험과 목재 구조에 대한 노하우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더 해빌런드의 가장 유명한 항공기인 DH.98 모스키토(Mosquito)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당시 영국 공군이 새로운 중폭격기를 요구하자 더 해빌런드는 방어 기총을 제거하고 속도를 높인 목제 폭격기를 제안했지만, 공군은 방어 기총이 없는 목제 폭격기를 구식이며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핼리팩스와 맨체스터 폭격기를 채택했다. 그러나 더 해빌런드는 무게를 줄여 속도를 극대화하면 전투기보다 빠르게 비행하여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으며, 목재는 알루미늄과 같은 전략 물자에 해당하지 않고 가구 공장 등에 하청 생산이 가능해 더 실용적이라고 판단하여 개발을 지속했다. 결국 영국 공군으로부터 고속 정찰기 개발 의뢰를 받게 되었다.[26] 시제기 비행 이후에도 공군은 여전히 방어 기총 부재를 우려했으나, 더 해빌런드는 기총 모형을 장착했을 때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설득에 성공했다. 모스키토는 주로 목재로 제작되어 알루미늄 부족 문제에 대응하면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여 전쟁 수행에 크게 기여했다. 더 해빌런드는 이후 금속-목재 및 금속-금속 접착 기술을 선도적으로 활용하여 더욱 발전된 성능의 호넷(Hornet) 전투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전쟁 중 더 해빌런드는 모스키토 외에도 타이거 모스 훈련기와 에어스피드 사의 옥스포드 고등훈련기 생산을 담당했다. 또한 1937년에는 로스톡에 가변 피치 프로펠러 생산 공장을 설립하여 RAF에 납품했다. 이 공장은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독일 공군의 목표가 되기도 했으나, 1942년 7월 3일 두 대의 Ju 88 폭격기가 리빙턴 저수지를 이용해 시도한 저고도 폭격은 목표를 빗나갔다.[10][11]

전쟁이 끝나갈 무렵, 더 해빌런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성공했다. DH.100 뱀파이어(Vampire)는 이후 복좌 훈련형, 야간 전투기형 등 다양한 파생형으로 발전했다.

2. 3. 제트 여객기 시대와 합병 (1950년대-196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더 해빌런드는 군용 및 민간 항공기 분야에서 혁신적인 설계를 이어갔다. 특히, 영국의 다른 항공기 제작사들이 기존 프로펠러 여객기에 제트 엔진을 시험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반면, 더 해빌런드는 브라바존 위원회의 지원 아래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27] 그 결과,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인 DH.106 코멧이 탄생했다. 1949년 첫 시제품이 공개되었고, 1952년 5월 2일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가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에 코멧을 투입하며 상업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12] 4개의 더 해빌런드 고스트 제트 엔진을 장착한 코멧은 시속 500mph의 속도로 비행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했고, 약 12192.00m 상공을 비행하며 당시 군용 제트기에서나 가능했던 성능을 보여주었다. 코멧은 영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12]

그러나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여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실험적으로 개발한 꼬리 없는 제트기 DH.108 스왈로우는 시험 비행 중 3대 모두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창업자의 아들인 제프리 드 해빌랜드 주니어가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야심차게 상업 운항을 시작한 코멧 역시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초기 모델은 여압 문제로 공중에서 분해되거나 주익 설계 결함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상업 운항 시작 후 2년 동안 코멧은 세 차례의 대형 추락 사고를 겪었다.
영국 해외 항공(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의 코멧 Mk. 1
조사 결과, 두 건의 사고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금속 피로 현상으로 인한 기체 구조 결함이 원인이었으며, 다른 한 건은 악천후 속 비행 중 동체에 가해진 과도한 압력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왕립 항공 연구소(RAE)의 아놀드 알렉산더 홀 경이 이끈 연구팀은 기체 표면의 리벳 구멍 주변에서 미세한 피로 균열이 시작되어 파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잇따른 사고로 인해 코멧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1954년, 운항 중이던 모든 코멧 기체는 비행이 중단되었다. 더 해빌런드는 기체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하는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창문 모양을 타원형으로 바꾸고 기체 구조를 강화하는 등 안전성을 높인 새로운 코멧 4가 개발되어 1958년에 다시 상업 운항을 시작할 수 있었다.[12] 하지만 코멧이 운항을 중단한 사이, 미국보잉더글러스 에어크래프트는 코멧의 사고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보잉 707더글러스 DC-8 같은 더 빠르고 경제적인 제트 여객기를 개발하여 시장을 선점했다. 그 결과 코멧의 주문량은 급감했다.

