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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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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다로스는 기원전 518년경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으로, 그리스의 명문 가문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작시와 음악을 배웠으며, 테살리아 귀족의 의뢰를 받아 첫 승리 기념시를 지었다. 핀다로스는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며 의뢰를 받아 작품 활동을 하였고, 다른 시인들과 경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찬가, 파이안, 디튀람보스, 승리 기념시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특히 운동 경기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리 기념시가 유명하다. 그는 신과 영웅, 인간의 만남을 시에서 다루었으며, 전통적인 신화를 수정하여 신들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인 시적 스타일을 구사했다. 핀다로스의 시는 웅장하고 화려한 언어, 압축적인 문장, 생생한 이미지, 그리고 신화의 변형을 특징으로 하며, 그의 작품은 알렉산드리아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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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다로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핀다로스 흉상
핀다로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흉상의 로마 복제품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원어 이름Πίνδαρος
원어 이름 (로마자 표기)Pindaros
로마자 표기Pindarus
출생기원전 518년경
출생지키노스케팔라이, 보이오티아
사망기원전 438년경 (약 80세)
사망지아르고스
직업서정 시인
장르
추가 정보
영어 발음/ˈpɪndər/
그리스어 발음/píndaros/
일본어 표기ピンダロス

2. 생애

핀다로스는 기원전 518년경 보이오티아의 키노스케팔라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그리스 명문 아게이다이 가문에 속했으며,[18] 젊은 시절부터 작시와 음악을 배웠다. 스무 살 무렵 테살리아 귀족의 의뢰를 받아 첫 승리 기념시(피티아 10)를 지었다.[19][20] 시모니데스와 바킬리데스 등 당대 시인들과 경쟁하며, 아테네의 헤르미오네의 라소스에게 서정시 기술을 배우고, 코린나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핀다로스의 초기부터 중년 시절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시기와 겹친다.[21][22] 그는 테베가 페르시아 편에 섰던 플라타이아 전투(기원전 479년) 당시 에이나이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전 490년 제1차 페르시아 원정 당시 그의 거주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그해 피티아 경기에 참석하여 시칠리아 왕자 트라시불루스와 처음 만나 우정을 쌓았다.

왕좌에 앉은 핀다로스(리라, 뮤즈, 여시인과 함께). 폼페이의 고대 프레스코화


중년에 핀다로스는 키레네의 아르케실라스 왕을 위해 두 편의 송가(피티아 4번, 5번)를 지어 친구 데모필루스의 귀환을 호소했다.[23]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아이게이드 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언급하며 왕과의 혈통을 강조했다.[24] 그는 아이기나와 몰로시아의 테베 프록세노스(영사)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네메아 7번에서 아이기나와 몰로시아의 영웅 네오프톨레모스를 찬양했다.[25][26]

기원전 470년, 시칠리아의 폭군 히에론을 위해 작곡한 첫 번째 피티아 송가에서 핀다로스는 그리스인들이 외세 침략자들에 대해 거둔 승리를 기념했다. 아테네를 찬양한 것 때문에 테베 당국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으나, 아테네인들은 그에게 선물로 화답했다.[27] 히에론과의 관계로 인해 고향에서 불만을 사기도 했으며, 피티아 11번에서 폭군의 통치를 비난했다.[28]

핀다로스는 서정시를 음악과 춤으로 연주했으며, 직접 음악을 작곡하고 춤을 안무하기도 했다.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며 의뢰를 받았으며, 다른 시인들과 경쟁하기도 했다.[29][30] 노년에는 그리스 정치에 참여했으며, 아테네와 테베, 아이기나 사이의 경쟁 관계를 시에 반영했다. 그의 마지막 송가(피티아 8)에서 알크마이온 신탁 근처에 살았으며, 델포이에서 예언을 받았다고 언급했다.[37][38]

핀다로스는 기원전 438년경 아르고스에서 열린 축제에 참석하던 중 80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테베로 돌아왔다. 사후, 그의 여성 친척 중 한 명은 페르세포네를 기리는 시구를 핀다로스가 불러주었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테베를 파괴할 때 핀다로스의 집을 보존하라고 명령했다.[42]

