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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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는 1701년 왕위 계승법과 2013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규정되며, 스튜어트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의 자손에게만 해당된다. 왕위 계승자는 국왕의 직계 자손이어야 하며, 본인과 배우자는 성공회나 개신교 신자여야 하고, 가톨릭 신자 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자는 계승권이 상실된다. 2013년 법 개정으로 2011년 10월 28일 이후 출생자는 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며, 가톨릭 신도와의 결혼으로 인한 계승권 상실 조항이 폐지되었다. 현재 찰스 3세 국왕의 직계 후손들이 상위 순위에 있으며, 영연방 왕국은 동일한 왕위 계승 순위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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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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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왕위 계승 조건
영국의 왕위 계승 조건은 역사적으로 권리장전, 1701년 왕위 계승법, 그리고 연합법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이 법들은 영국에서 2013년 왕위 계승법을 통해 현대적인 상황에 맞게 일부 개정되었다. 이 개정은 주로 퍼스 협정의 내용을 반영하여 "왕위 계승을 성별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고 "왕실 결혼에 관한 조항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다른 영연방 왕국들도 각자의 법률을 통해 이 변경 사항을 시행했다.
기본적으로 왕위는 하노버의 조피의 적법한 개신교 후손에게 계승되며, 계승자는 잉글랜드 성공회와 교제를 가져야 한다.[26] 가톨릭 신자이거나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은 과거 계승 자격이 없었으나, 2013년 법 개정으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제한은 폐지되었다. 다만, 군주가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 본인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다.
상속 순서는 전통적으로 남성 우선 장자 상속 원칙을 따랐으나, 2013년 법 개정에 따라 2011년 10월 28일 이후 출생한 왕족부터는 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계승 순위가 결정된다. 2011년 10월 27일 이전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기존의 남성 우선 원칙이 계속 적용된다. 계승 순위의 우선권은 상속되므로, 상위 계승권자에게 자녀가 태어나면 하위 순위는 모두 조정된다.
또한, 사생아나 입양아는 계승 자격이 없으며, 왕위 계승 서열 상위 6명은 결혼 시 군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23] 승인 없이 결혼할 경우 해당자와 그 후손은 계승 자격을 잃는다.[23] 계승 자격이 없는 사람은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직계 후손의 계승 자격까지 박탈되지는 않는다(후손 본인에게 결격 사유가 없는 한).
2011년 10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열린 영연방 왕국 정상 회담에서 가톨릭 신자와의 결혼에 따른 계승권 상실 조항 철폐 및 성별 무관 장자 상속 원칙 도입이 합의되었다. 이 합의는 2012년 윌리엄 왕자 부부의 첫 아이 임신 발표 이후 영국 의회에서 2013년 왕위 계승법으로 제정되었고, 2015년 3월 26일에 발효되었다.[40] 이 법의 발효로 과거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계승권을 잃었던 세인트 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 등이 계승권을 회복했다.[40]
2. 1. 기본 조건
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는 권리장전, 1701년 왕위 계승법, 연합법에 의해 기본 원칙이 정해졌으며, 이 법들은 영국에서 2013년 왕위 계승법을 통해 일부 개정되었다. 이 법들에 따른 주요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다.- 혈통: 하노버의 조피의 개신교 "신체 상속인"(적법한 후손)이어야 한다.[39] 즉, 스튜어트 가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
- 종교: 계승자는 개신교 신자여야 하며, 왕위에 오른 후에는 잉글랜드 성공회와 교제를 함께해야 한다.[26] 가톨릭 신자이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은 계승권을 상실하며[28], 왕위 계승 목적상 "자연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29] 과거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도 계승 자격이 없었으나, 2013년 왕위 계승법으로 이 조항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군주가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 본인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된다.
- 상속 순서: 장자 상속 원칙을 따른다. 2011년 10월 28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계승 순위가 정해진다. 이는 퍼스 협정에 따른 것으로, "왕위 계승을 성별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2013년 왕위 계승법 개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이다. 2011년 10월 28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형제자매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하는 기존의 남성 우선 장자 상속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계승 순위의 우선권은 상속되므로, 상위 계승권자에게 자녀가 태어나면 하위 순위는 모두 조정된다.
- 적법성: 사생아나 입양아는 계승 자격이 없다. 부모가 나중에 결혼하여 적법화된 자녀라 할지라도 계승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 결혼 승인: 2013년 왕위 계승법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 1위부터 6위까지에 해당하는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군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23] 승인 없이 이루어진 결혼의 당사자와 그 결혼으로 태어난 후손은 왕위 계승 자격을 잃게 되지만, 결혼 자체의 법적 효력은 유지된다.[23] 이는 과거 조지 2세의 후손 대부분에게 군주의 결혼 동의를 요구했던 1772년 왕실 결혼법을 대체한 조항이다.
- 자격 박탈의 효과: 어떤 이유로든 계승 자격이 없는 사람은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직계 후손은, 후손 본인에게 별도의 자격 박탈 사유가 없는 한, 계승 자격을 잃지 않는다.
또한, 1702년 반역법 및 1703년 반역법 (아일랜드)에 따라 왕위 계승자를 박탈하거나 계승을 방해하려는 행위는 반역죄로 처벌될 수 있다.