한편, 더 해빌런드는 영국유럽항공(BEA)의 빅커스 비스카운트 여객기 대체 사업에 참여하여 세계 최초의 3발 제트 여객기인 DH.121 트라이던트 개발을 제안하여 채택되었다. 그러나 BEA의 요구에 맞춰 기체 크기를 줄이는 등 설계를 변경하면서 다른 항공사들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한 기종이 되었다. 오히려 초기 트라이던트 설계와 유사한 크기의 보잉 727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트라이던트는 총 117대가 생산되는 데 그쳤지만, 보잉 727은 1,800대 이상 판매되었다.

코멧 연속 추락 사고로 인한 경영 악화는 더 해빌런드의 독립적인 존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1960년, 더 해빌런드는 호커 시들리 그룹에 인수되었다.[13] 인수 후에도 1963년까지는 별도의 회사로 유지되었으나, 그해 호커 시들리 항공(Hawker Siddeley Aviation) 내의 더 해빌런드 사업부(The de Havilland Division)로 개편되었다.[13] 이로써 더 해빌런드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개발 중이던 기종들의 명칭도 'DH'에서 'HS'로 변경되었다. 트라이던트는 'HS.121'로, DH.125 비즈니스 제트기는 'HS.125'로 생산 및 판매되었다. 이 두 기종은 더 해빌런드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항공기가 되었다.

3. 주요 개발 항공기

더 해빌런드 사는 창립 초기 에어코(Airco) 시절 개발된 DH 시리즈 항공기 생산을 이어가는 것에서 시작하여, 자체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초기에는 모스(Moth) 시리즈와 같은 복엽기 개발에 주력하여 민간 항공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타이거 모스 같은 훈련기도 개발했다.

2008년 제국 전쟁 박물관 닥스포드에 전시된 에어코 DH.9


2005년 켐블 에어쇼의 DH.110 씨 빅센


이후 DH.88 코멧 경주기 등으로 고성능 항공기 개발 역량을 입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목재 구조의 혁신적인 모스키토 전투폭격기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호넷 전투기를 개발했다. 전후에는 세계 최초 상업용 제트 여객기인 DH.106 코멧 개발을 선도했으나, 초기 기술 문제와 사고를 겪었다.[12] 군용으로는 뱀파이어, 베놈, 씨 빅센 등을, 실험기로는 DH.108 스왈로우 등을 개발했다.

호커 시들리 인수 후에도 트라이던트 여객기, HS.125 비즈니스 제트기 등이 개발되었다.[13] 또한 글라이더(DH.52), 오토자이로(치에르바 C.24), 미사일(블루 스트릭)[14] 개발에도 참여했으며, 더 해빌런드 기술 학교에서도 자체 항공기(T.K. 시리즈)를 설계했다.

아래는 더 해빌런드가 개발에 참여하거나 직접 개발한 주요 항공기 중 일부이다.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루는 복엽기, 단엽기, 제트기 제외)

  • 제프리 드 해빌런드 개인 설계
  • 드 해빌런드 복엽기 No. 1
  • 로열 항공기 공장 F.E.1 (드 해빌런드 복엽기 No. 2)
  • 에어코 시절 드 해빌런드 설계
  • 에어코 DH.1
  • 에어코 DH.2
  • 에어코 DH.3
  • 에어코 DH.4 / DH.4A
  • 에어코 DH.5
  • 에어코 DH.6
  • 에어코 DH.9 / DH.9A / DH.9C / DH.9J
  • 에어코 DH.10 아미앙
  • 에어코 DH.11 옥스포드
  • DH.12 (미완성)
  • DH.14 오카피
  • DH.15 가젤
  • 에어코 DH.16
  • DH.18
  • 더 해빌런드 회사 초기 설계
  • DH.27 더비
  • DH.34
  • DH.37
  • DH.42 도마우스 / 딩고
  • DH.48 스페셜 (DH.9 개조)
  • DH.54 하이클리어
  • DH.56 하이에나
  • DH.65 하운드
  • DH.67 (글로스터 개발)
  • DH.72 캔버라
  • 글라이더
  • DH.52
  • 실험 항공기
  • DH.108 스왈로우
  • 오토자이로
  • 치에르바 C.24 (치에르바 설계, 더 해빌런드 제작)
  • 더 해빌런드 기술 학교 설계
  • 드 해빌런드 T.K.1
  • 드 해빌런드 T.K.2
  • 드 해빌런드 T.K.4
  • 드 해빌런드 T.K.5

