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크라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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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팡크라티온은 고대 그리스의 격투 스포츠로, 레슬링과 복싱 기술을 결합하여 종합 격투기 형태를 띠었다. 기원전 7세기에 발전하여 고대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는 팡크라티움으로 불리다가 서기 393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칙령으로 금지되었다. 현대에는 네오 팡크라티온으로 부활하여 종합격투기의 한 형태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나이티드 월드 레슬링(UWW)의 스포츠로도 공인되었다. 팡크라티온은 타격, 그래플링, 조르기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훈련과 전략을 통해 승리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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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크라티온 | |
---|---|
기본 정보 | |
![]() | |
종류 | 혼합 무술, 타격, 그래플링, 레슬링 |
발생 국가 | 고대 그리스 |
올림픽 | 기원전 648년 제33회 고대 올림픽에서 도입 |
파생 무술 | 컴뱃 삼보, 캐치 레슬링 |
명칭 | |
그리스어 | (파크라티온) |
로마자 표기 | Pankrátion |
어원 | ' (판)' (모두) + ' (크라토스)' (힘, 권능) |
주요 인물 | |
유명 선수 | 엔젤 리 밥 샙 매트 흄 |
2. 역사
복싱( / – πυγμήgrc/πυγμαχίαgrc)과 레슬링( – πάληgrc) 기술을 결합하고, 다리 공격과 같은 추가 요소를 사용하여 오늘날의 종합 격투기 경기와 유사한 광범위한 격투 스포츠였다. 녹아웃이 흔했지만, 대부분의 팡크라티온 경기는 서브미션(항복 또는 관절 꺾기)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팡크라티온 선수들은 고도로 숙련된 그래플링 선수였으며, 다양한 테이크다운, 초크홀드, 관절 꺾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했다. 극단적인 경우 팡크라티온 경기는 상대 중 한 명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며, 이는 살아남은 전투자의 승리로 간주되었다.
팡크라티온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운동 경기에서 단순한 이벤트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또한 스파르타의 호플리테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를 포함한 그리스 군인들의 무기 체계의 일부였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인들은 칼과 창이 부러지자 맨손과 이빨로 싸웠다고 한다.[7]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79년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미칼레 전투에서 가장 잘 싸운 그리스인들은 아테네인들이었고, 가장 잘 싸운 아테네인은 유튀누스의 아들인 저명한 팡크라티온 선수인 헤르몰리쿠스였다고 언급한다.[8] 폴리에무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팡크라티온 선수와 연습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고대 팡크라티온 선수들의 위업은 그리스 운동 경기의 연대기에 전설이 되었다. 아리키온, 디오시푸스, 스코투사의 폴리다마스와 테오게네스 (종종 서기 1세기에 테소스의 테아게네스로 불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들 중 하나이다.
디오시푸스는 기원전 336년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시아 원정에 그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존경받는 챔피언으로서 그는 자연스럽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와 군대 앞에서 무장한 전투에서 싸우라는 코라구스라는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숙련된 군인 중 한 명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코라구스는 무기와 완전한 갑옷을 갖추고 싸웠지만, 디오시푸스는 클럽만 가지고 나타나 팡크라티온 기술을 사용하여 그를 죽이지 않고 코라구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나중에 디오시푸스는 절도 혐의로 모함받아 자살했다.
피갈리아 출신의 팡크라티온 선수 아리키온(Ἀρριχίωνgrc)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경기에서 팡크라티온 경기를 우승했다. 그의 상대는 그를 초크홀드에 걸었고, 아리키온은 그것을 풀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대의 발가락(일부 기록에 따르면 발목)을 부러뜨렸다. 상대는 고통으로 거의 기절했고 항복했다. 심판이 아리키온의 손을 들었을 때 그는 초크홀드로 사망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의 시신은 월계관으로 장식되어 영웅으로 피갈레아로 돌아갔다.[10]
