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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아우스트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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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는 고대부터 존재한다고 여겨진 남반구의 가상 대륙으로, "남쪽의 미지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구 구형설에 근거하여 존재가 추측되었으며, 중세 시대에는 '대척지'로 불리며 세계 지도에 묘사되기도 했다. 대항해 시대에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발견으로 대륙 발견의 가능성이 줄었지만, 북반구의 육지에 대한 균형추로서의 존재가 주장되었다. 16세기에는 독일의 요하네스 쇠너가 남극 대륙을 묘사한 지구본을 제작하고, 스페인 왕국이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총독령을 설립하는 등 가설 대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제임스 쿡의 탐험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발견되면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개념은 쇠퇴했고, 19세기에 남극 대륙이 발견되면서 상상의 대륙과 구분되었다.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는 허구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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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지도
개요
이름테라 아우스트랄리스
로마자 표기Terra Australis
남쪽 땅
기타 이름마젤라니카 (Magallanica)
유형가상 대륙
지역
위치파탈리스
관련 인물
관련 인물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
기타
관련 정보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오로젠

2. 명칭

가설 속의 남쪽 대륙은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이그노타''(Terra Australis Ignotala),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Terra Australis Incognitala, "남쪽의 미지의 땅") 또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논둠 코그니타''(Terra Australis Nondum Cognitala,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남쪽의 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브라실리아에 아우스트랄리스''(Brasiliae Australisla, "남쪽의 브라질")[2]마젤란의 이름을 딴 ''마젤라니카''(Magellanicala)[3]라는 이름도 있었다. 마티아스 링만은 1505년에 이 땅을 ''오라 안타르크티카''(Ora Antarcticala, 남극 지역)라고 불렀고,[4] 프란시스쿠스 모나쿠스는 ''아우스트랄리스 오레''(Australis Orela, 오스트랄리아)라고 칭했다.[5] 중세 시대에는 대척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프랑스 작가 기욤 포스텔은 이 가상의 대륙에 구스의 후손인 어두운 피부색의 주민들이 산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구스의 이름을 따 ''카스디아''(Chasdiala)라는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6]

18세기에는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를 지칭하던 뉴홀랜드와 가상의 남쪽 대륙인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혼동하지 않았다. 쿡 선장과 동시대 사람들은 뉴홀랜드(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가 상상 속의 일곱 번째 대륙(오늘날의 남극대륙)과는 별개의 대륙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 시드니의 영국 식민 당국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뉴홀랜드에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수 세기 동안 사용되던 네덜란드식 이름 '뉴홀랜드'는 점차 사라졌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빼앗긴 남쪽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한동안 이름 없이 불리다가,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남극대륙(Antarctica)'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7]

1800년대 초, 영국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에서 착안하여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명칭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보다 더 남쪽에 거대한 육지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8] 플린더스가 18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관한 책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항해(A Voyage to Terra Australis)''를 출판하고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이 대중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훗날 남극대륙이라 불리게 될 대륙이 실제로 탐험되었다.

3. 역사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즉 '남쪽의 땅'에 대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학자들은 지구 구형설을 바탕으로 북반구의 대륙들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반구에도 거대한 미지의 땅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러한 생각은 중세 시대 유럽으로 이어져 '대척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세계지도에도 묘사되었다.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에 대한 탐사가 시작되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티에라 델 푸에고 발견은 이 가상의 대륙 존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여겨졌고, 이후 지도에는 남극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그려졌다. 그러나 프랜시스 드레이크마젤란 해협 남쪽에 더 넓은 드레이크 해협이 있음을 발견하고, 17세기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을 발견하면서 가상의 대륙 범위는 점차 축소되었다.

18세기 제임스 쿡의 두 차례에 걸친 남태평양 항해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개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쿡은 뉴질랜드가 섬임을 확인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을 탐사했으며, 남극권까지 항해하며 광대한 바다와 얼음 외에 거대한 온대 대륙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고대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남방 대륙에 대한 상상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매슈 플린더스는 '뉴홀랜드' 대신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실제 남극 대륙이 발견되면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용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3. 1.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구 구형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 알려진 대륙들은 모두 북반구에 치우쳐 있어 안정성이 나빠 보였다. 그 때문에 남반구에도 그것과 균형을 이룰 만큼 거대한 육지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3. 2. 중세 시대

《플로리두스 서적(Liber Floridus)》(1090~1120)에 나오는 지도. 동쪽을 위, 북쪽을 왼쪽으로 하여 알려진 세계(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왼쪽에,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오른쪽에 묘사하고 있다.


