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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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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숙옥은 재일 한국인 3세로,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조선학교에서의 차별, 모델 활동, 기업 설립,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재일 한국인 차별 문제와 헤이트 스피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의 '삼국인 발언'에 항의하고, 반 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인 '노리코에넷'을 설립하여 일본 사회의 차별 문제를 공론화했다. 또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천황제, 재일 한국인의 권리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여러 저서를 출간하고 방송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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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옥
기본 정보
이름신숙옥
출생명신숙옥
로마자 표기Sin Sug-ok
일본어 표기シン スゴ
한자 표기辛淑玉
출생일1959년 1월 16일
출생지서울 강남구
국적대한민국
다른 이름신야마 세츠코 (新山節子)
학력
출신 학교東京都立第一商業高等学校
직업
직업인재 육성 컨설턴트, 활동가, 대학 연구원
활동
활동 단체노리코에넷
활동 기간2013년 -
주요 활동헤이트 스피치 반대 운동
경력
경력노리코에넷 공동 대표

2. 생애

신숙옥은 1959년 1월 16일 도쿄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3세이다. 조선학교와 일본 학교를 모두 경험했으며, 차별과 폭력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모델, 기업 경영, 사회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2000년부터 나가시마 로쿠스케의 권유로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을 맡았으나, 성소수자 관련 기사에서 "오카마"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자 2001년에 사퇴했다.[23] 같은 해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의 "삼국인 발언"을 계기로 '이시하라 그만두라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공동대표를 맡아[24], 국제연합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참가하여 일본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호소했다.[25]

2003년에는 다다 우타코 반권력 인권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추진하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일본 건설위원회 호명인으로 활동했다. 2008년에는 항구평화를 위해 진상규명법의 성립을 목표로 하는 의원연맹에 초청되어 일본 사회의 혈연 중심주의와 재일 한국·조선인 차별 문제를 지적했다.[29]

2009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 운동에 참여했고, 2014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를 지지했다. 2013년에는 재일 특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のりこえねっと)을 설립했다.

2017년 도쿄 MX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뉴스 여자』와 관련하여 방송윤리·프로그램향상기구(BPO)에 심의를 신청, 인권 침해 판정을 받아냈다.[30] 이후 프로그램 제작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승소했다.[31] 같은 해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일본 공산당의 이케우치 사오리 후보를 지원했다.[33]

2018년부터 독일 뒤셀도르프로 이주했으나,[34][35] 2019년 일시 귀국하여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거주하고 있다.

2. 1. 어린 시절 및 교육

1959년 1월 16일, 도쿄도에서 재일 한국인 3세로 태어났다.[5] 아버지 신개성(辛開星)은 재일 한국인 2세[12], 어머니는 김계선(金癸仙)이다. 일본 이름은 '''니야마 세쓰코(新山節子)'''였다.[6] 4살 무렵, 유치원에 입학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며 자신이 조선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7]

신숙옥의 자서전 『세찬의 ごちそう』에 따르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생계를 위해 일했고, 4학년부터는 야쿠르트 판매원으로 일했다.[8] 초등학교 3학년 때 조선총련조선학교로 전학하기 전까지 일본 학교에 다녔다.[9] 8살 때 가게에서 과자를 훔쳤는데, 정기권에 적힌 조선 이름을 들키자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퍼질 것을 우려하여 일본 이름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0]

신숙옥은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이 시기에 대해 신숙옥은 삼촌 등 친척들이 호화로운 음식을 먹는 동안 자신은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방치되었으며, "비참했다"고 회고한다.[9]
조선학교 전학 이후신숙옥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다닌 조선학교 시절이 가장 심한 결석 기간이었다고 말한다.[11] 아버지의 국적은 한국이었지만[12], 조선총련 활동가의 "조선학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된 점심을 제공한다"는 말을 믿고 조선학교로 전학했다.[13][14] 그러나 조선학교에서는 "비조선학교 출신 전학생"을 "적국에서 온 자"로 여겨 심한 따돌림 대상으로 삼았고, "사상적으로 문제 있다"며 비난했다. 특히 조선어를 할 줄 몰랐던 신숙옥은 "총괄" 시간에 선생님이 "오늘 일본어를 사용한 사람"이라고 물으면, 급우들이 신숙옥이 일본어를 사용할 때마다 매일 고발했다. 고발을 받은 조선인 선생님은 일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신숙옥을 폭행했다.[11][14][9]

