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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의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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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한 미군의 철수는 한반도 주둔 미군의 역사, 정책 변화, 대한민국의 입장 변화,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를 포괄하는 주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정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감축되었으나, 한국전쟁 발발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주둔이 지속되었다.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은 닉슨, 카터, 부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고, 특히 닉슨과 카터 행정부에서는 감축 시도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 이후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북한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는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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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의 철수
주한 미군 철수
주한 미군 패치
주한 미군 패치
개요
내용주한 미군의 감축 또는 한반도에서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견해
역사적 배경
한국 전쟁한국 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주한 미군 주둔 시작
1970년대닉슨 독트린에 따른 주한 미군 감축 논의
1990년대북핵 위기 고조, 주한 미군 역할 재조명
2000년대이라크 전쟁 파병으로 인한 감축 논의
전시 작전 통제권 전환 문제 부각
2010년대 이후북한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한미 동맹 강화와 주한 미군 유지 필요성 증대
주장
철수 주장자주 국방 능력 강화 필요
반미 감정 고조
냉전 시대 종식에 따른 주둔 명분 약화
경제적 부담 가중
주둔 유지 주장북한의 군사적 위협 억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 안정 유지
한미 동맹의 상징적 의미
한국의 방위력 증강에 필요한 시간 확보
논쟁점
북한 위협주한 미군 철수가 북한의 도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동북아 균형역내 군사적 긴장 고조 가능성
경제적 영향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필요
외교적 관계주변국과의 관계 변화 가능성
현재 상황
병력 규모약 28,500명
주둔 기지캠프 험프리스 (평택)
오산 공군기지
군산 공군기지 등
한미 관계굳건한 한미 동맹 유지, 상호 협력 강화
관련 단체
대한민국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미국미국 국방부
미국 국무부
기타
참고한미상호방위조약
주한 미군 지위 협정 (SOFA)

2. 해방 직후와 미군정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38선 이남에 미군정청이 설치되어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한반도를 통치했다. 이는 한반도에 주둔했던 일본제국군의 무장 해제를 위한 조치였다. 1945년 당시 약 7만 7500명 정도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1]

2. 1. 미군정의 역할과 한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 진주하고 있었던 일본제국군의 무장 해제를 위하여 38선 이남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고, 미군정청이 설치되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가 설치되기 전까지 존재하였다. 1945년에는 대략 7만 7500명 정도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1] 미군정은 초기 혼란을 수습하고 행정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으나,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2. 2.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미군 철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었던 일본 제국군의 무장 해제를 위하여 38선 이남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고, 미군정청이 설치되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가 설치되기 전까지 존재하였다. 1945년에는 대략 7만 7500명 정도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1]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주한 미군은 9월 15일부터 그 숫자와 규모가 감축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여수·순천 사건으로 잠시 철수가 중단되었다가 1949년 4월 다시 철수를 시작해 5월 28일 500여 명의 주한 미군 군사고문단을 제외한 4만 5000명의 철수를 완료했다. 이후 1949년 6월 30일부로 철수를 완료했다.[2] 애치슨 선언과 더불어 한반도 이남의 미군 철수는 6.25 전쟁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3. 한국전쟁과 주한미군 주둔의 시작

한국 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진행되었으며, 178만 명의 미군이 참전하여 조선인민군중공군과 전투를 벌였다.[3] 전쟁은 종전이 아닌 정전(휴전)의 형태로 종료되었다.[4][5]

3. 1.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승만 대통령은 긴 협상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주한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3] 이 조약은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정전(휴전) 형태로 종료된 후에 체결되었으며,[4][5] 그 결과 미국 육해공군 및 해병대가 한반도 이남에 주둔하게 되었다.

4.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 변화

닉슨주의에 따라 닉슨 행정부는 주한 미군 철수를 추진했다. 1970년 주한미군 7사단 철수 통보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강력히 항의하며 한국군 현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6] 1971년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 미국 대사의 공동성명으로 7사단이 철수하고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이 지원되었다.[6]

카터 대통령은 1976년 대선 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내걸었고, 당선 후 3단계 철수안을 발표했으나,[7][8][9] 대한민국과 미국 내 반발로 1979년 철군안은 백지화되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북한 군사력 재평가와 소련 팽창주의 대응으로 카터의 감축안을 백지화했다. 허버트 W. 부시 행정부에서는 미 의회 요구에 따라 1992년 제2사단 제3여단이 철수하여 주한미군이 3만 명 수준으로 감소되었다.[1]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으나 실제 철수는 없었고, 순환배치 및 전략적 유연 개념이 도입되었다.[10][11][12] 바이든 행정부는 주한 미군을 2만 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13][14]

