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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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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버티선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 수송 작전에 투입된 대량 생산 표준형 화물선이다. 1939년 전쟁 발발 후 영국 지원과 미국의 참전에 대비하여 미국 정부가 신속 건조를 목표로 개발했다. 헨리 J. 카이저가 이끄는 회사들이 건조를 담당하여 '카이저 선'으로도 불렸으며, 블록 공법과 용접 기술을 활용하여 건조 기간을 단축했다. 초기에는 구조적 결함으로 선체 균열 문제가 발생했으나, 이후 기술 발전을 통해 개선되었다. 전쟁 중 수송선, 병력 수송선 등으로 활약했으며, 전후에는 상선으로 활용되거나 개조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일부 선박이 박물관선으로 남아 있으며, 조선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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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선 - [배(Ship)]에 관한 문서
개요
SS 존 W. 브라운, 2000년에 촬영된 현존하는 리버티선 4척 중 하나
SS 존 W. 브라운, 2000년에 촬영된 현존하는 리버티선 4척 중 하나
종류화물선
건조 국가미국
건조 조선소미국 내 18개 조선소
척당 건조 비용미화 2백만 달러 (}}년 미화 기준)
총 계획 척수2,751척
총 건조 척수2,710척
현재 활동 척수2척 (이동하는 박물관선)
총 보존 척수4척
크기 및 성능
총톤수7,176 톤
재화중량톤수10,865 톤
추진2개의 석유 연소 보일러
삼중 팽창 증기 엔진
단일 스크류,
탑승 인원38–62명 USMM
21–40명 USNAG
무장
무장선미 장착 4인치 (102mm) 갑판 포 (수상 잠수함 공격용), 다양한 대공포
기타 정보

2. 역사적 배경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미국의 우호국인 영국은 군수 물자 수송 증가와 독일 해군 함정의 해상 수송로 공격으로 인해 화물선 보충이 시급했다. 미국 정부는 표준형 화물선 건조를 추진, 디트로이트의 조선업자 Henry J. Kaiser|헨리 존 카이저영어를 중심으로 하는 Six Companies, Inc.|6개 회사 연합영어이 새로운 규격 화물선 개발·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리버티 선은 '카이저 선'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7]

이 간이형 급속 건조용 화물선에는 미국에서의 선형 규격으로 "EC2-S-C1" 코드가 부여되었다. "EC"는 "Emergency Cargo(비상용 화물선)", "2"는 전장 약 121.92m~약 137.16m급, "S"는 증기 기관(steam engines), "C1"은 해당 규격의 제1호 선형을 의미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리버티 선 제1호인 SS Patrick Henry|패트릭 헨리|label=패트릭 헨리영어 진수식에서 "이 배는 유럽에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이후 수백 척의 리버티 선이 대형 조선소뿐만 아니라 해안과 호안에 급조된 조선소에서도 건조되었다. 초기에는 1척당 230일이 걸렸지만, 블록 공법 등 급속 건조 기술 발달로 평균 건조 기간은 42일까지 단축되었다. 1943년에는 하루에 3척의 리버티 선이 건조되기도 했다.

SS Robert E. Peary|로버트 E. 피어리영어는 캘리포니아 주리치몬드의 Permanente Metals|퍼머넌트 메탈스영어사 Richmond Shipyards|리치몬드 조선소영어에서 1942년 11월 12일 기공 후 4일 15시간 29분 만에 진수(3일 후 준공)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의도적인 기록 달성 목적의 공사였지만, 2000년대까지도 깨지지 않은 대형 선박 건조 속도 기록이다.

리버티 선은 처음에는 유명한 미국인의 이름을 따서 선명을 붙였으나, 건조 수가 많아지면서 이름이 고갈되어 미국인 외 인물이나 생존 인물의 이름도 사용되었다.

리버티 선은 T2급 탱커와 함께 군사 수송의 주력을 담당했고, 무상 원조를 통해 연합국에 제공되어 수송선 손실을 보충했다. 빅토리 선 등 개량형 규격 화물선이 건조되면서 리버티 선 건조는 종료되었지만, 리버티 선의 압도적인 수송량은 전쟁 수행에 큰 기여를 했다.

전시 중 235척의 리버티 선이 전투 또는 사고로 상실되었고, 종전 직전까지 750척이 해체되었으나 1,700척 이상이 남았다. 종전 후 미국 정부는 1946년 선박 매각법을 제정, 700척 이상을 세계 각국 상선 회사에 저렴하게 매각했다. 그리스이탈리아는 리버티 선을 대량 도입하여 전후 해운업 재건에 성공했다. 일본은 전후 부흥기에 중고 화물선을 대량 구입했지만, 대부분 노후 선박이었고 리버티 선 도입은 없었다.

오늘날에도 해운 업계에서는 10000ton급 화물선을 "리버티 선급 화물선"이라 부른다. 현존하는 리버티 선은 SS Jeremiah O'Brien|제레마이아 오브라이언영어과 SS John W. Brown|존 W. 브라운영어 2척으로, 모두 동태 보존되어 있다. SS Jeremiah O'Brien|제레마이아 오브라이언영어은 기념함으로 개조되었으며, 작동 가능한 왕복식증기 기관은 1997년 영화 『타이타닉』 기관실 장면 CG에 사용되었다.

2. 1. 건조 배경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미국의 우호국인 영국은 군수 수송 증가와 독일 해군 함정의 해상 수송로 공격으로 화물선 보충이 시급했다. 미국 정부는 표준형 화물선 건조를 추진, 디트로이트의 조선업자 헨리 J. 카이저를 중심으로 하는 '6개 회사 연합'이 새로운 규격 화물선 개발·생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리버티 선은 '카이저 선'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7]

이 간이형 급속 건조용 화물선에는 미국에서의 선형 규격으로 "EC2-S-C1" 코드가 부여되었다. "EC"는 "Emergency Cargo(비상용 화물선)", "2"는 전장 400-450피트급, "S"는 증기 기관(steam engines), "C1"은 해당 규격의 제1호 선형을 의미한다.