3. 1. 복엽기

제프리 더 해빌런드는 집시 엔진을 탑재한 DH.60 모스(Moth)를 설계했다. 이 기체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성능 덕분에 큰 인기를 얻어 많이 판매되었다.[8] 이를 계기로 더 해빌런드사는 모스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집시 엔진을 장착한 다양한 경비행기를 선보였다. 초기 데 해빌런드 항공기는 에어코(Airco) 시절 개발된 DH 시리즈 복엽기 생산을 이어갔지만, 점차 자체 설계 기종으로 전환했다.

DH.82 타이거 모스.


모스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기종 중 하나는 DH.82 타이거 모스(Tiger Moth)이다. 이 복엽기는 주로 훈련기와 표적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모스 시리즈는 호넷 모스와 같은 파생형으로 이어졌다. 1930년 에이미 존슨(Amy Johnson)은 집시 모스를 타고 영국에서 호주까지 단독 비행에 성공하며 모스 시리즈의 성능을 입증했다.

1968년 RAF 네더헤이븐에 있는 육군 낙하산 협회의 DH.89 드래곤 래피드.


1934년에는 호주의 콴타스를 위해 개발한 DH.86 익스프레스(Express)가 임페리얼 항공(Imperial Airways)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중·단거리 여객기 시장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된 DH.89 드래곤 래피드(Dragon Rapide)는 소형 여객기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에어 링구스(Aer Lingus)가 초기에 운용한 기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DH.83 폭스 모스, DH.87 호넷 모스, DH.90 드래곤플라이 등 다양한 복엽기가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더 해빌런드는 주로 민간 항공기 생산에 집중했으며, 군용기로는 타이거 모스와 같은 훈련기나 일부 경비행기, 농약 수송기 등을 생산했다. 이 시기에 개발했던 폭격기들은 다른 회사들의 설계안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주요 복엽기 목록

  • 에어코 DH.1
  • 에어코 DH.2
  • 에어코 DH.6
  • DH.50
  • DH.51
  • DH.60 모스 (시러스 모스, 제네트 모스, 집시 모스, 모스 메이저 포함)
  • DH.61 자이언트 모스
  • DH.66 허큘리스
  • DH.82 타이거 모스
  • DH.83 폭스 모스
  • DH.84 드래곤
  • DH.86 익스프레스
  • DH.87 호넷 모스
  • DH.89 드래곤 래피드
  • DH.90 드래곤플라이
  • DH.92 돌핀

3. 2. 단엽기

모스 마이너와 같은 초기 단엽기 이후, 더 해빌런드는 다양한 목적의 단엽기를 개발하며 기술력을 발전시켰다.

DH.88 코멧은 쌍발 피스톤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경주기로, 1934년 영국-호주 간 맥로버트슨 항공 경주에서 우승하며 명성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는 전체를 목재로 만든 4발 엔진 여객기인 DH.91 앨버트로스를 제국항공에 납품했다. 이 기체의 성공은 이후 군용기 개발 시도(DH.96, DH.97)로 이어졌으나, 영국 공군은 목재 항공기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드 해빌런드 모스키토 B 35 (FB Mk.VI로 재구성, 앨버타 항공 박물관에 전시)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유명한 더 해빌런드의 단엽기는 단연 DH.98 모스키토이다. 영국 공군이 방어 기총이 없는 목재 폭격기에 회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해빌런드는 방어 무장을 제거하고 속도를 높여 생존성을 확보한다는 혁신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목재는 알루미늄과 같은 전략 물자를 절약하고 가구 공장 등에서도 생산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장점도 있었다.[26] 결국 고속 정찰기로 개발 의뢰를 받아 제작된 모스키토는 뛰어난 성능을 입증하며 전투폭격기 등 다양한 임무에서 활약했고, 목재 구조 설계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모스키토의 성공 이후, 금속-목재 접착 기술을 활용한 고성능 전투기 DH.103 호넷이 개발되었다.