4. 1. 닉슨 행정부

닉슨은 1967년 10월 포린 어페어스지에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고, 베트남에서 미군은 철수되어야 하며, 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8년 11월 닉슨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1969년 7월 25일 닉슨주의를 발표했다. 닉슨은 닉슨주의에 따라, 주한 미군 7사단과 주한 미군 2사단을 모두 철수시키려 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과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위반이라는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0년 7월 5일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한다는 일방적 통보를 하였다. 이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강력하게 항의하며, 주한미군의 철수 전에 한국군의 전투력 증강과 장비 현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6]

1971년 2월 6일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 미국 대사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6]

내용



이 공동성명으로 한국은 무기와 탄약의 국내생산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7개월 후인 1971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었다. 닉슨이 재선에 성공하였으면 주한미군 2사단도 철수되었을 것이지만, 재선에 실패하였으며 후임 제럴드 포드는 더 이상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4. 2. 카터 행정부

지미 카터는 1976년 11월 대선에서 주한 미군 철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7][8][9]

대통령 취임 후 바로 주한미군 철수 3단계안을 발표했다.

단계내용
1단계1978년 말까지 지상군 3400명 철수, 1979년 말까지 지상군 2600명 철수 (당초 1978년 말까지 지상군 6000명 철수에서 수정됨)
2단계1980년 여름까지 지상군 9000명 철수
3단계1982년 7월까지 나머지 지상군 모두 철수. 공군과 해군은 계속 주둔.



그러나 이 계획은 대한민국의 완강한 반발과 더불어 미 의회미 국방부가 크게 반대하여 제동을 걸었으며,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철군안이 완전히 백지화되었다.

4. 3. 레이건 행정부

레이건 행정부에 들어서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재평가와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기존 카터 행정부의 감축안을 백지화하였다.

4. 4. 허버트 W. 부시 행정부

냉전 종식 분위기 속에서 미국 의회는 국방지출법의 넌-워너 수정조항을 통해 당시 4만 3천 명이던 주한미군을 1991년 말까지 3만 6천 명으로 7천 명 줄이도록 요구했다.[1] 이에 허버트 W. 부시 행정부는 1992년 제2사단 제3여단을 철수해 해체함으로써 주한미군은 3만 명 수준으로 감소되었고, 이후 현재까지 이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1]

4. 5. 트럼프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여러 번 언급하였으나, 이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신 기존과는 달리 주한미군 일부 병력의 순환배치 및 전략적 유연 개념이 도입되었다.[10][11][12]

4. 6. 바이든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는 주한 미군을 2만 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13][14]

5. 대한민국의 입장 변화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6.25 50주년 기념사'에서 "만일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의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6]

이명박 정부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남한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다는 국정원의 공식 연구결과가 나왔다.[17]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가 아닌 국정원에 남북한 전력 비교 보고서를 주문했는데, 이 보고서에서 한국군의 현존 전력으로도 북한군에 우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가정하지 않았고, 군과의 접촉도 없이 국방 예산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내용이라는 군 내부의 불만이 있었다. 또한, 2009년 국정원의 보고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 아닌, 현재의 주한미군 전력만으로도 한미연합군의 전투력이 북한군을 압도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18]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루었으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별도로 논의되지 않았다.

5. 1. 김대중 정부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6.25 50주년 기념사'에서 "만일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의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 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6]

5. 2.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남한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다는 국정원의 공식 연구결과가 나왔다.[17]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가 아닌 국정원에 남북한 전력 비교 보고서를 주문했는데, 이 보고서에서 한국군의 현존 전력으로도 북한군에 우세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2004년 국방부 보고서에서는 주한 미군과 본토 미군 증원이 없으면 개전 2주 만에 서울이 점령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2009년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주한 미군, 본토 미군 증원, 예비군 등의 전시 동원 없이, 현재 상비된 현역 군인만으로 북한군과 전면전 시 10% 우세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이는 북한군은 최대 가정치, 한국군은 최소 가정치를 대입한 결과이기에, 평균 가정치를 대입하면 한국이 더욱 우세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부의 공식 보고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이며, 한국 경제 성장의 성과가 국방 분야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3년 현재 남북한은 최대 90배 GDP 격차가 난다고 보도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0배 차이이므로, 90배 차이는 한국군 하나 대 미군 9개를 합친 규모이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북한의 생화학무기 및 탄도 미사일대량살상무기의 대도시 사용을 가정하지 않았고, 군과의 접촉도 없이 국방 예산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내용이라는 군 내부의 불만이 있었다. 또한, 2009년 국정원의 보고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 아닌, 현재의 주한미군 전력만으로도 한미연합군의 전투력이 북한군을 압도한다는 것이 결론이다.[18]