조선학교에서는 반(半) 일본인을 의미하는 "빵쪼빠리"라고 불리며, "총괄"이라 불리는 반성회에서 매일 자기비판을 강요당했다.[14][15] 조선학교 교사의 장난스러운 지시로 김이라는 남학생에게 발길질을 당해 처음으로 추간판탈출증을 앓았다. 이후 학교에서 쫓겨날 때까지 다녔지만,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조선학교 결석이 시작되었다.[41] 조선학교에서의 폭력 피해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고서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신숙옥은 조선족이 믿는 유교에서는 "여자가 학문을 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꾸중을 듣지 않았다고 설명한다.[11]

이후 신숙옥은 청바지(북한의 적국인 미국에서 유래한 옷)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했다. 이때의 폭행으로 디스크를 앓게 되었다.[16] 남동생도 조선학교 관계자들에게 의식불명에 이를 정도의 폭행을 당했다. 아버지는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다"는 태도를 보이며 담임 교사의 "그 아이는 거짓말쟁이다"라는 주장을 믿었고, 의식을 회복한 남동생에게서도 조선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신숙옥은 아버지의 행동을 "리버럴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한다.[41]
"혁명캠프" 불참으로 인한 폭행 및 퇴학 후중학교 2학년 때, 가정 형편 때문에 조선학교의 여름 소풍인 "혁명캠프" 비용을 낼 수 없어 조선 국적 교사들에게 폭행당하고 퇴학당했다. 이후 일본인이 다니는 스기나미구립 이즈미나미 중학교로 전학했다.[17] 전학 간 중학교에서는 "조선학교에서 온 학생"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시선을 받았다. 조선학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일본 학교 용어를 몰라 학급회의, 사회, 라디오 체조 등을 몰라 무지한 취급을 받았다.[9] 그래서 일본 학생들에게 "야 일본 남자들은 소식이라던데."라고 말하며 째려보면서 을 흘리는 등의 괴롭힘을 했는데, 이는 일본인으로부터의 괴롭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위협 행위였다"고 말한다.[18] 남동생은 조선학교에서 겪은 가혹한 폭행을 계기로 14세에 가출하여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41]

2. 2. 모델 활동 및 기업 설립

중학생 시절 미용실 헤어 모델 활동으로 수입을 얻게 된 것을 계기로 헤어쇼에도 출연하게 되었다.[19] 이즈미사노 시립 센난 중학교 졸업 후 도쿄도립 제1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는 신주쿠구의 고기구이 음식점 명월관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요요기 제미나르와 요요기 학원에 다녔다.[20]

17세에 긴자의 모델 클럽에 소속되었고, 이듬해 영화 엑스트라 출연으로 알게 된 디제이의 소개로 음악 관련 일을 하며 한동안 모델 활동을 병행했다.[21] 20세 때 하쿠호도에서 계약직(특별선전반)으로 근무했지만,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1983년경 프리랜서 광고업체로 독립하면서 본명(신숙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22] 1985년 인재육성회사 (주)향과사를 설립했다.[11]

2. 3.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및 사회 운동

2000년 나가시마 로쿠스케의 권유로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2001년 성소수자(LGBT)인 남성 동성애자(게이)를 다룬 기사에서 "오카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호모포비아 표현이라고 비판한 일부 직원들과 갈등을 빚어 편집위원직을 사퇴했다.[23]

2000년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의 "삼국인 발언"을 계기로 '이시하라 그만두라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공동대표를 맡았다.[24] 이 단체는 기자회견과 항의 활동을 펼쳤다. 2001년 국제연합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참가하여[25] 이시하라의 발언과 재일 한국인이 일본 사회에서 겪는 인종차별 피해를 호소했다. 같은 해 6월, 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고위 공무원의 차별 발언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인종차별 방지 훈련을 요구하는 권고를 채택했다.[28]

2003년 다다 우타코 반권력 인권상을 수상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추진하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일본 건설위원회 호명인이 되었다.