2. 2. 설계 및 생산

미국 해사 위원회는 용접을 대부분 활용하고 유류 보일러를 사용하는 'EC2-S-C1' 설계를 도입했다. 'EC'는 긴급 화물(Emergency Cargo), '2'는 길이가 약 121.92m에서 약 137.16m 사이인 선박(수선 길이), 'S'는 증기 엔진, 'C1'은 설계 C1을 의미한다. 이 설계는 노동 비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리벳 박기를 대부분 용접으로 대체하여 건조 속도와 비용을 줄였다.[7]

리버티 선은 약 10160470.00kg의 화물을 운송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선박당 한 종류의 화물을 운송했지만, 전쟁 중에는 이를 훨씬 초과하는 화물을 운송했다.[7]

조선 업계의 거물이었던 헨리 J. 카이저


리버티 선의 건조는 디트로이트의 조선업자 헨리 J. 카이저를 중심으로 하는 식스 컴퍼니가 담당했다. 이 때문에 리버티 선은 '''카이저 선'''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1척당 230일이 걸렸지만, 블록 공법 등 급속 건조 기술의 발달로 평균 건조 일수는 42일까지 단축되었다. 1943년에는 하루에 3척의 리버티 선이 새로 준공되었다.

리버티 선 1척 SS 로버트 E. 피어리는 캘리포니아 주리치몬드에 있는 퍼머넌트 메탈스사의 리치몬드 조선소에서 1942년 11월 12일, 기공 후 불과 4일 15시간 29분 만에 진수하는 건조 속도 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기록 달성을 위한 의도적인 공사였지만, 본격적인 대형 선박의 건조 속도로는 2000년대에 이르러서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3. 주요 특징

자유선을 추진하는 데 사용된 유형의 140톤 수직 삼중 팽창 증기 기관, 납품 전에 테스트를 위해 조립됨


자유의 배 건조에 참여한 젊은 흑인 여성 용접공. 동원된 그녀의 전 직업은 웨이트리스였다고 한다(1943년 리치몬드, 카이저 조선소)


리버티선은 약 10160470.00kg의 화물을 운송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보통 한 종류의 화물을 실었지만, 전쟁 중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화물을 운송했다.[7]

1936년, 미국 상선법 통과로 매년 50척의 상선 건조에 보조금이 지급되었고, 이 선박들은 미국 해군의 보조선이나 미국 상선대에서 운영될 수 있었다. 1939년과 1940년에는 건조량이 각각 두 배로 늘어 연간 200척이 되었다. 당시 선박 유형에는 유조선 2척과 상선 3척이 포함되었으며, 모두 증기 터빈으로 구동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감속 기어와 같은 산업 능력의 제한으로 인해 이러한 설계의 선박은 상대적으로 적게 건조되었다.

1940년, 영국 정부는 전쟁 손실을 보충하고 상선단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조선소에 오션급 화물선 60척을 주문했다. 이 선박들은 당시 기준으로 단순했지만 상당히 컸으며, 구식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2500hp 복합 증기 기관을 사용했다. 영국은 당시 석탄 광산이 많고 국내 석유 생산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정했다.[5]

이전 설계는 1939년에 제작된 단순한 부정기선 설계를 기반으로 J.L. Thompson & Sons가 선덜랜드에서 생산한 단순한 선박을 기반으로 했으며, 건조 및 운영 비용이 저렴했다. 1939년에 건조된 SS ''도링턴 코트''가 그 예이다.[6] 이 주문은 흘수를 증가시켜 배수량을 늘리는 것을 명시했다. 숙소, 브리지, 주 엔진은 중앙에 위치했으며, 긴 후미 연장부를 통해 주 엔진 샤프트를 프로펠러에 연결하는 터널이 있었다. 최초의 오션급 선박인 SS ''오션 뱅가드''는 1941년 8월 16일에 진수되었다.

미국 해사 위원회는 이 설계를 수정했는데, 부분적으로는 미국 건설 관행과의 일치를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건조 속도와 비용을 더욱 줄이기 위해서였다. 미국 버전은 'EC2-S-C1'으로 지정되었는데, 'EC'는 긴급 화물(Emergency Cargo), '2'는 길이 약 121.92m 에서 약 137.16m 사이인 선박(수선 길이), 'S'는 증기 엔진, 'C1'은 설계 C1을 의미한다. 새로운 설계는 노동 비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리벳 박기를 대부분 용접으로 대체했으며, 중유 연소 보일러를 사용했다. 이는 상선법 설계로 채택되었으며, 생산은 헨리 J. 카이저가 이끄는 식스 컴퍼니 컨소시엄에 수여되었다.

1941년 3월 27일, 무기 대여법 선박의 수는 방위 지원 추가 예산 법안에 의해 200척으로 증가했으며, 4월에는 다시 306척으로 증가했으며, 이 중 117척이 리버티선이었다.

3. 1. 선체 구조

리버티선은 전체적으로 생산성과 기능성을 중시하여 단순하고 간소하게 구성된, 전장 약 134.60m의 범용 화물선이다.

대부분 2,500HP급의 3단 팽창식 증기 왕복 기관을 탑재하고 단순한 단축 스크루 사양이었다. 출력이 약하여 최대 속도도 11노트 정도로 저속이었지만, 당시 대출력 선박용 기관의 주류였던 증기 터빈은 군함에 우선적으로 공급되었고, 민간 조선소는 숙련 기술자가 필요한 왕복 기관 제조에 익숙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건조할 수 있었다. 이 시대 미국에서는 선박용 대형 저속 디젤 엔진 생산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제한된 선박용 디젤도 주로 잠수함용 엔진이었으므로, 이미 구식이던 증기 왕복 기관을 채택한 것은 실정에 맞았다. 보일러는 연료 보급과 운용 인원 측면에서 석탄 연소보다 유리한 중유 연소 보일러 2기를 탑재하여, 연료 탑재 및 보일러로의 연료 공급 측면에서 인력 절감 및 공간 절약을 할 수 있었다.