2. 2. 계승 제외 조건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자격 조건은 권리장전과 1701년 왕위 계승법, 그리고 연합법에 의해 규정되어 왔으며, 이 법들은 2013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일부 개정되었다.[25][26] 계승 자격이 없는 사람은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직계 후손은 본인이 별도의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계승 자격을 잃지 않는다.주요 계승 제외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종교: 1701년 왕위 계승법은 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의 개신교를 믿는 적법한 직계 후손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39] 또한, 왕위를 계승하는 군주는 잉글랜드 성공회와 교제를 함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26] 이 '교제'의 의미는 비교적 넓게 해석되어, 루터교 신자였던 조지 1세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27] 권리장전은 로마 가톨릭 신자가 군주가 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이들은 왕위를 상속하거나 소유할 자격이 영구히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28][29] 즉, 가톨릭 신자이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은 계승권을 상실한다. 과거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도 계승 자격을 잃었으나, 2013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이 조항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군주가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 본인의 계승 금지 조항은 여전히 유지된다.
- 출생: 왕위는 군주의 적법한 직계 후손에게 상속된다. 사생아(부모가 혼인하지 않고 낳은 자녀)는 계승권이 없다. 부모가 나중에 결혼하여 자녀가 법적으로 적법화되더라도 왕위 계승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입양된 자녀 또한 계승 자격이 없다.
- 결혼 승인: 과거 1772년 왕실 결혼법은 조지 2세의 후손이 결혼하기 위해 군주의 동의를 받도록 요구했으나, 이 법은 2013년 왕위 계승법으로 폐지되었다. 현재는 왕위 계승 서열 1위부터 6위까지의 사람만 결혼 전에 군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23] 만약 승인 없이 결혼할 경우, 결혼 당사자와 그 결혼으로 태어난 후손은 왕위 계승 자격을 잃게 되지만, 결혼 자체는 법적으로 유효하다.[23] 과거 왕실 결혼법을 위반한 결혼은 무효였으며, 그 자녀는 사생아로 간주되어 계승 자격이 없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조지 4세가 조지 3세의 허가 없이 로마 가톨릭 신자인 마리아 앤 피츠허버트와 결혼하려 했을 때, 결혼 자체가 무효였기 때문에 그의 왕위 계승 자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2]
- 과거의 성별 우선 조항: 1701년 왕위 계승법에 따른 전통적인 장자 상속 원칙은 남성 우선 원칙을 포함하여, 아들이 딸보다 우선하고 같은 성별 내에서는 먼저 태어난 자녀가 우선권을 가졌다. 그러나 2013년 왕위 계승법 제정을 통해 퍼스 협정이 이행되면서, 2011년 10월 28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에 대해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계승 순위가 결정된다. 2011년 10월 27일 이전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기존의 남성 우선 원칙이 계속 적용된다.
- 특정 인물 제외: 1936년 폐위 선언법은 에드워드 8세와 그의 후손들이 왕위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24] 그러나 에드워드 8세가 1972년에 자녀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 법은 현재 실질적인 효력을 갖지 않는다.
2013년 왕위 계승법은 2015년 3월 26일에 발효되었으며, 이로 인해 과거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계승권을 상실했던 세인트 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 등이 계승권을 회복했다.[40]
한편, 1702년 반역법 및 1703년 반역법 (아일랜드)에 따르면 왕위 계승자를 박탈하거나 방해하려는 행위는 반역죄에 해당하며, 1998년 범죄 및 무질서법에 따라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3. 왕위 계승의 역사
영국의 왕위 계승은 초기에는 관습법에 따른 장자 상속 원칙을 따랐으나, 실제 역사에서는 왕위 다툼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 원칙이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6] 예를 들어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들 사이의 분쟁이나, 마틸다와 스티븐 왕의 계승 경쟁, 존 왕의 조카 아르투아를 제치고 즉위한 사례 등이 있다.[6]
14세기부터 의회가 왕위 계승 문제에 입법을 통해 개입하기 시작했다.[6] 리처드 2세가 폐위되고 헨리 4세가 즉위하는 과정이나, 이후 장미 전쟁을 거쳐 튜더 왕조의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 등에서 계승 순위보다는 정치적 힘과 의회의 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6][7][8][10]
헨리 8세 시대에는 그의 여러 결혼과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왕위 계승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여러 차례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어 메리 공주와 엘리자베스 공주의 계승 자격이 변경되었고, 헨리 8세는 유언을 통해 왕위 계승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유언을 통해 계승 순서를 바꾸려 했으나, 결국 헨리 8세의 법과 유언에 따라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가 차례로 즉위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후계자 지명을 거부했으며, 의회는 1571년 반역법 등을 통해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한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제임스 1세로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계승하여 왕관 연합이 이루어졌다. 이는 헨리 8세의 유언과는 배치되었으나, 제임스 1세의 강력한 지위와 세습적 권리가 인정받아 의회의 비준을 받았다.[16] 스튜어트 왕조 시대에는 잉글랜드 내전으로 찰스 1세가 처형되고 잠시 공화정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왕정복고로 찰스 2세가 즉위했다.
제임스 2세가 가톨릭 신앙 문제로 명예혁명(1688)을 통해 폐위되면서 영국 왕위 계승 역사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의회는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 윌리엄 3세를 공동 군주로 추대했다. 이후 잉글랜드의 권리 장전(1689)과 스코틀랜드의 권리 청원법은 왕위 계승 순서를 명확히 하고, 로마 가톨릭 신자 및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을 왕위 계승에서 영구히 배제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윌리엄과 메리, 그리고 다음 왕위 계승자인 앤 공주에게 적법한 후계자가 없자, 의회는 1701년 왕위 계승법을 제정하여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인 하노버 선제후비 소피아와 그녀의 프로테스탄트 후손들에게 왕위가 계승되도록 정했다.