2008년 항구평화를 위해 진상규명법의 성립을 목표로 하는 의원연맹에 초청되어 강연했다. 일본에서는 혈연을 중시하여 재일 한국·조선인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재일 한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소속 의식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29]

2. 4. 노리코에넷 설립 및 활동

2013년 9월, "재일조선인 입국관리 특례법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특권을 받고 있다"는 이른바 "재일 특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반(反)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のりこえねっと)"을 설립했다.

3. 활동

신숙옥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재일조선인 차별 발언과 재일조선인 특례입국관리법 관련 차별적 인식 부족을 비판했다. 2013년 9월에는 '재일 특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을 설립했다.

2015년 1월 17일에는 '여성의 평화' 국회 휴먼 체인 행사에 참여하여 아베 신조 총리에게 "레드 카드"를 꺼내드는 시위를 벌였다.[36] 또한, 불법 체류 쿠르드인 가족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약 2만 명의 서명을 모았다.[37] 2011년에는 쿠르드 난민을 돕기 위해 200만 상당의 정치인 파티 티켓을 구입한 사실을 밝히며, 자신의 행동을 "내 쿠르드 친구를 돈으로 샀다"고 표현했다.[38][39]

3. 1.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삼국인' 발언 항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 발언과 특례입국관리법과 관련된 차별적인 인식 부족을 규탄했다.

3. 2. 반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 '노리코에넷' 설립

2013년 9월, “재일조선인 입국관리 특례법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특권을 받고 있다”는 소위 “재일 특권”이라 불리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반(反)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을 설립했다.[1]

3. 3. 국회 휴먼 체인 참가

2015년 1월 17일, しんぶん赤旗는 '여성의 평화'라는 제목으로 국회의사당을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사슬로 둘러싸는 국회 휴먼 체인 행사를 보도했다. 이 행사에는 기라 요시코 (일본 공산당 참의원 의원), 요코유 온코, 아마미야 쇼린 (반빈곤 운동가), 후지와라 마유미 (문예춘추 헌법 문제 대책 본부 부본부장), 사카모토 요코 (엠넷 민법 개정 정보 네트워크 이사장) 등이 참여하여 아베 신조 총리 (제3차 아베 내각)에게 "레드 카드"를 꺼내드는 시위에 참가했다.[36]

3. 4. 쿠르드인 지원

신숙옥은 불법 체류자로 추방을 거부하는 쿠르드인 2가족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도쿄도연합회, 정보노련 도쿄도협의회, 도쿄 교통국 노동조합, 도쿄 지하철 노동조합, 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 도쿄도본부, 도쿄도공립학교교직원조합, 도큐관광 노동조합, 전수도 도쿄수도노동조합 등에 호소하여 약 2만 명의 "일본 정부에 쿠르드인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모으고 있다.[37]

2011년 4월 16일 개최된 "이민과 국경" 세션에서 쿠르드 난민을 돕기위해 정치인들에게 협상했지만 움직여주지 않아 200만 상당의 정치인 파티 티켓을 구입함으로써 쿠르드 난민 2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내 쿠르드 친구를 돈으로 샀다"고 말하고 있다.[38][39]