동력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구식 설계를 채택했지만, 선체 건조에는 새로운 기법이 도입되었다. 건조 기간 단축을 위한 본격적인 블록 공법과, 선체 강판 결합 방법으로 리벳 대신 용접 접합을 채택한 것이다. 리벳은 공기(工期)와 숙련을 요하여 비용 증가를 초래했지만, 용접은 작업이 간편하고 빠르며 비숙련 노동자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들은 건조 속도를 크게 높였지만, 선체 파손(후술)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설계 강도 또한 5년 정도의 운용 기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현존하는 리버티선 중 하나인 "제레마이아 오브라이언"

3. 2. 추진 기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증기 터빈은 이전의 왕복 복합 증기 기관에 비해 효율성이 뛰어나 해상 증기 기관으로 선호되었지만, 증기 터빈 엔진에 필요한 이중 헬리컬 감속 기어를 가공하기 위한 매우 정밀한 제조 기술이 필요했다. 이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들은 이미 군함 건조 프로그램에 전념하고 있었다. 따라서 구식 설계의 수직 삼단 팽창 증기 기관이 리버티선을 위해 선택되었다.[10]

이 엔진은 리버티선 프로그램에 필요한 수량으로 제작하기에 더 저렴하고 쉬웠으며, 더 많은 회사에서 제조할 수 있었다. 18개의 다른 회사가 이 엔진을 제작했으며, 부품은 서로 호환 가능했다. 개방적인 설계로 대부분의 움직이는 부품을 쉽게 보고 접근하고 윤활할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엔진은 길이 21feet, 높이 19feet였으며, 76 rpm으로 작동하여 리버티선을 약 11knots로 추진하도록 설계되었다.[11]

당시 대출력 선박용 기관의 주류였던 증기 터빈의 공급이 군함에 우선적으로 할당되었고, 민간 조선소는 숙련된 기술인 왕복 기관의 제조에 익숙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건조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미국에서는 선박용 대형 저속 디젤 엔진의 생산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제한된 선박용 디젤도 주로 잠수함용 엔진이었으며, 그 점에서도 이미 구식이던 증기 왕복 기관을 굳이 채택한 것은 실정에 맞았다. 보일러는 연료 보급과 운용 인원의 측면에서 석탄 연소보다 유리한 중유 연소 보일러 2기를 탑재하여, 연료 탑재 및 보일러로의 연료 공급 측면에서 인력 절감 및 공간 절약을 할 수 있었다.[7]

3. 3. 성능 및 제원

리버티선은 전체적으로 생산성과 기능성을 중시하여 단순하고 간소하게 구성된 전장 약 134.60m의 범용 화물선이다.

대부분 2,500HP급의 3단 팽창식 증기 왕복 기관을 탑재하고 단순한 단축 스크류 사양이었다. 출력이 약하여 최대 속도는 11knots 정도로 저속이었지만, 당시 대출력 선박용 기관의 주류였던 증기 터빈의 공급이 군함에 우선적으로 할당되었고, 민간 조선소는 숙련된 기술인 왕복 기관의 제조에 익숙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건조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미국에서는 선박용 대형 저속 디젤 엔진의 생산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제한된 선박용 디젤도 주로 잠수함용 엔진이었으며, 그 점에서도 이미 구식이던 증기 왕복 기관을 굳이 채택한 것은 실정에 맞았다. 보일러는 연료 보급과 운용 인원의 측면에서 석탄 연소보다 유리한 중유 연소 보일러 2기를 탑재하여, 연료 탑재 및 보일러로의 연료 공급 측면에서 인력 절감 및 공간 절약을 할 수 있었다.

1941년까지 증기 터빈은 이전의 왕복 복합 증기 기관에 비해 효율성이 뛰어나 해상 증기 기관으로 선호되었다. 그러나 증기 터빈 엔진은 복잡한 이중 헬리컬 감속 기어를 가공하기 위해 매우 정밀한 제조 기술이 필요했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들은 이미 군함 건조 프로그램에 전념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유의 배를 추진하기 위해 구식 설계의 약 127005.90kg[10] 수직 삼단 팽창 증기 기관이 선택되었다. 이는 자유의 배 프로그램에 필요한 수량으로 제작하기에 더 저렴하고 쉬웠으며, 더 많은 회사에서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8개의 다른 회사가 이 엔진을 제작했다. 이 엔진은 견고성, 단순성, 선원들의 익숙함이라는 추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 회사에서 제조한 부품은 다른 회사에서 만든 부품과 호환되었으며, 개방적인 설계로 인해 대부분의 움직이는 부품을 쉽게 보고 접근하고 윤활할 수 있었다. 엔진은 길이 약 6.40m, 높이 약 5.79m였으며, 76rpm으로 작동하고 자유의 배를 약 11knots로 추진하도록 설계되었다.[11]

자유선은 약 10160470.00kg의 화물을 운송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선박당 한 종류의 화물을 운송했지만, 전쟁 중에는 일반적으로 이를 훨씬 초과하는 화물을 운송했다.[7]

4. 리버티선의 다양한 형태

리버티선은 기본형인 EC2-S-C1 화물선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개조되었다. 주요 개조 유형으로는 석탄 운반선(EC2-S-AW1), 탱크 운반선(Z-EC2-S-C2), T1 유조선(Z-ET1-S-C3), 상자형 항공기 수송선(Z-EC2-S-C5), 차량 대량 수송선(MT) 등이 있었다.

