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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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편 논쟁은 보편자의 존재 여부와 성격을 다루는 철학적 논쟁이다. 고대 철학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제시했으며, 중세 철학에서는 보에티우스의 번역을 통해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실재론과 유명론이 주요 대립을 이루었으며, 아퀴나스와 스코투스는 실재론을, 로스켈리누스와 오컴은 유명론을 지지했다. 현대 철학에서도 헤겔, 밀, 피어스, 제임스, 콰인 등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제시했으며, 인도 철학에서도 의미론과 관련하여 보편자 문제가 논의되었다.
보편 논쟁은 아벨라르두스가 그의 스승 샹포의 기욤에게 자신의 학설을 변경하게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으며, 솔즈베리의 요하네스는 인간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논쟁의 핵심은 보편개념(류와 종)의 타당성과 가치, 그리고 개념의 실제성과 객관성에 관한 것이었다. 초기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학의 삼위일체론이나 교회의 보편성과 연결되어 문제가 되었고, 12세기에 사상계를 뜨겁게 달구었다.[47]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포르피리오스의 <범주론 서설>에 있는 세 가지 문제 제기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보편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에티우스는 이 문제들을 <범주론 주석>에서 다루면서, 실재하는 것이 사물인지 아니면 단순한 음성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변경하여 제시하였다. 이는 실재론과 유명론으로 나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47]
2. 역사적 배경
이 논쟁은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포르피리오스의 <범주론 서설>에서 시작되었다. 포르피리오스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 유와 종은 실재하는가, 아니면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 실재한다면 물체인가, 아니면 비물체인가?
#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감각적 대상 안에 존재하는가?
보에티우스는 <범주론 주석>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실재하는 것은 사물인지 아니면 단순한 음성인지 묻는 형태로 바꾸었다. 이 질문은 사물이라고 답하는 실재론과 음성이라고 답하는 유명론 간의 논쟁을 일으켰다.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와 샹포의 기욤이 등장하면서 양 진영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에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이르는 전통적인 견해는 신학적인 이유 등으로 실재론에 기울어져 있었고, 로스켈리누스는 유명론을 명확하게 주장했으며, 윌리엄은 극단적인 형태의 실재론을 주장했다.
어떤 가설을 선택할지는 하나의 철학을 완성해야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중 누구를 선택할지, 아니면 둘을 결합할지의 문제는 자연학 및 형이상학과도 관련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인 경향을 보이면서도 중재적인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에 의해 획득된 보편개념을 나타내는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사물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는 사물이 개별적이고 보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저술에 영향을 받아 온건한 실재론을 완성했다. 그는 보편개념에서 보편의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고, 사유 밖의 실재와 구체적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을 보편개념의 내용에 대응시켰다. 개념상 보편의 형식은 주관적인 사유의 산물이지만, 사유 형식의 기초는 지성의 추상 활동에 있다고 설명했다.
2. 1. 고대 철학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포르피리오스의 <범주론 서설>에서 보편 논쟁이 발단되었다.[6] 보에티우스는 이 책에서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 유와 종은 실재인가, 아니면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 실재한다면 물체인가, 아니면 비물체인가?
# 감각적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감각적 대상 안에 존재하는가?
보에티우스는 <범주론 주석>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며, 실재하는 것은 사물인지 아니면 단순한 음성인지 묻는 형태로 바꾸었다. 이는 사물이라고 주장하는 실재론과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 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6]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와 샹포의 기욤이 등장하면서 양 진영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에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이르는 전통적 견해는 신학적 이유 등으로 실재론에 기울어져 있었고, 로스켈리누스가 유명론을 명확하게 주장했다. 윌리엄은 극단적인 형태의 실재론을 주장했다.