4. 인물


  • 오락정보 프로그램을 싫어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저는 오락정보 프로그램이 싫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40] 신숙옥은 오락정보 프로그램을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저속한 프로그램"이라고 경멸했다. NHK 위성방송의 "꿈에서 오락정보 나가이 록푸스의 연예 저널"을 프로듀스하고 출연하여 오락정보 프로그램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 조선총련조선학교에 대해, "월사 면제와 급식 제공"을 내세운 민족학교라는 선전은 허구이며, 실제로는 북한의 지부로서 기능하면서 자신과 같이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행을 가했다고 비판한다. 조선학교 관계자의 폭행으로 추간판탈출증을 두 번이나 앓았다는 사실을 저서 「귀곡추추: 「낙원」에 귀환한 나의 가족」에서 밝히고 있다.[41] 조선학교에서는 재학생들에게 "조선 국적" 확인을 위한 국적 조사(고향 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되었고, 한국 국적 취득자나 일본 국적 학생들은 "배신자"로 여겨져 감시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42]
  • 조선학교에서는 신숙옥처럼 일본 학교에서 전학 온 학생들을 적국에서 온 자로 취급하여 괴롭힘하거나 생활총화 대상, 사상 문제자로 여겼다. 김일성과 북한의 사상을 찬미하고 암기하는 재일 조선인 학생이 우수한 학생으로 여겨지는 획일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 신숙옥은 "죽을 것 같았다"는 폭력 피해를 겪은 후 조선학교에 결석하게 되었다.[14]
  •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기관지 "민단신문"에 따르면, "노리코에넷토 발족 후 페이스북 친구 요청이 1600명 이상 증가했고, 재일의 접속이 많다"고 한다.[2]
  • 애국심에 대해, "나는 (국적을 가진) 한국에 대해서도, 공화국(북한)에 대해서도, (태어나 자란 고향인) 일본에 대해서도, 애국심 같은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라는 존재는 나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것일 뿐이며,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 재일 조선인의 귀환 사업으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주한 친척에게 생활비를 부담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친척이 모두 사망했을 때 "이제 북한과 인연이 끊겼다"고 생각하며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43]

5. 비판


  • 마에다 히로아키(1984년 일본 국적 취득)는 신숙옥에 대해 "'차별받았다', '일본은 가해자다'라고만 말하며 일생을 보낼까 생각하면, 나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44]
  • 정대균(한국계 일본인)은 김희로 사건에서 신숙옥의 발언을 인용하며 "미디어에 등장하는 재일동포 중에서 강상중과 신숙옥만큼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숙옥의 화법이 거침없지만 즉흥적이고 엉터리 같은 부분이 많으며, 재일 코리안의 피해자성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45]
  • 야마기와 스미오는 아사히 신문에서 신숙옥이 특정 비밀 보호법은 외국인 차별을 증가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특정 비밀 보호법은 공무원이나 기밀에 관련된 직무 담당자의 비밀 누설 방지를 목적으로 하며, 외국인 차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아사히 문화인'의 헛소문망상"이라고 비판했다.[46]

6. 발언

신숙옥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왔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에 대해서는 일본이 과거 조선인 강제 연행의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천황제에 대해서는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51] 재일 한국·조선인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헤이트 스피치 규제 법안에 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3]

뉴스 여자의 오키나와 헬기장 건설 반대 시위 보도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며, 아베 신조이시하라 신타로 등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본방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노력의 추진에 관한 법률(소위 반헤이트 스피치법)에 대해


  • “보호 대상이 제한되는 등 충분하지 않다. 헤이트의 피해는 미군 기지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에게까지 미친다.”[3]
  • “반헤이트법이 만들어졌다. 한 걸음 전진할까 기대했는데 전혀 변하지 않았다. 처벌이 없다. 늘어난 것은 이것을 만든 것에 대한 역겨움이죠.”[59]


;뉴스 여자의 오키나와현 동촌 고가의 헬리패드 건설 공사 반대 데모 보도에 대해

  • 2016년 9월 9일 도쿄도 지요다구 연합회관에서 열린 노리코에넷 주최 집회에서, 고가 헬리패드 반대 데모 참가 예정자에게 “나도 열심히 앞으로 벌겠다. 왜냐하면 나도 더 이상 체력이 없다. 나는 마치 옛날 대본영과 같다. 보내면 그대로 모르는 척한다. 그 후는 제멋대로 네가 거기서 열심히 해라 하는 식이다. 좋다. 그것은 일본의 문화이므로 우리도 하자. 젊은이에게는 죽게 한다. 젊은이에게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하게 한다는 것은 이나다 도모미도 말하는 것이다. 이나다가 말한다면 나도 말해야겠다고. 노인들은 앉아서 숙박하면서 괴롭힘을 주고 모두 체포되어라. 그러면 체포되면 더 이상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젊은이가 다음에 열심히 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야마시로 히로하루는 이미 초췌하다. 야마시로 히로하루에게는 ‘병으로 죽지 마라. 미군에게 살해당하지 마라. 일본 경찰에게 살해당하지 마라. 네가 죽을 때는 내가 죽여 주겠다’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강의했다.[70] 이 모습은 노리코에넷 공식 무비에서도 노컷으로 배포되고 있다.[71]