이 외에도 6척의 리버티선이 미국 육군 항공대의 수상 항공기 수리 기지("아이보리 비누 프로젝트")로 개조되어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와 P-51 머스탱 전투기에 이동 지원 기지를 제공했으며, 시코르스키 R-4 헬리콥터 착륙 플랫폼을 갖추어 전투 사상자 후송을 지원했다.[16]

병력 수송선으로 개조된 리버티선은 식사 및 위생 시설 부족 등으로 불만이 많았으나,[2] 군사적 필요에 따라 계속 사용되었으며, 전쟁 후에는 전쟁 포로 수송 및 병력 귀환에 투입되었다.[29]

4. 1. 주요 개조 유형

다음은 주요 개조 유형이다.

유형설명예시
EC2-S-AW1석탄 운반선 (모든 이름은 석탄층 이름)SS 배너 심, 벡클리 심, 본 에어 심
Z-EC2-S-C2탱크 운반선 (4개의 홀, 킹포스트)
Z-ET1-S-C3T1 유조선SS 칼 R. 그레이. 1943년에 18척이 미국 해군에 취역했다.
Z-EC2-S-C5상자형 항공기 수송선 (4개의 홀, 킹포스트). 1954~1958년에 이 리버티선 16척이 으로 개조되었다.
MT차량 대량 수송선 (4개의 홀에는 차량 적재, 다섯 번째 홀은 운전자와 조수 수용)해당 없음



병력 수송선으로의 개조는 특별한 유형 지정이 주어지지 않았다.[8]

4. 2. 군용 개조

리버티선은 기본 EC2-S-C1 화물선 설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용도로 개조되었다. 주요 개조 유형은 다음과 같다.

리버티선 주요 개조 유형
유형설명비고
Z-EC2-S-C2탱크 운반선 (4개의 홀, 킹포스트)
Z-ET1-S-C3T1 유조선18척이 1943년 아르마딜로급 유조선으로 미 해군에 취역
Z-EC2-S-C5상자형 항공기 수송선 (4개의 홀, 킹포스트)1954~1958년에 16척이 가디언급 레이더 초계함으로 개조
EC2-S-AW1석탄 운반선SS 배너 심, SS 벡클리 심, SS 본 에어 심 등 (모두 석탄층 이름)
MT차량 대량 수송선노르망디 상륙 작전 준비 및 이후 육상 물류 수송 지원. 4개의 홀에 차량 적재, 5번째 홀은 운전자/조수 수용
병력 수송선최대 1,600명 수송[29]1943년 9월, 전략 계획과 적합한 선체 부족으로 약 225척 개조.[26] 초기 개조는 횃불 작전을 위해 급히 이루어짐.[2] 남서 태평양 지역 사령부에서 SS 윌리엄 엘러리 채닝을 상륙정 수송선으로 개조.[27]



이 외에도 6척의 리버티선이 미국 육군 항공대의 수상 항공기 수리 기지("아이보리 비누 프로젝트")로 개조되어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와 P-51 머스탱 전투기에 이동 지원 기지를 제공했다.[16] 이들은 시코르스키 R-4 헬리콥터 착륙 플랫폼을 갖추어 전투 사상자 후송을 지원했다.[16]

병력 수송선으로 개조된 리버티선은 식사, 위생 시설 등의 부족으로 불만이 많았으나[2], 군사적 필요에 따라 계속 사용되었다. 전쟁 후에는 전쟁 포로 수송 및 병력 귀환에 투입되었다.[29]

5. 건조 과정의 문제점과 교훈



리버티선이 실제로 취항하자 침몰 사고가 다발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신기술에 의한 건조 방식은 초기부터 신뢰성과 강도가 부족했다. T2 유조선의 스케넥터디, 맨해튼 등 총 7척이 순식간에 선체 절손 사고(자연 붕괴)를 일으켰으며,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선체 파손이 다수 발생했다.[25]

이러한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 결과, 강판의 저온 취성, 용접 기술의 부족, 응력 집중에 의한 파괴 진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후의 조선 기술은 이것을 교훈으로 연구·개량되었으며, 그 후 용접 구조 선체의 보급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선박의 선체 접합 수단에서는 용접이 완전히 일반화되었다.[25]

리버티선의 결함 문제는 공학에서 실패를 교훈으로 삼은 예로, 타코마 다리 붕괴 및 드 해빌랜드 코멧의 연속 추락 사고와 함께 3대 사고로 언급된다.[25]

5. 1. 선체 균열 문제

초기 리버티선은 선체와 갑판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몇 척은 심각한 구조적 결함으로 손실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1,500건에 가까운 심각한 취성 파괴 사례가 발생했다. 건조된 2,710척의 리버티선 중 존 P. 게인즈호[20][21]를 포함한 12척의 배가 예고 없이 두 동강 났는데, 존 P. 게인즈호는 1943년 11월 24일에 침몰하여 10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러한 문제는 대량 생산을 위해 경험이 부족한 노동자와 새로운 용접 기술을 사용한 조선소의 문제로 의심받았다.

전쟁 수송부는 시험 목적으로 영국에서 건조된 호를 대여했다.[22]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콘스탄스 티퍼는 파괴가 용접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용된 강의 취성 때문임을 증명했다.[23] 그러나 동일한 강철을 리벳 구조에 사용했을 때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티퍼는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된 강철이 특정 온도에서 연성에서 취성으로 바뀌면서 균열이 형성되고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온도는 임계 연성-취성 천이 온도로 알려져 있다. 북대서양의 배들은 이 임계점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온도에 노출되었다.[24] 주로 용접된 선체 구조는 사실상 연속된 강철판으로, 작은 균열이 방해받지 않고 확산될 수 있었지만, 별도의 판을 리벳으로 고정한 선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인 균열 유형 중 하나는 용접 이음새와 일치하는 해치의 모서리에서 시작되었으며, 모서리와 용접부 모두 응력 집중 역할을 했다. 또한, 배는 종종 과도하게 과적되어 응력이 크게 증가했으며, 일부 구조적 문제는 심한 폭풍우 동안 또는 후에 발생하여 응력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리버티선의 해치와 다양한 보강재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다. 이는 재료 연구를 낳은 최초의 구조 테스트 중 일부이다. 후속 빅토리선은 동일한 강철을 사용했으며 리벳 대신 용접되었지만, 프레임 간 간격이 약 76.20cm에서 약 91.44cm로 넓어져 배의 강성이 줄어들고 더 유연해졌다.