중세 시대에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는 다른 이름인 대척점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비야의 이시도르가 그의 유명한 저서 《어원학(Etymologiae)》에서 이 개념을 중세 서유럽에 널리 소개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보다는, 그곳에 다른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주로 논쟁했다.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는 이후 일부 구역식 세계지도(Mappa mundi)에 포함되어 수 세기 동안 중세 학자들의 흥미를 끌었다.[17][18][19][20]

3. 3. 대항해 시대 (16세기)

15세기 후반 시작된 대항해 시대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탐험가들은 아프리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인도양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가설 속 남방 대륙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을 좁혔다.[22]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라 북반구 육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반구에도 거대한 육지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여전히 강했다.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1569년 지도)[21]와 같은 지도 제작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고수하며 새롭게 발견되는 남쪽의 땅들을 종종 이 가상의 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일부로 여겼다.[22]

독일의 천체지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쇠너는 1515년 지구본에서 남극 대륙을 'Brasilie Regiola'라는 이름으로 묘사했다. 이는 마르틴 발트제뮐러의 1507년 세계지도를 기반으로 했지만, 쇠너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라플라타 강 유역을 탐험했다는 보고서("브라질 땅의 새로운 소식", 1514년)[23]를 오해하여 남방 대륙을 그려 넣었다. 그는 보고서에 언급된 '해협'(실제로는 라플라타 강)[24] 남쪽의 땅('운드테레 프레실', 저위도 브라질을 의미)을 남극 근처의 거대한 땅으로 잘못 해석하고 고리 모양의 대륙을 상상했다. 쇠너는 그의 저서 ''Luculentissima quaedam terrae totius descriptiola''에서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한 '통로' 양쪽으로 육지가 보이며, 그 폭이 약 약 96.56km 정도라고 설명했다.[25] 이 정보는 고대의 대척지 개념과 결합되어 쇠너의 남방 대륙 구상으로 이어졌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서쪽 항로로 몰루카 제도에 도달하려는 계획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26]

페르디난드 마젤란1520년 티에라 델 푸에고를 발견하자, 이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존재의 증거로 여겨졌다. 쇠너는 1523년과 1533년 지구본에 이 땅을 '최근에 발견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남쪽 땅'(terra australis recenter inventa sed nondum plene cognitala)으로 표기했다. 당시 티에라 델 푸에고는 남극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미지의 대륙, 즉 'Magellanicala'(마젤란의 땅)[3] 또는 '메가라니카'(メガラニカ)의 북쪽 끝으로 간주되었고, 마젤란 해협대서양태평양을 잇는 유일한 통로로 여겨졌다.

쇠너의 개념은 이후 지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오롱스 핀(1531년 세계 지도), 플랑드르의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1538년)와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1570년) 등이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으며, 특히 디에프 지도 제작 학교에서는 자브 라 그랑드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했다.[27] 1526년 발견된 뉴기니섬 역시 한때 이 가상 대륙의 일부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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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mb의 1556년 ''코스모그라피 유니베르셀'',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테라 아우스트랄레''의 돌출부가 ''그랑드 자브''라고 불리는 곳]]

thumb의 아들 룸볼드 메르카토르가 1587년에 그린 세계 지도. 테라 아우스트랄리스가 남반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thumb의 지도에 묘사된 가상의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스페인카를 5세1539년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총독령[28]을 설치하고 페드로 산초 데 라 오스[29][30]에게 통치권을 부여했으나, 이는 1540년 페드로 데 발디비아[31]에게 넘어갔고 나중에 칠레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 중반 디에프 지도에는 동인도 제도 바로 남쪽에 상세하지만 허구적인 묘사가 포함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해안선이 그려졌다. 당시 프랑스 노르망디브르타뉴 상인들은 이 남방 대륙에 큰 관심을 보였다. 1566년과 1570년, 프랑수아 달바뉴와 앙드레 달바뉴는 제독 가스파르 드 콜리니에게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와의 교류 계획을 제안했지만, 1572년 콜리니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로 사망하면서 무산되었다.[32]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는 우주론적 균형 논리에 따라 거대한 남방 대륙의 존재를 굳게 믿었다. 그의 전기 작가 월터 짐에 따르면, 메르카토르는 이 대륙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기하학적 비율, 크기, 무게, 중요성에서 다른 두 대륙(유라시아-아프리카, 아메리카)에 뒤지지 않으며,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구성이 중심에서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33]