어떤 가설을 선택할지는 하나의 철학을 완성해야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중 누구를 선택할지, 아니면 둘을 결합할지의 문제는 자연학 및 형이상학과도 관련되어 복잡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도 조정적 입장을 취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을 통해 얻어진 보편개념을 나타내는 선언이라고 보았다. 사물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사물은 개별적이고 보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저술에 영향을 받아 온건한 실재론을 완성했다. 그는 보편개념에서 보편의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고, 사유 밖의 실재와 구체적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을 보편개념의 내용에 대응시켰다. 개념상 보편의 형식은 주관적인 사유의 산물이지만, 사유 형식의 기초는 지성의 추상 활동에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지각 가능한 사물의 세계와 보편자 또는 형상(eidos)의 세계를 구분했다. 그는 전자에 대해서는 의견만 가질 수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에게 지식은 영원히 확실하고 일반적이어야 하므로, 변하거나 특수한 것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했다.[8] 형상의 세계는 햇빛처럼 실제 세계이고, 감각적 세계는 그림자처럼 불완전하고 부분적으로만 실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플라톤주의적 실재론은 영원한 형상이 정신적 산물이 아니라고 부정함으로써 현대 관념론과는 다르다.
플라톤의 실재론에 대한 최초의 유명론적 비판 중 하나는 디오게네스의 비판이었다. 그는 "나는 플라톤의 컵과 탁자는 보았지만, 그의 컵성과 탁자성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9]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다른 견해를 가졌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형상인", 즉 개별 사물의 청사진이나 본질로 변형했다. 플라톤이 기하학을 이상화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 관련 학문을 강조했으며, 그의 사상 상당 부분은 생명체와 그 속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보편자의 본성은 그의 자연종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었다. 그는 사고의 구조에 따라 '존재'를 범주화하는 대신, 범주적 분석을 자연 세계의 구조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그는 ''범주론''에서 술어의 원리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문장으로 표현된 사실들이 성립하는 경우 보편적 용어는 술어 관계에 관여한다고 주장했다.[11]
그의 저서 ''해석학''에서 그는 "보편자"의 개념은 여러 대상에 적용될 수 있지만, 단수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12] 예를 들어, ''인간''은 보편자이지만 ''칼리아스''는 단수자이다. 그는 동물과 같은 최고 속과 인간과 같은 종을 구분했지만, 둘 모두 개별 인간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13] 이것은 사물의 원리에 대한 접근 방식의 일부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실재적이라는 기준을 따랐다.[13] 예를 들어 특정 참나무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종의 구성원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다른 참나무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의 보편자, 즉 참나무임은 그것의 일부이다. 생물학자는 참나무를 연구하여 참나무임과 더 일반적으로 감각적 세계 내의 지각 가능한 질서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세계를 아는 것에 대해 플라톤보다 더 확신했으며, 전형적인 경험주의자이자 귀납의 창시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에 관한 새로운 절충적인 현실주의자였다.
2. 2. 중세 철학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포르피리오스의 <범주론 서설>에서 발단된 보편 논쟁은 중세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14] 솔즈베리의 요하네스는 이 문제를 인간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이 논쟁은 중세 사상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보에티우스는 번역에 대한 주석에서 보편자가 존재한다면 여러 특수 개념에 완전히, 동시에 적용되어야 하며 시간적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그는 보편자들이 정신 독립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어떤 속성이 하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 특수 개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어 특수 개념의 실체의 일부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편자가 정신 속에만 존재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이는 어떤 속성에 대한 정신적 구성은 추상적인 것이며 정신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신적 추상이 참된 이해가 아니라면, '사물과 다르게 이해되는 것은 거짓'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2]
보에티우스는 이 문제에 대해 정신이 현실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을 사고 속에서 분리할 수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정신이 구체적인 특수 개념으로부터 추상하는 능력을 예로 제시하며, 이는 플라톤적 보편자가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문제와 그것이 순전히 정신의 구성물이라는 문제를 모두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았다. 즉, 보편자는 단순히 정신이 특수 개념을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2]
보편 논쟁의 중심점은 보편개념(류와 종)의 타당 가치 문제 및 개념의 실제성·객관성의 문제였다. 초기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학상의 삼위일체론이나 교회의 보편성과 결합되어 문제가 되었고, 실재론과 유명론으로 분류되는 논쟁을 야기시켰다.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와 샹포의 기욤이 출현하자 양 진영의 대립은 첨예화되었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로부터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이르는 전통적 견해는 신학적 이유도 있어서 실재론에 기울어져 있었고, 명확하게 유명론을 제창한 것은 로스켈리누스였다. 극단적인 형태로 실재론을 주장한 것은 윌리엄이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가지면서 조정적 입장을 취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은 추상에 의해 획득된 보편개념을 표시하기 위한 선언이며, 사물에 있어서 어떤 객관적으로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물은 개별적인 것으로 보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저술의 영향을 받아 온건한 실재론을 완성하였다. 그는 보편개념에서 보편의 내용과 형식을 구별하고 사유 밖의 실재와 구체적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을 보편개념의 내용에 대응시켰다. 개념상 보편의 형식은 어떤 주관적인 것으로서 사유의 산물이지만, 사유형식의 기초는 지성의 추상활동에 있다고 보았다.