리버티선 침몰은 선박 설계 및 제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이끌었다. 오늘날 선박은 응력 집중을 피하기 위해 직각 모서리 사용을 피한다. 특히 저온에서 파괴 인성이 더 높은 새로운 유형의 강철이 개발되었다. 또한, 더 재능 있고 교육받은 용접공은 결함이 없거나, 적어도 결함이 적은 용접을 할 수 있다. 리버티선이 건조된 상황과 시기 때문에 많은 결함이 발생했지만, 그 교훈을 통해 오늘날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조선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혁신이 이루어졌다.[25]

리버티선이 실제로 취항하자 침몰 사고가 다발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신기술에 의한 건조 방식은 그 초기부터 신뢰성과 강도가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T2 유조선의 스케넥터디나, 맨해튼 등 총 7척이 순식간에 선체 절손 사고(자연 붕괴)를 일으켰으며,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선체 파손이 다수 속발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 결과, 강판의 저온 취성, 용접 수법의 불비, 응력 집중에 의한 파괴 진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후의 조선 기술은 이것을 교훈으로 연구·개량이 이루어졌으며, 그 후의 용접 구조 선체의 보급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선박의 선체 접합 수단에서는 용접이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리버티선의 결함 문제는 공학에서의 실패를 그 후의 교훈으로 살린 예로서, 타코마 다리 붕괴 및 드 해빌랜드 코멧의 연속 추락 사고와 함께 3대 사고로 언급된다.

5. 2. 조선 기술 발전

리버티선의 침몰은 선박 설계 및 제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이끌었다. 오늘날 선박은 응력 집중을 피하기 위해 직각 모서리 사용을 피하며, 특히 저온에서 파괴 인성이 더 높은 새로운 유형의 강철이 개발되었다. 또한, 더 숙련된 용접공들은 결함이 적거나 없는 용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리버티선 건조 당시의 상황 때문에 많은 결함이 발생했지만, 그 교훈을 통해 오늘날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조선이 가능하게 하는 혁신이 이루어졌다.[25]

리버티선이 실제로 운항을 시작하자 잦은 침몰 사고가 발생하여 큰 문제가 되었다. 새로운 기술에 의한 건조 방식은 초기부터 신뢰성과 강도가 부족했다. T2 유조선의 스케넥터디, 맨해튼 등 총 7척이 순식간에 선체 절손 사고(자연 붕괴)를 일으켰으며,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선체 파손이 다수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 결과, 강판의 저온 취성, 용접 기술의 부족, 응력 집중에 의한 파괴 진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후의 조선 기술은 이러한 문제점을 교훈 삼아 연구 및 개선되었으며, 그 후 용접 구조 선체의 보급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선박의 선체 접합 방식에서 용접은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리버티선의 결함 문제는 공학에서 실패를 교훈으로 삼은 사례로, 타코마 다리 붕괴 및 드 하빌랜드 코멧의 코멧 연속 추락 사고와 함께 3대 사고로 언급된다.

6. 리버티선의 활약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리버티선은 연합군의 해상 수송 임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횃불 작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등 대규모 군사 작전에 투입되어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했다.[2] 1943년에는 약 225척이 비상 수송선으로 개조되어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호송대에 합류했고,[26][2] 전쟁 포로 수송에도 투입되었다.[29]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에는 차량 대량 수송에 적합하도록 개조되기도 했다.[9]

스티븐 홉킨스 호는 독일 해상 전투함 슈티어 호를 격침시킨 유일한 미국 상선이었고,[13] 로턴 B. 에반스 호는 U-221 호의 공격에서 살아남았으며,[30] 안치오 전투에서는 독일 비행기 5대를 격추했다.[31]

전쟁 후, 살아남은 리버티선 중 상당수는 민간 해운업에 활용되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기업가들이 대거 구매하여 해운 재건에 기여했으며,[32]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등 유명 해운 거물들도 리버티선을 구매하여 선단을 시작했다.[34] 일부는 잉여 곡물 보관,[39] 레이더 초계함,[40] 기술 연구선[41] 등으로 개조되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일부 개조된 리버티선이 활용되었다.[16]

태평양 준비 예비 함대는 1946년부터 1963년까지 500척의 선박을 유지했으며,[45] 허드슨강 예비 함대에는 1965년 최대 189척의 리버티선이 보관되기도 했다.[46] 현재는 SS 존 W. 브라운과 SS 제러마이아 오브라이언 두 척만이 박물관 선박으로 운용 중이다.[49]

6. 1. 전시 활약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리버티선은 연합군의 중요한 해상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횃불 작전과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같은 대규모 군사 작전에 투입되어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2]

1943년 9월, 전략 계획과 적합한 선박 부족으로 인해 약 225척의 리버티선이 비상 수송선으로 개조되었다.[26] 최초의 개조는 전쟁 해운청(WSA)에 의해 급히 이루어져 횃불 작전을 위해 북아프리카로 향하는 호송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했다.[2] 개조된 대부분의 리버티선은 550명 이하의 병력을 수송하도록 설계되었지만, 33척은 미국 본토 항구에서 알래스카, 하와이, 카리브해까지의 짧은 항해를 위해 1,600명을 수송하도록 개조되었다.[29]

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후, 약 250척의 리버티선은 전쟁 포로를 미국으로 수송하는 데 투입되었다.[29] 1943년 11월, 육군 수송 책임자 찰스 P. 그로스 소장과 선박을 운영하는 WSA는 개선에 합의했지만, 작전 요구 사항으로 인해 리버티선에서 수송하는 최대 병력 수를 350명에서 500명으로 늘려야 했다.[2] 1944년 5월까지 더 적합한 선박의 생산 증가로 인해 급히 개조된 리버티선을 다시 화물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2]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준비하고 그 이후 육상 물류 수송의 급속한 확장을 지원하기 위해 표준 리버티 선박을 차량 대량 수송에 더 적합하도록 수정하였으며, 기록에서 "MT"로 표시되었다. MT의 경우 4개의 격실(홀)에는 차량이 적재되었고, 다섯 번째 격실은 운전자와 조수를 수용하도록 개조되었다.[9]