플랑드르의 지리학자 코르넬리우스 위트플리트는 1597년 저서 ''Descriptionis Ptolemaicae Augmentumla''에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남극권 바로 아래 가장 남쪽에 있는 땅"으로 묘사하며, 서쪽으로는 남회귀선을 넘어 적도 근처까지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뉴기니와 마주한다고 기술했다. 그는 이 대륙이 완전히 발견된다면 세계 육지의 5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전하며, 알바로 데 멘다냐가 발견한 솔로몬 제도를 그 일부로 언급했다.[34]

1576년 칠레에서 항해한 후안 페르난데스는 남쪽 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35] 헨드릭 혼디우스 2세의 1641년 지도에는 1576년 스페인 왕의 명으로 탐험에 나선 Hernando Gallegoes가 뉴기니에서 마젤란 해협까지 섬들이 이어진다고 주장했다는 기록이 있다.[36]

그러나 1578년, 잉글랜드프랜시스 드레이크마젤란 해협 남쪽을 항해하다 폭풍을 만나 남쪽으로 떠밀려가면서 더 남쪽에 넓은 바다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로써 티에라 델 푸에고가 거대한 남방 대륙의 일부가 아닌 섬이며, 대서양태평양 사이에 드레이크 해협이라는 더 넓은 통로가 존재함이 밝혀졌다. 이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범위를 남쪽으로 더 밀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3. 4. 17세기

스페인 항해가 루이스 바스 데 토레스는 1605년부터 1606년까지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케이로스가 이끈 남쪽 대륙 탐험에 참여하여, 뉴기니 남쪽에 현재 토레스 해협으로 알려진 해협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같은 시기, 스페인 왕실을 위해 항해한 포르투갈 항해가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케이로스는 1606년 뉴기니 남쪽에서 큰 섬을 발견하고 이를 '라 아우스트랄리아 델 에스피리투 산토'(La Austrialia del Espiritu Santoes)라고 명명했으며,[38] 이 섬을 미지의 남쪽 대륙(Terra Australis incognitala)으로 스페인 국왕에게 보고했다. 그는 1610년 보고서에서 "뉴기니는 제가 논하는 오스트랄 랜드(Austral Land)의 북쪽 끝"이라고 주장했다.[39]

1606년 네덜란드의 빌럼 얀손은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서해안, 당시 뉴홀랜드라 불린 지역을 발견했다.

1615년에는 네덜란드의 이삭 르 메르와 그의 아들 야코프 르 메르가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라고 지칭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와의 무역을 목표로 '아우스트랄리셰 콤파니'(Australische Compagnienl, 오스트레일리아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40]

1622년,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헤셀 게릿츠는 케이로스의 여덟 번째 보고서를 발행하며 자신의 '태평양 지도'에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페드로 페르난도 데 키로스(Pedro Fernando de Quiros)의 요트와 함께 뉴기니 근처에서 서쪽으로 10도까지 많은 섬과 암초를 지나 23과 24 패덤(약 42m~44m)의 수심을 40일 동안 항해한 사람들은 노바 기니(Nova Guinea)가 남쪽으로 10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추정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9도에서 14도 사이의 땅은 별개의 땅일 것입니다."[37] 이는 뉴기니와 남쪽 대륙이 분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17세기 초반 지도에서는 남쪽 대륙의 모습이 매우 다양하게 그려졌는데, 이는 정보 부족과 추측에 기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륙의 크기는 점차 축소되었지만, 초기에는 티에라 델 푸에고,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가 될 땅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대륙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은 뉴질랜드를 발견했으며, 일부는 이를 남쪽 대륙의 일부로 간주했다. 이듬해인 1643년, 헨드릭 브로우어가 이끈 네덜란드의 발디비아 원정대는 케이프 혼 남쪽을 항해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항해를 통해 이전까지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일부라고 여겨졌던 육지가 실제로는 분리되어 있음이 밝혀지면서, 남쪽 대륙의 범위에 대한 기존 관념에 변화를 가져왔다.[41][42][43] 1646년 타스만의 발견 이후,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또는 메가라니카)는 더 이상 상상의 대륙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되는 실존 대륙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인 1676년, 마닐라의 이탈리아 선교사 비토리오 리치오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에서의 선교 활동을 위해 사도좌 지구 책임자 임명을 신청하며, 뉴기니에서 남극점 너머까지 광대하게 뻗어 있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지도를 제출했다.[44] 그의 임명은 1681년에 승인되었다.