;노리코에넷 결성 목적에 대해

  • “팔린 싸움을 산다.”[2]
  • “적이 크므로 광범위하게 저항하고 싶다.”[2]
  • “지금까지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몸을 던져 ‘그것은 다르다’라고 계속 말해 나갈 것이다.”[2]


;귀화(일본 국적 취득) 신청 시 명의

신숙옥에 따르면 1987년 귀화(일본 국적 취득)를 신청했지만, 법무성 담당 심사관으로부터 ‘더 일본인다운 이름으로 해달라’는 말을 듣고 기각되었다고 주장한다.[80]

6. 1.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신숙옥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에 대해 "만약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했다 하더라도 일본은 비판할 수 있을까? 전쟁 중에 막대한 수의 조선인을 국가의 이름으로 납치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지금 왜 일본에 많은 조선인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자국의 역사를 잊은 발언이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47] 또한, 북한이 일본 여성을 납치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공작원 교육 담당자라면 재일 동포를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48]

신숙옥은 일본인들이 북한에 의한 납치 사건에 정치적으로 뛰어든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국가와 하나가 된 가해자로서 규탄받아 온 것에 지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처음으로 당당하게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그 납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49] 이는 일본 사회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북한 납치 문제를 통해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6. 2. 천황제

신숙옥은 天皇制일본어를 차별적인 제도로 규정하고, 일본국 헌법 제1장을 폐지해야 한다(군주제 폐지론)고 주장한다.[51] 북한 김씨 왕조 3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세습 체제를 일본 황실에 비유하며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51] 또한, "여기저기서 불만을 말하면 ‘꺼져’ 또는 ‘돌아가’라고 말한다. ‘알겠습니다. 조선인은 모두 돌아가겠습니다. 천황을 모시고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해 줄 것이다. 하지만, 저 녀석은 일하지 않으니까(웃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50]

6. 3. 재일 한국·조선인

신숙옥은 辻元清美, 福島瑞穂 등 여성 국회의원들이 비난받는 이유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이고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2] 재일 한국·조선인을 "마이너리티"이자 "아무런 보호도 없는 ‘노예’"라고 표현한다.[54]

NHK홍백가합전이 시작되면 친척들이 자신을 불러 TV를 볼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때마다 "이 사람은 조선인, 이 사람 집은 파칭코집, 이 사람 집은 불고기집" 등으로 끝없이 '재일 ワイドショー'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신숙옥에게 홍백가합전은 1년에 한 번 '조선인'의 수를 세는 이벤트였고, 한 번도 일본인의 수를 밑돈 적이 없다고 한다.[53]

福島瑞穂가 자신의 재일 의혹을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국적을 넘어 함께 싸워왔던 동료로부터 '당신들과 나는 다르다'라고 말한 것처럼 느꼈다"고 발언했다.[56]

"불법 체류는 흉악 범죄가 아니다. 신호 위반 정도의 사람이다."라고 말한다.[55] 또한, 흉악범 검거 인원 중 일본에 온 외국인은 11.2%에 불과하며, 9할 가까이는 일본인의 범죄라고 주장한다.[55]

"재일 특권"에 대해서는, 재일 한국인이 획득한 여러 권리의 대부분은 일본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1세대 중심의 민단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57]

6. 4. 노리코에넷 결성 목적

2013년 9월, 신숙옥은 "재일조선인 입국관리 특례법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특권을 받고 있다"는 소위 "재일 특권"이라 불리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반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을 설립했다.[1]

6. 5. '재일 특권'

2013년 9월, 신숙옥은 "재일조선인 입국관리 특례법에 의해 재일조선인이 특권을 받고 있다"는 소위 "재일 특권"이라 불리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근절하기 위해 반헤이트 스피치 시민운동 단체 “넘어서넷(のりこえねっと)”을 설립했다.[1]