몇몇 리버티선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1942년 9월 27일, 스티븐 홉킨스 호는 독일 해상 전투함 슈티어 호를 격침시킨 유일한 미국 상선이 되었다.[13] 정지 명령을 받은 ''스티븐 홉킨스'' 호는 항복을 거부했고, 이에 독일 통상 파괴선 슈티어 호와 보조선 타넨펠스 호가 기관총 한 정으로 사격을 시작했다. ''스티븐 홉킨스'' 호의 승무원들은 반격하여 포를 운용했다. 전투는 짧게 끝났고, 두 배 모두 파괴되었다.

1943년 3월 10일 로턴 B. 에반스 호는 U-221 호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배가 되었다.[30] 1944년 1월 22일부터 30일까지, ''로턴 B. 에반스'' 호는 이탈리아의 안치오 전투에 참전했다. 8일 동안 해안 포대와 항공기의 반복적인 포격을 받았다. 맹렬한 포격, 기관총 사격, 폭탄 공격을 견뎌냈으며, 독일 비행기 5대를 격추했다.[31]

6. 2. 전후 활약

오리건주 애스토리아의 텅 포인트에 보관된 리버티선, 1965


오리건주 애스토리아의 텅 포인트에 보관된 리버티선, 1965


노보로시스크 (Novorossiysk), 1943년 소련에 인도되어 1974년까지 항해


SS 헬라스 리버티 (전 SS Arthur M. Huddell), 2010년 6월


전쟁에서 살아남은 2,400척 이상의 리버티선 중 835척은 전후 화물선단을 구성했다.[32] 그리스 기업가들은 526척, 이탈리아 기업가들은 98척을 구매하여 해운 재건에 활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34]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Stavros Niarchos) 등 유명 해운 거물들이 리버티선을 구매하여 선단을 시작했다.[34] 안드레아 코라도(Andrea Corrado)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탈리아 해운업을 재건했다. 웨이어하우저(Weyerhaeuser)는 6척의 리버티선(이후 대대적으로 개조 및 현대화됨)으로 구성된 선단을 운영하며 전쟁이 끝난 후 수년 동안 목재, 신문 용지 및 일반 화물을 운송했다.

전쟁 후 일부 리버티선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해군 기뢰에 의해 손실되기도 했다.[14][15] 1953년, 상품 신용 공사(CCC)는 잉여 곡물을 보관하기 위해 리버티선을 활용했다.[39] 1955년부터 1959년까지 16척의 리버티선이 미국 해군에 재구매되어 레이더 초계함으로 개조되었다.

1960년대에는 3척의 리버티선이 기술 연구선으로 개조되어 전자 정보 수집 및 레이더 초계 임무에 사용되었다.[40][41][42][43][44]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일부 개조된 리버티선이 활용되었다. 특히, 6척의 리버티선은 미국 육군 항공대에 의해 수상 항공기 수리 기지로 개조되어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와 P-51 머스탱 전투기에 대한 지원을 제공했다.[16]

1946년부터 1963년까지, 태평양 준비 예비 함대 - 컬럼비아강 그룹은 500척의 선박을 유지했다.[45] 1946년, 리버티선은 방치되어 뉴욕주 태리타운 근처의 허드슨강 예비 함대에 보관되었다. 1965년에 최고조에 달했을 때 189척의 선체가 보관되었다. 마지막 두 척은 1971년 스페인에 스크랩으로 판매되었고 예비 함대는 영구적으로 폐쇄되었다.[46][47]

현재 운용 중인 리버티선은 SS 존 W. 브라운(John W. Brown)과 SS 제러마이아 오브라이언(Jeremiah O'Brien) 단 두 척뿐이다. 두 척 모두 여전히 정기적으로 출항하는 박물관 선박이다.[49]

7. 리버티선과 관련된 사건/사고

리버티선은 여러 사건/사고에 연루되었다.


  • 전쟁 후 제거되지 않은 해군 기뢰로 인해 여러 척의 리버티선이 침몰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 1945년, ''피에르 지보''는 키티라 섬 인근에서, ''콜린 P. 켈리 주니어''는 오스텐드 항구에서 기뢰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30][31]
  • 같은 해 ''윌리엄 J. 팔머''는 침몰했지만 승무원과 말은 구조되었고,[32] ''나다니엘 베이컨''은 치비타베키아 인근에서 좌초 후 두 동강 났다.[33]
  • 1947년, ''로버트 데일 오웬''은 아드리아해에서 기뢰에 의해 세 동강 나 침몰했다.[34]
  • ''존 울먼'', ''캘빈 쿨리지'', ''사이러스 애들러'', ''로드 델라웨어'' 등도 기뢰로 인해 손실되었다.[35]
  • 1952년, SS ''쿼르테트''는 험한 날씨로 인해 암초에 좌초되어 전손 처리되었고, 이후 인공 암초가 되었다.[36][37][38]
  • 1947년, 텍사스주 텍사스 시티에서 ''그랑장''호에 실려 있던 질산 암모늄 비료가 폭발하여 텍사스 시티가 파괴되는 텍사스 시티 재해가 발생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핵폭발을 제외하고 가장 큰 폭발 중 하나였다.[35]