앤 여왕 재위 중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탄생했고, 왕위 계승법은 새로운 왕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앤 여왕이 소피아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소피아의 아들 조지 1세가 1714년 즉위하여 하노버 왕가 시대를 열었다. 이후 자코바이트 반란 등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1800년 연합법으로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가 통합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오랜 통치 이후 윈저 왕가(1917년 개칭)가 왕위를 이었다. 20세기에는 1936년 에드워드 8세의 퇴위라는 큰 사건이 있었으며, 이는 그의 동생 조지 6세의 즉위로 이어졌다. 조지 6세의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고, 2022년 그녀의 아들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왕위 계승 규칙은 수세기에 걸쳐 관습, 법률, 정치적 사건들을 통해 변화해왔다.
3. 1. 잉글랜드 왕국
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는 14세기에 의회가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입법을 시작하기 전까지 관습법의 장자 상속 원칙에 의해 결정되었다.[6] 그러나 이 원칙이 항상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들은 왕위를 놓고 서로 다투었고, 그의 손녀인 마틸다는 그의 손자인 스티븐 왕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이는 마틸다의 아버지가 왕이었고 스티븐의 주장은 그의 어머니가 윌리엄의 딸이었다는 점에 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다. 리처드 1세가 1199년에 사망했을 때, 왕위는 그의 조카인 아르투아에게 돌아갔어야 했다. 아르투아는 리처드의 다음 형제인 조프루아의 아들이었지만, 아르투아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리처드의 막내 동생인 존은 아르투아가 한 세대 더 먼 친척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왕위를 차지했다.[6] 존은 자신의 왕위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조카 아르투아를 비밀리에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리처드 2세가 1399년 헨리 4세에 의해 폐위되었을 때, 헨리 역시 자신보다 더 정통성 있는 계승권자인 마치 백작 에드먼드를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6] 리처드와 헨리는 각각 에드워드 3세의 첫째 아들과 넷째 아들의 손자였고, 에드먼드는 에드워드의 셋째 아들로부터 내려왔으므로 헨리보다 왕위 계승 순위가 앞섰다. 그러나 에드먼드가 당시 겨우 일곱 살이었고, 헨리는 왕이라는 칭호 없이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기 어려웠기 때문에 의회의 지지를 받아 스스로 왕위를 차지했다.[6][7] 수십 년 후, 에드먼드의 누이인 모티머의 앤의 후손인 라이벌 요크 가문은 장미 전쟁 동안 헨리의 손자로부터 왕위를 빼앗았다.
1485년, 랭커스터 왕가의 적통 분파인 보퍼트 가문의 여성 후손인 헨리 튜더는 리처드 3세를 보즈워스 필드 전투에서 물리치고 헨리 7세로 영국의 왕위를 차지했다. 리처드는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인물이었다. 헨리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날인 1485년 8월 21일부터 소급하여 스스로를 왕으로 선포했다.[8]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 경은 헨리의 상속 주장을 "지금까지 제시된 것 중 가장 설득력이 부족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리처드의 조카이자 에드워드 4세의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이 "왕위에 대한 그의 최고의 권리"라고 말했다.[6] 헨리는 리처드의 ''왕위 법안''을 폐지하고 의회 기록에서 삭제하도록 했다.[9] 헨리가 그해 10월 런던에서 대관식을 치른 후, 11월 웨스트민스터에서 소집된 그의 첫 번째 의회는 "왕위의 상속은 당시 군주인 헨리 7세와 그의 합법적인 후손에게 있어야 한다"고 법으로 제정했다.[10]
헨리 7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헨리 8세가 왕위에 올랐다. 헨리 8세는 아버지로부터 랭커스터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에드워드 4세의 딸이었기 때문에 요크 가문을 통해서도 왕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1542년, 헨리는 또한 아일랜드 왕이라는 칭호를 취했다. 이 칭호는 1800년 1800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후에는 그레이트 브리튼) 왕관과 아일랜드 왕관이 합쳐질 때까지 계승되었다.
헨리 8세의 여러 결혼은 왕위 계승에 복잡한 문제를 야기했다. 첫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에게서 딸 메리를, 두 번째 부인 앤 불린에게서 딸 엘리자베스를,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에게서 아들 에드워드를 낳았다. 1533년 왕위 계승법은 메리를 사생아로 선언했고, 1536년 두 번째 법은 엘리자베스도 사생아로 선언했다. 그러나 1543년 세 번째 법은 딸들을 다시 적자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에드워드 다음으로 왕위 계승 순위에 포함시켰다. 이 법은 또한 "왕은 그의 특허장 또는 마지막 유언을 통해 … 제국 왕관 및 기타 전제 조건을 주고, 의지하고, 제한하고, 할당하고, 임명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헨리 8세의 유언에 따르면 메리와 엘리자베스 다음으로는 왕의 사망한 여동생 메리 튜더의 손녀들이 계승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유언은 스코틀랜드의 통치자였던 헨리의 또 다른 여동생 마가렛의 후손들을 왕위 계승에서 제외했다.

