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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왕위계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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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01년 왕위계승법은 1701년 영국에서 제정된 법으로,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을 배제하고 하노버 왕가의 계승을 규정했다. 명예혁명 이후 왕위 계승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스코틀랜드와의 연합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내용은 하노버 선제후 조피와 그 후손에게 왕위 계승 자격을 부여하고, 가톨릭 신자 및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자는 왕위 계승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다. 2013년에는 왕위 계승법이 개정되어, 가톨릭 신자와의 결혼에 의한 왕위 계승권 상실 조항이 폐지되고, 성별에 따른 계승 순위 차등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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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왕위계승법
개요
존 클로스터만이 그린 앤 여왕의 초상화, 앤 여왕은 왕관을 쓰고 왕족 의상을 입고 있다.
앤 여왕, 존 클로스터만 그림, 1702년
법률 명칭왕위 계승 및 신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에 관한 법률
제정 의회잉글랜드 의회
연도1701년
인용12 & 13 Will. 3. c. 2
상원 통과일1701년 4월 24일
하원 통과일1701년 5월 8일
국왕 재가일1701년 6월 12일
발효일1701년 2월 6일
영역잉글랜드 왕국 (1701–1707)
아일랜드 왕국 (1701–1800; 잉글랜드 의회에서 아일랜드 왕국으로 확장)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1707–1800)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1801–1922)
영국 (1922–현재)
캐나다 (1867–1931; 추밀원 명령 P.C. 3144 및 1937년 왕위 계승법의 결과로 캐나다의 별도 법률이 됨)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1901–42; 1942년 웨스트민스터 법령 채택법의 결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별도 법률이 됨)
뉴질랜드 (1907–47; 1947년 웨스트민스터 법령 채택법의 결과로 뉴질랜드의 별도 법률이 됨)
뉴펀들랜드 자치령 (1907–49; 자치령은 캐나다의 주가 됨)
남아프리카 연방 (1910–31; 웨스트민스터 법령의 결과로 남아프리카 연방의 별도 법률이 됨)
아일랜드 자유국 (1922–31; 웨스트민스터 법령의 결과로 아일랜드 자유국의 별도 법률이 됨)
현황수정됨
관련 법률권리 장전 (1689년)
온라인 텍스트원본 텍스트
개정 텍스트
내용
목적왕위 계승 순서 확립, 가톨릭 군주 배제
주요 조항가톨릭 신자이거나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은 왕위 계승 불가
영국 군주는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어야 함
판사의 임기를 군주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행동이 좋을 때까지"로 보장
영향하노버 왕가의 왕위 계승을 가능하게 함
수정
주요 수정 법률왕위 계승법 2013 (뉴질랜드)
왕위 계승법 2013 (영국)
왕위 계승법 2015 (호주)
왕위 계승법 2015 (바베이도스)
왕위 계승법 2013 (캐나다)
기타
배경명예 혁명 이후 왕위 계승 문제 해결 필요성 대두
중요성영국 헌법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왕위 계승 규칙을 규정함

2. 역사적 배경

1701년 당시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3세는 후계자가 없었다. 앤과 조지 부부의 자녀들이 왕위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모두 요절하면서, 앤 이후의 국왕 최유력 후보는 앤의 이복 동생이자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노왕이 되었다. 이 노왕의 즉위를 막기 위해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었다.

1689년 오라녜 공 윌리엄의 즉위는 그의 측근인 네덜란드인에 대한 편애를 가져왔고, 1701년까지 잉글랜드에는 반 네덜란드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10]

이 법에 따라 규정된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왕위 계승자는 스튜어트 가문의 혈통을 가진 자로 한정한다.
  • 잉글랜드 국교회 신자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다. (가톨릭 신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 배우자도 국교회 신자여야 한다.
  • : 이 조항에 따라 많은 이들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되었고, 하노버 왕국의 공주 소피 및 그 자손에게 계승권이 한정되었다.
  • 외국 출신 국왕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잉글랜드 외의 영토를 위해 출병할 수 없다.
  • 국왕은 의회의 승인 없이 잉글랜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1714년 폐지)