3. 5. 18세기

18세기에는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와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명확히 구분했다. 제임스 쿡과 동시대 사람들은 당시 뉴홀랜드( New Hollandeng )라고 불렀던 여섯 번째 대륙(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이, 상상 속의 일곱 번째 대륙(오늘날의 남극대륙)과는 별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항해일지 심사관이었던 알렉산더 달림플은 1762년 필리핀에서 얻은 스페인 문서를 번역하던 중 토레스의 증언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달림플은 1770년부터 1771년에 걸쳐 남태평양 탐험에 관한 역사 자료집(Historical Collection of the Several Voyages and Discoveries in the South Pacific Ocean)을 출판하며,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즉 남쪽 대륙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을 제시했다.

남쪽 대륙의 인구 수는 후안 페르난데스가 발견한 동쪽 부분부터 타스만이 본 서쪽 해안까지의 범위를 고려할 때, 아마도 5천만 명 이상일 것입니다. 경도로 약 100도에 달하는데, 위도 40도에서는 4596nmi 또는 약 8566.52km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터키에서 중국 동쪽 끝까지의 아시아 문명 지역 전체보다 더 넓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거기로 가는 무역은 없지만, 이 표에서 나온 단편들만으로도 모든 제조업체와 선박을 고용하여 영국의 권력, 지배력, 주권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통치 시스템 중 하나 아래에서 예술과 산업이 번영했던 페루 제국을 고려하는 사람은, 낯선 사람에 의해 건설된 그곳에서 최초의 잉카인 망코 카팍이 유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쪽 대륙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기대를 가져야 하며, 망코 카팍이 문명 생활의 편의를 가져온 곳은 퀴푸 대신 문자를, 더 서투른 대체물 대신 철을 제공하는 행운의 사람들에게 풍부한 보상을 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해야 합니다.[46]


달림플의 주장은 큰 관심을 끌었고, 1769년 영국 정부는 제임스 쿡에게 인데버호를 이끌고 남쪽 대륙 탐색을 명령했다. 이는 1767년 6월 새뮤얼 월리스가 발견하여 조지 왕 섬(King George Island)으로 명명한[47] 타히티의 남쪽과 서쪽 지역을 탐사하는 임무였다.[47] 런던 언론은 1768년 6월, 두 척의 배가 새로 발견된 섬으로 파견되어 "남쪽 대륙의 발견을 시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48] 이후 보도에서는 원정 목적이 금성태양면 통과 관측과 함께 케이프 혼 남쪽과 서쪽의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것임을 밝혔다.[50][51]

제임스 쿡의 제1차 항해(1768년~1771년)는 인데버호를 이용해 진행되었다. 쿡은 1769년, 아벌 타스만 이후 유럽인이 방문하지 않았던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배로 일주하며 섬임을 증명했다. 1770년에는 뉴홀랜드(현 뉴사우스웨일스)의 동해안을 발견했다. 이 항해를 통해 뉴홀랜드가 거대한 남방 대륙의 일부일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쿡은 1770년 3월 31일 일기에 "인데버호의 항해는 남쪽 대륙 존재설을 뒷받침하던 주장 대부분을 무효화했으며, 적어도 남위 40도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기록했다.[52]

이후 쿡은 영국 왕립학회의 의뢰를 받아 1772년부터 1775년까지 레졸루션호와 어드벤처호를 이끌고 제2차 항해에 나섰다. 이 항해는 남태평양 고위도 지역 탐사와 경도 측정법 개선을 위한 크로노미터 시험을[53] 목표로 했다. 쿡은 남반구 중고위도를 항해하며 1773년에는 인류 최초로 남극권에 도달했다. 사우스조지아섬과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쿡 제도, 뉴칼레도니아, 니우에 등 많은 섬을 발견하고 거대한 빙산을 목격했지만, 끝내 거대한 남방 대륙은 발견하지 못했다.

쿡의 두 차례 항해를 통해 고대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남방 대륙, 즉 메가라니카(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존재는 사실상 부정되었다. 비록 남극 고위도에 미탐험 지역이 남아있었지만, 지도의 공백을 상상으로 채우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3. 6.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개념의 쇠퇴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얀 얀소니우스가 1657년에 제작한 이 지도에서 남쪽 대륙으로 여겨졌던 영토는 크게 줄어들었다. "미지의 남쪽 땅"을 뜻하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 인코그니타''가 남극을 포함한 지역에 확실한 해안선 없이 표시되어 있다.