2003년 켐블에 있는 드 해빌런드 DH.104 도브


전후에는 DH.104 도브와 같은 쌍발 엔진 소형 여객기와 4발 엔진 여객기인 DH.114 헤론 등을 개발하여 민간 항공 시장에 기여했다.

다음은 더 해빌런드가 개발한 주요 피스톤 엔진 단엽기 목록이다.

  • DH.29 돈캐스터: 10인승 여객기
  • DH.53 허밍버드: 초경량 단엽기
  • DH.71 타이거 모스: 경주기
  • DH.75 호크 모스
  • DH.77: 경량 전투기
  • DH.80 푸스 모스
  • DH.81 스왈로우 모스
  • DH.85 레오파드 모스
  • DH.88 코멧: 경주기
  • DH.91 앨버트로스: 4발 엔진 여객기
  • DH.93 돈
  • DH.94 모스 마이너: 단엽기 훈련기

2012년 6월 베날라 항공 박물관에 있는 전 RAAF DH.94 모스 마이너

  • DH.95 플라밍고: 쌍발 엔진 여객기
  • DH.98 모스키토 & 씨 모스키토: 전투폭격기
  • DH.103 호넷 & 씨 호넷: 쌍발 엔진 전투기
  • DH.104 도브 & 데본: 쌍발 엔진 여객기
  • DH.114 헤론: 4발 엔진 여객기

3. 3. 제트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더 해빌런드는 군용 및 민간 분야에서 첨단 항공기 설계를 지속했으며, 특히 제트기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빅커스와 같은 다른 영국 회사들이 기존 프로펠러 여객기에 제트 엔진만 시험적으로 장착한 반면, 더 해빌런드는 브라바존 위원회 위원이었던 제프리 드 해빌랜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제트 여객기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27]

그 결과,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인 DH 106 코멧이 탄생했다.[27] 코멧은 이전 여객기보다 두 배 빠른 시속 약 804.67km의 속도와 약 12192.00m의 높은 고도로 비행할 수 있었으며, 이는 당시 영국의 국가적 자부심이 되었다.[12]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가 운영을 맡아 1952년 5월 2일, 런던-요하네스버그 노선에 정식 취항하며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12] 4개의 더 해빌런드 고스트 제트 엔진을 장착한 코멧은 전 세계 주요 도시 간의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그러나 코멧 개발과 운용 과정에서 더 해빌런드는 큰 시련을 겪었다. 시험용으로 개발된 꼬리 없는 제트기 DH 108 스왈로우 3대는 모두 음속 돌파 시험 중 추락했으며, 이 사고로 창업자의 아들이자 시험 조종사였던 제프리 드 해빌랜드 주니어가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다. 초기형 코멧 역시 주익 설계 결함으로 추락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후 상업 운항 중이던 코멧 여객기들이 여압 문제로 인한 금속 피로 때문에 공중 분해되는 연속적인 사고가 발생했다.[12] RAE의 아놀드 알렉산더 홀 경이 이끄는 조사팀은 기체 창문 모서리의 응력 집중과 리벳 구멍 주변에서 발생한 미세한 피로 균열이 사고의 원인임을 규명했다. 이 외에도 악천후 속 비행 중 동체에 과도한 하중이 가해져 발생한 사고도 있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1954년, 모든 코멧 기종의 운항이 중단되었다. 더 해빌런드는 타원형 창문 채택, 구조 보강 등 광범위한 재설계를 거쳐 안전성을 강화한 코멧 4를 개발했고, 1958년에야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12] 하지만 운항 중단 기간 동안 미국의 보잉 707더글러스 DC-8 같은 더 빠르고 경제적인 후발 제트 여객기들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코멧의 기술적 우위는 사라졌고, 주문량은 급감했다.

