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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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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설렁탕은 쇠뼈를 푹 고아 낸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한국 전통 음식이다. 기원은 여러 설이 있으며, 조선 시대 임금이 농사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 선농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몽골의 고려 침입 시기에 몽골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설렁탕은 서울의 향토 음식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쇠고기가 저렴해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조리법은 뼈와 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국물을 내는 것이 특징이며, 곰탕과 유사하나 뼈를 주로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설렁탕은 외식 산업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문학 작품과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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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 [음식]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설렁탕
다른 이름소뼈탕
종류
제공뜨겁게
주요 재료소고기 뼈, 머리, 족, 무릎 연골, 내장
국가한국
한국어 이름
한글설렁탕
한자先農湯
로마자 표기법seolleongtang
요리 정보
종류
주요 재료소 뼈, 양지머리 및 기타 고기 부위

2. 어원 및 유래

국물이 뽀얗고 맛이 농후하다 하여 설농탕(雪濃湯)이라고도 하는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설렁탕


식탁 위에 차려진 설렁탕


그중에 선농단(先農壇)과 관련이 있는 유래설이 있다. 선농단이란 조선 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농경에 관계되는 신농씨(神農氏)하고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17] 홍선표가 기술한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1940년)에 따르면 어느날 세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친경(親耕) :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하던 중에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다. 비가 계속되자 배고픔을 못 견디어 친경 때에 쓰던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이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18] '선농단(先農壇)'하고 관련 있으니 '선농탕'이었던 것이 '설농탕' 등 음운변화를 거쳐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17]

또 다른 설은 『성종실록』에 보면 조선 성종이 성종 6년에 선농단(先農壇)에 제를 지낸후 백성들하고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다.[27] 이때에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 가장 적은 재료를 사용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라고 명했다는 설이 있다.[19] 그렇게 만들어진 국밥을 '선농탕'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22] 신하가 임금께 바친 헌시(獻詩) 중에 “살찐 희생의 소를 널리 베푸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20]라는 시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선농단에서 탕을 끓여 함께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2]

조선 시대에는 단군과 같은 조상들에게 전국적인 제사를 정기적으로 지냈으며, 이 제사는 선농제(선농제/先農祭중국어)라 불렸고, 제단은 선농단(선농단/先農壇중국어)이라 불렸는데, 이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4] 세종대왕은 직접 제사에 참여하고 백성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해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발명하도록 명령했고, 그중 하나가 선농탕(선농탕, Sŏnnongt'ang)이었다.[4]

선농탕은 발음이 더 쉬운 설렁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음운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선농탕 (Sŏnnongt'ang) > 설롱탕 (Sŏllongt'ang) > 설렁탕 (Sŏllŏngt'ang)


첫 번째 변화는 두 개의 'ㄴ' 소리가 발음이 쉬운 부드러운 'ㄹ' 소리로 된 음운의 유음화이고, 두 번째 변화는 'ŏ' 소리의 영향을 받은 'O' 소리의 모음 조화이다.

한편, 설렁탕의 이름이 하얀 색깔과 진한 맛에서 유래하여 "雪濃湯"(눈처럼 하얀 진한 국)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이는 잘못된 용법이라는 설명이 일부 한국어 사전에 기술되어 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표기[7]는 한자로 설렁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8]

몽고 유래설도 있다. 13세기 전반기 몽고가 고려를 침공했을때, 소주와 함께 설렁탕이 전래되었다는 설이다.[13]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고어로는 슈루라고 한다고 되어 있고,[21] 『방언집석(方言輯釋)』에서는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고에서는 슐루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실러, 슐루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22]

이에 따르면, 이 음식은 13세기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부터 유래했다. 몽골 음식인 '술렌(Sulen)'은 얇게 썬 소고기를 파와 함께 끓인 음식으로, 한국에서 설렁탕으로 발전했다.[5]