에드워드 6세는 1547년 헨리 8세의 뒤를 이었다. 독실한 개신교도였던 에드워드 6세는 가톨릭 신자인 이복 누나 메리가 왕위를 상속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유언으로 왕위 계승 순서를 변경하려 시도했다. 그는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모두 계승에서 제외하고, 서퍽 공작 부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조카손녀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는 여성이 잉글랜드를 통치할 수 없다는 기존의 관념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하자 제인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으로 선포되었으나,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9일 만에 대중적인 지지를 받던 메리에 의해 폐위되었다. 헨리 8세의 유언은 1543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승인되었으므로, 에드워드의 유언은 법적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이복 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많은 전임자들과 달리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전 군주들은 유언으로 왕위 계승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1571년 반역법은 의회가 왕위 계승 분쟁을 해결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의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을 반역죄로 규정했다. 또한 여왕의 안전법 1584은 국왕 암살 시도에 연루된 사람은 왕위 계승 자격을 박탈하도록 규정했다(이 법은 1863년에 폐지되었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하자, 그녀의 가장 가까운 혈족 중 하나이자 스코틀랜드 국왕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의 누나 마가렛 튜더의 증손자였다. 그의 계승은 헨리 8세의 유언(메리 튜더의 후손을 우선시)을 위반하는 것이었지만, 제임스는 세습적 권리가 법률 조항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고, 스코틀랜드 국왕으로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경쟁자들을 누를 수 있었다. 그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여 왕관 연합을 이루었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07년까지 별개의 주권 국가로 남아 있었다. 그의 왕위 계승은 의회에서 빠르게 비준되었다.[16]
제임스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잉글랜드의 찰스 1세는 잉글랜드 내전 끝에 1649년 처형되었고, 군주제는 폐지되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경으로서 통치하는 호국경 체제가 수립되었다. 크롬웰은 아들 리처드 크롬웰을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리처드는 무능하여 곧 물러났다. 이후 군주제가 복원되어 찰스 1세의 아들 잉글랜드의 찰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찰스 2세의 뒤를 이은 동생 제임스 2세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즉위 전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1688년 명예혁명으로 폐위되었고, 의회는 제임스가 국외로 도피함으로써 왕위를 포기했다고 간주했다. 의회는 제임스의 어린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대신, 그의 프로테스탄트 딸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이자 제임스 2세의 조카인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에게 공동으로 왕위를 제안했다. 이는 영국 역사상 유일한 공동 통치 사례였다. 윌리엄은 군사적 지원의 대가로 공동 통치를 요구했다.
1689년에 통과된 잉글랜드의 권리 장전과 스코틀랜드의 권리 청원법은 왕위 계승 규칙을 명확히 했다. 왕위는 메리 2세와 그 후손, 다음으로 메리의 여동생인 앤 공주와 그 후손, 마지막으로 윌리엄 3세가 장래에 결혼하여 낳을 후손 순으로 계승되도록 정했다. 또한, 오직 프로테스탄트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으며,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은 계승 자격이 박탈된다고 규정했다.
메리 2세가 1694년에 자녀 없이 사망하자 윌리엄 3세가 단독으로 통치하다 1702년에 사망했다. 앤 공주의 자녀들도 모두 어려서 사망하면서 권리 장전에 따른 계승 순위가 거의 소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잉글랜드 의회는 1701년 왕위 계승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권리 장전의 계승 순서(앤 공주와 그 후손, 윌리엄 3세의 후손)를 유지하면서, 그 다음으로는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인 하노버 선제후비 소피아(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딸)와 그녀의 프로테스탄트 후손들이 왕
3. 2. 스코틀랜드 왕국
스튜어트 왕가는 1371년부터 스코틀랜드를 통치했으며, 장자 상속의 엄격한 규칙을 따랐다. 1503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는 잉글랜드의 헨리 7세의 딸인 마거릿 튜더와 결혼했다.[11] 이 결혼은 100년 후 그의 증손자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상속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2]1543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를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과 결혼시켜 두 왕국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리니치 조약을 통해 제안된 이 결혼 계획은 프랑스와의 전통적인 오래된 동맹을 중시했던 스코틀랜드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로 인해 9년간의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 전쟁은 오늘날 거친 구애로 알려져 있다.[13] 1565년 7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마거릿 튜더의 또 다른 손자인 헨리 스튜어트 경과 결혼했다. 그러나 메리 여왕은 1567년 6월에 폐위되었고, 스코틀랜드는 1573년 5월까지 내전 상태에 놓였다.[14] 16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외교 관계는 소위 '우호 관계'로 불렸는데,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 6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연간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며 관계를 유지했다.[15]
3. 3. 왕관 연합 이후 (1603년 ~ 현재)
- 엘리자베스 2세 (1926–2022)
- * '''(8)''' 요크 공작 앤드루 (1960년 출생):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
- ** '''(9)''' 요크 공녀 베아트리스 (1988년 출생): 요크 공작 앤드루의 딸.
'''(10)''' 시에나 마펠리 모치 (2021년 출생): 요크 공녀 베아트리스의 딸
- ** '''(11)''' 요크 공녀 유제니 (1990년 출생): 요크 공작 앤드루의 딸.
'''(12)''' 어거스트 브룩스뱅크 (2021년 출생): 요크 공녀 유제니의 아들.
'''(13)''' 어니스트 브룩스뱅크 (2023년 출생): 요크 공녀 유제니의 아들.
- * '''(14)'''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1964년 출생):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
- ** '''(15)''' 웨식스 백작 제임스 (2007년 출생):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의 아들.
- ** '''(16)''' 레이디 루이즈 윈저 (2003년 출생):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의 딸.
- * '''(17)''' 프린세스 로열 앤 (1950년 출생): 엘리자베스 2세의 딸.
- ** '''(18)''' 피터 필립스 (1977년 출생): 프린세스 로열 앤의 아들.
'''(19)''' 사반나 필립스 (2010년 출생): 피터 필립스의 딸.
'''(20)''' 아일라 필립스 (2012년 출생): 피터 필립스의 딸.
- ** '''(21)''' 자라 틴달 (1981년 출생): 프린세스 로열 앤의 딸.
'''(22)''' 미아 틴달 (2014년 출생): 자라 틴달의 딸.
'''(23)''' 레나 틴달 (2018년 출생): 자라 틴달의 딸.
'''(24)''' 루카스 틴달 (2021년 출생): 자라 틴달의 아들.

앤 여왕이 하노버의 선제후비 소피아보다 먼저 사망함에 따라, 소피아의 아들인 조지 1세가 1714년에 왕위를 계승하며 하노버 왕가 시대를 열었다.