7. 1. 침몰 사고

전쟁 후 일부 리버티선은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해군 기뢰에 의해 손실되었다. 1945년 6월, ''피에르 지보''(Pierre Gibault)는 키티라 그리스 섬 인근에서 기뢰에 부딪힌 후 스크랩 처리되었고,[30] 같은 달 ''콜린 P. 켈리 주니어''(Colin P. Kelly Jnr)는 오스텐드 벨기에 항구에서 기뢰에 맞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31] 1945년 8월, ''윌리엄 J. 팔머''(William J. Palmer)는 뉴욕에서 트리에스테로 말을 운송하던 중 기뢰에 맞아 15분 만에 침몰했으나, 모든 승무원과 말 6마리가 구조되었다.[32] 1945년 12월, ''나다니엘 베이컨''(Nathaniel Bacon)은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 인근의 기뢰밭에 들어가 화재가 발생했고, 좌초된 후 두 동강 났다. 더 큰 부분은 다른 리버티선 반쪽 선체에 용접되어 30피트 더 긴 새로운 선박 ''보카다세''(Boccadasse)가 되었다.[33]

1947년 12월, ''로버트 데일 오웬''(Robert Dale Owen)은 '칼리오피'(Kalliopi)로 개명 후 기뢰에 부딪혀 북부 아드리아해에서 세 동강 나 침몰했다.[34] 전쟁 이후 기뢰로 손실된 다른 리버티선에는 ''존 울먼''(John Woolman),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사이러스 애들러''(Cyrus Adler), ''로드 델라웨어''(Lord Delaware) 등이 있다.[35]

1952년 12월 21일, 약 128.63m 길이의 리버티선 SS ''쿼르테트''(Quartette)는 10.5kn의 속도로 험한 파도와 35mph 바람에 의해 암초로 밀려나 앞쪽 선수가 붕괴되고 앞쪽 화물창 두 곳이 손상되었다.[36] 다음날 승무원은 SS 프론테낙 빅토리(SS ''Frontenac Victory'')에 의해 대피했고, 구조 예인선 ''오노''(Ono)가 도착하여 인양을 시도했지만 폭풍우로 지연되었다. 1월 3일, 선박의 닻이 찢어져 ''쿼르테트''가 암초로 날려가 전손 처리되었고, 몇 주 후 용골에서 두 동강 나 침몰했다.[37] 현재 난파선은 인공 암초 역할을 한다.[38]

7. 2. 폭발 사고

1947년 4월 16일, 콤파니 제네랄 트란스아틀란티크 소유의 리버티선 ''그랑장''(SS 벤자민 R. 커티스(SS Benjamin R. Curtis)로 건조됨)이 텍사스주 텍사스 시티에 정박하여 2,300톤의 질산 암모늄 비료를 싣고 있었다. 배 안에서 불이 나서 결국 모든 질산 암모늄이 폭발했다. 이 폭발로 텍사스 시티가 파괴되었고, 근처 배와 창고에 있던 더 많은 질산 암모늄이 터지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핵폭발을 제외하고 가장 큰 폭발 중 하나였다. 이 사건은 오늘날 텍사스 시티 재해로 알려져 있다.[35]

8. 리버티선의 유산



SS ''Jeremiah O'Brien'', 2022


현재 운용 중인 리버티선은 (John W. Brown)과 (Jeremiah O'Brien) 두 척이다. ''존 W. 브라운''은 학교 선박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내부 개조가 많이 이루어졌고, ''제레마이어 O'브라이언''은 원래 상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다. 두 선박 모두 정기적으로 출항하는 박물관 선박이다. 1994년, ''제레마이어 O'브라이언''은 D-Day 50주년을 기념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항해했으며, 오버로드 작전 함대에서 기념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대형 선박이었다.

2008년, 플루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파이프 운송선으로 개조되었던 아서 M. 허들렐(Arthur M. Huddell)은[48] 그리스로 이송되어 그리스 상선 역사를 기념하는 부유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49] 이 배는 주요 구성 요소가 없어 복원되었지만 더 이상 운용되지 않는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리차드 헨리 다나''(Richard Henry Dana)와 ''제인 애덤스''(Jane Addams)의 선체는 부유식 부두의 기초 역할을 한다.[50] 앨버트 M. 보(Albert M. Boe)는 알래스카주 코디액, 알래스카(Kodiak, Alaska)에 있는 통조림 공장인 ''스타 오브 코디악''(Star of Kodiak)으로 남아 있다.

8. 1. 현존하는 리버티선



현재 운용 중인 리버티선은 (John W. Brown)과 (Jeremiah O'Brien) 단 두 척뿐이다. ''존 W. 브라운''은 학교 선박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으며 내부 개조가 많이 이루어졌고, ''제레마이어 O'브라이언''은 원래 상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다. 두 척 모두 여전히 정기적으로 출항하는 박물관 선박이다. 1994년, ''제레마이어 O'브라이언''은 D-Day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항해했으며, 이는 원래 오버로드 작전 함대에서 기념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대형 선박이었다. 2008년, 1944년에 플루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파이프 운송선으로 개조된 아서 M. 허들렐(Arthur M. Huddell)은[48] 그리스로 이송되어 그리스 상선 역사를 기념하는 부유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49] 주요 구성 요소가 없는 이 배는 복원되었지만 더 이상 운용되지 않는다.

  • 존 W. 브라운(John W. Brown) — 메릴랜드 볼티모어 항구에서 박물관 선박으로 운영 중.
  • 제레마이어 오브라이언(Jeremiah O'Brien) —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피어 35(Pier 35)에 정박해 있으며 박물관 선박으로 운영 중.
  • 아서 M. 허들렐(Arthur M. Huddell) — 2008년 그리스로 이전되어 ''헬라스 리버티''(Hellas Liberty)로 개명되었다.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서 해양 박물관으로 복원되었다.
  • 앨버트 M. 보(Albert M. Boe) — 마지막으로 건조된 리버티선으로, 1964년 개인 소유로 판매되어 ''스타 오브 코디악''(Star of Kodiak)으로 개명되었다. 어류 통조림선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육지에 정박되어 있지만, 트라이던트 해산물(Trident Seafoods)의 알래스카 코디액 본사로 남아있다.


