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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울즈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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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파울즈는 1880년 영국에서 태어나 1939년 사망한 작곡가이다. 그는 첼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하여 지휘 경험을 쌓았으며, 1890년대부터 미분음을 사용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1920년대에는 무성 영화 반주자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에는 인도에서 민족 음악을 연구하고 동서양 음악의 융합을 시도했다. 파울즈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특히 동양 음악, 특히 인도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세계 레퀴엠》, 《세 개의 만트라》 등이 있으며, 사후 잊혀졌으나 1970년대 이후 재조명되어 그의 작품들이 재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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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울즈 (작곡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존 폴즈
존 폴즈
본명존 폴즈
출생영국 맨체스터 후메 (잉글랜드)
사망인도 캘커타
직업첼리스트
작곡가
활동 시기1905년 - 1946년
장르근대 음악
소속 단체할레 관현악단
올 인디아 라디오
주요 작품해당사항 없음

2. 생애

존 파울즈(John Foulds, 1880년 11월 2일 ~ 1939년 4월 25일)는 영국의 작곡가이다. 맨체스터 헐름에서 할레 오케스트라의 바순 연주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으며, 자신도 1900년 첼로 연주자로 할레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1] 그는 일찍부터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경험을 쌓았고 소년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한스 리히터에게 지휘를 배웠고, 헨리 우드1906년 프롬스를 계기로 그의 작품을 자주 연주했다.[1]

파울즈는 1890년대 초부터 4분음을 사용하는 등 시대를 앞서간 면모를 보였으며[1], 후기 작품 중 일부는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미니멀리즘을 예견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경음악 작곡가로서 'Keltic Lament'와 같은 곡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1], 친구인 루이스 캐슨과 시빌 손다이크를 위해 조지 버나드 쇼의 ''성 요한 (희곡)'' 초연 음악을 포함한 다수의 극장 음악을 작곡했다.[1] 그러나 그의 주된 창작 에너지는 아시아 음악, 특히 인도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더 야심차고 탐구적인 작품에 집중되었다.[1]

제1차 세계 대전런던에서 인도 음악 전문가인 바이올리니스트 모드 매카시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모든 국가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작품 ''세계 레퀴엠''(''World Requiem'', 1919–1921)을 작곡하여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매년 전몰자 추모일 밤에 로열 앨버트 홀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했다.[1] 이 공연은 최초의 영령 기념 축제(Festival of Remembrance)의 시초가 되었다.[1] 그러나 1926년 이후 작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자 파울즈는 큰 좌절을 겪었다.[1]

1927년 파리로 이주하여 무성 영화 반주자로 일했으며, 1934년에는 현대 음악에 관한 저서 ''Music To-day|오늘의 음악eng''을 출판했다.[2] 1935년 인도로 건너가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델리의 전인도 라디오 방송국에서 유럽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3] 그는 동서양 음악의 융합을 시도하며 인도 악기를 위한 작품을 작곡했으나, 1939년 콜카타에서 콜레라로 사망했다.[3] 그의 주요 작품 중 상당수는 생전에 거의 연주되거나 출판되지 못했으며, 특히 인도 시기의 작품 다수가 유실되었다.[5][6]

2. 1. 초기 생애와 경력 (1880-1914)

존 파울즈는 1880년 11월 2일 영국 맨체스터의 헐름에서 할레 오케스트라의 바순 연주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1] 어린 시절부터 다작을 했던 파울즈는 1900년 할레 오케스트라에 첼리스트로 합류하기 전에 이미 영국과 해외의 극장 및 프롬나드 콘서트 오케스트라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1] 한스 리히터는 그에게 지휘 경험을 제공했고, 헨리 우드1906년 퀸즈 홀 프롬스에서 ''Epithalamium''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들을 채택했다.[1]

어떤 면에서는 시대를 앞서가 1890년대 초부터 4분음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1], 다른 면에서는 매우 실용적인 음악가였다. 그는 경음악 작곡가로 성공했으며[1], 그의 친구인 루이스 캐슨과 시빌 손다이크를 위해 많은 훌륭한 극장 음악을 작곡했다.[1] 파울즈는 제1차 세계 대전 전에 런던으로 이주했다.[1]

2. 2. 런던, 전쟁, 그리고 인도 음악과의 만남 (1914-1927)

로열 앨버트 홀(1903년경) 엽서(앨버트 기념관 삽입)로, 파울즈의 ''세계 레퀴엠''(1919–1921)이 1923년과 1926년에 공연되었고, 1924년과 1925년에는 퀸즈 홀에서 공연되었다.