만주족 같은 수렵민족은 구이를 선호하고 몽고인과 같은 유목 민족은 장시간 삶거나 고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23] 특히 많은 군사들이 한꺼번에 신속히 음식을 먹으려면 고기를 물에 끓여 먹어야 유리하다.[24] 한반도에 주둔했던 몽고군들이 맹물에 고기를 끓여서 먹던 조리법을 고려인들이 받아들인 것이다.[18] 그 외에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22]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이문설농탕에서는 이 음식을 제공한다. 이 식당의 이름에는 설렁탕의 고어 표기가 포함되어 있다.[9][10]

2. 1. 선농단 유래설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그중 선농단(先農壇)과 관련된 유래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선농단은 조선 시대에 임금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17]

홍선표의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1940년)에 따르면, 세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친경(親耕,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비로 궁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친경 때 쓰던 소를 잡아 끓여 먹은 것이 설렁탕의 유래라고 한다.[18] '선농단(先農壇)'과 관련되어 '선농탕'이었던 것이 음운 변화를 거쳐 '설농탕',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17]

조선 성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낸 후 백성들과 함께 식사한 기록이 『성종실록』에 남아있다.[27] 이때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해 가장 적은 재료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라는 명이 있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국밥이 '선농탕'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19][22] 신하가 임금께 바친 헌시(獻詩) 중 “살찐 희생의 소를 널리 베푸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20]라는 구절은 선농단에서 탕을 끓여 먹었음을 짐작하게 한다.[22]

조선 시대에는 단군과 같은 조상들에게 전국적인 제사를 정기적으로 지냈으며, 이 제사는 선농제(先農祭, Sŏnnongje)라 불렸고, 제단은 선농단(先農壇, Sŏnnong dan)이라 불렸는데, 이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4] 세종대왕은 직접 제사에 참여하고 백성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해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발명하도록 명령했고, 그중 하나가 선농탕(선농탕, Sŏnnongt'ang)이었다.[4]

선농탕은 발음이 더 쉬운 설렁탕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음운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선농탕 (Sŏnnongt'ang) > 설롱탕 (Sŏllongt'ang) > 설렁탕 (Sŏllŏngt'ang)


첫 번째 변화는 두 개의 'ㄴ' 소리가 발음이 쉬운 부드러운 'ㄹ' 소리로 된 음운의 유음화이고, 두 번째 변화는 'ŏ' 소리의 영향을 받은 'O' 소리의 모음 조화이다.

한편, 설렁탕의 이름이 하얀 색깔과 진한 맛에서 유래하여 "雪濃湯"(눈처럼 하얀 진한 국)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이는 잘못된 용법이라는 설명이 일부 한국어 사전에 기술되어 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표기[7]는 한자로 설렁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8]

2. 2. 몽골 유래설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선농단(先農壇)과 관련된 유래설이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 선농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17] 홍선표의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1940년)에 따르면, 세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친경(親耕)을 하던 중 갑자기 비가 내려 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친경 때 쓰던 소를 잡아 끓여 먹은 것이 설렁탕의 유래라고 한다.[18] '선농탕(先農湯)'이 음운 변화를 거쳐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17]

성종실록에 따르면 조선 성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낸 후 백성들과 함께 식사한 기록이 있으며,[27] 이때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적은 재료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라는 명에 따라 만들어진 국밥을 '선농탕'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19][22] 신하의 헌시(獻詩)에 “살찐 희생의 소를 널리 베푸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20]라는 구절이 있어 선농단에서 탕을 끓여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2]

몽골 유래설도 있는데, 13세기 전반기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소주와 함께 설렁탕이 전래되었다는 설이다.[13]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고어로 슈루라고 하며,[21] 『방언집석(方言輯釋)』에서는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고에서는 슐루라 한다고 하였다. 이 실러, 슐루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22] 만주족 같은 수렵 민족은 구이를 선호하고 몽고인과 같은 유목 민족은 장시간 삶거나 고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23] 특히 많은 군사들이 신속하게 음식을 먹으려면 고기를 물에 끓여 먹는 것이 유리하다.[24] 한반도에 주둔했던 몽고군들이 맹물에 고기를 끓여 먹던 조리법을 고려인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18]