2. 1.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1688년 명예 혁명으로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2세가 폐위되고, 그의 딸 메리 2세윌리엄 3세가 공동 왕으로 추대되었다. 1689년 권리장전은 왕위 계승에서 가톨릭교도를 배제하는 원칙을 확립했다.[7]

메리 2세1694년에 자녀 없이 사망했고, 윌리엄 3세는 재혼하지 않았다. 1700년, 앤의 유일하게 유아기를 넘긴 자녀인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은 11세의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했다.[8] 따라서 앤은 왕위 계승 서열의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권리 장전은 가톨릭교도를 왕위에서 배제했는데, 이는 제임스 2세와 그가 1668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후에 낳은 자녀들(그리고 그들의 후손)을 배제했다. 그러나 앤 이후의 추가적인 계승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앤과 아들이 바로크 양식 정원을 배경으로 포옹
앤 공주와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 1700년 윌리엄의 사망은 이 법의 전제가 됨

2. 2. 앤 여왕의 후계 문제

오라녜 공 윌리엄 3세는 당시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고 있었는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의 처제 앤과 조지 부부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모두 요절하였다. 앤 이후 국왕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앤의 이복동생이자 가톨릭 교도였던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였다. 그의 즉위를 막기 위해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위계승법이 제정되었다.[7]

명예 혁명 이후, 잉글랜드 왕위 계승은 권리 장전 1689에 의해 규정되었는데, 이는 혁명 동안 제임스 2세가 잉글랜드에서 프랑스로 도망간 것이 왕위 포기에 해당하며, 제임스의 딸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이자 사촌인 윌리엄 3세가 제임스의 계승자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권리 장전은 또한 계승 순위가 윌리엄과 메리의 프로테스탄트 후손, 윌리엄보다 오래 살 경우의 미래의 남편, 메리의 여동생 앤과 그녀의 프로테스탄트 후손, 윌리엄이 메리보다 오래 살 경우 가능한 후기 결혼을 통한 윌리엄 3세의 프로테스탄트 후손을 거치도록 규정했다.[7]

메리 2세는 1694년에 자녀 없이 사망했고, 윌리엄 3세는 재혼하지 않았다. 1700년, 앤의 유일하게 유아기를 넘긴 자녀인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은 11세의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했다.[8] 따라서 앤은 왕위 계승 서열의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권리 장전은 가톨릭교도를 왕위에서 배제했지만, 앤 이후의 추가적인 계승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따라서 의회는 소피아와 그녀의 후손에게 계승을 정하고, 그로써 프로테스탄트 계열의 왕관의 연속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 법에서 정한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왕위 계승자는 스튜어트가의 혈통을 받는 자에 한한다.
  •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다. (가톨릭 신도는 왕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도 국교회 교인이어야 한다.


이 조항은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비롯해 아래와 같은 혈통상의 권리자 대부분을 왕위 계승에서 배제했고, 소피와 그 자손에게 상속권자가 제한되었다.

2. 3. 자코바이트의 위협

명예 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제임스 2세와 그의 지지 세력(자코바이트)은 왕위 복귀를 꾀하며 잉글랜드의 안정을 위협했다. 1701년 왕위계승법이 없었다면 앤 여왕 사후 제임스 2세의 장남이자 앤의 이복동생인 제임스 노왕에게 왕위가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12] 이 법으로 가톨릭교도를 왕위에서 배제하자, 가톨릭 신자가 많고 스튜어트 왕가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1703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스코틀랜드의 왕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안보법(the Act of Security)을 성립시켰다. 잉글랜드는 교역 제한 등으로 압력을 가해 스코틀랜드를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1707년 연합법이 성립되어 스코틀랜드 의회는 해산되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12]

3. 왕위계승법의 주요 내용 (1701년)

1701년 당시 잉글랜드의 왕 오라녜 공 윌리엄 3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처제 앤과 조지 부부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모두 요절하였다. 앤 이후 국왕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앤의 이복동생으로 가톨릭 교도였던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였다. 그의 즉위를 막기 위해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위계승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서 정한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왕위 계승자는 스튜어트 가문의 혈통을 받는 자에 한한다.
  •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다. (가톨릭 신도는 왕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도 국교회 교인이어야 한다.