코멧 사고는 더 해빌런드의 재정 상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결국 1959년 호커 시들리에 인수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인수는 1960년에 이루어졌으며, 1963년까지는 별도 회사로 유지되다가 호커 시들리 항공의 더 해빌런드 사업부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이 시점부터 개발 중이던 기종의 명칭은 'DH'에서 'HS'로 변경되었다.[13]

더 해빌런드의 마지막 주요 설계 중 하나는 영국유럽항공(BEA)의 빅커스 비스카운트 대체 요구에 따라 개발된 DH 121 트라이던트였다. 이는 세계 최초의 3발 제트 여객기 설계안이었으나, 특정 항공사인 BEA의 요구에 맞춰 기체 크기가 당초 설계보다 축소되었다. 이 결정은 다른 항공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초기 DH 121 설계와 크기가 비슷했던 경쟁 기종 보잉 727에게 시장 주도권을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호커 시들리로서 트라이던트는 총 117대 생산에 그친 반면, 보잉 727은 1,800대 이상 판매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더 해빌런드의 또 다른 후기 설계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제트기인 DH 125(이후 호커 시들리 HS.125)가 있다.

한편, 더 해빌런드는 항공기 외에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도 참여하여 액체 연료 기반의 블루 스트릭을 개발했다.[14] 군사적으로 운용되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공동 우주 발사체 프로젝트인 유로파의 1단계 로켓으로 활용되었다. 블루 스트릭 자체는 시험 비행에서 좋은 성능을 보였으나, 프랑스와 독일이 제작한 상단 로켓의 연이은 실패로 유로파 프로그램은 1973년에 취소되었고 블루 스트릭도 함께 퇴역했다.[15]

더 해빌런드는 항공기 안전 연구의 일환으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시험을 위해 1950년경 치킨 건(닭을 발사하여 충돌 영향을 시험하는 장치)을 고안하기도 했다.

4. 자회사

더 해빌런드는 사업 확장을 위해 여러 자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주요 자회사들은 다음과 같다.


  • 드 해빌랜드 캐나다: 캐나다 시장을 위한 항공기 생산 및 현지 환경에 맞는 개조를 담당했다.
  • 드 해빌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을 위한 항공기 조립, 수리 및 부품 공급을 담당했으며, 이후 자체 설계 및 생산도 진행했다.
  • 드 해빌랜드 엔진 회사: 항공기 엔진 설계 및 생산을 담당하며 집시 엔진 시리즈와 제트 엔진 등을 개발했다.
  • 드 해빌랜드 프로펠러: 프로펠러 면허 생산으로 시작하여 유도 미사일 개발 및 생산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4. 1. 드 해빌랜드 캐나다

부유물 위에 있는 애들레어 에비에이션(Adlair Aviation) 소속 드 해빌랜드 캐나다 DHC-2 비버 Mk I


플라이비에서 운용했던 봄바디어 (드 해빌랜드 캐나다) 대시 8


드 해빌랜드 항공기 오브 캐나다(de Havilland Aircraft of Canada Ltd.)는 1928년 캐나다 시장을 위한 드 해빌랜드 항공기 제작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특히 혹독한 캐나다 환경에 적합하도록 기존 설계를 개조하는 경우도 있었다.[16] 설립 초기에는 모회사인 영국 드 해빌랜드의 DH.60 집시 모스와 DH.82 타이거 모스 같은 기체를 주로 생산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 공장은 영국 본토의 항공기 공장을 지원하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항공기 생산을 확대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쟁 이후 드 해빌랜드 캐나다는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에 나서 DHC-1부터 DHC-8까지 자체 설계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항공기들은 캐나다의 운용 환경에 맞춰 개발되었으며, 특히 견고함과 STOL(단거리 이착륙) 성능이 뛰어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드 해빌랜드 캐나다는 전쟁 중 캐나다의 국영 기업이 되었으며, 1962년에는 모회사인 호커 시들리에 의해 아브로 캐나다의 생산 설비가 드 해빌랜드 캐나다로 이관되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 캐나다 정부는 드 해빌랜드 캐나다를 다시 민영화하여 1985년 12월 보잉에 매각했다.[17] 그러나 보잉의 자회사로 편입된 기간은 길지 않았고, 1992년에는 봄바디어 에어로스페이스에 다시 매각되었다.