3. 가치관과 신념

핀다로스는 합창시가 쇠퇴하던 시기에 합창시를 옹호하고 찬양했다. 그의 시는 신, 영웅, 인간의 만남을 다루었으며, 심지어 죽은 자들도 참여자로 언급했다.[38]

그의 신에 대한 견해는 전통적이지만 호메로스보다 더 일관적이고 경건했다. 신들을 격하시키는 역할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당시 신학을 형성하던 지적인 개혁에는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식을 악의 징조로 다루는 등 초기 사상가들과는 다른 관점을 보였다.[44] 신들은 힘의 구현체이며, 자신의 본성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특권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적이다.[42]

종교적 신념에 대한 합리화가 어느 정도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들을 의인화하기도 했다. (예: "제우스의 딸인 진실")[45] 때로는 '신'이라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시사하는 어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신교는 아니다.[46] 아이스킬로스와 달리 신들을 배경으로 하는 운명에 대한 믿음을 표명하지 않으며, 운과 운명을 모두 신의 뜻에 종속시킨다.[47]

헤라클레스 단신: 핀다로스는 한때 영웅적인 체격의 최고의 예인 헤라클레스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무시하고 그를 단신으로 묘사하여 단신인 후원자와 비교했다.


신들의 존엄성과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전통적인 신화를 수정하기도 했다. (예: 키레네를 납치한 아폴론 신화)[48] 인간이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으로 신들을 판단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집단인 신화 속 영웅들은 인간의 야망에 공감한다. 영웅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에 따라 판단될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을 격하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한다면 신과 같다고 말하며, 타고난 재능은 신이 부여한 것이고 성공은 신의 호의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사후 세계에 대한 진술은 자기 일관적이지 않지만, 영광과 영원한 명성이 잘 살았던 삶의 가장 큰 보증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이 최고의 사람들에게도 변덕스럽다는 견해를 가졌으며, 성공에 대한 절제와 역경에 대한 용기를 강조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심도 있게 분석하지 않았으며, 일반 대중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행운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으며, 종교 및 예술 활동에는 후원자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뮤즈에게 영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기술로 영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자신을 고용하지만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하급 시인들과 자신을 독수리와 까마귀에 비유했다.

4. 작품

핀다로스는 새로운 서정시 장르를 창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물려받은 장르를 혁신적으로 사용했다. 《올림피아》 3에서 그는 현악기, 피리, 인성을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반주를 발명했다고 발표한다.[55] 그는 보이오티아 방언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바키리데스보다는 도리스 방언에 더 많이 의존하는 문학적 언어로 작곡했다.[56] 그는 '합창'곡을 작곡했지만, 그것들이 모두 합창단에 의해 불려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5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17권으로 편찬했다.[58]


  • 찬가 1권
  • 파이안 1권
  • 디튀람보스 2권
  • 행진곡 2권
  • 파르테니아("처녀들을 위한 노래") 3권
  • 가벼운 춤을 위한 노래 2권
  • 칭송시 1권
  • 트레노이("슬픔의 노래") 1권
  • 승리 기념시 4권


이 중 운동 경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쓰인 에피니키아(승리 기념시)만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나머지는 다른 고대 작가들의 인용문이나 이집트에서 발굴된 파피루스 조각에서만 발견된다.[59]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핀다로스의 작품을 엄격한 스타일의 뛰어난 예로 꼽았지만, 파르테니아에서는 그러한 스타일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60] 바키리데스와 비교할 만큼 충분한 그의 디튀람보스 시가 남아 있으며, 바키리데스는 이를 서술에 사용했다. 핀다로스의 디튀람보스는 종교적 감정의 넘치는 표현이다.