이후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를 목표로 한 1715년과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이 일어났고, 이는 자코바이트 왕위 계승을 지지하는 이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노버 왕가는 왕위를 지켰고, 계승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1801년에는 1800년 연합법에 따라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왕관이 통합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탄생했다. 조지 3세가 통치 부적격 상태에 빠진 1811년부터 1820년까지는 그의 아들인 웨일스 공(훗날 조지 4세)이 섭정으로서 통치했다. 이후 1830년 섭정법은 윌리엄 4세 사후 자녀가 태어날 경우의 왕위 계승 변경 가능성을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1837년 윌리엄 4세가 사망하자 그의 18세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녀의 63년간의 통치, 즉 빅토리아 시대 이후 1901년에는 장남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1910년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자 그의 차남이 조지 5세로 즉위했다. 에드워드 7세의 장남인 앨버트 빅터는 1892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1936년 1월, 아버지 조지 5세의 뒤를 이어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올랐다.[18] 그는 그해 11월 의회 개원을 주재했지만, 월리스 심슨이라는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여성과의 결혼 문제로 인해 같은 해 12월 퇴위했으며, 결국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다. 당시 영국 군주가 최고 통치자로 있는 잉글랜드 국교회는 이혼한 사람의 재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결혼은 정치적, 종교적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의회는 폐위 선언법 1936을 통과시켜 에드워드 8세가 12월 11일 왕으로서 법안에 동의하는 즉시 왕위를 포기하도록 했다. 이 법은 에드워드 8세 본인과 그의 후손들이 왕위에 대한 어떠한 권리나 자격, 이익도 가질 수 없다고 명시했다. 에드워드 8세는 자녀 없이 1972년에 사망했다.
에드워드 8세의 퇴위로 왕위는 법에 따라 그의 동생인 요크 공작에게 즉시 계승되었다. 그는 조지 6세라는 재위 명칭을 사용하여 왕위에 올랐다. 조지 6세는 1952년에 사망했고, 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시대에는 영국 군주가 더 이상 아일랜드 대부분 지역(1949년 공화국 선포)을 통치하지 않게 되었지만, 여러 독립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인 영연방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2022년에 사망했으며, 그녀의 장남인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영연방 왕국과의 관계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라, 각 영연방 왕국은 동일한 군주를 공유한다.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영연방 왕국들은 동일한 왕위 계승 순위를 따르기로 합의하였다. 일부 왕국은 자체적인 계승법을 통해 이를 규정하고, 다른 왕국들은 영국 군주가 해당 왕국의 군주가 되도록 명시한다. 1952년 2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했을 때, 그녀는 각 영연방 왕국에서 개별적으로 군주로 선포되었다.
2011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열린 2011년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서 16개 영연방 왕국의 정부 수반들은 왕위 계승법 변경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 합의(퍼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11년 10월 28일 이후 출생한 사람부터는 기존의 남성 우선 상속 대신 절대적 장자 상속(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계승) 원칙을 적용한다.
-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왕위 계승 자격을 박탈하는 조항을 폐지한다.
다만, 군주가 영국 성공회의 최고 통치자 지위를 유지해야 하므로, 가톨릭 신자 본인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여전히 제한된다.[19]
이러한 변경 사항은 각 영연방 왕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관련 법률이 제정된 후, 2015년 3월 26일에 모든 영연방 왕국에서 동시에 발효되었다.[20]
변경 사항이 발효된 직후 왕위 계승 순위 상위 27명에게는 즉각적인 변동이 없었으며, 첫 변동은 2015년 5월 2일 케임브리지의 샬롯 공주가 태어나면서 발생했다. 법적 효력이 발생한 2015년 3월 26일 시점에서 처음으로 영향을 받은 사례는 데이비나 윈저 부인의 자녀들이었다. 그녀의 딸 세나 코와이 루이스(2010년생)와 아들 타네 마후타 루이스(2012년생)의 순위가 바뀌어 각각 28위와 29위가 되었다(2022년 9월 기준 35위와 36위).[21] 또한, 과거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왕위 계승권을 상실했던 세인트 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 등이 이 개정으로 계승권을 회복했다.
5. 즉위 절차
영연방 왕국에서는 군주가 사망하면, 상속자 또는 추정 상속자가 별도의 확인 절차나 의식 없이 즉시 왕위를 계승한다.[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군주의 즉위를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 즉위 위원회가 소집되어 즉위 선포문을 결정한다. 이 선포는 수 세기 동안 런던, 요크, 에든버러 및 다른 도시들의 공공장소에서 의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새로운 군주가 즉위한 날은 재위 기간 동안 즉위 기념일로 기념되며, 영국에서는 왕실 예포가 발사된다.[32]
과거에는 새로운 군주가 직접 자신의 즉위를 선포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했을 때, 즉위 위원회가 소집되어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였던 제임스 1세의 잉글랜드 왕위 계승을 선포했다. 제임스 1세는 당시 스코틀랜드에 머물고 있었다. 이 방식이 선례가 되어 이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즉위 위원회는 보통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열린다. 제임스 1세 이후의 선포는 일반적으로 영적 귀족, 세속 귀족, 영국 추밀원, 런던 시장, 시의원 및 런던 시의 시민들, 그리고 "다른 주요 신사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으나, 일부 선포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선포는 영연방 회원국 대표를 언급한 첫 번째 사례였다.