이 외에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22]

2. 3. 기타 유래설



국물이 뽀얗고 맛이 농후하다 하여 설농탕(雪濃湯)이라고도 하는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17]

그중에 선농단(先農壇)과 관련이 있는 유래설이 있다. 선농단조선 시대에 임금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농경에 관계되는 신농씨(神農氏)하고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17] 홍선표가 기술한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1940년)에 따르면 어느날 세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친경(親耕) :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하던 중에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다. 비가 계속되자 배고픔을 못 견디어 친경 때에 쓰던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이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18] '선농단(先農壇)'하고 관련 있으니 '선농탕'이었던 것이 '설농탕' 등 음운변화를 거쳐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17] 또 다른 설은 『성종실록』에 보면 조선 성종이 성종 6년에 선농단(先農壇)에 제를 지낸후 백성들하고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있다.[27] 이때에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 가장 적은 재료를 사용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라고 명했다는 설이 있다.[19] 그렇게 만들어진 국밥을 '선농탕'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22] 신하가 임금께 바친 헌시(獻詩) 중에 “살찐 희생의 소를 널리 베푸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20]라는 시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선농단에서 탕을 끓여 함께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2]

몽고 유래설도 있다. 13세기 전반기 몽고가 고려를 침공했을때, 소주와 함께 설렁탕이 전래되었다는 설이다.[13]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고어로는 슈루라고 한다고 되어 있고,[21] 『방언집석(方言輯釋)』에서는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고에서는 슐루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실러, 슐루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22] 만주족 같은 수렵민족은 구이를 선호하고 몽고인과 같은 유목 민족은 장시간 삶거나 고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23] 특히 많은 군사들이 한꺼번에 신속히 음식을 먹으려면 고기를 물에 끓여 먹어야 유리하다.[24] 한반도에 주둔했던 몽고군들이 맹물에 고기를 끓여서 먹던 조리법을 고려인들이 받아들인 것이다.[18] 그 외에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22]

3. 역사

설렁탕은 서울의 향토음식이자 크고 작은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던 대중음식이었다.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10시간 이상 끓여 우려낸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 후, 편육을 넣고 국물을 부어 내는 패스트 푸드였다.[31] 일제강점기에는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저렴하여 설렁탕은 평민들의 음식이 되었다.[31] 1924년 2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설렁탕을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고 칭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10전, 1940년대에는 100원(소)~200원(대)에 판매되었다.[32] 2011년 전국 평균 가격은 6,700원이었다.[33] 과거에는 뽀얀 국물을 내기 위해 커피 프림이나 우유, 분유를 넣은 가짜 설렁탕이 존재하기도 했다.[34]

농림수산부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에 의하면, 1904년 개업한 서울의 이문설농탕이 가장 오래된 설렁탕 음식점이다.[35] 전남에서는 1910년에 개업한 "나주곰탕 하얀집/Naju Gomtang Hayanjib영어"이 가장 오래된 음식점으로 꼽힌다.[35]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첨지가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 갔지만, 아내가 죽어 먹지 못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36]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장금이가 소뼈 국물 대신 타락(우유)을 넣어 맛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온다. KBS 다큐 '한식연대기' (2022년 9월 22일 방송)에 따르면, 설렁탕은 음식 배달 문화의 시조였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서울에는 설렁탕을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많았다. 월간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9월자에는 설렁탕을 "집에 갈 노자 돈이나 마누라 치마 사 줄 돈이라도 안 사먹고 견디지 못할 것이다"라고 표현했다.[37]

설렁탕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단군과 같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냈고, 제단은 선농단(先農壇)이라 불렀는데, 이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4] 세종은 제사에 참여한 백성들과 함께 식사하며, 최소 재료로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도록 명했고, 그중 하나가 선농탕(先農湯)이었다.[4] 이후 선농탕은 발음이 쉬운 설렁탕으로 변화했다.