14, 15세기의 스콜라 철학자인 오리올의 피에르, 오컴의 윌리엄, 아이이의 피에르 등은 온건한 실재론을 고려하지 않고 다시금 유명론의 주관적 주장을 폈다. 따라서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스콜라적 종합을 붕괴시켰다.
통설에 따르면, 중세 최대의 논쟁인 보편 논쟁은 3세기에 포르피리오스가 저술한 『입문(에이사고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47] 중세 스콜라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구절에서 언급된 종과 속으로부터 얻어지는 "보편"의 실재성 문제였으며, 중세 철학자들은 포르피리오스가 답을 내리지 않았던 이 보편의 실재성 문제에 대해 논쟁을 거듭했다고 한다.[47]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통설로서 실재론, 유명론, 개념론의 세 가지 입장이 존재했다고 정리되면서, 보편 논쟁의 통설로 사용되고 있다. 단, 21세기 현대의 중세 철학사 연구에서는 이 통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48]
3. 중세의 주요 입장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에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이르는 초기 스콜라 철학의 전통적 견해는 신학적 이유로 실재론에 기울어져 있었다.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는 명확하게 유명론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으며, 샹포의 기욤은 극단적인 형태의 실재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등장은 양 진영의 대립을 첨예하게 만들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도 조정적인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을 통해 획득된 보편개념을 표시하기 위한 선언이며, 사물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사물은 개별적인 것이므로 보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저술의 영향을 받아 온건한 실재론을 완성하였다. 그는 보편개념에서 보편의 내용과 형식을 구별하고, 사유 밖의 실재와 구체적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을 보편개념의 내용에 대응시켰다. 개념상 보편의 형식은 주관적인 것으로 사유의 산물이지만, 사유 형식의 기초는 지성의 추상 활동에 있다고 보았다.
14, 15세기의 오리올의 피에르, 오컴의 윌리엄, 아이이의 피에르 등은 온건한 실재론을 고려하지 않고 다시금 유명론의 주관적 주장을 폈다. 이들은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스콜라적 종합을 붕괴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3. 1. 실재론 (Realism)
실재론은 보편자가 실재하며, 그것을 구현하는 특수한 것들과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두 가지 주요 형태는 플라톤주의적 실재론(''universalia ante res'', 즉 '사물 이전의 보편자')[2]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universalia in rebus'', 즉 '사물 안의 보편자')[37]이다. 플라톤주의적 실재론은 보편자는 특수한 것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하는 실체라는 견해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론은 보편자는 실재하는 실체이지만, 그 존재는 그것을 예시하는 특수한 것들에 의존한다는 견해이다.