파울즈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런던으로 이주했다. 전쟁 중이던 1915년,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인도 음악 분야 서양의 주요 권위자 중 한 명인 모드 매카시(Maud MacCarthy)를 만나 이후 결혼했다. 파울즈는 칼뱅파 집안 출신이었고 매카시는 아일랜드가톨릭 신자였으나, 두 사람은 철학서를 탐독하며 신지학에 심취했다는 공통점으로 정신적인 유대를 형성했다.

그의 대표적인 대작 중 하나인 ''세계 레퀴엠''(''World Requiem'', 1919–1921)은 모든 국가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1923년 11월 11일 전몰자 추모일 밤, 로열 영국 군인 연합(The Royal British Legion)의 후원으로 로열 앨버트 홀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파울즈가 직접 지휘했으며, 최대 1,250명에 달하는 기악 연주자와 성악가(이들은 전몰자 기념비(Cenotaph) 합창단으로 불렸다)가 참여했다. 이 공연은 1924년과 1925년에는 퀸즈 홀에서 열렸고, 1926년에는 다시 로열 앨버트 홀에서 공연되었다. 1923년부터 1926년까지 이어진 이 공연들은 최초의 전몰자 기념 축제(Festival of Remembrance)의 성격을 띠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세계 레퀴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으나, 대중적으로는 큰 호응을 얻었다. 한 신문은 "이 작품의 범위는 지금까지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 세대가 경험한 가장 깊고 광범위한 불행을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음악만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다고 분명히 느낀 매우 많은 청취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했다.[1]

그러나 1926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계 레퀴엠''은 더 이상 연주되지 않았다. 일부 해설자들은 파울즈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거나 좌익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의심 때문에 공식적인 추모 행사에 부적절한 인물로 여겨져 작품이 배제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기 작가 말콤 맥도널드는 일종의 "음모"가 있었음을 시사했다.[1] ''세계 레퀴엠''에 대한 관심이 식자 파울즈는 큰 좌절감을 느꼈고, 결국 1927년 파리로 건너가 무성 영화 반주자로 일하게 된다.

2. 3. 파리 시절과 음악 이론 연구 (1927-1935)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매년 공연되었던 ''세계 레퀴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식자, 존 파울즈는 큰 좌절감을 느꼈다. 결국 그는 1927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무성 영화의 반주자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파리에서 그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작곡가 스완 헤네시와 교류했는데, 두 사람은 음악적 켈트 부흥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2] 파울즈는 음악 이론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1934년에는 현대 음악의 발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저서 ''Music To-day|오늘의 음악eng''을 출판했다.

2. 4. 인도에서의 활동과 죽음 (1935-1939)

1935년 인도로 건너가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델리의 전인도 라디오에서 유럽 음악 국장직을 맡아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창설하였다. 그는 동양과 서양 음악의 융합을 추구하며, 실제 인도 악기를 위한 앙상블 곡을 작곡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또한, 라디오의 인도 음악 방송에서 풍금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3]

1936년부터 1937년까지는 '인도 음악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4편의 기사를 연재하며 인도 음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4] 이 기사들은 화성, 관현악법, 기보법 등을 다루었으며, 비자야데브지의 후원으로 발간된 '더 뮤직 매거진'(The Music Magazine)에 실렸다.[4]

델리에서의 활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콜카타에 라디오 방송국 지부를 개설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콜카타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39년 4월 25일, 콜레라에 걸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인도에서 활동하던 마지막 시기에 작곡된 여러 작품들은 안타깝게도 유실되었는데, 여기에는 동양 악기와 서양 교향악단을 위한 ''동서양 교향곡'' 등도 포함된다.