4. 1. 승리 기념시 (에피니키아)

핀다로스의 승리 기념시는 대부분 판헬레니즘 축제인 올림픽, 피티아, 이스무스, 네메아 경기에서 경쟁자들이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체육 및 음악 축제의 설립은 그리스 귀족들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였다.[61] 기원전 5세기에 전문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들은 주로 귀족들의 모임이었으며, 경쟁자 또는 관중으로서 이러한 행사에 참석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여가를 반영한다. 참석은 과시와 자기 홍보의 기회였으며, 승리의 명성은 운동 경기의 승리에서 얻는 것 이상을 훨씬 뛰어넘었다.[61] 핀다로스는 자신의 이스무스 시 중 한 편에서 승리의 순간에 대한 명성과 귀족적인 위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하여 노력하고,

:::비용도 노력도 아끼지 않고

:::진정한 탁월함을 얻으려 한다면,

:::우리는 목표를 달성한 자들에게

:::::장엄한 찬사를 바치고,

::::모든 시기심을 버려야 한다.

:::시인의 마음에는 수많은 노고를 위한

:::친절한 말을 하고,

:::모두가 공유할 아름다움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작은 선물이다. (''이스무스'' I, 반주 3)[62]

그의 승리 기념시는 각각 올림피아, 델포이, 코린토스, 네메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피티아, 이스무스, 네메아 경기의 이름을 딴 네 권의 책으로 나뉘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시가 최근 이 축제에서 체육(그리고 때로는 음악) 경연에서 승리를 거둔 소년, 청년, 남성을 기리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일부 시에서는 훨씬 오래된 승리나 심지어 하위 경기의 승리까지도 기념하는데, 종종 다른 문제나 업적을 다루는 구실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시라쿠사의 히에론을 기리기 위해 작곡된 ''피티아 3''은 그가 한때 피티아 경기에서 거둔 승리를 간략하게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만성 질환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63] ''네메아 9''와 ''네메아 10''은 시키온과 아르고스에서 열린 경기의 승리를 기념하고, ''네메아 11''은 테네도스에서 열린 시정 선거의 승리를 기념한다 (하지만 모호한 체육 승리도 언급한다). 이 세 편의 시는 ''네메아'' 시의 마지막 시이며, 포함 이유가 있다. 원본 사본에서 네 권의 시는 축제에 할당된 중요도 순서대로 배열되었는데, 가장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네메아 축제가 마지막에 온다. 판헬레니즘 주제가 없는 승리 시는 그런 다음 ''네메아'' 시의 책 끝에 함께 묶였다.[64]

핀다로스의 승전가를 추정 연대순으로 정리한 표는 다음과 같다.