6. 6. 뉴스 여자 오키나와 리포트 방송

2017년 1월, 신숙옥은 "지상파에서 헤이트를 흘려보낸 '뉴스 여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이 오키나와현 히가시촌 고가의 헬리패드 건설 공사 반대 데모를 보도하면서 거짓 정보를 흘리고 증오를 선동했다고 비판했다.[60][61] 그는 이 프로그램이 "항거하지 않는(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사회에서 말살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60][61]

방송 윤리·프로그램 향상 기구(BPO)는 2018년 3월, 해당 프로그램에 명예훼손의 인권 침해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여 TOKYO-MX에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62][63][64][65] 이에 TOKYO-MX 사장은 신숙옥에게 직접 사과했다.[62][63][64][65]

신숙옥은 프로그램 제작사인 DHC텔레비전 등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 9월 도쿄 지방법원은 DHC에 550만 지급과 사과문 게재를 명령했다.[66] 2022년 6월 도쿄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지지했고,[67] 2023년 4월 최고재판소가 DHC 측의 상고를 기각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68]

6. 7. 아베 신조

"아베 신조는 사과하지 않고, 말을 바꾸고, 뻔뻔하고, 역겨워한다. DV(가정 내 폭력)와 같다."[72]

6. 8. 이시하라 신타로

2000년 4월 9일,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육상자위대 네리마 주둔지 창립 기념식에서 "오늘날의 도쿄를 보면 불법 입국한 많은 삼국인·외국인이 매우 흉악한 범죄를 반복하고 있다"는 소위 '삼국인 발언'을 했다. 신숙옥은 어떤 문맥에서 "삼국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이 발언은 재일 코리안에 대한 모욕이며 인종차별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다.[74]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이시하라 신타로의 사임을 요구하는 '이시하라 그만둬 네트워크'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74]

1959년 일본 정부가 발표하고 2010년에도 재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재일 조선인 총수 61만 명 중 징용 노무자는 245명에 불과하며,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를 제외하고 자유 의사에 따라 잔류한 것이다."[74][75] 한편, 한국 전쟁 등의 전란을 피해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사람이 20만에서 4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사실도 있었다.[76][77][78]

2003년 4월 5일, 신숙옥은 오치아이 케이코, 사타카 마코토와 함께 '프레 도쿄도지사 선거'라는 인터넷 투표 사이트를 개설했다.[79] 이 사이트에는 이시하라 등 각 후보자의 프로필이 게시되었는데, 이시하라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6. 9. 쿠르드 난민 지원

신숙옥은 불법 체류자로 추방 위기에 놓인 쿠르드인 2가족을 "난민"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도쿄도연합회, 정보노련 도쿄도협의회, 도쿄 교통 노동조합, 도쿄 지하철 노동조합, 자치노 도쿄도본부, 도쿄도공립학교교직원조합, 도큐관광 노동조합, 전수도 도쿄수도노동조합 등에 호소하여 약 2만 명의 "일본 정부에 쿠르드인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모았다.[37]

2011년 4월 16일에 열린 "이민과 국경" 세션에서 쿠르드 난민 지원을 정치인들에게 요청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자 200만 상당의 정치인 파티 티켓을 구매하여 쿠르드 난민 2명을 구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신숙옥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내 쿠르드 친구를 돈으로 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38][39]