3. 주요 작품 및 스타일

존 파울즈의 음악은 시대를 앞서간 실험성과 대중적인 실용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는 이미 1890년대부터 4분음을 사용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했으며, 후기 작품에서는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미니멀리즘을 예견하는 듯한 요소를 보여주었다.[1] 특히 아시아 음악, 그중에서도 인도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1]

동시에 파울즈는 《켈트풍의 애가》(''Keltic Lament'')와 같은 경음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1] 조지 버나드 쇼의 ''성 요한 (희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 (희곡)'' 등 연극을 위한 효과적인 부수 음악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1] 1920년대에는 BBC에서 그의 경음악이 자주 방송될 정도였으나, 정작 파울즈 자신은 이로 인해 자신의 진지한 작품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1]

그의 주요 창작 에너지는 다양한 장르에 걸친 야심차고 탐구적인 작품에 집중되었다.[5] 대표작 중 하나인 거대한 규모의 《세계 레퀴엠》(''A World Requiem'', 1919–1921)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모든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되었으며,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매년 영국 재향군인회의 후원 아래 로열 앨버트 홀 등에서 대규모로 공연되어 최초의 영국 현충일 기념 축제를 형성했다.[1]

그러나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 세계는 생전에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으며, 특히 만년의 중요한 작품 중 일부는 유실되기도 했다.[6] 《세계 레퀴엠》 역시 1926년 이후 오랫동안 연주되지 못했는데, 일각에서는 파울즈의 진보적인 성향에 대한 의혹 등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1] 파울즈의 다채로운 작품 경향과 실험 정신, 인도 음악과의 관계, 그리고 주요 작품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3. 1. 다양한 장르와 실험 정신

존 파울즈는 현악 사중주, 교향시, 협주곡, 피아노 작품,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작품을 남겼다.[5] 그의 주요 작품 중 하나는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콘서트 오페라"인 《단테의 환영》(''The Vision of Dante'', 1905–1908)이다.[5] 또한 음악과 회화 스타일 간의 친밀성을 탐구하는 《음악 그림》(''Music-Pictures'') 연작을 작곡했으며,[5] 헨리 우드는 1913년 프롬스에서 이 연작 중 하나를 소개하기도 했다.[5]

파울즈는 시대를 앞서간 실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미 1890년대 초부터 4분음(미분음)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1] 그의 후기 작품 중 일부는 올리비에 메시앙선법이나 미니멀리즘 음악의 등장을 예견하는 듯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1] 이러한 실험성은 아시아 음악, 특히 인도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하는 야심 찬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1] 그는 인도로 이주한 후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실제 인도 악기 앙상블을 위한 곡을 작곡하며 동서양 음악의 종합을 시도했다.[3]

다른 한편으로 그는 매우 실용적인 음악가로서, 한때 인기를 끌었던 《켈트풍의 애가》(''Keltic Lament'')와 같은 경음악 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두었다.[1] 1920년대에는 BBC에서 그의 경음악이 자주 방송될 정도였으나, 정작 파울즈 자신은 이로 인해 자신의 진지한 작품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1] 그는 친구인 루이스 캐슨과 시빌 손다이크를 위해 조지 버나드 쇼의 ''성 요한 (희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 (희곡)'' 같은 연극을 위한 효과적인 부수 음악도 다수 작곡했다.[1]

그러나 그의 중요한 작품 중 상당수는 생전에 거의 연주되거나 출판되지 못했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마지막 시기 작품 중 일부는 유실되었다.[6] 분실된 악보에는 동양 악기와 서양 교향악단을 위한 《동서양 교향곡》(''Symphony of East and West'')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파울즈의 다양한 양식과 방대한 작품 때문에 그의 업적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뛰어난 음악성과 작곡 기술을 갖춘 모험적인 작곡가였음은 분명하다.