파우사니아스는 메시나 출신의 레슬러 레온티스쿠스(Λεοντίσκοςgrc)를 언급한다. 그는 레온티스쿠스의 레슬링 기술이 시키온의 소스트라투스의 팡크라티온과 유사하다고 썼는데, 레온티스쿠스는 상대를 던지는 방법을 몰랐고, 대신 그들의 손가락을 꺾어 승리했기 때문이다.[12]
2. 1. 기원과 신화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영웅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는 대결에서 레슬링과 복싱을 모두 사용하여 팡크라티온을 발명했다고 한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서 팡크라티온으로 물리쳤다고 하며,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의 사자를 팡크라티온으로 제압하는 모습으로 고대 예술 작품에 자주 묘사되었다. 팡크라티온은 "총력전"을 의미하는 또는 (πάμμαχονgrc 또는 παμμάχιονgrc)이라고도 불렸다.[3][4]주류 학계에서는 팡크라티온이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발전했으며, 폭력적인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복싱이나 레슬링으로는 충족할 수 없었던 "총력전"의 틈새를 채웠다고 본다.[5] 그러나 일부 증거에 따르면 팡크라티온은 이미 기원전 2천년기부터 스포츠 및 전투 형태로 그리스에서 행해졌을 수도 있다.[6]

2. 2. 고대 올림픽
팡크라티온은 기원전 648년 고대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남성부와 소년부 경기가 열렸다.[11]2. 3. 로마 시대와 쇠퇴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인들은 그리스 격투 스포츠를 pancratium|판크라티움la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였다.[11] 서기 393년, 팡크라티온은 검투사 경기, 그리고 다른 이교도 축제들과 함께 기독교도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칙령에 의해 금지되었다.2. 4. 현대의 부활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896년 근대 올림픽 부활 당시 팡크라티온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네오-팡크라티온''(현대 팡크라티온)은 1969년 그리스계 미국인 격투기 선수 짐 아바니티스에 의해 처음으로 무술계에 소개되었으며, 1973년 그가 ''블랙 벨트'' 매거진 표지에 등장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아바니티스는 원전을 참조하여 자신의 재구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 그의 노력은 또한 종합격투기 (MMA)가 된 분야에서 선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31]
국제 올림픽 위원회 (IOC)는 팡크라티온을 올림픽 스포츠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현대 팡크라티온 아슬리마의 창시자인 사비디스 E. A. 라자로스(Savvidis E. A. Lazaros)의 노력, 기술 검사 프로그램, 엔디마, 팔라에스트라의 형태 및 팡크라티온 아슬리마의 용어는 2010년 현재 유나이티드 월드 레슬링 (UWW)으로 알려진 FILA에 의해 스포츠로 인정받았으며, 이는 올림픽 레슬링 규정을 관리하며 "현대 종합격투기의 한 형태"로 간주된다.[33] 팡크라티온은 2010년 월드 컴뱃 게임에서 처음으로 경연이 펼쳐졌다.[34]
현대 팡크라티온은 아마추어 MMA와 유사한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엘리트"(제한 덜함; 몸과 머리에 펀치와 킥 허용) 및 "전통"(더 제한적, 즉 머리에 펀치나 킥 금지, "머리에 통제된 라운드 하우스 킥"은 허용)의 두 가지 규칙으로 나뉜다.[35]
축구 킥, 해머 피스트, 머리에 엘보우 공격, 바디 슬램, 레그 락, 스파인 락 및 그라운드 파이팅 중 어떤 종류의 타격도 두 스타일 모두에서 금지된다. 다음 신체 부위를 공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목, 머리 뒤쪽, 목구멍, 무릎, 팔꿈치, 관절, 신장, 사타구니, 척추를 따라.[35]
선수들은 보호 장비(MMA 글러브, 정강이 보호대,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표준 레슬링 매트에서 경기를 한다.[35]
3. 규칙 및 구조
팡크라티온 시합에는 체급이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남성 부문과 소년 부문의 두 연령 그룹으로 나뉘었다. 남성 부문은 기원전 648년에, 소년 부문은 기원전 200년에 고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추가되었다. 경기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상대는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그리스어 사용 지역(Grecophone)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토너먼트 진행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대전 방식은 결승전까지 매 라운드 반복되었다. 선수가 홀수 명일 경우 매 라운드에 부전승(bye (sports)) (ἔφεδρος|ephedrosgrc "후보")가 있었다. 같은 선수가 여러 번 부전승을 할 수도 있었는데, 이는 상대 선수에게 가해지는 라운드의 소모를 줄여주기 때문에 큰 이점이 있었다. 따라서 어떤 라운드에서도 ephedrosgrc가 되지 않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ἀνέφεδρος|anephedrosgrc "비후보")은 명예로운 칭호였다.