새로운 군주는 즉위할 때 법에 따라 몇 가지 서약을 해야 한다. 1689년 권리 장전은 군주에게 로마 가톨릭교를 믿지 않는다는 공개 선언을 처음으로 요구했다. 이 선언은 즉위 선언으로 알려져 있으며, 재위 중 첫 번째 국회 회의(국정 개회식)나 대관식 중 더 먼저 열리는 시점에 해야 한다. 1910년에는 이전 선언 문구가 지나치게 반가톨릭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내용이 변경되었다. 현재 군주는 로마 가톨릭교를 비난하는 대신, 자신이 개신교 신자이며 개신교 왕위 계승을 "지지하고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한다.[33] 즉위 선언 외에도, 새로운 군주는 1707년 연합법에 따라 스코틀랜드 교회를 "유지하고 보존"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34] 이 서약은 보통 군주가 즉위 후 처음으로 소집하는 추밀원 회의에서 이루어진다. 1937년 섭정법에 따라, 군주가 18세 미만일 경우에는 성년이 된 후에 이러한 서약과 선언을 해야 한다.[35]
애도의 기간[36]이 지난 후, 새로운 군주는 보통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축성되고 대관된다. 대관식은 일반적으로 캔터베리 대주교가 주재하지만, 군주는 잉글랜드 교회의 다른 주교를 지정할 수도 있다. 대관식은 군주가 통치하는 데 필수적인 절차는 아니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8세는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지만, 짧은 재위 기간 동안 의심할 여지 없는 왕이었다.
6. 섭정
섭정법 1937에 따라, 국왕이 18세 미만이거나 무능력한 경우 섭정이 임명된다. 섭정은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자 중 21세 이상(추정 상속인은 18세 이상)이고 영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맡으며, 국왕의 권한을 행사한다.[37]
또한 왕위 계승 서열 상위 4명 중 21세 이상(상속인은 18세 이상)인 사람과 국왕의 배우자는 국무 자문관으로 임명될 수 있다. 국무 자문관은 국왕이 국외에 있거나 일시적으로 무능력할 때 영국에서 국왕의 일부 임무를 수행한다.[37]
그 외 왕위 계승 서열에 있는 사람은 특별한 법적 또는 공식적인 역할을 갖지 않는다.
앤 공주와 에드워드 왕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2022년 의회법에 따라 추가 국무 자문관으로 임명되었다.[38]
7. 현재 왕위 계승 순위 (일부)
왕위 계승 순위에 대한 공식적이고 완전한 버전은 유지되지 않는다. 먼 방계 혈족까지 포함하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정확한 수는 불확실하다. 2001년 미국의 계보학자 윌리엄 애덤스 라이트위즈너는 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의 살아있는 후손 4,973명의 계승 순위를 로마 가톨릭교도를 제외하지 않고 작성했으며,[3] 2011년 1월 업데이트에서는 5,753명이 포함되었다.[4] 당시 목록의 마지막 순위자는 독일 로스토크 출신의 치료사 카린 포겔(1973년생)이었다.[5]
영국의 왕위 계승 순위는 기본적으로 1701년 왕위계승법에 의해 정해졌으며, 2013년 왕위 계승법으로 일부 개정되었다.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스튜어트 가의 혈통을 이은 자(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의 개신교 후손[39])에 한한다.
- 계승자는 국왕의 직계 자손이다. 2011년 10월 28일 이후에 태어난 자는 성별에 관계없이 장자 상속(첫째 자식 → 첫째 자식의 자손 → 둘째 자식 → 둘째 자식의 자손 → ……의 순) 원칙이 적용된다. 2011년 10월 27일 이전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는 개정 전 형제자매 간 남자 우선 원칙이 적용된다.
- 개신교 신자여야 하며, 왕위 계승 후 잉글랜드 국교회와 스코틀랜드 국교회 소속이어야 한다.
- 가톨릭 신자 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자는 계승권을 상실한다. (단, 2013년 법 개정으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도 계승권을 상실하지 않게 되었다.)
- 사생아는 계승권이 없다.
2011년 10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열린 영연방 왕국 정상 회담에서 가톨릭 신자와의 결혼에 따른 왕위 계승권 상실 조항 철폐와 절대적 장자 상속제 도입이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2012년 12월 캐서린 왕세손비의 임신 발표 후 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고, 2013년 4월 25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얻어 2013년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었다.[40] 이 법은 2015년 3월 26일에 발효되었으며, 이로 인해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계승권을 상실했던 세인트 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 등이 계승 순위에 복귀했다.