3. 2. 인도 음악의 영향

존 파울즈는 그의 야심차고 탐구적인 작품들에서 아시아 음악, 특히 인도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했다. 이러한 관심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인도 음악의 주요 서구 권위자 중 한 명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모드 매카시를 만나면서 더욱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1]

1935년 파울즈는 인도로 이주하여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델리의 All India Radio에서 유럽 음악 국장직을 맡았다. 그는 이곳에서 오케스트라를 직접 창설했으며, 동양과 서양 음악의 융합을 목표로 실제 인도 악기 앙상블을 위한 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활동은 성공적이어서 콜카타에 라디오 방송국 지부를 개설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인도 음악을 연주할 때 풍금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3]

파울즈는 작곡 활동 외에도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인도 음악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화성, 관현악법, 기보법 등을 다루는 글을 연재하며 이론적으로도 인도 음악에 깊이 관여했다.[4]

그의 작품 중 인도 음악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곡으로는 관현악과 보컬리제 합창을 위한 《세 개의 만트라》(Three Mantras from the Avataras, 1919–1930)가 있다. 비록 악보는 분실되었지만, 동양 악기와 서양 교향악단을 위해 작곡된 《동서양 교향곡》(Symphony of East and West) 역시 그의 음악적 융합 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다.[6] 이 외에도 《인도 모음곡》(Indian Suite, 1935), 《카슈미르 결혼 행진》(Kashmiri Wedding Procession, 1936), 《카슈미르 보트 노래》(Kashmiri Boat Song, 1938) 등 인도 체류 시기에 작곡된 다수의 작품이 남아있다. 그의 아내 모드 매카시는 인도 음악에 대한 강연을 통해 젊은 시절의 올리비에 메시앙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3. 3. 주요 작품 목록

합창/관현악

  • 《단테의 환상》(''The Vision of Dante'')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번역의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한 "콘서트 오페라", 작품 7
  • 세계 레퀴엠(''A World Requiem'') - 성경, 존 번연, 카비르 등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함, 작품 60 (1923)
  •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 중 세 개의 합창곡''(''Three Choruses in the Hippolytus of Euripides'') (여성 합창, 메조소프라노, 피아노), 작품 84B
  • 무반주 합창을 위한 ''영국 마드리갈''(''English Madrigals'') (c. 1933)

관현악

  • ''운디네: 관현악 모음곡''(''Undine: Suite for Orchestra''), 작품 3 (1898)
  • ''에피탈라미움''(''Epithalamium''), 작품 10
  • ''단테의 환영 서곡''(''The Vision of Dante Overture'') (1908)
  • ''홀리데이 스케치''(''Holiday Sketches''), 작품 16 (1908)
  • ''미라지''(''Mirage''), 작품 20
  • ''프랑스 모음곡''(''Suite Française''), 작품 22 (1910)
  • ''켈틱 서곡''(''Keltic Overture''), 작품 28 (1930)
  • ''켈틱 모음곡''(''Keltic Suite''), 작품 29 (''켈틱 애가'' 포함)
  • ''뮤직-픽쳐스 그룹 III''(''Music-Pictures Group III''), 작품 33
  • ''미니어처 모음곡''(''Miniature Suite''), 작품 38 (''원더풀 그랜드마마''에서 편곡) (1913)
  • ''헬라스: 고대 그리스 모음곡''(''Hellas: A Suite of Ancient Greece'') (현악 이중 관현악, 하프 및 타악기용), 작품 45
  • ''4월 - 잉글랜드''(''April – England''), 작품 48, No. 1
  • ''그리스 섬들''(''Isles of Greece''), 작품 48, No. 2 (1927)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뮤직 픽쳐스 그룹 IV''(''Music Pictures Group IV for String Orchestra''), 작품 55
  • ''아바타라의 세 개의 만트라''(''Three Mantras from Avatara''), 작품 61B
  • ''게일족의 꿈 노래''(''Gaelic Dream Song''), 작품 68 (1922)
  • ''르 카바레'' 서곡(''Le Cabaret'' Overture), 작품 72A (''데뷔로''에서 편곡) (1925)
  • ''판타스틱 모음곡''(''Suite Fantastique''), 작품 72B (''데뷔로''에서 편곡) (1924)
  • ''뮤직 픽쳐스 그룹 VI'': ''게일 멜로디''(''Music Pictures Group VI: Gaelic Melodies''), 작품 81 (1924) (관현악 버전)
  • ''성 요한 모음곡''(''Saint Joan Suite''), 작품 82 (1925)
  • ''헨리 8세 모음곡''(''Henry VIII Suite''), 작품 87 (1926)
  • ''시칠리아 아침 노래''(''Sicilian Aubade'') (1927)
  • ''인형 발레 모음곡''(''Puppet Ballet Suite'') (1934)
  • ''카니발''(''Carnival'') (1934)
  • ''데바-뮤직''(''Deva-Music''), 작품 94 (단편)
  • ''중국 모음곡''(''Chinese Suite''), 작품 95 (1935)
  • ''인도 모음곡''(''Indian Suite'') (1935)
  • ''카슈미르 결혼 행진''(''Kashmiri Wedding March'') (1936)
  • ''장난스러운 장면'' (스페인 세레나데) (''Scène Picaresque'' (Spanish Serenade)) (1936)
  •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 (1937)
  • ''바스크 세레나데''(''Basque Serenade'') (1938)
  • ''카슈미르 보트 노래''(''Kashmiri Boat Song'') (1938)
  • ''그랜드 더바 행진''(''Grand Durbar March'') (1938)
  • ''파스퀴나데 심포니크''(''Pasquinade Symphonique''), 작품 98 (미완성; 완성된 두 악장은 녹음됨)
  • ''동서양의 교향곡''(''Symphony of East and West''), 작품 100 (분실)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적 연구''(''Symphonic Studies for String Orchestra''), 작품 101 (분실)