thumb 암포라(기원전 440년)]]
시합은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었고, 규칙은 눈 찌르기와 물어뜯기 금지 두 가지뿐이었다. 스파르타에서 열리는 시합에서는 눈 찌르기와 물어뜯기도 허용되었다.[14] 시합은 보통 한쪽 선수가 기권(엄지손가락을 세운 상태로 손을 위로 들어 기권 의사를 표시)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심판이 특정 조건 하에 중간에 경기를 중단하고 승자를 결정하거나 무승부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었다.[6] 극단적인 경우에는, 선수가 시합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 경우에는 생존한 선수가 승자로 간주되었다. 상대가 겁을 먹고 시합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부전승이 되었지만, 전부 부전승으로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은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경기에서는 16인제 토너먼트로 개최되었지만, 플라톤은 팡크라티온 선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서기 1세기에는 유대인 철학자이자 팡크라티온 선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예선 대회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기록을 남겼다.[6]
3. 1. 고대 팡크라티온의 규칙
팡크라티온 시합에는 체급이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고대 시합에는 두세 개의 연령 그룹이 있었다. 특히 고대 올림픽에는 남성()과 소년()의 두 연령 그룹만 있었다. 소년을 위한 팡크라티온 경기는 기원전 200년 올림픽 경기에서 시작되었다. 팡크라티온 시합에서 심판은 규칙을 집행하기 위해 튼튼한 막대기나 채찍을 들고 있었다. 실제로 싸움에 관한 규칙은 두 가지뿐이었다. 즉, 눈 찌르기나 물어뜯기는 금지되었다.[13] 스파르타는 눈 찌르기와 물어뜯기가 허용된 유일한 곳이었다.[14] 시합 자체는 일반적으로 참가자 중 한 명이 항복할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었으며, 항복하는 선수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심판은 특정 조건에서 경기를 중단하고 두 선수 중 한 명에게 승리를 선언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경기를 무승부로 선언할 수도 있었다.[6]팡크라티온 시합은 토너먼트로 열렸으며, 대부분 올림픽 외에서 열렸다. 각 토너먼트는 토너먼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결정하는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어 사용 지역(Grecophone)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과정은 결승전까지 매 라운드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선수가 홀수 명일 경우 매 라운드에 부전승(bye (sports)) (ἔφεδρος|ephedrosgrc "후보")가 있었는데, 결승전까지 모든 라운드에 있을 수 있었다(그러나 참가자 수가 2의 거듭제곱이고 승리자가 다음 라운드 전에 기권하지 않거나 기타 규칙 위반 사항이 없을 경우 모든 라운드에 없을 수도 있다). 같은 선수가 여러 번 에페드로스일 수 있으며, 이는 에페드로스가 상대 선수에게 가해지는 라운드의 소모와 마모를 면하게 되므로 그에게 큰 이점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라운드에서도 ephedrosgrc가 되지 않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ἀνέφεδρος|anephedrosgrc "비후보")은 명예로운 칭호였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경기에는 쉽게 4라운드, 즉 16명의 선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범헬레니 경기의 경쟁자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상대 선수는 수천 명에 달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 더욱이, 서기 1세기에 그리스-유대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아마도 판크라티온의 실천자였을 텐데, 그는 선수가 참여하고 주요 경기에서 신선하게 나타나기 전에 힘을 모으는 예선전에 대한 암시가 될 수 있는 진술을 한다. 따라서 주요 경기에 앞서 수백 명의 경쟁자가 참여하는 지역 및 예선 경기가 있었고, 그 중 소수의 선수들이 가장 중요한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
thumb 암포라(기원전 440년)]]
3. 2. 고대 팡크라티온 경기 구조
팡크라티온 시합에는 체급이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고대 시합에는 두세 개의 연령 그룹이 있었다. 특히 고대 올림픽에는 남성()과 소년()의 두 연령 그룹만 있었다. 소년을 위한 판크라티온 경기는 기원전 200년 올림픽 경기에서 시작되었다.[13] 팡크라티온 시합에서 심판은 규칙을 집행하기 위해 튼튼한 막대기나 채찍을 들고 있었다. 실제로 싸움에 관한 규칙은 두 가지뿐이었다. 즉, 눈 찌르기나 물어뜯기는 금지되었다.[13] 스파르타는 눈 찌르기와 물어뜯기가 허용된 유일한 곳이었다.[14] 시합 자체는 일반적으로 참가자 중 한 명이 항복할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었으며, 항복하는 선수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심판은 특정 조건에서 경기를 중단하고 두 선수 중 한 명에게 승리를 선언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경기를 무승부로 선언할 수도 있었다.[6]팡크라티온 시합은 토너먼트로 열렸으며, 대부분 올림픽 외에서 열렸다. 각 토너먼트는 토너먼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결정하는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어 사용 지역(Grecophone)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 과정은 결승전까지 매 라운드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선수가 홀수 명일 경우 매 라운드에 부전승(bye (sports)) (ἔφεδρος|ephedrosgrc "후보")가 있었는데, 결승전까지 모든 라운드에 있을 수 있었다. 같은 선수가 여러 번 에페드로스일 수 있으며, 이는 에페드로스가 상대 선수에게 가해지는 라운드의 소모와 마모를 면하게 되므로 그에게 큰 이점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라운드에서도 ephedrosgrc가 되지 않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ἀνέφεδρος|anephedrosgrc "비후보")은 명예로운 칭호였다.
고대 그리스의 주요 경기에는 쉽게 4라운드, 즉 16명의 선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범헬레니 경기의 경쟁자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상대 선수는 수천 명에 달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 더욱이, 서기 1세기에 그리스-유대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아마도 판크라티온의 실천자였을 텐데, 그는 선수가 참여하고 주요 경기에서 신선하게 나타나기 전에 힘을 모으는 예선전에 대한 암시가 될 수 있는 진술을 한다. 따라서 주요 경기에 앞서 수백 명의 경쟁자가 참여하는 지역 및 예선 경기가 있었고, 그 중 소수의 선수들이 가장 중요한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
3. 3. 현대 팡크라티온의 규칙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팡크라티온을 올림픽 스포츠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현대 팡크라티온 아슬리마의 창시자인 사비디스 E. A. 라자로스(Savvidis E. A. Lazaros)의 노력으로, 유나이티드 월드 레슬링(UWW)에서 스포츠로 인정받았다.[33] 팡크라티온은 2010년 월드 컴뱃 게임에서 처음으로 경연이 펼쳐졌다.[34]현대 팡크라티온은 아마추어 MMA와 유사한 규칙을 가지며, 다음과 같이 두 가지 규칙으로 나뉜다.[35]
- 엘리트: 제한이 적으며, 몸과 머리에 펀치와 킥을 허용한다.