현재 알려진 왕위 계승 순위는 주로 조지 5세 국왕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다루어진다. 영국 왕실의 공식 웹사이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직계 후손인 첫 24명의 순서를 제공하고 있다.[1]
7. 1. 영국 왕실 직계 (조지 5세 계열)
아래 목록은 영국 왕위 계승 순위의 일부로, 조지 5세 국왕의 아들들의 후손으로 제한된다. 찰스 3세 국왕의 증조부에 해당한다. 목록의 첫 24명은 모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후손이며, 영국 왕실 공식 웹사이트에 명시된 순서이다.[1] 이탤릭체로 표시된 인물은 사망했거나 계승 자격이 없는 경우이다.'''찰스 3세''' (b. 1948)
* '''(1)''' 웨일스 공 윌리엄 (b. 1982)
** '''(2)''' 웨일스 공자 조지 (b. 2013)
** '''(3)''' 웨일스 공녀 샬롯 (b. 2015)
** '''(4)''' 웨일스 공자 루이 (b. 2018)
* '''(5)''' 서식스 공작 해리 (b. 1984)
** '''(6)''' 서식스 공자 아치 (b. 2019)
** '''(7)''' 서식스 공녀 릴리벳 (b. 2021)
'''(8)''' 요크 공작 앤드루 (b. 1960)
* '''(9)''' 베아트리스 공주 (b. 1988)
** '''(10)''' 시에나 마펠리 모찌 (b. 2021)
* '''(11)''' 유제니 공주 (b. 1990)
** '''(12)''' 어거스트 브룩스뱅크 (b. 2021)
** '''(13)''' 어니스트 브룩스뱅크 (b. 2023)
'''(14)'''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b. 1964)
* '''(15)''' 웨식스 백작 제임스 (b. 2007)
* '''(16)''' 레이디 루이즈 윈저 (b. 2003)
'''(17)''' 프린세스 로열 앤 (b. 1950)
* '''(18)''' 피터 필립스 (b. 1977)
** '''(19)''' 사바나 필립스 (b. 2010)
** '''(20)''' 아일라 필립스 (b. 2012)
* '''(21)''' 자라 틴달 (b. 1981)
** '''(22)''' 미아 틴달 (b. 2014)
** '''(23)''' 레나 틴달 (b. 2018)
** '''(24)''' 루카스 틴달 (b. 2021)
- ** ''스노든 백작 부인 마거릿 공주 (1930–2002)''
'''(25)''' 제2대 스노든 백작 데이비드 암스트롱존스 (b. 1961)
* '''(26)''' 린리 자작 찰스 암스트롱-존스 (b. 1999)
* '''(27)''' 레이디 마가리타 암스트롱-존스 (b. 2002)
'''(28)''' 레이디 사라 채토 (b. 1964)
* '''(29)''' 사무엘 채토 (b. 1996)
* '''(30)''' 아서 채토 (b. 1999)
- * ''글로스터 공작 헨리 (1900–1974)''
- ** '''(31)'''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b. 1944)
'''(32)''' 얼스터 백작 알렉산더 윈저 (b. 1974)
* '''(33)''' 쿨로든 경 잰 윈저 (b. 2007)
* '''(34)''' 레이디 코시마 윈저 (b. 2010)
'''(35)''' 레이디 다비나 윈저 (b. 1977)
* '''(36)''' 세나 루이스 (b. 2010)
* '''(37)''' 테인 루이스 (b. 2012)
'''(38)''' 레이디 로즈 길먼 (b. 1980)
* '''(39)''' 라일라 길먼 (b. 2010)
* '''(40)''' 루퍼스 길먼 (b. 2012)
- * ''켄트 공작 조지 (1902–1942)''
- ** '''(41)''' 켄트 공작 에드워드 (b. 1935)
'''(42)''' 세인트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 (b. 1962)
* ''다운패트릭 경 에드워드 윈저'' (b. 1988)
* ''레이디 마리나 윈저'' (b. 1992)
* '''(43)''' 레이디 아멜리아 윈저 (b. 1995)
''니콜라스 윈저 경'' (b. 1970)
* '''(44)''' 알버트 윈저 (b. 2007)
* '''(45)''' 레오폴드 윈저 (b. 2009)
* '''(46)''' 루이스 윈저 (b. 2014)
'''(47)''' 레이디 헬렌 테일러 (b. 1964)
* '''(48)''' 콜럼버스 테일러 (b. 1994)
* '''(49)''' 카시우스 테일러 (b. 1996)
* '''(50)''' 엘로이즈 테일러 (b. 2003)
* '''(51)''' 에스텔라 테일러 (b. 2004)
- ** '''(52)''' 켄트 공자 마이클 (b. 1942)
'''(53)''' 프레더릭 윈저 경 (b. 1979)
* '''(54)''' 모드 윈저 (b. 2013)
* '''(55)''' 이사벨라 윈저 (b. 2016)
'''(56)''' 레이디 가브리엘라 킹스턴 (b. 1981)
- ** '''(57)''' 켄트 공녀 알렉산드라 (b. 1936)
'''(58)''' 제임스 오길비 (b. 1964)
* '''(59)''' 알렉산더 오길비 (b. 1996)
* '''(60)''' 플로라 베스터베르그 (b. 1994)
'''(61)''' 마리나 오길비 (b. 1966)
* '''(62)''' 크리스찬 모와트 (b. 1993)
* '''(63)''' 제누스카 모와트 (b. 1990)
7. 2. 영국 왕실 방계 (엘리자베스 2세 계열)
아래 주석이 달린 목록은 조지 5세 국왕의 아들들의 후손으로 제한되며, 찰스 3세 국왕의 증조부이다. 목록에 번호가 매겨진 처음 24명의 순서는 모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후손이며, 영국 왕실의 공식 웹사이트에 나와 있다.[1] 이탤릭체로 표시된 사람들은 사망했거나, 출처에 따르면 계승에서 제외된 경우 번호가 매겨지지 않는다.- '''찰스 3세''' (1948년생)
- * '''(1)''' 웨일스 공 윌리엄 (1982년생)
- ** '''(2)''' 웨일스 공자 조지 (2013년생)
- ** '''(3)''' 웨일스 공녀 샬럿 (2015년생)
- ** '''(4)''' 웨일스 공자 루이 (2018년생)
- * '''(5)''' 서식스 공작 해리 (1984년생)
- ** '''(6)''' 서식스 공자 아치 (2019년생)
- ** '''(7)''' 서식스 공녀 릴리벳 (2021년생)
- '''(8)''' 요크 공작 앤드루 (1960년생)
- * '''(9)''' 비어트리스 공주 (1988년생)
- ** '''(10)''' 시에나 마펠리 모찌 (2021년생)
- * '''(11)''' 유제니 공주 (1990년생)
- ** '''(12)''' 어거스트 브룩스뱅크 (2021년생)
- ** '''(13)''' 어니스트 브룩스뱅크 (2023년생)
- '''(14)'''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1964년생)
- * '''(15)''' 웨섹스 백작 제임스 마운트배튼-윈저 (2007년생)
- * '''(16)''' 웨섹스 백작부인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 (2003년생)
- '''(17)''' 앤 공주 (1950년생)
- * '''(18)''' 피터 필립스 (1977년생)
- ** '''(19)''' 사바나 필립스 (2010년생)
- ** '''(20)''' 아일라 필립스 (2012년생)
- * '''(21)''' 자라 틴달 (1981년생)
- ** '''(22)''' 미아 틴달 (2014년생)
- ** '''(23)''' 레나 틴달 (2018년생)
- ** '''(24)''' 루카스 틴달 (2021년생)
8. 다른 나라 왕족의 왕위 계승권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린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영국 왕실과 친족 관계의 왕후 귀족의 수가 증가하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5명의 딸은 독일 제후 등에 시집을 가 40명의 손자, 37명의 증손이 탄생했다). 그 결과, 외국 왕족에게 영국의 왕위 계승권자가 존재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참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손자 목록").