협주곡

  • 《켈트의 리라》(''Lyra Celtica'') - 무언의 메조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작품 50 (미완성, 완성된 두 악장이 녹음됨)
  •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Lento e Scherzetto'', 작품 12 (1906)
  • 첼로 협주곡 G장조, 작품 17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Apotheosis'', 작품 18 (요제프 요아힘을 추모하며)
  • 피아노 협주곡 ''Dynamic Triptych'', 작품 88

실내악

  • 현악 사중주 4번 바단조 (1899)
  • 현악 사중주 6번 ''Quartetto Romantico'' (1903)
  • 첼로 소나타, 작품 6 (1905, 개정 1927)
  • 현악 사중주 8번 라단조, 작품 23
  • 현악 삼중주, 작품 24 (두 번째 악장인 ''Ritornello con Variazioni''만 완전하게 남아 있음)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협주곡 소품 (Two Concert Pieces for Cello and Piano), 작품 25
  • ''Music Pictures Group II'': 현악 사중주를 위한 ''Aquarelles'', 작품 32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Ballade and Refrain Rococo'', 작품 40, 1번 (1914)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Caprice Pompadour'', 작품 42, 2번
  • 현악 오중주를 위한 ''Greek Processional''
  • 현악 사중주 9번 ''Quartetto Intimo'', 작품 89
  • 현악 사중주 10번 ''Quartetto Geniale'' (한 악장인 ''Lento Quieto''만 완전하게 남아 있음)
  • 전통 악기(대부분 단편)로 구성된 "인도-유럽 앙상블"을 위한 약 12개의 단편