플라톤주의적 실재론(극단적 실재론[33][34] 또는 과장된 실재론[35][36]이라고도 함)은 보편 또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이데아가 사물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의 원인적 설명이라는 견해이다. (보편은 사물들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하는 실체라는 견해)
플라톤은 지각 가능한 사물의 세계와 보편자 또는 형상(eidos)의 세계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다고 믿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단지 의견만 가질 수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에게 있어 변하거나 특수한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지식은 영원히 확실하고 일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8] 그러한 이유로 형상의 세계는 햇빛처럼 실제 세계이고, 감각적 세계는 그림자처럼 불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플라톤주의적 실재론은 영원한 형상이 정신적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현대 관념론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플라톤의 실재론에 대한 최초의 유명론적 비판 중 하나는 디오게네스의 비판이었다. 그는 "나는 플라톤의 컵과 탁자는 보았지만, 그의 컵성과 탁자성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9]
실재론자들은 새로운 플라톤적 입장에 서서, 이데아가 사물보다 먼저 존재하며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 아담에 의해 타락하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류라는 보편자가 존재하고, 그것이 인간의 본질로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담의 원죄도 그리스도의 수난도 개별적인 사실에 불과하며, 인류 전체의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안셀무스 등의 실재론자들은 보편 개념은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어떤 것이든 불명확한 개체의 기체 존재물에, 예를 들어 "인간"의 형상이 부여됨으로써, 즉 "인간의 보편 개념"이 기체 존재에 더해짐으로써, 간단히 말해 "인간의 구체적 존재", 즉 "개체로서의 인간"이 성립한다고 했다. 이처럼, 종류의 개념, 즉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는 생각을 "실념론" 또는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실재론(강한 실재론[33][34] 또는 절충적 실재론[35]이라고도 함)은 극단적 실재론을 거부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보편을 사물 안에 있는 속성과 그 사물과 개별적으로 다른 모든 사물의 속성으로 여긴다. (보편은 실재하는 실체이지만, 그 존재는 그것을 예시하는 사물에 의존한다는 견해)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의견을 달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형상인", 즉 개별 사물의 청사진이나 본질로 변형했다. 플라톤이 기하학을 이상화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 관련 학문을 강조했으며, 따라서 그의 사상의 상당 부분은 생명체와 그 속성에 관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보편자의 본성은 따라서 그의 자연종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다. 그는 사고의 구조에 따라 '존재'를 범주화하는 대신, 범주적 분석을 자연 세계의 구조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0] 그는 ''범주론''에서 술어의 원리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문장으로 표현된 사실들이 성립하는 경우 보편적 용어는 술어 관계에 관여한다고 주장했다.[11]
그의 저서 ''해석학''에서 그는 "보편자"의 개념은 여러 대상에 적용될 수 있지만, 단수적인 것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12] 예를 들어, ''인간''은 보편자이지만 ''칼리아스''는 단수자이다. 그는 동물과 같은 최고 속과 인간과 같은 종을 구분했지만, 둘 모두 개별 인간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13] 이것은 사물의 원리에 대한 접근 방식의 일부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실재적이라는 기준을 따릅니다.[13] 예를 들어 특정 참나무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종의 구성원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다른 참나무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의 보편자, 즉 참나무임은 그것의 일부이다. 생물학자는 참나무를 연구하여 참나무임과 더 일반적으로 감각적 세계 내의 지각 가능한 질서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적 세계를 아는 것에 대해 플라톤보다 더 확신했다. 그는 전형적인 경험주의자이자 귀납의 창시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에 관한 새로운 절충적인 실재론자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재론의 입장에서 양자를 조정하여, 보편은 신의 지성 안에서는 "사물에 앞서" 존재하고, 세계 안에서는 "사물 안에" 존재하며, 그리고 인간의 지성 안에서는 "사물 이후" 존재한다고 했다.
보에티우스는 보편자에 대한 사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주로 따랐다. 그러나 중세에서 실재론의 가장 큰 지지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존 둔스 스코투스가 되었다. 아퀴나스는 사물의 본질과 존재는 명확하게 구별된다고 주장했다.[16] 이 점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기도 하다.
존 둔스 스코투스는 사물 안에서 본질과 존재 사이에는 실체적 구별이 없으며, 오직 형식적 구별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17] 스코투스는 보편자는 그것이 예시하는 사물 안에만 존재하며, 사물의 개체성과 "결합"하여 개체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의 실재론적 입장의 결과로, 그는 유명론과 개념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박하며, 아벨라르의 개념론에 대한 중세적 반응인 스코투스적 실재론을 주장했다. 즉, 스코투스는 '붉음'이나 '둥글음'과 같은 속성은 현실에 존재하며 정신과 무관한 실체라고 믿었다.