- 전통: 제한이 더 많으며, 머리에 펀치나 킥은 금지되지만, "머리에 통제된 라운드 하우스 킥"은 허용된다.
두 규칙 모두에서 다음과 같은 기술 및 공격은 금지된다.[35]
- 금지 기술: 축구공 킥, 해머 피스트, 머리에 팔꿈치 공격, 바디 슬램, 레그 락, 스파인 락, 그라운드 파이팅 중 모든 타격
- 금지 부위: 목, 뒤통수, 목구멍, 무릎, 팔꿈치, 관절, 신장, 급소, 척추
선수들은 보호 장비(MMA 글러브, 정강이 보호대,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표준 레슬링 매트에서 경기를 한다.[35]
4. 기술
팡크라티온 선수(그리스어: παγκρατιαστήςgrc, 복수형: παγκρατιασταίgrc)[17]는 상대를 공격하고 항복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했다. 팡크라티아스트가 서서 싸울 때는 '아노 팡크라티온'(그리스어: ἄνω παγκράτιονgrc, "상위 팡크라티온")[18], 땅에서 싸울 때는 '카토 팡크라티온'(그리스어: κάτω παγκράτιονgrc, "하위 팡크라티온")이라고 불렀다.
아노 팡크라티온과 카토 팡크라티온에서 사용된 기술 중 일부는 고대 도기, 조각상, 문헌을 통해 알려져 있다. 고대 문헌에는 경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도 기록되어 있다.
팡크라티스트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 보며, 약간 옆으로 선다. 이는 레슬러의 정면 자세와 복서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하고 신체 중심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신체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앞에 위치한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에 오도록 높이 들고, 손은 부분적으로 열려 있으며, 손바닥은 앞, 아래, 서로를 향한다. 앞쪽 팔은 거의 뻗지만 완전히 뻗지는 않고,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지만 현대 복서의 뒤쪽 팔보다는 더 펴져 있다. 등은 다소 둥글지만 레슬러만큼은 아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체중은 대부분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으며, 앞쪽(왼쪽) 발은 발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앞다리로 킥을 날리고, 앞 무릎을 들어 올려 상대방의 낮은 킥을 막을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한다. 머리와 몸통은 팔과 앞다리로 보호한다.[1]
4. 1. 타격 기술
팡크라티온에서는 주먹을 이용한 권투 기술뿐만 아니라 고대 권투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손 공격 기술도 사용되었다.[19] 발차기는 팡크라티온의 필수적인 부분이자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발차기를 잘하는 것은 팡크라티아스트에게 큰 이점이었다. 에픽테토스는 다른 사람을 폄하하며 "μεγάλα λακτίζειςgrc" ("너는 발차기를 잘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페르가모 출신의 팡크라티아스트 글리콘은 "넓은 발"을 가졌다고 묘사되는데, 이는 그의 "무적의 손"보다 먼저 언급되며, 팡크라티온에서 발차기가 손만큼이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갈렌의 풍자적인 구절에서는 발차기 실력이 뛰어난 당나귀에게 팡크라티온 우승 상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발차기 능력이 팡크라티아스트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을 알 수 있다.4. 2. 그래플링 기술
팡크라티온 선수(그리스어: παγκρατιαστής, 복수형: παγκρατιασταί)[17]는 상대를 공격하고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했다. 선 자세에서 싸우는 방식은 '아노 팡크라티온'(그리스어: ἄνω παγκράτιον, "상위 팡크라티온")[18], 땅에서 싸우는 방식은 '카토 팡크라티온'(그리스어: κάτω παγκράτιον, "하위 팡크라티온")이라고 불렀다.아노 팡크라티온과 카토 팡크라티온에서 사용된 기술 중 일부는 고대 도기, 조각상, 문헌을 통해 알려져 있다. 고대 문헌에는 경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도 기록되어 있다.
팡크라티온에서는 팔과 다리를 꺾는 다양한 관절기 기술이 사용되었다.