7. 저서


  • 대한민국・북한・재일 한국・조선인 사회가 알 수 있는 책|간코쿠・기타조센・자이니치 간코쿠・조센진 샤카이가 와카루 혼일본어 (할로우케이 엔터테인먼트, 1995년 5월, 와니 문고 증보판: 1998년 8월)
  • 말씀드리겠습니다|이와세테 이타다키마스일본어 (할로우케이 엔터테인먼트, 1996년 3월)
  • 여자가 회사에서|온나가 가이샤데일본어 (마가진하우스, 1998년 9월)
  • 불쾌한 남자들! 내가 화가 난 68가지 진짜 이야기|후카이나 오토코타치! 와타시가 아타마니 기타 로쿠주하치노 혼토노 하나시일본어 (고단샤, 1998년 10월)
  • 40초로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욘주뵤데 멘세쓰칸노 고코로오 쓰카무 호일본어 (주케이 출판, 1999년 9월)
  • 재일 한국인의 속마음 한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모르는|자이니치 고리안노 무나우치 니혼진니모 간코쿠진니모 와카라나이일본어 (고분샤, 2000년 2월, ISBN 433400671X)
  • 강한 자를 돕고 약한 자를 누르는 남자들!|쓰요키오 다스케, 요와키오 구지쿠 오토코타치!일본어 (고단샤+α문고, 2000년 6월)
  • 사랑과 증오의 한국어|아이토 니쿠시미노 간코쿠고일본어 (분슌신쇼, 2002년 5월)
  • 귀곡추추 「낙원」에 귀환한 나의 가족|기코쿠추추 「라쿠엔」니 기칸시타 와타시노 가조쿠일본어 (해방출판사, 2003년 5월)
  • 신숙옥의 각도|신슈쿠오쿠노 안구루일본어 (쿠사토분카, 2003년 7월)
  • 신숙옥의 매운맛 레스토랑 우에노 지에코・사타카 신・안베 조지・신숙옥의 4남매 대담|신슈쿠오쿠노 게키카라 레스토란 우에노 지에코・사타카 신・안베 조지・신슈쿠오쿠노 요닌쿄다이 다이단일본어 (생활정보센터, 2003년 12월)
  • 분노의 방법|이카리노 호호일본어 (이와나미 신쇼, 2004년 5월)
  • 이웃집 피카소 피카소들의 메시지|도나리노 피카소 피카소타치노 메시지일본어 (사진・다케다 나오, 에히메신문사, 2004년 12월)
  • 셋짱의 잔치|셋짱노 고치소일본어 (일본방송출판협회, 2006년 3월)
  • 악전고투의 권유|아쿠아가키노 스스메일본어 (이와나미 신쇼, 2007년 6월)
  • 화내지 않는 사람|이카라나이 히토일본어 (가도카와 원테마21, 2007년 7월)
  • 그 손에 올라타서는 안 된다!|소노테니 놋테와 이케나이!일본어 (지이사이나카마샤, 히토나루쇼보 발매, 2008년 8월)
  • 신숙옥식 현대 일본 고찰 혹은 혹은 혹은|신슈쿠오쿠테키 겐다이 닛폰코 다코부 고토하즈마리일본어 (나나쓰모리 서관, 2010년 7월)
  • 신숙옥식 현대 일본 고찰 혹은 혹은 혹은〈2〉|신슈쿠오쿠테키 겐다이 닛폰코 다코부 고토하즈마리〈2〉일본어 (나나쓰모리 서관, 2010년 12월)
  • 어른 여자의 멋|오토나 온나노 류기일본어 (PHP연구소, 2011년 12월)
  • 그 한마디를 할 수 없는 이 일본|소노 히토코토가 이에나이, 고노 닛폰일본어 (나나쓰모리 서관, 2013년 8월)
  • 일본인 대 조선인 결렬인가, 화해인가?|니혼진 다이 조센진 게쓰레쓰카, 와카이카?일본어 (永六輔|나가 로쿠스케일본어 공저, 光文社|고분샤일본어, 1999년 5월)
  • 이런 일본 싫어! 신숙옥 대 鈴木邦男|곤나 니혼 이야! 신 스쿠오쿠 타이 스즈키 구니오일본어 (青谷舎|아오야샤일본어, 1999년 11월)
  • 여자에게 선택받는 남자들 남자사회를 바꾸다|온나니 에라바레루 오토코타치 오토코샤카이오 가에루일본어 (安積遊歩|아즈미 유호일본어 공저, 太郎次郎社|다로지로샤일본어, 2001년 9월)
  • 젠더 프리는 멈추지 않는다! 페미 배싱을 넘어서|젠다 후리와 도마라나이! 페미 밧싱오 노리코에테일본어 (上野千鶴子|우에노 지즈코일본어 공저, 松香堂書店|쇼코도쇼텐일본어, 2002년 1월)
  • 퀴즈 울트라 인권 100문|퀴즈 우루토라 진켄 햐쿠몬일본어 (인재육성기술연구소 편, 감수, 解放出版社|가이호 출판사일본어, 2005년 12월)
  • 싸움의 예법 비판하지 않으면 일본은 망한다|다타카이노 사호 히한시나케레바 니혼와 호로비루일본어 (佐高信|사타카 신일본어 공저, 角川書店|가도카와 쇼텐일본어, 2006년 4월)
  • 괴롭히지 마라! 약자 괴롭힘 사회 일본|이지메루나! 쟈쿠샤 이지메 샤카이 니혼일본어 (香山リカ|가야마 리카일본어 공저, 角川oneテーマ21|가도카와 원테마21일본어, 2008년 3월)
  • 정치를 말하는 말씀 삿포로 시계탑 레슨|세이지오 가타루 고토바 삿포로 도케이토 레슨일본어 (山口二郎|야마구치 지로일본어 편저, 中島岳志|나카지마 다케시일본어, 가야마 리카, 佐藤優|사토 마사루일본어 공저, 七つ森書館|나나쓰모리 쇼칸일본어, 2008년 7월)
  • 차별과 일본인|사베쓰토 니혼진일본어 (野中広務|노나카 히로무일본어 공저, 角川oneテーマ21|가도카와 원테마21일본어, 2009년 6월)
  • 방사능 시대를 사는 3가지 액션|호샤노 지다이오 이키루 밋쓰노 아쿠숀일본어 (반 에이코 감수, 七つ森書館|나나쓰모리 쇼칸일본어, 2012년 3월)
  • 남성 문화여, 작별을――식민지, 전쟁, 원전을 말하다|단세 분카요, 사라바――쇼쿠민치, 센소, 겐파쓰오 가타루일본어 (도야마 다에코 공저, 岩波書店|이와나미 쇼텐일본어, 2013년 9월)
  • 주간 금요일|슈칸 긴요비일본어 2018년 3월 23일자부터 신숙옥의 좌충우돌 독일 일기|신슈쿠오쿠노 도타바타 도이쓰 닛키일본어 연재 시작.
  • 세계 (전자판)|세카이일본어에서 2018년 3월부터 델쿠이|데루쿠이일본어 연재.