더욱이, 존 둔스 스코투스는 보에티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포르피리우스의 ''이사고게''에 대한 자신의 주석(''Quaestiones'')에서 이 문제에 대해 썼다. 스코투스는 마음이 보편자를 형성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고, 이것이 '지성에 의해 야기된다'고 믿었다.[18] 이 지성은 예를 들어 다른 인간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성'의 본성과 그 속성이 다른 개별 인간들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작용한다.[19]
3. 2. 유명론 (Nominalism)
로스켈리누스와 오컴의 윌리엄 등이 주장한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은 보편 개념이 실재하지 않고 단지 이름뿐이라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즉, 개별적인 사물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이나 '개'와 같은 보편 개념은 여러 개별 존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름'(nomen|노멘la)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은 보편 개념이 언어적 구성물이며, 사물에 내재하거나 사물에 선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보편 개념은 인간의 인식과 언어에 고유한 것이다.[20] 콩피에뉴의 로스켈리누스는 보편 개념이 단순히 발성(voces)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견해를 초기에 강력하게 지지했다.[20]
오컴의 윌리엄은 보편 개념이 추상적인 인간 사고의 산물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보편 개념이 마음속에만 존재하며, 외부 세계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단어나 개념이라고 보았다.[21] 초기 저서에서 오컴은 '영혼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그 자체를 통해서든 또는 추가된 어떤 실제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을 통해서든, 어떻게 고려하거나 이해하든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후기 저서인 ''Summae Logicae''에서는 보편 개념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견해가 이동했지만, 완전한 실재론자로 분류되지 않을 정도로 수정되었다.
극단적인 유명론을 주장한 로스켈리누스 (콩피에뉴)는 보편은 음성의 바람(flatus vocis|플라투스 보키스la)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도 조정적인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에 의해 획득된 보편개념을 표시하기 위한 선언이며, 사물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사물은 개별적인 것이므로 보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3. 3. 아벨라르두스의 절충적 입장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도 조정적인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을 통해 얻어진 보편개념을 나타내는 선언이라고 보았다. 사물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는 사물이 개별적이고 보편이 아니기 때문이다.[6]
그는 보편이 먼저 사물보다 신의 안에 개념으로서 존재하고, 그 다음에 사물 자체 안에 공통된 본질적 규정으로서 존재하며, 또한 사물 이후 인간의 이성 안에 그 사유의 결과 얻어진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절충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계속되었다. 사물, 즉 인간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7]
4. 주요 논객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은 보에티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포르피리오스의 <범주론 서설>에서 제기된 세 가지 문제에서 시작되었다.[51] 이 문제는 샹포의 기욤과 로스켈리누스에 의해 첨예하게 대립되었고,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는 신학적 이유로 실재론을 지지했다.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 조정적 입장을 취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에 영향을 주었다.
- '''실재론'''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신의 존재 증명으로 유명하며,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고 주장했다.[51]
- 토마스 아퀴나스: 실재론 입장에서 유명론과의 조화를 시도했다.[51] 보편은 신의 지성 안에서는 "사물에 앞서"(ante remla) 존재하고, 세계 안에서는 "사물 안에"(in rela) 존재하며, 인간 지성 안에서는 "사물 이후"(post remla) 존재한다고 보았다.
- 존 둔스 스코투스: 프란체스코 학파의 대표적인 실재론자이다.
- '''유명론'''
- 로스켈리누스: 이단으로 배척받았으며, 보편은 음성의 바람(flatus vocisla)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유명론을 펼쳤다.[52]
- 아벨라르: 자유 연애로 알려져 있으며, 유명론적 입장을 취했다.[52]
- 윌리엄 오컴: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로, 유명론을 주장했다.[52]
14, 15세기에는 오리올의 피에르, 오컴의 윌리엄, 아이이의 피에르 등이 유명론을 다시 주장하며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스콜라적 종합을 붕괴시켰다.