2018년 11월, 롱뷰 항공 캐피탈(Longview Aviation Capital Corp.)은 봄바디어 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봄바디어 대시 8 프로그램과 함께 '드 해빌랜드 캐나다' 브랜드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롱뷰 항공 캐피탈은 이미 2005년 자회사인 바이킹 에어를 통해 DHC-1부터 DHC-7까지 단종된 드 해빌랜드 캐나다 항공기의 형식 증명서와 관련 권리를 확보한 상태였다.[18] 규제 당국의 승인을 거쳐 2019년 6월 3일 완료된 이 거래를 통해, 수십 년 만에 모든 드 해빌랜드 캐나다 항공기 제품 라인이 '드 해빌랜드 항공기 오브 캐나다 리미티드(De Havilland Aircraft of Canada Limited)'라는 이름 아래 통합되었다.[19] 현재 이 회사는 DHC-8(봄바디어 Q400) 기종의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4. 2. 드 해빌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해외 자회사 중 최초로 1927년 3월 오스트레일리아에 설립된 곳은 de Havilland Aircraft Pty. Ltd.였다. 1930년 회사는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이전하여 모회사의 대리점 역할을 했으며, 모회사의 인기 있는 스포츠 및 여객기 모델의 조립, 수리 및 부품 시설을 운영했다. 드 해빌랜드 오스트레일리아(DHA)가 직접 항공기를 설계하고 완전하게 제조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부터였다. 이때 회사는 뉴사우스웨일스주 뱅크스타운에서 DH.82 타이거 모스 주 훈련기 생산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DHA는 일본의 오스트레일리아 침공 시 사용할 소형 병력 수송 글라이더를 설계했다. DH-G1은 1942년 중반에 등장했으며 DH.84 드래곤 전방 동체를 사용했는데, 이 중 87대가 항법 훈련기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두 대는 이듬해 생산된 최종 DH-G2의 프로토타입으로 사용되었지만, 당시에는 필요성이 사라져 DH-G2는 6대만 제작되었다. 또한 회사는 모스키토의 제조를 시작하여 1944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왕립 공군(RAAF)에 처음으로 인도를 시작했다. 1943년에서 1948년 사이에 뱅크스타운에서 총 212대의 모스키토가 제작되었다. 이 항공기 중 일부는 1953년까지 RAAF에서 운용되었다.

데 하빌랜드 뱀파이어의 라이선스 생산은 1948년에 시작되었으며, 190대 중 첫 번째 항공기는 1949년에 비행했다.

또 다른 DHA 설계인 DHA-3 드로버는 1948년과 1953년 사이에 제조되었다. 총 20대만 생산되었으며, 주로 로열 플라잉 닥터 서비스(RFDS), 트랜스 오스트레일리아 항공(Trans Australia Airlines) 및 콴타스에 공급되었다. DHA-3 드로버는 DH.104 Dove에서 파생된 3개의 엔진을 장착한 경량 수송기로, 6~8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었다. DHA가 전쟁 중에 생산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흔했던 DH.84 드래곤을 대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새로운 설계에 선택된 엔진은 de Havilland Gipsy Major Mk-10 4s였다. 여러 드로버는 나중에 성능 향상을 위해 더 강력한 라이코밍 O-360 수평대향형 엔진으로 재장착되었다.

1959년에는 뱅크스타운 공장에 de Havilland Marine이라는 보트 건조 부서가 설립되었다.

드 해빌랜드 오스트레일리아는 보잉 오스트레일리아(Boeing Australia)에 인수되었고, Hawker de Havilland Aerospace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9년 2월 6일, 보잉은 Hawker de Havilland Aerospace가 Boeing Aerostructures Australia로 이름을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4. 3. 드 해빌랜드 엔진

드 해빌랜드는 항공기 제작뿐만 아니라 항공기 엔진 생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엔진 설계 및 생산을 전문 회사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관행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영국 내에서는 브리스톨 항공기 회사나 암스트롱 휘트워스 항공기와 암스트롱 시들리처럼 엔진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23]

드 해빌랜드의 대표적인 엔진으로는 "집시(Gipsy)" 시리즈가 있다. 이후 개발된 집시 메이저(Gipsy Major)와 같은 엔진들은 성공적이고 인기 있는 동력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드 해빌랜드가 제작한 거의 모든 경량 항공기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사의 항공기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집시 엔진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주로 사용되던 방사형 엔진이나 대향형 엔진과 달리 직렬 엔진 형태를 가졌다는 특징이 있다.[2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트 엔진 시대가 열리면서 드 해빌랜드는 롤스로이스, 메트로빅 등과 초기 제트 엔진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프랭크 핼포드를 영입하고 그의 회사를 인수했으며, 이를 통해 제트 전투기용 고블린 및 고스트 엔진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이 엔진들은 이후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드 해빌랜드 코멧에 장착되기도 했다.[23]

드 해빌랜드가 개발한 주요 엔진은 다음과 같다.