8. 출연


  • 朝まで生テレビ! (TV 아사히(テレビ朝日), 1987년 ~)
  • 10대 진심 토크 (NHK(日本放送協会), 2000년 7월 8일)
  • 나와 남동생~재일 여성이 사는 지금~ (MBS(毎日放送), 2020년 3월 1일)
  • * MBS 다큐멘터리 「영상」 시리즈. 내레이션: 미야기 사츠키[81]
  • * 제57회 갤럭시상 장려상 수상[82]
  • 데모크라시 타임스(Democracy Times) (YouTube, 부정기)[83]
  • 노리코에넷Tube (YouTube, 부정기)
  • 인디펜던트 웹 저널(Independent Web Journal) (YouTube, 2014년 3월 26일)[84]
  • 생방송! 토코톤 공산당 (YouTube, 2017년 2월 14일)
  • 키우치 미도리의 작은 라디오 (YouTube, 2019년 1월 9일)[8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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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ヘイトスピーチに包囲網…在日同胞主導「のりこえねっと」発足 http://www.mindan.or[...] 2013-10-09
[3] 뉴스 人模様 反ヘイトの闘い、粘り強く 辛淑玉さん http://mainichi.jp/a[...]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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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웹사이트 辛淑玉 プロフィール https://www.sbrain.c[...] システムブレーン
[6] 서적 愛と憎しみの韓国語 文藝春秋 2002
[7] 서적 せっちゃんのごちそう NHK出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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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적 せっちゃんのごちそう NHK出版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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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서적 鬼哭啾啾: 「楽園」に帰還した私の家族 2003
[42] 서적 鬼哭啾啾: 「楽園」に帰還した私の家族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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