5. 3. 문재인 정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집중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취임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지만,[19][20][21][22][23][24] 이는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루었으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별도로 논의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스티브 배넌은 주한미군 철수를 북한과의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25] 이에 대해 도쿄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와타나베 선임 펠로우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은 한반도로부터의 직접적 위협에 직면하고, 핵무장을 포함한 자체 군사적 옵션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26]

2018년 4월 17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에게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시 영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의 군사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반대했다.[27]

6.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위협은 주한 미군의 역할과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6. 1.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

북한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및 대한민국과의 동맹 관계에 배치되는 주장이다.

6. 2. 주한미군 철수 시 예상되는 문제점

주한 미군 철수는 동북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을 깨뜨리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참조

[1] 웹인용 "[그래픽] 주한미군 병력 추이" https://www.yna.co.k[...] 2024-06-02
[2] 웹인용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https://www.archives[...] 2023-07-06
[3] 웹인용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컬렉션/토픽 https://theme.archiv[...] 2024-06-02
[4] 웹인용 국가기록원>기록물열람>통합검색>국정분야주제별검색>분야별주제검색 https://www.archives[...] 2024-06-02
[5] 저널 Is the Republic of Korea Army a Real Party to the Armistice Agreement of 1953 in Korea? https://www.kci.go.k[...] 2013
[6] 서적 탈냉전시대의 한국 외교정책 사회문화연구소 1998
[7] 웹인용 "[어제의 오늘]1976년 지미 카터 주한미군 철수 공약" https://www.khan.co.[...] 2024-06-02
[8] 웹인용 Special Report: Potential Sources of Opposition to a U.S. Troop Withdrawal from South Korea https://www.ncnk.org[...] 2024-06-02
[9] 웹인용 How the ‘Deep State’ Stopped a US President From Withdrawing US Troops From Korea https://thediplomat.[...] 2024-06-02
[10] 웹인용 주한미군 기갑전투여단, 본토서 9개월마다 순환배치 https://www.yna.co.k[...] 2024-06-02
[11] 웹인용 주한미군, 전차 없는 스트라이커 여단 순환 배치… 독자 지상전 대비 서둘러야 https://www.chosun.c[...] 2024-06-02
[12] 웹인용 미군, 순환배치·전략적 유연성 강화…주한미군에도 영향 주나 https://www.hankyung[...] 2024-06-02
[13] 웹인용 바이든 서명, 국방수권법 확정…"주한미군 2만8천500명 유지" https://www.yna.co.k[...] 2024-06-07
[14] 웹인용 H.R. 2670 -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for Fiscal Year 2024 https://rules.house.[...] 2024-06-07
[15] 뉴스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⑰] 조성렬 "北핵실험 중단, 비핵화 이전 신뢰 구축 조치"' 조선일보 2018-04-22
[16] 뉴스 평화협정 체결된다면…주한미군 철수? 역할변경? 뉴스1 2018-05-02
[17] 웹인용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정말 주한미군이 철수할까 http://www.vop.co.kr[...] 2024-06-02
[18] 문서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남북한 군사력 비교|신동아 신동아 2010-03-02
[19] 웹인용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정말 주한미군이 철수할까 https://shindonga.do[...] 2024-06-02
[20] 웹인용 트럼프의 ‘거친 입’ 행진… 한국에도 “미쳤다” 막말 https://www.donga.co[...] 2024-06-02
[21] 웹인용 트럼프 "한국은 '돈버는 기계'인데 분담금 쥐꼬리만큼 내" https://www.yna.co.k[...] 2024-06-02
[22] 웹인용 “트럼프 주한미군 철수 주장, 폼페이오 ‘두번째 임기에 하자’며 말려” https://www.hani.co.[...] 2024-06-02
[23] 웹인용 CNN "트럼프 방위비 관련 발언 오류투성이…한국, 40~50% 부담" https://www.yna.co.k[...] 2024-06-02
[24] 웹인용 미군 철수는 늘 일방적이었다…트럼프 당선시 윤 대통령의 선택은? https://www.hani.co.[...] 2024-06-02
[25] 뉴스 트럼프 최측근 "北 핵 동결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언급 한국경제 2017-08-18
[26] 웹인용 배넌의 ‘주한미군 철수’ 언급, “가능성 없지만 불확실성 증가” https://news.kbs.co.[...] 2024-06-02
[27] 뉴스 日언론 "트럼프, 미일정상회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언급했다" 데일리안 2018-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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