이 조항으로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비롯해 많은 혈통상의 권리자들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되었고, 소피와 그 자손에게 상속권자가 제한되었다.[52][53][54]

이 외에도 왕위 계승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외국 출신의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잉글랜드 국외의 영지로 출병할 수 없다.
  • 왕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잉글랜드 국외에 나올 수 없다. (1714년 폐지)[52]
  • 군주는 "잉글랜드 교회를 따를 것"이다.
  • 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사람이 왕위에 오르면,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왕실에 속하지 않은 영토나 지역"을 위해 "의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다.
  • 어떤 군주도 의회의 동의 없이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또는 아일랜드 왕국의 영토를 떠날 수 없다. (1716년 폐지)
  • 추밀원의 관할권 내의 모든 정부 문제는 추밀원에서 처리해야 하며, 모든 의회 결의안은 그에 대해 조언하고 동의한 사람들이 서명해야 했다. (앤 여왕 재위 초기에 폐지)
  • 귀화했거나 시민권을 얻었더라도 외국인은 추밀원 의원이 되거나 양원 의원이 될 수 없다.
  • 군주 밑에서 직책을 맡거나 왕실로부터 연금을 받는 사람은 의회 의원이 될 수 없었다.
  • 판사의 임명은 ''quamdiu se bene gesserint'' (선행하는 동안) 유효하며, 양원에 의해서만 해임될 수 있다.
  • "잉글랜드 대인장에 따른 어떤 사면도 의회의 하원에 의한 탄핵에 변론될 수 없다."

3. 1. 왕위 계승 자격

스튜어트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잉글랜드 성공회 신자만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 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자는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다.[14]

1701년 당시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이자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3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고, 의붓 여동생 앤과 조지 부부의 자녀들이 왕위를 계승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그녀의 자녀들이 모두 요절하면서 앤 이후의 국왕 최유력 후보가 앤의 이복 동생이자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노왕이 되었다. 이 노왕의 즉위를 막기 위해 잉글랜드 의회에서 왕위 계승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규정된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왕위 계승자는 스튜어트 가문의 혈통을 가진 자로 한정한다.
  • 잉글랜드 국교회 신자만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다. (가톨릭 신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 배우자도 국교회 신자여야 한다.


이 조항에 따라, 제임스 노왕을 비롯하여,

  • 찰스 1세의 공주 헨리에타 안의 혈통을 이은 사보이 공작 부인 안나 마리아와 그 자손[52]
  • 제임스 1세의 공주 엘리자베스의 혈통을 이은 자들 중 오를레앙 공작 부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팔츠 선제후 카를 1세 루드비히의 딸)와 그 자손[53]
  •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의 혈통을 이은 자들 중 신성 로마 황후 아말리아 빌헬미네 (에두아르트의 손자)와 그 자손[54]


등 혈통상 권리자 중 많은 이들이 배제되었고, 하노버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결혼한 엘리자베스 공주의 막내딸 조피 및 그 자손에게 계승권이 한정되었다.

하노버 선제후 조피


이 법이 통과된 이후,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왕위 계승권에서 박탈된 왕족 중 가장 고참인 생존자는 1978년에 마리-크리스틴 폰 라이프니츠 남작 부인과 결혼한 켄트 공자 마이클이다. 그는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5위였다. 그는 2015년 왕위 계승법 2013이 발효되면서 왕위 계승권에 복귀했다.