  • 선농탕 (Sŏnnongt'ang) > 설롱탕 (Sŏllongt'ang) > 설렁탕 (Sŏllŏngt'ang)


또 다른 설은 13세기 몽골고려 침입 시기, 몽골 음식인 '술렌(Sulen)'이 한국에서 설렁탕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5] 한편, 설렁탕의 이름이 "雪濃湯"(눈처럼 하얀 진한 국)에서 유래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잘못된 용법이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기는[8] 한자로 설렁탕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8]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이문설농탕의 이름에는 설렁탕의 고어 표기가 포함되어 있다.[9][10]

4. 조리법 및 섭취 방법

일반 식당에서는 보통 고기를 12~24시간 우려내지만, 가정에서는 보통 5~6시간으로 우려낸다. 회당 6시간 동안 3회로 끓이는 방법이 가장 적당하며, 오래 끓일 경우 영양성분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28]

설렁탕을 먹을 때는 소금, 후춧가루, 다진 파 등을 넣어 간을 맞춘 후, 깍두기,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고기는 편육으로 만들어 놓고,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얹는다. 기본적으로 소금간을 하지만, 입맛에 따라 얼큰한 맛을 내는 다대기를 첨가하기도 한다. 다대기는 끓는 간장이나 소금물에 마늘, 생강 따위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끓인 다음, 기름을 쳐서 볶은 양념의 한 종류이다.[30]

소(牛)의 뼈와 각 부위의 고기, 혀, 내장을 큰 솥에 넣고 10시간 이상 끓여 우윳빛 국물을 얻는다. 미리 데쳐 썰어 놓은 고기와 소면 등을 담은 그릇에 큰 솥의 국물을 붓고, 다진 파를 얹어 밥과 함께 먹는다. 조리 시에는 거의 양념하지 않고, 식탁에서 소금, 후추, 고춧가루 등을 넣어 취향에 맞게 간을 맞춰 먹는다. 특히 무김치(깍두기)가 곁들임 요리로 필수적이라고 하며, 밥이나 삶은 면을 넣어 먹어도 좋다.

설렁탕은 곰탕과 같이 집에서 적은 양을 끓여서는 제맛이 안 나기 때문에, 전문점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많은 양을 푹 끓여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풍부한 고단백의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동물성 지방이 많고 칼슘 흡수를 방해하는 인이 많이 들어있으며,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많이 치기 때문에 고혈압과 골다공증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뽀얀 국물은 전부 중성 지방(TG, triglyceride)이기 때문에 자주 먹는 것은 좋지 않다.[29]

5. 곰탕과의 차이점

곰탕과 설렁탕은 소의 다리뼈가 들어가는 사골곰탕이나 육수 블랜딩으로 인해 그 구분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27][25]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설렁탕은 주로 로, 곰탕은 주로 고기로 국물을 낸다는 점이다.[11][26] 사용하는 고기 부위와 간을 맞추는 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또는 사태를 넣고, 우설(牛舌), 허파, 지라 등과 잡육을 뼈째 모두 한 솥에 넣고 끓인다. 반면 곰탕은 소뼈를 넣지 않고 소의 내장 중 곱창, 양, 곤자소니 등을 많이 넣고 끓인다.[27] 곤자소니는 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 많은 부분이고, 도가니는 무릎도가니와 소의 볼깃살 두 가지인데 보통 무릎도가니를 말한다. 설렁탕에 허파나 창자를 넣기도 하지만 곰탕보다 뼈가 많이 들어가 국물이 뽀얗다.