추정 연대순 승전가 목록
연도
(기원전)
승전가승자종목중심 신화
498피티아 10테살리아의 히포클레스소년 장거리 경주페르세우스, 히퍼보레이아인
490피티아 6아크라가스(아그리젠토)의 크세노크라테스전차 경주안틸로쿠스, 네스토르
490피티아 12아크라가스(아그리젠토)의 미다스플루트 연주페르세우스, 메두사
488 (?)올림피아 14오르코메누스의 아소피쿠스소년 경주없음
486피티아 7아테네의 메가클레스전차 경주없음
485 (?)네메아 2아카르나이의 티모데무스판크라티온없음
485 (?)네메아 7아이기나의 소게네스소년 5종 경기네오프톨레무스
483 (?)네메아 5아이기나의 피티아스청년 판크라티온펠레우스, 히폴리테, 테티스
480이스트미아 6아이기나의 필라키데스판크라티온헤라클레스, 텔라몬
478 (?)이스트미아 5아이기나의 필라키데스판크라티온아이아키다이, 아킬레우스
478이스트미아 8아이기나의 클레안드루스판크라티온제우스, 포세이돈, 테티스
476올림피아 1시라쿠사의 히에론마상 경주펠롭스
476올림피아 2 & 3아크라가스(아그리젠토)의 테론전차 경주2. 극락도
3. 헤라클레스, 히퍼보레이아인
476올림피아 11로크리 에피제피리이의 아게시다무스소년 권투헤라클레스, 올림픽 경기 창설
476 (?)네메아 1에트나의 크로미우스전차 경주어린 헤라클레스
475 (?)피티아 2시라쿠사의 히에론전차 경주이크시온
475 (?)네메아 3아이기나의 아리스토클레이다스판크라티온아이아키다이, 아킬레우스
474 (?)올림피아 10로크리스 에피제피리이의 아게시다무스소년 권투없음
474 (?)피티아 3시라쿠사의 히에론마상 경주아스클레피오스
474피티아 9키레네의 텔레시크라테스무장 경주아폴론, 키레네
474피티아 11테베의 트라시다이우스소년 단거리 경주오레스테스, 클리템네스트라
474 (?)네메아 9에트나의 크로미우스전차 경주테베에 간 일곱 장수
474/3 (?)이스트미아 3 & 4테베의 멜리수스전차 경주 & 판크라티온3. 없음 4. 헤라클레스, 안타이오스
473 (?)네메아 4아이기나의 티미사르쿠스소년 레슬링아이아키다이, 펠레우스, 테티스
470피티아 1에트나의 히에론 1세전차 경주티폰
470 (?)이스트미아 2아크라가스의 크세노크라테스전차 경주없음
468올림피아 6시라쿠사의 아게시아스노새 전차 경주이아무스
466올림피아 9오푸스의 에파르무스레슬링데우칼리온, 퓌라
466올림피아 12히메라의 에르고텔레스장거리 경주티케(행운)
465 (?)네메아 6아이기나의 알키미다스소년 레슬링아이아키다이, 아킬레우스, 멤논
464올림피아 7로도스의 디아고라스권투헬리오스와 로도스, 틀레폴레무스
464올림피아 13코린토스의 크세노폰단거리 경주 & 5종 경기벨레로폰, 페가수스
462/1피티아 4 & 5키레네의 아르케실라우스 4세전차 경주4. 아르고나우타이 5. 키레네의 밧투스 1세
460올림피아 8아이기나의 알키미다스소년 레슬링아이아쿠스, 트로이
459 (?)네메아 8아이기나의 데이니스경주아이아스
458 (?)이스트미아 1테베의 헤로도토스전차 경주카스토르, 이올라오스
460 또는 456 (?)올림피아 4 & 5카마리나의 프사우미스노새 전차 경주4. 에르기누스 5. 없음
454 (?)이스트미아 7테베의 스트렙시아데스판크라티온없음
446피티아 8아이기나의 아리스토메네스레슬링암피아라오스
446 (?)네메아 11테네도스의 아리스타고라스프뤼타니스 취임없음
444 (?)네메아 10아르고스의 테아이우스레슬링카스토르, 폴룩스


4. 1. 1. 시적 스타일

핀다로스의 시는 장르적 특징 외에도 매우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다. 그의 송가는 주로 건축적 은유나 장소, 여신에 대한 웅장한 묘사로 시작하여 장엄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도입부가 특징이다.[65] 그는 화려한 언어와 장식적인 복합 형용사를 풍부하게 사용한다.[65] 문장은 압축되어 의미가 불분명할 정도이며, 특이한 단어와 우회적인 표현은 언어에 신비로운 품격을 부여한다. 의미의 전환은 종종 불규칙하고, 이미지는 터져 나오는 듯하다. 때로는 당황스럽지만 그의 시를 생생하고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스타일이다.[66]