리버티선은 진수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완전하지 않은" 기능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에서 ''리차드 헨리 다나''(Richard Henry Dana)와 ''제인 애덤스''(Jane Addams)의 선체는 부유식 부두의 기초 역할을 한다.[50] 앨버트 M. 보(Albert M. Boe)는 에 있는 코디액, 알래스카(Kodiak, Alaska)의 통조림 공장인 ''스타 오브 코디악''(Star of Kodiak)으로 남아 있다.

9. 건조 조선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리버티선을 대량 건조하기 위해 미국 대서양, 태평양, 걸프 해안을 따라 위치한 18개의 조선소를 활용했다.[59] 림 제조 회사(Rheem Manufacturing Company)는 SS ''윌리엄 코딩턴'' 한 척을 건조하여 리버티선 생산에 기여했다.[61]

9. 1. 주요 조선소

다음은 리버티선이 건조된 주요 조선소 목록이다.[59]

조선소위치
앨라배마 드라이독 앤 조선모빌, 앨라배마
베들레헴-페어필드 조선소(Bethlehem-Fairfield Shipyard)볼티모어, 메릴랜드
캘리포니아 조선 주식회사(California Shipbuilding Corp.)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델타 조선 주식회사(Delta Shipbuilding Corp.)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
J.A. 존스 건설(J.A. Jones Construction)파나마 시티, 플로리다
브런즈윅, 조지아[60]
카이저 회사(Kaiser Company)밴쿠버, 워싱턴
마린쉽(Marinship)소살리토, 캘리포니아
뉴잉글랜드 조선 주식회사(New England Shipbuilding Corporation)사우스 포틀랜드, 메인
1942년 초까지 법적으로 분리 운영
노스캐롤라이나 조선 주식회사(North Carolina Shipbuilding Company)윌밍턴, 노스캐롤라이나
오리건 조선 주식회사(Oregon Shipbuilding Corporation)포틀랜드, 오리건
퍼머넌트 메탈스 주식회사(Permanente Metals Corporation) (카이저 시설)리치몬드, 캘리포니아
카이저 리치몬드 1번 조선소(Kaiser Richmond No. 1 Yard) 및 카이저 리치몬드 2번 조선소(Kaiser Richmond No. 2 Yard)
세인트 존스 강 조선(St. Johns River Shipbuilding)잭슨빌, 플로리다
사우스이스턴 조선 주식회사(Southeastern Shipbuilding Corporation)서배너, 조지아[60]
토드 휴스턴 조선(Todd Houston Shipbuilding)휴스턴, 텍사스
월시-카이저 주식회사(Walsh-Kaiser Co., Inc.)프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


소규모 조선소:


  • 림 제조 회사(Rheem Manufacturing Company)는 SS ''윌리엄 코딩턴'' 한 척을 건조했다.[61]

10. 한국과 리버티선 (별도 추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대량 생산 체제를 통해 만들어진 화물선인 리버티선은 전쟁 물자를 수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리버티선은 단순한 화물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해방 직후, 한국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으로 인해 경제는 피폐해졌고, 국민들은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미국의 원조 물자를 싣고 온 배가 바로 리버티선이었다. 리버티선은 식량, 의약품, 의류 등 한국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하며, 한국 경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리버티선은 유엔군의 군수 물자를 수송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흥남 철수 작전에서 리버티선은 수많은 피난민을 안전하게 수송하여 인도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리버티선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하며, 한국인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단순한 화물선을 넘어, 리버티선은 대한민국 재건과 자유 수호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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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적 Speaker Jim Wright https://utpress.utex[...] University of Texas Press 2018-04
[4] 웹사이트 Liberty Ships built by the United States Maritime Commission in World War II http://www.usmm.org/[...] American Merchant Marine at War 2021-11-28
[5] 간행물 Nazi Megastructures: Hitler's War Trains National Geographic 2017
[6] 웹사이트 Dorington Court (1939) http://www.benjidog.[...] 2015-06-28
[7] 웹사이트 Capacity of One Liberty Ship http://www.usmm.org/[...] 2022-03-11
[8] 서적 Federal Register https://www.govinfo.[...] U.S. Government 194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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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서 Live
[11] 문서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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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웹사이트 Report on the Wreck of the SS Richard Montgomery http://www.dft.gov.u[...] 2022-03-11
[15] 웹사이트 Little Boy and Fat Man https://www.atomiche[...] 2014-07-23
[16] 웹사이트 The Hoverfly in CBI, Carl Warren Weidenburner http://cbi-theater-3[...] 202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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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웹사이트 Liberty Ships – B http://www.mariners-[...] Mariners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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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서 X-FEM for Crack Propagation – Introduction http://www.iste.co.u[...]
[22] 학술지 Asbestos and Ship-Building: Fatal Consequences Ulster Medical Society
[23] 웹사이트 Constance Tipper http://www-g.eng.cam[...] 2022-03-10
[24] 보고서 Case Details - Brittle fracture of Liberty Ships http://www.shippai.o[...]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Failure null
[25] 학술지 Technical Problem Identification for the Failures of the Liberty Ships 2016-12
[26] 서적 The Technical Services – The Transportation Corps: Movements, Training, And Supply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27] 서적 U. S. Army Transportation In The Southwest Pacific Area 1941–1947 Transportation Unit, Historical Division, Special Staff, U. S. Army
[28] 서적 The Technical Services – The Transportation Corps: Operations Overseas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29] 서적 The Technical Services – The Transportation Corps: Responsibilities, Organization, And Operations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
[30] 웹사이트 Lawton B. Evans (American Steam merchant) – Ships hit by German U-boats during WWII http://www.uboat.net[...] Gudmundur Helgason uboat.net 2016-11-30
[31] 문서 commons:File:SS_Lawton_B._Evans_Commendation.pdf 2024-03
[32] 웹사이트 John Fredriksen https://nbl.snl.no/J[...] 2020-02-25
[33] 뉴스 The Shipping World and Shipbuilding & Marine Engineering News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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