곰탕은 다시마나 무를 넣어 끓이고 간장(진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국물이 진하고 기름진 반면, 설렁탕은 사골을 우려내 만들며 먹는 사람이 소금과 파로 간을 맞춘다. 하지만 요즘은 설렁탕과 곰탕 모두 먹을 때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27]

6. 외식 산업에서의 설렁탕

설렁탕은 서울의 향토음식이자 크고 작은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던 대중음식이었다.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10시간 이상 끓여 우려낸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 후, 편육과 국물을 듬뿍 부어 내주는 패스트 푸드였다.[31]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한우' 수탈을 위해 식용 소 사육을 장려하여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쌌고, 설렁탕은 평민들의 음식이 되었다.[31] 1924년 2월 10일자 매일신보의 기사 내용중에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는 내용이 실렸다.

1930년대에는 10전, 1940년대에는 1949년 11월 4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설렁탕 광고 기사에 의하면 100원(소), 150원(중), 200원(대)이었다.[32] 2011년 전국 평균 가격은 6,700원으로 조사됐다.[33] 한때는 뽀얀 국물을 흉내내기 위해 커피 프림이나 우유, 분유를 탄 가짜 설렁탕이 있었다.[34]

농림수산부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음식점은 서울의 1904년 이문설농탕, 전남의 1910년 음식점이다.[35]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첨지가 아내를 위해 사 간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었다.[36]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소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시간이 부족하자 타락(우유)을 넣어 부족한 맛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온다. KBS 다큐 '한식연대기' 2022년 9월 22일 방송에 따르면 음식 배달문화의 시조는 장국밥의 일종이었던 '설렁탕'이었다. 실제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서울에는 설렁탕을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많았다고 한다. 월간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9월자에 설렁탕에 대해서 "집에 갈 노자돈이나 마누라 치마 사 줄돈이라도 안 사먹고 견디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37]

소의 뼈와 내장 등을 오랫동안 고아내야 하므로 가정에서 조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문점이나 일반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편리함 때문에 아침, 점심 식사 등으로 널리 먹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한국 통계청에서는 생활 물가 지수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오래된 전통의 전문점이나 체인점 등이 새벽부터 또는 24시간 영업을 한다. 이러한 곳에서는 국과 밥 세트가 제공되며, 테이블에는 많은 양의 배추 김치, 깍두기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7. 문화 속 설렁탕

설렁탕은 서울의 향토음식이자 크고 작은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던 대중음식이었다.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10시간 이상 끓여 우려낸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 후, 편육을 넣고 국물을 부어 내주는 패스트 푸드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한우' 수탈을 위해 식용 소 사육을 장려하자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싸서 설렁탕은 평민들의 음식이 되었다.[31] 1924년 2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10전, 1940년대에는 1949년 11월 4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광고에 의하면 100원(소), 150원(중), 200원(대)이었다.[32] 2011년 전국 평균 가격은 6,700원이었다.[33] 한때는 뽀얀 국물을 흉내내기 위해 커피 프림이나 우유, 분유를 탄 가짜 설렁탕이 있었다.[34]

농림수산부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음식점은 서울의 1904년 이문설농탕, 전남의 1910년 나주곰탕 하얀집/Naju Gomtang Hayanjib영어이다.[35]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김첨지가 아내를 위해 사 간 음식이 설렁탕이다. 아내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는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이라며 울며 중얼거린다.[36]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소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시간이 부족하자 타락(우유)을 넣어 맛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온다. KBS 다큐 '한식연대기' 2022년 9월 22일 방송에 따르면 음식 배달문화의 시조는 장국밥의 일종이었던 '설렁탕'이었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서울에는 설렁탕을 배달하는 배달부들이 많았다. 월간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9월자에는 설렁탕에 대해 "집에 갈 노자돈이나 마누라 치마 사 줄돈이라도 안 사먹고 견디지 못할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37]

8. 같이 보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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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뉴스 우윳빛 도는 차진 국물…구수한 국수맛도 일품 http://healthcare.jo[...]
[35] 뉴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어디인가 했더니…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2-07-12
[36] 서적 한국단편문학 100선 1 일신서적출판사 2001
[37] 웹사이트 경성명물집 - 별건곤 https://terms.naver.[...]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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