피아노

  • ''시인의 사랑'' 모음곡 (''Poet's Love'' Suite) (1897–1898, 미완성)
  • ''Variazioni ed Improvvisati su una Thema Originale'', 작품 4 (1900)
  • 다섯 개의 ''고대 그리스 음악의 회상'' (''Recollections of Ancient Greek Music'') (''헬라스''의 원본)
  • ''English Tune with Burden'', 작품 89 (1914)
  • ''Music Pictures Group VI: Gaelic Melodies'', 작품 81 (1924) (피아노 버전)
  • I. Morven의 꿈 (''Dream of Morven'')
  • II. Deirdre Crooning
  • III. Merry Macdoon
  • ''April – England'', 작품 48, 1번 (1926)
  • ''Ghandarva-Music'', 작품 49
  • ''Music Pictures Group VII: Landscapes'', 작품 13 (1927)
  • I. ''Moonrise: Sorrento'' (Morelli 작품)
  • II. ''Nightfall: Luxor'' (Cameron 작품)
  • ''Essays in the Modes'', 작품 78 (1928)
  • I. 이국적인 (Mode II A) (''Exotic'')
  • II. 순진한 (Mode V K) (''Ingenuous'')
  • III. 내성적인 (Mode II C) (''Introversive'')
  • IV. 군대풍의 (Mode V E) (''Military'')
  • V. 연시체 (Mode V L) (''Egoistic'')
  • VI. 프리즘 (Mode II P) (''Prismic'')
  • ''Egoistic'' (Mode V L)
  • ''페르시아 러브 송'' (''Persian Love Song'') (1935)

성악/합창

  • 테너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아름다움의 노래''(Songs of Beauty), 작품 11 (텍스트: 바이런 및 에드거 앨런 포)
  •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무드 픽쳐''(Mood Pictures), 작품 51 (텍스트: "피오나 맥클라우드")
  • 목소리와 현악 5중주를 위한 두 개의 ''"희생" 속의 노래''(Songs in "Sacrifice"), 작품 66 (텍스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바이올린과 탐부라로도 연주 가능)
  •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노래''(Songs for Voice and Piano), 작품 69 (텍스트: 롱펠로우 및 그리핀)
  • 혼성 합창을 위한 다섯 개의 ''스코틀랜드-켈트 노래''(Scottish-Keltic Songs), 작품 70 (다양한 텍스트)
  • ''젊음의 화환''(Garland of Youth), 가곡집 작품 86 (다양한 텍스트)
  • ''일곱 시대''(The Seven Ages),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사용한 바리톤과 피아노를 위한 모놀로그

편곡

  • 보로딘, 《세레나데》, 작품 5, 5번,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곡
  • 글라주노프, 《명상》, 작품 32,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곡
  • 글라주노프, 《스페인 세레나데》, 작품 20, 소규모 오케스트라 편곡
  • 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14번 D단조, D 810 (죽음과 소녀)》, 교향곡으로 편곡 (1930)

4. 유산 및 재평가

존 파울즈는 사망 후 한동안 영국 음악계에서 거의 잊힌 존재였다. 생전에는 'Keltic Lament'와 같은 경음악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나, 정작 본인이 중요하게 여겼던 교향곡, 협주곡 등 진지한 작품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파울즈 자신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BBC의 애드리안 볼트에게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1]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작곡된 대규모 작품 ''세계 레퀴엠''(1919–1921)은 1923년부터 1926년까지 로열 앨버트 홀과 퀸즈 홀에서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공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갑자기 연주 목록에서 사라졌다. 일부에서는 파울즈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거나 그의 좌익적 성향 때문에 당시 전몰자 추모일 행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1]

이처럼 사후 오랫동안 잊혔던 파울즈의 음악적 유산은 1970년대 이후 음악학자 말콤 맥도날드의 노력을 시작으로 재발견되기 시작했으며,[6] 21세기에 들어 활발한 연주와 음반 발매를 통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7][8][9][1]

4. 1. 사후 망각과 부활

존 파울즈는 사망 후 영국 음악계에서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으나, 1974년부터 음악 저널 ''템포''의 편집자 말콤 맥도날드(칼럼 맥도날드라는 필명 사용)가 대영 도서관에 보관된 파울즈의 악보를 발견한 후 그를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파울즈의 딸을 찾아냈고,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하고 있던 스케치와 원고가 가득 담긴 상자 두 개를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이 원고 중 다수는 파울즈의 아내가 사망 후 머물렀던 인도에서 쥐와 개미에 의해 훼손된 상태였다.[6]