하노버 선제후 조피의 직계 후손 중 이 사유로 왕위 계승 자격을 상실한 다음으로 고참인 사람은 1988년 로마 가톨릭 신자인 실바나 토마셀리와 결혼한 켄트 공작 에드워드의 장남인 세인트 앤드루스 백작 조지 윈저이다. 그의 아들인 다운패트릭 경 에드워드 윈저는 2003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종교로 인해 박탈된 조피의 직계 후손 중 가장 고참이다. 2008년 그의 딸인 레이디 마리나 윈저 역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왕위 계승권에서 박탈되었다.

3. 2. 하노버 왕가 계승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이자 프로테스탄트였던 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와 그녀의 후손에게 왕위 계승권이 주어졌다.[52][53][54] 이는 가톨릭 신자였던 제임스 노왕을 비롯한 다른 왕위 계승 후보자들을 배제하기 위함이었다.

3. 3. 기타 조항

외국 출신의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잉글랜드 국외의 영지로 출병할 수 없었다.[52] 왕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잉글랜드 국외에 나올 수 없었다. (1714년 폐지)[52]

1701년 왕위 계승법은 윌리엄과 앤 여왕이 모두 사망한 후에만 발효되는 8가지 추가 조항을 포함했는데, 그중 의회 승인 관련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사람이 왕위에 오르면,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왕실에 속하지 않은 영토나 지역"을 위해 "의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이 조항은 하노버 왕가의 일원이 영국 왕위에 오를 때 관련이 있게 되었는데, 그는 현재 니더작센 (독일)에 있는 하노버 선제후국의 영토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이 조항은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효력이 중단되었는데, 그녀는 독일어권 국가의 살리카법에 따라 하노버를 상속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어떤 군주도 의회의 동의 없이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또는 아일랜드 왕국의 영토를 떠날 수 없었다. 이 조항은 하노버 선제후이자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이기도 했던 조지 1세의 요청에 따라 1716년에 폐지되었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때때로 하노버를 방문하고 싶어했다.[52]

4.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

1701년 왕위계승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잉글랜드 의회는 그레이트브리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앤 여왕 사망 전에 두 의회와 국가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하자, 왕위계승법에 따라 조피의 장남인 하노버 왕국의 게오르그가 조지 1세로 즉위하였다.

4. 1. 스코틀랜드의 반발

자코바이트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1701년 왕위계승법이 없었다면 앤 여왕 사후 명예혁명으로 왕좌에서 쫓겨난 제임스 2세의 장남 제임스 노왕에게 왕위가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이 법으로 천주교도를 왕위에서 쫓아내자 가톨릭이 비교적 많은 스튜어트 왕가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반발이 일어났다.[13] 스코틀랜드 의회는 왕위계승법에 대해 협의를 거치지 않았고, 이에 대응하여 1704년에 안 여왕의 후계자를 직접 선택할 권리를 스코틀랜드가 갖도록 하는 안보법을 통과시켰다.

4. 2. 1707년 연합법

자코바이트의 위협 때문에, 1701년 왕위계승법이 없었다면 앤 여왕 사후 명예혁명으로 왕좌에서 쫓겨난 제임스 2세의 장남(앤의 이복동생) 제임스 노왕에게 왕위가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이 법으로 천주교도를 왕위에서 몰아내자 가톨릭이 비교적 많은 스튜어트 왕가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17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안보법(the Act of Security)을 성립시켰다.

이에 대해 잉글랜드 측은 교역 제한 등의 압력을 가했고, 스코틀랜드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그 결과, 1707년에 연합법이 성립되어 스코틀랜드 의회는 스스로 해산을 선언했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병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되었다.[13] 잉글랜드는 외국인법, 정치적 수단, 그리고 뇌물을 사용하여 1707년 연합법을 성립시켰다. 이는 1606년과 1689년 사이에 있었던 네 번의 정치적 연합 시도가 양국에서 정치적 의지의 부족으로 인해 모두 실패했던 것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연합 조약 제2조에 따라 그레이트브리튼 왕위 계승을 규정함으로써 왕위 계승법은 스코틀랜드 법의 일부가 되었다.