수 세기에 걸쳐 테라 아우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라는 개념은 점차 힘을 잃었다. 1616년, 야코프 르 메르와 빌럼 스코우텐이 케이프 혼을 돌아 항해하면서 티에라 델 푸에고가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1642년 아벨 타스만의 첫 번째 태평양 항해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신화 속 남쪽 대륙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상황을 크게 바꾼 것은 제임스 쿡의 항해였다. 쿡은 1768년부터 1771년까지 이어진 인데버호를 이용한 제1차 항해 중 1769년, 타스만 이후 유럽인이 방문하지 않았던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배로 일주하며 섬임을 증명했다. 또한 1770년에는 뉴홀랜드(현재의 뉴사우스웨일스) 동해안을 발견했다. 이로써 뉴홀랜드가 거대한 남방 대륙(메가라니카)의 일부일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이후 쿡은 영국 왕립학회의 의뢰를 받아 1772년부터 1775년까지 레졸루션호와 어드벤처호로 제2차 항해를 실시했다. 그는 남반구의 높은 위도 지역을 광범위하게 항해하며 1773년에는 남극권 안쪽까지 도달했다. 이 항해를 통해 사우스조지아섬과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쿡 제도, 뉴칼레도니아, 니우에 등 많은 섬을 발견했지만, 거대한 대륙은 찾지 못했다. 쿡은 거대한 빙산들을 목격하며, 만약 남쪽 대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차가운 극지방 안쪽에 국한될 것이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처럼 온대 기후 지역까지 확장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53] 이로써 상상 속의 거대 남방 대륙, 메가라니카의 존재는 사실상 부정되었다.

1800년대 초, 영국 탐험가 매슈 플린더스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의 사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814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탐험 기록을 담은 책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로의 항해(A Voyage to Terra Australis)』를 출판했다. 플린더스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가 상상했던 거대한 남방 대륙(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대신 그는 당시 뉴홀랜드라 불리던 대륙에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더 남쪽에 비슷한 크기의 육지가 발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들었다.[8] 그는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이 이 대륙의 지리적 중요성과 위치를 잘 나타내며, 오랜 역사를 가졌고 특정 국가의 영유권 주장과 무관하여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거의 같은 규모의 다른 분리된 육지가 더 남쪽 위도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라는 이름은 이 나라의 지리적 중요성과 지구상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두 개의 영유권 주장 국가 중 어느 쪽과도 관련이 없으므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이름보다 덜 문제가 있다.



또한 책의 각주에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만약 내가 원래 용어에 어떤 혁신을 허용했다면, 그것은 그것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바꾸는 것이었을 것이다. 듣기에 더욱 좋고, 지구의 다른 큰 부분의 이름과 유사하기 때문이다.[8]



플린더스의 주장대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명칭은 점차 뉴홀랜드를 대체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820년경 마침내 남극 대륙이 발견되었지만, 이는 플린더스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그러나 발견된 남극 대륙은 고대에 상상했던 거대한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메가라니카)보다 훨씬 작았고, 별개의 대륙으로 여겨졌다. 이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은 뉴홀랜드 대륙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굳어진 후였다.[54] 19세기 시드니의 영국 식민 당국은 공식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뉴홀랜드에 재할당했고, 네덜란드식 이름인 뉴홀랜드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름을 빼앗긴 남극 대륙은 한동안 명칭 없이 불리다가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남극대륙(Antarctica)'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7]

4. 해안 지방 (The Province of Beach)

"해안 지방" 또는 "보에아크"(Boeach)라는 명칭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제3권)에 등장하는 지명을 잘못 기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출발하여 참파(당시 ''provincia ciamba'', 현재 베트남 남부), 자바섬(당시 ''Jave la Grande''), ''로카크''(Locach, 현재 태국롭부리)[55], 그리고 수마트라(당시 ''Java Minor'')를 거쳐 인도로 가는 바닷길 여정을 설명했다. '로카크'는 롭부리의 초기 광둥어 이름인 '라보'(Lavo)를 당시 발음인 "로-후크"(羅斛, Lo-huk)로 표기한 것을 마르코 폴로가 음역한 것이다.[56] 폴로의 기록에 따르면 로카크에는 금이 "너무 풍부하여 보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폴로의 기록은 본래 참파에서 남쪽으로 수마트라를 향하는 경로를 설명했지만, 필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출발점이 폴로가 방문하지 않은 "자바"로 잘못 기재되었다.[57] 이 실수로 인해 수마트라와 로카크는 실제 위치와 달리 자바 섬의 남쪽에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58]