1980년대 초 엔델리언 사중주단이 파울즈의 현악 사중주, 특히 이전에는 연주되지 않았던 ''Quartetto Intimo''를 녹음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1990년대 초 리리타 녹음 에디션이 ''Three Mantras''와 ''Dynamic Triptych''를 CD로 발매하기로 결정하면서 더욱 커졌다. 1998년 프롬스에서 ''Three Mantras''가 성공적으로 연주되었고, 이후 핀란드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CBSO)과 함께 콘서트에서 파울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큰 비평적 찬사를 받았다.[7][8]

2005년 11월, CBSO는 피아니스트 피터 도노호와 협연하여 파울즈의 피아노 협주곡인 ''Dynamic Triptych''(1927–1929)을 70년 만에 처음으로 라이브로 공연했다. CBSO는 파울즈의 음악을 담은 두 장의 CD를 발매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07년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에는 로열 앨버트 홀에서 BBC의 후원 아래 트리니티 보이즈 합창단과 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이 참여하여 ''World Requiem''이 81년 만에 다시 공연되었다.[9] 이 공연 실황은 녹음되어 2008년 1월 찬도스 레코드에서 슈퍼 오디오 CD 형식으로 발매되었다.

파울즈의 ''Keltic Lament''는 클래식 FM에서 정기적으로 방송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었으며, BBC 라디오 3는 재향군인의 날에 ''A World Requiem''을 연주하는 전통을 부활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1]

4. 2. 현대의 재조명

1980년대 초 엔델리언 사중주단이 연주한 파울즈의 현악 사중주 음악, 특히 이전에는 연주되지 않았던 ''Quartetto Intimo''의 호평 받은 녹음은 그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관심은 1990년대 초 리리타 녹음 에디션이 ''Three Mantras''와 ''Dynamic Triptych''를 CD로 발매하면서 이어졌다.

1998년 프롬스에서 ''Three Mantras''가 성공적으로 연주되면서 파울즈 음악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핀란드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CBSO)과 함께 콘서트에서 파울즈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다루며 큰 호평을 받았다.[7][8] 2005년 11월, CBSO는 피아니스트 피터 도노호와 협연하여 파울즈의 피아노 협주곡인 ''Dynamic Triptych''(1927–1929)을 70년 만에 처음으로 라이브로 선보였다.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은 파울즈의 음악을 담은 두 개의 CD를 발매하여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은 2007년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세계 레퀴엠''의 재연이었다. BBC의 후원으로 레온 보트스타인이 지휘하고 트리니티 보이즈 합창단 등이 참여한 이 공연은 81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9] 이 공연 실황은 녹음되어 2008년 1월 찬도스 레코드를 통해 SACD 형식으로 발매되었다.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파울즈의 ''Keltic Lament''가 클래식 FM에서 꾸준히 방송되며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BBC 라디오 3재향군인의 날에 ''세계 레퀴엠''을 연주하는 전통을 되살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1] 이러한 일련의 연주회와 음반 발매를 통해 존 파울즈의 음악은 현대에 와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참조

[1] 뉴스 John Foulds' Indian summer [print version: A composer's Indian summer]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07-09-15
[2] 문서 Letter from Hennessy to the music critic Irving Schwerke, 22 May 1929; Library of Congress, Irving Schwerke Collection.
[3] 논문 Upon the Subdominant: Administering Music on All-India Radio http://www.jstor.org[...] 1994
[4] 서적 Resonances of the Raj: India in the English Musical Imagination, 1897-1947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5] 뉴스 The Sound of Illumination (review of the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at the Symphony Hall, Birmingham, 11 January 2006) https://www.telegrap[...] 2006-01-12
[6] 뉴스 Visionary Genius of the Spirit World https://www.telegrap[...] 2006-04-26
[7] 뉴스 Feast for Musical Connoisseurs https://www.telegrap[...] 2005-11-10
[8] 뉴스 Composition for 1,250 Musicians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07-03-31
[9] 뉴스 John Foulds : A World Requiem http://www.bbc.co.uk[...] BBC 2007-09-02
[10] 뉴스 John Foulds' Indian summer [print version: A composer's Indian summer]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0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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