5. 현대 철학에서의 논의
아벨라르두스는 유명론적 색채를 띠면서도 조정적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 아퀴나스의 온건한 실재론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그는 보편이 추상을 통해 얻어진 보편개념을 나타내는 선언이라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영향을 받아 온건한 실재론을 완성했다. 그는 보편개념에서 내용과 형식을 구별하고, 사유 밖의 실재와 개체에 내재하는 본질을 보편개념의 내용에 대응시켰다. 개념상 보편의 형식은 주관적인 사유의 산물이지만, 그 기초는 지성의 추상 활동에 있다고 보았다.[6]
14, 15세기에는 오리올의 피에르, 오컴의 윌리엄, 아이이의 피에르 등이 유명론을 다시 주장하며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스콜라적 종합을 붕괴시켰다.[6]
19세기 독일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보편자와 특수자가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저서 ''철학적 학문 백과사전''(1830)에서 부분들이 서로 다르지만, 전체를 구성하는 한에서 동일한 관계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19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윌리엄 해밀턴 경의 철학을 비판하며, 개념 형성이 개별 속성들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속성들과 결합된 개별 대상의 사상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1890)를 인용하며, 특정 속성들에 집중하면 다른 속성들을 일시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속성들만으로 개념을 구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세기 미국 논리학자 찰스 샌더스 피어스는 조지 버클리의 이론을 비판하며, 보편자처럼 작용하는 정신적 사실이 있다면 그것이 보편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제3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일반적인 사실들이 정신 외부의 현실이라고 주장했다.[22]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일반 개념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명목론자였다. 그는 ''심리학의 원리''(1890)에서 보편 개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치 있는 것은 구체적이고 단일적이며, 보편적 특성은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추론하는 데 도움이 될 때만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주의 철학자 리처드 M. 위버는 저서 ''이념의 결과''(1948)에서 명목주의 교리의 수용을 서구 문화 쇠퇴의 결정적 사건으로 묘사했다.[23][24]
미국 철학자 W. V. O. 콰인은 1947년 논문 "보편자에 관하여"에서 보편자 문제가 실체에 관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플라톤주의자들은 보편자가 정신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반면, 명목주의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공허한 언어 게임'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콰인은 특정 유형의 '담론'이 보편자를 전제하므로 명목주의자들이 이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5]
니노 코키아렐라는 명목론이 야기하는 논리적 역설에 대한 해결책으로 실재론을 제시했다. 그는 플라톤이 형상과 관련된 역설을 받아들인 반면, 자신은 역설을 피하기 위해 형상을 채택한다고 주장했다.
호주 철학자 데이비드 맬릿 암스트롱은 자연주의적이고 과학적 실재론적 존재론을 구축하기 위해 보편자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여러 명목론적 이론과 비실재론적 "트로프" 설명을 거부하고, 여러 실재론적 설명도 기각했다.
로저 펜로즈는 수학의 기초를 플라톤적인 견해, 즉 "수학적 진리는 절대적이고, 외부적이며, 영원하며, 인간이 만든 기준에 근거하지 않는다… 수학적 대상은 그 자체로 시간 초월적인 존재를 갖는다…"라는 견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26]
6. 인도 철학
인도 철학자들은 의미론과 관련하여 보편자 문제를 제기한다.[27] 보편자는 일반 용어의 의미에 대한 지시 대상으로 상정된다.
나야야-바이셰시카 학파는 보편자를 우리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각 가능한 영원한 실체로 간주한다. 나야야는 특수한 것들 사이의 공통된 특징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자의 존재를 상정한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는 보편자에 의해 더욱 특징지어지는 특정한 것으로 이해된다.[28] 예를 들어, '소'라는 용어의 의미는 '소임'이라는 보편자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특정한 소를 가리킨다. 나야야는 보편자가 특수한 것과 다르게 인식되지만, 특수한 것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29]
그러나 모든 용어가 보편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다야나는 진정한 보편자를 식별하기 위한 여섯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30] 나야야-바이셰시카 학파와 마찬가지로, 미맘사는 보편자를 단어의 지시 대상으로 특징짓는다. 밭타 미맘사와 나야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밭타 미맘사가 나야야의 보편자와 특수자의 내재 관계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29] 힌두 철학자 쿠마릴라 밭타는 내재가 관계의 항과 다르다면 계속해서 또 다른 공통 관계가 필요하고, 내재가 다르지 않다면 불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29]
불교적 존재론은 세상을 순간적인 개체들과 정신적으로 구성된 보편자들로 구성된 것으로 간주한다.[31] 인도 철학의 실재론적 학교들과는 대조적으로, 불교 논리학자들은 보편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명목론의 긍정적 이론인 아포하(apoha) 이론을 제시했다. 아포하 이론은 이중 부정을 통해 개체들을 식별하며, 용어들 사이의 일반적인 공유 본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라는 용어는 '소가 아닌 것'이라는 배타적 종류의 모든 실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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