5. 2013년 왕위계승법 개정

2011년 영연방 왕국 16개국이 퍼스 협정에 합의함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13년 왕위계승법을 통해 왕위 계승법 개정 절차를 시작했다. 이 법은 2013년 4월 25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받았으며, 2015년 3월 26일부터 시행되었다.[55][56]

이 개정법은 영국뿐만 아니라 영국 군주가 통치하는 모든 국가 및 영토의 법률로 수용되었다. 15개의 영연방 왕국과 그 관련 관할 구역의 법률 일부로 남아 있으며, 웨스트민스터 헌장 1931년 및 후속 법률에 따라 왕위 계승법을 변경하려면 모든 왕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개정 이전에는 1772년 왕실 결혼법에 따라 조지 2세의 후손(외국 왕족과 결혼한 공주와 그 자손 제외)이 영국 국왕의 허락 없이 한 결혼은 무효였으나, 이 법이 폐지되었다.

5. 1. 주요 개정 내용


  •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여 왕위 계승권을 상실하는 조항이 폐지되었다. 이로 인해 이미 상실했던 사람도 계승권을 회복하게 되었다.[51]
  • 2011년 10월 28일 이후 출생자는 남성 우선 상속 원칙이 폐지되고, 성별에 관계없이 출생 순서에 따라 왕위 계승 순위가 결정된다.[55][56]
  • 왕위 계승 순위 최상위 6명을 제외하고는 국왕의 결혼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조항이 폐지되었다.

6. 왕위 계승권의 범위

현행 왕위계승법에는 인원 제한이나 귀천상혼 제한이 없으며, 명시된 조건을 충족하면 친등에 관계없이 왕위 계승권을 인정받는다.[51] 이는 2013년 개정 후에도 변경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배우자였던 에든버러 공작 필립처럼 왕위 계승권 490위 등인 인물이 전 세계에 있다. 서구의 텔레비전이나 잡지 등에서 수백 번째 순위의 인물이 소재가 되거나, 반쯤 농담으로 명함에 "영국 왕위 계승권 ○○○위" 등으로 기재하는 인물도 있다.

7. 논란과 개정 제안

1701년 왕위계승법은 로마 가톨릭 신자와의 결혼 금지, 남성 우선 상속제 등 시대에 뒤떨어지고 차별적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16] 현대 사회의 평등 가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법의 변경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라 모든 영연방 왕국의 동의와 각국 의회의 동시 수정이 필요하므로 복잡하다.[16]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 가톨릭 신자도 왕위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고,[16] 1998년 관련 법안 논의 시 하원 차관은 여왕이 아들과 딸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정부 견해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7]

2010년 윌리엄 왕자의 결혼 발표는 왕위 계승법 개정 논의를 재점화했다. 윌리엄 왕자가 딸을 먼저 낳을 경우 왕위 계승 순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17]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정부는 2011년 10월, 모든 주와 법률 변경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으나,[18] 연방 차원의 법적 절차는 불분명하며, 오스트레일리아 헌법 해석 논란도 존재한다.[21] 앤 투오미는 헌법 제2조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제시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법에 따라 해결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23]

7. 1. 가톨릭 차별 문제

1701년 왕위 계승법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나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을 왕위 계승에서 배제하는 조항은 종교 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폐지론자들은 이 조항이 편협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다.[33]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였던 윈닝 추기경은 이 법을 가톨릭 신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불렀다.[33] 잉글랜드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인 머피-오코너 추기경은 윌리엄 왕자가 "법적으로 힌두교도, 불교도,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지만, 로마 가톨릭 신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33]

반면, 에녹 파월과 에이드리언 힐턴과 같은 폐지 반대론자들은 로마 가톨릭 신자가 왕위에 오르면 잉글랜드 국교회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군주가 신앙을 옹호하고 성공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지만, 로마 가톨릭 군주는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므로 성공회의 주권 상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34]