핀다로스는 신화 처리 방식 또한 독특했는데, 전통적인 이야기에 변형을 자주 가하였다.[73] 당시 청중들은 신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핀다로스는 독특하고 놀라운 효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간 순서를 뒤집는 것은 그가 사용한 효과 중 하나였다. ''로도스의 디아고라스''에게 헌정된 ''올림피아 7''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은 절정의 사건으로 시작하여 그 이전의 장면들을 보여주고, ''네메아 10''에서 디오스쿠리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와 같이 그 재진술로 끝나는 순환 패턴과 유사할 수 있다. 신화는 그가 관심 있는 주제와 교훈, 특히 영웅적인 조상을 통한 인류와 신들의 고귀한 관계, 그리고 인간 존재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때로는 전통적인 이야기가 당황스러웠기 때문에, "침묵하라, 나의 혀여: 여기서 온전한 진실을 가면 없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이익이 없다." (''네메아 5'', 에포드 1)라고 하거나, "저리 가라, 저 이야기! 내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라! 신을 모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지혜이다." (''올림피아 9'', 스트로피 2), 또는 "인간이 신들이 인간의 살을 먹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생각을 경멸한다." (''올림피아 1'', 에포드 2)와 같이 신중하게 편집하기도 했다.[74] 그의 신화적 설명은 극적이고 생생한 효과를 위해 편집되었으며, 일반적으로 바다, 하늘, 어둠, 불, 산과 같은 크고 상징적인 요소를 배경으로 몇 가지 장엄한 제스처를 통해 전개된다.[65]

4. 1. 2. 구조

핀다로스의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신이나 뮤즈에 대한 헌사로 시작하여, 승리자와 그의 가족, 조상, 고향에 대한 찬사로 이어진다. 시의 중심이자 가장 긴 부분은 서술된 신화인데, 이는 도덕적 교훈을 보여주며 시인과 독자를 신과 영웅들의 세계와 연결한다.[75] 서정시는 훈련사(승자가 소년인 경우)나 과거 대회 우승자인 친척에 대한 찬사, 미래의 성공을 위한 기도나 희망을 표현하며 마무리된다.[76] 승리한 사건 자체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승리를 위한 노력에 대한 언급은 종종 나타난다.

많은 현대 비평가들은 서정시 안에 숨겨진 구조나 통일 원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대부분의 서정시는 3행 구조(triadic)로, 연(stanza)이 3개씩 묶여 가사적 단위를 이룬다. 각 3행구는 길이와 운율이 같은 두 개의 연('strophe'와 'antistrophe')과 길이와 운율이 다르지만 가사적 움직임을 마무리하는 세 번째 연('epode')으로 구성된다. 가장 짧은 서정시는 하나의 3행구로, 가장 긴 서정시(''Pythian 4'')는 13개의 3행구로 구성된다. 7편의 서정시는 단일 연구조(monostrophic)로, 각 연의 길이와 운율이 같다. 단일 연구조의 서정시는 승전 행진이나 행렬을 위해, 3행 구조의 서정시는 합창 춤에 적합하게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76] 핀다로스의 운율은 영시 독자들에게 익숙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운율과는 다르다. 운율은 대략 두 가지 범주로 나뉘는데, 절반은 다크틸로-에피트리트(dactylo-epitrite)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올식 운율이다.[56]

5. 영향과 유산

핀다로스는 시인으로서의 명성으로 그리스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의 고향 테베와 경쟁 관계에 있던 아테네는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으며, 핀다로스는 아테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에는 비판적인 시각이 내포되어 있었다.[35] 예를 들어, 코로네이아 전투(기원전 447년)에서 테베가 아테네를 패배시킨 것을 은밀하게 기념하는 방식으로 거인 포르피리온과 티폰의 몰락을 묘사하기도 했다.[35] 그러나, 아테네에 대한 은밀한 비판은 시에 대한 어떤 전기적, 역사적 해석을 허용하는 학자들조차도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한다.[36]

핀다로스의 마지막 시 중 하나는 그가 알크마이온 신전 근처에 살았고, 재산의 일부를 보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델포이로 여행하는 동안 알크마이온으로부터 예언을 받았다고 언급했지만,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37][38] 이 시는 아이기나 출신 운동선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쓰여졌는데, 핀다로스가 1인칭 단수를 사용할 때 반드시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청중에게 전형적인 가치를 분명히 하거나, 시에서 기념되는 주제를 대신하여 말해진다.[39] 따라서 예언을 받은 "나"는 핀다로스가 아니라 아이기나 출신의 운동선수였을 수 있다.[40]