4. 2. 1. 팔 꺾기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여러 상황에서 팔 꺾기를 수행할 수 있다.4. 2. 2. 다리 꺾기
스트레이트 앵클 락, 힐 훅 등 현대 종합격투기에서도 사용되는 다리 관절 기술이 사용되었다. 팡크라티온 선수들은 "발꿈치로 레슬링하는 자"와 "발목으로 레슬링하는 자"로 구분되었는데, 이는 이러한 기술들에 대한 초기 지식을 나타낸다.[21]4. 3. 조르기 기술
선수들은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기관 부위(기도 및 "아담의 사과")를 잡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조르기 기술(ἄγχειν|ancheingrc)을 사용했다. 이러한 조르기는 선수가 상대방의 앞이나 뒤에 있을 때 모두 사용 가능했다.[17] 조르기에 사용되는 손 모양은 엄지와 검지 사이의 물갈퀴 부분이 목의 상당히 높은 부분에 위치해야 하며, 엄지손가락은 안쪽과 아래쪽으로 구부려 상대방의 아담의 사과 뒤쪽까지 닿도록 해야 한다. 압박을 가하는 주된 손가락은 엄지, 검지, 중지이며, 약지는 최소한의 힘을 가하고, 새끼손가락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기술이 눈 찌르기로 간주되어 불법이었을지는 불분명하다.또 다른 조르기 기술은 목의 바깥쪽에 네 손가락을 대고 엄지손가락 끝으로 목의 움푹 파인 곳을 눌러 기도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뒤에서 목 조르기(RNC)는 무술에서 상대의 등 뒤에서 가하는 조르기 기술이다. "뒤에서 목 조르기"라는 용어는 유술과 유도에서 또는 "나체 조르기"로 알려진 기술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나체"라는 단어는 유술/유도에서 발견되는 다른 조르기 기술과 달리, 이 기술은 ("") 또는 훈련복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뒤에서 목 조르기에는 두 가지 변형이 있다. 한 가지 버전에서는 공격자의 팔이 상대의 목을 감싸고 다른 팔의 이두근을 잡는다. 두 번째 버전에서는 공격자가 상대의 목을 감싼 후 손을 서로 맞잡는다. 이 기술들은 매우 효과적이다.
뒤에서 가해지는 조르기에 대한 반격 기술은 조르기를 가하는 팔의 손가락 중 하나를 비트는 것이다. 이 반격 기술은 필로스트라투스에 의해 언급되었다. 조르기가 바인 바디 록과 함께 걸렸을 경우, 다른 반격 기술은 그 록에 대항하여 가해지는 것이었다. 상대의 발목에 충분한 고통을 가함으로써, 상대는 조르기를 포기할 수 있었다.[1]
4. 4. 던지기 및 테이크다운
팡크라티온에서 선수들은 상대를 공격하고 항복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했다. 팡크라티아스트가 서서 싸울 때를 '''''' (ἄνω παγκράτιονgrc, "상위 팡크라티온")이라고 불렀다.[18]역 허리 걸기에서 선수는 엉덩이와 다리의 힘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들어 올려 회전시킨다(ἀναβαστάσαι εἰς ὕψοςgrc – , "높이 들어 올리기").[1] 선수가 가하는 힘에 따라 상대는 선수 몸을 향하거나 등을 마주한 채로 뒤집힌다. 공격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수는 상대방을 머리부터 땅에 떨어뜨리거나, 잡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땅에 꽂아 넣을 수 있다. 다른 접근 방식은 헤파이스테이온의 메토페( μετώπηgrc)에 조각된 것처럼, 테세우스가 케르키온을 들어 올리는 모습과 같이 상대방을 거꾸로 세우는 것보다 던지는 것에 더 중점을 둔다.
스프롤 후 허리 걸기는 상대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선수가 상대방의 등 위,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선수는 스프롤을 한 후 팔로 상대방의 몸통을 뒤에서 감싸고 허리 잠금을 설정한다. 그런 다음 다리와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뒤로 들어올려 던진다.[1]
상대가 선수의 뒤로 접근하여 허리 잠금을 시도하고, 상대를 들어 올려 뒤와 옆으로 던지거나 떨어뜨릴 수도 있다. 선수는 상대를 따라 땅에 엎드린 후, 등을 대고 누워 상대를 고정하여 뒤에서 타격을 가하거나 목을 조를 수 있다.[1]
5. 전략 및 전술
팡크라티온에서 선수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서는 자세를 취했다. 이는 레슬링 선수의 정면 자세와 복서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팡크라티온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 몸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고, 왼손은 오른손보다 앞에 위치한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 정도로 높이 들고,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앞, 아래, 그리고 서로 약간 마주보게 한다. 앞쪽 팔은 거의 완전히 뻗지만 완전히 뻗지는 않으며,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다. 선수의 등은 다소 둥글지만 레슬링 선수만큼은 아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1]
체중은 대부분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으며, 앞쪽(왼쪽) 발은 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앞다리로 차기를 하거나, 앞 무릎을 들어 올려 상대방의 낮은 차기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한다. 머리와 몸통은 팔과 앞다리로 보호한다.[1]
팡크라티온 경기는 야외에서 오후에 열렸기 때문에, 낮은 태양을 고려하여 얼굴의 위치를 잡는 것이 주요 전술적 목표였다. 팡크라티스트는 태양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이는 상대의 공격에 부분적으로 눈이 멀게 되어 특정 목표에 정확하게 타격을 가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테오크리토스는 폴리데우케스와 아미코스의 복싱 경기에서, 두 선수가 누가 태양 광선을 등 뒤에 받는지 경쟁하며 치열하게 싸웠다고 언급했다. 결국, 폴리데우케스는 기술과 교활함으로 아미코스의 얼굴에 햇빛이 쏟아지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얼굴은 그늘에 있게 만들었다.[4]
서서 싸울지, 아니면 그라운드로 갈지는 선수들의 상대적인 힘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발로 서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무릎을 땅에 대거나 그라운드로 가는 것은 전반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여겨졌다.[4]
5. 1. 위치 선정