역대 영국 국왕의 자손들은 여러 나라의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왔다. 이로 인해 가톨릭 신자가 아닌 다른 나라 왕족 중에도 영국 왕위 계승권을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계승 순위는 자신보다 상위 계승권자의 탄생이나 사망, 혹은 가톨릭으로의 개종 등에 따라 자주 변동한다. 하지만 현재 영국 왕실과는 혈연적으로 상당히 멀기 때문에, 이들이 실제로 영국 국왕 자리를 계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린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영국 왕실과 친족 관계를 맺은 유럽 왕족과 귀족의 수가 크게 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다섯 딸이 독일 제후 등과 결혼하면서 40명의 손자와 37명의 증손자가 태어났고, 이는 외국 왕족 중에 영국 왕위 계승권자가 존재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국가 | 인물 | 주요 계승 경로 |
---|---|---|
노르웨이 | 하랄 5세 | 에드워드 7세 → 모드 왕비 → 올라프 5세 → 하랄 5세 |
프로이센 (구 왕가)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 빅토리아 여왕 → 알프레드 공작 → 빅토리아 멜리타 대공비 → 키라 왕자비 →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
스웨덴 | 칼 16세 구스타프 | 빅토리아 여왕 → 아서 공작 → 마거릿 왕세자비 → 구스타프 아돌프 왕세자 → 칼 16세 구스타프 |
덴마크 | 마르그레테 2세 (전 여왕) | 빅토리아 여왕 → 아서 공작 → 마거릿 왕세자비 → 잉리드 왕비 → 마르그레테 2세 |
덴마크 | 프레데릭 10세 | 빅토리아 여왕 → 아서 공작 → 마거릿 왕세자비 → 잉리드 왕비 → 마르그레테 2세 → 프레데릭 10세 |
그리스 (구 왕가) | 안나-마리아 (전 왕비) (단, 정교회 신자) | 빅토리아 여왕 → 아서 공작 → 마거릿 왕세자비 → 잉리드 왕비 → 안나-마리아 |
그리스 (구 왕가) | 파블로스 (전 왕세자) (단, 정교회 신자) | 빅토리아 여왕 → 빅토리아 황후 → 빌헬름 2세 → 빅토리아 루이제 공비 → 프레데리키 왕비 → 콘스탄티노스 2세 → 파블로스 |
네덜란드 | 베아트릭스 (전 여왕) | 조지 2세 → 안나 공비 → 빌럼 5세 → 빌럼 1세 → 빌럼 2세 → 빌럼 3세 → 빌헬미나 → 율리아나 → 베아트릭스 |
네덜란드 | 빌럼 알렉산더르 | 조지 2세 → 안나 공비 → 빌럼 5세 → 빌럼 1세 → 빌럼 2세 → 빌럼 3세 → 빌헬미나 → 율리아나 → 베아트릭스 → 빌럼 알렉산더르 |
그 외에도 루마니아,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러시아, 쿠를란트, 하노버, 조지아, 불가리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등의 구 왕가나 명가에도 계승권 보유자가 있다.
스페인의 경우, 국왕 알폰소 13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빅토리아 유제니 공녀와 결혼하여 그의 자손들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기도 하다. 또한, 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 2세 국왕의 누나인 소피아 왕녀가 빅토리아 유제니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 1세와 결혼하여 현 스페인 왕실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혈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은 가톨릭을 신봉하며, 빅토리아 유제니와 소피아 모두 결혼과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그들과 그 자손들은 영국 왕위 계승권이 없다. 특히 빅토리아 유제니의 결혼은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 대부분이 개신교 왕실과 혼인하던 상황에서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그녀가 혈우병 보인자일 가능성 때문에 영국과 스페인 양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이었던 에든버러 공 필립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빅토리아 여왕 → 앨리스 대공비 → 빅토리아 후작 부인 → 앨리스 왕자비 → 필립 공)으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2021년 사망 당시 그의 계승 순위는 485위에 불과하여 그의 자녀들이나 손자녀들보다도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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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and Leopold Windsor were listed on 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 until 2015 and in the 2013 edition of ''Whitaker's Almanack'' as following Estella Taylor (b 2004) and eligible to succeed; MSN News, Debrett's and ''Whitaker's Almanack'' 2015 lists them after Lady Amelia Windsor and before Lady Helen Taylor. They were baptised as Catholics, and are not listed in line in editions of ''Whitaker's'' earlier tha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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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a Windsor christened at Kensington Palace in the same gown worn by Princess Charlo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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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年]]の[[ドイツ革命]]により王政廃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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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年のクーデターにより国王[[コンスタンティノス2世 (ギリシャ王)|コンスタンティヌス2世]]やパウロスを含むその家族がローマへ亡命。1973年に正式な王政廃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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