핀다로스는 약 80세까지 살았으며, 기원전 438년경 아르고스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골은 딸들에 의해 테베로 돌아왔고, 그의 시구 중 일부는 린도스의 사원 벽에 금박으로 새겨졌다.[42] 그는 델포이에서 아폴론의 사제로 선출되었고, 사제들은 그가 앉았던 철 의자를 전시했다. 매일 밤 사원 문을 닫으면서 "시인 핀다로스여, 신들의 만찬에 참석하라!"라고 읊조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5년에 테베를 파괴했을 때, 핀다로스의 집을 그대로 두라고 명령했는데, 이는 그의 조상 알렉산드로스 1세(마케도니아)를 찬양하는 시구에 대한 감사였다.[42]

핀다로스는 합창시를 정당화하고 칭송했으며, 그의 시는 신, 영웅, 인간들의 만남의 장이었다. 그는 신들에 대해 전통적이면서도 경건한 견해를 가졌고, 일식을 악의 징조로 다루었다.[43][44] 신들은 힘의 구현체이며, 자신의 본성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특권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적이었다.[47]

핀다로스는 신화를 선택하고 수정하여 신들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했다. 예를 들어, 델포이 신탁의 신 아폴론이 모든 것을 아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본성에 따라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정보를 구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케이론은 아폴론의 전지전능함을 확인시켜준다.[49]

신들과 달리 영웅들은 인간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될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을 격하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핀다로스는 포코스를 살해한 펠레우스텔라몬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청중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51]

핀다로스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한다면 신과 같다고 말하며, 성공은 신의 호의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후 세계에 대한 일관되지 않은 진술을 했지만, 영광과 명성이 잘 살았던 삶의 가장 큰 보증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은 최고의 사람들에게도 변덕스럽다고 보았으며, 성공에 대한 절제와 역경에 대한 용기를 강조했다.

핀다로스는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의 지혜와 기술로 그 영감을 형성했다. 그는 자신을 고용하지만,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예술은 마법적이라고 생각했다.[53]

핀다로스는 새로운 서정시 장르를 창시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장르를 혁신적으로 사용했다.[54] 그는 보이오티아 방언을 사용했을 것이지만, 문학적 언어로는 도리스 방언을 사용했다.[56]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장르에 따라 17권으로 편찬했다.[58]

핀다로스의 작품
권수장르
1히므노이(찬가)
1파이아네스(파이안)
2디튀람보이(디튀람보스)
2프로소디아(행진곡)
3파르테니아(처녀들을 위한 노래)
2히포르케마타(가벼운 춤을 위한 노래)
1엔코미아(칭송시)
1트레노이(슬픔의 노래)
4에피니키아(승리 기념시)



이 중 에피니키아만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나머지는 파피루스 조각 등으로만 발견된다.[59]

핀다로스의 시구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해져 내려왔으며, 대부분은 필사 전통을 통해 보존되었다. 학자들은 코덱스 계보를 통해 사본들의 관계를 추적해 왔지만, C.M. 보우라와 같은 학자들은 원형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특정 계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78] [79]

보우라가 선정한 주요 사본
코드출처형식연대 (세기)포함된 노래
A코덱스 암브로시아누스 C 222inf.종이 35×25.5 cm13-14세기올림피아 1-12, 보우라가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 독특한 독법, 주석 포함.
B코덱스 바티카누스 그라에카 1312비단 24.3×18.4 cm13세기올림피아 1부터 이스트미아 8까지 (전체 작품), 일부 책장과 구절 누락, 주석 포함; 자카리아스 칼리에르게스는 1515년 로마 판본을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아마도 현재 누락된 자료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음.
C코덱스 파리시누스 그라에쿠스 2774비단 23×15 cm14세기올림피아 1부터 피티아 5까지, 독특한 독법 일부 포함, 많은 비잔틴식 삽입/추측 포함(투린은 따라서 이 코덱스를 기각함), 부주의한 필체.
D코덱스 로렌티아누스 32, 52비단 27×19 cm14세기올림피아 1부터 이스트미아 8까지 (전체 작품), 파편(파편 1)과 주석 포함, 부주의한 필체.
E코덱스 로렌티아누스 32, 37비단 24×17 cm14세기올림피아 1부터 피티아 12까지, 주로 B와 일치, 주석 포함, 마지막 페이지 제거 후 종이로 대체됨.
G코덱스 고팅겐시스 필롤로구스 29비단 25×17 cm13세기올림피아 2부터 피티아 12까지, 주로 B와 일치(따라서 비교에 유용), 16세기에 추가된 올림피아 1 포함.
V코덱스 파리시누스 그라에쿠스 2403비단 25×17 cm14세기올림피아 1부터 네메아 4까지, 네메아 6의 구절 일부 포함; G와 마찬가지로 B를 지원하고 검증하는 데 유용함.