팡크라티온 선수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섰다. 이는 레슬링 선수의 정면 자세와 복서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신체 중심선 보호, 그래플링 기술 적용을 모두 고려한 선택이다. 신체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앞에 위치한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 또는 약간 아래에 오도록 높이 든다. 손은 부분적으로 열려 있고, 손가락은 이완되어 있으며,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앞, 아래, 그리고 서로 약간 마주보게 한다. 앞쪽 팔은 거의 완전히 뻗지만 완전히 뻗지는 않으며,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지만 현대 복서의 뒤쪽 팔보다 더 펴져 있다. 선수의 등은 다소 둥글지만 레슬러의 등만큼은 아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1]체중은 사실상 모두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으며, 앞쪽(왼쪽) 발은 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선수가 앞다리로 킥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는 동시에 앞 무릎을 들어 올려 막아 상대방의 낮은 수준의 킥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하여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몸의 자세와 조화를 이룬다. 머리와 몸통은 보호하는 두 상지(팔)와 앞다리 뒤에 위치한다.[1]
팡크라티온 경기는 야외에서 오후에 열렸기 때문에, 낮은 태양을 고려하여 얼굴의 위치를 잡는 것이 주요 전술적 목표였다. 팡크라티스트는 복서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이는 상대방의 공격에 부분적으로 눈이 멀게 되어 특정 목표에 정확하게 타격을 가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테오크리토스는 폴리데우케스와 아미코스의 복싱 경기를 묘사하면서, 두 선수가 누가 태양 광선을 등 뒤에 받는지 경쟁하며 치열하게 싸웠다고 언급했다. 결국, 폴리데우케스는 기술과 교활함으로 아미코스의 얼굴에 햇빛이 쏟아지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얼굴은 그늘에 있게 만들었다.[1]
이러한 위치 선정은 (눈이 정면을 향한 채) 서서 타격만 하는 복싱에서 가장 중요했지만, 팡크라티온에서도, 특히 경기 초반과 선수들이 서 있는 동안에도 중요했다.[1]
5. 2. 스탠딩 vs 그라운드
팡크라티스트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서는 자세를 취했다. 이는 레슬링의 정면 자세와 복싱의 측면 자세 중간 형태로,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팡크라티온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 몸의 왼쪽이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나오고, 왼손은 오른손보다 앞에 위치한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에 오도록 높이 들고, 손바닥은 앞, 아래, 서로를 향하게 한다. 앞쪽 팔은 거의 뻗고, 뒤쪽 팔은 더 굽혀져 있다. 등은 다소 둥글고,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1]체중은 대부분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고, 앞쪽(왼쪽) 발은 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 자세는 앞다리로 킥을 날리거나, 앞 무릎을 들어 상대의 낮은 킥을 막을 수 있게 한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고, 약간 옆으로 향한다. 머리와 몸통은 팔과 앞다리로 보호한다.[1]
팡크라티온 경기는 오후에 야외에서 열렸기 때문에, 태양의 위치가 중요했다. 선수들은 태양을 등지고 싸우려 했는데, 이는 상대의 공격에 눈이 멀어 정확한 타격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테오크리토스는 폴리데우케스와 아미코스의 경기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폴리데우케스가 아미코스의 얼굴에 햇빛이 쏟아지게 하고 자신은 그늘에 있도록 만들었다고 묘사했다.[4]
서서 싸울지, 그라운드에서 싸울지는 선수의 강점에 따라 결정되었다. (위) 팡크라티온과 (아래) 팡크라티온이 구분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서 있는 것이 유리하고 그라운드로 가는 것은 불리하게 여겨졌다.[4]
5. 3. 공격 vs 방어
팡크라티스트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선다. 이는 레슬러의 정면 자세와 복서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팡크라티온의 특성에 부합한다. 몸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고,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앞에 있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 또는 그보다 약간 아래에 오도록 높이 든다. 손은 부분적으로 열려 있고, 손가락은 이완되어 있으며,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앞, 아래, 그리고 서로 약간 마주보게 한다. 앞쪽 팔은 거의 완전히 뻗지만 완전히 뻗지는 않으며,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다.[1]체중은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으며, 앞쪽(왼쪽) 발은 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앞다리로 킥을 날릴 준비와 동시에 앞 무릎을 들어 올려 상대의 낮은 수준의 킥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한다. 머리와 몸통은 보호하는 두 팔과 앞다리 뒤에 위치한다.[1]
팡크라티온 경기는 야외에서 오후에 열렸기 때문에, 낮은 태양을 고려하여 얼굴의 위치를 잡는 것이 주요 전술적 목표였다. 팡크라티스트는 태양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이는 상대의 공격에 부분적으로 눈이 멀게 되어 특정 목표에 정확하게 타격을 가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테오크리토스는 폴리데우케스와 아미코스의 복싱 경기에서, 두 선수가 누가 태양 광선을 등 뒤에 받는지 경쟁하며 치열하게 싸웠다고 언급했다. 결국, 폴리데우케스는 기술과 교활함으로 아미코스의 얼굴에 햇빛이 쏟아지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얼굴은 그늘에 있게 만들었다.