에이드리언 힐턴은 2003년 더 스펙테이터에 기고한 글에서 왕위 계승법이 "비합리적인 편견이나 맹목적인 광신"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군주가 왕위에 있을 때 종교적 및 시민적 자유가 상실된다는 것을 국가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황이 보편적 관할권을 주장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신교이자 자유 국가의 군주가 다른 국가의 수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37]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는 군주제와 관련된 모든 차별을 제거하고 왕위 계승법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35] 2009년에는 왕위 계승법 개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38]

2011년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서 다른 영연방 왕국 총리들은 가톨릭교도와의 결혼으로 인한 자격 박탈을 제거하는 등의 법 개정을 지지하기로 합의했다.[45][46][47] 결국, 로마 가톨릭교도와의 결혼으로 인한 자격 박탈은 2013년 왕위 계승법에 의해 제거되었다.[51]

7. 2. 성차별 문제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르면, 왕위 계승 규칙은 모든 영연방 왕국의 동의를 얻어야 변경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성 때문에 왕위 계승법 변경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맞물려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 11월 윌리엄 왕자의 결혼 발표 이후, 왕위 계승 순서에서 딸과 아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17]

1995년 11월 6일, ''더 타임스''는 찰스 3세토니 블레어패디 애시다운에게 "가톨릭 신자가 영국 왕위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패디 애시다운찰스 3세가 "정말로 왜 우리가 왕위에 가톨릭 신자를 둘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16]

7. 3. 영연방 왕국 간의 복잡한 개정 절차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확립된 관례에 따라 계승 규칙에 대한 모든 변경은 관련된 모든 국가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각 국가 의회에서 동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함을 인정한다.[16] 왕위 계승법 변경은 모든 영연방 왕국의 공동 계승을 규정하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이다.[16]

2011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정부는 왕위계승법 개정의 여파로 모든 주와 잠재적인 법률 변경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18] 뉴사우스웨일스 주와 빅토리아 주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여전히 적용되는 일부 제국 법률을 폐지할 때 왕위 계승에 관한 제국 법률이 계속 효력을 갖도록 규정하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연방 차원에서 필요한 법적 절차는 이론적으로 불분명하다. 오스트레일리아 헌법은 1936년의 위기 동안 언급되었듯이, 연방 의회가 군주제와 관련하여 입법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하지 않는다.[21]

앤 투오미는 1900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헌법 제2조에 대한 세 가지 가능한 해석을 검토한다.[21]

  • 첫째: "영국의 군주는 외부적 사실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의 군주이기도 하다"라고 규정한다.
  • 둘째, 이는 "단순한 해석 조항"이다.
  • 셋째, 이는 영국의 왕위 계승 규칙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헌법에 통합하며, 1986년 오스트레일리아법에 따라 이제 오스트레일리아만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투오미는 오스트레일리아 고등법원이 제2조를 다루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면, 오스트레일리아와 관련하여 이 조항이 오로지 오스트레일리아 법에 종속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23]

실제로, 퍼스 협정(아래 참조)에 대한 입법 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주들이 연방 정부에 요청하고 권한을 위임하여 연방 정부가 주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대신하여 법률을 제정하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오스트레일리아 헌법 51(xxxviii)항에 의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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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The Government of Canada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Toronto Press
[3] 간행물 Professor Anne Twomey – Succession to the Crown: foiled by Canada? http://vimeo.com/108[...] University College London 2014-09-18
[4] 웹사이트 House of Lords Journal Volume 16: 12 June 1701 | British History Online https://www.brit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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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act
[7] 서적 The First George in Hanover and England https://archive.org/[...] Isaac Pitman and Sons
[8] 서적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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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웹사이트 House of Lords Journal Volume 16: 22 May 1701 https://www.british-[...]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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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문서 200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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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문서 Succession to the Crown Act 2013 (Commencement) Order 2015 http://www.legislati[...]
[56] 문서 Statement by Nick Clegg MP, UK parliament website http://www.parli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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