  • 왕복 엔진
  • 집시
  • 집시 메이저
  • 집시 식스
  • 터보제트 엔진
  • 고블린
  • 고스트
  • 자이론
  • 자이론 주니어
  • 로켓 엔진
  • 스프라이트
  • 스펙터

4. 4. 드 해빌랜드 프로펠러

뮌헨 오버슐라이스하임에 있는 도이체 박물관의 블루 스트릭 미사일


드 해빌랜드 프로펠러는 1935년에 해밀턴 스탠다드 프로펠러를 면허 생산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이다. 이후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파이어스트릭 공대공 미사일과 블루 스트릭 탄도 미사일과 같은 유도 미사일 및 기타 미사일을 생산했다.

5. 유산

제프리 드 하빌랜드 동상, 허트퍼드셔 대학교, 해트필드


더 해빌런드 사는 교육 목적으로 허트퍼드셔 카운티 의회에 부지를 기증했다. 이 부지는 이후 해트필드 기술 대학으로 개발되었으며, 현재는 허트퍼드셔 대학교의 칼리지 레인 캠퍼스이다. 회사는 1960년 호커 시들리에 인수되었고, 1978년 BAE 시스템스로 합병되었다. BAE 시스템스 부지는 1993년에 폐쇄되었으나, 허트퍼드셔 대학교가 2003년 9월 폐쇄된 부지 일부를 매입하여 드 하빌랜드 캠퍼스를 조성하였다.[25] 해트필드의 항공우주 역사는 오늘날 코멧 웨이(Comet Way)와 드래곤 로드(Dragon Road)와 같은 지역 거리 이름에 남아 기념되고 있다.[24]

참조

[1] 서적 De Havilland Janes
[2] 서적
[3] 간행물 Flight Magazine 1920-10-07
[4] 웹사이트 The De Havilland Aircraft Company. http://www.rafmuseum[...] 2014-04-03
[5] 서적 De Havilland Janes
[6] 간행물 Flight Magazine 1940-09-20
[7] 서적 Airco, the Aircraft Manufacturing Company The Crowood Press
[8] 뉴스 Obituary: Sir Geoffrey de Havilland, O.M. The Times 1965-05-22
[9] 간행물 Flight Magazine 1940-09-20
[10] 웹사이트 Luftwaffe Over Rivington https://www.angelfir[...] P Lacey 2019-08-15
[11] 뉴스 Factory took flight to help win the war http://www.thebolton[...] 2021-09-30
[12] 뉴스 On This Day: Comet inaugurates the jet age. http://news.bbc.co.u[...] BBC News 1952-05-02
[13] 웹사이트 de Havilland History. http://rafmuseum.org[...] RAF Museum 2007-08-12
[14] 문서 de Havilland propellers
[15] 서적 History of the Space Shuttle, Volume Two: Development of the Space Shuttle, 1972–1981 Smithsonian 2015-06-11
[16] 웹사이트 de Havilland Canada. http://www.globalsec[...] 2015-04-14
[17] 웹사이트 Los Angeles Times, Dec 3, 1985 https://www.latimes.[...] 1985-12-03
[18] 간행물 Longview Aviation Capital Corp. Acquires Dash 8 Program from Bombardier Inc. https://www.lvav.ca/[...] Longview Aviation Capital Corp. 2018-11-08
[19] 뉴스 Longview completes Dash 8 buy and forms De Havilland Aircraft https://www.flightgl[...] 2019-06-03
[20] 서적
[21] 간행물 White's Air Directory and Who's Who in New Zealand aviation
[22] 웹사이트 de Havilland Rongotai info sought. http://rnzaf.proboar[...] 2011-09-07
[23] 문서
[24] 웹사이트 UH 2020 Estates Vision http://www.welhat.go[...] 2014-10-01
[25] 웹사이트 Our history. http://www.herts.ac.[...] 2014-09-30
[26] 문서
[27]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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