핀다로스는 칼리마쿠스,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 등 헬레니즘 시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81][82] 비잔틴 시대 동안에도 많이 읽혔다.[84]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는 핀다로스와 관련된 불규칙적인 운문이 핀다릭이라고 불렸지만, 핀다로스와의 연관성은 상상에 불과했다.[85] 1896년 부활한 올림픽 경기를 위해 '핀다릭 오드'가 작곡되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서도 비슷한 작품들이 작곡되었다.

6. 평가

칼리마쿠스는 핀다로스의 독창성에 매료되었다. 그의 걸작인 『아이티아』에는 베레니케 여왕을 찬양하는 엘레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스타일과 형식은 핀다로스를 연상시킨다.[81] 아폴로니우스 로디우스가 지은 헬레니즘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는 핀다로스의 스타일과 서사시에서 에피소드적 비네트를 사용하는 방식의 일부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다.[82]

호라티우스는 핀다로스의 문체를 흠모했다. 그는 친구인 율루스 안토니우스에게 바친 그의 사포식 시 중 하나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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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티우스의 『오데』 1~3권이 '출판'된 후 핀다로스 스타일의 서정시가 유행했던 것 같다. 호라티우스는 사파이크와 알카익과 같은 다른 스타일들을 능숙하게 구사했는데, 이는 동시대 사람들이 같은 형식으로 시도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핀다로스 방식의 3행절로 된 작품은 작곡하지 않았다.[83] 핀다로스는 비잔틴 시대 동안 많이 읽히고, 인용되고, 복사되었다. 예를 들어, 11세기의 크리스토포로스 미틸레나이오스는 그의 여섯 번째 시에서 전차 경주를 패러디하며 핀다로스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84]

17세기와 18세기 동안 유럽의 문학 이론가들은 호라티우스와 핀다로스와 관련된 두 가지 유형의 서정시를 구분했다. 4행절로 된 규칙적인 운문은 호라티우스의 『오데』와 관련이 있었다. 더 긴 행절로 된 불규칙적인 운문은 핀다릭이라고 불렸지만, 핀다로스와의 연관성은 대부분 상상에 불과했다. 애브러햄 카우리는 영국의 핀다릭의 주요 대표자로 여겨졌다. 사실, 두 스타일은 항상 구분하기 쉽지 않았고 많은 '핀다릭' 오드는 토마스 그레이의 일부 시에서처럼 내용이 상당히 호라티우스적이었다.[85]

1896년 아테네에서 부활한 올림픽 경기를 위해 옥스퍼드 학자 조지 스튜어트 로빈슨이 '핀다릭 오드'를 작곡했으며, 비슷한 작품들이 고전학자 아르망 당구르에게 의뢰되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위해 작곡되었다.

C. M. 보우라(C. M. Bowra)는 핀다로스의 특징을 "그의 시적 사명에 대한 타고난, 의심 없는 자부심은 그가 자신의 모든 재능과 노력을 쏟게 만듭니다. 그 결과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 이름에 걸맞은 시가 탄생하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찬란한 비전을 바탕으로 하며, 매우 미묘하고, 모험적이며, 헌신적인 예술로 만들어졌기에, 핀다로스가 모든 불협화음이 해소되고 모든 의구심이 생명을 주는 말의 힘에 의해 사라지는 고귀한 자리에서 음악의 원형으로 여기는 노래의 지상의 대응물이 될 만합니다."라고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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