서서 싸울지, 아니면 그라운드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선수들의 상대적인 힘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발로 서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무릎을 땅에 대거나 그라운드로 가는 것은 전반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여겨졌다.[4]
5. 4. 상대방의 약점 공략
팡크라티온 선수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서는 자세를 취했다. 이는 레슬링 선수의 정면 자세와 복싱 선수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팡크라티온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 몸의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고, 왼손은 오른손보다 더 앞에 위치한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 정도로 높이 들고,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앞, 아래, 그리고 서로 약간 마주보게 한다. 앞쪽 팔은 거의 완전히 뻗지만 완전히 뻗지는 않으며,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다. 선수의 등은 다소 둥글지만 레슬링 선수만큼은 아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1]체중은 대부분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으며, 앞쪽(왼쪽) 발은 발의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앞다리로 차기를 하거나, 앞 무릎을 들어 올려 상대방의 낮은 차기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한다. 머리와 몸통은 팔과 앞다리로 보호한다.[1]
6. 훈련
팡크라티온 선수는 상대를 거의 정면으로 마주보며, 약간 옆으로 선다. 이는 레슬러의 정면 자세와 복서의 옆 자세 중간 위치로, 타격과 신체 중심선 보호, 그래플링 기술 적용을 모두 고려한 자세이다. 신체 왼쪽은 오른쪽보다 약간 앞으로, 왼손은 오른손보다 앞에 둔다. 양손은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선 높이에 오도록 높이 들고, 손은 부분적으로 열어 손가락을 이완시킨다. 손바닥은 자연스럽게 앞, 아래, 서로를 향한다. 앞쪽 팔은 거의 뻗지만 완전히 펴지는 않으며, 뒤쪽 팔은 앞쪽 팔보다 더 굽어 있지만 현대 복서의 뒤쪽 팔보다는 더 펴져 있다. 등은 다소 둥글지만 레슬러만큼은 아니다.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1]
체중은 대부분 뒤쪽(오른쪽) 발에 실려 있고, 앞쪽(왼쪽) 발은 발 앞부분으로 바닥에 닿는다. 이는 앞다리 킥과 동시에 앞 무릎을 올려 상대방의 낮은 킥을 막을 수 있는 자세이다. 뒤쪽 다리는 안정성과 힘을 위해 구부러져 있으며, 약간 옆으로 향해 몸 자세와 조화를 이룬다. 머리와 몸통은 팔과 앞다리로 보호한다.[1]
6. 1. 고대 팡크라티온 훈련
팡크라티온의 기본적인 지도는 김나시온에서 청소년의 체육을 담당하는 파이도트리바에(, "육체 트레이너"[22])가 실시했다.[23] 수준 높은 운동선수는 γυμνασταίgrc ()라고 불리는 특별 트레이너에게 훈련을 받았으며,[23] 이들 중 일부는 팡크라티온 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였다.[6]선수들은 각자 다른 기술과 방법을 익혔고, 저마다 다채로운 파이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들은 근력, 스피드, 스태미나, 지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과, 스탠딩 상태에서의 싸움(아노 팡크라티온)과 그라운드 상태에서의 싸움(카토 팡크라티온)을 구분한 훈련, 기술을 배우고 몸에 익히기 위한 반복 훈련 등 현대의 고도화된 운동선수 훈련과 유사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을 받았다. [6]
다양한 크기의 가죽 샌드백(, "가죽 자루")과 더미 인형이 타격 연습뿐만 아니라 몸과 손발을 단련하는 데 사용되었고, 동양 무술의 형(카타)과 비슷한 훈련 방법(, )도 존재했다.[6] 또한, 선수들은 영양 관리, 마사지, 그 외의 회복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6. 2. 현대 팡크라티온 훈련
팡크라티온의 기본적인 지도는 김나시온에서 청소년의 체육을 담당하는 파이도트리바에(피지컬 트레이너)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고도의 기술을 가진 선수는 짐나스타라고 불리는 특별한 트레이너에게 훈련을 받았다.[23] 짐나스타 중에는 팡크라티온 선수로 성공을 거둔 자도 있었다.선수들은 다양한 기술과 방법을 개발했고, 각자 다채로운 파이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들은 현대의 고도 운동선수 훈련과 통하는 근력, 스피드, 스태미나, 지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과, 스탠딩 상태에서의 싸움()과 그라운드 상태에서의 싸움()을 나누어 훈련했고, 기술을 배우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한 반복 훈련 등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했다.[6]
다양한 크기의 가죽 샌드백()과 더미 인형이 타격 연습뿐만 아니라 몸과 손발의 강화에도 사용되었고, 동양 무술의 형()에 비슷한 훈련 방법(, )도 존재했다.[6] 또한, 영양 관리나 마사지, 그 외의 회복술을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7. 유명 선수
팡크라티온은 고대 올림픽에서 인기 종목이었으며, 유명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선수들이 있다.