독일 옛손글씨체에서는 '로카크'(Locach)와 '보에아크'(Boeach)의 철자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해안 지방' 또는 '보에아크'라는 이름의 땅은 15세기 초 유럽 지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1489년 피렌체에서 헨리쿠스 마르텔루스가 제작한 세계 지도에는 참파 남쪽에 라틴어로 ''provincia boëach''라고 표기된 지역이 있다. 1532년에 출판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판본에서는 '로카크'가 ''Boëach''로 바뀌었고, 이후 ''Beach''로 축약되었다.[59]

16세기 중반, 일부 지리학자와 지도 제작자들은 마르코 폴로 기록의 오류를 그대로 따랐다. 『동방견문록』(1921년판)의 편집자 헨리 율에 따르면, 이들은 "자바의 남동쪽에 '보에아크'(또는 로카크) 땅을 위치시켰고, 그 위치에 대륙을 지도에 표시했다"고 한다.[60]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는 1541년 지구본에서 마르코 폴로의 잘못된 기록을 따라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북쪽 끝에 ''Beach provincia aurifera''("금을 생산하는 해안 지방")를 배치했다. 이 '해안 지방'은 메르카토르의 1569년 세계 지도에도 같은 위치에 나타나며, 마르코 폴로를 인용하여 "Beach provincia aurifera quam pauci ex alienis regionibus adeunt propter gentis inhumanitatem"("금을 생산하는 해안 지방, 그 주민들의 잔혹함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는 설명이 추가되었다. 지도에는 ''Lucach regnum''(로카크 왕국)도 남서쪽 약간 떨어진 곳에 표시되었다.[61] 메르카토르의 영향을 받아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 역시 1571년 세계 지도에 같은 위치에 ''BEACH''와 ''LVCACH''를 표시했다.

얀 휘헨 반 린쇼텐이 1596년에 제작한 지도에도 당시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상상해 온 남방 대륙, 즉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북쪽 끝부분으로 여겨지는 ''BEACH''와 ''LOCACH''가 지도의 남쪽 가장자리에서 돌출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1616년, 디르크 하르토크가 이끄는 네덜란드 선박 ''Eendracht''호가 현재 서호주의 샤크 만 해안을 발견한 사건은 지도에 ''Beach''라고 표시된 지역에 실제로 땅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르토크는 발견한 땅에 자신의 배 이름을 따서 ''에인드라흐트란트''(Eendrachtsland)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1642년 8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의회는 린쇼텐의 지도를 참조하여 아벨 타스만과 프란스 야콥손 비셔에게 탐험 항해를 지시했는데, 그 목적 중 하나는 "미지의 해안 지방 전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62]

5. 허구 작품

탐험되지 않은 남극 대륙은 17세기와 18세기에 허구적인 항해 장르의 환상적인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당시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대륙에 대한 상상 속 방문을 다룬 작품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Mundus alter et idem'' (1605년): 노리치 주교 조셉 홀의 풍자 작품.
  • ''소나무 섬'' (1668년): 영국 정치인 헨리 네빌의 작품.
  • La terre australe connuefra (1676년): 가브리엘 드 포니의 작품.
  • Histoire des Sevarambesfra (1675년): 프랑스 위그노 작가 드니 바이라스 달레의 작품.
  • Voyages et avantures de Jaques Masséfra (약 1715년, 1710년으로 잘못 표기되기도 함): 시몽 티소 드 파토의 작품.
  • Miscellanea Aurea: The Fortunate Shipwreck, or a description of New Athens in Terra Australis incognitalat (1720년): 영국 극작가 토마스 킬리그루의 작품.
  • Relation d'un voyage du Pole Arctique, au Pole Antarctique par le centre du mondefra (1721년): 익명의 작품.
  • Relation du royaume des Féliciensfra (1727년): 라세이 후작의 작품.
  • Viaggi di Enrico Wanton alle Terre incognite Australiita (1749년): 자카리아 세리만의 작품.
  • Voyage de Robertson, aux Terres Australes, traduit sur le manuscrit angloisfra (1767년): 익명의 작품.
  • La découverte australe par un homme-volantfra (1781년): 레스티프 드 라 브르통의 작품.
  • 테라 아우스트랄리스의 개념은 테리 프랫쳇이 그의 ''디스크월드'' 소설 시리즈(1983년~2014년)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이 세계는 기묘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반대편 대륙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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