- 아리키온: 고대 올림픽에서 2회 연속 우승(기원전 572년, 568년)을 하였다. 3연패를 노린 결승전에서 상대에게 목이 졸리는 위기 상황에서도 발목을 꺾어 승리했지만, 동시에 질식사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 디오시푸스: 기원전 336년 고대 올림픽에서 상대 선수들이 모두 겁을 먹고 출전하지 않아 전 경기 부전승으로 우승했다. 이는 '아코니티'(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영예로운 칭호로 불렸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총애를 받다가 모함을 받아 자살했다.
- 스쿠투사의 폴리다마스: 올림푸스 산에서 맨손으로 사자를 잡은 일화로 유명하다.
- 테오게네스: 팡크라티온뿐만 아니라 복싱에서도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고대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도리에우스, 시키온의 소스트라토스 등 많은 팡크라티온 선수들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7. 1. 고대 팡크라티온 선수
- 테아게네스
- 아리키온
- 클레이토마코스
- 스쿠투사의 폴리다마스
- 디오시푸스
- 델포이의 티마시테우스
- 시키온의 소스트라토스
- 히스몬
- 아르카디아의 안티오쿠스
- 클레오나이의 티만테스[24][25]
- 아테네의 칼리아스(Καλλίᾳςgrc) : 그의 조각상은 미콘이 만들었다.[26]
- 메날로의 안드로스테네스(Ἀνδροσθένηςgrc) : 로카이우스(Λοχαίοςgrc)의 아들로, 남성부에서 2번 우승했다. 그의 조각상은 메날로의 니코다무스가 만들었다.[26]
- 알렉산드리아의 스트라토(Στράτωνgrc)[27]
- 엘리스의 카푸스(Κάπροςgrc)[28]
- 로도스의 아리스토메네스(Ἀριστομένηςgrc)[28]
- 마그네시아의 프로토파네스(Πρωτοφάνηςgrc)[28]
- 알렉산드리아의 마리온(Μαρίωνgrc)[28]
- 스트라토니케아의 아리스테아스(Ἀριστέαςgrc)[28]
- 킬리키아의 니코스트라투스(Νικόστρατοςgrc)[28]
- 트랄레스의 아르테미도루스(Ἀρτεμίδωροςgrc)[29]
- 로도스의 디아고라스의 아들 도리에우스[30]
팡크라티아스트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아리키온은 기원전 572년과 568년에 고대 올림픽에서 2회 연속 우승했다. 3연패를 노린 결승전에서, 뒤에서 다리로 몸통을 조이고 팔로 목을 졸리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발목을 관절기로 꺾어 항복을 받아내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지만, 동시에 질식하여 절명했다. 시신이 된 아리키온에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올리브 관이 씌워졌다.
디오시푸스는 기원전 336년 고대 올림픽에서 대전 상대가 겁을 먹고 모든 경기에 나타나지 않아 부전승으로 우승했다. 전 경기 부전승으로 우승하는 것을 "아코니티"(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하며 매우 영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디오시푸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총애를 받았지만, 대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을 때 디오시푸스가 특별 대우를 받는것에 질투한 마케도니아 군의 전사 코라구스에게 "좀 식탐이 많다"라는 모욕을 받고 결투를 신청받았다. 디오시푸스는 전라에 곤봉만 든 모습으로 이 도전에 응하여 팡크라티온 기술로 코라구스를 제압하여 승리했다. 그러나 이 일로 디오시푸스는 음모에 의해 금 술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자살했다.
무기를 들지 않고 올림푸스 산에 들어가 거대한 사자를 죽인 스쿠투사의 폴리다마스, 고대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도리에우스나 시키온의 소스트라토스, 팡크라티온과 복싱에서 모두 우승한 테오게네스 등, 팡크라티온의 고대 올림픽 우승자들의 일화는 수없이 존재한다.
8. 한국의 팡크라티온
주어진 원본 소스는 일본의 팡크라티온에 대한 내용만을 담고 있으며, 섹션 제목인 "한국의 팡크라티온"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원본 소스만으로는 해당 섹션을 작성할 수 없다. 요약에 언급된 내용은 원본 소스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현재로서는 빈 텍스트를 출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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